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하지 마소서 (시40:8-17)
본문
시편 40:1을 보면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라고 했고 17절 끝을 보면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라고 했습니다.우리는 1절과 17절 속에서 다윗의 지혜와 신앙을 보게 됩니다. 덮어 놓고 기다리는 것은 허송세월에 불과합니다.그러나 결과를 기대하고 믿으면서 기다리는 것은 소망이 됩니다. 다윗의 경우는 하나님의 처분만을 기다리기 위해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야 될 말씀을 유감없이 다 드렸습니다.그리고 지체하지 마시고 속히 응답해 주시라고 간구를 드렸습니다. 다윗은 본문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청하고 있습니다.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조건입니다.그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하나님께 도와 주실 것을 기도했습니다.
1.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기 때문입니다. 8절을 보면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주의 뜻 행하는 일을 즐거워 했습니다.누구의 심부름이냐에 따라 심부름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아무리 무거운 짐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운반하게 됩니다.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맡기는 짐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즐겁습니다.주님이 맡겨 주신 일들과 주님을 위해 하는 일들이 기쁘고 즐겁습니다.이유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회는 매주 토요일이면 부서별로 구역별로 돌아가며 교회 대청소를 합니다.감사한 것은 장로님들과 권사님들 집사님들 그리고 구역 식구들이 기쁜 마음과 모습으로 성전 안과 밖을 쓸고 닦고 있다는 것입니다.사회에서 모두가 회장님이고 사장님이고 박사님이고 사모님인 사람들이 어떻게 교회 화장실이며 뜰을 쓸면서 희희낙낙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교회 봉사나 주님이 주신 직분을 소홀히 취급하거나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은 그 직분을 맡을 자격이 없습니다.그 자리를 내놓는 것이 좋습니다. 다윗이 주의 뜻 행하기를 즐거워하는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주의 법이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8절에서는 그는 “주의 법이 내 심중에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마음 속에 주의 법과 말씀이 항상 있으면 주의 뜻을 올바로 깨닫고 지킬 수가 있습니다.제아무리 법이 많아도 준법정신이 있어야 하듯이,주의 법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을 때 주의 뜻을 따르고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주를 즐거워하기 때문입니다. 16절을 보면 “무릇 주를 찾는 자는 다 주로 즐거워하고”라고 했습니다.주님이 즐거운 사람,주님이 사랑스러운 사람,주님을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주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어떻게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의 말을 거역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와 증오로 얽힌 공동체의 차이점은 간단합니다.전자는 “예”가 많고 후자는 “아니오”가 많다는 것입니다.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안돼”,“아니야”,“싫어”라는 용어가 통용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싫고,주님의 뜻이 내마음에 맞지 않고,주님이 주신 일들이 싫증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주님 자신이 싫어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불타오를 때 주의 뜻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으로 살아 갑시다.그 사람을 하나님이 도와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9절을 보면 “내가 대회 중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의의 기쁜 소식은 구약적 표현입니다.신약에서는 복음을 의미합니다.다윗은 복음전도자 였습니다.그의 복음전도 방법은 세가지 였습니다.
첫째,대회 중에서 전했습니다. 9절을 보면 “대회 중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라고 했고 10절 끝을 보면 “대회 중에서 은휘치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대회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공동체가 모이는 것을 의미합니다.더 쉽게 말씀드리면 사람이 많이 모인 것을 대회라고 합니다.많은 사람 앞에서 그는 의의 기쁜 소식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고백신앙입니다.그러기에 우리는 모일 때마다 “전능하신 천지를 만드신…”으로 시작되는 신앙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하나님께 고백할 수도 있습니다.“하나님을 사랑한다든지,사모한다든지,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든지…”라고. 전도가 무엇입니까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다윗처럼 “대회 중에서”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다시 말하면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시인하고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자기 혼자만 믿고 구원받고 천당가는 것이 아닙니다. 매주일 새로 등록하는 새신자들을 위해 드리는 제 기도를 주목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자신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을뿐만 아니라 가족과 이웃과 친구와 친척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복음전도의 사명을 감당케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리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둘째,입술을 닫지 아니하고 전했습니다. 9절을 보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입은 열어야 할 때 열고 닫을 때는 닫아야 합니다.그 기능을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인격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인도네시아 이리안자야에는 극락조(The Bird of Paradise)라는 새가 있습니다.색상하며 깃털 그리고 길게 뻗은 꼬리털은 가히 일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극락조는 밤에 잠잘때 침을 흘린다고 합니다.그때 사람이 몰래 접근해서 침을 잡아 당기면 마치 실타래의 실이 풀리듯 계속 침이 실처럼 빠져 나온다고 합니다.그리고 일정량의 침이 빠지고 나면 날지 못한다는 것입니다.입벌리고 침흘리는 극락조는 결국 자기 힘을 모두 잃어버리고 맙니다. 사람도 늘상 입을 벌리고 사는 사람은 극락조같은 꼴을 겪게 됩니다.그러나 우리에겐 반드시 입을 열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그것은 다윗의 경우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고 전할 때 입니다. 성경은 입을 여는 사람에게 응답하시고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어떤 심리학자는 자신의 오랜 임상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이라면서 이런 사람을 주의하라고 했습니다.마주 앉아 얘기를 하면서 상대를 바라보지 않고 시선을 집중하지 않는 사람,그는 정서적으로 불안하거나 은폐하고 있는 제2차적 행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말 표현을 분명히 하지 않고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는 사람 그런 사람은 이중적 성격을 가졌거나 상대를 속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자신을 신임하도록 하기 위해 필요없는 수식이나 다짐을 되풀이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정당하지 못한 목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분명해야 합니다. 우물거리거나 은폐하거나 꾸미려고 하지 맙시다.입을 열어 크게 찬송하고 기도하고 화답합시다.그리고 전합시다.그래야 그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셋째,심중에 숨기지 아니했습니다. 10절을 보면 “내가 주의 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심중에 숨기지 아니했다”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그 뜻은 “마음속에 가두어 놓고 있지 아니했다”,“없는 것처럼 감추어 두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귀하거나 좋은 것은 감추는 습관이 있습니다.돈이나 보석은 가급적 숨기려고 합니다. 한 여인의 경우를 놓고 생각해 보십시다. 돈,보석,땅문서,저금통장 같은 것은 잘 감추고 보관해야 합니다.그러나 그런 것들보다 더 소중하게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그것은 정절입니다.그러나 한 여인이 정절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야 된다는 일념으로 결혼한 후에도 정절을 지키노라며 남편이 손목을 잡아도 뿌리치고 잠자리도 거절을 한다면 그것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일 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를 숨기고 믿음을 숨기고 자기 정체를 숨기는 것은 정당한 행위가 아닙니다.그리고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병은 자랑하고 죄는 고백하고 예수는 증거해야 합니다.다윗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대회 중에서도 하나님의 의를 전했습니다.입술을 열고 숨기지 않은 채 하나님의 의를 노래하고 증거했습니다.그리고 그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그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했기에 자신이 어려울 때 떳떳하고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습니다. 새 대통령 각료인선 속에는 동고동락하며 정치행보를 함께 했던 측근 몇사람이 들어 있습니다.그리고 어려울때 대통령을 진심으로 도와 주었던 몇사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진심으로 일한 사람들과 내가 믿는 하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입을 열어 증거하는 사람들이 응답받고 복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삶이 복될 것입니다.
3.자신의 가난을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17절을 보면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건지시는 자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경제적으로 부자였습니다.그의 지위는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통일한 통일왕국의 황제였습니다.그는 뛰어난 문학적 자질을 갖춘 시인이었고 수금을 타며 노래하는 예술가였습니다.그뿐입니까 그는 소년시절 블레셋의 적장 골리앗을 돌멩이 하나로 처치했고 맨손으로 사자를 찢은 용기있는 무사였습니다.그러한 그는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고백한 것입니다.그의 가난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는 믿음이 부족합니다.한일이 없습니다.죄가 많습니다”라는 그의 겸손과 고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날 때는 꾸밈이 필요하고 치장이 필요합니다.사람은 우선 먼저 사람의 외양을 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 나올 때는 그대로가 좋습니다.마치 돈세탁을 하듯 내 죄를 딴데서 일차 세탁하고 올 필요가 없습니다.그대로 오면 됩니다.단 겸손하게 와서 그대로 고백해야 합니다.
일주일 동안이면 수백통의 우편물이 제 앞으로 우송되어 옵니다.그 가운데 대부분은 도움을 요청하는 것들입니다.언젠가 어느 기관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 온 일이 있었는데,곧 바로 쓰레기 통으로 들어간 일이 있었습니다.봉투 겉에 충신교회 박종순 귀하 라고 써 있었고 내용의 끝부분은 …도와 주기 바람 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저는 그 공문을 보면서 공문을 보내는 사람의 발상과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그 공문은 다분히 관료적인 냄새가 물씬 거렸습니다.그러기에 도울 마음이 없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려면 먼저 하나님을 인정하고 겸손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무릎 꿇고 두손 들고 기도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여러분 기도할 때마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무릎을 꿇고 기도합시다.그리고 손을 들고 기도합시다. 생각해 보십시오.혼자 살겠다는 사람한테 누가 시집을 가겠습니까 도움이 필요없다는데 왜 도와줍니까 돈을 물쓰듯 낭비하는 사람을 누가 구제하겠습니까 하나님 없어도 잘 벌고 잘 쓰고 잘 살수 있다는데 왜 하나님이 도와 주시겠습니까 여러분 가운데는 하나님이 더 이상 지체하시면 사건이 터지고 문제가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주여 지체하지 마소서”라고 기도하기 바랍니다.기도하고 은혜 받아야 길이 열리고 문제가 풀리고 축복이 임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은혜 받아서 문제가 해결되고 길이 뚫리고 축복이 넘쳤던 감동적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감사하기 바랍니다.나는 시속 100km로 주님을 향해가고 있다면 주님은 7000km로 나를 향해 도우시기 위해 달려오고 계시다는 사실,그리고 지체하지 않으시고 나를 지키시고 도우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기 때문입니다. 8절을 보면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주의 뜻 행하는 일을 즐거워 했습니다.누구의 심부름이냐에 따라 심부름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아무리 무거운 짐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운반하게 됩니다.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맡기는 짐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즐겁습니다.주님이 맡겨 주신 일들과 주님을 위해 하는 일들이 기쁘고 즐겁습니다.이유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회는 매주 토요일이면 부서별로 구역별로 돌아가며 교회 대청소를 합니다.감사한 것은 장로님들과 권사님들 집사님들 그리고 구역 식구들이 기쁜 마음과 모습으로 성전 안과 밖을 쓸고 닦고 있다는 것입니다.사회에서 모두가 회장님이고 사장님이고 박사님이고 사모님인 사람들이 어떻게 교회 화장실이며 뜰을 쓸면서 희희낙낙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교회 봉사나 주님이 주신 직분을 소홀히 취급하거나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은 그 직분을 맡을 자격이 없습니다.그 자리를 내놓는 것이 좋습니다. 다윗이 주의 뜻 행하기를 즐거워하는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주의 법이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8절에서는 그는 “주의 법이 내 심중에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마음 속에 주의 법과 말씀이 항상 있으면 주의 뜻을 올바로 깨닫고 지킬 수가 있습니다.제아무리 법이 많아도 준법정신이 있어야 하듯이,주의 법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을 때 주의 뜻을 따르고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주를 즐거워하기 때문입니다. 16절을 보면 “무릇 주를 찾는 자는 다 주로 즐거워하고”라고 했습니다.주님이 즐거운 사람,주님이 사랑스러운 사람,주님을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주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어떻게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의 말을 거역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와 증오로 얽힌 공동체의 차이점은 간단합니다.전자는 “예”가 많고 후자는 “아니오”가 많다는 것입니다.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안돼”,“아니야”,“싫어”라는 용어가 통용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싫고,주님의 뜻이 내마음에 맞지 않고,주님이 주신 일들이 싫증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주님 자신이 싫어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불타오를 때 주의 뜻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으로 살아 갑시다.그 사람을 하나님이 도와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9절을 보면 “내가 대회 중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의의 기쁜 소식은 구약적 표현입니다.신약에서는 복음을 의미합니다.다윗은 복음전도자 였습니다.그의 복음전도 방법은 세가지 였습니다.
첫째,대회 중에서 전했습니다. 9절을 보면 “대회 중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라고 했고 10절 끝을 보면 “대회 중에서 은휘치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대회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공동체가 모이는 것을 의미합니다.더 쉽게 말씀드리면 사람이 많이 모인 것을 대회라고 합니다.많은 사람 앞에서 그는 의의 기쁜 소식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고백신앙입니다.그러기에 우리는 모일 때마다 “전능하신 천지를 만드신…”으로 시작되는 신앙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하나님께 고백할 수도 있습니다.“하나님을 사랑한다든지,사모한다든지,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든지…”라고. 전도가 무엇입니까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다윗처럼 “대회 중에서”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다시 말하면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시인하고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자기 혼자만 믿고 구원받고 천당가는 것이 아닙니다. 매주일 새로 등록하는 새신자들을 위해 드리는 제 기도를 주목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자신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을뿐만 아니라 가족과 이웃과 친구와 친척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복음전도의 사명을 감당케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리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둘째,입술을 닫지 아니하고 전했습니다. 9절을 보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입은 열어야 할 때 열고 닫을 때는 닫아야 합니다.그 기능을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인격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인도네시아 이리안자야에는 극락조(The Bird of Paradise)라는 새가 있습니다.색상하며 깃털 그리고 길게 뻗은 꼬리털은 가히 일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극락조는 밤에 잠잘때 침을 흘린다고 합니다.그때 사람이 몰래 접근해서 침을 잡아 당기면 마치 실타래의 실이 풀리듯 계속 침이 실처럼 빠져 나온다고 합니다.그리고 일정량의 침이 빠지고 나면 날지 못한다는 것입니다.입벌리고 침흘리는 극락조는 결국 자기 힘을 모두 잃어버리고 맙니다. 사람도 늘상 입을 벌리고 사는 사람은 극락조같은 꼴을 겪게 됩니다.그러나 우리에겐 반드시 입을 열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그것은 다윗의 경우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고 전할 때 입니다. 성경은 입을 여는 사람에게 응답하시고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어떤 심리학자는 자신의 오랜 임상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이라면서 이런 사람을 주의하라고 했습니다.마주 앉아 얘기를 하면서 상대를 바라보지 않고 시선을 집중하지 않는 사람,그는 정서적으로 불안하거나 은폐하고 있는 제2차적 행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말 표현을 분명히 하지 않고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는 사람 그런 사람은 이중적 성격을 가졌거나 상대를 속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자신을 신임하도록 하기 위해 필요없는 수식이나 다짐을 되풀이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정당하지 못한 목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분명해야 합니다. 우물거리거나 은폐하거나 꾸미려고 하지 맙시다.입을 열어 크게 찬송하고 기도하고 화답합시다.그리고 전합시다.그래야 그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셋째,심중에 숨기지 아니했습니다. 10절을 보면 “내가 주의 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심중에 숨기지 아니했다”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그 뜻은 “마음속에 가두어 놓고 있지 아니했다”,“없는 것처럼 감추어 두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귀하거나 좋은 것은 감추는 습관이 있습니다.돈이나 보석은 가급적 숨기려고 합니다. 한 여인의 경우를 놓고 생각해 보십시다. 돈,보석,땅문서,저금통장 같은 것은 잘 감추고 보관해야 합니다.그러나 그런 것들보다 더 소중하게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그것은 정절입니다.그러나 한 여인이 정절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야 된다는 일념으로 결혼한 후에도 정절을 지키노라며 남편이 손목을 잡아도 뿌리치고 잠자리도 거절을 한다면 그것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일 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를 숨기고 믿음을 숨기고 자기 정체를 숨기는 것은 정당한 행위가 아닙니다.그리고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병은 자랑하고 죄는 고백하고 예수는 증거해야 합니다.다윗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대회 중에서도 하나님의 의를 전했습니다.입술을 열고 숨기지 않은 채 하나님의 의를 노래하고 증거했습니다.그리고 그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그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했기에 자신이 어려울 때 떳떳하고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습니다. 새 대통령 각료인선 속에는 동고동락하며 정치행보를 함께 했던 측근 몇사람이 들어 있습니다.그리고 어려울때 대통령을 진심으로 도와 주었던 몇사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진심으로 일한 사람들과 내가 믿는 하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입을 열어 증거하는 사람들이 응답받고 복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삶이 복될 것입니다.
3.자신의 가난을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17절을 보면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건지시는 자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경제적으로 부자였습니다.그의 지위는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통일한 통일왕국의 황제였습니다.그는 뛰어난 문학적 자질을 갖춘 시인이었고 수금을 타며 노래하는 예술가였습니다.그뿐입니까 그는 소년시절 블레셋의 적장 골리앗을 돌멩이 하나로 처치했고 맨손으로 사자를 찢은 용기있는 무사였습니다.그러한 그는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고백한 것입니다.그의 가난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는 믿음이 부족합니다.한일이 없습니다.죄가 많습니다”라는 그의 겸손과 고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날 때는 꾸밈이 필요하고 치장이 필요합니다.사람은 우선 먼저 사람의 외양을 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 나올 때는 그대로가 좋습니다.마치 돈세탁을 하듯 내 죄를 딴데서 일차 세탁하고 올 필요가 없습니다.그대로 오면 됩니다.단 겸손하게 와서 그대로 고백해야 합니다.
일주일 동안이면 수백통의 우편물이 제 앞으로 우송되어 옵니다.그 가운데 대부분은 도움을 요청하는 것들입니다.언젠가 어느 기관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 온 일이 있었는데,곧 바로 쓰레기 통으로 들어간 일이 있었습니다.봉투 겉에 충신교회 박종순 귀하 라고 써 있었고 내용의 끝부분은 …도와 주기 바람 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저는 그 공문을 보면서 공문을 보내는 사람의 발상과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그 공문은 다분히 관료적인 냄새가 물씬 거렸습니다.그러기에 도울 마음이 없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려면 먼저 하나님을 인정하고 겸손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무릎 꿇고 두손 들고 기도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여러분 기도할 때마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무릎을 꿇고 기도합시다.그리고 손을 들고 기도합시다. 생각해 보십시오.혼자 살겠다는 사람한테 누가 시집을 가겠습니까 도움이 필요없다는데 왜 도와줍니까 돈을 물쓰듯 낭비하는 사람을 누가 구제하겠습니까 하나님 없어도 잘 벌고 잘 쓰고 잘 살수 있다는데 왜 하나님이 도와 주시겠습니까 여러분 가운데는 하나님이 더 이상 지체하시면 사건이 터지고 문제가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주여 지체하지 마소서”라고 기도하기 바랍니다.기도하고 은혜 받아야 길이 열리고 문제가 풀리고 축복이 임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은혜 받아서 문제가 해결되고 길이 뚫리고 축복이 넘쳤던 감동적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감사하기 바랍니다.나는 시속 100km로 주님을 향해가고 있다면 주님은 7000km로 나를 향해 도우시기 위해 달려오고 계시다는 사실,그리고 지체하지 않으시고 나를 지키시고 도우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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