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보장하시는 하나님 (시23:1-6,빌4:4-9)
본문
시편 23편의 마지막 절인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지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 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은총을 열거하 고난 후 여기서는 그것이 자기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속되리라는 확 신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아마도 이 시편을 나이 지긋하여 지은 것 같습니다. 그가 지나온 생애를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인도하 여 주셨는지를 하나 하나 생각해보니 참으로 놀라운 은총이었음을 깨닫고, 감사한 마음으로 이 시편을 노래하였을 것입니다. 그의 생애 가운데는 푸 른 초장 쉴만한 물가도 있었지만,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있었고, 수 많은 원수들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를 보호하여 주 셨던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에게 주어진 생애의 잔이 하나님의 풍성한 은 혜로 넘치고 있음을 이미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장사군이 연말에 결산을 내보고 풍성한 흑자가 있음을 알고 만족해 하는 것과 흡사하다 하 겠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말하는 흑자는 결코 물질적인 것이나 외적 조건 이 아닙니다. 내적인 것이요, 영적인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아니고서는 사망의 골짜기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를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다윗은 왕이 되었으니 그렇게 노래할만도 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왕의 자리란 그렇게 행복한 자리만은 아님이 분명합니다. 다 윗만해도 자기 아들 압살롬의 반역에 의해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 도망을 해야했던 치욕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그는 수많은 전쟁을 치루며 그 손에 피를 묻혀야만 했습니다. 충성스럽던 요압장군이 그를 배신하였고, 온갖 음모와 모략이 그 궁중안에 있어 그를 괴롭혔던 것입니다. 훌륭했다는 다윗왕이 이런 정도였으니다른 왕들은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신앙이 없었다면 그는 결코 자기 생애 의 잔이 넘친다고 결산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진 부 자라 할지라도, 아무리 큰 권세를 맛보았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많 은 업적을 남긴 사람이라 할지라도 신앙이 없이는 자기의 생애의 잔이 넘 친다는 고백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의 잔은 그 밑바닥이 죄악으로 인 하여 구멍이 났기 때문에 결코 채워지는 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결코 넘치는 법이 없습니다. 그 죄악의 구멍이 신앙으로 메꿔질 때만 비로소 잔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다윗은 먼저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라 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체험한 하나님은 항상 선하시고 인자하신 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언제나 선과 인자하심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요한일서 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구원의 역사 속에 일관되게 흐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가 사울왕에게 쫓겨 다니며 고생을 할 때나, 왕이 되어 아들 압살롬의 반역에 의해 왕궁에서 도망하였을 때와 같이 하나님이 자기를 채 찍질하실 때에도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신 분임을 의심치 않았다는 말 입니다. 시편에 보면, 사망의 골짜기에서 그 고난을 견디지 못하여 부르짖는 탄식의 시가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다윗의 것도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명한 시편 22편이 바로 그런 탄식시의 대표적인 것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 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 시나 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 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시22:1-2) 다윗은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의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그 혀가 잇틀에 붙었으며, 그의 모든 뼈는 어그러졌고 그의 마음은 촛물처럼 녹아져 내렸다고 하였습니다. 개와 같은 악한 무리들이 그를 둘 러싸고 그를 비웃으며 그를 찔렀다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극심한 고통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결국 함께 하셨음을 그는 깨달았 던 것입니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 얼굴을 저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부르짖을 때에 들으셨도다(22:24). 다윗은 그 의 과거의 경험을 통해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인간을 향하신 그의 기 본적인 태도임을 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앞으로 남은 생애에도 변함 없이 함께 하시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변함이 없는한 그의 생애는 언제나 은총으로 넘칠 것이며, 따라서 그의 삶은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날로 새로워질 것임을 그는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이룩해 가시는 모든 역사를 긍정적으 로 보게 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떠나지 아니하고 내 생애 속에 작 용한다면 나의 삶은 안전하며 확실하며 또 발전할 것이며 모든 은혜로 풍 성하게 넘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악의 요 소는 제거하시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창조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윗과 같이 이런 확신을 갖는다면 어떤 역경 속에서도 결코 낙심 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학 입시에 떨어졌을 때나 사업이 실패하였을 때나 사랑하는 가족이 병에 걸렸거나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에도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결코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면 그 사망의 골짜기가 결코 두렵지 않을 것이며 슬 프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담대하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의 선하 심과 인자하심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의 생의 잔은 반드시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생의 잔을 항상 육적인 축복으로만 채우려 할 때는 항상모자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역사를 꿰뚫고 있는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은 가치관이 달라진 눈입니다. 그 눈에는 이 세상 것들은 값없고 추한 것으로 보이고, 영적인 자산들은 보석처럼 빛 나게 보입니다. 이런 영적인 눈으로 자기 삶을 평가하는 사람은 날마다 새 로워지는 삶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박사도 아니고, 사장도 아니고, 국 회의원도 아니고 한낱 초라한 풀포기 같은 존재라 할지라도 영적인 감각으 로 주의 인자하심을 발견한 사람은 그의 잔이 넘치고 있음을 느낄 것입니다. 반대로, 온갖 명예와 부를 한몸에 지녔다 할지라도 그의 삶을 관통하 고 있는 주의 선하심을 알지 못한다면 그의 잔은 항상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개인의 생애에 있어서만 진리가 아닙니다. 이 역사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진리입니다.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오늘의 역사를 이끌 고 있다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는 결코 오늘의 역사를 비관적으 로 보지 않고 이 역사가 새로워지며 발전하며 마침내는 하나님 나라로 바 뀌어지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비록 지금은 우리나라가 분단되어 있고, 환경은 점점 더 오염되어 파괴되고 있고, 정치는 점점 더 혼미를 거듭하고, 도덕성은 점점 타락한다 할지라도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 심이 이 한국의 역사 밑바닥을 흐르고 있음을 믿기에 머지 않아 통일이 될 것이며, 이 사회가 변화되어 발전된 민주사회가 될 것입니다. 나의 삶을 긍정적으로, 이 역사를 낙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우리 모두가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아름다운 서원 다윗은 그가 발견한 이런 하나님의 은총에 대해 감사하면서 아름다운 서 원(서원)을 드리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 서원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 영원히 살겠다는 말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대제사장도 일년에 한번 밖에 들어갈 수 없는 지성소에 다윗이 아무리 왕이라 할지라도 영원히 거기에 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서 "여호와의 집"이란 문자대로가 아닌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성전에 거하는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율례(율례)를 좇아 행하는 것처럼, 다 윗은 항상 성전에 거하는 것처럼 행하겠다는 서원입니다. 다시 말해서 경 건하고 진실된 삶을 살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땅의 쾌락이나 안락한 삶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땅의 없어질 명예와 부를 추구하는 대신에 영원히 있을 영적인 부요를 얻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명하신대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하며, 동 시에 이웃을 사랑하며 그 백성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헌 신하겠다는 것입니다. 이후로는 여호와의 집 밖에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오직 하나님의 역사에만 관심을 갖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 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고 고백한 내용과 같은 성질의 것입니다. 그가 전에는 바리새인으로 율법주의에 기울었고, 외식적이었으며, 명예욕을 따라 누구보다도 열심히 뛴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는 참다운 사도로 변한 것입니다. 그는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목 표는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하여"(빌3:10) 그도 부 활에 이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 목표를 향하여 온몸을 앞으로 기울여 달려간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윗의 표현대로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한"사람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했고, 그래서 그 은혜가 내게 넘치고 있음을 알았는데, 거기에 감사하여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으며 그 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얼마나 헌신하였습니까 약삭 빠르게 우리는 은혜 만 챙기고 하나님께는 감사하지 않고 아무런 헌신의 약속도 하지 않는 이 기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아니었는지요 환난을 당하였을 때는 철야기도도 하고 금식도 하면서 부르짖다가 하나님의 긍휼로 그 환난이 지나간 다음에는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듯이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한 우리 자신들이 아니 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자신의 생애를 조용히 돌 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애 구비 구비마다 하나님의 선하심 과 인자하심이 어떻게 나타났는가 새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잔을 넘치게 하신 이런 하나님의 은총을 내가 잊어버리고 살아온 일을 회개하면서 이제 그 하나님께 다윗처럼 아름다운 서원을 드려야 하겠 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겠습니다." 아니면 사도 바울의 권면을 따라 "하나님, 이후로는 내가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 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 엇에든지 칭찬받을만 하게 행동하겠습니다."라고 하나님께 약속을 드려야 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편 23편은 참으로 아름다운 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학적으로 아름답기 때문에 좋은 시가 아닙니다. 우리가 살펴본대로 거기에는 우리의 평생을 관통하고 있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노래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편을 암송하는데만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시편이 노래하고 있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우리의 삶 속에서 발견하도록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 의 평생을 보장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어떤 난관, 어떤 시련 속에서도 낙 심하고 좌절하지 않는 적극적인 신앙,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마련하신 아름다운 삶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생의 마지막 날에 이르러서 후회없는 삶이 되도록 해야 하겠 습니다. 그리고 이런 적극적인 신앙을 가지고 이제는 오직 하나님이 이룩 하시는구원의 역사에만 동참하여 아낌없이 우리 자신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주 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음을 믿으십시요.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그 문제를 헤쳐 나가십시요. 긍정적으로 앞날을 바라보십시 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준비해 놓으신 아름다운 미래를 마음 속에 그려 보십시요. 하나님께서 그것을 여러분에게 이루어 주시려고 그의 선하 심을 따라 역사하고 계심을 믿으십시요. 문제가 해결될뿐 아니라 여러분은 자신의 문제에만 붙들려 있는 자가 아닌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가운데 함께 하시는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 부족한 것, 완전치 못한 것, 만족스 럽지 못한 것이 있다 할지라도 그래서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있다 할지 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낙심하거나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 지 맙시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고 전혀 희망이 없는 것처럼 행 동하지 맙시다.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결코 우리를 그대로 두시지 아니합니다. 불완전한 것을 온전하게 하시며, 부족한 것을 채우시며, 날마 다 새롭게 하십니다.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지 않았던가요 우리는 너무 쉽게 이런 하나님의 은총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한번 돌아보고 과거에도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변함없이 함께 하고 계심을 확신하면서 감사함으로 긍정적으로 주님의 일에 헌신해야 하겠습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 확신과 서원이 여러분의 것이되어 날마다 감사하며 날마다 주께 영광돌리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가
다윗이 체험한 하나님은 항상 선하시고 인자하신 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언제나 선과 인자하심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요한일서 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구원의 역사 속에 일관되게 흐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가 사울왕에게 쫓겨 다니며 고생을 할 때나, 왕이 되어 아들 압살롬의 반역에 의해 왕궁에서 도망하였을 때와 같이 하나님이 자기를 채 찍질하실 때에도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신 분임을 의심치 않았다는 말 입니다. 시편에 보면, 사망의 골짜기에서 그 고난을 견디지 못하여 부르짖는 탄식의 시가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다윗의 것도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명한 시편 22편이 바로 그런 탄식시의 대표적인 것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 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 시나 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 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시22:1-2) 다윗은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의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그 혀가 잇틀에 붙었으며, 그의 모든 뼈는 어그러졌고 그의 마음은 촛물처럼 녹아져 내렸다고 하였습니다. 개와 같은 악한 무리들이 그를 둘 러싸고 그를 비웃으며 그를 찔렀다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극심한 고통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결국 함께 하셨음을 그는 깨달았 던 것입니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 얼굴을 저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부르짖을 때에 들으셨도다(22:24). 다윗은 그 의 과거의 경험을 통해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인간을 향하신 그의 기 본적인 태도임을 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앞으로 남은 생애에도 변함 없이 함께 하시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변함이 없는한 그의 생애는 언제나 은총으로 넘칠 것이며, 따라서 그의 삶은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날로 새로워질 것임을 그는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이룩해 가시는 모든 역사를 긍정적으 로 보게 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떠나지 아니하고 내 생애 속에 작 용한다면 나의 삶은 안전하며 확실하며 또 발전할 것이며 모든 은혜로 풍 성하게 넘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악의 요 소는 제거하시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창조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윗과 같이 이런 확신을 갖는다면 어떤 역경 속에서도 결코 낙심 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학 입시에 떨어졌을 때나 사업이 실패하였을 때나 사랑하는 가족이 병에 걸렸거나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에도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결코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면 그 사망의 골짜기가 결코 두렵지 않을 것이며 슬 프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담대하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의 선하 심과 인자하심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의 생의 잔은 반드시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생의 잔을 항상 육적인 축복으로만 채우려 할 때는 항상모자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역사를 꿰뚫고 있는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은 가치관이 달라진 눈입니다. 그 눈에는 이 세상 것들은 값없고 추한 것으로 보이고, 영적인 자산들은 보석처럼 빛 나게 보입니다. 이런 영적인 눈으로 자기 삶을 평가하는 사람은 날마다 새 로워지는 삶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박사도 아니고, 사장도 아니고, 국 회의원도 아니고 한낱 초라한 풀포기 같은 존재라 할지라도 영적인 감각으 로 주의 인자하심을 발견한 사람은 그의 잔이 넘치고 있음을 느낄 것입니다. 반대로, 온갖 명예와 부를 한몸에 지녔다 할지라도 그의 삶을 관통하 고 있는 주의 선하심을 알지 못한다면 그의 잔은 항상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개인의 생애에 있어서만 진리가 아닙니다. 이 역사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진리입니다.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오늘의 역사를 이끌 고 있다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는 결코 오늘의 역사를 비관적으 로 보지 않고 이 역사가 새로워지며 발전하며 마침내는 하나님 나라로 바 뀌어지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비록 지금은 우리나라가 분단되어 있고, 환경은 점점 더 오염되어 파괴되고 있고, 정치는 점점 더 혼미를 거듭하고, 도덕성은 점점 타락한다 할지라도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 심이 이 한국의 역사 밑바닥을 흐르고 있음을 믿기에 머지 않아 통일이 될 것이며, 이 사회가 변화되어 발전된 민주사회가 될 것입니다. 나의 삶을 긍정적으로, 이 역사를 낙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우리 모두가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아름다운 서원 다윗은 그가 발견한 이런 하나님의 은총에 대해 감사하면서 아름다운 서 원(서원)을 드리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 서원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 영원히 살겠다는 말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대제사장도 일년에 한번 밖에 들어갈 수 없는 지성소에 다윗이 아무리 왕이라 할지라도 영원히 거기에 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서 "여호와의 집"이란 문자대로가 아닌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성전에 거하는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율례(율례)를 좇아 행하는 것처럼, 다 윗은 항상 성전에 거하는 것처럼 행하겠다는 서원입니다. 다시 말해서 경 건하고 진실된 삶을 살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땅의 쾌락이나 안락한 삶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땅의 없어질 명예와 부를 추구하는 대신에 영원히 있을 영적인 부요를 얻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명하신대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하며, 동 시에 이웃을 사랑하며 그 백성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헌 신하겠다는 것입니다. 이후로는 여호와의 집 밖에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오직 하나님의 역사에만 관심을 갖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 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고 고백한 내용과 같은 성질의 것입니다. 그가 전에는 바리새인으로 율법주의에 기울었고, 외식적이었으며, 명예욕을 따라 누구보다도 열심히 뛴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는 참다운 사도로 변한 것입니다. 그는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목 표는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하여"(빌3:10) 그도 부 활에 이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 목표를 향하여 온몸을 앞으로 기울여 달려간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윗의 표현대로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한"사람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했고, 그래서 그 은혜가 내게 넘치고 있음을 알았는데, 거기에 감사하여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으며 그 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얼마나 헌신하였습니까 약삭 빠르게 우리는 은혜 만 챙기고 하나님께는 감사하지 않고 아무런 헌신의 약속도 하지 않는 이 기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아니었는지요 환난을 당하였을 때는 철야기도도 하고 금식도 하면서 부르짖다가 하나님의 긍휼로 그 환난이 지나간 다음에는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듯이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한 우리 자신들이 아니 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자신의 생애를 조용히 돌 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애 구비 구비마다 하나님의 선하심 과 인자하심이 어떻게 나타났는가 새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잔을 넘치게 하신 이런 하나님의 은총을 내가 잊어버리고 살아온 일을 회개하면서 이제 그 하나님께 다윗처럼 아름다운 서원을 드려야 하겠 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겠습니다." 아니면 사도 바울의 권면을 따라 "하나님, 이후로는 내가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 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 엇에든지 칭찬받을만 하게 행동하겠습니다."라고 하나님께 약속을 드려야 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편 23편은 참으로 아름다운 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학적으로 아름답기 때문에 좋은 시가 아닙니다. 우리가 살펴본대로 거기에는 우리의 평생을 관통하고 있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노래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편을 암송하는데만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시편이 노래하고 있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우리의 삶 속에서 발견하도록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 의 평생을 보장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어떤 난관, 어떤 시련 속에서도 낙 심하고 좌절하지 않는 적극적인 신앙,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마련하신 아름다운 삶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생의 마지막 날에 이르러서 후회없는 삶이 되도록 해야 하겠 습니다. 그리고 이런 적극적인 신앙을 가지고 이제는 오직 하나님이 이룩 하시는구원의 역사에만 동참하여 아낌없이 우리 자신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주 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음을 믿으십시요.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그 문제를 헤쳐 나가십시요. 긍정적으로 앞날을 바라보십시 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준비해 놓으신 아름다운 미래를 마음 속에 그려 보십시요. 하나님께서 그것을 여러분에게 이루어 주시려고 그의 선하 심을 따라 역사하고 계심을 믿으십시요. 문제가 해결될뿐 아니라 여러분은 자신의 문제에만 붙들려 있는 자가 아닌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가운데 함께 하시는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 부족한 것, 완전치 못한 것, 만족스 럽지 못한 것이 있다 할지라도 그래서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있다 할지 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낙심하거나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 지 맙시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고 전혀 희망이 없는 것처럼 행 동하지 맙시다.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결코 우리를 그대로 두시지 아니합니다. 불완전한 것을 온전하게 하시며, 부족한 것을 채우시며, 날마 다 새롭게 하십니다.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지 않았던가요 우리는 너무 쉽게 이런 하나님의 은총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한번 돌아보고 과거에도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변함없이 함께 하고 계심을 확신하면서 감사함으로 긍정적으로 주님의 일에 헌신해야 하겠습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 확신과 서원이 여러분의 것이되어 날마다 감사하며 날마다 주께 영광돌리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가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