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노래를 부릅시다 (시40:1-3)
본문
우리 모두가 아다시피 지난 주간에는 참으로 안타깝고도 불행한 일이 이웃나라 일본에서 있었습니다.수 천명의 사람들이 갑작스런 지진에 목숨을 잃고 부상을 당했습니다.지금도 다시 올지 모르는 지진의 공포에 하루 하루를 불안하게 보내고 있습니다.사람이 온갖 지혜와 첨단의 과학적 기술을 동원해서 세워놓은 것들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며 인간의 지혜가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특히 고배시를 가르는 한신 고속도로는 어떤 지진에도 견디도록 설계된 도로라고 늘 자랑하며 큰소리 쳐왔었습니다.지진 다음날 고베시에 있는 한 신학생이 이런 내용의 FAX를 한 신문사에 보내왔습니다.“저희는 이번 지진이 하나님께서 일본의 우상숭배애 대하여 경고를 발하셨다고 생각합니다.이번 사건이 복음화의 계기가 되도록 아브라함이 소돔성을 향하여 중보의 기도를 하듯 많은 기도를 부탁합니다.”
어떤 병원에서는 40여명이 건물에 갇혀서 생매장 되었다고도 합니다.많은 사람들이 무너진 아파트와 건물더미에 묻혀서 구원의 손길을 기다렸습니다.혹 아직도 어느 구석에서 고통스럽게 구조대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제 이런 상황들을 생각해보며 구원의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다.무너진 건물과 불 구덩이 속에서 죽음의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그것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오직 지금의 위기에서 빠져 나오는 구원입니다.구조대의 손길을 만나는 것입니다.구원이란 이렇게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다웟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죽음과 같은 위기 가운데서 건져주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하여 감사의 노래를 부른 아름다운 시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여러분도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이러한 감사의 노래가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서 흘러나고 있습니까.영원한 죽음에서 건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얼마나 감사하고 있습니까.오늘 다윗을 구원해 주셨듯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총와 사랑을 기억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하나님께서 부르짖음을 들으셨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1절에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여 주셨다고 했습니다.이러한 사실이야말로 시인에게는 대단한 축복이 아닐수 없습니다.세상의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온 우주를 창조하신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께서 작신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셨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기쁨을 금치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서 곤경과 어려움에 처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볼수가 있습니다.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은 뒤에 인간은 추방을 당했습니다.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인간을 버리시고 인간과의 관계를 끊으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죄의 담이 막혀버렸기 때문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게속해서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지셨습니다.안타까운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시며 의로운 삶을 살것을 기대하셨습니다.사람에게 처한 곤경이 무엇입니까.그것은 죄로인한 영원한 형벌입니다.인생에서의 곤경은 일시적이지만 죄로인한 영적인 곤경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하여 안타깝게 여기신 것은 영적인 곤경입니다.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 사망은 인간이 죽은뒤에 그 영혼이 영원한 형벌 가운데서 고통을 받는
둘째 사망입니다. 전에 제가 가르쳤던 어떤 여학생은 여름에도 늘 긴 소매를 입고 다녔습니다.이유를 물으니 어렸을 때 주전자에 데어서 보기싫은 길다란 흉터가 있다는 것입니다.본인도 괴롭겠지만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습니가.여러분 어린아이가 불이나 물에 데었을 때 부모는 어떤 염려를 합니까.그 아이는 당장의 아픔과 고통만을 생각하지만 부모는 혹시 흉터가 생겨서 평생 흠이 되지 않을 까를 염려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하나님의 마음도 역시 같은 것입니다.인간은 당장 이 땅에서 잠깐 사는 문제들에 대한 염려만을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이 영원한 형별 가운데 처하는 것에 대하여 염려하시는 것입니다.구약시대의 4000여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아브라함같은 사람을 선택하셔서 구원의 계획을 보여주셨습니다.모세를 통하여 율법도 주셨습니다.여러 모양으로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인간에게 처한 현실적 곤경은 물론 영혼의 문제에 대한 곤경을 해결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사랑의 열심을 내셨습니다.애처로운 인간의 부르짖음에 응답해 오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를 부르신 것은 이미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입니다.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 계획하셨습니다.엡1:4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하나님께서 영원한 곤경에 처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예정하신 것입니다.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사랑해 오신 것입니다.죄와 허물로 곤경에 처한 우리를 돌아보신 것입니다.
2.깊은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주셨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깊은 웅덩이란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나올수 없는 웅덩이를 말합니다. 수렁 역시 한번 빠지면 나올수 없는 깊은 곳입니다.누군가가 꺼내지 않으면 빠져 나올수 없는 곳입니다.웅덩이에서 사람이 할수 있는 것은 절망과 좌절 뿐 입니다.보이는 것은 하늘 뿐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시인은 그런 현실을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이 자신을 구원해 내셨습니다.절망 할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죄로 인하여 영원히 죽어야할 절망적인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하나님은 독생자인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죄악의 깊은 웅덩이에서 영원한 죄의 심판을 기다려야하는 인간을 그 수렁에서 꺼내시기 위하여 주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러분 그것은 마치 이런 경우와도 같습니다.한 죄수가 감옥에 앉아 있습니다.그는 사형수입니다.얼마후 그는 그의 죄값으로 사형을 당해야 합니다.
임금에게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밤 누군가 옆구리를 치면서 빨리 나가라고 합니다.깜짝놀라 보니 자신과 비슷한 죄인의 옷을 입었습니다.그는 엉겁결에 빠져 나왔지만 자신 대신 감옥에 있던 그 사람은 그 사형수의 죄를 뒤집어 쓰고 다음날 사형되고 말았습니다. 대속이란 이와같은 것입니다.임금에게 불순종하여 감옥 안에 앉아 있던 죄인이 누구입니까.하나님께 떠나 마음대로 불순종의 죄를 범하며 살던 여러분과 저인 것입니다.주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우리의 죄를 뒤집어 쓰시고 죄인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벧전2:24에는 말씀하기를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셨다고 했습니다.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아야할 온갖 고통과 저주를 참으셨습니다.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마지막 죽는 그 순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혔던 죄의 담이 무너졌습니다.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하나님은 영원한 멸망의 구덩이에 빠진 우리를 독생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해 내신 것입니다. 도이치의 세게적인 위인인 비스마르크는 28년간 재상의 자리에 있었습니다.그의 정치력과 지도력은 지금도 많은 지도자를이 흠모하고 있는 위인입니다.그는 중학시절에 부터 믿음생활을 포기하고 주먹을 쓰며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성인이 되어 결혼을 약속한 마리아가 갑자기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그녀는 뜨거운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그녀가 죽기 전에 비스마르크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기 전에 당신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그는 그녀의 임종을 앞두고 15년 만에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그 때 그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지나간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추악한 죄인의 모습이었는 가를 알게 되었습니다.어렸을 때 막연히 듣고 알았던 주님의 십자가가 눈에 보였습니다.자신의 구원하기 위하여 그 많은 죄를 짊어지고 가시는 주님을 보게 되었습니다.그는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눈물로 톹곡하며 기도했습니다.그는 그후로부터 완전히 변화 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하나님께서 자신을 죄에서 건지셔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그가 83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칠 때 그의 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나는 이제 지금까지 나의 생애를 인도하신 하나님 곁으로 가노라” 오늘 이시간 다시한번 죄악의 수렁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확신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나의 발을 반석위에 세우셨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반석이란 튼튼한 바위를 말합니다.전에는 울퉁불퉁하고 거친 길을 다녔지만 이제는 바위같이 단단한 곳 위에 자신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차를 타고 포장되지 않은 시골길을 달리면 어떻습니까.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빨리 달릴수도 없습니다.깊이 패인 곳을 지날 때면 차체의 바닥이 닿을까봐 얼마나 불안한지 모릅니다.그러다가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들어서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없이 내 마음대로 인생을 산 것은 마치 거칠고 패인 길을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구원의 손으로 우리를 끌어 올리셔서 튼튼한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두셨습니다.이것은 위치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전에는 거친 땅이었지만 이제는 반석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위치가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전에는 사단의 손아귀에 있었습니다.악한 사탄의 종으로 그에게 속해 있었습니다.아직도 많은 불신자들은 자신이 인정하든 안하든 사탄의 종으로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그것은 마치 어떤 아이가 독재자가 통치하는 공산국가에 태어나면 자신이 인정하는 안하는 그 독재자의 통치아래 있는 것과 마친가지 입니다.미국에는 지금 사탄교가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고 합니다.실제로 사탄을 찬양하며 예배한다고 합니다.그들은 도덕과 양심을 버리고 자유롭게 살 것을 강요합니다.푹력과 불법을 추구합니다. 사탄은 지금도 그리스도에게 빼앗긴 자기의 영역을 찾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만세반석이신 주님 안에 서게 되었습니다.“만세반석 열린 곳에 내가 숨어 있으니 원수마귀 손 못대고 환란 풍파없도다”.이것이 우리의 찬양입니다.엡:12에는 “전에는 너희가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라고 말씀합니다.벧전2:10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라고 말씀합니다. 고후5:17에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제 새롭게 변화된 존재입니다.과거 사단의 종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자녀요 반석이신 그리스도의 일꾼의 위치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악의 수렁에서 구원하셔서 세워주셨습니다.
4.평탄한 걸음을 걷게 하셨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말씀은 미래에 대한 축복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이제 앞으로 걷는 걸음은 평탄하고 견고하며 튼튼할 것이라는 것입니다.이제는 넘어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미끄러지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주저앉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미래를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은 현실보다 미래에 있습니다.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미래를 복주시는 하나님있니다.아들도 없는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을 것이라는 복을 주셨습니다.창28:12-15의 말씀을 보십시다.야곱이 형을 피해 삼촌의 집으로 도망하다가 길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잤습니다.그 때에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축복의 말씀을 하셨습니까.네가 누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는 엄청난 축복의 말씀을해 주셨습니다.그 때에 야곱이 가진 것이 무엇이었습니까.빈털털이 였습니다.단 한 조각의 빵도 가지지 않은 초라한 신세 였습니다.어린 나이에 부모와 형제를 떠나 정처없이 떠도는 홀홀단신의 신세가 되었습니다.그 자신은 얼마나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암담했겠습니까.무슨 꿈을 가질수 있었겠습니까.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미래를 축복하는 말씀으로 그를 위로하시고 용기를 주시고 내일에 대한 비젼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광된 미래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오늘 우리가 사는 현실의 삶에도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우리의 사업과 직장과 가정을 복되게 하십니다.우리의 범사를 잘되게 하십니다.우리에게 다가올 영원한 미래는 어떻습니까.계시록에 보니 우리에게 주어질 새 예루살렘성이 마치 신부가 지아비를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말씀하고있습니다.찬란하고도 눈부신 보석들로 꾸며진 영원한 집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과 제가 반석되신 그리스도위에서 걷는 앞으로의 걸음과 삶은 영광과 축복된 미래로 주어질 것입니다.
5.새 노래를 내 입에 두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3절에 말씀합니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새 노래란 어떤 노래입니까.
첫째, 하나님을 만난 체험에서 나오는 은혜의 노래입니다.누구든지 주님을 만난 사람은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자신을 찾아오신 주님의 은혜를 노래하는 것입니다.유행가를 부르던 인기 가수들이 주님을 만난 후에는 새 노래를 부릅니다.찬양의 간증을 합니다. 또한 새 노래는 새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입니다.이전 것들은 다 지나갔습니다.새 마음은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한 마음입니다.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한 마음입니다.하나님 뜻대로 살기로 작정한 마음입니다.
셋째로 새 노래는 기쁨과 감사의 노래입니다.감사의 노래는 저절로 나오는 노래입니다.돈을 벌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가 아닙니다. 즐기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가 아닙니다. 어떤 목적을 위하여 부르는 노래가 아닙니다.그냥 저절로 흥얼흥얼 나오는 노래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의 노래입니다.왜 입니까.하루하루의 삶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혹 고난과 시련이 온다할지도 하나님의 손길과 인도하심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이제 영원토록 이 새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변화되어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을 보며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우리가 부르는 노래도 새 노래입니다.새 찬양입니다.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서로 화답하라고 하셨습니다.주께서 우리의 입에 새 노래를 주셨습니다.구원받은 자의 노래를 주셨습니다. 최근 남부지방에는 가뭄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물이 없어서 제한 급수를 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습니다.땅이 메마르면 생명도 메마르게 됩니다. 그것은 오늘 믿음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우리의 영혼 속에 은혜와 감사게 메마르면 모든 믿음생활이 피곤하고 힘들게만 느껴지는 것입니다.
전에는 그렇게 기도하고 교회의 예배와 봉사하는 일에 열심을 내었어도 힘든 줄을 몰랐었는데 지금은 어쩐지 힘들게만 느껴진다면 심령이 메마른 것입니다.전에는 교회가는 것이 설레이고 기쁨이었지만 지금은 형식과 습관이 되어버렸다면 역시 메마른 심령입니다.전에는 범사에 감사하며 가정과 직장에서 기쁨으로 지냈었는데 지금은 세상사람들과 똑같이 살고 있다면 역시 심령이 메마른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심령에 하늘로 부터 오는 감사와 은혜의 강물을 흘려보내십시다.감사가 없는 신앙은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오늘 다윗이 부른 감사의 시를 우리도 함께 부르십시다.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를 죄악의 웅덩이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우리를 거친 땅에서 반석위에 세우신 하나님,내가 걷는 걸음과 미래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우리의 입술에 새 노래를 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의 찬양과 노래를 부릅시다.
어떤 병원에서는 40여명이 건물에 갇혀서 생매장 되었다고도 합니다.많은 사람들이 무너진 아파트와 건물더미에 묻혀서 구원의 손길을 기다렸습니다.혹 아직도 어느 구석에서 고통스럽게 구조대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제 이런 상황들을 생각해보며 구원의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다.무너진 건물과 불 구덩이 속에서 죽음의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그것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오직 지금의 위기에서 빠져 나오는 구원입니다.구조대의 손길을 만나는 것입니다.구원이란 이렇게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다웟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죽음과 같은 위기 가운데서 건져주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하여 감사의 노래를 부른 아름다운 시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여러분도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이러한 감사의 노래가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서 흘러나고 있습니까.영원한 죽음에서 건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얼마나 감사하고 있습니까.오늘 다윗을 구원해 주셨듯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총와 사랑을 기억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하나님께서 부르짖음을 들으셨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1절에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여 주셨다고 했습니다.이러한 사실이야말로 시인에게는 대단한 축복이 아닐수 없습니다.세상의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온 우주를 창조하신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께서 작신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셨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기쁨을 금치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서 곤경과 어려움에 처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볼수가 있습니다.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은 뒤에 인간은 추방을 당했습니다.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인간을 버리시고 인간과의 관계를 끊으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죄의 담이 막혀버렸기 때문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게속해서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지셨습니다.안타까운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시며 의로운 삶을 살것을 기대하셨습니다.사람에게 처한 곤경이 무엇입니까.그것은 죄로인한 영원한 형벌입니다.인생에서의 곤경은 일시적이지만 죄로인한 영적인 곤경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하여 안타깝게 여기신 것은 영적인 곤경입니다.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 사망은 인간이 죽은뒤에 그 영혼이 영원한 형벌 가운데서 고통을 받는
둘째 사망입니다. 전에 제가 가르쳤던 어떤 여학생은 여름에도 늘 긴 소매를 입고 다녔습니다.이유를 물으니 어렸을 때 주전자에 데어서 보기싫은 길다란 흉터가 있다는 것입니다.본인도 괴롭겠지만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습니가.여러분 어린아이가 불이나 물에 데었을 때 부모는 어떤 염려를 합니까.그 아이는 당장의 아픔과 고통만을 생각하지만 부모는 혹시 흉터가 생겨서 평생 흠이 되지 않을 까를 염려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하나님의 마음도 역시 같은 것입니다.인간은 당장 이 땅에서 잠깐 사는 문제들에 대한 염려만을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이 영원한 형별 가운데 처하는 것에 대하여 염려하시는 것입니다.구약시대의 4000여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아브라함같은 사람을 선택하셔서 구원의 계획을 보여주셨습니다.모세를 통하여 율법도 주셨습니다.여러 모양으로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인간에게 처한 현실적 곤경은 물론 영혼의 문제에 대한 곤경을 해결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사랑의 열심을 내셨습니다.애처로운 인간의 부르짖음에 응답해 오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를 부르신 것은 이미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입니다.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 계획하셨습니다.엡1:4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하나님께서 영원한 곤경에 처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예정하신 것입니다.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사랑해 오신 것입니다.죄와 허물로 곤경에 처한 우리를 돌아보신 것입니다.
2.깊은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주셨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깊은 웅덩이란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나올수 없는 웅덩이를 말합니다. 수렁 역시 한번 빠지면 나올수 없는 깊은 곳입니다.누군가가 꺼내지 않으면 빠져 나올수 없는 곳입니다.웅덩이에서 사람이 할수 있는 것은 절망과 좌절 뿐 입니다.보이는 것은 하늘 뿐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시인은 그런 현실을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이 자신을 구원해 내셨습니다.절망 할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죄로 인하여 영원히 죽어야할 절망적인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하나님은 독생자인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죄악의 깊은 웅덩이에서 영원한 죄의 심판을 기다려야하는 인간을 그 수렁에서 꺼내시기 위하여 주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러분 그것은 마치 이런 경우와도 같습니다.한 죄수가 감옥에 앉아 있습니다.그는 사형수입니다.얼마후 그는 그의 죄값으로 사형을 당해야 합니다.
임금에게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밤 누군가 옆구리를 치면서 빨리 나가라고 합니다.깜짝놀라 보니 자신과 비슷한 죄인의 옷을 입었습니다.그는 엉겁결에 빠져 나왔지만 자신 대신 감옥에 있던 그 사람은 그 사형수의 죄를 뒤집어 쓰고 다음날 사형되고 말았습니다. 대속이란 이와같은 것입니다.임금에게 불순종하여 감옥 안에 앉아 있던 죄인이 누구입니까.하나님께 떠나 마음대로 불순종의 죄를 범하며 살던 여러분과 저인 것입니다.주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우리의 죄를 뒤집어 쓰시고 죄인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벧전2:24에는 말씀하기를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셨다고 했습니다.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아야할 온갖 고통과 저주를 참으셨습니다.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마지막 죽는 그 순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혔던 죄의 담이 무너졌습니다.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하나님은 영원한 멸망의 구덩이에 빠진 우리를 독생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해 내신 것입니다. 도이치의 세게적인 위인인 비스마르크는 28년간 재상의 자리에 있었습니다.그의 정치력과 지도력은 지금도 많은 지도자를이 흠모하고 있는 위인입니다.그는 중학시절에 부터 믿음생활을 포기하고 주먹을 쓰며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성인이 되어 결혼을 약속한 마리아가 갑자기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그녀는 뜨거운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그녀가 죽기 전에 비스마르크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기 전에 당신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그는 그녀의 임종을 앞두고 15년 만에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그 때 그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지나간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추악한 죄인의 모습이었는 가를 알게 되었습니다.어렸을 때 막연히 듣고 알았던 주님의 십자가가 눈에 보였습니다.자신의 구원하기 위하여 그 많은 죄를 짊어지고 가시는 주님을 보게 되었습니다.그는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눈물로 톹곡하며 기도했습니다.그는 그후로부터 완전히 변화 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하나님께서 자신을 죄에서 건지셔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그가 83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칠 때 그의 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나는 이제 지금까지 나의 생애를 인도하신 하나님 곁으로 가노라” 오늘 이시간 다시한번 죄악의 수렁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확신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나의 발을 반석위에 세우셨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반석이란 튼튼한 바위를 말합니다.전에는 울퉁불퉁하고 거친 길을 다녔지만 이제는 바위같이 단단한 곳 위에 자신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차를 타고 포장되지 않은 시골길을 달리면 어떻습니까.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빨리 달릴수도 없습니다.깊이 패인 곳을 지날 때면 차체의 바닥이 닿을까봐 얼마나 불안한지 모릅니다.그러다가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들어서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없이 내 마음대로 인생을 산 것은 마치 거칠고 패인 길을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구원의 손으로 우리를 끌어 올리셔서 튼튼한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두셨습니다.이것은 위치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전에는 거친 땅이었지만 이제는 반석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위치가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전에는 사단의 손아귀에 있었습니다.악한 사탄의 종으로 그에게 속해 있었습니다.아직도 많은 불신자들은 자신이 인정하든 안하든 사탄의 종으로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그것은 마치 어떤 아이가 독재자가 통치하는 공산국가에 태어나면 자신이 인정하는 안하는 그 독재자의 통치아래 있는 것과 마친가지 입니다.미국에는 지금 사탄교가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고 합니다.실제로 사탄을 찬양하며 예배한다고 합니다.그들은 도덕과 양심을 버리고 자유롭게 살 것을 강요합니다.푹력과 불법을 추구합니다. 사탄은 지금도 그리스도에게 빼앗긴 자기의 영역을 찾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만세반석이신 주님 안에 서게 되었습니다.“만세반석 열린 곳에 내가 숨어 있으니 원수마귀 손 못대고 환란 풍파없도다”.이것이 우리의 찬양입니다.엡:12에는 “전에는 너희가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라고 말씀합니다.벧전2:10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라고 말씀합니다. 고후5:17에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제 새롭게 변화된 존재입니다.과거 사단의 종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자녀요 반석이신 그리스도의 일꾼의 위치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악의 수렁에서 구원하셔서 세워주셨습니다.
4.평탄한 걸음을 걷게 하셨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말씀은 미래에 대한 축복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이제 앞으로 걷는 걸음은 평탄하고 견고하며 튼튼할 것이라는 것입니다.이제는 넘어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미끄러지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주저앉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미래를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은 현실보다 미래에 있습니다.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미래를 복주시는 하나님있니다.아들도 없는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을 것이라는 복을 주셨습니다.창28:12-15의 말씀을 보십시다.야곱이 형을 피해 삼촌의 집으로 도망하다가 길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잤습니다.그 때에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축복의 말씀을 하셨습니까.네가 누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는 엄청난 축복의 말씀을해 주셨습니다.그 때에 야곱이 가진 것이 무엇이었습니까.빈털털이 였습니다.단 한 조각의 빵도 가지지 않은 초라한 신세 였습니다.어린 나이에 부모와 형제를 떠나 정처없이 떠도는 홀홀단신의 신세가 되었습니다.그 자신은 얼마나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암담했겠습니까.무슨 꿈을 가질수 있었겠습니까.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미래를 축복하는 말씀으로 그를 위로하시고 용기를 주시고 내일에 대한 비젼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광된 미래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오늘 우리가 사는 현실의 삶에도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우리의 사업과 직장과 가정을 복되게 하십니다.우리의 범사를 잘되게 하십니다.우리에게 다가올 영원한 미래는 어떻습니까.계시록에 보니 우리에게 주어질 새 예루살렘성이 마치 신부가 지아비를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말씀하고있습니다.찬란하고도 눈부신 보석들로 꾸며진 영원한 집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과 제가 반석되신 그리스도위에서 걷는 앞으로의 걸음과 삶은 영광과 축복된 미래로 주어질 것입니다.
5.새 노래를 내 입에 두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3절에 말씀합니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새 노래란 어떤 노래입니까.
첫째, 하나님을 만난 체험에서 나오는 은혜의 노래입니다.누구든지 주님을 만난 사람은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자신을 찾아오신 주님의 은혜를 노래하는 것입니다.유행가를 부르던 인기 가수들이 주님을 만난 후에는 새 노래를 부릅니다.찬양의 간증을 합니다. 또한 새 노래는 새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입니다.이전 것들은 다 지나갔습니다.새 마음은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한 마음입니다.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한 마음입니다.하나님 뜻대로 살기로 작정한 마음입니다.
셋째로 새 노래는 기쁨과 감사의 노래입니다.감사의 노래는 저절로 나오는 노래입니다.돈을 벌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가 아닙니다. 즐기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가 아닙니다. 어떤 목적을 위하여 부르는 노래가 아닙니다.그냥 저절로 흥얼흥얼 나오는 노래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의 노래입니다.왜 입니까.하루하루의 삶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혹 고난과 시련이 온다할지도 하나님의 손길과 인도하심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이제 영원토록 이 새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변화되어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을 보며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우리가 부르는 노래도 새 노래입니다.새 찬양입니다.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서로 화답하라고 하셨습니다.주께서 우리의 입에 새 노래를 주셨습니다.구원받은 자의 노래를 주셨습니다. 최근 남부지방에는 가뭄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물이 없어서 제한 급수를 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습니다.땅이 메마르면 생명도 메마르게 됩니다. 그것은 오늘 믿음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우리의 영혼 속에 은혜와 감사게 메마르면 모든 믿음생활이 피곤하고 힘들게만 느껴지는 것입니다.
전에는 그렇게 기도하고 교회의 예배와 봉사하는 일에 열심을 내었어도 힘든 줄을 몰랐었는데 지금은 어쩐지 힘들게만 느껴진다면 심령이 메마른 것입니다.전에는 교회가는 것이 설레이고 기쁨이었지만 지금은 형식과 습관이 되어버렸다면 역시 메마른 심령입니다.전에는 범사에 감사하며 가정과 직장에서 기쁨으로 지냈었는데 지금은 세상사람들과 똑같이 살고 있다면 역시 심령이 메마른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심령에 하늘로 부터 오는 감사와 은혜의 강물을 흘려보내십시다.감사가 없는 신앙은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오늘 다윗이 부른 감사의 시를 우리도 함께 부르십시다.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를 죄악의 웅덩이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우리를 거친 땅에서 반석위에 세우신 하나님,내가 걷는 걸음과 미래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우리의 입술에 새 노래를 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의 찬양과 노래를 부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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