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할 일 (시30:1-4)
본문
본문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 세 가지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 세 가지가 나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주님의 귀한 뜻을 깨닫고 큰 은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 앞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첫째, 주님을 높여야 합니다. 본문 “(시30: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라고 했고, 또 “(시30: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큰 사명은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에게는 가장 큰 축복이 있습니다. 내가 안되고, 내가 손해보고, 내가 낮아지는 것 때문에 걱정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한 마음이 아닌 마귀가 주는 마음입니다. 마귀는 항상 스스로를 높이게 합니다. 그러나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높이려고 해야 됩니다. 나로 말미암아, 내 자녀로 말미암아, 내 가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높여야 됩니다. 이창호 프로기사가 LG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또 삼성배도 우승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이긴 소감을 말할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마땅하고 당연하지만, 그 입장이 되면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내가 잘한 것만 나타내기가 쉽습니다. 그의 별명이 돌부터인데 그는 이 별명을 듣기가 제일 싫다고 합니다. 우리 조상이 타락하여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졌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귀한 은혜를 다시 받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성령님으로 은혜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지 아무나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은혜를 받은 것을 늘 감사해야 됩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또 주님의 일을 하는 것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내 이름이 높아지고, 내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좋아하면 안됩니다. 교회가 축복을 받으면 교인들의 이름이 신문에 자주 나게 됩니다.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그렇지만 의도적으로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 마음은 안됩니다. 나로 말미암아 오직 주님만이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주님의 이름을 높여야 됩니다. 다윗은 일생을 살면서 자기가 높아지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자기가 높아지고, 자기가 잘되고, 자기가 대접을 받고, 자기를 드러내려고 몸부림쳤던 사람입니다. 결과적으로 사울은 높아지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높아지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높이지 않으시니까 굴러떨어졌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자신을 아무리 낮추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니까 열국 가운데 가장 큰 축복을 받는 왕이 되었습니다. 축하를 할 때 꽃다발을 주고 박수를 쳐주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 꽃다발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박수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벧전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람 앞에서 박수를 받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보시고 다 갚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 앞에서 나를 드러내려는 마음을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다 찬양하여라 금 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 찬양 금 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 찬양”(찬송가 36장). 우리는 내게 주신 면류관을 주님께 드려서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주님을 영화롭게 해야 됩니다. 혹시 여러분이 높아지는 기회가 있다면 그 자리에 주님을 앉히시고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자신을 언제나 낮추시기 바랍니다.
둘째, 주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본문 “(시30: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도와주시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더라도 남편이 절대로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습니다. 아내가 행복하게 해줄 수도 없습니다. 부모님이 나를 절대로 만족시킬 수도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는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모든 것을 부르짖어야 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다 어려움이 있고, 문제가 있고, 환난도 많습니다.
아픈 사람은 병만 고치면 되는데 싶어도 건강해지면 또 문제가 생기고, 남편만 잘 믿으면 되는데 싶어도 남편이 잘 믿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자녀들을 대학에 합격시키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대학에 들어가도 문제는 여전히 끊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사람이 해결할 수 있습니까 부모가 해결할 수 있습니까 누가 매달려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어떤 교인은 목사님이 전화라도 한 번 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목사가 전화해서 문제가 해결됩니까 목사님이 한 번만 심방오시면 좋겠는데, 목사님과 한 번만 악수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매일 심방하고 밤낮으로 악수를 해도 해결이 안됩니다. 주의 종이 여러분의 문제를 절대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주의 종에게 아무리 찾아와도 기도하라는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자꾸 부르짖어야 됩니다. 저를 도와주신 이가 누구입니까 제가 열심히 부르짖음으로 주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이지 아무도 저를 도와줄 수 없습니다. 아무도 여러분을 만족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열심히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높이고 부르짖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얼마나 살 것 같습니까 잠깐 살다가 갑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영원히 있을 곳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아무리 높은 자리, 좋은 자리에 있어도 천국에 가지 못한다면 가장 큰 불행입니다. 땅에서는 나사로같이 살아도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복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간구해야 됩니다. 부모님이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아버지가 대통령이라고 해도, 대재벌이라고 해도 저는 아버지를 의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시는데 육신의 아버지를 왜 의지합니까 육신의 아버지는 나의 길을 열어줄 수 없습니다. 내가 가는 앞날은 하나님만이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간구해야 됩니다.
셋째, 주님께 찬송과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본문 “(시30: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찬송하며 감사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해야 할 일을 하고 나면 우리에게 세 가지 응답이 옵니다. “(시30:1)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잘되면 대적이 많습니다. 교회에서도 뒷전에 앉아 있으면 대적이 없습니다. 은혜를 받으려고 앞으로 나오면 대적이 생깁니다. 앞에 서면 사람들이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돈을 잘 벌어도 시기를 하고, 지위가 높아져도 시기를 합니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대적이 많습니다. 내 힘으로는 대적을 당해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셔야 됩니다. 그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높일 때 하나님께서 물리쳐주시는 것입니다.
첫째, 주님을 높이고 주님을 섬기고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대적을 물리쳐주시고 우리로 이기게 하십니다. 다윗은 “(시27:2) 나의 대적,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대적들이 왔다가 그냥 물러가는 것입니다.
둘째, 주님께 부르짖으면 나를 고쳐주십니다. 본문 “(시30: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내 질병을 고치시고, 내 가난을 고치시고, 내 심령을 고치시고, 내 가정을 고치시고, 내 앞날을 고치십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고쳐주십니다. 주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셋째, 나로 멸망받지 않게 하십니다. 본문 “(시30: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을 높이고 기도와 찬송으로써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한방의 감초처럼 어디든지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평화롭게 되는 데도 기도가 필요합니다. 승리의 삶, 성령님 충만한 삶,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 여러분이 잘되는 삶, 범사에 기도가 필요합니다. 내 소원을 해결해 주실 이는 오직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나아와 기도해야 합니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 이 세상 근심 걱정에 얽매인 나를 부르사 내 진정 소원 주 앞에 낱낱이 바로 아뢰어 큰 불행 당해 슬플 때 나 위로받게 하시네”(찬송가 482장). 목회자가 아무리 잘해도 교인들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없고, 사람이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목회자가 사명을 가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10명의 교인을 만족시키기도 어렵습니다. 누구에게든지 불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주실 이는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문제를 갖고 있는 분들은 주님 앞으로 나와서 울어야지 다른 데로 가면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항상 주님 앞에 나아와 간구하고 매달릴 때 여러분의 앞날이 형통해질 줄 믿습니다.
본문 “(시30:5)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잠깐 동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을 때, 환난을 당할 때 낙심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주사를 맞을 때 잠깐 따끔하듯이 고통과 환난도 잠깐지나면 하나님께서 면하게 해주십니다. 우리 하나니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가 꾸짖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보실 때 진노하십니다. 마음 아파하십니다. 우리가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떠날 때 하나님께서 막대기를 드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노여움은 잠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은총을 베풀어주신는 분입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계속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라고 했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은 밤이 되면 더욱 아픕니다. 그런 밤은 누구에게나 괴로운 것입니다. 성도들의 밤은 기도함으로 하나님 앞에 울부짖는 밤이 됩니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우리에게는 시험이나 질병으로 인한 환난의 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밤, 울부짖는 밤이 많아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유월절 밤을 지켰습니다. 유대 인들은 절기를 지킬 때 밤에 시작합니다. 저녁이 되면 인방과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고 식구들이 방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습니다. 밤에는 비록 눈물이 있더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밤에 기도하면, 밤에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성도에게는 분명히 밝은 아침, 좋은 날이 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세상은 밝았다가 어두워집니다. 세상은 좋았다가도 나빠집니다. 대부분 성도들은 영적으로 어두웠던 지난날을 이야기합니다. 은혜받은 성도에게는언제나 지난날은 밤이고, 오늘은 낮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오늘이 밤이고 기난날은 참 좋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과거에 아무리 화려한 생활을 했어도 우리 성도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몰랐던 지난날을 최악의 밤으로 이야기합니다. 오늘을 낮이라고 믿는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줄 믿습니다.
1. 형통할 때에 은혜 안에 굳게 서야 합니다. 본문 “(시30:6)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어려울 때보다 형통할 때, 잘될 때 흔들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형통하고 잘될 때 물질에 힘입어, 지위와 명예에 힘입어, 건강에 힘입어, 인기에 힘입어 어리석은 짓을 행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잘될 때, 평안할 때일수록 요동하지 않아야 됩니다. 사람이 복받을 때 흔들리면 안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위로 올라가면 교만해지고 하나님 앞에도 잘못하기 쉽습니다. 힘이 있을 때, 잘될 때일수록 겸손해야 됩니다. 성도는 돈 있다고 펑펑 쓰지 말고 아껴야 합니다. 낭비하지 말고 모아야 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 앞에 복받은 사람들은 흉년이 들 때 가난한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성도는 어려운 사람 앞에서 같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면 안됩니다. 어려운 중에도 이웃을 도와주는 것이 올바른 성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내 생활을 낮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잘될 때 흔들리기 쉽습니다. 잘될수록 우리는 겸손해야 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조금만 여유가 생겨도 먹고 마시고 쓰는데, 우리는 있을 때 아껴야 됩니다. 물 한 방울도 아껴 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어떠한 어려움을 주실는지 모릅니다. 어제 질병이 올지, 언제사업에 어려움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언제나 절제하면서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2. 주께서 함께하실 때에 은혜 안에 굳게 서야 합니다. 본문 “(시30:7)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내 기업이 굳게 세워지고, 교회가 굳게 세워지고, 내 가정이 굳게 세워지고, 내 믿음의 산이 굳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든든한 반석 위에 집이 세워지면 나와 내 집이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얼굴을 가리실 때 우리는 근심하게 됩니다. 성도의 근심이 무엇입니까 성도의 근심은 하나님께서 내 곁에서 멀어지시는 것,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실 때 “(마27:46)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라고 몸부림치며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 일은 아무것도 근심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시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나를 홀로 두시지 않을까 이런 것을 제일 두려워해야 합니다. 제일 기쁜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내 안에 계셔서 내 모든 염려를 아시니 내가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찬송가 456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 없네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찬송가 359장).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얻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찬송가 205장). 주님께서 얼굴을 가리시면 우리는 길이 없습니다. 어디에도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하시지 아니하면 권력도 소용없고 재물도 소용없습니다. 한 가지도 소망이 없습니다. 다윗은 “(시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린아이가 손에 먹을 것을 쥐고 있어도 아빠, 엄마를 잃어버리면 울고 몸부림치는 것처럼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장난감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내 믿음이 높은 산, 평강교회라는 산을 주셨습니다. 늘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됩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안 주시면 성도가 아무리 많이 모인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염려하고 기도해야 됩니다.
3. 긍휼을 베풀어주실 때에 은혜 안에 굳게 서야 합니다. 본문 “(시30:8)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시30:9)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라고 했습니다.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피를 흘린들, 몸부림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기도를 들어주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셔야만 됩니다. 울어도 못하고, 힘써도 못하고, 참아도 못하고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늘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는 제자리가 있습니다. 왔다갔다하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 제자리를 지켜야 됩니다. 주의 종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알려주는 것은 잘 지켜야 됩니다. 특히 성도는 제자리를 잡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평생 그 자리를 지켜야 됩니다. 본문 “(시30:10) 여호와여 들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시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계속되나 아침에는 기쁨이 옵니다. 노여움은 잠깐이나 은총은 평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십니다. 유대 인들에게는 우리와 비슷한 면이 상당히 많습니다. 유대 인들은 슬플 대, 회개할 때에 베옷을 입고 회개했습니다. 본문에서 말했듯이 베옷을 입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띠를 두르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슬플 때는 우는 것이 좋습니다. 울어야 될 때 못 우는 것은 불행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눈물을 흘려야 될 때는 흘려야 합니다. 베옷을 입어야 될 때는 베옷을 입어야 하나님 앞에서 은혜로운 옷으로 갈아입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항상 제자리는 잘 지켜서 기도해야 됩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목회자도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과 성도들 중간에 서서 주님의 뜻을 전하고, 여러분을 복받는 길로 안내하는 자가 목회자인 것입니다. 주의 종은 양떼를 푸른 초장으로 이끌고 다니는 목자일 뿐입니다. 양이 풀을 뜯어먹듯이 여러분들이 은혜의 말씀을 먹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하나님께 매달리고 의지해야 여러분의 길이 열릴 줄 믿습니다. 주님을 높이고 주님을 주님께 부르짖으며 감사와 찬송으로 영광돌릴 때 주님은 우리에게 대적을 물리쳐주시고 나를 고쳐주시고 멸망에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형통할 때 충성합시다. 주께서 함께하실 때에 일합시다. 긍휼을 베풀으실 때에 주께로 돌아갑시다.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주께서 함께하시기를 기도합시다.
1. 하나님 앞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첫째, 주님을 높여야 합니다. 본문 “(시30: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라고 했고, 또 “(시30: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큰 사명은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에게는 가장 큰 축복이 있습니다. 내가 안되고, 내가 손해보고, 내가 낮아지는 것 때문에 걱정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한 마음이 아닌 마귀가 주는 마음입니다. 마귀는 항상 스스로를 높이게 합니다. 그러나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높이려고 해야 됩니다. 나로 말미암아, 내 자녀로 말미암아, 내 가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높여야 됩니다. 이창호 프로기사가 LG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또 삼성배도 우승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이긴 소감을 말할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마땅하고 당연하지만, 그 입장이 되면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내가 잘한 것만 나타내기가 쉽습니다. 그의 별명이 돌부터인데 그는 이 별명을 듣기가 제일 싫다고 합니다. 우리 조상이 타락하여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졌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귀한 은혜를 다시 받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성령님으로 은혜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지 아무나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은혜를 받은 것을 늘 감사해야 됩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또 주님의 일을 하는 것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내 이름이 높아지고, 내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좋아하면 안됩니다. 교회가 축복을 받으면 교인들의 이름이 신문에 자주 나게 됩니다.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그렇지만 의도적으로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 마음은 안됩니다. 나로 말미암아 오직 주님만이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주님의 이름을 높여야 됩니다. 다윗은 일생을 살면서 자기가 높아지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자기가 높아지고, 자기가 잘되고, 자기가 대접을 받고, 자기를 드러내려고 몸부림쳤던 사람입니다. 결과적으로 사울은 높아지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높아지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높이지 않으시니까 굴러떨어졌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자신을 아무리 낮추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니까 열국 가운데 가장 큰 축복을 받는 왕이 되었습니다. 축하를 할 때 꽃다발을 주고 박수를 쳐주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 꽃다발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박수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벧전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람 앞에서 박수를 받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보시고 다 갚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 앞에서 나를 드러내려는 마음을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다 찬양하여라 금 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 찬양 금 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 찬양”(찬송가 36장). 우리는 내게 주신 면류관을 주님께 드려서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주님을 영화롭게 해야 됩니다. 혹시 여러분이 높아지는 기회가 있다면 그 자리에 주님을 앉히시고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자신을 언제나 낮추시기 바랍니다.
둘째, 주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본문 “(시30: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도와주시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더라도 남편이 절대로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습니다. 아내가 행복하게 해줄 수도 없습니다. 부모님이 나를 절대로 만족시킬 수도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는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모든 것을 부르짖어야 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다 어려움이 있고, 문제가 있고, 환난도 많습니다.
아픈 사람은 병만 고치면 되는데 싶어도 건강해지면 또 문제가 생기고, 남편만 잘 믿으면 되는데 싶어도 남편이 잘 믿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자녀들을 대학에 합격시키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대학에 들어가도 문제는 여전히 끊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사람이 해결할 수 있습니까 부모가 해결할 수 있습니까 누가 매달려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어떤 교인은 목사님이 전화라도 한 번 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목사가 전화해서 문제가 해결됩니까 목사님이 한 번만 심방오시면 좋겠는데, 목사님과 한 번만 악수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매일 심방하고 밤낮으로 악수를 해도 해결이 안됩니다. 주의 종이 여러분의 문제를 절대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주의 종에게 아무리 찾아와도 기도하라는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자꾸 부르짖어야 됩니다. 저를 도와주신 이가 누구입니까 제가 열심히 부르짖음으로 주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이지 아무도 저를 도와줄 수 없습니다. 아무도 여러분을 만족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열심히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높이고 부르짖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얼마나 살 것 같습니까 잠깐 살다가 갑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영원히 있을 곳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아무리 높은 자리, 좋은 자리에 있어도 천국에 가지 못한다면 가장 큰 불행입니다. 땅에서는 나사로같이 살아도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복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간구해야 됩니다. 부모님이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아버지가 대통령이라고 해도, 대재벌이라고 해도 저는 아버지를 의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시는데 육신의 아버지를 왜 의지합니까 육신의 아버지는 나의 길을 열어줄 수 없습니다. 내가 가는 앞날은 하나님만이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간구해야 됩니다.
셋째, 주님께 찬송과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본문 “(시30: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찬송하며 감사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해야 할 일을 하고 나면 우리에게 세 가지 응답이 옵니다. “(시30:1)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잘되면 대적이 많습니다. 교회에서도 뒷전에 앉아 있으면 대적이 없습니다. 은혜를 받으려고 앞으로 나오면 대적이 생깁니다. 앞에 서면 사람들이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돈을 잘 벌어도 시기를 하고, 지위가 높아져도 시기를 합니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대적이 많습니다. 내 힘으로는 대적을 당해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셔야 됩니다. 그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높일 때 하나님께서 물리쳐주시는 것입니다.
첫째, 주님을 높이고 주님을 섬기고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대적을 물리쳐주시고 우리로 이기게 하십니다. 다윗은 “(시27:2) 나의 대적,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대적들이 왔다가 그냥 물러가는 것입니다.
둘째, 주님께 부르짖으면 나를 고쳐주십니다. 본문 “(시30: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내 질병을 고치시고, 내 가난을 고치시고, 내 심령을 고치시고, 내 가정을 고치시고, 내 앞날을 고치십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고쳐주십니다. 주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셋째, 나로 멸망받지 않게 하십니다. 본문 “(시30: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을 높이고 기도와 찬송으로써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한방의 감초처럼 어디든지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평화롭게 되는 데도 기도가 필요합니다. 승리의 삶, 성령님 충만한 삶,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 여러분이 잘되는 삶, 범사에 기도가 필요합니다. 내 소원을 해결해 주실 이는 오직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나아와 기도해야 합니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 이 세상 근심 걱정에 얽매인 나를 부르사 내 진정 소원 주 앞에 낱낱이 바로 아뢰어 큰 불행 당해 슬플 때 나 위로받게 하시네”(찬송가 482장). 목회자가 아무리 잘해도 교인들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없고, 사람이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목회자가 사명을 가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10명의 교인을 만족시키기도 어렵습니다. 누구에게든지 불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주실 이는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문제를 갖고 있는 분들은 주님 앞으로 나와서 울어야지 다른 데로 가면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항상 주님 앞에 나아와 간구하고 매달릴 때 여러분의 앞날이 형통해질 줄 믿습니다.
본문 “(시30:5)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잠깐 동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을 때, 환난을 당할 때 낙심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주사를 맞을 때 잠깐 따끔하듯이 고통과 환난도 잠깐지나면 하나님께서 면하게 해주십니다. 우리 하나니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가 꾸짖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보실 때 진노하십니다. 마음 아파하십니다. 우리가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떠날 때 하나님께서 막대기를 드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노여움은 잠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은총을 베풀어주신는 분입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계속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라고 했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은 밤이 되면 더욱 아픕니다. 그런 밤은 누구에게나 괴로운 것입니다. 성도들의 밤은 기도함으로 하나님 앞에 울부짖는 밤이 됩니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우리에게는 시험이나 질병으로 인한 환난의 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밤, 울부짖는 밤이 많아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유월절 밤을 지켰습니다. 유대 인들은 절기를 지킬 때 밤에 시작합니다. 저녁이 되면 인방과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고 식구들이 방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습니다. 밤에는 비록 눈물이 있더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밤에 기도하면, 밤에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성도에게는 분명히 밝은 아침, 좋은 날이 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세상은 밝았다가 어두워집니다. 세상은 좋았다가도 나빠집니다. 대부분 성도들은 영적으로 어두웠던 지난날을 이야기합니다. 은혜받은 성도에게는언제나 지난날은 밤이고, 오늘은 낮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오늘이 밤이고 기난날은 참 좋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과거에 아무리 화려한 생활을 했어도 우리 성도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몰랐던 지난날을 최악의 밤으로 이야기합니다. 오늘을 낮이라고 믿는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줄 믿습니다.
1. 형통할 때에 은혜 안에 굳게 서야 합니다. 본문 “(시30:6)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어려울 때보다 형통할 때, 잘될 때 흔들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형통하고 잘될 때 물질에 힘입어, 지위와 명예에 힘입어, 건강에 힘입어, 인기에 힘입어 어리석은 짓을 행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잘될 때, 평안할 때일수록 요동하지 않아야 됩니다. 사람이 복받을 때 흔들리면 안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위로 올라가면 교만해지고 하나님 앞에도 잘못하기 쉽습니다. 힘이 있을 때, 잘될 때일수록 겸손해야 됩니다. 성도는 돈 있다고 펑펑 쓰지 말고 아껴야 합니다. 낭비하지 말고 모아야 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 앞에 복받은 사람들은 흉년이 들 때 가난한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성도는 어려운 사람 앞에서 같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면 안됩니다. 어려운 중에도 이웃을 도와주는 것이 올바른 성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내 생활을 낮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잘될 때 흔들리기 쉽습니다. 잘될수록 우리는 겸손해야 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조금만 여유가 생겨도 먹고 마시고 쓰는데, 우리는 있을 때 아껴야 됩니다. 물 한 방울도 아껴 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어떠한 어려움을 주실는지 모릅니다. 어제 질병이 올지, 언제사업에 어려움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언제나 절제하면서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2. 주께서 함께하실 때에 은혜 안에 굳게 서야 합니다. 본문 “(시30:7)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내 기업이 굳게 세워지고, 교회가 굳게 세워지고, 내 가정이 굳게 세워지고, 내 믿음의 산이 굳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든든한 반석 위에 집이 세워지면 나와 내 집이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얼굴을 가리실 때 우리는 근심하게 됩니다. 성도의 근심이 무엇입니까 성도의 근심은 하나님께서 내 곁에서 멀어지시는 것,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실 때 “(마27:46)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라고 몸부림치며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 일은 아무것도 근심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시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나를 홀로 두시지 않을까 이런 것을 제일 두려워해야 합니다. 제일 기쁜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내 안에 계셔서 내 모든 염려를 아시니 내가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찬송가 456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 없네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찬송가 359장).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얻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찬송가 205장). 주님께서 얼굴을 가리시면 우리는 길이 없습니다. 어디에도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하시지 아니하면 권력도 소용없고 재물도 소용없습니다. 한 가지도 소망이 없습니다. 다윗은 “(시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린아이가 손에 먹을 것을 쥐고 있어도 아빠, 엄마를 잃어버리면 울고 몸부림치는 것처럼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장난감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내 믿음이 높은 산, 평강교회라는 산을 주셨습니다. 늘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됩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안 주시면 성도가 아무리 많이 모인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염려하고 기도해야 됩니다.
3. 긍휼을 베풀어주실 때에 은혜 안에 굳게 서야 합니다. 본문 “(시30:8)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시30:9)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라고 했습니다.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피를 흘린들, 몸부림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기도를 들어주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셔야만 됩니다. 울어도 못하고, 힘써도 못하고, 참아도 못하고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늘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는 제자리가 있습니다. 왔다갔다하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 제자리를 지켜야 됩니다. 주의 종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알려주는 것은 잘 지켜야 됩니다. 특히 성도는 제자리를 잡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평생 그 자리를 지켜야 됩니다. 본문 “(시30:10) 여호와여 들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시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계속되나 아침에는 기쁨이 옵니다. 노여움은 잠깐이나 은총은 평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십니다. 유대 인들에게는 우리와 비슷한 면이 상당히 많습니다. 유대 인들은 슬플 대, 회개할 때에 베옷을 입고 회개했습니다. 본문에서 말했듯이 베옷을 입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띠를 두르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슬플 때는 우는 것이 좋습니다. 울어야 될 때 못 우는 것은 불행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눈물을 흘려야 될 때는 흘려야 합니다. 베옷을 입어야 될 때는 베옷을 입어야 하나님 앞에서 은혜로운 옷으로 갈아입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항상 제자리는 잘 지켜서 기도해야 됩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목회자도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과 성도들 중간에 서서 주님의 뜻을 전하고, 여러분을 복받는 길로 안내하는 자가 목회자인 것입니다. 주의 종은 양떼를 푸른 초장으로 이끌고 다니는 목자일 뿐입니다. 양이 풀을 뜯어먹듯이 여러분들이 은혜의 말씀을 먹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하나님께 매달리고 의지해야 여러분의 길이 열릴 줄 믿습니다. 주님을 높이고 주님을 주님께 부르짖으며 감사와 찬송으로 영광돌릴 때 주님은 우리에게 대적을 물리쳐주시고 나를 고쳐주시고 멸망에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형통할 때 충성합시다. 주께서 함께하실 때에 일합시다. 긍휼을 베풀으실 때에 주께로 돌아갑시다.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주께서 함께하시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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