천국은 지금 여기에 (시62:1-12)
본문
신약 성경 특히 공관 복음서에 많이 나타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천국 혹은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마가복음에는 14번, 누가복음에는 32번 나 오고, 마태 복음에서는 37번 나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복은서들의 주제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첫번째 설교가 "회개 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는 말씀이었고, 그가 가르치신 비유의 주제가 하나님의 나라였으며, 그가 행하신 이적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 여 온 증거가 되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그가 달려 돌아가신 십자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게 하는 전환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예수께서 그의 생애와 교훈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하여 주신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여 왔고,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그 나라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복음인 것 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우리는 전혀 잘못 생각하거나 이 해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이 다음에 죽어서 가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믿는 것이 대부분의 교인들의 천국에 대한 이해입니다. '천당' 이라고 우리는 말하면서 요한 계시록에 나타난 아름다운 집을 연상하곤 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생각은 동양의 유토피아인 무릉도원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극 락 세계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천국을 공간적으로 생각해서 아름다운 이상향으로 믿었고, 시간적으로는 이 다음 에 죽어서 혹은 예수님 재림 후에 이루어질 그런 나라로 믿어 왔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사람들이 예수님의 교훈을 토 대로 하여 세운 일종의 지상 유토피아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통치와 그리고 하나님 의 뜻에 대한 인간의 응답과 복종으로 보는 입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응답 여부와는 관계 없이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견해도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잘못된 천국에 대한 신앙 때문에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 향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신앙의 결핍을 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이 역사 속에서 지금은 그의 통치를 보류하고 계시 다고맏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의 주권 행사를 부분적으로만 하고 계실 뿐이지 이 다음에 이 역사의 종말이 온 후에라야 완전한 주권을 행 사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부분적으 로 들어 주실뿐 전적으로 우리를 돌보시고 구원하시는 것은 이 다음으로 미루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은 결국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 뢰심 대신에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과 요소가 우리 생활 속에 끼어 들 여 지를 만들어 줍니다. 쉽게 말해, 기도는 하면서 그대로 되리라고 믿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역사와 그 뜻을 물어 거기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에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자세가 바로 이런 신 앙인들의 삶의 형태입니다.
둘째로, 지나친 보상 심리(補償心理)가 문제입니다. "예수 믿으면 천 당간다"는 구호는 가난과 고난에 찌들린 이 민족에게 참으로 매력적이고 귀가 번쩍 뜨이는 복음이었습니다. 이 말은 예수 믿으면 무엇이나 잘 되 고 복받는다는 말로 확대 해석되었습니다. 한국 민족이 그렇게 갈망했던 복을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물붓듯이 부어 주신다고 믿게 된 것입니다. 좌우간 예수 믿으면 구원도 받고 천당도 간다니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예수만 믿으면, 천당에 간다니 이렇게 쉽고 좋은 종교는 세상에 다시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뼈 빠지게 일만 해야 했던 가난한 백성들에게 이것은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영혼도 구원받고, 하는 사업도 잘 되고, 건강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교회로 메어지라고 찾아드는 것을 보면, 이 보상 교리는 한국 교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도 틀림 없습니다. 결국, 이런 보상 교리는 신자들로 하여금 받을 생각만 하지,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생각을 약화시켜 놓았습니다. 세째로, 오늘의 교회로 하여금 현실을 기피하게 만들었고, 따라서 사 회와 역사에 대한 책임을 약화시켰습니다. 이 세상은 악하고 요란하나 나 만 예수 잘 믿고 천당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대부분의 교인들의 생각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여 있어서 내가 그 일을 하여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죽어서 이 다음에 갈 생각만 합니다. 이런 의식이 오늘 한국 교회로 하여금 이 사회를 변혁시켜야 한다는 의지를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세상을 비추어야 할 빛으로서의 사명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한국은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기독교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그 사회가 부도덕하고 무질서하며 불의한 까닭은 바로 교회가 현실을 기 피하고 사후에 갈 천당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나라란 무엇인가예수께서 하나님 의 나라가 가까왔다고 선포하셨을 때,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그 말이 전혀 처음 듣는 생소한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구약시 대부터 그 말이 사용되어 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구약에 나타난 천국의 개 념은 어떤 특정한 장소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금이시라는 것, 즉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주권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천국은 지상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임하여 오실 때 완전하게 실현된다고 믿었습니다. 여기에서 메시아 사상이 나타났고, 이 메시아에게 하나님의 주권이 맡겨지게 되고, 그가 임하시면 천국은 실현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였다고 선포하신 것은 구약에서 예언되었던 하나님의 나라가 구체화된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세례를 받으시고 시험당하시며, 비유로 가르치시며, 이 적을 행하시며, 고난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신 이 모든 생애가 그대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이며, 따라서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본문 누가복음 17장 말씀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와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 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우선 이 말씀 에서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천국의 징조로서 볼 수 있 게 오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유대인 묵시문학가들은 말세의 '징조' 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이 특색입니다. 그들은 제멋대로 상상력을 동원 하여 현 세상의 질서를 하나님이 파괴한다든가 또는 '메시아의 저주'등 을 운운하여 세계 파멸을 묘사하였습니다. 그 까닭은 현세는 악의 세력이 통치하고 있으므로 새 시대의 메시아 통치가 시작되려면 이런 파괴와 혼란이 있은 후에라야 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시대의 징조에 관심하게 되었고 천국이 눈앞에 볼 수 있게 오는양 여기 있다 저 기 있다 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논란의 대상이 되는 말입니다만, '안에'를 '가운데'(among)로 해석하여 너희 가운데 있다, 즉 바리새인들 가운데 서 계신 예수님 자신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역사 속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왔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는, 권세와 영광으로 오리라고 기대 했던 하나님의 나라와는 거리가 너무 멀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그것은 묵시 문학적인 영향으로 징조와 뚜렷 한 권세들로 임하여 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기대를 가진 사람들에게 비유로 천국을 가르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겨자씨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땅 위에 심기울 때는 모 든 씨보다 작지만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무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 어 공중의 새가 와서 깃들인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새들이 와서 깃들일만큼의 큰 나무의 형태로 바로 임하여 오는 것이 아니라, 잘 보이지도 않는 지극히 작은 겨자씨 형태로 땅 위에 임하여 온다는 사실을 이 비유는 가르치며, 동시에 겨자씨로부터 큰 나무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곧 하나님의 나라임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규격화 된 그래서 더 이상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역동 적으로 변화하는 나라입니다. 변화하며 발전하며 새롭게 되며 열매 맺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로부터 큰 나무로 자라는 생 명력과 놀라운 가능성을 간직하고 이 역사 속에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물 론, 이 생명이 자라나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든 비유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은 어떤 방해 세력도 이 나라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예수께서 십자가 를 지심으로 사탄의 세력을 꺾으셨고 승리하시어 부활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하여 이 역사 속에서 계속 자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 땅 위에 임하였고, 이미 시작되었으며, 우리는 그 나라의 백성으로 초대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먼저 은총으로 말미 암아 놀라운 생명력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겨자씨가 모진 비바람 이나 가뭄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큰 나무로 커가는 힘을 가진 것처럼 우리가 받은 새 생명도 바로 이와같은 강인한 힘을 지녔습니다. 어떤 고난 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뚫고 나갈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이 생명 속에 간직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고나과 풍파가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도 여전히 우리 생애 속에 수많은 풍파와 역경이 다가옵니다. 그것은 하나님 이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아니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우리 속에 주신 생명이 그 모든 것을 이기고 남을 힘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아시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앞에 결코 고난이 다가오지 않도록 막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생명력이 더욱 강인해지도록 훈련을 받게 하십니다. 우리 속에 주어진 강인한 생명-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에 임하여 있다는 증거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이 역사 속에 임하여 있기에 우리가 기다릴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일을 오늘 여기에서 하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그 나라가 여기에 임하여 있 고 우리가 그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바로 그 나라에서의 우리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이 땅에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확립하고 그 것을 선포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우리의 삶 속에 받아들여 그의 뜻이 이루어지 게 하며, 그의 영광이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그의 백성 으로, 그의 도구로써 그의 뜻과 구원의 역사를 이 땅 위에 실현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또한 이 사회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 고 이 사회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뜻이 이 땅 위에, 이 사회 속에 이루어지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빛된 우리의 역할이요 책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여기에 권능으로 임하여 있습니다. 오늘 비록 악이 성하고 고난의 물결이 쉴사이 없이 우리를 강타 한다 할찌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더 굳건하게 여기에 세워지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화려하게 임하여 올 미래의 나라는 오늘 고난을 헤치고 성숙하여 간 결과로 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와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 로 이룩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하나님 나라가 따로 있고 미래의 영광된 나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하나님 나라가 자라서 미래의 영광된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힘써 그 나라의 백성으로 생명의 힘 을 발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의 고난을 이기고 승리함으로 추수 때의 아름다운 결실로 하나님 앞에 서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신앙의 결핍을 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이 역사 속에서 지금은 그의 통치를 보류하고 계시 다고맏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의 주권 행사를 부분적으로만 하고 계실 뿐이지 이 다음에 이 역사의 종말이 온 후에라야 완전한 주권을 행 사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부분적으 로 들어 주실뿐 전적으로 우리를 돌보시고 구원하시는 것은 이 다음으로 미루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은 결국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 뢰심 대신에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과 요소가 우리 생활 속에 끼어 들 여 지를 만들어 줍니다. 쉽게 말해, 기도는 하면서 그대로 되리라고 믿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역사와 그 뜻을 물어 거기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에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자세가 바로 이런 신 앙인들의 삶의 형태입니다.
둘째로, 지나친 보상 심리(補償心理)가 문제입니다. "예수 믿으면 천 당간다"는 구호는 가난과 고난에 찌들린 이 민족에게 참으로 매력적이고 귀가 번쩍 뜨이는 복음이었습니다. 이 말은 예수 믿으면 무엇이나 잘 되 고 복받는다는 말로 확대 해석되었습니다. 한국 민족이 그렇게 갈망했던 복을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물붓듯이 부어 주신다고 믿게 된 것입니다. 좌우간 예수 믿으면 구원도 받고 천당도 간다니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예수만 믿으면, 천당에 간다니 이렇게 쉽고 좋은 종교는 세상에 다시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뼈 빠지게 일만 해야 했던 가난한 백성들에게 이것은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영혼도 구원받고, 하는 사업도 잘 되고, 건강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교회로 메어지라고 찾아드는 것을 보면, 이 보상 교리는 한국 교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도 틀림 없습니다. 결국, 이런 보상 교리는 신자들로 하여금 받을 생각만 하지,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생각을 약화시켜 놓았습니다. 세째로, 오늘의 교회로 하여금 현실을 기피하게 만들었고, 따라서 사 회와 역사에 대한 책임을 약화시켰습니다. 이 세상은 악하고 요란하나 나 만 예수 잘 믿고 천당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대부분의 교인들의 생각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여 있어서 내가 그 일을 하여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죽어서 이 다음에 갈 생각만 합니다. 이런 의식이 오늘 한국 교회로 하여금 이 사회를 변혁시켜야 한다는 의지를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세상을 비추어야 할 빛으로서의 사명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한국은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기독교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그 사회가 부도덕하고 무질서하며 불의한 까닭은 바로 교회가 현실을 기 피하고 사후에 갈 천당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나라란 무엇인가예수께서 하나님 의 나라가 가까왔다고 선포하셨을 때,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그 말이 전혀 처음 듣는 생소한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구약시 대부터 그 말이 사용되어 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구약에 나타난 천국의 개 념은 어떤 특정한 장소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금이시라는 것, 즉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주권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천국은 지상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임하여 오실 때 완전하게 실현된다고 믿었습니다. 여기에서 메시아 사상이 나타났고, 이 메시아에게 하나님의 주권이 맡겨지게 되고, 그가 임하시면 천국은 실현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였다고 선포하신 것은 구약에서 예언되었던 하나님의 나라가 구체화된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세례를 받으시고 시험당하시며, 비유로 가르치시며, 이 적을 행하시며, 고난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신 이 모든 생애가 그대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이며, 따라서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본문 누가복음 17장 말씀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와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 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우선 이 말씀 에서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천국의 징조로서 볼 수 있 게 오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유대인 묵시문학가들은 말세의 '징조' 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이 특색입니다. 그들은 제멋대로 상상력을 동원 하여 현 세상의 질서를 하나님이 파괴한다든가 또는 '메시아의 저주'등 을 운운하여 세계 파멸을 묘사하였습니다. 그 까닭은 현세는 악의 세력이 통치하고 있으므로 새 시대의 메시아 통치가 시작되려면 이런 파괴와 혼란이 있은 후에라야 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시대의 징조에 관심하게 되었고 천국이 눈앞에 볼 수 있게 오는양 여기 있다 저 기 있다 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논란의 대상이 되는 말입니다만, '안에'를 '가운데'(among)로 해석하여 너희 가운데 있다, 즉 바리새인들 가운데 서 계신 예수님 자신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역사 속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왔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는, 권세와 영광으로 오리라고 기대 했던 하나님의 나라와는 거리가 너무 멀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그것은 묵시 문학적인 영향으로 징조와 뚜렷 한 권세들로 임하여 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기대를 가진 사람들에게 비유로 천국을 가르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겨자씨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땅 위에 심기울 때는 모 든 씨보다 작지만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무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 어 공중의 새가 와서 깃들인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새들이 와서 깃들일만큼의 큰 나무의 형태로 바로 임하여 오는 것이 아니라, 잘 보이지도 않는 지극히 작은 겨자씨 형태로 땅 위에 임하여 온다는 사실을 이 비유는 가르치며, 동시에 겨자씨로부터 큰 나무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곧 하나님의 나라임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규격화 된 그래서 더 이상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역동 적으로 변화하는 나라입니다. 변화하며 발전하며 새롭게 되며 열매 맺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로부터 큰 나무로 자라는 생 명력과 놀라운 가능성을 간직하고 이 역사 속에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물 론, 이 생명이 자라나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든 비유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은 어떤 방해 세력도 이 나라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예수께서 십자가 를 지심으로 사탄의 세력을 꺾으셨고 승리하시어 부활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하여 이 역사 속에서 계속 자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 땅 위에 임하였고, 이미 시작되었으며, 우리는 그 나라의 백성으로 초대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먼저 은총으로 말미 암아 놀라운 생명력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겨자씨가 모진 비바람 이나 가뭄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큰 나무로 커가는 힘을 가진 것처럼 우리가 받은 새 생명도 바로 이와같은 강인한 힘을 지녔습니다. 어떤 고난 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뚫고 나갈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이 생명 속에 간직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고나과 풍파가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도 여전히 우리 생애 속에 수많은 풍파와 역경이 다가옵니다. 그것은 하나님 이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아니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우리 속에 주신 생명이 그 모든 것을 이기고 남을 힘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아시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앞에 결코 고난이 다가오지 않도록 막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생명력이 더욱 강인해지도록 훈련을 받게 하십니다. 우리 속에 주어진 강인한 생명-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에 임하여 있다는 증거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이 역사 속에 임하여 있기에 우리가 기다릴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일을 오늘 여기에서 하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그 나라가 여기에 임하여 있 고 우리가 그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바로 그 나라에서의 우리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이 땅에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확립하고 그 것을 선포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우리의 삶 속에 받아들여 그의 뜻이 이루어지 게 하며, 그의 영광이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그의 백성 으로, 그의 도구로써 그의 뜻과 구원의 역사를 이 땅 위에 실현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또한 이 사회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 고 이 사회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뜻이 이 땅 위에, 이 사회 속에 이루어지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빛된 우리의 역할이요 책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여기에 권능으로 임하여 있습니다. 오늘 비록 악이 성하고 고난의 물결이 쉴사이 없이 우리를 강타 한다 할찌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더 굳건하게 여기에 세워지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화려하게 임하여 올 미래의 나라는 오늘 고난을 헤치고 성숙하여 간 결과로 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와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 로 이룩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하나님 나라가 따로 있고 미래의 영광된 나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하나님 나라가 자라서 미래의 영광된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힘써 그 나라의 백성으로 생명의 힘 을 발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의 고난을 이기고 승리함으로 추수 때의 아름다운 결실로 하나님 앞에 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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