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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란 (잠8:12-13)

본문

지혜의 외침 4절에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사람들이 지혜를 찾아 구해야 할 것인데, 사람들이 찾아 구할 첫째가 지혜라야 할 터인데 지혜가 없음으로 아쉬운 것 이 인생인데 오히려 지혜가 사람을 찾아 나서고 있다. 사람들이 복음을 찾아 나서야 할 터인데 오히려 복음이 사람들을 찾아 나서 고 있다. 공부해서 성공할 학생들이 선생을 찾아 나서야 할 일이지만 오 히려 월급받는 선생과 등록금 챙겨주는 부모들이 학생을 찾고 정작 공부로 덕볼 학생들은 공부를 피해 다니는 것이 현실이다. 우매한 인생이요 타락으로 인하여 어두워진 마음으로 미련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이 실은 인생사의 또한 단면이다. 인자라고 함은 연약한 사람, 못난 사람으로 자신의 처지를 바로 알았을 때 나오는 탄식이다. 지혜를 빼버린 인간, 지혜 없이 사는 불쌍한 인자, 그들 에게 소리 높혀 찾으라고 할 것이 바로 지혜인 것이다. 5절에 '어리석은 자들아 명철하라, 미련한 자들아 마음이 밝을지 니라.' 밝은 마음을 명철이라하고 명철한 마음이라야 이성이 활동 하여 지혜가 나올 수 있게 된다. 마음에 불을 켜서 명철한 마음을 만들고 불을 환하게 켠 명철을 가지고 마음이 움직여야 지혜라는 이성의 활동이 바로 되게 된다. 지혜는 마음의 이성(理性)적 활동
1. 지혜의 주소는 명철, 밝은 마음 그러면 지혜란 무엇일까 지혜의 실체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 그다음 잠8:12절 말씀이다.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혜가 사는 곳은 명철이다. 물고기의 사는 주소는 물이다. 새가 사는 곳은 하늘이며 쥐가 사는 곳은 어두움이다. 병균이 사는 곳 은 약한 신체부분이다. 지혜가 사는 곳, 지혜가 자라는 곳, 지혜를 찾으려면 있는 곳 바로 주소이다. 명철에서 찾으면 지혜가 그기 있다는 말이다. 명철이 지혜를 기르는 곳이라는 말이다. 명철이란 밝은 마음을 말한다. 마음의 움직임, 마음의 활동을 생각이라고 하는데 불을 켜서 밝은 가운데 마음이 활동할 때 그 마음의 상태를 명철이라고 한다. 불을 켜야 활동할 수 있는 마음, 불 이 없으면 제 할 일을 잘 못하는 마음, 바로 그 마음의 요소 그 마음의 실체를 찾으면 지혜를 알 수 있다. 마음은 육체보다도 더 복잡한 것이다. 마음은 영과 달라서 단 일체가 아니라 종합체이다. 육체보다 더 복잡한 여러 요소들이 합 하여 된 것이다. 마음의 세계를 여러 가지로 살펴보았다. 감각, 지성, 이성, 욕심, 감정, 양심, 의지, 인내 등 그 종류가 많은데 그 중에 불을 켜서 밝아야 자기 원래 활동을 할 수 있는 요소는 누구 일까 물론 생명없는 기계의 부속과 다르고 생명이 있어도 물체를 가진 신체 요소와도 달라서 마음의 요소는 이것은 심장 이것은 위 장이라고 잘라 내기는 곤란하다. 어쨌던 마음의 요소 중에서 밝아 야 일을 잘하는 요소는 이성(理性)이다. 마음의 요소 중에서도 지성은 불이 없으면 책을 찾는 불편은 있 어도 머리 속에 저장해둔 지식, 책꽃이에 꽃혀 있는 책에 그리 큰 손해는 갈 것이 없다. 욕심은 원래 불이 없어야 좋아하는 음지성 의 요소다. 밝으면 오히려 활동이 위축되는 것이니 지혜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감정은 제 주관과 일치 여부에 따라 울고 웃는 요소다. 불이 있고 없고 별 상관이 없다. 자기 본질의 일면과 일치되는지만 따지는 제일 본능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양심은 비교적 불빛이 없으면 불편을 제일 많이 느끼는 요소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정적이라할 만큼은 되지 않는다. 이유는 양심이란 그 속에 어떤 지식이 들었느냐는 지식의 상태에 영향을 받고 양심의 종류가 결정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은 다르다. 이성이란 둘을 놓고 비교를 해봐야 하 며 각도를 바꿔가며 많은 측정과 통찰이 필요하다. 어떤 때는 멀 리서 보며 어떤 때는 멀리서 보며 어떤 때는 정밀 조사를 원한다. 자연히 이성이란 존재는 비교, 통찰, 연구 등을 생명으로 하기 때문에 빛이 가장 필요한 존재이다. 따라서 마음이 빛 가운데 활동하 면 명철이라고 하는데 그 명철이란 빛을 가장 필요로 하는 마음의 요소, 즉 이성에 영향을 미치고 그 이성의 실력을 가르쳐 지혜라고 한다. 따라서 지혜란 불을 켜고 활동해야 작동되는 이성의 실력이니, 불을 켠 마음의 활동 즉 명철없이는 지혜란 살 수도 없고 자랄 수 도 없고 작동될 수도 없는 것이다. 지혜의 주소는 바로 명철이 되는 것이다.
2. 세상만 보는 명철, 세상의 지혜는 땅에 있는 빛으로 이 세상 안에 있는 것만 알 수 있고 움직이는 마음, 그 마음도 명철은 명철이나 땅에 속한 명철의 한계를 벗어 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인생이 시간을 넓게 잡으면 6천년인데 이 시간 범위를 볼 수 있는 빛을 가진 사람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필 때, 그의 이성에서는 인과 과를 본 것이다. 그 원인과 결과의 주권을 쥐고 있는 영의 세계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는 볼 수 없는 죽은 영, 심신만의 인간이니까 그 실체는 보지 못한 채, 심신만으로 이 땅 위의 시간계를 살펴 본 그의 이성, 많이 보아야 1백년 안팎 을 보는데 석가의 마음의 불빛은 인생 중에 제일 멀리 볼 수 있는 불빛을 가졌고 이러한 그의 명철이 본 것은 6천년까지를 보았던 것이다. 6천년까지 본 석가가 내린 결론은 땅만 보고 사는 인생 중에서는 대단한 지혜라고 대접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 지혜는 결국 돌 이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하루만을 보는 어둔 사람은 남의 집 담 을 뛰어 넘어 간다. 10년 안을 보는 사람은 정권 꼭대기에 올라선다. 100년 안을 본 사람은 자녀 후배 양육에 투자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 범위 다음에서 보면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미련이 었다. 그러나 100년 뒤를 보는 것은 인생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한데, 이유는 인생의 잣대 길이가 100년 안이기 때문이다. 한 자 길이 잣대로 구름의 높이를 재는 것은 무리다. 한되짜리 바가지로 강물 을 재는 것은 어려운 이치이다.
그런데 석가는 타고난 대단한 재 질이 대단하여 100년 이상을 재는 빛을 가졌고 그 빛으로 100년 이 상을 재 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철학, 종교가들이 되었는데, 석 가가 본 것은 하나님 없는 인간으로는 제일 긴 시간 6천년을 보았 고, 공간으로는 우주를 보았다. 이런 폭넓은 시야로 보았으니 대단한 명철이요, 그 명철의 밝음 속에서 이성이 궁구하여 결론을 내렸으나 이 땅위에 살고 간 그 어떤 사람보다도 탁월한 이치를 알아냈으니 바로 지혜였던 것이다. 그 지혜가 윤회론이라는 불교의 중심교리가 되었다. 윤회되는 현 상을 본 이 지혜로운 철인이 이 윤회되는 인생 이치 속에 가장 현 명한 방법, 윤회된다고 보는 인생 속에서 가장 손해를 적게 보고 유익을 크게 보는 방법을 연구해서 제시하였으니 바로 수도이다. 그 수도의 방법은 돌을 놓고 그 돌 앞에서 돌을 닮고 돌이 되기 를 노력하는 것이다. 돌에게 있는 것, 돌의 모습, 돌의 성질은 무 엇이겠는가 돌은 무욕이다. 따라서 돌 앞에서 욕심이란 전부 없 애 버리고 돌처럼 무욕을 향하여 길을 가자는 것이다. 이렇게 방 향이 잡히니까 이 무욕의 길, 극욕의 길에 좋은 보조 수단이 삭발, 금주, 금육식, 금색.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불교의 경전으로는 아무리 연구해도 알 수 없는 불교가 생긴 이 치이다. 석가가 불교를 만들 때 그 자신도 모르는 그 자신 이상의 세계에서 자기가 만든 종교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말씀의 한 성구인 것이다. 여자를 가까이 하니 성욕이 더 움직인다. 돌에게는 없는 일이다. 그것을 끊어버리자는 것이 금색이다. 돌은 치밀어 오르는 불같은 맹수성이 없다. 육식이 인간을 포학하게 만 드는 금육식이다. 안 먹어면 죽기 때문에 자살할 수는 없고 생존 을 위한 최소한의 음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들이 바로 돌을 닮아가는 제일 지름길인 것이다. 불교는 또한 무소유를 말한다. 불교인들이 섬기는 돌부처, 그 돌은 가진 것이 없으니 그 앞에서 수도하는 사람들도 자기 소유를 다 털어 버렸다. 머리카락이 길면 모양을 내려 하고 이로 인해 마음의 산발이 따르기 때문에 삭발이다. 돌이 백년 천년 제자리를 지키니 돌앞에서 돌이 되고자 돌처럼 앉아서 잠도 누워자지 않고 등도 벽에 대지 않는 수도를 한다. 가장 돌같은 사람, 돌에 근접한 사람, 그만 돌처럼 되었으면 불교에서는 최고의 도인으로 칭송받는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하필이면 돌이겠는가 6천년 인류역 사 그 시공의 범위 안에서 모든 것을 궁구해 볼 때 맹수보다는 사람이요 사람보다 나무요 나무보다 돌이었기 때문이다. 단시간을 보니 맹수처럼 닥치는 대로 거머쥐는 것이 가장 지혜롭다. 그러나 10년 세월을 보니 뒀다가 먹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보다 100년이 지나고 보니 나무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느린 것 같지만 햇볕을 향하여 욕심은 있으나 그 욕심 의 진도와 진척이 눈에 보이지 않도록 은밀히 조금씩, 이렇게 욕심 이 조절되고 활동이 늦어지니까 그만큼 오래 산다. 장구한 세월 속에 호령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100세 노인의 허연 수염을 조롱하며 저 절벽에 1000년된 고목이 눈을 내리 깔고 보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그 천년된 나무보 다 6천년을 꿈쩍도 않고 요동없이 만물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바위, 그것이 훗날을 보니 제일 지혜롭다. 날랜 토끼가 지혜로운 것 같 아도, 문명과 문화개발에 큰 소리치는 인생이 탁월한 것같아도, 세 월 속에 인내를 아는 나무가 노숙한 것 같아도, 결국은 바위만은 못하다. 하나님 없는 인간이 일반적으로 접하고 사는 가운데는 가 장 미련한 것같으나 가장 지혜로운 것이 바위다. 이 사실을 깨달 은 석가가 그 혜안의 명철로 우주 안에서 자기가 붙들 수 있는 것 으로 돌을 찾고 그기에 자신의 마음을 옮겨놓은 상을 새겼으니 곧 돌부처인 것이다. 금정산봉에서 축소된 만물들의 모임이 있었다. 휘날리는 수백 년 소나무, 노루, 사슴, 매미, 흘러가는 시냇물까지. 인간을 대표 하여 그 자리에 참석했던 분이 이전 예수 믿기 전 자신의 과거를 회상케 된다. 순간으로 지나가면 그만인 시냇물아! 3일 울면 그만 인 매미야, 너나 내나 같은 존재, 백년을 넘지 못하는 이 허무함에 수년을 술로만 잠겨 살고 눈물로 밤길을 헤매며 인생의 비참함에 실성을 했던 자기 옛모습이 스쳐지나간다. 그 시절 그 마음 속에 부러움은 나무였고, 그 시절 자신의 가장 부러운 존재는 바위였다. 그 앞에서 눈물 짓고 한숨으로 탄식했던 자신, 고개 들 수없어 부끄러웠던 자신이었다. 그후 그가 예수를 믿고 예수 안에 영생이 있음을 알았을 때, 그날 이후 예수에 미친 세월로 40년을 달려왔었다. 다시 만난 옛날의 만물들이 새로웠다. 영생의 존재 창조주의 아들이 왔노라, 바위야 나무야 범아 노 루야 만물아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영생을 받아 쥔 이 존재를 보아라! 제일 나이 많은 늙은 바위가 엎드려 수하의 모든 존재들 에게 '다 같이 절하라' 외치는 소리가 있었다. 만물이 일어나 경배 하는 금정산 70인 바위 자리에 그 존경을 받으며 대속하신 주님을 향해 무한한 감사와 만물을 향하여까지 부끄럼없는 진리 생애 한 길로 가리라는 재다짐이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 역시 복음이 없었다면 돌고 돌아 돌부처 앞에 돌을 닮기 위해 노력하다가 자기 인생을 마쳤지 않았겠는가 불교 에 만족은 할 수없지만 그기는 6천년 돌이라도 있으니 순간의 위안 은 그기서 찾지 않았겠느냐는 말이다. 인간이 마음에 불을 켜서 이성이 활동하게 되었고 그 이성은 지 혜라는 실력을 가지게 되고 그 지혜가 길을 찾다보면 지혜있다는 말을 듣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그기서 더 지혜로 워지면 철학자가 되고 더 나가면 종교가가 되고 종교 중에 가장 큰 종교가 되면 돌 앞에 앉아 돌되기를 바라는 그 자리에 서고야 마는 것이다. 이러므로 바로된 중은 머리를 때려보면 돌소리가 나 지 사람 소리가 나지 않는다. 지혜를 만들어 내는 명철 우리는 지혜를 배우고 있다. 명철이 지혜를 만들어 내는 곳이다. 우리의 지혜는 어디를 향해야겠는가 우주뿐이 아니고 천국 까지 볼 수 있는 이런 밝기의 불빛이 있다면 그 빛 가운데서 우리 의 명철이란 세상과 천국을 두 손에 올려놓고 양쪽을 보며 연구하 고 통찰해야 한다. 우리의 이성이 천국까지 같이 볼 수 있는 불빛 만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이 빛을 가지고 밝은 마음이 되면 이 마음의 이성이란 요소는 많은 면으로 따져보고 연구하고 살펴보게 된다. 바로 이런 마음의 활동을 지혜라고 하는데, 지혜있는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밝 은 마음이 되는 것이 필요하고 밝은 마음이 되는 것은 밝은 빛 진리와 영감의 불빛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대속의 공로가 있어야 사 올 수 있고 켤 수 있는 것이 진리이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덮은 것을 열어 젖히며 보게 하신다.
이 러므로 진리의 불빛으로 우리가 볼 것은 천국과 세상, 하나님과 자 기, 만물과 인간, 6천년 범위 안이 아니라 영원 전에서 영원 후 무 궁까지. 이렇게 볼 수 있는 빛이 있다면 여기서 나오는 명철은 우리의 이성으로 하여금 영생의 구원을 향해 내가 찾아 나설 내가 걸 어갈 내가 잡을 나의 복음길을 보여주고 데려가는 지혜가 나올 것이다. 돌 앞에 앉아 있는 지혜는 우주 안, 6천년 시간 안만 보는 명철 에서 나온 결과이다. 주님 앞에 복음으로 걸어갈 나의 길은 어떤 길인가를 아는 이 지혜는 우주 밖 천국까지, 6천년을 앞뒤로 깨치 고 영원전에서 영원후까지 보게 하는 진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믿는 우리 만이 갈 수 있는 길이다. 지혜가 갖추는 2가지 이제 지혜를 살펴보았고 지혜의 필요성도 알아보았다. 진리와 영감으로 밝아진 마음이 되면 마음의 요소 중 이성이 활동하게 되는데 이것을 지혜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혜는 과거와 현재 알게 된 것으로 미래를 상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혜의 실력과 활 동은 지식의 양에 달려있다. 마음의 요소에서 지식을 맡고 있는 것이 지성이다. 얼마나 지성 안에 있는 기억창고에 많은 지식이 보관되어 있느냐, 바른 지식이 보관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지혜는 그 실력과 활동이 커지게 된다.
그러므로 지혜는 지식을 찾아 얻 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또한 지혜는 현재 마음과 몸이 욕심과 감정에 피동되는 것을 자제시키게 된다. 욕심을 절제하지 못하고 감정을 자제시키지 못하면 결국 자기 자신을 망하게 하는 것을 지 혜는 잘 알기 때문에 근신을 찾아 얻어려는 것이다. 지식을 얻으려는 것은 활동의 자료이기 때문이고, 근신을 얻으 려는 것은 쓸데없이 낭비되어 탕진되는 것을 아끼려는 것이니 지혜 에게는 이 2가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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