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하라 (시4:1-8)
본문
하나님의 말씀이 다 그렇지만 시편은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시키는 보고와도 같습니다. 하나하나가 너무 아름답고 신령하고 또 그 감동이 매우 큽니다. 특별히 우리의 경건한 삶을 위하여 주시는 좋은 말씀이 있습니다.
1. 경건한 삶은 오랜 연습이 요구됩니다. 본문 “(시4: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줄 너희가 알지어다 ”라는 말씀은 꼭 외우시기 바랍니다. 헛된 것을 좋아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창조된 우리의 형상을 저버리고 욕심과 죄악 가운데 사는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은 경건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4:7-8의 말씀도 외우면 좋습니다. “(딤전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딤전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 육체의 연습에는 육을 위해 잘살려는 노력도 있고 체력 단련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에어로빅을 한다든지 수영을 하는 것도 육체의 연습입니다. 그런 것들은 약간의 유익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며 금생과 내생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좋은 말씀이 많이 있지만 경건하지 않은 사람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경건한 사람에게는 진리가 되지만, 육을 좇아 망령되이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노아도 경건한 사람이었고, 아브라함도 욥도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경건한 사람들을 택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이들을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경건하지 못한 사람이 주의 일을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게 됩니다. 경건은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도 그날 믿어서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건은 오랜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일을 할 사람은 오랜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준비를 시키십니다. 많은 연습을 통하여 경건을 준비시키시는 것입니다. 경건은 육체의 연습처럼 쉽지 않습니다. 육체를 위해서 스키를 타고, 골프를 치고, 테니스를 친다고 하지만 그것은 금방 익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건을 위한 영적인 연습은 오랜 시일이 필요하고 또 주위의 환경도 필요한 것입니다. 고넬료의 가정은 경건했습니다. “(행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했는데, 우리의 가정도 경건한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 국가는 경건합니다.
예수 믿는 나라는 전체적으로 국민성이나 움직임이 경건합니다. 자동차의 흐름이나 길거리의 질서나 사람들의 대화에서도 경건한 모양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도 경건에 대한 연습을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에 대한 말을 참 많이 합니다. “너는 그런 일에 빠지지 말아라,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경건에 전심전력하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하라.” 물론 우리가 여러 가지 은사도 받아야 되지만 특별히 경건한 분들이 하나님 앞에 선택되어 크게 쓰임받을 때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수 있는 것입니다. “(딤전6: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 하면 (딤전6:4)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딤전6: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딤전6:6)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딤전6: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딤전6: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라고 했습니다.
2. 경건한 삶은 금생과 내생에 복받는 길입니다. “(약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경건한 삶을 살려면 입이 참 중요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경건해도 입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곤란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경건한 것같이 보여도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경건을 외면하는 삶입니다. 경건을 위해서는 말을 조심하는 정도가 아니고 입에 재갈을 물어야 됩니다. 말에게 재갈을 물리듯이 말을 못하도록 완전히 입을 봉해 버려야 경건한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깨끗한 경건은 무엇이겠습니까 “(약1:27)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경건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겨 도와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를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물이 든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경건한 삶이 무엇인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사도들은 경건의 훈련을 많이 했고, 특별히 중세의 수도원에서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영적인 훈련이 아주 잘된 민족입니다. 지금도 사치하지 않고 검소하게 살아가는 민족입니다. 1517년 독일에서 루터를 통해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1세기가 지나면서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납니다. 슈페너에 의해서 맨 처음 시작된 경건주의 운동은 문학이나 철학이나 신학에 굉장한 영향을 마치게 됩니다. 철학자 칸트도 경건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은 사람입니다. 또 바흐나 헨델같이 영감이 있는 곡을 작곡한 음악가들도 경건주의 운동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독일에서 시작된 경건주의는 영국으로 건너가서 요한 웨슬리가 또 경건주의 운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 개신교가 경제적인 번영과 함께 참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국민들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나 잘된 다음이 문제입니다. 잘되고 나면 세속주의, 향락주의에 빠져 사치하고 연락하는 바람이 불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도 같은 현상이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 나라의 민조화나 산업 경제나 교육이나 이 모든 분야에 불을 지펴주고 운동을 일으킨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점점 더 타락하고 잘못되어 가고 있습니다. 경건은 개인적으로도 범사에 유익합니다. 금생과 내생이 영원히 잘되는 길이 경건한 삶입니다. 고넬료와 노아와 같이 자기뿐만 아니라 온 가족 모두가 사는 길이고, 온 나라까지도 복을 받는 삶이 바로 경건한 삶입니다. 복된 삶입니다.
3. 경건한 삶은 시험이 올 때 승리하게 합니다. 우리가 멀리 미래를 바라보면 경건한 생활만이 제일 큰 저축입니다. 경건한 삶은 시험이 올 때에 이겨냅니다. 그러나 경건하지 않은 재산이나 경건하지 않은 육체는 평상시에는 몰라도 시험이 올 때 견뎌내지 못합니다. 사업에도 불경기가 오듯이,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버리시는 때가 한번씩 옵니다. 경제게에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 사회, 교회, 모든 곳에 오기 때문에 그때에 경건이 없는 분은 하나님께서 쓸어버리십니다. 환난으로 불행으로 다 쓸어버리십니다. 어떤 악을 행해도 가만히 놓아두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한 번씩 쓸어버리십니다. 교회도 쓸고 전부다 쓰십니다. 목사가 누구나 다 교인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목사는 가르치지만 열심히 듣고도 자신을 속이고 부인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의 손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한 시기가 오면 하나님께서 청소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경건에 대한 노력을 스스로 꾸준히 해야 됩니다. 경건한 삶은 기도와 말씀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초대 교회의 경건한 삶은 항상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또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 바로 경건한 삶입니다.
1. 경건한 삶은 오랜 연습이 요구됩니다. 본문 “(시4: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줄 너희가 알지어다 ”라는 말씀은 꼭 외우시기 바랍니다. 헛된 것을 좋아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창조된 우리의 형상을 저버리고 욕심과 죄악 가운데 사는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은 경건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4:7-8의 말씀도 외우면 좋습니다. “(딤전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딤전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 육체의 연습에는 육을 위해 잘살려는 노력도 있고 체력 단련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에어로빅을 한다든지 수영을 하는 것도 육체의 연습입니다. 그런 것들은 약간의 유익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며 금생과 내생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좋은 말씀이 많이 있지만 경건하지 않은 사람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경건한 사람에게는 진리가 되지만, 육을 좇아 망령되이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노아도 경건한 사람이었고, 아브라함도 욥도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경건한 사람들을 택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이들을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경건하지 못한 사람이 주의 일을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게 됩니다. 경건은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도 그날 믿어서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건은 오랜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일을 할 사람은 오랜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준비를 시키십니다. 많은 연습을 통하여 경건을 준비시키시는 것입니다. 경건은 육체의 연습처럼 쉽지 않습니다. 육체를 위해서 스키를 타고, 골프를 치고, 테니스를 친다고 하지만 그것은 금방 익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건을 위한 영적인 연습은 오랜 시일이 필요하고 또 주위의 환경도 필요한 것입니다. 고넬료의 가정은 경건했습니다. “(행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했는데, 우리의 가정도 경건한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 국가는 경건합니다.
예수 믿는 나라는 전체적으로 국민성이나 움직임이 경건합니다. 자동차의 흐름이나 길거리의 질서나 사람들의 대화에서도 경건한 모양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도 경건에 대한 연습을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에 대한 말을 참 많이 합니다. “너는 그런 일에 빠지지 말아라,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경건에 전심전력하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하라.” 물론 우리가 여러 가지 은사도 받아야 되지만 특별히 경건한 분들이 하나님 앞에 선택되어 크게 쓰임받을 때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수 있는 것입니다. “(딤전6: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 하면 (딤전6:4)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딤전6: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딤전6:6)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딤전6: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딤전6: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라고 했습니다.
2. 경건한 삶은 금생과 내생에 복받는 길입니다. “(약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경건한 삶을 살려면 입이 참 중요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경건해도 입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곤란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경건한 것같이 보여도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경건을 외면하는 삶입니다. 경건을 위해서는 말을 조심하는 정도가 아니고 입에 재갈을 물어야 됩니다. 말에게 재갈을 물리듯이 말을 못하도록 완전히 입을 봉해 버려야 경건한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깨끗한 경건은 무엇이겠습니까 “(약1:27)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경건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겨 도와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를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물이 든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경건한 삶이 무엇인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사도들은 경건의 훈련을 많이 했고, 특별히 중세의 수도원에서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영적인 훈련이 아주 잘된 민족입니다. 지금도 사치하지 않고 검소하게 살아가는 민족입니다. 1517년 독일에서 루터를 통해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1세기가 지나면서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납니다. 슈페너에 의해서 맨 처음 시작된 경건주의 운동은 문학이나 철학이나 신학에 굉장한 영향을 마치게 됩니다. 철학자 칸트도 경건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은 사람입니다. 또 바흐나 헨델같이 영감이 있는 곡을 작곡한 음악가들도 경건주의 운동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독일에서 시작된 경건주의는 영국으로 건너가서 요한 웨슬리가 또 경건주의 운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 개신교가 경제적인 번영과 함께 참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국민들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나 잘된 다음이 문제입니다. 잘되고 나면 세속주의, 향락주의에 빠져 사치하고 연락하는 바람이 불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도 같은 현상이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 나라의 민조화나 산업 경제나 교육이나 이 모든 분야에 불을 지펴주고 운동을 일으킨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점점 더 타락하고 잘못되어 가고 있습니다. 경건은 개인적으로도 범사에 유익합니다. 금생과 내생이 영원히 잘되는 길이 경건한 삶입니다. 고넬료와 노아와 같이 자기뿐만 아니라 온 가족 모두가 사는 길이고, 온 나라까지도 복을 받는 삶이 바로 경건한 삶입니다. 복된 삶입니다.
3. 경건한 삶은 시험이 올 때 승리하게 합니다. 우리가 멀리 미래를 바라보면 경건한 생활만이 제일 큰 저축입니다. 경건한 삶은 시험이 올 때에 이겨냅니다. 그러나 경건하지 않은 재산이나 경건하지 않은 육체는 평상시에는 몰라도 시험이 올 때 견뎌내지 못합니다. 사업에도 불경기가 오듯이,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버리시는 때가 한번씩 옵니다. 경제게에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 사회, 교회, 모든 곳에 오기 때문에 그때에 경건이 없는 분은 하나님께서 쓸어버리십니다. 환난으로 불행으로 다 쓸어버리십니다. 어떤 악을 행해도 가만히 놓아두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한 번씩 쓸어버리십니다. 교회도 쓸고 전부다 쓰십니다. 목사가 누구나 다 교인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목사는 가르치지만 열심히 듣고도 자신을 속이고 부인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의 손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한 시기가 오면 하나님께서 청소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경건에 대한 노력을 스스로 꾸준히 해야 됩니다. 경건한 삶은 기도와 말씀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초대 교회의 경건한 삶은 항상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또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 바로 경건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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