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위기를 극복하자 (시128:1-6)
본문
가정의 달 5월을 앞두고 SBS TV는 아동학대 현실을 고발하는 충격적인 프로 그램을 방영했다. 27일밤[추적, 사건과 사람들]은 친아버지와 계모가 6살짜리 어 린 아들을 굶기고 매질하며 심지어 다리미로 등을 지지는 등 비인륜적 잔혹을 일삼는가 하면, 며칠 굶고 사탕을 훔쳐먹으려던 딸을 매질 끝에 죽여 안마당에 암매장한 끔직한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 프로를 본 사람들은 우선 이런 일이 우리가 살고있는 이땅 우리사회에서 일 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감당할 수 없는 절망을 느끼는 것 같다. 경제위기체제의 경제 적 어려움이 심화하면서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인간가치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고 공동사회의 윤리가 무시되는 양상이 자주드러나고 있다. 이제 더이상 인간적인 품위를 유지하며 살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진 사람들이 자포자기로 자식을 죽이 고 온가족이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자주 보도되고 있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부모와 자식들이 너무나 손쉽게 헤어져 버리는 정상이 그것이다. 고통을 나누어 가지려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함께 있으면 고통스러우니 헤 어져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고통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질곡을 이겨내야 한 다는 의지보다 우선 그 고통을 피하고 보자는 단순논리에서 발생하고 있는 불행 스런 조짐이다. 헤어져 산다는 단순한 편리만 생각하고 그런 결과가 낳을 상처와 불행은 생각하기 조차 싫다는 배타적 논리가 앞선 결과이다. 우리 사회에 떠돌고 있는 소문과는 달리 이혼소송이 급증하고 있는 거리로 떠도는 남편의 수효도 늘 어나고 있다는 통계는 우리들 가정도 경제와 함께 도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서울 근교에 무수하게 널려 있는 러브호텔의 낮시간은 늦게 도착하면 투숙할 객실이 없다는 신문보도도 바로 우리 가정의 위기가 어디쯤에 당도해 있는가를 가슴아프게 전달해주는 사례다. 이런 사례들에는 그냥 가정이 흔들리고 있다는 편안한 말로 표현해서는 안될 심각성이 내포되어 있다. 자포자기에 빠진 사람들이 일시적 충동으로 한번 저질러 보는 불장난쯤으로 생각해선 안될 것이다.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듯이 그런 말초적인 만남 들이 엉거주춤하게 묵인될 경우 우리사회는 멀지 않아 이혼,자포자기,자살이 급 증하고 원칙의 혼돈과 가정이 가져야 할 정체성의 기초가 흔들리고 말 것이다. 가정을 빗대어 만든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고층 아파트에 잘 사는 가정에 끔찍한 불상사가 생겼다. 부부싸움이 격해진 나머지 남편이 그만 가스 밸브를 열고 방에다 불을 붙였다. 집안은 `펑'하는 소 리와 함께 순식간에 불이 났고 옆방에 있던 아들 녀석이 말릴 틈도 없이 창문으 로 뛰어 내렸다. 엄마 역시 고층에서 뛰어 내렸다. 남편은 홧김에 한일을 후회하 고 소화기를 찾았지만 없었다. 그래서 별 수 없이 창문으로 몸을 던졌다. 불을 피했지만 고층에서 떨어졌으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세사람이 하나도 다치지 않고 모두 무사했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남편은 `제비족' 이고 아내는 `날라리'이고 아들은 `비행청소년'이었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땅에 네 개의 기관이 있는데 그것은 국가, 학교, 교회, 가정이다.
그런데 이 네 개의 기관을 통하서 국가나 민족 흑은 한 문화나 인류전 체가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 네 개의 기관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곳이 가정이다. 이 가정이라는 것은 씨, 온상, 못자리, 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흔들리게 되면 기초가 전부 흔들리게 되고 뿌리채 다 없어져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최후에는 사회가 타락하고 학교가 타락하고, 교회가 부패한다. 할찌라 도 가장 최초의 학교이며 교회이며 사회인 가정을 우리는 사수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 가정을 기도와 믿음으로 지키고 성령님으로 깨꿋하게 하며 말씀으로 사 수해야 되겠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가정이맑아야 사회가 맑다. 높은 사람이 올바를때 아랫 사람의 행실이 바로 되기 때문에 그 사 회 속에서 가정이 부패하면 그 부패를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해리슨은 말하기를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는 교회와 가정 뿐이다'라고 했다. 가 정이야 말로 가장 복된 곳이며 이 땅에서 맛볼 수 있는 유일한 천국의 모형이다. 가정은 소우주라는 말이 있다. 가정은 작은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다. 남편은 왕 이며 아내는 왕비며 자녀는 왕자며 공주다. 즉 가정은 사랑이 넘치는 행복의 보 금자리다.
그런데 오늘의 가정의 현주소를 살펴보면 에덴 동산의 기쁨보다는 지 옥에 더 가까이 있는 느낌을 갖게 된다. 기쁨의 찬송과 환희의 웃음보다는 가정 이 병들어 앓고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부부간의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가정, 자녀문제로 염려하는 가정, 부모와 자녀간에 고부간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 가정 이 있다. 왜 우리의 가정이 흔들리고 있습니까 무엇이 우리 가정의 위기입니 까 그 실상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해 가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 아이들에 대한 문제이다. 요즘 아이들은 자기들 밖에 모르는 극단의 이기주의자들이 되어가고 있으며, 어 른들은 안중에도 없다. 어른들에게 예의범절을 지키지 못하는 버릇 없는 아이들! 개인주의적 삶으로 공동체 의식이 없어져 버린 아이들의 문제가 오늘날 우리 가 정의 위기이다. 왜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까 그것은 가정교육의 결여 때문이다. 아이들이 기가 죽는다고 야단을 치지 않기 때문에 버릇 없는 아이들이 되어 가는 것이다. 공부 잘하는 것이 최대의 효도라고 생각하고, 공부하는 자식을 상전으로 떠 받드는 일, 오직 성적에만 관심을 두고 도덕 교육, 인격 및 예절 교육에는 등한히 하는 부모들에게 문제가 있다. 모든 가치관을 성적에만 두는 가정교육이 문제이다. 성 적 때문에 친구들과 경쟁을 하고, 경쟁을 해서 이겨야 하고, 그러다 보니 `친구' 라기 보다는 경쟁자, 적대자가 되어 버리는 살벌한 관계에 놓이게 된다. 여기에 서 친구와 협력한다든지 하는 협동정신, 봉사정신, 희생정신 같은 것은 생각 할 수가 없다. 따라서 공동체 의식이 없어지고 극히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인격 이 형성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가정의 위기로 본다.
둘째로, 요즈음 가정의 주부들의 문제다 즉 아내와 엄마들이 문 밖으로 나돌며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날 우리네 가정의 위기라고 진단을 하고 있다. 오로지 남편과 자식들만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며 살아온 주부들이 심한 허탈감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것은 어느정도 사 회적으로 출세한 남편은 직장에 매인 `이방인'이 되어 버리고, 온통 애정과 관심 을 쏟아 키워 놓은 아이들로부터는 따돌림을 받게 된 아내와 어머니들의 슬픈 현실이다. 남편과 자식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주부들은 심한 소외감, 허탈감, 허 무감을 갖게 되면서 방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심리적.정신적 공 허, 허기짐을 채우려는 몸부림들이 주부들로 하여금 밖으로 돌게 한 것이다. 우리의 아내와 어머니들에게는 건전한 활동이 있다. 서예나, 꽃꽂이, 운동, 노래 부 르기 모임등 좋은 취미생활을 통해 그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건전치 못한 활동들, 즉 치맛바람, 부동산 투기, 유흥업소 출입과 탈선 행위, 과소비, 퇴폐풍조 등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오늘날 우리의 가정을 위태하게 한다.
셋째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버지'가 흔들리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네 가정의 위기라고 한다. 일찍이 겪지 못한 경제위기체제의 모진 시련은 마침내 가정해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기에 이 참담한 상황은 6 25 이후의 최대 국난(國難) 으로 까지 일컬어진다. 대량실업의 태풍은 우리들의 안식처요 둥지인 가정마저 붕괴시키고 있다. 가계의 소득감소와 자산가치 폭락이 개인파산 사태를 부르는 것이다. 부모의 가출과 이혼으로 아이들만 남은 가정, 가족구성원이 뿔뿔이 흩어진 도심의 폐가(廢家)현상, 늘어나는 노숙자, 그리고 가 족동반 자살을 포함한 자살급증 등은 무너져내리는 가정의 단면이다. 그리하여 장래를 짊어질 어린 새싹들이 회복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한다. 하지 만 이 매서운 신(新)보릿고개는 이제 막 시작일 뿐이다.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정신없이 일에 파묻혀 살아야 하는 아 버지들! 이들은 가정에 머물러 있을 시간이 없다. 요즈음의 아버지들은 가정에서 단지 '하숙생'일 뿐이라고 한다. 때문에 자녀들과 아내와 깊은 대화를 나눌 시간 을 갖지 못하게 되고 그것은 곧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외톨이'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의 아버지들은 아내와 자식이 낯설게 느껴지는 가족속의 '타인'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들은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동시에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설득 력을 잃어 버리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아버지들은 자신에게 편안함을 제공해 주는 대상을 바깥에서 찾아 방황하게 되고, 따라서 탈선과 외도의 길을 걷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의 가정을 지켜온 것은 전통적으로 '아버지의 권위'가 가정의 버팀 목의 역할을 한 것이었는데 이것이 흔들리면서 부터 우리의 가정이 흔들리게 되 었다는 것이다.
가정의 본질적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실직 이나 위기의 가계가 큰 시련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온갖 고초를 이겨온 인생의 선배들은 특히 625전란이나 보릿고개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 경제위기 시련 정도는 반드시 극복될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한다. 예부터 가화만사성(家和萬 事成)이라 했다. 가장(家長)의 사업 부도와 실직으로 부부관계가 악화돼 이혼이 급증하고 생활고 로 노부모와 어린 자식 돌보기를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무의탁 노인 수용시설이나 영아원육아원등에는 올들어 할아버지할머니나 어린 아이들을 맡기겠다는 상담전화가 지난해의 2-4배로 늘어났다 한다. 가정 해체의 안타까운 징후들이다. 경제적 파산의 고통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의 자살행렬 또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검 강력부가 집계한 3월말까지의 자살자 현황에 따르면 올들어 하루 30명 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우리 가정이 이처럼 위기에 처한 적은 없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외침을 겪고 극심한 궁핍의 시련을당하면서도 우리는 가족 이라는 따뜻한 울타리에 기대어 혹독한 어려움을 극복해 왔다.그 가족이 지금 해 체되고 인륜이 무너지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정은 우리 사 회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다.최소 단위의 공동체인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와 나라도 건강해진다. 흔들리는 가정을 바로 세우는 것은 침체된 경제를 회복하는 일 보다 더욱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국가 차원의 사회 안전망이 갖추어지지 않은 우리 상황에서 사회통합의 핵심역할을 해온 가정해체를 방치하면 사회전체의 위 기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 및 아동 복지시설의 확충등 국가 차원의 대 책과 종교사회단체의 프로그램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족 구성원 자신의 각 성과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우리 모두 남편과 아내로서,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아들과 딸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되돌아 보자. 가정이 하루의 피로를 풀고 활력을 줄 수 있는 안식처의 역할을 유지한다면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은 오히려 가족의 결속을 더욱 다지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아버지가 가출한 가정, 어머니가 몸져 누운 가정, 밥그릇이 빈 아이들의 방황이 위태롭게 범죄로 이어지리라는 것이 초읽기로 되어 있는 가정. 이런 가정을 두고 가정의 달 5월은 그야말로 잔인하게 웃으며 오고 있는 것이다.
넷째로, 갈 곳이 없는 노인들! 이것이 우리 가정이 안고 있는 문제이다. 오직 자식들만을 위해 살아오신 늙은 부모님들이 마음을 붙이고 여생을 편안 하게 보낼 곳이 없다는 것이다. 핵가족으로 뿔뿔이 흩어진 자녀들의 가정., 시집 식구보다 친정식구가 더 가까운 며느리가 불만스럽고, 며느리와 함께 사돈집 출 입이 잦은 아들들에게서 서운함과 소외감을 느끼는 노인네들이 많아지고, 고부간 의 갈등으로 인하여 머느리들이 시부모 모시기를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요즈음 이런 일들로 인하여 양로원을 찾고 있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렇게 하 여 자식들과 함께 사는 노인들이 점점 줄어들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도 서구사회처럼 사회보장제도로서 노인복지문제가 시급해 졌다. 이상에서 지적한 가정의 위기들은 우리 가정의 상처이며 아픔이다. 우리 가정 의 질병이다. 이 상처를 어떻게 싸맬 것이며, 병든 가정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 가 건강한 가정을 건설하기 위한 묘안은 없는 것인가가 오늘 우리의 과제이다. 1852년 4월 10일 미국의 한 시민이 알제리에서 사망했다. 그후 31년이 지난 뒤 미 정부는 그 시민의 유해를 가져오도록 했다. 뉴욕항에 유해를 실은 군함이 도 착할 때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환영예포로 뉴욕시가 진동했다. 그 주인공은 전공 을 세운 위대한 장군도 아니요, 노벨상을 받은 인물도 아니다. 세계적인 정치가 나 예술가, 발명가도 아니다. 그는 단지 온 세상 사람이 즐겨부르는 노래를 지은 사람일뿐이다. 그는 `Home, Sweet Home'이라는 유명한 노래를 지은 존 하워드 패인이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집 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피고 새 우는 내 집 뿐이리' 가정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우리 가정의 무너진 곳은 다시 수축하고 아름답고 튼튼한 가정으로 만들어야 한다.
1. 모든 부모는 자녀교육의 책임자
첫째는 자녀에게 말쏨을 가르쳐야 한다. 신명기 60 절 말씀에 네 자녀에 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 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른할 것이며 라고하였습니다. 말씀이 뼈에 새 겨지고 마음에 새겨지고 삶에 새겨져 의식적 흑은 무의식적으로 새겨지도륵 기 회가 있을 때마다 상고해야 한다. 다음으로, 자녀가 순종하고 부모가 공경받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이런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목욕탕에 갔다. 아버지가 먼저 뜨거운 탕속에 들어가면서 "아 흐! 시원하다"고 하며 아들이 보고 "얘! 시원하다. 어서 들어와라" 그랬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정의 표현도 구부러져서 예로부터 반어법을 많이 사용했지요. 아버지가 말씀하시니 말씀에 의지해서 시원한 줄알고 목욕탕 속으로 첨벙 들어 가니 `아이쿠' 뜨겁거든요. 아들이 하는 말이 "아이고 뜨거워! 세상에 믿을 놈 하 나도 없네" 그랬답니다. 아버지의 말에 실수가 있었지만 아들은 더 나쁩니다. 목 욕을 한 부자가 배가 고파오는 길에 빵집에 들어 갔다. 목욕을 하고 시장하니 얼 마나 먹고 싶겠어요. 그래서 두 부자가 들어가서 빵을 세 개시켰다. 이럴 때는 2 개나 4개가 좋은데 3개를 시켰어요. 한 개씩 맛있게 먹고 하나가 남았다. 아들이 속으로 `아버지가 나에게 양보하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버지의 검은 손이 쑥 나오더니 빵을 덥석 집어 입속으로 넣어버렸다. 아버지가 결국 두 개를 다 먹고 나가면서 "야! 배부르지 가자" 그러니까 아들이 "흥! 하나먹고 배부르면 두 개 먹은 놈은 배가 터지겠다. 터지겠어" 라고 혼자 중얼거립니다. 아버지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식이 괘씸하고, 윤리가 땅에 떨어지고 애비도 몰라보고. 그래서 화가나서 "들어왓! 종아리 걷어!" 하며 매로 칠려니까 이번에는 이 아들이 무어 라 하냐면 `쳐라! 쳐! 니새끼 죽지 내 새끼 죽냐"고 하더랍니다. 이만큼 우리 사회가 병들고 자녀들이 반항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반항하 다가 해결이 안되면 옥상에 올라가 떨어져 자살을 한다. 부모의 권위가 서질 않 아요. 그러나 여기에서 잘못된 자녀만을 탓하고 나무라는게 아니다. 동시에 부모 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비행청소년 뒤에는 문제부모가 많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오늘날 자녀 교육은 교양과 훈계가 아닌 과보호이다. 절제없는 부모 사랑 때문에 아이를 버린다. 요즘은 아들 딸을 자기 재산이나 허영심의 도구로 생각하 고 무조건 좋은 것, 과잉사랑, 과잉보호 한다. 결국 자녀에게 나쁜 습관, 잘못된 인생관을 심어 주는 것이지요. 성경에서 부모에게 순종한 자녀의 모범으로 이삭이 나온다. 좋은 아버지 가운데 표본으로 아브라함을 들수 있다. 그는 얼마나 철저하게 교육 을 시켰는지 자손 만대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게 하였다. 아브라함은 매우 철저하고 위대한 교육의 아버지였다. 이삭은아들 가운데 표본적인 아들이다. 아 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였기 때문에 순종하는 아들을 낳았다. 아들이 아버지에 게 순종하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는 하나님께 순종하여야 한다. 아버지가 하나님 께 효도해야 아들도 아버지에게 효도한다. 성경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 치기 위해 모리아 산에 3일 길율 갈 때였다.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J라고 어린 이삭이 물었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 고 대답했다. 아브라함 이 모리아 산 꼭대기에서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 했을 때도 이삭은 순종하였다. 이것은 예수님의 그림자인 것이다. 자녀들의 을바른교육을 위해서는 좋은 아버지 의 상을 부각하고 그 자녀들이 나가는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가를 항상 살펴야 한다. 교양과 훈계가 없이 자녀를 기르면 불효자로 만들 위험이 있는 것이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떠합니까 어떤 시인은 "인간이 낙원을 잃어버린 이후에 이 낙원과 가장 비슷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정이다. 가정을 잃은 사람은 모든 걸 잃어버린다"고 했다.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이 되어서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행복 한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육체적인 성장만을 위해서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성장을 계획해야 한다. 영적으로 성장하였다는 것은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먹고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는 자녀교육을 할 매 육체만 키우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흔을 키우는데도 책임이 있옵니다. 그렇기 때문께 아버지는 목사요 교사요. 제사장인 동시에 왕과 예언자적인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절대적 권위와 책임은 자녀교육에 필요하기 때문에 주신 권이다.
하나님해서 아버지에게 이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사명을 책임지라고 맡겼으니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를 행해 야 한다. 우리가 어찌그 자녀를 다 키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자녀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성경으로 기도로 키우시고 우리는 청지기 노 룻만 해야 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생활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한다. 말로만 하고 생활에서 본을 보이지 못하면 자녀들은 반항을 하게 된다. 가령 자 녀들에게 기도를 가르칠 때에, 어떤 기도문제를 놓고아이들율 동참시키면 된다. 저는종종 아이들에게 기도제목율얘기해 주고 기도하게 하며 또 아이들 자신의 기도문제를 얘기하게 하고 함께 기도한다. 자녀교육에 있어 기도와 더불어 중요 한 것은 행동으로 본을 보이는 것이다. 본을 보인다고 해서 예수님처럼 한 점 흠 도 없이 거룩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성실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죄를 범하고 또 회개하지만 그러나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노력 가운데 기도와 찬양과 밀씀 속에서 본이 되도륵 해 야 한다. 화가 날 때도 예수님 때문에 참고 교만하지 않으며 시기하지 않는 부모 님을 자녀들이 보았을 때 예수님을 믿게 되고 이것이 곧 산 교육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자녀교육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지만특히 어머니의 책임은 막중한다. 이것은 유대인 사회를 통해서 보면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 녀들을 교육하는데 있어 법을 정하여 모든 책임을 어머니에게 부과시키고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부모 모두가 유대인이면 자녀도 유대인이며 부모중 아버지는 유 대인이고 어머니가 외국인일 경우께는 유대인 시민권을 주지 않다. 특별 수속을 발고 개종을 하여야 유대인이 된다.그러나 아버지가 외국인이고 어머니가 유대인 인 경우,그 자녀는 자동적으로 유대인이 된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자랄 때 어머 니로 부터 그 성격과 사상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자녀교육에 있어 차지 하는 비중은 이만큼 크다는 것이다. 모세는 아기일 때,갈대상자에 넣어져 강물에 떠내려가다 바로의 딸 손에 건져져서 바로의 궁전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자기의 생모인 유대인 유모를 통해서 교육받았기 때문에 유대인의 사상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물려 받아 부와 권력이 있는 바로의 궁을 뛰어나을 수 있었고 유대민족을 이끄는 흘릉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지만 유대인인 어머니의 역할이 컸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의 교육정도가 올바로 되었느냐, 안되어 있느냐는 그 어머 니의 기도가 얼만큼 있었느냐 또는 그 어머니가 가정생활을통해 얼마나 본이 되 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아이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해 주고 성경을 교재로 아이들을 교훈하며 아이들의 장점을 살려서 사기를 욕들아 주는 것이 올바른 교 육이며 하나님의 귀한 자녀로 키우는 지름길인 것이다. 어머니 한 분은 선생님 백 분에 해당하고 목사님 열 분에 해당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가정에서 부 모에게 배우는 것이 진짜 잘 배우는 것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녀들이 부모님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보고 자기들도 순종하는 것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아이들의 부모가 되기 전에 내 아들의 형제가 된다. 하나님 아버지 껴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이다. 그 러면 아들은 어떻게 배우게 됩니까 자기 아버지에게서 배우게 되지요. 자기 아 버지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을 보게 되면 아들도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할 것을 배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이 신앙생활의 모범이 돼야 한다. 저의 경험을 보면 아이들을 위해서 먼저 무엇을 하면 복잡하게 되고 실패한다. 특별히 저희는 여러가지로 경험했다. (마 6:33) 우리는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붙잡는 기도라고 할 수 있다. 내놓지 않고 붙잡고 주님께서 응답하실때까지 기도함 으로써 우리 자녀들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을볼수 있다고 확실히 믿는다(사 62:6-7).
하나님으로 하 여금 쉬지 뭇하시게 하는 기도, 야곱처럼 주님께서 나에게 축복해 주실 매까지 우리 자녀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때까지 내놓지 않고 주님만 붙잡고 기도 하겠 다고 맹세하시면 주님께서 웅답하지 않으실 리가 없다. 모세의 중보기도, 엘리야 의 기도. 한나의 기도, 이들은 붙잡는 기도를 끝까지 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약속 하신 그대로 이루어 주신 줄 압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믿음이 필요한다.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그런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나 들 으면서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하시다 보면 어떤 때는 쉽게 기도할 때도 있고 금 식하면서 눈물 흩리면서 기도 할 때도 있옵니다. 부흥목사 엘리슨이라는 분은 말씀하시기를 "지옥의 모든 귀신들이 자기들의 힘을 합쳐서 막더라도 기도하는 어머니로 부터 아들이나 딸을 빼앗아 갈 수 없다고"했다. 부모님들은 주님 안에서 이 열쇠를 가지고 얼마든지 승리하실 수 있다 부모가 아무리 바쁘다 할지라도 아이들에게 관심을 써주고 1년에 한 두 번은 함께 야외로 소풍을 가거나 운동을 하며 아이들을 달래주고 감싸주는 것이 필요 하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통해 주신 기업이기 때문께 잘 보살피고 지도해야 되는 것이다. 이 기업을 소출히 할 때 우리는 하나성의 뜻에 어굿나는 것이 되므로 없는시간도 쪼개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가지며 그들을 흐뭇하게 해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귀한 기업을 잘 보살피고 양육하며 끊임없는 기도 와 성경밀씀을 통한 교훈을 가슴에 새겨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흘륭한 자녀들로 키우는데 다같이 노력해야하겠다. 워너 감독의 말대로 가정은 존재의 표준이다. 이세상 모든 제도는 인간이 만들었 지만 가정 제도만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를 통해서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만 드신 제도다. 환원하면 가정은 신적 제도요 신께서 역사하는 최소단위의 현장이 라고 하는 이야기가 된다. 가정이 튼튼하면 사회, 국가가 혼란스러워도 문제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가정이 파괴되기 시작하면여타 모든 제도와 조직은 무력해 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가정은 존재의 표준이요 저 천국의 현재적인 장소인 것이다. 가정은 행복이 샘솟는 곳이어야 하고 창조의 원천이어야 한다.그래야 함에도 불구하고 깨어지고 갈라지고 부서지고 무너지는 가정이 늘어만 간다는 데에 현대 가정의 비극이 존재한다. 오늘 아침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가정은 참으로 행복하십니까 남에게 보이려고 행복한 척 얼버무리는 그런 대답 말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의 대답을 원합니다. 참으로 행복하십니 까 가정은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요 최소단위의 공동체이다. 가정이 무 너져서는 건강한 사회공동체의 존립은 가능치 않다. 가정의 붕괴만은 막아야 한다. 인류 평화의 핵은 가정이다.
그러므로 가정은 평화의 핵인 개인을 만들어 내고 인간 생활의 기본인 사회를 이루어 나간다. 결코 과장이 아니라 가정은 곧 사회 의 근원이란 점에서 누구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회의 근원이 되는 것은 가정이 사랑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화목의 땅이며 아름다운 하늘이므로 가정 은 모든 것의 위로와 낙원의 대명사로 불려왔다. 가정이 이 사회의 반석이 아니 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근본의 반석이 흔들리고 있다. 아버지의 실직, 자존심을 팔아도 밥이 되지 않아 몸져 누운 어머니의 슬픔으로 가정은 붕괴되고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자녀들은 자칫 부모를 경멸하게 되고 무능력의 존재로 치부하게 되어 부모가 마 땅히 누려야할 존경과 사랑은 휴지처럼 버려지는 심각한 사태가 가정안에 실재 로 일어나는 일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문 방송의 뉴스와 주변에서 들리는 얘기는 온통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실직자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 어제까지 그 당당하던 가장이 실직의 어려움으로 가출해 거리의 노숙자가 되었다는 얘기, 경제위기형 가정파탄이 급증하고 있고 이 때문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실제로 각종 통계는 오늘의 실상을 웅변한다.
지난 3월까지 실업자가 1백40만명 이며 실망실업까지 합친 실질실업자수는 4백만명에 육박하고 있다는 추산이다. 거리의 노숙자는 지난해의 1천명에서 4천15천명으로 증가했으며 실직과 생활고 로 자살하는 사람이 하루에 30명이라는 통계도 있다. 서울가정법원에 협의이혼을 신청한 건수는 지난해 11월에는 4백72건이었으나 지난 3월에는 66%나 늘어난 7 백84건이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고통받고 있는 사람은 어린이들인 것 같다. 서 울의 한 아동상담소에 의하면 이곳에 맡겨지는 숫자가 지난해에는 월평균 30명 이었으나 올해는 50명으로 늘었으며 아동학대상담소에 들어오는 신고건수는 지 난해보다 10배로 늘었다고 한다. 결식아동의 숫자는 교육부 집계로도 5만명에 이 르고 있다. 슬프다는 말로도, 가슴이 아프다는 말로도 그렇다. 하늘과 땅이 무너지는 것 같 다고 해도 응어리는 풀려지지 않는다. 그만큼 지금 우리의 사태는 심각하다. 가 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면 국가가 무너지는 것은 상식이다. 국가가 무너지면 개인의 삶은 생명을 상실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 가 정이 튼튼해야 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아침에 해가 뜨는 것이 무섭다고 말하는 가장이 있다. 부양을 책임져야 할 식솔들이 있다. 그 식솔들 중에는 노모도 끼어 있다. 앞으로의 끼니를 걱정하는 것을 차마 노모에게만은 보이고 싶지 않다. 집 이 두렵다. 아니 가정이라는 것도 얼마나 유지하게 될는지 모른다. 가족이란 말 은 따뜻하다. 가정이란 말은 평화롭다. 우리가 만약 따뜻함과 평화를 잃는다면 우리가 다음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끔찍한 상상이 떠오른다. 고통을 두려워하되 그것과 정면대결하여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60년대식의 담 대한 의지와 강단이 어느새 한낱 물거품이 되어버린듯한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 60년대 그때 우리 국민소득은 두자리 숫자였다. 황량한 청계천 좌우에 다닥다닥 붙어 끝없이 늘어서 있던 판잣집들의 루핑지붕은 비만 오면 일제히 콩볶는 소리 를 냈다. 걸핏하면 공중변소의 오물이 흘러 넘쳤고, 파리떼가 들끓었고, 조무라기들은 맨 발로 고압선 아래 길의 뽀얀 흙먼지 속에서 돼지 오줌보를 팽팽히 불어 만든 공 을 차고 놀았다. 한켠에선 드잡이하는 악다구니 소리, 또한켠에선 막소주 한잔 에 고단한 삶의 무게를 털어내는 유행가소리가 하루 온종일 그치지 않았다. 원인불명의 화재가 연거푸 일어나 수천명이 그나마 보금자리를 잃고 유랑걸식 으로 내쫓긴 것이 그 무렵이었다. 내가 머물렀던 작고 음습한 사글세방도 물론 불탔다. 한번 불타고 말면 판잣집들은 살림 한가지 건질 게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자지러지는 어린것들 셋씩, 넷씩, 등이며 옆구리며 어깨에 들쳐메고 불탄 자리를 헤집고 다녔다. 타다 만 신발 한짝, 찌그러진 연탄집게, 그을린 양은냄비 하나만 찾아내도 그것이 곧 삶의 밑천이 되었다. 왜들 죽으려하지 않지. 그런 상황에서도 도무지 죽으려고 하지않는 사람들이 이상하기까지 했다. 사정 이 그러하면, 이런 놈의 세상 너랑나랑 칵 죽고 말자, 할사람도 있을 법 하건만, 삼 세끼 중 한끼만 배불리 먹어도 은혜로왔던 그 육십년대 후반, 절망에 차서 제 명줄 제가 끊었다는 사람을 눈씻고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아이엠에프(
경제위기)로 상징되는 오늘의 경제적 시 련을 극복할 것이다. 경제를 잘 알아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 가. 자원도 없는 동강난 반도의 땅에서 찌그러진 양은냄비 하나에 의지해 하루 열 몇 시간씩 일해 마침내 만불소득의 기적을 만들었던 민족이다. 유례가 없는 수많은 외침을 받아온 역사적 조건 속에서나, 극단적인 궁핍의 시련 속에서나, 우리는 우리스스로를 버리거나 부정한 적이 없다. 버리기는커녕 그 고통을 오히 려 신명과 해학으로 승화시켜 풀어내고, 거기에서 다시 생명력을 얻어온 민족이다. 그러하니, 어찌 우리가 망할수 있겠는가. 그러나 요즘엔 솔직히 그런 믿음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가 생겨나고 있다. 한때는 민주화를 위해 꽃같은 젊음들이 스스로 불타 죽더니 또한때는 잘못된 온갖 사회 문화적 병리에 내몰리듯 철없는 십대들이 그리 죽더니, 이젠 어린것까 지 앞세운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사업실패나 실직의 절망을 이기지 못한채 스스 로 명줄을 끊고 있다. 왜 죽는가. 사업실패나 실직의 절망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보다 더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온 우리 민족의 힘있는 전통과 견줘보건대, 너무도 단순하고 상투적 인 논리이다. 우리가 결코 간과하지말아야 할것은 왜, 우리가 아이엠에프라는 시 련을 극복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어떻게해서든 지금의 경제적위기만 극복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제제일주의의 사고는 절대로 저들의 끔찍하고 비통한 죽음의 행진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저들의 죽음 뒤에는 우리가 언필칭 기적이라 고 불러온 재빠른 경제성장을 위하여 우리가 상실하거나 스스로 버렸던 가치있는 영혼의 덕목들이 지금도 여전히 폐기처분의 팻말을 달고 버려져 있다. 가령 생명에의 외경감, 이웃과 가족간의 참된 위로와 이해, 더불어 함께사는 공동체, 정직성으로 뒷받침되는 절제있는 삶의 지혜 따위가 그것이다. 그놈의 알량한 만 불소득이 가져오는 편이성과 물질적 풍요를 얻기 위해 대화의 채널을 막고, 이해 와 조화를 잃고, 그리고 결국 황량한 인간소외의 막다른 길로 우리는 달려온 것이다.
오늘의 위기 또한 물질적으로는 바로 그 길로 달려온 결과가 불러온 것일 진대, 왜, 무엇을 위하여 지금 허리띠를 졸라매고 함께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없다면, 설령 이번의 위기가 극복된다 하더라도 행복해지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위기는 강조될 수 있지만 불안이 강조되는 사회는 희망이 없는사회이다. 파스빈더감독의 영화제목처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할 뿐이다. 내가 해고되지 않으면 동료를 쫓아내야한다는 식으로 인간균열이 끝없이 허용되는 아이엠에프 극복은 의미가 없다. 그런 방법으론 죽음에 이르는 끔찍한 소외를 계속 불러올 것이며, 또 경제위기가 극복된 다음의 먼 훗날까지 인간균열의 상처는 극복되지 않고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정의 달이 불빛속에 다가오고 있다. 과연 이것을 두손놓고 바라만 보아야 할 것인가.정부는 경제구출을 과거의 잘잘 못에서 가려 내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요직은 자기들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만 채우려는 욕심에 급급하고 있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 과거 행정 담당자들이 잘못된 일에 대하려 그것의 진위를 가려내는 것이 바쁜 것이 아니라 경제위기시대가 낳은 사회의 병폐에 대한 치유책을 서둘 때 이다. 특히 경제위기한파 이후 가정의 안정을 위협하는 사회적 환경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어려운 처지를 비관한 일가족이 동반자살을 쉽게 택하고 직장 잃은 수많은 가 장들이 일자리를 찾아 거리를 헤매고 있다.아예 노숙까지 하는 등 생이별 생활을 하고 있는 처지다. 10대 임산모가 나오고 여중생이 예사로 집단 자살을 한다. 엊그제는 청소년이 동 거를 나무라는 어머니를 동거녀와 함께 목졸라 살해한 끔찍한 일도 일어났다.
그 경우에 우리가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절망한 부모들이 혹시 자식의 생명권을 무시하고 동반자살한 것이 아니냐 하는 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도, 심지어 부모 조차 자식의 생명을 마음대로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생명관이기 때문이다. 경제위기한파가 휩쓸면서 가정이 급속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사정도 따지고 보면 가정에서 문제가 누적되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새로운 환경에서 가정과 가족을 생각할 때다. 갑작스러운 실직이 죄가 아닌 한 가장들도 더 이상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는 안된다. 고개 숙인 아버지를 무능 력자로 보는 가족이 있어서도 안된다. 가정은 화초와 같다. 더 큰 이해와 위로, 정성스런 노력으로 화초를 가꾸어야 한다. 오늘의 위기를 벗어나 도약하는 길이다. 우리가 지켜야할 가장 소중한 가치인 가정이 무너져가고 있는 현실을 맞아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펴야하고 사회와 가정은 또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야 할 때다. 정부는 실업대책과 사회보장제도를 좀 더 실효성있게 세우고 집행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적어도 국가 구성원들이 밥을 굶거나 그런 문제 때문에 가정이 부서지는 일은 막아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나만 살면된다"는 왜곡된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이웃을 위해 베풀 줄 아는 분위 기를 만들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 구성원들이 스스로 가정 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다.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고 사랑함으로써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 당연히 가정의 본질은 사랑이며 그 지고(至高)의 가 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가족구성원이 서로 사랑하며 화합할 때 어떤 고난 일지라도 충분히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가정은 우리 사회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다.최소 단위의 공동체인 가정이 건강 해야 사회와나라도 건강해진다. 흔들리는 가정을 바로 세우는 것은 침체된 경제 를 회복하는 일보다 더욱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국가 차원의 사회 안전망이 갖추어지지 않은 우리 상황에서 사회통합의 핵심역할을 해온 가정해체를 방치하 면 사회전체의 위기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의 달은 그간 소홀했던 가족 간의 끈끈한 정을 재확인 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사실 가정 문제는 어느 하루,어떤 한달 만에 끝내서는 안되는 일상의 중요한 관심사다.가정은 구성원들의 안식처며 그 울타리 안에는 교육이 있고 사랑도 있는 사회 최소 구성 단위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올해 가정의 달은 마냥 즐거워 할 수만은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우리 모두 남편과 아내로서,아버지와 어머니로서, 아들과 딸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되돌아 보자. 가정이 하루의 피로를 풀고 활 력을 줄 수 있는 안식처의 역할을 유지한다면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은 오히려 가족의 결속을 더욱 다지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줄곧 앞만 보고 달려온 게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소득 1만달러 등 물량위주의 성장패턴엔 삶의 질이란 내실을 결여하고 있었음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국민들을 그토록 허망한 거품에 잠기게 했던 오도(誤 導)에 정부는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풍요의 시대에 나약하고 이기적으로 자란 아이들이 보다 건강하게 강인하게 성 장할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루 세끼중 한끼만 배불리 먹어도 은혜로웠고 가 족간에 사랑과 우애가 넘쳤던 지난날 궁핍했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오늘의 가정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를 5월 가정의 달에 찾아야 겠다.
서울 근교에 무수하게 널려 있는 러브호텔의 낮시간은 늦게 도착하면 투숙할 객실이 없다는 신문보도도 바로 우리 가정의 위기가 어디쯤에 당도해 있는가를 가슴아프게 전달해주는 사례다. 이런 사례들에는 그냥 가정이 흔들리고 있다는 편안한 말로 표현해서는 안될 심각성이 내포되어 있다. 자포자기에 빠진 사람들이 일시적 충동으로 한번 저질러 보는 불장난쯤으로 생각해선 안될 것이다.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듯이 그런 말초적인 만남 들이 엉거주춤하게 묵인될 경우 우리사회는 멀지 않아 이혼,자포자기,자살이 급 증하고 원칙의 혼돈과 가정이 가져야 할 정체성의 기초가 흔들리고 말 것이다. 가정을 빗대어 만든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고층 아파트에 잘 사는 가정에 끔찍한 불상사가 생겼다. 부부싸움이 격해진 나머지 남편이 그만 가스 밸브를 열고 방에다 불을 붙였다. 집안은 `펑'하는 소 리와 함께 순식간에 불이 났고 옆방에 있던 아들 녀석이 말릴 틈도 없이 창문으 로 뛰어 내렸다. 엄마 역시 고층에서 뛰어 내렸다. 남편은 홧김에 한일을 후회하 고 소화기를 찾았지만 없었다. 그래서 별 수 없이 창문으로 몸을 던졌다. 불을 피했지만 고층에서 떨어졌으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세사람이 하나도 다치지 않고 모두 무사했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남편은 `제비족' 이고 아내는 `날라리'이고 아들은 `비행청소년'이었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땅에 네 개의 기관이 있는데 그것은 국가, 학교, 교회, 가정이다.
그런데 이 네 개의 기관을 통하서 국가나 민족 흑은 한 문화나 인류전 체가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 네 개의 기관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곳이 가정이다. 이 가정이라는 것은 씨, 온상, 못자리, 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흔들리게 되면 기초가 전부 흔들리게 되고 뿌리채 다 없어져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최후에는 사회가 타락하고 학교가 타락하고, 교회가 부패한다. 할찌라 도 가장 최초의 학교이며 교회이며 사회인 가정을 우리는 사수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 가정을 기도와 믿음으로 지키고 성령님으로 깨꿋하게 하며 말씀으로 사 수해야 되겠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가정이맑아야 사회가 맑다. 높은 사람이 올바를때 아랫 사람의 행실이 바로 되기 때문에 그 사 회 속에서 가정이 부패하면 그 부패를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해리슨은 말하기를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는 교회와 가정 뿐이다'라고 했다. 가 정이야 말로 가장 복된 곳이며 이 땅에서 맛볼 수 있는 유일한 천국의 모형이다. 가정은 소우주라는 말이 있다. 가정은 작은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다. 남편은 왕 이며 아내는 왕비며 자녀는 왕자며 공주다. 즉 가정은 사랑이 넘치는 행복의 보 금자리다.
그런데 오늘의 가정의 현주소를 살펴보면 에덴 동산의 기쁨보다는 지 옥에 더 가까이 있는 느낌을 갖게 된다. 기쁨의 찬송과 환희의 웃음보다는 가정 이 병들어 앓고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부부간의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가정, 자녀문제로 염려하는 가정, 부모와 자녀간에 고부간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 가정 이 있다. 왜 우리의 가정이 흔들리고 있습니까 무엇이 우리 가정의 위기입니 까 그 실상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해 가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 아이들에 대한 문제이다. 요즘 아이들은 자기들 밖에 모르는 극단의 이기주의자들이 되어가고 있으며, 어 른들은 안중에도 없다. 어른들에게 예의범절을 지키지 못하는 버릇 없는 아이들! 개인주의적 삶으로 공동체 의식이 없어져 버린 아이들의 문제가 오늘날 우리 가 정의 위기이다. 왜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까 그것은 가정교육의 결여 때문이다. 아이들이 기가 죽는다고 야단을 치지 않기 때문에 버릇 없는 아이들이 되어 가는 것이다. 공부 잘하는 것이 최대의 효도라고 생각하고, 공부하는 자식을 상전으로 떠 받드는 일, 오직 성적에만 관심을 두고 도덕 교육, 인격 및 예절 교육에는 등한히 하는 부모들에게 문제가 있다. 모든 가치관을 성적에만 두는 가정교육이 문제이다. 성 적 때문에 친구들과 경쟁을 하고, 경쟁을 해서 이겨야 하고, 그러다 보니 `친구' 라기 보다는 경쟁자, 적대자가 되어 버리는 살벌한 관계에 놓이게 된다. 여기에 서 친구와 협력한다든지 하는 협동정신, 봉사정신, 희생정신 같은 것은 생각 할 수가 없다. 따라서 공동체 의식이 없어지고 극히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인격 이 형성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가정의 위기로 본다.
둘째로, 요즈음 가정의 주부들의 문제다 즉 아내와 엄마들이 문 밖으로 나돌며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날 우리네 가정의 위기라고 진단을 하고 있다. 오로지 남편과 자식들만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며 살아온 주부들이 심한 허탈감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것은 어느정도 사 회적으로 출세한 남편은 직장에 매인 `이방인'이 되어 버리고, 온통 애정과 관심 을 쏟아 키워 놓은 아이들로부터는 따돌림을 받게 된 아내와 어머니들의 슬픈 현실이다. 남편과 자식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주부들은 심한 소외감, 허탈감, 허 무감을 갖게 되면서 방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심리적.정신적 공 허, 허기짐을 채우려는 몸부림들이 주부들로 하여금 밖으로 돌게 한 것이다. 우리의 아내와 어머니들에게는 건전한 활동이 있다. 서예나, 꽃꽂이, 운동, 노래 부 르기 모임등 좋은 취미생활을 통해 그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건전치 못한 활동들, 즉 치맛바람, 부동산 투기, 유흥업소 출입과 탈선 행위, 과소비, 퇴폐풍조 등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오늘날 우리의 가정을 위태하게 한다.
셋째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버지'가 흔들리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네 가정의 위기라고 한다. 일찍이 겪지 못한 경제위기체제의 모진 시련은 마침내 가정해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기에 이 참담한 상황은 6 25 이후의 최대 국난(國難) 으로 까지 일컬어진다. 대량실업의 태풍은 우리들의 안식처요 둥지인 가정마저 붕괴시키고 있다. 가계의 소득감소와 자산가치 폭락이 개인파산 사태를 부르는 것이다. 부모의 가출과 이혼으로 아이들만 남은 가정, 가족구성원이 뿔뿔이 흩어진 도심의 폐가(廢家)현상, 늘어나는 노숙자, 그리고 가 족동반 자살을 포함한 자살급증 등은 무너져내리는 가정의 단면이다. 그리하여 장래를 짊어질 어린 새싹들이 회복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한다. 하지 만 이 매서운 신(新)보릿고개는 이제 막 시작일 뿐이다.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정신없이 일에 파묻혀 살아야 하는 아 버지들! 이들은 가정에 머물러 있을 시간이 없다. 요즈음의 아버지들은 가정에서 단지 '하숙생'일 뿐이라고 한다. 때문에 자녀들과 아내와 깊은 대화를 나눌 시간 을 갖지 못하게 되고 그것은 곧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외톨이'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의 아버지들은 아내와 자식이 낯설게 느껴지는 가족속의 '타인'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들은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동시에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설득 력을 잃어 버리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아버지들은 자신에게 편안함을 제공해 주는 대상을 바깥에서 찾아 방황하게 되고, 따라서 탈선과 외도의 길을 걷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의 가정을 지켜온 것은 전통적으로 '아버지의 권위'가 가정의 버팀 목의 역할을 한 것이었는데 이것이 흔들리면서 부터 우리의 가정이 흔들리게 되 었다는 것이다.
가정의 본질적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실직 이나 위기의 가계가 큰 시련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온갖 고초를 이겨온 인생의 선배들은 특히 625전란이나 보릿고개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 경제위기 시련 정도는 반드시 극복될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한다. 예부터 가화만사성(家和萬 事成)이라 했다. 가장(家長)의 사업 부도와 실직으로 부부관계가 악화돼 이혼이 급증하고 생활고 로 노부모와 어린 자식 돌보기를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무의탁 노인 수용시설이나 영아원육아원등에는 올들어 할아버지할머니나 어린 아이들을 맡기겠다는 상담전화가 지난해의 2-4배로 늘어났다 한다. 가정 해체의 안타까운 징후들이다. 경제적 파산의 고통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의 자살행렬 또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검 강력부가 집계한 3월말까지의 자살자 현황에 따르면 올들어 하루 30명 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우리 가정이 이처럼 위기에 처한 적은 없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외침을 겪고 극심한 궁핍의 시련을당하면서도 우리는 가족 이라는 따뜻한 울타리에 기대어 혹독한 어려움을 극복해 왔다.그 가족이 지금 해 체되고 인륜이 무너지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정은 우리 사 회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다.최소 단위의 공동체인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와 나라도 건강해진다. 흔들리는 가정을 바로 세우는 것은 침체된 경제를 회복하는 일 보다 더욱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국가 차원의 사회 안전망이 갖추어지지 않은 우리 상황에서 사회통합의 핵심역할을 해온 가정해체를 방치하면 사회전체의 위 기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 및 아동 복지시설의 확충등 국가 차원의 대 책과 종교사회단체의 프로그램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족 구성원 자신의 각 성과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우리 모두 남편과 아내로서,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아들과 딸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되돌아 보자. 가정이 하루의 피로를 풀고 활력을 줄 수 있는 안식처의 역할을 유지한다면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은 오히려 가족의 결속을 더욱 다지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아버지가 가출한 가정, 어머니가 몸져 누운 가정, 밥그릇이 빈 아이들의 방황이 위태롭게 범죄로 이어지리라는 것이 초읽기로 되어 있는 가정. 이런 가정을 두고 가정의 달 5월은 그야말로 잔인하게 웃으며 오고 있는 것이다.
넷째로, 갈 곳이 없는 노인들! 이것이 우리 가정이 안고 있는 문제이다. 오직 자식들만을 위해 살아오신 늙은 부모님들이 마음을 붙이고 여생을 편안 하게 보낼 곳이 없다는 것이다. 핵가족으로 뿔뿔이 흩어진 자녀들의 가정., 시집 식구보다 친정식구가 더 가까운 며느리가 불만스럽고, 며느리와 함께 사돈집 출 입이 잦은 아들들에게서 서운함과 소외감을 느끼는 노인네들이 많아지고, 고부간 의 갈등으로 인하여 머느리들이 시부모 모시기를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요즈음 이런 일들로 인하여 양로원을 찾고 있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렇게 하 여 자식들과 함께 사는 노인들이 점점 줄어들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도 서구사회처럼 사회보장제도로서 노인복지문제가 시급해 졌다. 이상에서 지적한 가정의 위기들은 우리 가정의 상처이며 아픔이다. 우리 가정 의 질병이다. 이 상처를 어떻게 싸맬 것이며, 병든 가정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 가 건강한 가정을 건설하기 위한 묘안은 없는 것인가가 오늘 우리의 과제이다. 1852년 4월 10일 미국의 한 시민이 알제리에서 사망했다. 그후 31년이 지난 뒤 미 정부는 그 시민의 유해를 가져오도록 했다. 뉴욕항에 유해를 실은 군함이 도 착할 때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환영예포로 뉴욕시가 진동했다. 그 주인공은 전공 을 세운 위대한 장군도 아니요, 노벨상을 받은 인물도 아니다. 세계적인 정치가 나 예술가, 발명가도 아니다. 그는 단지 온 세상 사람이 즐겨부르는 노래를 지은 사람일뿐이다. 그는 `Home, Sweet Home'이라는 유명한 노래를 지은 존 하워드 패인이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집 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피고 새 우는 내 집 뿐이리' 가정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우리 가정의 무너진 곳은 다시 수축하고 아름답고 튼튼한 가정으로 만들어야 한다.
1. 모든 부모는 자녀교육의 책임자
첫째는 자녀에게 말쏨을 가르쳐야 한다. 신명기 60 절 말씀에 네 자녀에 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 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른할 것이며 라고하였습니다. 말씀이 뼈에 새 겨지고 마음에 새겨지고 삶에 새겨져 의식적 흑은 무의식적으로 새겨지도륵 기 회가 있을 때마다 상고해야 한다. 다음으로, 자녀가 순종하고 부모가 공경받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이런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목욕탕에 갔다. 아버지가 먼저 뜨거운 탕속에 들어가면서 "아 흐! 시원하다"고 하며 아들이 보고 "얘! 시원하다. 어서 들어와라" 그랬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정의 표현도 구부러져서 예로부터 반어법을 많이 사용했지요. 아버지가 말씀하시니 말씀에 의지해서 시원한 줄알고 목욕탕 속으로 첨벙 들어 가니 `아이쿠' 뜨겁거든요. 아들이 하는 말이 "아이고 뜨거워! 세상에 믿을 놈 하 나도 없네" 그랬답니다. 아버지의 말에 실수가 있었지만 아들은 더 나쁩니다. 목 욕을 한 부자가 배가 고파오는 길에 빵집에 들어 갔다. 목욕을 하고 시장하니 얼 마나 먹고 싶겠어요. 그래서 두 부자가 들어가서 빵을 세 개시켰다. 이럴 때는 2 개나 4개가 좋은데 3개를 시켰어요. 한 개씩 맛있게 먹고 하나가 남았다. 아들이 속으로 `아버지가 나에게 양보하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버지의 검은 손이 쑥 나오더니 빵을 덥석 집어 입속으로 넣어버렸다. 아버지가 결국 두 개를 다 먹고 나가면서 "야! 배부르지 가자" 그러니까 아들이 "흥! 하나먹고 배부르면 두 개 먹은 놈은 배가 터지겠다. 터지겠어" 라고 혼자 중얼거립니다. 아버지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식이 괘씸하고, 윤리가 땅에 떨어지고 애비도 몰라보고. 그래서 화가나서 "들어왓! 종아리 걷어!" 하며 매로 칠려니까 이번에는 이 아들이 무어 라 하냐면 `쳐라! 쳐! 니새끼 죽지 내 새끼 죽냐"고 하더랍니다. 이만큼 우리 사회가 병들고 자녀들이 반항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반항하 다가 해결이 안되면 옥상에 올라가 떨어져 자살을 한다. 부모의 권위가 서질 않 아요. 그러나 여기에서 잘못된 자녀만을 탓하고 나무라는게 아니다. 동시에 부모 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비행청소년 뒤에는 문제부모가 많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오늘날 자녀 교육은 교양과 훈계가 아닌 과보호이다. 절제없는 부모 사랑 때문에 아이를 버린다. 요즘은 아들 딸을 자기 재산이나 허영심의 도구로 생각하 고 무조건 좋은 것, 과잉사랑, 과잉보호 한다. 결국 자녀에게 나쁜 습관, 잘못된 인생관을 심어 주는 것이지요. 성경에서 부모에게 순종한 자녀의 모범으로 이삭이 나온다. 좋은 아버지 가운데 표본으로 아브라함을 들수 있다. 그는 얼마나 철저하게 교육 을 시켰는지 자손 만대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게 하였다. 아브라함은 매우 철저하고 위대한 교육의 아버지였다. 이삭은아들 가운데 표본적인 아들이다. 아 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였기 때문에 순종하는 아들을 낳았다. 아들이 아버지에 게 순종하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는 하나님께 순종하여야 한다. 아버지가 하나님 께 효도해야 아들도 아버지에게 효도한다. 성경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 치기 위해 모리아 산에 3일 길율 갈 때였다.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J라고 어린 이삭이 물었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 고 대답했다. 아브라함 이 모리아 산 꼭대기에서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 했을 때도 이삭은 순종하였다. 이것은 예수님의 그림자인 것이다. 자녀들의 을바른교육을 위해서는 좋은 아버지 의 상을 부각하고 그 자녀들이 나가는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가를 항상 살펴야 한다. 교양과 훈계가 없이 자녀를 기르면 불효자로 만들 위험이 있는 것이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떠합니까 어떤 시인은 "인간이 낙원을 잃어버린 이후에 이 낙원과 가장 비슷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정이다. 가정을 잃은 사람은 모든 걸 잃어버린다"고 했다.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이 되어서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행복 한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육체적인 성장만을 위해서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성장을 계획해야 한다. 영적으로 성장하였다는 것은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먹고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는 자녀교육을 할 매 육체만 키우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흔을 키우는데도 책임이 있옵니다. 그렇기 때문께 아버지는 목사요 교사요. 제사장인 동시에 왕과 예언자적인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절대적 권위와 책임은 자녀교육에 필요하기 때문에 주신 권이다.
하나님해서 아버지에게 이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사명을 책임지라고 맡겼으니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를 행해 야 한다. 우리가 어찌그 자녀를 다 키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자녀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성경으로 기도로 키우시고 우리는 청지기 노 룻만 해야 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생활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한다. 말로만 하고 생활에서 본을 보이지 못하면 자녀들은 반항을 하게 된다. 가령 자 녀들에게 기도를 가르칠 때에, 어떤 기도문제를 놓고아이들율 동참시키면 된다. 저는종종 아이들에게 기도제목율얘기해 주고 기도하게 하며 또 아이들 자신의 기도문제를 얘기하게 하고 함께 기도한다. 자녀교육에 있어 기도와 더불어 중요 한 것은 행동으로 본을 보이는 것이다. 본을 보인다고 해서 예수님처럼 한 점 흠 도 없이 거룩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성실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죄를 범하고 또 회개하지만 그러나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노력 가운데 기도와 찬양과 밀씀 속에서 본이 되도륵 해 야 한다. 화가 날 때도 예수님 때문에 참고 교만하지 않으며 시기하지 않는 부모 님을 자녀들이 보았을 때 예수님을 믿게 되고 이것이 곧 산 교육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자녀교육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지만특히 어머니의 책임은 막중한다. 이것은 유대인 사회를 통해서 보면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 녀들을 교육하는데 있어 법을 정하여 모든 책임을 어머니에게 부과시키고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부모 모두가 유대인이면 자녀도 유대인이며 부모중 아버지는 유 대인이고 어머니가 외국인일 경우께는 유대인 시민권을 주지 않다. 특별 수속을 발고 개종을 하여야 유대인이 된다.그러나 아버지가 외국인이고 어머니가 유대인 인 경우,그 자녀는 자동적으로 유대인이 된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자랄 때 어머 니로 부터 그 성격과 사상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자녀교육에 있어 차지 하는 비중은 이만큼 크다는 것이다. 모세는 아기일 때,갈대상자에 넣어져 강물에 떠내려가다 바로의 딸 손에 건져져서 바로의 궁전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자기의 생모인 유대인 유모를 통해서 교육받았기 때문에 유대인의 사상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물려 받아 부와 권력이 있는 바로의 궁을 뛰어나을 수 있었고 유대민족을 이끄는 흘릉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지만 유대인인 어머니의 역할이 컸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의 교육정도가 올바로 되었느냐, 안되어 있느냐는 그 어머 니의 기도가 얼만큼 있었느냐 또는 그 어머니가 가정생활을통해 얼마나 본이 되 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아이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해 주고 성경을 교재로 아이들을 교훈하며 아이들의 장점을 살려서 사기를 욕들아 주는 것이 올바른 교 육이며 하나님의 귀한 자녀로 키우는 지름길인 것이다. 어머니 한 분은 선생님 백 분에 해당하고 목사님 열 분에 해당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가정에서 부 모에게 배우는 것이 진짜 잘 배우는 것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녀들이 부모님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보고 자기들도 순종하는 것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아이들의 부모가 되기 전에 내 아들의 형제가 된다. 하나님 아버지 껴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이다. 그 러면 아들은 어떻게 배우게 됩니까 자기 아버지에게서 배우게 되지요. 자기 아 버지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을 보게 되면 아들도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할 것을 배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이 신앙생활의 모범이 돼야 한다. 저의 경험을 보면 아이들을 위해서 먼저 무엇을 하면 복잡하게 되고 실패한다. 특별히 저희는 여러가지로 경험했다. (마 6:33) 우리는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붙잡는 기도라고 할 수 있다. 내놓지 않고 붙잡고 주님께서 응답하실때까지 기도함 으로써 우리 자녀들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을볼수 있다고 확실히 믿는다(사 62:6-7).
하나님으로 하 여금 쉬지 뭇하시게 하는 기도, 야곱처럼 주님께서 나에게 축복해 주실 매까지 우리 자녀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때까지 내놓지 않고 주님만 붙잡고 기도 하겠 다고 맹세하시면 주님께서 웅답하지 않으실 리가 없다. 모세의 중보기도, 엘리야 의 기도. 한나의 기도, 이들은 붙잡는 기도를 끝까지 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약속 하신 그대로 이루어 주신 줄 압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믿음이 필요한다.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그런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나 들 으면서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하시다 보면 어떤 때는 쉽게 기도할 때도 있고 금 식하면서 눈물 흩리면서 기도 할 때도 있옵니다. 부흥목사 엘리슨이라는 분은 말씀하시기를 "지옥의 모든 귀신들이 자기들의 힘을 합쳐서 막더라도 기도하는 어머니로 부터 아들이나 딸을 빼앗아 갈 수 없다고"했다. 부모님들은 주님 안에서 이 열쇠를 가지고 얼마든지 승리하실 수 있다 부모가 아무리 바쁘다 할지라도 아이들에게 관심을 써주고 1년에 한 두 번은 함께 야외로 소풍을 가거나 운동을 하며 아이들을 달래주고 감싸주는 것이 필요 하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통해 주신 기업이기 때문께 잘 보살피고 지도해야 되는 것이다. 이 기업을 소출히 할 때 우리는 하나성의 뜻에 어굿나는 것이 되므로 없는시간도 쪼개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가지며 그들을 흐뭇하게 해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귀한 기업을 잘 보살피고 양육하며 끊임없는 기도 와 성경밀씀을 통한 교훈을 가슴에 새겨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흘륭한 자녀들로 키우는데 다같이 노력해야하겠다. 워너 감독의 말대로 가정은 존재의 표준이다. 이세상 모든 제도는 인간이 만들었 지만 가정 제도만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를 통해서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만 드신 제도다. 환원하면 가정은 신적 제도요 신께서 역사하는 최소단위의 현장이 라고 하는 이야기가 된다. 가정이 튼튼하면 사회, 국가가 혼란스러워도 문제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가정이 파괴되기 시작하면여타 모든 제도와 조직은 무력해 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가정은 존재의 표준이요 저 천국의 현재적인 장소인 것이다. 가정은 행복이 샘솟는 곳이어야 하고 창조의 원천이어야 한다.그래야 함에도 불구하고 깨어지고 갈라지고 부서지고 무너지는 가정이 늘어만 간다는 데에 현대 가정의 비극이 존재한다. 오늘 아침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가정은 참으로 행복하십니까 남에게 보이려고 행복한 척 얼버무리는 그런 대답 말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의 대답을 원합니다. 참으로 행복하십니 까 가정은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요 최소단위의 공동체이다. 가정이 무 너져서는 건강한 사회공동체의 존립은 가능치 않다. 가정의 붕괴만은 막아야 한다. 인류 평화의 핵은 가정이다.
그러므로 가정은 평화의 핵인 개인을 만들어 내고 인간 생활의 기본인 사회를 이루어 나간다. 결코 과장이 아니라 가정은 곧 사회 의 근원이란 점에서 누구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회의 근원이 되는 것은 가정이 사랑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화목의 땅이며 아름다운 하늘이므로 가정 은 모든 것의 위로와 낙원의 대명사로 불려왔다. 가정이 이 사회의 반석이 아니 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근본의 반석이 흔들리고 있다. 아버지의 실직, 자존심을 팔아도 밥이 되지 않아 몸져 누운 어머니의 슬픔으로 가정은 붕괴되고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자녀들은 자칫 부모를 경멸하게 되고 무능력의 존재로 치부하게 되어 부모가 마 땅히 누려야할 존경과 사랑은 휴지처럼 버려지는 심각한 사태가 가정안에 실재 로 일어나는 일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문 방송의 뉴스와 주변에서 들리는 얘기는 온통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실직자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 어제까지 그 당당하던 가장이 실직의 어려움으로 가출해 거리의 노숙자가 되었다는 얘기, 경제위기형 가정파탄이 급증하고 있고 이 때문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실제로 각종 통계는 오늘의 실상을 웅변한다.
지난 3월까지 실업자가 1백40만명 이며 실망실업까지 합친 실질실업자수는 4백만명에 육박하고 있다는 추산이다. 거리의 노숙자는 지난해의 1천명에서 4천15천명으로 증가했으며 실직과 생활고 로 자살하는 사람이 하루에 30명이라는 통계도 있다. 서울가정법원에 협의이혼을 신청한 건수는 지난해 11월에는 4백72건이었으나 지난 3월에는 66%나 늘어난 7 백84건이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고통받고 있는 사람은 어린이들인 것 같다. 서 울의 한 아동상담소에 의하면 이곳에 맡겨지는 숫자가 지난해에는 월평균 30명 이었으나 올해는 50명으로 늘었으며 아동학대상담소에 들어오는 신고건수는 지 난해보다 10배로 늘었다고 한다. 결식아동의 숫자는 교육부 집계로도 5만명에 이 르고 있다. 슬프다는 말로도, 가슴이 아프다는 말로도 그렇다. 하늘과 땅이 무너지는 것 같 다고 해도 응어리는 풀려지지 않는다. 그만큼 지금 우리의 사태는 심각하다. 가 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면 국가가 무너지는 것은 상식이다. 국가가 무너지면 개인의 삶은 생명을 상실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 가 정이 튼튼해야 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아침에 해가 뜨는 것이 무섭다고 말하는 가장이 있다. 부양을 책임져야 할 식솔들이 있다. 그 식솔들 중에는 노모도 끼어 있다. 앞으로의 끼니를 걱정하는 것을 차마 노모에게만은 보이고 싶지 않다. 집 이 두렵다. 아니 가정이라는 것도 얼마나 유지하게 될는지 모른다. 가족이란 말 은 따뜻하다. 가정이란 말은 평화롭다. 우리가 만약 따뜻함과 평화를 잃는다면 우리가 다음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끔찍한 상상이 떠오른다. 고통을 두려워하되 그것과 정면대결하여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60년대식의 담 대한 의지와 강단이 어느새 한낱 물거품이 되어버린듯한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 60년대 그때 우리 국민소득은 두자리 숫자였다. 황량한 청계천 좌우에 다닥다닥 붙어 끝없이 늘어서 있던 판잣집들의 루핑지붕은 비만 오면 일제히 콩볶는 소리 를 냈다. 걸핏하면 공중변소의 오물이 흘러 넘쳤고, 파리떼가 들끓었고, 조무라기들은 맨 발로 고압선 아래 길의 뽀얀 흙먼지 속에서 돼지 오줌보를 팽팽히 불어 만든 공 을 차고 놀았다. 한켠에선 드잡이하는 악다구니 소리, 또한켠에선 막소주 한잔 에 고단한 삶의 무게를 털어내는 유행가소리가 하루 온종일 그치지 않았다. 원인불명의 화재가 연거푸 일어나 수천명이 그나마 보금자리를 잃고 유랑걸식 으로 내쫓긴 것이 그 무렵이었다. 내가 머물렀던 작고 음습한 사글세방도 물론 불탔다. 한번 불타고 말면 판잣집들은 살림 한가지 건질 게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자지러지는 어린것들 셋씩, 넷씩, 등이며 옆구리며 어깨에 들쳐메고 불탄 자리를 헤집고 다녔다. 타다 만 신발 한짝, 찌그러진 연탄집게, 그을린 양은냄비 하나만 찾아내도 그것이 곧 삶의 밑천이 되었다. 왜들 죽으려하지 않지. 그런 상황에서도 도무지 죽으려고 하지않는 사람들이 이상하기까지 했다. 사정 이 그러하면, 이런 놈의 세상 너랑나랑 칵 죽고 말자, 할사람도 있을 법 하건만, 삼 세끼 중 한끼만 배불리 먹어도 은혜로왔던 그 육십년대 후반, 절망에 차서 제 명줄 제가 끊었다는 사람을 눈씻고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아이엠에프(
경제위기)로 상징되는 오늘의 경제적 시 련을 극복할 것이다. 경제를 잘 알아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 가. 자원도 없는 동강난 반도의 땅에서 찌그러진 양은냄비 하나에 의지해 하루 열 몇 시간씩 일해 마침내 만불소득의 기적을 만들었던 민족이다. 유례가 없는 수많은 외침을 받아온 역사적 조건 속에서나, 극단적인 궁핍의 시련 속에서나, 우리는 우리스스로를 버리거나 부정한 적이 없다. 버리기는커녕 그 고통을 오히 려 신명과 해학으로 승화시켜 풀어내고, 거기에서 다시 생명력을 얻어온 민족이다. 그러하니, 어찌 우리가 망할수 있겠는가. 그러나 요즘엔 솔직히 그런 믿음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가 생겨나고 있다. 한때는 민주화를 위해 꽃같은 젊음들이 스스로 불타 죽더니 또한때는 잘못된 온갖 사회 문화적 병리에 내몰리듯 철없는 십대들이 그리 죽더니, 이젠 어린것까 지 앞세운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사업실패나 실직의 절망을 이기지 못한채 스스 로 명줄을 끊고 있다. 왜 죽는가. 사업실패나 실직의 절망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보다 더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온 우리 민족의 힘있는 전통과 견줘보건대, 너무도 단순하고 상투적 인 논리이다. 우리가 결코 간과하지말아야 할것은 왜, 우리가 아이엠에프라는 시 련을 극복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어떻게해서든 지금의 경제적위기만 극복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제제일주의의 사고는 절대로 저들의 끔찍하고 비통한 죽음의 행진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저들의 죽음 뒤에는 우리가 언필칭 기적이라 고 불러온 재빠른 경제성장을 위하여 우리가 상실하거나 스스로 버렸던 가치있는 영혼의 덕목들이 지금도 여전히 폐기처분의 팻말을 달고 버려져 있다. 가령 생명에의 외경감, 이웃과 가족간의 참된 위로와 이해, 더불어 함께사는 공동체, 정직성으로 뒷받침되는 절제있는 삶의 지혜 따위가 그것이다. 그놈의 알량한 만 불소득이 가져오는 편이성과 물질적 풍요를 얻기 위해 대화의 채널을 막고, 이해 와 조화를 잃고, 그리고 결국 황량한 인간소외의 막다른 길로 우리는 달려온 것이다.
오늘의 위기 또한 물질적으로는 바로 그 길로 달려온 결과가 불러온 것일 진대, 왜, 무엇을 위하여 지금 허리띠를 졸라매고 함께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없다면, 설령 이번의 위기가 극복된다 하더라도 행복해지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위기는 강조될 수 있지만 불안이 강조되는 사회는 희망이 없는사회이다. 파스빈더감독의 영화제목처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할 뿐이다. 내가 해고되지 않으면 동료를 쫓아내야한다는 식으로 인간균열이 끝없이 허용되는 아이엠에프 극복은 의미가 없다. 그런 방법으론 죽음에 이르는 끔찍한 소외를 계속 불러올 것이며, 또 경제위기가 극복된 다음의 먼 훗날까지 인간균열의 상처는 극복되지 않고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정의 달이 불빛속에 다가오고 있다. 과연 이것을 두손놓고 바라만 보아야 할 것인가.정부는 경제구출을 과거의 잘잘 못에서 가려 내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요직은 자기들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만 채우려는 욕심에 급급하고 있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 과거 행정 담당자들이 잘못된 일에 대하려 그것의 진위를 가려내는 것이 바쁜 것이 아니라 경제위기시대가 낳은 사회의 병폐에 대한 치유책을 서둘 때 이다. 특히 경제위기한파 이후 가정의 안정을 위협하는 사회적 환경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어려운 처지를 비관한 일가족이 동반자살을 쉽게 택하고 직장 잃은 수많은 가 장들이 일자리를 찾아 거리를 헤매고 있다.아예 노숙까지 하는 등 생이별 생활을 하고 있는 처지다. 10대 임산모가 나오고 여중생이 예사로 집단 자살을 한다. 엊그제는 청소년이 동 거를 나무라는 어머니를 동거녀와 함께 목졸라 살해한 끔찍한 일도 일어났다.
그 경우에 우리가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절망한 부모들이 혹시 자식의 생명권을 무시하고 동반자살한 것이 아니냐 하는 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도, 심지어 부모 조차 자식의 생명을 마음대로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생명관이기 때문이다. 경제위기한파가 휩쓸면서 가정이 급속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사정도 따지고 보면 가정에서 문제가 누적되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새로운 환경에서 가정과 가족을 생각할 때다. 갑작스러운 실직이 죄가 아닌 한 가장들도 더 이상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는 안된다. 고개 숙인 아버지를 무능 력자로 보는 가족이 있어서도 안된다. 가정은 화초와 같다. 더 큰 이해와 위로, 정성스런 노력으로 화초를 가꾸어야 한다. 오늘의 위기를 벗어나 도약하는 길이다. 우리가 지켜야할 가장 소중한 가치인 가정이 무너져가고 있는 현실을 맞아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펴야하고 사회와 가정은 또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야 할 때다. 정부는 실업대책과 사회보장제도를 좀 더 실효성있게 세우고 집행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적어도 국가 구성원들이 밥을 굶거나 그런 문제 때문에 가정이 부서지는 일은 막아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나만 살면된다"는 왜곡된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이웃을 위해 베풀 줄 아는 분위 기를 만들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 구성원들이 스스로 가정 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다.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고 사랑함으로써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 당연히 가정의 본질은 사랑이며 그 지고(至高)의 가 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가족구성원이 서로 사랑하며 화합할 때 어떤 고난 일지라도 충분히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가정은 우리 사회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다.최소 단위의 공동체인 가정이 건강 해야 사회와나라도 건강해진다. 흔들리는 가정을 바로 세우는 것은 침체된 경제 를 회복하는 일보다 더욱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국가 차원의 사회 안전망이 갖추어지지 않은 우리 상황에서 사회통합의 핵심역할을 해온 가정해체를 방치하 면 사회전체의 위기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의 달은 그간 소홀했던 가족 간의 끈끈한 정을 재확인 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사실 가정 문제는 어느 하루,어떤 한달 만에 끝내서는 안되는 일상의 중요한 관심사다.가정은 구성원들의 안식처며 그 울타리 안에는 교육이 있고 사랑도 있는 사회 최소 구성 단위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올해 가정의 달은 마냥 즐거워 할 수만은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우리 모두 남편과 아내로서,아버지와 어머니로서, 아들과 딸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되돌아 보자. 가정이 하루의 피로를 풀고 활 력을 줄 수 있는 안식처의 역할을 유지한다면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은 오히려 가족의 결속을 더욱 다지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줄곧 앞만 보고 달려온 게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소득 1만달러 등 물량위주의 성장패턴엔 삶의 질이란 내실을 결여하고 있었음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국민들을 그토록 허망한 거품에 잠기게 했던 오도(誤 導)에 정부는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풍요의 시대에 나약하고 이기적으로 자란 아이들이 보다 건강하게 강인하게 성 장할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루 세끼중 한끼만 배불리 먹어도 은혜로웠고 가 족간에 사랑과 우애가 넘쳤던 지난날 궁핍했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오늘의 가정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를 5월 가정의 달에 찾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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