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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때에 하나님을 찾읍시다 (시3:1-8)

본문

하나님은 나를 붙드십니다. 세상을 이기는 비결이 무엇인가 세상을 이긴다는 말은 곧 죄를 이긴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성도가 세상에서 죄를 짓는가 죄가 죄인 줄 몰라서 죄를 지을까 아닙니다. 우리 속에 죄를 이길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죄와 마귀와 사단의 권세를 이기는 비결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믿음의 사람이요, 성령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대저 하나님께오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한일서 5:4),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에베소서 5:18)고 했습니다. 당신은 압살롬의 반란을 아십니까 다윗이 일생 동안 당한 시련을 크게 세가지로 정리해 보면
1 초기 시절에 사울왕으로부터 박해입니다. 이는 이새의 아들 목동이 일국의 왕으로 세움 받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연단입니다.
2 중년에 행한 인구조사입니다. 이는 사울의 교만한 마음을 없애기 위한 사랑의 채찍입니다.
3 아들 압살롬의 반역입니다. 이는 그의 신복같은 부하 우리아를 죽이고 그 아내 밧세바를 취한 죄의 보응입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세번째 아들입니다. 그가 세상 권력에 미쳐 아비를 죽이려 했습니다. 이는 다윗의 생애에 지울 수 없는 고통이요, 상처였습니다. 그는 아비를 대적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하였으며(사무엘하 15:6), 백주(白晝)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부친의 후궁들과 동침했습니다(사무엘하 16:22). 다윗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 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셀라)”(1-2) 범인은 환난과 곤고가 오면 그 인생을 불행으로 생의 종지부를 찍으나 위인은 역경을 재기의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사명자는 상대방의 비방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내게 오해할 권리가 있고, 나는 그에게 변명할 이유가 없다. 나의 사정은 하나님이 아신다. 구차한 인간적인 변명을 하기보다 차라리 나는 엎드려 기도하리라 이것이 욥같은 사명자의 결단입니다(욥기 23:10-13).
첫째:하나님은 나를 반드시 도우십니다. 읽을말씀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3)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반드시 도우십니다. 이 말씀은 다윗이 그의 전생을 통해서 울어 나온 삶의 체험적인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방패입니다. 다윗은 전쟁의 전문가입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의 활을 피할 방패입니다. 다윗은 지금 기드론 시내 골짜기를 피신하면서 얼마나 다급했는지 맨발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왕의 신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적의 위험 속에서 누가 그를 지켜 주셨는가 하나님이 그를 지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라고 외치면서 두려울 것이 없음을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영광입니다. 그는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직면해서도 종국에 가서는 승리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전에 하나님께 범한 죄에 대한 징계의 채찍임을 알았습니다. 성도가 고난의 의미를 깨닫으면 고난은 오히려 축복의 기회가 됩니다. 그래서 그는 최후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머리를 들게 하십니다. 인생은 출생할 때부터 부패하고 타락한 존재입니다(시편 51:5). 우리에게 들어낼 의가 없습니다. 자랑하면 오히려 부끄러울 것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지난날에 행한 일들을 생각하니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충신 우리아 장군을 죽이고 그 아내를 뺴앗은 사실만 생각하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부끄러운 수치를 드러내지 않고 숨기시고 감추시고 새롭게 하셔서 다시 일어서서 일하게 하시는 좋으신 분입니다.
둘째:하나님은 나의 기도에 확실하게 응답하십니다. 읽을말씀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
(4) 다윗은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위기를 극복할 때마다 한 특징이 있다면 부르짖는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습니까 이 비밀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고통은 하나님 찾으라는 신호입니다. 우리에게 고통이 오지 않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애굽의 고센에 거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화로울 때에는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생각지 않았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일어나서 고센의 둥지를 어지럽힐 때 그들은 하나님을 찾게 된 것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편 49:15)고 했습니다. 기도는 성도의 최대 무기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더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태복음 7:7)고 했습니다. 고통은 당신을 거룩한 성산으로 인도합니다. 고통의 때 내가 기도할 곳을 찾게 됩니다. 고통이라는 터널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고통을 주어서 나로 하여금 세속과 단절하여 거룩한 성산에 오르게 하십니다. 기도의 성산, 말씀의 성산, 전도의 성산으로 올라갑시다. 세속과 구별된 그 순간, 그 장소, 그 사역에서 하나님은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셋째:하나님은 나를 두려움에서 붙들어 주십니다. 읽을말씀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절/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5) 두려움과 공포는 인간의 최대의 적입니다. 범죄한 아담에게 제일 처음으로 찾아온 것이 두려움입니다. 그는 두려워서 숨었고, 하나님과 교제를 단절했습니다(창세기 3:8-10).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공포증에는 세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1 광장공포증입니다. 자폐증 환자와 같이 넓은 장소나 사람이 많은 시장이나 경기장 같은 곳을 못가니 생활속에 싸인 스트레스에 항상 눌려 있습니다. 그래서 신경이 세약해지니 조그마한 소리에도 잘 놀라고 불안해합니다.
2 고소공포증입니다. 협심증환자와 같이 조금만 높은 곳에 올라가도 어지럽습니다. 이런 사람은 등산이나 캠프 같은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물을 보는 안목이 열리지 않습니다.
3 밀실공포증입니다. 정신분열증 환자와 같이 언제나 분주하게 쏘다니므로 조용히 자아를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일없이 바쁜 사람입니다. 가만히 혼자 있지를 못하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흩은 소리를 내뱉어야만 속이 시원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정리된 마음에 지배를 받아야 하는데 마음의 영적인 상태가 분열된 상태에 있으니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습니다. 다윗에게 이러한 공포중에서도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라고 했으니 이러한 공포의 밤에 평안한 단잠을 잤던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주시는 잠입니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편 127:2). “여호와께서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시편 121:5-6)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주야로 지켜 주시매 아무도 그를 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넷째:하나님은 당신을 원수의 손에서 건져 주십니다. 읽을말씀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빰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셀라)”(7-8) 하나님은 사명자 길을 지켜 주십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사명자의 길에는 하나님의 예비한 손길이 있었습니다. 사명자를 대적하는 것은 그 사명을 주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창세기 12:3). 중동 지역에는 독사의 이발에 물리면 즉시로 죽습니다. 독사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브라질의 방울뱀이나 인도의 코브라와 같은 것은 무서운 독을 가진 것으로 이들은 호랑이나 사자도 물어 죽입니다. 이들은 무섭고 날카로운 두개의 이빨이 있습니다. 이 이빨에서 햐얀 우유 같은 액체가 나옵니다. 이것이 무서운 독인데 이로 수백명의 목숨도 죽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수의 빰을 치시고 이빨을 꺾어 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원수의 빰을 쳐서 기를 꺾으시고, 이빨을 뽑아서 비난의 독을 뽑아 내시고, 턱이 내려 앉게 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하여 꿂어죽게 합니다. 원수를 이렇게 멸하시고 자기 백성을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울의 족속 중에 다윗을 저주하는 시므이와 다윗의 신복으로 반역한 아이도벨과 그의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반란의 원수의 이빨을 다 뽑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이빨은 다 뽑힘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원수를 정확하게 갚을 의가 없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로마서 12:19-21)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연단은 선택자 만이 받는 특권입니다. 고난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고난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인생의 비극이나 고난의 의미를 찾으면 고난은 축복의 기회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에게는 부모의 관심이 특별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성도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특수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때로는 세인이 생각할 수 없는 고난의 장막 속에 거하게 하고 환난의 터널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특별한 은총을 베풀기 위해서입니다. 군대에서도 지도자를 훈련하는 사관학교는 특수한 훈련을 시킵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 강하고 고되고 긴 훈련을 받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남이 받을 수 없는 특별한 지위에서 일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쓰시기 위하여 특수하게 훈련하는 사명자는 특별하게 훈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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