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하는 삶의 치유 (시37:1-10)
본문
성도 여러분 !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녀의 신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게서는 이런 우리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면서 우리들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면은 안 타깝게도 결단코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 못한 우리들의 모습 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잘못된 우리 인간의 모습을 두고 로마서 1장 28절로 부터 32절 말씀의 보면은 인간의 더럽고 추악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소개되어져 있습니다. 롬1:28-32 롬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롬 1:29 곧 모든 불의,추악,탐욕,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살인,분쟁,사 기,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롬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 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롬 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롬 1:32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 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참으로 거룩하지 못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모습이 아닌 모습이 소개되어져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하나님의 거룩한 모습을 닮지 못한 우리 인간의 모습 인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러한 인간의 모습은 병이 들은 마음의 상태라고 정의를 내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마음의 병이 든 우리는 어데게 해야 됩 니까 그냥 그대로 있어야만 합니까 그럴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육신 의 병이 들었을 때 그 병든 육신을 치유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많이 합니까 처음에는 약을 쓰고 그 다음에는 병원에 가서 의사에 치료를 받고 그것도 안되면는 나중에는 기도원에 가서 안수기도를 받으면서 까지 육신의 병을 치료할려고 애 를 씁니다.
그런데 우리의 육신보다도 더 소중한 우리의 영혼이 병들어 있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합니까 어떠한 노력을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모습을 닮아야 되는 아니 닮아야만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면은 우리의 육신의 병 못지않게 영혼의 병의 치유를 위해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 야만 됩니다. 우리 영혼의 병은 앞에서 언급한대로 여러가지의 모양으로 우리들에게 나타납니다. 원망,불의,추악,악의등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우리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를 잡고 마치 암세포가 팽창을 하듯이 우리속에서 자라면서 우리 로 하여금 거룩하지 못하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영혼의 병에 대해서 치유함을 받는 시간들을 가져야 됩니다. 오늘은 그 첫째시간으로 원망이라는 영혼의 병에 대해 치유함을 받는 그런 시간 이 되었으면 합니다.
첫번째로 .원망이란 무엇입니까 원망이라고 하는 것은 주어진 환경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했을 때 생기는 마음 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런 원망에 원인에 대해 어떤 심리학자의 의하면은 "기억 해야 할 것을 망각하고 망각해야 할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아무튼 이 원망이라고 하는 것은 신자의 거룩한 삶의 모습과는 정 반대인 불신 자의 삶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범죄라고 볼수 있는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불신자의 영역에 속해있는 원망이 우리같은 신자의 마음속에 그것도 깊숙히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 참으로 문제인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원망이라는 영혼 의 병에 대해 치유함을 받아야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원망하는 영적인 병을 어떻게 어떠한 방법을 통해 치유함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1. 우리 나름대로 받은 은혜에 대해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시 103:2-5,
2,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3,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 롭게 하시는도다 현재의 우리의 모습이 있게끔한 그 과거의 하나님의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을 늘 기억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때 현재 우리가 좀 불만족스럽고 좀 부족한 형편에 있더라도 그 모든 불만족과 부족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것입니다. 원망이 라는것이 우리 마음의 자리에 자리를 잡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옛날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을 할때 저들은 어더했습니까 저들은 과거에 저들이 받았 던 은혜에 대해 망각을 함으로 말미암아 원망하고 그로인해 큰 낭패를 당하곤했습니다. 그 대표적인것 한가지만 살펴보면 원래 사막이라고 하는곳이 먹을것이 없고 마실것이 없는 그런 삭막한 장소입니다.
그런데 이런 삭막한 장소에서 저들은 40년 동안 지내면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먹고 마실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가 저들의 양식이 되었습니다. 저들에게 맨 처음 하나님께서 친히 제조하신 만나를 주셨을때 저들은 어떠했습니까 , 배고픔의 위기에서 처음 만나를 맛보았을 때 , 그 만나를 맛보던 처음 감격은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출애굽기 16장에 보면 , 맛나를 먹는 저들이 "꿀맛"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그 만나의 맛이 좋았으면 꿀맛이라고 했겠습니까
그런데 민 11:8에 보면 만나를 먹 고, 또 먹고하니까 이제는 그 맛을 "기름섞은 과자 맛과 같다"고 했습니다. 꿀맛 이 기름맛으로 변해진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성경을 읽어보면 민수기 21장 5절에 와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푸념합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에게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도다" 꿀맛의 만나가 기름섞은 과자로 변하고 이제는 박한 식물이 되 어버린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이것이 바로 원망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에게 참으로 놀라운 삶을 주셨건만 우리가 그런 놀라운 삶을 계속해서 누리다보니까 이제는 그것이 더 이상의 감사의 조건이 되지 못하고 원망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때 저의 집이 가난했기에 비교적 이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제 기억에 남아있는 집만해도 10집은 넘습니다.
그런데 그 이사를 할때마다 기억에 남는것은 방한칸짜리 단칸방에 살다가 제 방이 있는 방 2개 짜리로 옮겼을때 기분은 대단했 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몇평되지 않는 스레트 집이지만 소위 진짜 우리집이라는 곳으로 이사했을 때의 그 감격은 이루 말할수 없었습니다. 그후에 2층 양옥집을 지 어서 이사를 했을때는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서 저의 어머님과 저는 리어카를 하나 빌려서 그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고 그 많은 집을 며칠동안 다 옮겨놓겠습니다. 참 으로 감격의 극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감사하고 감격해하던 그 마음의 상태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해졌습니다. 단독주택이니까 너무 추운것 같애 아무래도 아파 트가 좋은것 같애 이제 며느리와 손자들이 생겨서 명절이면 너무 북적거려서 좁은것 같애 이런 푸념을 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 인간의 모습이 바로 이런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인생의 많 은 영역에서 이런 더 좋은것을 추구하는것이 인간의 본성이요 이로 말미암아 원 망의 영적인 병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원망하는 삶의 영적인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우리의 모습을 회상해보면서 지금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삶이 얼마나 크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되어진것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에 대해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는것 이것 이 바로 원망을 치유하는 첫번째 치유방법입니다.
2.우리보다 못한 상황속에서도 감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원망하는 삶의 치유 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삼중고의 고통속에서도 기적과 감동의 삶을 살았던 헬렌켈러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갖고도 감사하지 못하며 불평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 할 수 있다면 , 이런 사흘을 주었으면 좋겠다. 하루는 나처럼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눈먼 채로 살도록 하고 , 또 하루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자로 살고 , 또 하루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고 벙어리처럼 살게 한다면 사람들은 감사의 의미 를 알 것이다 ." 또 헬렌켈러는 ' The Story of My Life ' "나의 인생의 이야기"라는 자서전에서 "내가 한 번만 저 무지개를 볼 수가 있다면 , 내가 단 한 번만 저 떨어지는 낙엽의 아름다움을 목격할 수 있다면 , 단 한 번만 이 산속에 흐르는 시냇물을 바라볼 수 있다면 , 나에게 이 아름다운 가르침과 자상한 친절을 베푸시는 설 리반 선생님을 단 한 번 그 아름다운 미소를 내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 내가 단 한 번만 아름다운 음을 발하는 저 오케스트라와 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들을 내 눈으로 볼 수가 있다면 , 나에게 이 귀한 설교의 감동을 주었던 필립 부뤄스목사님의 그 얼굴을 단 한 번만 볼 수가 있다면 , 그 멧세지가 이렇게 내 삶을 바꾸었던 감동스러웠던 이 성경을 내가 단 한번만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면 , 지는 해 석양을 단 한 번만 내 눈으로 바라볼 수만 있다 면 ." 성도 여러분 ! 이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의 한 인간의 간절한 바람이 글로 표현되어 져 있습니까
그런데 그런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의 한 인간이 감사하면서 많은 찬 양시를 통해 우리들에게 큰 감동과 감격을 주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한 인간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원망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3.궁극적인 원망에 대한 치유는 예수님의 삶을 통해 배울수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의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원망했던 적이 있었는지에 대 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 예수님게서는 한번도 원망하신적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 예수님께서는 원망하지 않았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위에서 공생애시절을 보내면서 무슨 말을 가장 많이 했는가를 생각하면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공생애시절 가장 많이 한 말이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이땅과는 비교도 되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 얼마나 좋 았으면 베드로가 변화산상에서 이곳이 좋사오니하면서 초막셋을 짓자고 했겠습니까 바로 그런 좋은곳에서 생활하셨던 예수님이시기에 인간의 모습으로 이땅에 오셔서 그 많은 멸시와 천대를 받는 가운데서도 그 많은 고난가운데서도 죽음을 눈앞에 둔 극한 상황속에서도 원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께서 요 14:1-3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 게로 영 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하리라 한 청교도가 자기의 삶속에서 다음과 같은 좌우명을 가졌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옳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가장 좋은것이 오지 않았습니다. 천국의 영광이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런 가장 좋은 천 국의 영광을 생각할찐데 어떻게 원망의 영적인 암세포가 우리의 영혼을 괴롭히겠습 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것을 가장 나중에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은 비록 답답하지만 내일을 바라볼 수 있어야 됩니다.
오늘의 이 폭풍우와 비바람 건너편에 있는 내일 새벽의 영광을 바라 볼 수 있어야 됩니다. 오늘의 이 슬픔 저 건너편에 우리를 기다리는 내일의 기쁨을 바라볼 수 있었야만 합니다. 오늘의 이 고통스러운 환경 다음에 나를 만드시고 나를 붙드시고 나를 이 끌어주시는 내일의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는 안목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죽은 슬픈 무덤 저 건너편에서 구원받은 나를 영접하시고 천국에서 거룩한 면 류관을 허락하시고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의 유업을 상급으로 주시는 이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는 그 안목이 있을때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서 근본적의 원망의 삶이 말끔하게 치유되어질수 있는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저는 어떤 젊은 목사의 원망하는 삶을 치유한 기도문 한가지를 소개하고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 서투른 아마츄어처럼 살아가게 하소서. 처음 보는 하늘이듯 그 하늘을 바라보게 하소서. 처음 주님을 만났던 그 감격으로 주님을 보게 하소서. 내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그 여인을 처음 그렇게 바라보던 그 눈초리로 그렇게 내 아내를 보게 하소서. 처음들어 서는 예배당이듯 그 설레임으로 예배당안에 앉게 하소서. 처음 내 마음속에 그 구원의 멧세지가 내 심장을 사로잡던 그 감격으로 처음 그 설교를 듣는 심정으로 설교를 듣게 하소서. 오 주님 ,마지막 단두대에 올라 서 있는 사형수처럼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 마지막 보는 하늘인 것처럼 하늘을 바라보게 하소서 . 마지막 보는 예배당인 것처럼 그 예배당을 바라보게 하소서. 마지막 듣는 설교인 것처럼 그 설교를 듣게 하소서. "
그렇다면 이런 마음의 병이 든 우리는 어데게 해야 됩 니까 그냥 그대로 있어야만 합니까 그럴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육신 의 병이 들었을 때 그 병든 육신을 치유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많이 합니까 처음에는 약을 쓰고 그 다음에는 병원에 가서 의사에 치료를 받고 그것도 안되면는 나중에는 기도원에 가서 안수기도를 받으면서 까지 육신의 병을 치료할려고 애 를 씁니다.
그런데 우리의 육신보다도 더 소중한 우리의 영혼이 병들어 있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합니까 어떠한 노력을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모습을 닮아야 되는 아니 닮아야만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면은 우리의 육신의 병 못지않게 영혼의 병의 치유를 위해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 야만 됩니다. 우리 영혼의 병은 앞에서 언급한대로 여러가지의 모양으로 우리들에게 나타납니다. 원망,불의,추악,악의등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우리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를 잡고 마치 암세포가 팽창을 하듯이 우리속에서 자라면서 우리 로 하여금 거룩하지 못하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영혼의 병에 대해서 치유함을 받는 시간들을 가져야 됩니다. 오늘은 그 첫째시간으로 원망이라는 영혼의 병에 대해 치유함을 받는 그런 시간 이 되었으면 합니다.
첫번째로 .원망이란 무엇입니까 원망이라고 하는 것은 주어진 환경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했을 때 생기는 마음 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런 원망에 원인에 대해 어떤 심리학자의 의하면은 "기억 해야 할 것을 망각하고 망각해야 할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아무튼 이 원망이라고 하는 것은 신자의 거룩한 삶의 모습과는 정 반대인 불신 자의 삶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범죄라고 볼수 있는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불신자의 영역에 속해있는 원망이 우리같은 신자의 마음속에 그것도 깊숙히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 참으로 문제인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원망이라는 영혼 의 병에 대해 치유함을 받아야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원망하는 영적인 병을 어떻게 어떠한 방법을 통해 치유함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1. 우리 나름대로 받은 은혜에 대해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시 103:2-5,
2,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3,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 롭게 하시는도다 현재의 우리의 모습이 있게끔한 그 과거의 하나님의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을 늘 기억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때 현재 우리가 좀 불만족스럽고 좀 부족한 형편에 있더라도 그 모든 불만족과 부족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것입니다. 원망이 라는것이 우리 마음의 자리에 자리를 잡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옛날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을 할때 저들은 어더했습니까 저들은 과거에 저들이 받았 던 은혜에 대해 망각을 함으로 말미암아 원망하고 그로인해 큰 낭패를 당하곤했습니다. 그 대표적인것 한가지만 살펴보면 원래 사막이라고 하는곳이 먹을것이 없고 마실것이 없는 그런 삭막한 장소입니다.
그런데 이런 삭막한 장소에서 저들은 40년 동안 지내면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먹고 마실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가 저들의 양식이 되었습니다. 저들에게 맨 처음 하나님께서 친히 제조하신 만나를 주셨을때 저들은 어떠했습니까 , 배고픔의 위기에서 처음 만나를 맛보았을 때 , 그 만나를 맛보던 처음 감격은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출애굽기 16장에 보면 , 맛나를 먹는 저들이 "꿀맛"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그 만나의 맛이 좋았으면 꿀맛이라고 했겠습니까
그런데 민 11:8에 보면 만나를 먹 고, 또 먹고하니까 이제는 그 맛을 "기름섞은 과자 맛과 같다"고 했습니다. 꿀맛 이 기름맛으로 변해진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성경을 읽어보면 민수기 21장 5절에 와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푸념합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에게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도다" 꿀맛의 만나가 기름섞은 과자로 변하고 이제는 박한 식물이 되 어버린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이것이 바로 원망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에게 참으로 놀라운 삶을 주셨건만 우리가 그런 놀라운 삶을 계속해서 누리다보니까 이제는 그것이 더 이상의 감사의 조건이 되지 못하고 원망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때 저의 집이 가난했기에 비교적 이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제 기억에 남아있는 집만해도 10집은 넘습니다.
그런데 그 이사를 할때마다 기억에 남는것은 방한칸짜리 단칸방에 살다가 제 방이 있는 방 2개 짜리로 옮겼을때 기분은 대단했 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몇평되지 않는 스레트 집이지만 소위 진짜 우리집이라는 곳으로 이사했을 때의 그 감격은 이루 말할수 없었습니다. 그후에 2층 양옥집을 지 어서 이사를 했을때는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서 저의 어머님과 저는 리어카를 하나 빌려서 그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고 그 많은 집을 며칠동안 다 옮겨놓겠습니다. 참 으로 감격의 극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감사하고 감격해하던 그 마음의 상태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해졌습니다. 단독주택이니까 너무 추운것 같애 아무래도 아파 트가 좋은것 같애 이제 며느리와 손자들이 생겨서 명절이면 너무 북적거려서 좁은것 같애 이런 푸념을 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 인간의 모습이 바로 이런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인생의 많 은 영역에서 이런 더 좋은것을 추구하는것이 인간의 본성이요 이로 말미암아 원 망의 영적인 병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원망하는 삶의 영적인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우리의 모습을 회상해보면서 지금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삶이 얼마나 크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되어진것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에 대해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는것 이것 이 바로 원망을 치유하는 첫번째 치유방법입니다.
2.우리보다 못한 상황속에서도 감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원망하는 삶의 치유 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삼중고의 고통속에서도 기적과 감동의 삶을 살았던 헬렌켈러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갖고도 감사하지 못하며 불평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 할 수 있다면 , 이런 사흘을 주었으면 좋겠다. 하루는 나처럼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눈먼 채로 살도록 하고 , 또 하루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자로 살고 , 또 하루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고 벙어리처럼 살게 한다면 사람들은 감사의 의미 를 알 것이다 ." 또 헬렌켈러는 ' The Story of My Life ' "나의 인생의 이야기"라는 자서전에서 "내가 한 번만 저 무지개를 볼 수가 있다면 , 내가 단 한 번만 저 떨어지는 낙엽의 아름다움을 목격할 수 있다면 , 단 한 번만 이 산속에 흐르는 시냇물을 바라볼 수 있다면 , 나에게 이 아름다운 가르침과 자상한 친절을 베푸시는 설 리반 선생님을 단 한 번 그 아름다운 미소를 내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 내가 단 한 번만 아름다운 음을 발하는 저 오케스트라와 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들을 내 눈으로 볼 수가 있다면 , 나에게 이 귀한 설교의 감동을 주었던 필립 부뤄스목사님의 그 얼굴을 단 한 번만 볼 수가 있다면 , 그 멧세지가 이렇게 내 삶을 바꾸었던 감동스러웠던 이 성경을 내가 단 한번만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면 , 지는 해 석양을 단 한 번만 내 눈으로 바라볼 수만 있다 면 ." 성도 여러분 ! 이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의 한 인간의 간절한 바람이 글로 표현되어 져 있습니까
그런데 그런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의 한 인간이 감사하면서 많은 찬 양시를 통해 우리들에게 큰 감동과 감격을 주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한 인간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원망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3.궁극적인 원망에 대한 치유는 예수님의 삶을 통해 배울수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의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원망했던 적이 있었는지에 대 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 예수님게서는 한번도 원망하신적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 예수님께서는 원망하지 않았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위에서 공생애시절을 보내면서 무슨 말을 가장 많이 했는가를 생각하면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공생애시절 가장 많이 한 말이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이땅과는 비교도 되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 얼마나 좋 았으면 베드로가 변화산상에서 이곳이 좋사오니하면서 초막셋을 짓자고 했겠습니까 바로 그런 좋은곳에서 생활하셨던 예수님이시기에 인간의 모습으로 이땅에 오셔서 그 많은 멸시와 천대를 받는 가운데서도 그 많은 고난가운데서도 죽음을 눈앞에 둔 극한 상황속에서도 원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께서 요 14:1-3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 게로 영 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하리라 한 청교도가 자기의 삶속에서 다음과 같은 좌우명을 가졌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옳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가장 좋은것이 오지 않았습니다. 천국의 영광이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런 가장 좋은 천 국의 영광을 생각할찐데 어떻게 원망의 영적인 암세포가 우리의 영혼을 괴롭히겠습 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것을 가장 나중에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은 비록 답답하지만 내일을 바라볼 수 있어야 됩니다.
오늘의 이 폭풍우와 비바람 건너편에 있는 내일 새벽의 영광을 바라 볼 수 있어야 됩니다. 오늘의 이 슬픔 저 건너편에 우리를 기다리는 내일의 기쁨을 바라볼 수 있었야만 합니다. 오늘의 이 고통스러운 환경 다음에 나를 만드시고 나를 붙드시고 나를 이 끌어주시는 내일의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는 안목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죽은 슬픈 무덤 저 건너편에서 구원받은 나를 영접하시고 천국에서 거룩한 면 류관을 허락하시고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의 유업을 상급으로 주시는 이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는 그 안목이 있을때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서 근본적의 원망의 삶이 말끔하게 치유되어질수 있는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저는 어떤 젊은 목사의 원망하는 삶을 치유한 기도문 한가지를 소개하고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 서투른 아마츄어처럼 살아가게 하소서. 처음 보는 하늘이듯 그 하늘을 바라보게 하소서. 처음 주님을 만났던 그 감격으로 주님을 보게 하소서. 내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그 여인을 처음 그렇게 바라보던 그 눈초리로 그렇게 내 아내를 보게 하소서. 처음들어 서는 예배당이듯 그 설레임으로 예배당안에 앉게 하소서. 처음 내 마음속에 그 구원의 멧세지가 내 심장을 사로잡던 그 감격으로 처음 그 설교를 듣는 심정으로 설교를 듣게 하소서. 오 주님 ,마지막 단두대에 올라 서 있는 사형수처럼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 마지막 보는 하늘인 것처럼 하늘을 바라보게 하소서 . 마지막 보는 예배당인 것처럼 그 예배당을 바라보게 하소서. 마지막 듣는 설교인 것처럼 그 설교를 듣게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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