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고민을 하자 (시25:1-22)
본문
오늘 말씀 “(시25:1)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축복은 오직 한 곳에서 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혼의 축복이 우리의 모든 축복입니다. 영혼의 복을 받지 않고 다른 복을 구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영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모두 복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살았던 아브라함은 잘되었지만 세상적으로 잘살려고 했던 롯은 잘못되었습니다. 영적인 것을 구하는 사람만이 복을 받습니다.
1. 주님의 사랑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고민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영혼에 대한 염려, 즉 영적인 고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영혼에 대해서 고민하고 근심해야 잘됩니다. 육을 위한 염려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목마르기 때문에 항상 괴로워하고 애쓰는 삶이 거룩한 성도의 삶입니다. 이런 삶은 승리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되는 길은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다윗은 주님을 우러러보았습니다. 다윗은 왕입니다. 더 잘살고 싶은 마음도 있을 수 있고 더 편하게 살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세상의 것을 구하지 않았고, 그런 것 때문에 고민하지도 않았고, 항상 영적인 것만 찾았습니다. 은혜를 받은 성도들은 모든 육의 염려는 주님께 맡기고 영적인 염려만 해야 됩니다. 우리는 신령한 염려는 해야 됩니다. 기도하는 염려, 주님을 사랑하는 염려, 믿음의 염려는 해야 됩니다. 그러나 잘사는 염려는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채워주십니다. 건강 문제, 사업 문제, 자녀 문제는 염려하지 말고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맡겨야 할 것은 안 맡기고 걱정하면서, 염려해야 될 영적인 염려를 하지 않는다면 신앙생활이 잘못된 것입니다. 육신의 염려만 지나치게 많이 하고 영적인 염려를 안하면 신앙이 잠들기 쉽습니다. 세상 염려는 다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2. 원수들로부터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고민해야 합니다. “(시25: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어릴 때는 모르지만 은혜를 받아 영적으로 장성하면 대적이 많다는 것을 때닫게 됩니다. 1편에서부터 보면 대적으로 인하여 다윗이 고민을 하는 것이 나옵니다. 대적이 사자와 같이 자기를 물어뜯을까봐 얼마나 두려워하고 염려하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대적이 참 많습니다. 우리의 대적은 우리가 영적으로 잠들고 약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마귀는 때를 놓치지 않고 우리를 넘어 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한번 잡히면 온몸을 상하게 됩니다. 마귀는 너무너무 잔인합니다. 우리 영혼은 항상 깨어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주님을 바라보아야 일생 동안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권력이나 물질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항상 깨어 있어야 됩니다. 우리의 영혼이 항상 깨어서 주님을 사랑할 때 절대로 어려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상에는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것으로부터 여러분을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본문 “(시25:13) 저의 영혼은 평안히 거하고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시25:14)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시25:15)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함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 영혼이 항상 주를 앙몰하고 주를 사랑해야 됩니다.
3. 시험에 들지 않도록 고민해야 합니다. 본문 “(시25:16)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롭사오니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왕이었는데도 외롭고 괴롭다고 고백했습니다. 영적으로 살아 있는 성도는 늘 이런 고민을 하게 됩니다. 연락하고 즐기며 육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고민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모하는 사람은 항상 외롭고 괴롭습니다. 늘 영적인 고민을 하기 때문에 주님 아에서 눈물이 그치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모하고 사랑하면 시험도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고 멀리하시는 것을 염려해야지 다른 염려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평생 동안 영적인 염려를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시25:17)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곤난에서 끌어 내소서 ”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은 다 신령한 근심, 영적인 근심입니다. “(시25:18)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시25:19) 내 원수를 보소서 저희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함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원수는 집안식구였습니다. 장인 되는 사울도 그를 죽이려고 했고 또 아들 압살롬까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가장 가까운 주변에도 우리의 대적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면 아무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역사도 보십시오. 대체로 가까운 사람들이 배신을 합니다. 국회의원 선거 때 보면 가까운 사람들이 상대방의 과거를 다 폭로해 버립니다. 윗사람은 내가 너를 길렀는데 그럴 수 있느냐고 섭섭해합니다. 또 아랫사람은 내가 당신에게 충성했는데 그럴 수 있느냐고 원망합니다. 다윗은 원수가 많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살아간다면 영적으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주님 외에는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해야만 영적으로 살아 있는 건강한 성도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한 분들은 세상적인 연줄을 통하여 도움을 얻으려 합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 나오는 시드기야, 여로보암, 르호보암, 아합, 므세같이 악한 왕들은 언제나 사람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집트와 친교를 맺고, 사돈을 맺어 손을 잡습니다. 요사이 정치가와 재벌이 정략적으로 사돈을 맺듯이 동맹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승리하는 왕들은 그런 것을 끊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하나님 외에 다른 누구를 의지했겠습니까 아무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승리한 왕들은 하나같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모세도 하나님만 의지하니까 지팡이 하나만을 잡고 200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남유다도 처음에는 앗수르와 동맹 관계였습니다. 앗수르를 섬기다가 히스기야 왕이 그 관계를 끊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나는 여호와를 의지하겠다”고 하니까 앗수르 왕 산헤립이 히스기야를 비웃고 조롱하고 멸시했습니다. 결국에는 전쟁이 일어나 앗수르 군사 18만 5천명이 예루살렘을 향해 처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무것도 의지할 곳 없는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이 보낸 협박 문서를 하나님 앞에 펴 놓고 “(왕하19:16)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신 하나님을 훼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앗수르 군사를 하루아침에 멸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승리하고자 하는 성도들은 사람에게 빼앗기는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야 됩니다. 사람에게 투자해 보아야 결국 남는 것이 없습니다. 다 헛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드리면 하나도 헛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 든든한 믿음의 줄을 붙잡고 굳건한 반석 위에 서야 됩니다. 5월 단오날이 되면 시골에서는 그네를 뜁니다. 그네를 만들 때는 동민들이 1주일 내내 밧줄을 엮어 굵게 그넷줄을 만듭니다. 생명을 맡기고 뛰는 것이기 때문에 줄은 튼튼하게 엮어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줄도 굵게 해야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네와 같습니다. 내 생명을 맡기고 뛰는 것이니 굵게 엮어야 됩니다.
4. 죄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고민해야 합니다. 본문 “(시25:20) 내 영혼을 지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치 말게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재산을 지키고, 건강을 지키고, 자녀를 지키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엇을 지켜야 합니까 내 영혼을 지켜야 됩니다. 그래서 “내 영혼을 구원해 주옵소서.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피를 당치 않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십니다. “(롬10: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고 했습니다. 죄를 지으면 이 세상에서 수치를 당합니다. 신문에 나오는 것만 수치가 아니라, 신문에 안 나와도 잘못하면 수치입니다. 자녀들이 무슨 사고라도 저리르면 부모가 얼굴을 못 들고 다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 영혼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믿으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본문 “(시25:21)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라고 했습니다. 내 영혼과 내 심령이 다른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새벽기도에는 누가 나옵니까 주님을 바라보는 심령이 나오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 영혼에 복을 내려주십니다. 우리 영혼이 복을 받으면 삶이 형통해집니다. 영혼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같이 강건하면 다른 염려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새벽기도에 안 나오면 잠을 2시간쯤 더 잘 수 있지만 10시간을 마귀에게 시달립니다. 하루 종일 시험과 환난이 따릅니다. 그러나 새벽에 기도하면 육체는 조금 피곤하지만 가정도, 기업도 하루 종일 성령님께서 지켜주십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면 영적인 복만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삶이 형통하고, 여러분의 심령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같이 잘될 줄 믿습니다.
1. 주님의 사랑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고민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영혼에 대한 염려, 즉 영적인 고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영혼에 대해서 고민하고 근심해야 잘됩니다. 육을 위한 염려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목마르기 때문에 항상 괴로워하고 애쓰는 삶이 거룩한 성도의 삶입니다. 이런 삶은 승리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되는 길은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다윗은 주님을 우러러보았습니다. 다윗은 왕입니다. 더 잘살고 싶은 마음도 있을 수 있고 더 편하게 살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세상의 것을 구하지 않았고, 그런 것 때문에 고민하지도 않았고, 항상 영적인 것만 찾았습니다. 은혜를 받은 성도들은 모든 육의 염려는 주님께 맡기고 영적인 염려만 해야 됩니다. 우리는 신령한 염려는 해야 됩니다. 기도하는 염려, 주님을 사랑하는 염려, 믿음의 염려는 해야 됩니다. 그러나 잘사는 염려는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채워주십니다. 건강 문제, 사업 문제, 자녀 문제는 염려하지 말고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맡겨야 할 것은 안 맡기고 걱정하면서, 염려해야 될 영적인 염려를 하지 않는다면 신앙생활이 잘못된 것입니다. 육신의 염려만 지나치게 많이 하고 영적인 염려를 안하면 신앙이 잠들기 쉽습니다. 세상 염려는 다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2. 원수들로부터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고민해야 합니다. “(시25: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어릴 때는 모르지만 은혜를 받아 영적으로 장성하면 대적이 많다는 것을 때닫게 됩니다. 1편에서부터 보면 대적으로 인하여 다윗이 고민을 하는 것이 나옵니다. 대적이 사자와 같이 자기를 물어뜯을까봐 얼마나 두려워하고 염려하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대적이 참 많습니다. 우리의 대적은 우리가 영적으로 잠들고 약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마귀는 때를 놓치지 않고 우리를 넘어 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한번 잡히면 온몸을 상하게 됩니다. 마귀는 너무너무 잔인합니다. 우리 영혼은 항상 깨어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주님을 바라보아야 일생 동안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권력이나 물질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항상 깨어 있어야 됩니다. 우리의 영혼이 항상 깨어서 주님을 사랑할 때 절대로 어려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상에는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것으로부터 여러분을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본문 “(시25:13) 저의 영혼은 평안히 거하고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시25:14)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시25:15)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함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 영혼이 항상 주를 앙몰하고 주를 사랑해야 됩니다.
3. 시험에 들지 않도록 고민해야 합니다. 본문 “(시25:16)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롭사오니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왕이었는데도 외롭고 괴롭다고 고백했습니다. 영적으로 살아 있는 성도는 늘 이런 고민을 하게 됩니다. 연락하고 즐기며 육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고민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모하는 사람은 항상 외롭고 괴롭습니다. 늘 영적인 고민을 하기 때문에 주님 아에서 눈물이 그치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모하고 사랑하면 시험도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고 멀리하시는 것을 염려해야지 다른 염려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평생 동안 영적인 염려를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시25:17)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곤난에서 끌어 내소서 ”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은 다 신령한 근심, 영적인 근심입니다. “(시25:18)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시25:19) 내 원수를 보소서 저희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함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원수는 집안식구였습니다. 장인 되는 사울도 그를 죽이려고 했고 또 아들 압살롬까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가장 가까운 주변에도 우리의 대적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면 아무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역사도 보십시오. 대체로 가까운 사람들이 배신을 합니다. 국회의원 선거 때 보면 가까운 사람들이 상대방의 과거를 다 폭로해 버립니다. 윗사람은 내가 너를 길렀는데 그럴 수 있느냐고 섭섭해합니다. 또 아랫사람은 내가 당신에게 충성했는데 그럴 수 있느냐고 원망합니다. 다윗은 원수가 많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살아간다면 영적으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주님 외에는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해야만 영적으로 살아 있는 건강한 성도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한 분들은 세상적인 연줄을 통하여 도움을 얻으려 합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 나오는 시드기야, 여로보암, 르호보암, 아합, 므세같이 악한 왕들은 언제나 사람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집트와 친교를 맺고, 사돈을 맺어 손을 잡습니다. 요사이 정치가와 재벌이 정략적으로 사돈을 맺듯이 동맹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승리하는 왕들은 그런 것을 끊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하나님 외에 다른 누구를 의지했겠습니까 아무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승리한 왕들은 하나같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모세도 하나님만 의지하니까 지팡이 하나만을 잡고 200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남유다도 처음에는 앗수르와 동맹 관계였습니다. 앗수르를 섬기다가 히스기야 왕이 그 관계를 끊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나는 여호와를 의지하겠다”고 하니까 앗수르 왕 산헤립이 히스기야를 비웃고 조롱하고 멸시했습니다. 결국에는 전쟁이 일어나 앗수르 군사 18만 5천명이 예루살렘을 향해 처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무것도 의지할 곳 없는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이 보낸 협박 문서를 하나님 앞에 펴 놓고 “(왕하19:16)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신 하나님을 훼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앗수르 군사를 하루아침에 멸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승리하고자 하는 성도들은 사람에게 빼앗기는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야 됩니다. 사람에게 투자해 보아야 결국 남는 것이 없습니다. 다 헛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드리면 하나도 헛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 든든한 믿음의 줄을 붙잡고 굳건한 반석 위에 서야 됩니다. 5월 단오날이 되면 시골에서는 그네를 뜁니다. 그네를 만들 때는 동민들이 1주일 내내 밧줄을 엮어 굵게 그넷줄을 만듭니다. 생명을 맡기고 뛰는 것이기 때문에 줄은 튼튼하게 엮어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줄도 굵게 해야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네와 같습니다. 내 생명을 맡기고 뛰는 것이니 굵게 엮어야 됩니다.
4. 죄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고민해야 합니다. 본문 “(시25:20) 내 영혼을 지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치 말게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재산을 지키고, 건강을 지키고, 자녀를 지키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엇을 지켜야 합니까 내 영혼을 지켜야 됩니다. 그래서 “내 영혼을 구원해 주옵소서.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피를 당치 않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십니다. “(롬10: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고 했습니다. 죄를 지으면 이 세상에서 수치를 당합니다. 신문에 나오는 것만 수치가 아니라, 신문에 안 나와도 잘못하면 수치입니다. 자녀들이 무슨 사고라도 저리르면 부모가 얼굴을 못 들고 다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 영혼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믿으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본문 “(시25:21)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라고 했습니다. 내 영혼과 내 심령이 다른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새벽기도에는 누가 나옵니까 주님을 바라보는 심령이 나오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 영혼에 복을 내려주십니다. 우리 영혼이 복을 받으면 삶이 형통해집니다. 영혼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같이 강건하면 다른 염려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새벽기도에 안 나오면 잠을 2시간쯤 더 잘 수 있지만 10시간을 마귀에게 시달립니다. 하루 종일 시험과 환난이 따릅니다. 그러나 새벽에 기도하면 육체는 조금 피곤하지만 가정도, 기업도 하루 종일 성령님께서 지켜주십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면 영적인 복만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삶이 형통하고, 여러분의 심령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같이 잘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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