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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을 지배하라 (시10:12-18)

본문

오늘 말씀은 인간의 어려움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내용입니다.
첫째는 “(시10:12)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를 잊지 마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자들의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시10:14)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잔해와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자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고아와 외로운 자들입니다.
셋째는 “(시10:18) 고아와 압박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로 다시는 위협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환난과 어려움을 당한 자들입니다. 모두가 다 어려운 삶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길을 잃어버린 우리의 삶은 하나같이 힘들고 피곤합니다. 우리는 그중에서 본문에 나오는 이 세가지의 어려움을 크게 보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가난을 해결해 주십니다. 이는 생활이 어렵고 궁핍한 자들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고, 또 굶주린 자들을 위해서 많은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이 있어야 될 것을 아신다고 했습니다. 양식이 없는 생활의 곤궁함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아시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를 길러 보면 열 번 우는 중에 아홉 번은 배가 고파 우는 것입니다. 배고프면 웁니다. 살아가면서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가난 때문에 제일 많이 울고 부르짖습니다.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살면 우리의 가난 문제는 해결되고, 또 아끼고 절제하고 열심히 수출하면 국가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가난을 해결하는 길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풍성하고 부유하시지만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눅9: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을 정도로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왜 가난하셨습니까 나를 부유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슬퍼하셨습니까 나를 기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나의 더러운 죄를 가리려고 십자가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못박히셨습니다. 주님은 바로 나를 위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수출을 많이 해서 나라의 경제를 살리고 가난을 해결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안됩니다. 이것은 안 믿는 사람들의 논리입니다. 이 나라에 만약 기독교가 안 들어왔다면 지금 북한같이 가난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일해도 가난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가난을 해결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5천 명의 군중들이 모였을 때 제자들은 사람들을 마을로 돌려보내자고 예수님께 말합니다. 인간의 방법은 돌로보내는 것입니다. 5천 명의 식사를 해결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을 돌려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난을 해결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예수 믿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고, 성령님 충만함이 가난을 해결하고 또 주님으로부터 은혜와 축복을 받는 길인 줄 믿습니다. 내가 땅을 일구어도 자연이 우리를 도와주어야지, 땅에서 엉겅퀴가 나고 질병이 나를 넘어뜨리는데 무슨 방법으로 부유해집니까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는데 내가 어떻게 잘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햇빛을 주시고 비를 주셔야 내가 곡식을 거두어들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찬송가 93장에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친구 되시니 그 은혜를 간구하면 풍성히 받으리 햇빛과 비를 주시니 추수할 곡식 많도다 귀한 열매 주시는 이 주 예수”라고 했습니다. 그 은혜를 간구하면 풍성히 받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잘됩니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고 뉴스를 보는 것은 좋은데 세상 흐름에 따라서 사고 방식이 바뀌면 안됩니다. 성도는 성도의 논리를 갖고 살아야 합니다. 가난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우리 주님을 잘 믿고,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됩니다.
2. 하나님은 외로운 자의 친구가 되십니다. 우리는 외로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외로운 사람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고, 외로운 아내는 남편을 기다립니다. 또 친구를 만나고 형제를 만납니다. 그러나 사람을 많이 만난다고 외로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외로울 수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를 보십시오. 얼마나 외로웠습니까 돈이 많아도 외로웠습니다. 사람이 많을수록 외롭습니다. 인기 배우들이, 인기 있는 운동 선수들이 얼마나 외롭습니까 모두 박수를 쳐주어도 더욱 외로울 뿐입니다. 큰 회사를 운영하는 회장은 외롭지 않을 것 같습니까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소금물을 먹는 것과 같이 더욱 갈증이 날 뿐입니다. 여러분, 사업하는 집에 장사하는 집에 손님이 많다고 외롭지 않습니까 더 외롭습니다. 외로움도 우리 주님의 은혜로, 성력의 충만함으로 없어집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실 때 내가 정말 감격스러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은혜가 넘칠 때, 내가 어디에서든지 기쁨의 찬송을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면 영원토록 변함없는 기쁜 마음 얻으리 / 존귀하신 주의 이름 우리 기쁨 되도다 주의 품에 안길 때에 기뻐 찬송부르리 /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찬송가 91장).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 예수님은 아름다워라 산밑에 백합화요 빛나는 새벽별 주님 형언할 길 아주 없도다 내 맘이 아플 적에 큰 위로 되시며 나 외로울 때 좋은 친구라 주는 저 산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찬송가 88장).
인간의 방법으로 외로움을 해결하려고 여가 선용이니. 휴식 공간이 있어야 된다고 하지만 공원에 가보면 외로운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러시아는 공원이 많다고 합니다. 사회주의 국가는 그런 시설이 아주 잘되어 있습니다. 미국과는 비교가 안됩니다. 공원이 얼마나 넓은지, 공원 가운데로 차가 다니고 도시 전체가 숲으로 덮여 있습니다. 개를 데리고 공원을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말 낙원처럼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러시아 사람들이 외롭지 않습니까 마음에 성령님이 없는 사람은 그런 곳에 있을수록 더 외로워집니다. 우리 성도는 외로울수록 성령님 충만해야 됩니다. 별장을 지어서 살면 좋을 것 같지만 그것으로도 외로움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 충만하지 않으면 물을 보면 뛰어들고 싶고, 나무를 보면 목매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외로움은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치료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방법으로 하면 안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그런 외로움이 없어집니다. 선교사들이 얼마나 외로운지 아십니까 파키스탄에서 선교사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택시만 타도 사람들이 구경하러 모여든다고 합니다. 아주 이상한 사람으로 신기하게 구경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가 미국 사람이 하도 신기해서 종일 따라다녔듯이, 그곳 사람들이 막 물려들어 구경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외로운지 모릅니다. 기후가 맞습니까 언어가 통합니까 음식이 맞습니까 기도하지 않고 성령님 충만하지 않으면 절대로 견딜 수 없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은 허전해하고 공허해하며 죄를 짓고, 외로움이 점점 더 깊어집니다. 사람을 만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성령님으로, 주님의 은혜로 충만해야 될 줄 믿습니다. 다윗은 굉장히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목동이었기 때문에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했기 때문에 목동인 다윗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건강했습니다. 요사이 청소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운동 시설이 있어야 된다, 레크리에이션이 있어야 된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청소년들은 세상 노래를 들으면 점점 더 외로워집니다. 그래서 외로운 아이들이 전자기기에 몰두하다가 문제를 일으키게 되고, 갖가지 엉뚱한 생각으로 빠져듭니다. 아이들도 예수 잘 믿고 성령님 충만해야 청소년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오직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면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외로운 자의 친구가 되시고, 외로운 자의 남편이 되시고, 외로운 자와 언제나 동행하여 주십니다.
3. 하나님은 우리를 억압으로부터 자유케 하십니다. 고아와 압박당하는 자가 우리 곁에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고와의 부모가 되어주는 것도 귀하고, 환난을 인간적으로 해결하는 것도 참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방법으로 해결하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만이 얽매인 것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고 건져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적인 것들이 나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더욱 기도에 힘써야 됩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압박을 당했습니까 바울과 실라가 빌빕보 감옥에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지만 성령님 충만하여 찬송을 부르니까 여호와의 빛이 비추고 옥문이 열리면서 감옥이 천국으로 변했습니다. 감옥에서 찬송을 부르니 밖에서는 미친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옥중에서도, 환난을 당할 때도 찬송이 나올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무슨 환난이 있습니까 무슨 어려움이 있습니까 성령님으로 충만하면 다 이겨낼 줄 믿습니다. 모든 환난을 인간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세상의 그 많은 어려움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님 충만함으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성령님 충만함만이 모든 분위기를 바꿉니다. 성령님 충만함으로 교회의 분위기를 바꾸고, 가정의 분위기를 바꾸어야 합니다. 성령님 충만함으로 우리를 늘 뒤따라 다니는 어려움을 지배하고 환난을 지배해야 됩니다. 할렐루야. 오늘 주신 말씀은 세 가지입니다. 주님은 가난을 해결하시고, 외로움을 해결하시고, 고아와 압박당하는 자의 환난을 해결하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어려움을 해결하여 주십니다. 여러분도 성령님 충만함으로 늘 주님의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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