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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시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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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만큼 집 에 대한 집념과 애착을 가진 민족은 많지 않습니다. 내 집이라야 하고 큰 집이라야 하고 호화롭게 꾸며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 우리네 생활습성입니다.가까운 일본 사람들의 경우라든지 미국 사람들의 경우만 해도 반드시 등기가 내 앞으로 나있는 집을 가진 사람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내 집은 내 집이지만 30년 동안 매달 집값을 물어야 합니다.그러나 그토록 안간힘을 다해 마련하고 꾸민 집이라고 해서 거기서 천년이나 만년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시인 다윗은 시편 23편의 종결을 집 으로 맺고 있습니다. 이유는 집과 인간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집은 왕궁이나 호화주택이 아닌 여호와의 집 이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목자로 고백하고 믿는 사람이라는 것이 시인의 노래인 것입니다.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이 어떤 것들인가를 살펴 보겠습니다.
1.안위해 주십니다. 4절 끝을 보면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지팡이와 막대기는 목자의 유일한 무기입니다. 카우보이는 말을 타고 장총이나 권총을 휴대하지만 목자는 지팡이나 막대기를 휴대합니다.서부의 카우보이는 그 생김이나 차림새가 평화적이고 목가적입니다. 그러나 목자가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나 막대기는 방위 무기입니다. 미국 서부 사람들은 카우보이들이 가지고 있는 권총이나 연발식 총을 속어로 막대기(rod)라고 불렀습니다.목자의 막대기는 카우보이의 권총과 같다는 뜻에서 나온 속어일 것입니다. 다윗은 소년시절 아버지의 양을 지키면서 막대기 하나로 사자와 싸워 이긴 경험을 했습니다. 그가 철이 들고 신앙이 성숙해지면서 깨닫게 된 것은 목자의 지팡이나 막대기보다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얼마나 크고 강한가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자의 지팡이는 양을 안위하지만 하나님의 지팡이는 나를 안위하신다는 것이 그의 고백입니다. 출애굽기 4장을 보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모세가 바로와 대결하기 위해 애굽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4:20을 보면 “모세가 그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고 했습니다. 바로가 누굽니까 그는 대 제국 애굽의 황제입니다. 그는 근위부대와 기병대를 가지고 있습니다.400여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학대한 애굽왕가의 왕입니다.그는 모세가 돌아오면 처형하기 위해 벼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모세가 그를 찾아가 히브리 백성을 해방하라는 도전장을 낼 참입니다.
그렇다면 모세도 중무장을 하고 들어가야 합니다.007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처럼 기상천외할 최신예 무기나 소도구들로 무장하고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지팡이 하나를 들었을 뿐입니다.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지팡이 하나로 바로를 이겼습니다. 그 지팡이가 바로를 이겼고 애굽을 이겼고 원수 마귀를 이겼습니다.그 지팡이가 어떤 지팡이 입니까 핵 폭탄을 장전한 지팡이입니까 아니면 미사일을 탑재한 지팡이 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지팡 였습니다.다윗이 노래한 지팡이도 바로 그 지팡이입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는 그의 고백은 하나님의 지팡이를 당할 자가 없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지팡이의 용도는 여러가지입니다.
첫째 외적이나 맹수들을 막아내는 방어기구입니다.
둘째 말 안 듣고 딴짓할 때 때리는 징계의 도구입니다. 지팡이는 방어무기이면서 채찍입니다.하나님은 그 지팡이로 나를 인도하시고 지키십니다.그리고 그 지팡이로 나를 가르치고 때리십니다. 목자는 양들이 대열을 떠나 제멋대로 독초가 있는 곳이나 맹수의 위험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면 지체없이 막대기를 던지거나 휘둘러서 양을 돌아오게 합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는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원수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지켜 주십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는 능력있는 지팡이 입니다.그 지팡이로 안위하시는 그 은총을 감사해야 합니다.
2.내 잔이 넘칩니다. 5절을 보면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열대성 기후 탓으로 더위가 심합니다.물이 귀합니다.그리고 초장도 흔하지 않습니다.물이 있고 풀이 있고 숲이 있는 곳이 있긴 하지만 으례히 그곳엔 맹수도 모여있고 뱀도 모여 있습니다. 목자는 양들에게 물과 풀을 제공하기 위해 그런 곳을 먼저 찾아 헤메다가 만나면 그곳에 캠프를 준비하고 양들을 그곳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목동들은 물이 있고 풀이 있고 숲이 있는 고원의 목양지를 메사(mesa)라고 부릅니다.그 뜻은 대지라는 서반아 말입니다.영어로는 상(table)이라는 말이 됩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말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셨다는 것은 목자가 발견하고 준비한 최상의 휴식처를 말하는 것입니다. 뱀이 도사리고 있고 맹수들이 틈을 노리는 고원의 초장에서 양들이 물을 마시며 풀을 뜯고 있습니다.그러나 그 순간에도 목자는 손에 지팡이와 막대기를 들고 주변을 지키고 있습니다.목자의 긴장과는 상관없이 양들은 차고 넘치도록 풀을 뜯고 물을 마십니다.바로 이 장면을 다윗은 상상한 것입니다. 양들이 먹고 마실 때 목자는 원수를 지켜야 합니다.양들이 쉬며 잠잘 때도 목자는 긴장을 풀 수가 없습니다. 시편 121편의 시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목자이신 주님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나를 살리시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나를 풍요케 하시기 위해 자신이 가난해 지셨습니다. 나를 높이시기 위해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피를 쏟으셨습니다. 주님 때문에 나는 잔이 넘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해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나서부터 하루종일 이곳저곳 심방이며 회의 때문에 다니다가 저녁 11시 30분 경에 집에 들어갔습니다.몸을 씻고 식탁에 앉은 시간이 11시 50분경이었습니다.시간이 맞지 않은 탓으로 그날은 온 종일 식사를 못한 날이었습니다.몇 숟갈 입에 들어갈 무렵 전화가 걸려왔습니다.교구장의 전화였습니다.강남에 사는 모 집사님의 노모께서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계셨는데 급한 전화가 왔다는 것입니다.세상을 떠나실 채비를 하시는데 박 목사님을 찾는다는 것입니다.시계는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피곤에 지친터라 짜증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갈테면 조용히 눈감고 갈 일이지 왜 나를 찾나 싶은 마음이었습니다.전화를 건 교구장에게 도저히 갈 수 없겠다며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교구장이 가서 임종예배를 드리겠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식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얼굴 한 번 보고 가겠다는데 피곤하다고 거절을 하느냐 네가 뭐 그리 대단한 존재냐”라는 자책과 함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저는 서둘렀습니다.이왕에 갈거라면 죽기전에 가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그 집에 도착하니 12시 40분경이었습니다.찬송소리가 들렸습니다.제가 들어가자 온 식구들이 저를 반기며 누워 있는 어머니에게 제가 온 것을 알렸습니다.“어머니,어머니가 보고 싶어하던 목사님 오셨어요 눈 좀 떠보세요”라고 딸이 소리지르자 두 눈을 뜨더니 제 손을 붙잡았습니다. 제 느낌으로 곧 운명하실 것 같아 임종예배를 드렸습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찬송을 부르고 요한복음 14:1,7을 읽고 영혼을 부탁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이제 절차상 남은 것은 그 노모남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저도 집으로 돌아와 밥도 먹고 잠도 잘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고 5분쯤 경과하자 푸하고 한숨을 내쉬더니다시 눈을 뜨고 두리번 거리는 것입니다. 가족들이 좋아라며 어머니 살아나셨다고 기뻐합니다. 그러더니 5분쯤 지나니까 죽은듯 숨소리가 작아지는 것입니다. 그러기를 새벽 2시까지… 생과 사의 결말이 나기를 기다리다 2시 30분에 그곳을 떠났습니다. 결국 다음날 오후 3시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목회란 목자 예수님이 사셨던 삶의 억천만분의 일도 못되는 작은 흉내이며 몸짓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목회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 속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 물질적 풍요를 의미합니다. 다윗은 베들레헴 목자였던 이새의 아들입니다.그 당시 양치는 일은 서민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제사장이나 랍비나 공회의원 정도의 사회적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상류계층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목동은 가난한 천민입니다.다윗은 목동입니다.그러한 그가 이스라엘 최고의 부를 누리는 상류사회의 거부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그는 하나님 때문에 부자가 되었습니다.
둘째 신분 보장을 의미합니다. 목동 다윗이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이 그의 지위를 높혀 주시고 보장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영적 만족을 의미합니다. 잔이 아니라 드럼통이 넘쳐도 영적 자족과 감사가 없으면 만족을 모릅니다.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만족했기에 감사가 넘쳤던 것입니다.날마다 잔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3.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 됩니다. 6절 끝을 보면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이것은 곧 다윗의 미래신앙이며 천국소망입니다.제 아무리 비싼 집에 초 호화 장식으로 꾸민 집도 영원히 살 곳이 아닙니다. 구라파에 가면 폐허나 폐가가 된 고대왕궁이나 대저택들을 볼 수 있습니다.한때의 영화일 뿐 지금은 헌집이고 빈집일 뿐입니다. 현재 내가 기거하거나 발붙이고 사는 집이나 세상은 잠시동안 머무는 곳일 뿐입니다. 그곳에 너무 지나친 애착을 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주거환경이나 집안을 깨끗하게 꾸미고 쾌적하게 단장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곳이 영원히 거할 처소는 아닙니다. 바울은 그곳은 썩은 장막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영원히 거할 집이 있다는 것은 감격적 사건입니다. 돈으로 사는 곳이 아닙니다.믿음으로 받은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인 사람들과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집. 거기서 영원히 거하게 된 것을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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