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시150:1-6)
본문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말, 힘 있는 말들이 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어머니, 모두 아름답고 힘 있는 말들입니다.
그런데 아름답고, 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장엄한 말이 무엇이냐고 하면 여러분 어떤 말을 드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그 말이 나오는데 직접적으로 두 번, 간접적으로 열한 번이 나옵니다. "할렐루야"입니다. 본문에 간접적으로 "할렐루야"라는 말이 열한 번이 나온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라그를 찬양할지어다"-"찬양"이라는 말이 열한 번이 나오는데 " 할렐루야"라는 말의 뜻이 "하나님을 찬양하라"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는 만국 공통어입니다. 어느 나라나 이 말은 번역하지 않고 그 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의 외국의 식당에 가서 물을 청하는데 물을 그 나라 말로 무엇이 라고 하는지 몰라서 "에치 투 오(H2 0) 플리즈" 했더니 보이가 알아듣고 웃 으며 물을 갖다주더라는 이야기가 잇는데 할렐루야는 그 것보다 더 넓게 통 하는 말입니다. 외국에 나가서 기독교인 만나면 "할렐루야!" 한 마디면 그 이상의 인사가 필요 없습니다. 시편 146편에서 150편 까지는 모두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나기 때문에 "할렐루야 시편"이라고 하는데 시편의 끝인 150편에서는 할렐루야가 특별히 강조되고 있기 때문에 "대 할렐루야 찬송" 또는 "대 할렐루야 시편"(The Great Halleluiah)라고 부 릅니다. 신문 기사를 쓰는데는 육하 원칙(六荷原則)이라는 기본 원칙이 있습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하는 것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150편도 이 육하 원칙을 잘지키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1절은 "어디서"에 대한 답입니다.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궁 창"이라는 말은 일상 생활에서는 잘 쓰이지 않습니다. "창공"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소, 거룩한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으니 예배당에서 찬양하고, 궁 창에서 찬양하라고 했으니 비행기 타고 올라가서 찬양하라는 뜻입니까절대 로 아닙니다. 이 세상 어디나 하나님의 거룩한 곳 아닌 곳 없고 권능의 궁창 아닌 곳 없 습니다. 성소를 예배당으로만,궁창을 물리적인 의미의 창공으로 해석하는 것은 우리가 피해야할 문자적인 태도입니다. 어느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예절을 가르치기 위해서 기숙사의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학생들에게 반드시 넥타이를 매야 한다는 규정을 새로 만들었 습니다. 이 규정을 못마땅하게 여긴 한 학생이 맨 몸에 넥타이를 매고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런닝 셔츠도 입지 않고, 와이셔츠도 입지 않고 맨 목에 넥타이만 매고 식당에 나타났으니 사감 선생님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사감 선생님 이 막 야단을 치니까 이 학생은 태연하게 "아, 넥타이 매야 식사할 수 있다 고 해서 그대로 했는데 무슨 잘못입니까 나는 규정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 모든 곳이 하나님의 거룩한 곳, 성소이고 권능의 궁창이라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생각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차 대전 이후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 점을 특히 강조해 왔습니다. 특별히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교회만 거룩한 곳이고 가정이나 직장은 그렇지 않은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생활을 이중적으로 만들기 쉽습니다. 가정 주부들에게는 부엌이, 교사와 학생들에게는 교실이, 의사와 간호사와 환자들에게는 병원이, 직장인들에게는 사무실이 성소가 되어야합니다. 저희 교회 원로 목사님이신 김찬국(金燦國) 상지대 총장님이 다음 주일에 오래간만에 오셔서 설교해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김 목사님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 "나는 상지 대학교를 목회 현장으로 여기고 일하고 있다"-, 그 대학은 기독교 대학이 아니고 비리가 많았던 곳으로 널리 알려진 학교였습니다.
그런데 김 목사님이 그 학교 책임자로 가셔서 학교를 많이 변화시켰습니다. 작년에 김 목사님 고희를 기념해서 고희 기념 문집 나의 삶 나의 이야 기 라는 책이 발간되었는데 그 책에 상지대 교수 몇 분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그 글들을 읽으면서 그 학교가 얼마나 어려운 문제를 많이 가지고 있 었는지, 그리고 김 목사님이 총장으로 가셔서 그 학교를 얼마나 변화 시켜 놓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작년 8월에 총장 임기 4년이 끝나서 김 목사님은 진정으로 총장직에서 물 러나서 쉬기를 원하고 그럴 준비를 진행하고 있는데 학교에서 반 강제적으 로 연임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소식을 들으면서 '김 목사님의 교회 밖에서의 목회가 대성공을 거두고 있구나!' 기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학교 이야기가 나왔는데 처음에 기독교인들, 선교사들에 의해서 기독교 정신을 가르치기 위해서 설립된 기독교 학교들, 미션 스쿨들이 요즘은 그 정신이 많이 퇴락하고 그저 평신도 기독교인들이 세운 일반 학교가 오히려 신 앙적인 면에서 더 열심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작년 여선교대회 주최 신앙 간증 성회에 숙명 여대의 이경숙 총장님이오 셔서 신앙으로 숙명 여대 이끌어가는 이야기, 특히 숙명 여대 교문에 성구 새겨 넣기 위해서 힘쓴 결과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저는 그 다음에 일부러 그 학교에 가 보았더니 과연 여러 교문에 하나님의 말씀 이 빠짐 없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런 분들, 자기 삶의 현장을 성소로 여기고 살아가는 귀한 분들입니다. 기독교 정신으로 출발한 기관들이 기독교 정신을 잃어버리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 신앙의 향기가 진하게 풍기는 것은 성소가 비성소(非聖所)가 되고 비성소가 성소가 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성소는 더욱 거룩한 곳이 되어야 하고 비성소도 성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우리 사는 곳 전체에서 "할레루야!" 찬양이 터져 나와야합니다. 오늘 성가대 임명 예배를 드리는데 성가원들, 성가대석에서만 성가대원이 아니고 교회 생활 전체에서, 그리고 교회 밖의 모든 생활에서도 성가대원으 로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래야만 좋은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2절이 그 답이 됩니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 지어다" 표준 새번역 은 2절을 주님이 위대한 일을 하셨으니 주님을 찬양하라 주님은 더없이 위대하시니 주님을 찬양하라 고 번역했습니다. 주님이 위대한 일을 하셨으니 주님을 찬양하라-주님이 하신 위대한 일이 무엇인가 으려고 애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내게 하신 모든 일이, 하시고 있는 모든 일이 모두 위대한 일입니다. 주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일만 위대한 것 아닙니다. 홍해를 가른 것만 위대한 일 아닙니다.
오늘까지 내 생명을 연장해 주시고 오늘 아침에 나를 깨워 주시고 교회에 나오게 하신 것도 위대한 일입니다. 목양 교회를 세우시고 37년 간 인도하시고 새로운 비젼을 주신 것, 위대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루 하루, 한 시간 한 시간이 모두 위대한 날들 이고 위대한 시간들입니다. 성가대원들, 왜 성가대원이 되셨습니까 왜 찬양을 합니까내가 노래를 잘 부르는데 이 재능을 그대로 두기가 아까워서입니까그러면 그것은 하나의 발표 욕구를 충족 시키기 위한 것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정서적인 충동이 동기의 중요한 몫이 되고 맙니다. 주님의 위대함을 찬양하기 위해서 성가대원이 되셨습니다. 주님께서 위대한 일을 하시니 찬양을 합니다. 3절에서 6절까지는 "어떻게"에 대한 답입니다. 어떻게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까 본문은 여러 가지 악기 이름을 제시하며 이 악기들을 동원하여 주님을 찬 양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 제시된 악기들을 구해 찬양해야합니까성서를 문자적으 로 해석하지 말라고 했으니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이미 눈치챘을 것입니다. 사실 여기 나오는 히브리 악기들은 지금 우리가 구하기 어렵고 또 이 가운 데는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악기들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것을 문자 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가야금이 우리의 고유한 악기인데 남한의 가야금과 북한의 가야금이 벌써 줄의 숫자가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악기 문제에 너무 집착하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Churches of Christ) 라는 교파가 있는데 이 교파는 악기를 사용하느냐 사용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유악기파(有樂派) 와 무악파(無樂派)로 갈라졌습니다. 서울의 등촌동에 신학 대학을 두고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무악파입니다. 저는 유악파 무악파 하는 것을 보고 처 음에는 '아 이 파에는 악(나쁜 것)이 있고(有惡) 저 파에는 악이 없나(無惡 )보구나! 동양 사상으로 말하면 한쪽은 성선설을 주장하고 한쪽은 성악설을 주장하나 보구나!'라고 생각했지 그 것이 악기를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고 있 었습니다(정말입니다). 여기 악기 이름이 많이 나오는 것은 드릴 수 있는 정성을 다해서, 재능을 다해서, 우리가 낼 수 있는 모든 목소리를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 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 무엇입니까 아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허 락해 주신 재능이 무엇입니까 그림 그리는 재능입니까 글 잘쓰는 재능입니까 밥 잘 짓는 재능입니까그 것을 가지고 "할렐루야!"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설 연휴가 시작되는데 설이 어떤 절기냐고 하니까 조상의 음덕을 찬 양하는 절기라고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절기라는 대답으로 바뀌 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미국에서 추수 감사절은 어찌되었던 간에 근본적으 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드린다는 기본 정신 위에서 지켜지지 않습니까 부활절이 되면 서양 여러 나라에서는 휴가를 갖습니다. 홍콩도 영국의 식민지였던 관계로 부활절 휴가가 있었는데 작년에 중국으로 귀속되어 올해 부활절 휴가가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합니다. 50년 동안은 홍콩의 현 체제를 보장한다고 했으니 지켜지기야하겠지만 그 분위기가 어 떨지 궁금해집니다. 설이 되면 믿지 않는 가정에서는 제사 음식을 아주 정성스럽게 차립니다. 우리는 그 이상의 정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6절이 그 답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 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여러분이 호흡이 있습니까 숨을 쉬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내쉬는 숨이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되 어야 합니다. 성가대원만 하나님 찬양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본분 가운데 하나입니다. "목사님, 아까 육하 원칙을 말씀하셨는데 언제(When)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지, 무엇을 (Why)찬양해야 하는지, 두가지가 빠졌네요"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구태어 말할 필요가 없는 일, 반복되는 말이기 때문에 빼 놓았는지도 모르 겠습니다. 언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늘 찬양해야 합니다. 특별히 어려울 때 찬양해야합니다. 요즈음 성도들이 어려움을 많이 겪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녀들 입시 문제, 특별히 경제 문제로 인한 고통이 큽니다. 심방 전도사님들이 기록하는 심방 일지를 목양 일지(牧羊日誌)라고 제목을 바꾸고 심방 내용을 좀 자세하게 쓰라고, 이른바 에세이 스타일로 쓰도록 바꾸었는데 그것을 보면 성도들이 겪는 애환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특별히 요즘은 경제 문제로 고통을 겪는 분들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려울 때 "할렐루야!", 찬양하세요. 바울과 실라가 착고에 채워 빌립보 옥중에 갇혀서 한 밤 중에 부른 찬양이 어떤 결과를 가져 왔습니까 그렇습니다.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풀렸습니다. 어려울 때 드리는 기도와 찬양은 우리를 가로 막고 있는 것들을 열어주며 우리를 묶고 있는 것들로부터 우리를 풀어주어 자유롭게 합니다. 찬양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그런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고 찬양을 듣는 사람들에게 도 같은 은혜를 주십니다. 어려울 때 바치는 십일조를 하나님은 특별히 축복하십니다. 우리 나라가 지금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 때 교회가 하나님을 열심히 찬양하면 하나님은 이 나라를 더욱 축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나라를 사랑하시고 이 나라를 들어 크게 사용하시고 21세 기에 더 크게 사용하려고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교회가 빠르게 성장하고 경제적으로 흥왕할 때는 이런 소리가 자주 나오 다가 요즘은 교회 성장도 둔화되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니까 이런 소리들이 좀 줄어드는 현상에서도 한국 교회의 천박한 센세이서널리즘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변함 없는 사실입니다. 군대에서는 훈련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 와서 아주 강한 훈련을 시킵니다. 해병대는 진해 훈련소 부근에 천자봉이라는 고지가 있는데 훈련 마지막 단 계에 천자봉 고지 구보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대전에 30여 년 전에 대전에 있는 기술 교육단이라는 곳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교관들이 "너희들, 훈련 마지막에 유성 구보가 있는데 그것이 아주 힘들다. 유성 구보하다가 죽은 훈련병도 있다" 늘 겁을 주었습니다. 겪어 보니까 유성 학하리라는 곳까지 조금 빠르게 가서 뭐 산 하나 점령 하고 돌아오는 그런 훈련인데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괜찮았어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 한파는 21세기 진입을 잘 하기 위해서 받는 마 지막 훈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을 찬양해야 합니까 이 문제의 답은 "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의 답에, 그러니 까 2절에 이미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찬양해야합니다.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할렐루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명령입니다. 우리가 서로, 또는 하나님을 향해 이 말을 할 때는 인사이고 고백이지만 원래는 명령입니다. 제가 아까 할렐루야라는 말은 장엄한 말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장엄한 명령 입니다. 군대의 많은 명령 가운데 가장 신이 나고 중요하고 엄숙한 것은 "돌격 앞으 로!"하는 것일 것입니다. 이 명령이 떨어지면 모두 "와-"하며 앞으로 돌격해야합니다. "할렐루야-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은 '돌격 앞으로!"하는 것이나 마찬가 지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성가대원들은 이 명령을 앞장 서서 수행하고 있는 선봉 대원들입니다. 선봉 대원들이 우물쭈물하면 그 전투의 결과는 뻔하지요. 성가대원 여러분 선봉 대원의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거듭 거듭 명하십니다. 모든 곳에서 주님은 찬양하라,주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찬양하라,온갖 정성 으로 주님을 찬양하라,모두,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주님을 찬양하라
그런데 아름답고, 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장엄한 말이 무엇이냐고 하면 여러분 어떤 말을 드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그 말이 나오는데 직접적으로 두 번, 간접적으로 열한 번이 나옵니다. "할렐루야"입니다. 본문에 간접적으로 "할렐루야"라는 말이 열한 번이 나온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라그를 찬양할지어다"-"찬양"이라는 말이 열한 번이 나오는데 " 할렐루야"라는 말의 뜻이 "하나님을 찬양하라"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는 만국 공통어입니다. 어느 나라나 이 말은 번역하지 않고 그 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의 외국의 식당에 가서 물을 청하는데 물을 그 나라 말로 무엇이 라고 하는지 몰라서 "에치 투 오(H2 0) 플리즈" 했더니 보이가 알아듣고 웃 으며 물을 갖다주더라는 이야기가 잇는데 할렐루야는 그 것보다 더 넓게 통 하는 말입니다. 외국에 나가서 기독교인 만나면 "할렐루야!" 한 마디면 그 이상의 인사가 필요 없습니다. 시편 146편에서 150편 까지는 모두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나기 때문에 "할렐루야 시편"이라고 하는데 시편의 끝인 150편에서는 할렐루야가 특별히 강조되고 있기 때문에 "대 할렐루야 찬송" 또는 "대 할렐루야 시편"(The Great Halleluiah)라고 부 릅니다. 신문 기사를 쓰는데는 육하 원칙(六荷原則)이라는 기본 원칙이 있습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하는 것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150편도 이 육하 원칙을 잘지키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1절은 "어디서"에 대한 답입니다.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궁 창"이라는 말은 일상 생활에서는 잘 쓰이지 않습니다. "창공"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소, 거룩한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으니 예배당에서 찬양하고, 궁 창에서 찬양하라고 했으니 비행기 타고 올라가서 찬양하라는 뜻입니까절대 로 아닙니다. 이 세상 어디나 하나님의 거룩한 곳 아닌 곳 없고 권능의 궁창 아닌 곳 없 습니다. 성소를 예배당으로만,궁창을 물리적인 의미의 창공으로 해석하는 것은 우리가 피해야할 문자적인 태도입니다. 어느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예절을 가르치기 위해서 기숙사의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학생들에게 반드시 넥타이를 매야 한다는 규정을 새로 만들었 습니다. 이 규정을 못마땅하게 여긴 한 학생이 맨 몸에 넥타이를 매고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런닝 셔츠도 입지 않고, 와이셔츠도 입지 않고 맨 목에 넥타이만 매고 식당에 나타났으니 사감 선생님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사감 선생님 이 막 야단을 치니까 이 학생은 태연하게 "아, 넥타이 매야 식사할 수 있다 고 해서 그대로 했는데 무슨 잘못입니까 나는 규정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 모든 곳이 하나님의 거룩한 곳, 성소이고 권능의 궁창이라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생각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차 대전 이후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 점을 특히 강조해 왔습니다. 특별히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교회만 거룩한 곳이고 가정이나 직장은 그렇지 않은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생활을 이중적으로 만들기 쉽습니다. 가정 주부들에게는 부엌이, 교사와 학생들에게는 교실이, 의사와 간호사와 환자들에게는 병원이, 직장인들에게는 사무실이 성소가 되어야합니다. 저희 교회 원로 목사님이신 김찬국(金燦國) 상지대 총장님이 다음 주일에 오래간만에 오셔서 설교해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김 목사님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 "나는 상지 대학교를 목회 현장으로 여기고 일하고 있다"-, 그 대학은 기독교 대학이 아니고 비리가 많았던 곳으로 널리 알려진 학교였습니다.
그런데 김 목사님이 그 학교 책임자로 가셔서 학교를 많이 변화시켰습니다. 작년에 김 목사님 고희를 기념해서 고희 기념 문집 나의 삶 나의 이야 기 라는 책이 발간되었는데 그 책에 상지대 교수 몇 분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그 글들을 읽으면서 그 학교가 얼마나 어려운 문제를 많이 가지고 있 었는지, 그리고 김 목사님이 총장으로 가셔서 그 학교를 얼마나 변화 시켜 놓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작년 8월에 총장 임기 4년이 끝나서 김 목사님은 진정으로 총장직에서 물 러나서 쉬기를 원하고 그럴 준비를 진행하고 있는데 학교에서 반 강제적으 로 연임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소식을 들으면서 '김 목사님의 교회 밖에서의 목회가 대성공을 거두고 있구나!' 기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학교 이야기가 나왔는데 처음에 기독교인들, 선교사들에 의해서 기독교 정신을 가르치기 위해서 설립된 기독교 학교들, 미션 스쿨들이 요즘은 그 정신이 많이 퇴락하고 그저 평신도 기독교인들이 세운 일반 학교가 오히려 신 앙적인 면에서 더 열심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작년 여선교대회 주최 신앙 간증 성회에 숙명 여대의 이경숙 총장님이오 셔서 신앙으로 숙명 여대 이끌어가는 이야기, 특히 숙명 여대 교문에 성구 새겨 넣기 위해서 힘쓴 결과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저는 그 다음에 일부러 그 학교에 가 보았더니 과연 여러 교문에 하나님의 말씀 이 빠짐 없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런 분들, 자기 삶의 현장을 성소로 여기고 살아가는 귀한 분들입니다. 기독교 정신으로 출발한 기관들이 기독교 정신을 잃어버리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 신앙의 향기가 진하게 풍기는 것은 성소가 비성소(非聖所)가 되고 비성소가 성소가 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성소는 더욱 거룩한 곳이 되어야 하고 비성소도 성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우리 사는 곳 전체에서 "할레루야!" 찬양이 터져 나와야합니다. 오늘 성가대 임명 예배를 드리는데 성가원들, 성가대석에서만 성가대원이 아니고 교회 생활 전체에서, 그리고 교회 밖의 모든 생활에서도 성가대원으 로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래야만 좋은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2절이 그 답이 됩니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 지어다" 표준 새번역 은 2절을 주님이 위대한 일을 하셨으니 주님을 찬양하라 주님은 더없이 위대하시니 주님을 찬양하라 고 번역했습니다. 주님이 위대한 일을 하셨으니 주님을 찬양하라-주님이 하신 위대한 일이 무엇인가 으려고 애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내게 하신 모든 일이, 하시고 있는 모든 일이 모두 위대한 일입니다. 주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일만 위대한 것 아닙니다. 홍해를 가른 것만 위대한 일 아닙니다.
오늘까지 내 생명을 연장해 주시고 오늘 아침에 나를 깨워 주시고 교회에 나오게 하신 것도 위대한 일입니다. 목양 교회를 세우시고 37년 간 인도하시고 새로운 비젼을 주신 것, 위대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루 하루, 한 시간 한 시간이 모두 위대한 날들 이고 위대한 시간들입니다. 성가대원들, 왜 성가대원이 되셨습니까 왜 찬양을 합니까내가 노래를 잘 부르는데 이 재능을 그대로 두기가 아까워서입니까그러면 그것은 하나의 발표 욕구를 충족 시키기 위한 것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정서적인 충동이 동기의 중요한 몫이 되고 맙니다. 주님의 위대함을 찬양하기 위해서 성가대원이 되셨습니다. 주님께서 위대한 일을 하시니 찬양을 합니다. 3절에서 6절까지는 "어떻게"에 대한 답입니다. 어떻게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까 본문은 여러 가지 악기 이름을 제시하며 이 악기들을 동원하여 주님을 찬 양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 제시된 악기들을 구해 찬양해야합니까성서를 문자적으 로 해석하지 말라고 했으니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이미 눈치챘을 것입니다. 사실 여기 나오는 히브리 악기들은 지금 우리가 구하기 어렵고 또 이 가운 데는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악기들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것을 문자 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가야금이 우리의 고유한 악기인데 남한의 가야금과 북한의 가야금이 벌써 줄의 숫자가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악기 문제에 너무 집착하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Churches of Christ) 라는 교파가 있는데 이 교파는 악기를 사용하느냐 사용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유악기파(有樂派) 와 무악파(無樂派)로 갈라졌습니다. 서울의 등촌동에 신학 대학을 두고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무악파입니다. 저는 유악파 무악파 하는 것을 보고 처 음에는 '아 이 파에는 악(나쁜 것)이 있고(有惡) 저 파에는 악이 없나(無惡 )보구나! 동양 사상으로 말하면 한쪽은 성선설을 주장하고 한쪽은 성악설을 주장하나 보구나!'라고 생각했지 그 것이 악기를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고 있 었습니다(정말입니다). 여기 악기 이름이 많이 나오는 것은 드릴 수 있는 정성을 다해서, 재능을 다해서, 우리가 낼 수 있는 모든 목소리를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 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 무엇입니까 아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허 락해 주신 재능이 무엇입니까 그림 그리는 재능입니까 글 잘쓰는 재능입니까 밥 잘 짓는 재능입니까그 것을 가지고 "할렐루야!"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설 연휴가 시작되는데 설이 어떤 절기냐고 하니까 조상의 음덕을 찬 양하는 절기라고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절기라는 대답으로 바뀌 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미국에서 추수 감사절은 어찌되었던 간에 근본적으 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드린다는 기본 정신 위에서 지켜지지 않습니까 부활절이 되면 서양 여러 나라에서는 휴가를 갖습니다. 홍콩도 영국의 식민지였던 관계로 부활절 휴가가 있었는데 작년에 중국으로 귀속되어 올해 부활절 휴가가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합니다. 50년 동안은 홍콩의 현 체제를 보장한다고 했으니 지켜지기야하겠지만 그 분위기가 어 떨지 궁금해집니다. 설이 되면 믿지 않는 가정에서는 제사 음식을 아주 정성스럽게 차립니다. 우리는 그 이상의 정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6절이 그 답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 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여러분이 호흡이 있습니까 숨을 쉬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내쉬는 숨이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되 어야 합니다. 성가대원만 하나님 찬양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본분 가운데 하나입니다. "목사님, 아까 육하 원칙을 말씀하셨는데 언제(When)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지, 무엇을 (Why)찬양해야 하는지, 두가지가 빠졌네요"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구태어 말할 필요가 없는 일, 반복되는 말이기 때문에 빼 놓았는지도 모르 겠습니다. 언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늘 찬양해야 합니다. 특별히 어려울 때 찬양해야합니다. 요즈음 성도들이 어려움을 많이 겪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녀들 입시 문제, 특별히 경제 문제로 인한 고통이 큽니다. 심방 전도사님들이 기록하는 심방 일지를 목양 일지(牧羊日誌)라고 제목을 바꾸고 심방 내용을 좀 자세하게 쓰라고, 이른바 에세이 스타일로 쓰도록 바꾸었는데 그것을 보면 성도들이 겪는 애환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특별히 요즘은 경제 문제로 고통을 겪는 분들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려울 때 "할렐루야!", 찬양하세요. 바울과 실라가 착고에 채워 빌립보 옥중에 갇혀서 한 밤 중에 부른 찬양이 어떤 결과를 가져 왔습니까 그렇습니다.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풀렸습니다. 어려울 때 드리는 기도와 찬양은 우리를 가로 막고 있는 것들을 열어주며 우리를 묶고 있는 것들로부터 우리를 풀어주어 자유롭게 합니다. 찬양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그런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고 찬양을 듣는 사람들에게 도 같은 은혜를 주십니다. 어려울 때 바치는 십일조를 하나님은 특별히 축복하십니다. 우리 나라가 지금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 때 교회가 하나님을 열심히 찬양하면 하나님은 이 나라를 더욱 축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나라를 사랑하시고 이 나라를 들어 크게 사용하시고 21세 기에 더 크게 사용하려고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교회가 빠르게 성장하고 경제적으로 흥왕할 때는 이런 소리가 자주 나오 다가 요즘은 교회 성장도 둔화되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니까 이런 소리들이 좀 줄어드는 현상에서도 한국 교회의 천박한 센세이서널리즘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변함 없는 사실입니다. 군대에서는 훈련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 와서 아주 강한 훈련을 시킵니다. 해병대는 진해 훈련소 부근에 천자봉이라는 고지가 있는데 훈련 마지막 단 계에 천자봉 고지 구보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대전에 30여 년 전에 대전에 있는 기술 교육단이라는 곳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교관들이 "너희들, 훈련 마지막에 유성 구보가 있는데 그것이 아주 힘들다. 유성 구보하다가 죽은 훈련병도 있다" 늘 겁을 주었습니다. 겪어 보니까 유성 학하리라는 곳까지 조금 빠르게 가서 뭐 산 하나 점령 하고 돌아오는 그런 훈련인데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괜찮았어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 한파는 21세기 진입을 잘 하기 위해서 받는 마 지막 훈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을 찬양해야 합니까 이 문제의 답은 "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의 답에, 그러니 까 2절에 이미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찬양해야합니다.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할렐루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명령입니다. 우리가 서로, 또는 하나님을 향해 이 말을 할 때는 인사이고 고백이지만 원래는 명령입니다. 제가 아까 할렐루야라는 말은 장엄한 말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장엄한 명령 입니다. 군대의 많은 명령 가운데 가장 신이 나고 중요하고 엄숙한 것은 "돌격 앞으 로!"하는 것일 것입니다. 이 명령이 떨어지면 모두 "와-"하며 앞으로 돌격해야합니다. "할렐루야-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은 '돌격 앞으로!"하는 것이나 마찬가 지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성가대원들은 이 명령을 앞장 서서 수행하고 있는 선봉 대원들입니다. 선봉 대원들이 우물쭈물하면 그 전투의 결과는 뻔하지요. 성가대원 여러분 선봉 대원의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거듭 거듭 명하십니다. 모든 곳에서 주님은 찬양하라,주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찬양하라,온갖 정성 으로 주님을 찬양하라,모두,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주님을 찬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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