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기도할 때 (시17:6-13)
본문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는고로 내가 불렀사오니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됩니다.
1. 겸손함으로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생각에 평강교회가 자랑스럽고 가장 은혜스러운 교회 같더라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언제나 “하나님 우리 교회는 하나님 앞에 아직 어립니다. 부족합니다. 흠이 많습니다. ”라고 겸손하게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는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기도를 원하십니다. 탕자와 같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실로 고백할 때, 우리의 허물과 주름잡힌 것과 얼룩진 것과 상한 것들을 하나님 앞에 내놓을 때 우리가 치유함을 받을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교회에 나오고, 심히 부족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높은 사람 앞에 가서 “저는 부족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것이 당연하지 “나는 아주 위대합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진실로 부족하기 때문에 의지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울수록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2. 환난 중에도 기도해야 합니다. 7절 이후의 말씀은 하나님께 피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는 내용입니다. 사자가 물어뜯듯이 많은 대적들이 우리를 물어뜯고 넘어 뜨리려는 어려움과 시험이 있습니다. 우리의 주변에 어려운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나를 보호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본문 “(시17:7) 주께 피하는 자를 그 일어나 치는 자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인자를 나타내소서 (시17: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고, 오른손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주의 성전은 우리가 피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해야 합니다. 지존자의 그늘 아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시91: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교회에 피하는 것이 하나님께 피하는 것입니다. “(시91:2)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요, 나의 삶을 보호해 주시는 분이라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라고 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시91:5)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시91:6)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밤낮으로 순간순간 일어나는 재난과 사고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어떤 환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피하면 이렇게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렇게 보호하시지만, 세상 사람들은 위험한 일을 당하면 친구는 물론 부모와 형제까지도 제치고 자기부터 살 요량을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도 남편이 잘못을 아내에게 전부 떠넘겼습니다. 얼마나 속상합니까 비록 아내가 잘못했을지라도 감싸주어야지 허물을 들추어내면 안됩니다. 환난을 당하면 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어떠한 어려움과 위험 앞에서도 지켜주십니다.
3.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시17:9)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17:10) 저희가 자기 기름에 잠겼으며 그 입으로 교만히 말하나이다 (시17:11) 이제 우리의 걸어가는 것을 저희가 에워싸며 주목하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시17:12) 저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원수가 사자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압제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에워쌌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잘되고 부유하게 살면 교만해져서 우리를 멸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속히 주님께로 피해야 됩니다. 우리가 새벽기도에 나오는 것은 내가 지키던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기업을 하나님께 맡기고, 내 연약한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조금 늦게 열매를 맺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보다 좀 늦는 것이 정상입니다. 성도의 길, 의인의 길은 빨리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천천히 자라닙니다. 성전을 비롯하여 유대 인들에게 유용하게 쓰여지는 종려나무와 백향목과 같이 천천히 자랍니다. 악인은 지붕 위의 풀과 같이 빨리 자라납니다. “(시37:2)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빨리 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빨리 자라는 나무는 좋은 나무가 아닙니다. 피아노를 만드는 나무들은 대부분 알래스카에서 가져옵니다. 알래스카가 얼마나 춥습니까 너무 추워서 빨리 자라지는 않지만 나뭇결이 매우 단단합니다. 알래스카는 1년 중 9개월 정도 눈에 덮여 있습니다. 9개월부터 눈이 오기 시작해서 이듬해 5월까지 옵니다. 그래서 자라나는 기간은 얼마 안되지만 나무는 아주 단단해서 좋은 재목으로 쓰입니다. 우리 나라는 모든 것을 너무 빨리 만듭니다. 아파트도 빨리 짓고, 사업도 시작하자마자 빨리 확장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면 오래 못 갑니다. 오래 걸려서 이룬 기업이 든든합니다. 돈이 있다고 하루아침에 사업을 시작하면 안됩니다. 모르는 분야의 사업을 시작하지 마십시오. 그 방면에 대한 지식도 많고 적성에도 맞는 사업을 시작해야 됩니다. 신앙생활도 서두르지 말고 기초부터 천천히 다져 가야 됩니다. 은혜를 받아 회개하고, 하나하나 고치면서 배우면서 나아가야 됩니다. 그래야 든든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기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는 지붕 위의 풀과 같이 일순간에 기르시지 않습니다. 풀은 빨리 바라지만 가을이 되면 모조리 말라버립니다. 웬만한 추위도 견뎌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조금씩 크는 나무는 강한 추위와 모진 비바람도 잘 이겨냅니다. 서태평양에 있는 괌 섬에 가보면 대나무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대나무는 목재로는 쓸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날씨가 춥지 않으니까 1년 내내 키만 자라는 것입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자라지만 쓸모가 없습니다. 아무 힘이 없습니다. 바람이 조금만 불면 모조리 넘어집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대나무를 보십시오. 어떤 바람에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추위를 견디며 조금씩 자라기 때문에 흔들릴지언정 절대로 꺾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생활도 이렇게 천천히 나가야 됩니다. 교회 안에서도 보면 믿음 좋고 기도를 많이 한 처녀들이 시집을 잘 갑니다. 이들은 말씀을 통하여 인생의 훈련을 받고 가기 때문에 결혼한 첫날부터 복을 받습니다. 그날부터 형통함이 따릅니다. “(사9:1)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기도를 많이 쌓아둔 분은 결혼 생활에서 열맴만 거두면 되는 것입니다. 결혼한 뒤에 심은 믿음의 나무는 40세가 넘어서야 그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을 원망하면 안됩니다. “(시13: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이런 기도를 해야 됩니다. “하나님 언제까지 이대로 두시렵니까 제가 언제까지 이렇게 가난해야 됩니까 우리 남편은 언제쯤 새벽시도에 나오겠습니까”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해야 그 집이 잘되는 것입니다. 저는 일찍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 하나님, 40세부터 축복해 주세요, 40세부터는 은혜를 주십시오. ” 하나님께서는 평강교회를 자립하게 하시고 첫 성전을 주시고 예배하게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나오신 여러분도 원수들에게 사방으로 욱여싸여 환난을 당하더라도, 기도하면 하나님께 응답받을 줄 믿습니다.
1. 겸손함으로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생각에 평강교회가 자랑스럽고 가장 은혜스러운 교회 같더라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언제나 “하나님 우리 교회는 하나님 앞에 아직 어립니다. 부족합니다. 흠이 많습니다. ”라고 겸손하게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는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기도를 원하십니다. 탕자와 같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실로 고백할 때, 우리의 허물과 주름잡힌 것과 얼룩진 것과 상한 것들을 하나님 앞에 내놓을 때 우리가 치유함을 받을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교회에 나오고, 심히 부족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높은 사람 앞에 가서 “저는 부족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것이 당연하지 “나는 아주 위대합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진실로 부족하기 때문에 의지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울수록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2. 환난 중에도 기도해야 합니다. 7절 이후의 말씀은 하나님께 피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는 내용입니다. 사자가 물어뜯듯이 많은 대적들이 우리를 물어뜯고 넘어 뜨리려는 어려움과 시험이 있습니다. 우리의 주변에 어려운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나를 보호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본문 “(시17:7) 주께 피하는 자를 그 일어나 치는 자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인자를 나타내소서 (시17: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고, 오른손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주의 성전은 우리가 피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해야 합니다. 지존자의 그늘 아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시91: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교회에 피하는 것이 하나님께 피하는 것입니다. “(시91:2)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요, 나의 삶을 보호해 주시는 분이라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라고 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시91:5)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시91:6)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밤낮으로 순간순간 일어나는 재난과 사고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어떤 환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피하면 이렇게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렇게 보호하시지만, 세상 사람들은 위험한 일을 당하면 친구는 물론 부모와 형제까지도 제치고 자기부터 살 요량을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도 남편이 잘못을 아내에게 전부 떠넘겼습니다. 얼마나 속상합니까 비록 아내가 잘못했을지라도 감싸주어야지 허물을 들추어내면 안됩니다. 환난을 당하면 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어떠한 어려움과 위험 앞에서도 지켜주십니다.
3.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시17:9)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17:10) 저희가 자기 기름에 잠겼으며 그 입으로 교만히 말하나이다 (시17:11) 이제 우리의 걸어가는 것을 저희가 에워싸며 주목하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시17:12) 저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원수가 사자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압제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에워쌌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잘되고 부유하게 살면 교만해져서 우리를 멸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속히 주님께로 피해야 됩니다. 우리가 새벽기도에 나오는 것은 내가 지키던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기업을 하나님께 맡기고, 내 연약한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조금 늦게 열매를 맺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보다 좀 늦는 것이 정상입니다. 성도의 길, 의인의 길은 빨리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천천히 자라닙니다. 성전을 비롯하여 유대 인들에게 유용하게 쓰여지는 종려나무와 백향목과 같이 천천히 자랍니다. 악인은 지붕 위의 풀과 같이 빨리 자라납니다. “(시37:2)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빨리 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빨리 자라는 나무는 좋은 나무가 아닙니다. 피아노를 만드는 나무들은 대부분 알래스카에서 가져옵니다. 알래스카가 얼마나 춥습니까 너무 추워서 빨리 자라지는 않지만 나뭇결이 매우 단단합니다. 알래스카는 1년 중 9개월 정도 눈에 덮여 있습니다. 9개월부터 눈이 오기 시작해서 이듬해 5월까지 옵니다. 그래서 자라나는 기간은 얼마 안되지만 나무는 아주 단단해서 좋은 재목으로 쓰입니다. 우리 나라는 모든 것을 너무 빨리 만듭니다. 아파트도 빨리 짓고, 사업도 시작하자마자 빨리 확장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면 오래 못 갑니다. 오래 걸려서 이룬 기업이 든든합니다. 돈이 있다고 하루아침에 사업을 시작하면 안됩니다. 모르는 분야의 사업을 시작하지 마십시오. 그 방면에 대한 지식도 많고 적성에도 맞는 사업을 시작해야 됩니다. 신앙생활도 서두르지 말고 기초부터 천천히 다져 가야 됩니다. 은혜를 받아 회개하고, 하나하나 고치면서 배우면서 나아가야 됩니다. 그래야 든든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기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는 지붕 위의 풀과 같이 일순간에 기르시지 않습니다. 풀은 빨리 바라지만 가을이 되면 모조리 말라버립니다. 웬만한 추위도 견뎌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조금씩 크는 나무는 강한 추위와 모진 비바람도 잘 이겨냅니다. 서태평양에 있는 괌 섬에 가보면 대나무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대나무는 목재로는 쓸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날씨가 춥지 않으니까 1년 내내 키만 자라는 것입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자라지만 쓸모가 없습니다. 아무 힘이 없습니다. 바람이 조금만 불면 모조리 넘어집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대나무를 보십시오. 어떤 바람에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추위를 견디며 조금씩 자라기 때문에 흔들릴지언정 절대로 꺾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생활도 이렇게 천천히 나가야 됩니다. 교회 안에서도 보면 믿음 좋고 기도를 많이 한 처녀들이 시집을 잘 갑니다. 이들은 말씀을 통하여 인생의 훈련을 받고 가기 때문에 결혼한 첫날부터 복을 받습니다. 그날부터 형통함이 따릅니다. “(사9:1)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기도를 많이 쌓아둔 분은 결혼 생활에서 열맴만 거두면 되는 것입니다. 결혼한 뒤에 심은 믿음의 나무는 40세가 넘어서야 그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을 원망하면 안됩니다. “(시13: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이런 기도를 해야 됩니다. “하나님 언제까지 이대로 두시렵니까 제가 언제까지 이렇게 가난해야 됩니까 우리 남편은 언제쯤 새벽시도에 나오겠습니까”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해야 그 집이 잘되는 것입니다. 저는 일찍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 하나님, 40세부터 축복해 주세요, 40세부터는 은혜를 주십시오. ” 하나님께서는 평강교회를 자립하게 하시고 첫 성전을 주시고 예배하게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나오신 여러분도 원수들에게 사방으로 욱여싸여 환난을 당하더라도, 기도하면 하나님께 응답받을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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