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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 중에 간구 (시3:1-8)

본문

시편 3편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다윗을 대적하여 배반하고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다윗의 생명이 풍전등화와 같이 어려운 시기에 지은 것입니다. 그때 압살롬만 다윗을 배반한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다윗에게 충성했던 신하들도 압살롬을 따라서 다윗을 배반했습니다. 다윗은 참 귀한 분이지만 불행하게도 아들에게 쫓기는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압살롬은 아주 나쁜 사람입니다. 압살롬에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셨고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의 머리를 쓰는, 지능적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데 소질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이런 일에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사람을 선동하여 사람을 일시적으로 기쁘게 하는 인간의 올무에 매여서 영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일이 많습니다. 다윗은 아주 악한 사람을 많이 만나지만 인간적으로 그들을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특징입니다. 악한 사람을 대적하여 같이 악해지지 않고, 모략을 꾸미는 사람을 대적하여 같이 모략을 꾸미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선동해서 악한 방법으로 달려드는 압살롬에게도 인간적인 힘으로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하나님 앞에 취한 자세는 무엇입니까
1. 환난 중에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구함으로써 이 어려움을 해결하게 됩니다. 본문 “(시3: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시3:2)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자기의 대적이 많다고 호소합니다. 사람들은 다윗이 하나님께 버림받아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수군거립니다. 우리 교인에게는 이것이 큰 욕이자 저주이고 불행스러운 말입니다. 그러나 3절부터 보면, 다윗은 그런 일에 낙심치 아니하고 어려움과 환난을 어떻게 풀어 나가는가, 어떻게 해결하는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시3: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 주님께서 나의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나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힘이 되시고 하나님만이 나를 살리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여호와께 의지하는 것입니다. “(시3: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 ”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드디어 하나님 앞에 부르짖게 됩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 번째, 자기의 죄값으로 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고 훈련하시기 위해서 어려움을 겪게 하시는 일도 많습니다. 어떠한 경우의 어려움이든 견디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어려움이나 환난이나 그 자체가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문제를, 이 어려움을 하나님의 뜻대로 해결해야 어려움을 통해서 시험들지 않고 또 잘못되지 않습니다. 어려움 때문에 더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되고 오히려 더 큰 환난 가운데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환난은 금을 단련하는 것과 같아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불순물이 제거되어 하나님 앞에 순수하고 온전하게 되어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당할 때는 우선 참아야 됩니다. 잠깐 지나가는 어려움이야 참을 수 있지만 오래오래 고문을 당하는 것이 견디기 힘든 고통이라고 합니다. 일제 말기에 기독교인을 탄압할 때도 “너 예수 믿느냐” 하고 물어서 “예, 믿습니다.”라고 대답하면 곧바로 총으로 쏘아 죽이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합니다. 그것은 한 순간만 넘기면 되는데, 서서히 고통을 주고 계속 괴롭히는 고문은 정말 견디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잠깐 당하는 어려움은 누구나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려움이 오래살 때에 잘 참아야 됩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무엇보다 먼저 기도해야 됩니다. 다윗과 같이 어려운 일을 하나님 앞에 맡기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2. 응답받기 위해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시3: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 (시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환난 가운데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는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는 것도 큰 은혜입니다. “아하, 또 하루를 살았구나, 내가 죽지 않았구나”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이 있지만 역시 큰 어려움은 생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생명을 위협받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가난이나 질병 정도는 성경에서 어려움으로 치지도 않습니다. 다윗은 왕입니다.
그런데 아들에게 쫓겨나서 언제 군사를 풀어서 아버지를 죽일지 모르는 위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자고 깨는 것이 얼마나 은혜인지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고 깨는 것도 은혜입니다. 우리 나라도 역사를 통해 볼 때 피를 흘린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마지막까지 그 생명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병자호란 때 인조 임금은 생명의 위협을 피해 남한산성까지 가지 않았습니까 피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런데 다윗을 보십시오. 남의 나라에서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믿었던 아들이 왕권에 눈이 멀어 아버지를 배반할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입니다. 압살롬의 선동으로 많은 신하들, 참모들도 다 넘어가 버리고 다윗은 외롭게 도피했습니다. “(시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라고 했듯이 누워 자고 깨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붙잡으시니 내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른 염려가 많이 있더라도 누워 자고 깨는 것을 감사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길은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기도로 매달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아뢰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3:6)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기도하고 나니까 자기 자신이 보호를 받을 뿐만 아니라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천만인이 둘러 치려 하여도 이제 두렵지 않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위로입니까 그렇습니다. 세상에서는 마음의 불안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원수가 나를 향해, 천만인이 나를 둘러 진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원수가 한 사람만 찾아와도 두려울 텐데 천만인이 자기를 둘러 치려하여도 두렵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마음이 담대해집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그댈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내게 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사고를 낸다는 것입니다. 내가 혹시 하프지 않을까 하면 병이 난다는 것입니다. 염려하는 것이 자기에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불안은 마귀가 주는 것이므로 우리는 두려움을 쫓아내야 됩니다. 우리에게 그런 두려움이 왔을 때 어떻게 그 두려움을 내쫓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면 우리에게서 두려움이 제거될 줄 믿습니다.
3.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본문을 보면 “(시3: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꺽으셨나이다 (시3: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셀라)”라고 했습니다. 나의 원수를 내가 치려고 하면 안됩니다. 이미 원수의 숫자가 내 쪽보다 많습니다. 다윗은 “(시3: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원수가 많은 것 때문에 잘못되지 않았고, 실패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더 잘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어려움을 당할수록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이 있을수록 교회를 떠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려울수록 바짝 붙잡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의 자식은 어려운 이이 있으면 집을 뛰쳐나가고, 자기 자식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집으로 들어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을 찾아오고 매달리는 성도가 하나님 앞에 사랑받고 쓰임받습니다. 또 원수가 대적할 때에도 자기의 힘으로 대적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맡겨서 하나님께서 그 뺨을 치시도록, 하나님께서 해결하시도록 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문제는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노조의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데, 사장을 몰아내고 회사를 내 힘으로 뜯어고치려고 하는 것은 안됩니다. 비신앙적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이든지 하나님 앞에 맡겨야 합니다. 남북의 통일 문제도 기도로 해결해야지 안간의 힘으로 전쟁으로 이룩하려는 것은 서로가 손해를 보는 일입니다. 이것은 안 믿는 사람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야 합니다. 환난을 당할 때 부르짖으로고 했습니다.
어려움을 자꾸 인간의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원수들이 자기를 죽이려 할 때에도 “(눅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하셨습니다. 우리 같으면 화가 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데, 나를 이렇게 못박아 죽이려고 하는 이런 못된 놈들아!” 하면서 그들을 벌하였을 텐데 끝까지 묵묵히 참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악착같이 대적합니까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믿음의 길로 들어가야만 우리가 구원함을 얻습니다. 민주화가 된다고 죄 사함 받고 천국을 간다거나 자유함을 얻어 이 민족이 복을 받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 민족이 어떻게 하면 잘삽니까 하나님을 믿어야 하나님의 은혜로 이 민족이 잘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혼동하면 안됩니다.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그런 것들이 오히려 우리를 얼마나 더 타락하게 하고 방황하게 하고 어렵게 만듭니까 우리가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민족복음화가 속히 이루어져서 남북한 동포가 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다면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제일 복받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유대 인들을 보십시오. 온 나라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말씀을 떠나지 않습니다. 안식일이 되면 버스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택시도 다니지 않고 전화도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며,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율법에 맞춥니다. 우리는 정책의 초점을 경제에 맞추는데 이것도 잘못된 일입니다. 예수님은 “(마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단비를 내리시고 은혜를 주시면 풍성히 거두어 우리의 창고는 차고 넘치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복을 쌓을 곳이 없게 됩니다. 우리가 늘 기도하기를 하나님 우리 나라 경제를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그
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 아버지 우리로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이 바로 경제를 회복하는 길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복을 쌓을 곳이 없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력하는 것은 그저 경영입니다. 산업입니다. 기술투자입니다. 30분 더 일하기다 하는데 30분이 아니라 300분을 더 해보십시오. 그것으로 됩니까 그것으로 여러분의 가정의 경제가 일어납니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잘사는 것입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행16:30)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을 때에 사도 바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빨리 취직해서 돈이나 벌라고 했습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잘살라고 했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구정 때 우리 집안식구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중에 수유리에 사시는 누님도 있었습니다. 누님 아이들이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데 부산에서 예문여고에 근무하였는데 경희고등학교로 부임을 받았습니다. 생각지도 안은 일입니다. 딸 아이도 상고를 나왔습니다.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할려나 했더니 언제 입학원서를 제출해서 한양대학교에 입학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어요. 하며 간증을 합니다. 부모가 밀어줄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습니다. 주일날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 직장을 다니는데 주일날 쉬지않는다고 하는 사장의 말에 사장님 다른 사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그러면서 시간제 파출부를 다니고 있습니다. 하나님만 바로보았더니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꼭 공부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니까 다됩니다.
그런데 왜 사람을은 아이들만 보면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일날 아이들을 교회에 안 보내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입시생들은 교회를 보내지 않습니다. 하루라도 더 벌어서 등록금도 마련하고 하루라도 더 공부해서 높은 점수를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 일껍니다. 주일하루 동안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절대로 뒤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 일 더한다고 등록금이 마련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하루를 안식할 때 그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머리도 쉬게 되어 공부가 잘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안 나가면서 서울대학이 아니라 하버드 대학에 들어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루는 그분이 철야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택시를 타고 갔답니다. 함께 가시던 전도사님이 그 전도사님에게 전도사님 안녕히 가십시오. 그러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택시기사가 전도사님 되십니까 영광입니다. 주의 일꾼을 언제나 대접하나 했더니 오늘이야 할 수 있겠군요 선교는 못하지만 전도사님을 집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하면서 돈도 안받더라고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했더라구요. 그러서 주일날 예배후에 성도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전도사님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전도사님 너는 주의일을 하라 그리하면 교통비정도냐 그 보다더 한 것도 책임져 줄것이다라는 메시지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는 마약을 복용하는 학생이 엄청나게 많다고 들었습니다. 완전히 퇴폐적으로 사는데, 하나님이 안 계신 삶이 뭐가 그렇게 귀합니까 하나님 없는 사상, 하나님 없는 정치, 하나님 없는 경제, 하나님 없는 성공, 하나님 없는 학문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제일입니다. 예수님이 제일입니다. “(행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습니다. 안 믿는 사람이 부르는 대로 따라가지 말고, 믿는 성도는 영원불변하신 하나님만 의지해야 됩니다. 할렐루야.
4.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본문 마지막 절에 보면 “(시3: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셀라) ” 했습니다. 구원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다윗은 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군인에게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정치가였습니다. 그러나 구원이 정치에 있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구원은 오직 여호와께만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다윗은 백성들이 자기를 배반했는데도 그들에게 복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의 참 좋은 성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환난을 당해도 그 마음이 강퍅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그렇게 미움을 받으면서도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언제나 선한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억울하다고 해서 강퍅해지면 안됩니다. 가난해도 하나님을 제일로 알고, 핍박을 받아도 약해지지 아니하고 여러분의 마음을 선하게 가지시기 바랍니다. 자기만 잘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주의 백성에게 복을 내려주옵소서” 하면서 기도하는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언제나 우리에게 축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다윗 같은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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