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자의 복 (시32:1-11)
본문
요즈음 고국의 소식을 담은 신문에는 '대학입시대리 시험부정사건' 과 컴퓨터 조작의 입시부정사건으로 얼룩져 있는 것을 봅니다. 더우기 이번 일들은 인생의 참된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할 스승들이 주도가 되고, 자녀들에게 진실을 가르쳐야할 학부모들, 그리고 오염되기에는 너무나 순진해야될 대학생들, 그리고 대학관계자들이 모두 연결이 되어 계획적이고 구조적으로 부 정이 저질러 졌다는 면에서 충격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특히 자녀들을 위하여 대리시험을 치게 한 학부모들의 신분이 현직 검찰 고위간부이거나 구의회의원등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라는 것 입니다. 이것은 이제 도덕적인 부패와 구조적인 죄악이 일부교육자 뿐만아 니고,졸부들,그리고 각계 지도층인사에게 까지 완전히 퍼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이제 우리 사회에 도덕성은 구석 구석에서 마 비가 되어 있지 않은가 깊은 우려와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보면 이들의 죄악은 밖으로 드러난 것 뿐이고 인간의 존재에 깊히 박혀 있는 죄악이 더 깊고 무서울지 모릅니다. 병도 보면 드러난 병은 손을 써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는 병은 참으로 문제입니다. 암이 무서운 이유는 자각증세가 없다는 것이고, 증세가 드러나게 될 때는 이미 손을 쓸수 없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병을 보면, 원인이 있고 병원균이 있습니다. 원인을 발견하고 병원균을 다룰 수 있게 되면 치료가 가능합니다. 인간의 죽음에도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라고 성경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죄가 있다고 느끼든 느끼지 않든 분명한 원인은 죄때문입니다. 인간의 실존에 나타나는 불안증세도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현대인들이 풍요로운 물질과 보편화한 높은 지식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심리상태에 있어서는 반비례적으로 불안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 원인을 사르트르는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불안이 있다고 말하고, 하이데거는 '공허와 죽음때문에'불안이 온다고 말하고 있으나, 보다 근본적인 면에서 키에르케골은 '죄에서'온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성경도 죄가 있기에 사람에게 두려움이 있고,불안이 있고,결국은 죽음이 찾 아오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죄가 있는 자는 반드시 그것을 가리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2월 3일자 한국일보의 전면에 보니까,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가린 대학입시 부정을 일으킨 사람들의 사진이 실려 있었습니다. 타이틀이 재미있습니다. "얼굴감춘 부정"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손으로 얼굴을 가릴 수는 있겠지만,죄는 가릴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죄자체를 가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생각하겠지요 즉,죄를 용서받을 수가 있고 완전히 없던 것으로 다시 돌아가 새출 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32:1-2에 보니까 똑같은 심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 다 어차피 인생들에게는 크고 작은 죄가 있는데, 죄의 가리움을 받고 용서를 받으며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정죄를 받지 않는 자가 있다면 정말로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정말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 일이나 두려운 일의 뿌리에는 죄와 그로 인한 죄책이 있기 마련입니다.
(예)저는 마음 아프고 슬픈 것이 저의 어머님이 돌아가신 것에 있습니다. 돌아가셨다는 것,보고 싶고 또한 내 모습을 보이고 싶을 때 계시지 않는 다는 슬픔보다도 저를 더 괴롭히는 것은 살아 계실 때 잘 순종과 효도하지 못했고,너무나 마음아프게 거역했을 때가 많았다고 하는 죄책감때문인 것입니다. 특별히 죄에 대하여 민감할 줄 알고,죄를 아파할 줄 아는 사람에게 있어서 죄의 문제는 정말로 심각한 것이지요.
(예)어떤 교사는 제자들 몇대 때려서 상처된 것의 죄책감 때문에 자 살을 했고,그 외아들이 얼마전에 또 떨어져서 자살한 것이 아니겠 습니까 문제는 자살로서 해결할려고 했던 것은 잘못이지만 죄에 대하여 아 파하고 심각히 여기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다음 죄를 방지하고 예방하며 그를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 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죄의 용서함을 받지 못했을 때의 시편기자즉, 다윗의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3-4절에 보시면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 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 바로 이런 상태에 있다면 죄의 가리움을 받고,정죄를 받지 않는 것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성경 66권을 다 읽어 보고 깊이 상고해 보면,가난 하고 부하고,병들고 건강하며,잘 살고 못살고,오래 살고 짧게 살고 하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깊은 관심이 없습니다. 성경의 주제는 언제나 우리가 좋아 하든 하지 않든,깊이 느끼든,못 느끼든, 죄의 문제가 촛점이 되고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불행한 이유가 사실은 죄때문이고, 다시 진정 행복해 질 수 있는 길 도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첫번째의 문제는 모든 죄가 다 하나님관계에서 해결되어야 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건에서 죄를 짖고 사람관계에서 죄를 짖는 것이지만 궁극적 으로는 이것이 하나님관계에서 죄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다 칭찬을 하고, 옳게 여김을 받는다고 해도 내 양심 이 하나님앞에서 옳지 안음을 말한다고 하면 이것도 죄인 것입니다. 다윗은 말하기를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는다고 했고, 토설치 않을 때에 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앞에서 해결하지 못할 때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간음죄를 짖고,그 남편을 계략을 써서 전쟁터에 죽게 한 이 모든 것을 말할 때, 시51: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 다 바른 회개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앞에서 시작되고 하나님께 돌아갈 때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적으로말해서, 죄를 뉘우치고,반성하고,후회하고,깊이 고민하고,애통해 하는 것을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죄를 갚기 위하여 선을 행하고,어떤 공로를 행해야 속죄가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않되면 줄에 목을 메거나 빌딩에서 뛰어 내리는 죽음으로 속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죄의 가리움을 받을 수 있는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예)탕자의 사건/ 후회할 수 있고,애통해 할 수 있으며, 오히려 밖 에서 죽음으로 속죄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중요한 것은 이에 스스로 돌이커 아버지에게로 가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의 의미는 내 영혼이 가던 길을 돌이켜서 하나님의 품으 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이는 참된 회개와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단순히 어떤 회한이나 후회 가지고는 않되는 것입니다. 특히 2절에서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는데, 마음에 간사가 없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환경을 원망함이 없이 순수하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세를 말합니다.
(예) 다윗-밧세바를 원망하거나 책망하고 있지 않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2.항상 참회는 십자가 중심의 사건으로 이루어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2에서 보면, 허물의 사함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여기 사함받는다고 하는 것은 구약시절의 짐승의 피로 제사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예)이스라엘-7월 10일 속죄일입니다. 먼저 대제사장이 자신과 가족을 위해 수송아지를 바치고, 다음 온 백성을 위해 염소로 속죄제를 바쳤습니다. 이것은 역시 십자가에서 우리 주님이 대속의 피를 흘릴 사건에 대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라고 했는데,여기 가리움을 받는다는 것도 십자가의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아담의 범죄-무화관나무잎-짐승의 옷을 잡아서 역시 수치스러움 을 가려 주심-짐승이 죽는 사건-곧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계7장에 하늘나라 성도들이 흰옷 예복을 입고 주님을 찬양하는 내용 이 나오고 있는데, 이것역시,성경에 보면 어린양의 피로 빨은 하얀옷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수치를 가려주는 하얀 옷, 이것이 바로 어린양의 피로 우리의 죄를 가려주신 십자가의 사건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가려주고 정죄치 아니하는 사랑이 십자가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 우리의 죄를 내어 놓는 것이 참된 회개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 진정돌아가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른 관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진노의 하나님,두려움의 하나님에서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으로 만나 게 됩니다. 지난 날의 그의 음성은 저주였고 심판이었으나,이제는 구원과 자비 의 음성으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귀중성과 가치성을 발견하는 복을 얻게 됩니다.
나를 위하여 지불하신 십자가의 댓가,그 엄청난 희생을 받을 수 있 었던 자격이 있는 나! 신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나! 그 나를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 고 귀중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죄사함받은 내가 그렇게 소중한 것처럼 역시 그렇 게 사함받은 이웃의 형제들이 소중한 것입니다. 나를 진정 포옹할 줄 알고,나에게 관대하게 되며 나를 진정 소중하 게 여기는 자는 다른 사람도 진정 관대하게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해 지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제는 진정한 의미에서 무섭고 두려워함이 없는 것입니다. 시32:6-7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 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 로 나를 에우시리이다(셀라) 이제 그 어떠한 환난이 와도 진정한 의미에서 두렵지 않습니다. 죄책이 없는 고난, 저주의식이 없는 환란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홍수가,물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내 영혼에는 틈을 내어 들어오지 못합니다. 미치지 못하리라. 왜요 구속받은 십자가의 피로 방수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가난과 부의 문제도 아니고,진실이 없고,의 가 없기 때문입니다. (중풍병자의 문제-사실은 죄의 문제였습니다.)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죄의 문제입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면 내 인생의 침상을 듣고 분연히 일어나 걸어 갈 수 있는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결론) 톨스토이는 말하기를,' 하나님앞에서는 높은 자나 낮은 자나, 큰 자나 작은 자의 차이가 없고, 오직 곧은 것과 굽은 것이 있을 따름이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앞에는 진정 죄의 사하심을 받은 인생과 가리움을 받지 못한 불의한 인생만이 있는 것입니다.
(예)어거스틴-이 시편 32편을 벽에 정서해서 붙여두고 늘 소리내어 읽으며 회개하는 삶을 살므로 성자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시32:1-2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 다 5절/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 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 을 사하셨나이다(셀라)
2월 3일자 한국일보의 전면에 보니까,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가린 대학입시 부정을 일으킨 사람들의 사진이 실려 있었습니다. 타이틀이 재미있습니다. "얼굴감춘 부정"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손으로 얼굴을 가릴 수는 있겠지만,죄는 가릴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죄자체를 가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생각하겠지요 즉,죄를 용서받을 수가 있고 완전히 없던 것으로 다시 돌아가 새출 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32:1-2에 보니까 똑같은 심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 다 어차피 인생들에게는 크고 작은 죄가 있는데, 죄의 가리움을 받고 용서를 받으며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정죄를 받지 않는 자가 있다면 정말로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정말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 일이나 두려운 일의 뿌리에는 죄와 그로 인한 죄책이 있기 마련입니다.
(예)저는 마음 아프고 슬픈 것이 저의 어머님이 돌아가신 것에 있습니다. 돌아가셨다는 것,보고 싶고 또한 내 모습을 보이고 싶을 때 계시지 않는 다는 슬픔보다도 저를 더 괴롭히는 것은 살아 계실 때 잘 순종과 효도하지 못했고,너무나 마음아프게 거역했을 때가 많았다고 하는 죄책감때문인 것입니다. 특별히 죄에 대하여 민감할 줄 알고,죄를 아파할 줄 아는 사람에게 있어서 죄의 문제는 정말로 심각한 것이지요.
(예)어떤 교사는 제자들 몇대 때려서 상처된 것의 죄책감 때문에 자 살을 했고,그 외아들이 얼마전에 또 떨어져서 자살한 것이 아니겠 습니까 문제는 자살로서 해결할려고 했던 것은 잘못이지만 죄에 대하여 아 파하고 심각히 여기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다음 죄를 방지하고 예방하며 그를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 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죄의 용서함을 받지 못했을 때의 시편기자즉, 다윗의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3-4절에 보시면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 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 바로 이런 상태에 있다면 죄의 가리움을 받고,정죄를 받지 않는 것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성경 66권을 다 읽어 보고 깊이 상고해 보면,가난 하고 부하고,병들고 건강하며,잘 살고 못살고,오래 살고 짧게 살고 하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깊은 관심이 없습니다. 성경의 주제는 언제나 우리가 좋아 하든 하지 않든,깊이 느끼든,못 느끼든, 죄의 문제가 촛점이 되고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불행한 이유가 사실은 죄때문이고, 다시 진정 행복해 질 수 있는 길 도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첫번째의 문제는 모든 죄가 다 하나님관계에서 해결되어야 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건에서 죄를 짖고 사람관계에서 죄를 짖는 것이지만 궁극적 으로는 이것이 하나님관계에서 죄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다 칭찬을 하고, 옳게 여김을 받는다고 해도 내 양심 이 하나님앞에서 옳지 안음을 말한다고 하면 이것도 죄인 것입니다. 다윗은 말하기를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는다고 했고, 토설치 않을 때에 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앞에서 해결하지 못할 때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간음죄를 짖고,그 남편을 계략을 써서 전쟁터에 죽게 한 이 모든 것을 말할 때, 시51: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 다 바른 회개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앞에서 시작되고 하나님께 돌아갈 때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적으로말해서, 죄를 뉘우치고,반성하고,후회하고,깊이 고민하고,애통해 하는 것을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죄를 갚기 위하여 선을 행하고,어떤 공로를 행해야 속죄가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않되면 줄에 목을 메거나 빌딩에서 뛰어 내리는 죽음으로 속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죄의 가리움을 받을 수 있는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예)탕자의 사건/ 후회할 수 있고,애통해 할 수 있으며, 오히려 밖 에서 죽음으로 속죄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중요한 것은 이에 스스로 돌이커 아버지에게로 가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의 의미는 내 영혼이 가던 길을 돌이켜서 하나님의 품으 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이는 참된 회개와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단순히 어떤 회한이나 후회 가지고는 않되는 것입니다. 특히 2절에서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는데, 마음에 간사가 없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환경을 원망함이 없이 순수하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세를 말합니다.
(예) 다윗-밧세바를 원망하거나 책망하고 있지 않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2.항상 참회는 십자가 중심의 사건으로 이루어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2에서 보면, 허물의 사함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여기 사함받는다고 하는 것은 구약시절의 짐승의 피로 제사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예)이스라엘-7월 10일 속죄일입니다. 먼저 대제사장이 자신과 가족을 위해 수송아지를 바치고, 다음 온 백성을 위해 염소로 속죄제를 바쳤습니다. 이것은 역시 십자가에서 우리 주님이 대속의 피를 흘릴 사건에 대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라고 했는데,여기 가리움을 받는다는 것도 십자가의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아담의 범죄-무화관나무잎-짐승의 옷을 잡아서 역시 수치스러움 을 가려 주심-짐승이 죽는 사건-곧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계7장에 하늘나라 성도들이 흰옷 예복을 입고 주님을 찬양하는 내용 이 나오고 있는데, 이것역시,성경에 보면 어린양의 피로 빨은 하얀옷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수치를 가려주는 하얀 옷, 이것이 바로 어린양의 피로 우리의 죄를 가려주신 십자가의 사건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가려주고 정죄치 아니하는 사랑이 십자가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 우리의 죄를 내어 놓는 것이 참된 회개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 진정돌아가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른 관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진노의 하나님,두려움의 하나님에서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으로 만나 게 됩니다. 지난 날의 그의 음성은 저주였고 심판이었으나,이제는 구원과 자비 의 음성으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귀중성과 가치성을 발견하는 복을 얻게 됩니다.
나를 위하여 지불하신 십자가의 댓가,그 엄청난 희생을 받을 수 있 었던 자격이 있는 나! 신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나! 그 나를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 고 귀중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죄사함받은 내가 그렇게 소중한 것처럼 역시 그렇 게 사함받은 이웃의 형제들이 소중한 것입니다. 나를 진정 포옹할 줄 알고,나에게 관대하게 되며 나를 진정 소중하 게 여기는 자는 다른 사람도 진정 관대하게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해 지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제는 진정한 의미에서 무섭고 두려워함이 없는 것입니다. 시32:6-7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 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 로 나를 에우시리이다(셀라) 이제 그 어떠한 환난이 와도 진정한 의미에서 두렵지 않습니다. 죄책이 없는 고난, 저주의식이 없는 환란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홍수가,물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내 영혼에는 틈을 내어 들어오지 못합니다. 미치지 못하리라. 왜요 구속받은 십자가의 피로 방수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가난과 부의 문제도 아니고,진실이 없고,의 가 없기 때문입니다. (중풍병자의 문제-사실은 죄의 문제였습니다.)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죄의 문제입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면 내 인생의 침상을 듣고 분연히 일어나 걸어 갈 수 있는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결론) 톨스토이는 말하기를,' 하나님앞에서는 높은 자나 낮은 자나, 큰 자나 작은 자의 차이가 없고, 오직 곧은 것과 굽은 것이 있을 따름이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앞에는 진정 죄의 사하심을 받은 인생과 가리움을 받지 못한 불의한 인생만이 있는 것입니다.
(예)어거스틴-이 시편 32편을 벽에 정서해서 붙여두고 늘 소리내어 읽으며 회개하는 삶을 살므로 성자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시32:1-2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 다 5절/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 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 을 사하셨나이다(셀라)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