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의 음침한 꼴짜기를 다닐 (시23:4-6)
본문
인간의 삶이란 누구에게나 고통과 고난이 있습니다. 태어나 나이들면서 늙고 병들 어 마침내 죽고 마는 이 근원적인 괴로움이 항상 인간을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크고 작은 시련과 고난을 체험합니다. 그러나, 신자에게 있어서는 이와같은 고난으로 절망케 되거나 망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맞이하는 태도에 따라 그 고난이 인간을 사망의 길로 인도하기도 하 고 위대한 승리의 길로 이끌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위대한 신앙의 인물의 신앙고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본문 24 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다윗은 숱한 역경과 고난들을 다 극복하고 위대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사람 다윗으로서의 신앙의 간증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빛을 비추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다윗의 신앙 고백을 상고해 봄으로 새로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1.고난을 당할 때의 유익
1)고난은 자아를 깨뜨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보면 종종 음침한 꼴짜기를 지나는 때가 있습니다. 큰 사 망의 꼴짜기를 지날 때도 있고 작은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이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야만 할까요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반 역한 아담의 후예로서 죄악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속에는 인간적인 고집이 남아 있으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르려는 정과 욕 심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우리들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곧바로 신령한 세계로 인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신령한 축복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전에 반드 시 우리들의 잘못 굳어 있는 자아부터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이 자아가 깨어진 사람 만이 신령한 세계에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평안할 때에는 이 자아가 깨뜨려 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망의 음 침한 꼴짜기에서 고통을 당할 때에야 비로소 자아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때문에 사망의 꼴짜기는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광명으로 빛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생명을 향해 통과해야 하는 터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원받은 백성들을 은혜의 길로 인도하시기 전에 이 사망의 음침한 꼴짜기를 통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 과정에서 자아가 얼마 나 깨어지느냐에 따라 성도가 얼마나 신령한 은혜를 받아 누리느냐 하는 것이 결 정되어 집니다. 이런 이유에서 다윗은 이 사망의 음침한 꼴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2)고난은 하나님의 능력의 막대기와 인도하심의 지팡이를 깨닫게 해줍니다. 다윗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자신을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지팡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미하며, 막대기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고난 당할 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능력을 잊지 않겠 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배가 고플 때에 밥 생각이 간절해지며, 병들었을때 건강을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고난의 음참한 꼴짜기를 지날 때에는 전적으 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능력을 의지하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마침내 하나님 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서야 비로소 더 깊은 신앙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3)고난에 대한 사도 바울의 고백(고후4:7-9) 사도바울은 고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후4:7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 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 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종종 인간의 총명과 지혜를 의지합니다. 그러나 사망의 음침한 꼴짜기에서 우리는 깨어질 질그릇에 불과하며 능력의 심히 큰 것이 우리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 있음을 절감하게 됩니다.
(1)성도는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고후4:8). 고후4:8절에 계속 말하기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 하며…"라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문제와 고통으로 우겨 싸이는 체험을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럴 때에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음으로 그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찾고 의지함으로 사방으로 우겨쌈 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 것입니다.
(2)성도는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치 아니합니다(고후4:8). 또한 바울은 이어서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고후4:8)라 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인간의 지혜와 총명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의 막다른 골목에 다달으면 답 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럴 때에 세상 사람들은 그만 그대로 주저 앉아버리고 말지 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함으로 그 답답함을 극복하고 승 리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백하기를 답답한 일이 오히려 하나님의 지혜를 체험하는 놀라운 동기가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성도는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습니다(고후4:9). 또한 바울은 고후4:9절에서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라고 고 백합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교회나 성도가 핍박을 받았을 때에 교회는 더욱 더 커지고 성도들 의 믿음은 더욱 담대해졌습니다. 사람이란 등 따습고 배부르면 나태해지기 마련입니다. 성도들고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이내 나태함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그 러다가도 핍박을 받으면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됩니다. 그래서 핍박을 받는 성도는 더 기도하게 되고, 더 하나님을 가까지서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 어서 핍박이란 더 깊은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으로 나아가는 관문입니다.
(4)성도는 꺼구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합니다(고후4:9). 계속하여 고후4:9절 하반절에 "꺼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 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성도는 결코 망하지 아니합니다. 세상의 많은 권세자 들이 주의 백성들을 망하게 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그들의 악한 도모는 모두 헛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기독교 역사 2천년 동안에 많은 권세 자들이 나타나 성도들을 꺼꾸러뜨리려고 시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도리어 자 신들이 꺼꾸러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교회는 오히려 불붙는데 기름을 끼얹은것과 같 이 뜨겁게 흥왕하고 열매를 맺어왔습니다. 어두움이 깊을수록 밤하늘의 별이 더욱 찬란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망의 꼴짜기가 깊을수록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성도들의 믿음이 빛나며 하나님의 영광이 더 높 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에게는 사망의 음침한 꼴짜기가 곧 절망의 환경 그 자체로 여겨지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인간의 헛된 지혜와 총명을 버리고 전지전능하 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체험하는 축복의 기 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종종 사망의 음침한 꼴짜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해서는 안됩니다. 만 일 우리가 사망의 꼴짜기에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며 부정적인 태도와 생각을 취한다면 우리는 그곳에서 파멸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와같은 사망의 꼴짜기를 통과할 때에 다윗처럼, 사도 바울처럼 그 고난이 변하여 내게 유익이 된다는 믿음을 갖고서 하나님께 도리어 감사함으로 인내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좋을 때에만 감사하 라는 말씀이 아니라, 괴롭고 힘든 어떠한 환경 앞에서도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참으로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지내온 과거를 돌아보십시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행복하고 좋았던 순간보다 시련의 순간, 사망의 음침한 꼴짜기를 지나던 그 때가 여러분의 삶을 성숙 시켜주고 발전시켜 주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는 사망의 음침한 꼴짜기가 오히려 하나님의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축복을 얻는 은총의 꼴짜기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들은 고난을 당할 때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여 스스로 무덤을 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하나님의 축복과 발전과 성공의 계기로 삼게 되시기를 주님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원수에 대한 다윗의 태도
1)원수에 대한 일반적 고찰 본문 5절에서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 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많은 원수들을 대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원수가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원수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원수는 이 사회에서, 단체에서, 이웃에서, 가정에서, 우리를 헐뜯고 쓰러뜨리려고 하는 무리들입니다. 때 로는 가까운 친구 중에서도 우리의 원수가 있습니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원수는 바로 악의 영인 마귀입니다. 마귀는 할 수 있으면 우리를 넘어뜨려 멸망의 길로 달려가게 만들려고 기회를 노리고 엎드려 있는 원수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원수를 만나면 위협을 느끼며 불안해 합니다. 그래서 원수를 제발 좀 안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가운데서는 우리가 원수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될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자신의 머리에 바르시 니 잔이 넘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2)다윗의 계시 우리는 이 다윗의 원수에 대한 태도와 고백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를 깨 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원수보다 강하게 하심으로써 원수로 하여금 스스로 무릎을 꿇게 하도록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롬12:19-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또한, 출14:14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 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의지하고 그의 역사하심을 간구하면 원수가 우리를 치러 왔다가는 그만 쇠잔하여져서 스스로 우리 앞에 무릎을 꿇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강하게 하실까요
(1)기름진 진수성찬을 베푸심으로 강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먼저 다윗은 주께서 내게 상을 베푸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상이란 진수성찬 을 의미합니다. 원수는 우리가 영양실조에 걸려 헐벗고 굶주린 채 멸망하기를 원하 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수성찬을 베푸셔서 우리를 원수보다 강하게 하심으로 우리로 승리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진수성찬을 통하여 힘을 얻으면 어떠한 원수라도 우리 앞에서 힘을 잃고야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롬12:20절에서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 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주의 백성에게는 원수를 맞는 것이 오히려 축복의 동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목전에서 우리에게 진수성찬을 베풀어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원수가 다가올 때에 우리는 원망하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원수 앞에서 하나님의 진리와 말씀의 신령한 진수성찬을 먹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원수보다 더 강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로써 더욱 더 영광을 돌리게 해주실 것을 감사합니다'라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2)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신다. 다윗은 또한 하나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기름을 부어주신다고 고백합니다. 기 름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특별히 사용하심으로 높이 고자 하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서 능력을 덧입혀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인이 원수를 맞을 때에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주심으로 원수보다 더 능력이 많고 지혜도 많고 권세도 많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3)원수 앞에 잔이 넘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원수가 다가오는 일로 통하여 오히려 우리에게 영적인 잔이 넘치게 되는 축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육신과 생활에 있어서도 내 잔이 넘 치게 되어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으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수가 오거 든 하나님을 찬미하시기 바랍니다. 원수를 저주하지 말고 오히려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원수 갚는것은 공으로우신 심판주이신 하나님께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이시고 친히 원수를 갚아 주실 것입니다.
3.평생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
1)선하신 하나님을 바라 보았습니다. 본문 6절에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 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다윗은 시37:25절에서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 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라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그의 일생을 돌이켜 볼 때에 발걸음 발걸음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인 도와 손길이 있었다는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의 평생에 선하심 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선하게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다윗과 같이 선하신 하나님을 담대하게 고백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2)인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죄를 짓 고 불순종한 일이 많았으나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사해 주시고 용납해 주셨다는 것을 고백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역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없이는 단 하루도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통해 우리를 용납해 주 시고 우리를 축복해 주셨음을 분명히 기억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3)영원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결론적으로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23:6)라고 고 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다윗은 이 땅의 삶은 잠시 잠깐이요 죽은 뒤에는 영원한 삶이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삶에 비하면 우리의 인생은 지극히 짧은 순간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는 날 우리는 영원한 우리의 집으로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 백성들은 이 땅의 부귀, 영화, 공명에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 땅에서 부귀, 영화, 공명을 얻으려고 갖은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여름에 바닷가에 해양 훈련을 온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고 서로 땅을 차지하기 위 하여 실랑이를 벌입니다. 서로 자기 땅이라고 우기다가 끝내는 멱살을 잡고 싸움까 지 합니다. 그러나, 조금 후에 선생님께서 호루라기를 불면서 모이라고 하니 아이들 그 시비하던 땅을 버려두고 일제 달려가 일렬로 모입니다. 선생님의 구령에 맞추어 아이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곳을 떠나가 버립니다. 파도가 한 번 밀려와서 그 쌓아 놓았던 모래성도, 금을 그어놓고 실랑이 하던 땅도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생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이제 곧 오실 주님께서 오실 것입니다. 날짜를 정하든 않든 주님은 주님의 때가 되면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것입니다. 그때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도 홀연히 변하여 하늘로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이 땅은 영원한 도성이 없습니다. 영원한 도성은 따로 있습니다. 주를 믿지 않는 사람은 영원한 멸망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있 을 것입니다. 이 때에 이 다윗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 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23:6)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 미련을 두지 마십시오. 영원한 도성을 바 라보시기 바랍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가지고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나라를 향하여 담대히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꼴짜기를 통과하면서, 극심한 고난을 당하면서, 원수들이 목 전에서 활개치는 것을 보면서, 죽음이 소리없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조금도 흔들 림이 없이 은혜와 능력의 주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큰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온갖 시련과 풍랑들을 이겼습니다. 다윗의 이 놀라운 확신과 믿음과 고백이 여러분들의 고백과 확신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
1.고난을 당할 때의 유익
1)고난은 자아를 깨뜨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보면 종종 음침한 꼴짜기를 지나는 때가 있습니다. 큰 사 망의 꼴짜기를 지날 때도 있고 작은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이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야만 할까요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반 역한 아담의 후예로서 죄악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속에는 인간적인 고집이 남아 있으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르려는 정과 욕 심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우리들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곧바로 신령한 세계로 인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신령한 축복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전에 반드 시 우리들의 잘못 굳어 있는 자아부터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이 자아가 깨어진 사람 만이 신령한 세계에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평안할 때에는 이 자아가 깨뜨려 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망의 음 침한 꼴짜기에서 고통을 당할 때에야 비로소 자아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때문에 사망의 꼴짜기는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광명으로 빛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생명을 향해 통과해야 하는 터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원받은 백성들을 은혜의 길로 인도하시기 전에 이 사망의 음침한 꼴짜기를 통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 과정에서 자아가 얼마 나 깨어지느냐에 따라 성도가 얼마나 신령한 은혜를 받아 누리느냐 하는 것이 결 정되어 집니다. 이런 이유에서 다윗은 이 사망의 음침한 꼴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2)고난은 하나님의 능력의 막대기와 인도하심의 지팡이를 깨닫게 해줍니다. 다윗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자신을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지팡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미하며, 막대기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고난 당할 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능력을 잊지 않겠 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배가 고플 때에 밥 생각이 간절해지며, 병들었을때 건강을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고난의 음참한 꼴짜기를 지날 때에는 전적으 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능력을 의지하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마침내 하나님 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서야 비로소 더 깊은 신앙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3)고난에 대한 사도 바울의 고백(고후4:7-9) 사도바울은 고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후4:7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 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 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종종 인간의 총명과 지혜를 의지합니다. 그러나 사망의 음침한 꼴짜기에서 우리는 깨어질 질그릇에 불과하며 능력의 심히 큰 것이 우리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 있음을 절감하게 됩니다.
(1)성도는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고후4:8). 고후4:8절에 계속 말하기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 하며…"라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문제와 고통으로 우겨 싸이는 체험을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럴 때에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음으로 그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찾고 의지함으로 사방으로 우겨쌈 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 것입니다.
(2)성도는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치 아니합니다(고후4:8). 또한 바울은 이어서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고후4:8)라 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인간의 지혜와 총명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의 막다른 골목에 다달으면 답 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럴 때에 세상 사람들은 그만 그대로 주저 앉아버리고 말지 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함으로 그 답답함을 극복하고 승 리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백하기를 답답한 일이 오히려 하나님의 지혜를 체험하는 놀라운 동기가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성도는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습니다(고후4:9). 또한 바울은 고후4:9절에서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라고 고 백합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교회나 성도가 핍박을 받았을 때에 교회는 더욱 더 커지고 성도들 의 믿음은 더욱 담대해졌습니다. 사람이란 등 따습고 배부르면 나태해지기 마련입니다. 성도들고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이내 나태함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그 러다가도 핍박을 받으면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됩니다. 그래서 핍박을 받는 성도는 더 기도하게 되고, 더 하나님을 가까지서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 어서 핍박이란 더 깊은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으로 나아가는 관문입니다.
(4)성도는 꺼구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합니다(고후4:9). 계속하여 고후4:9절 하반절에 "꺼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 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성도는 결코 망하지 아니합니다. 세상의 많은 권세자 들이 주의 백성들을 망하게 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그들의 악한 도모는 모두 헛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기독교 역사 2천년 동안에 많은 권세 자들이 나타나 성도들을 꺼꾸러뜨리려고 시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도리어 자 신들이 꺼꾸러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교회는 오히려 불붙는데 기름을 끼얹은것과 같 이 뜨겁게 흥왕하고 열매를 맺어왔습니다. 어두움이 깊을수록 밤하늘의 별이 더욱 찬란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망의 꼴짜기가 깊을수록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성도들의 믿음이 빛나며 하나님의 영광이 더 높 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에게는 사망의 음침한 꼴짜기가 곧 절망의 환경 그 자체로 여겨지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인간의 헛된 지혜와 총명을 버리고 전지전능하 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체험하는 축복의 기 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종종 사망의 음침한 꼴짜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해서는 안됩니다. 만 일 우리가 사망의 꼴짜기에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며 부정적인 태도와 생각을 취한다면 우리는 그곳에서 파멸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와같은 사망의 꼴짜기를 통과할 때에 다윗처럼, 사도 바울처럼 그 고난이 변하여 내게 유익이 된다는 믿음을 갖고서 하나님께 도리어 감사함으로 인내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좋을 때에만 감사하 라는 말씀이 아니라, 괴롭고 힘든 어떠한 환경 앞에서도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참으로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지내온 과거를 돌아보십시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행복하고 좋았던 순간보다 시련의 순간, 사망의 음침한 꼴짜기를 지나던 그 때가 여러분의 삶을 성숙 시켜주고 발전시켜 주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는 사망의 음침한 꼴짜기가 오히려 하나님의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축복을 얻는 은총의 꼴짜기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들은 고난을 당할 때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여 스스로 무덤을 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하나님의 축복과 발전과 성공의 계기로 삼게 되시기를 주님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원수에 대한 다윗의 태도
1)원수에 대한 일반적 고찰 본문 5절에서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 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많은 원수들을 대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원수가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원수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원수는 이 사회에서, 단체에서, 이웃에서, 가정에서, 우리를 헐뜯고 쓰러뜨리려고 하는 무리들입니다. 때 로는 가까운 친구 중에서도 우리의 원수가 있습니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원수는 바로 악의 영인 마귀입니다. 마귀는 할 수 있으면 우리를 넘어뜨려 멸망의 길로 달려가게 만들려고 기회를 노리고 엎드려 있는 원수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원수를 만나면 위협을 느끼며 불안해 합니다. 그래서 원수를 제발 좀 안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가운데서는 우리가 원수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될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자신의 머리에 바르시 니 잔이 넘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2)다윗의 계시 우리는 이 다윗의 원수에 대한 태도와 고백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를 깨 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원수보다 강하게 하심으로써 원수로 하여금 스스로 무릎을 꿇게 하도록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롬12:19-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또한, 출14:14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 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의지하고 그의 역사하심을 간구하면 원수가 우리를 치러 왔다가는 그만 쇠잔하여져서 스스로 우리 앞에 무릎을 꿇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강하게 하실까요
(1)기름진 진수성찬을 베푸심으로 강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먼저 다윗은 주께서 내게 상을 베푸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상이란 진수성찬 을 의미합니다. 원수는 우리가 영양실조에 걸려 헐벗고 굶주린 채 멸망하기를 원하 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수성찬을 베푸셔서 우리를 원수보다 강하게 하심으로 우리로 승리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진수성찬을 통하여 힘을 얻으면 어떠한 원수라도 우리 앞에서 힘을 잃고야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롬12:20절에서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 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주의 백성에게는 원수를 맞는 것이 오히려 축복의 동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목전에서 우리에게 진수성찬을 베풀어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원수가 다가올 때에 우리는 원망하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원수 앞에서 하나님의 진리와 말씀의 신령한 진수성찬을 먹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원수보다 더 강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로써 더욱 더 영광을 돌리게 해주실 것을 감사합니다'라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2)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신다. 다윗은 또한 하나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기름을 부어주신다고 고백합니다. 기 름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특별히 사용하심으로 높이 고자 하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서 능력을 덧입혀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인이 원수를 맞을 때에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주심으로 원수보다 더 능력이 많고 지혜도 많고 권세도 많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3)원수 앞에 잔이 넘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원수가 다가오는 일로 통하여 오히려 우리에게 영적인 잔이 넘치게 되는 축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육신과 생활에 있어서도 내 잔이 넘 치게 되어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으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수가 오거 든 하나님을 찬미하시기 바랍니다. 원수를 저주하지 말고 오히려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원수 갚는것은 공으로우신 심판주이신 하나님께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이시고 친히 원수를 갚아 주실 것입니다.
3.평생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
1)선하신 하나님을 바라 보았습니다. 본문 6절에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 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다윗은 시37:25절에서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 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라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그의 일생을 돌이켜 볼 때에 발걸음 발걸음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인 도와 손길이 있었다는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의 평생에 선하심 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선하게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다윗과 같이 선하신 하나님을 담대하게 고백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2)인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죄를 짓 고 불순종한 일이 많았으나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사해 주시고 용납해 주셨다는 것을 고백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역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없이는 단 하루도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통해 우리를 용납해 주 시고 우리를 축복해 주셨음을 분명히 기억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3)영원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결론적으로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23:6)라고 고 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다윗은 이 땅의 삶은 잠시 잠깐이요 죽은 뒤에는 영원한 삶이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삶에 비하면 우리의 인생은 지극히 짧은 순간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는 날 우리는 영원한 우리의 집으로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 백성들은 이 땅의 부귀, 영화, 공명에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 땅에서 부귀, 영화, 공명을 얻으려고 갖은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여름에 바닷가에 해양 훈련을 온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고 서로 땅을 차지하기 위 하여 실랑이를 벌입니다. 서로 자기 땅이라고 우기다가 끝내는 멱살을 잡고 싸움까 지 합니다. 그러나, 조금 후에 선생님께서 호루라기를 불면서 모이라고 하니 아이들 그 시비하던 땅을 버려두고 일제 달려가 일렬로 모입니다. 선생님의 구령에 맞추어 아이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곳을 떠나가 버립니다. 파도가 한 번 밀려와서 그 쌓아 놓았던 모래성도, 금을 그어놓고 실랑이 하던 땅도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생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이제 곧 오실 주님께서 오실 것입니다. 날짜를 정하든 않든 주님은 주님의 때가 되면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것입니다. 그때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도 홀연히 변하여 하늘로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이 땅은 영원한 도성이 없습니다. 영원한 도성은 따로 있습니다. 주를 믿지 않는 사람은 영원한 멸망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있 을 것입니다. 이 때에 이 다윗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 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23:6)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 미련을 두지 마십시오. 영원한 도성을 바 라보시기 바랍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가지고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나라를 향하여 담대히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꼴짜기를 통과하면서, 극심한 고난을 당하면서, 원수들이 목 전에서 활개치는 것을 보면서, 죽음이 소리없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조금도 흔들 림이 없이 은혜와 능력의 주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큰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온갖 시련과 풍랑들을 이겼습니다. 다윗의 이 놀라운 확신과 믿음과 고백이 여러분들의 고백과 확신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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