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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을 입을 자 (잠8:17)

본문

이 아침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을 자"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말보다 더 귀하고 아름다운 말은 없을 것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자녀가 나를 위해 준다, 또 남편이 나를 사랑하고, 아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말 등등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런데 그보다 더 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하나님께서 벌레만도 못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분 한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에게 사랑을 베풀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먼저 하나님의 사랑이란 어떤 사랑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신 사랑입니다. 예레미야 31장 3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무궁한 사랑입니다.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변합니다. 역사도 변하고, 시대도 흘러가고 사람도 달라지고, 인심도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을 호세아 6장 4절에서는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구름이 가득히 끼어도 바람만 불어오면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신선한 이슬 방울이 맺혀 있다가도 햇빛이 비춰오기만 하면 바싹 말라버리고 맙니다. 이와같이 인간의 사랑이 금방 없어지는 구름과 이슬에 불과한 것입니다. 혼례식을 거행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 다음과 같은 다짐을 하게 됩니다. "나는 당신만을 사랑하겠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가난할 때나, 부요할 때나, 건강했을 때나, 병들었을 때나, 어떤 경우,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만을 사랑하겠습니다."라고 다짐을 합니다만 그 다짐이 얼마가지 않아서 변해 버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때와 장소에 따라서 달라지고, 환경과 조건에 따라 변하는 사랑이며, 감정에 따라 달라지며,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사랑입니다. 마치 칠면조의 벼슬의 빛깔이 하루에도 일곱번 이상 변하듯이 인간의 사랑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타산적이요, 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상대적입니다. 이해관계 때문에 조건이 좋을 때는 사랑하지만 그 좋은 조건이 사라져 버리면 사랑도 소멸되어 버립니다. 상대방의 언행에 따라 변하는 것이 인간의 사랑입니다. 그야말로 바람같이 왔다가 바람같이 지나가 버리는 것이 인간의 사랑입니다. 내가 실패할 때는 이웃들이 조롱하고 친구관계가 멀어지고, 부모처자가 냉대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요, 사랑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와 같이 변하고, 없어지고, 사라져 버리는 인간애(人間愛)를 찾아서 헤메고 있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 쉽게 변하는 인간의 사랑 때문에 낙심하고 좌절하고 심지어는 자살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의 사랑이란 본질적으로 변하는 것임을 깨닫고, 인간의 사랑 때문에 슬퍼하거나, 좌절하거나, 눈물 흘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영원불변한 사랑이요, 영원 무궁한 사랑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 구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영원토록 복락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사랑은 끝까지 완벽하게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에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가를 잘 표현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은 30에 판 가룟 유다 까지도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까지도 사랑하셨습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완벽하게 사랑하신 것입니다. "끝까지"라고 하는 말은 헬라어로 "에이스텔로스"라고 하는데, 이 말의 의미는 "완벽하게, 몹시"라는 뜻으로 예수님의 사랑은 이처럼 완벽한 사랑이요, 몹시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구속사의 절정이 되는 십자가 상에서 목숨을 버리기까지 인간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세상에 다시 오실때 까지 인간들을 사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세상 끝날까지 예수님께서 완벽하게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사랑은 잠잠히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인간들의 사랑은 떠들썩하게 살아가는 사랑입니다. 조그만 사랑을 하면서도 굉장히 큰 사랑을 하는 것처럼 떠들썩하고 야단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시면서도, 독생자까지 내어주시면서도 조금도 떠들지 아니하시고 조용하고도 잠잠하게 우리들을 사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스바냐 3장 17절을 의역해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희를 구원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그것을 시끄럽게 떠들지도 않으시고, 그것을 드러내지도 아니하시고, 잠잠히, 고요히 사랑하셨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잠잠히, 고요하게 우리들을 사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때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지, 사랑하고 계시지 않는 것인지 그 자체도 깨닫지 못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뜨겁게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잠잠하게, 고요하게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 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사랑하고 계시는데 어떤 사람을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잠언 8장 17절에 보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로마서 9장 13절에 보면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 말씀을 읽을 때에 "참, 이상하다. 하나님이 인간을 편애하시네"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왜 에서는 미워하시고 야곱은 사랑하셨을까 설명을 하자면 길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에서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간 사람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만 뜨겁게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도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려 한다면 하나님 없이는 한시라도 살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말세가 되면 모든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말세가 되어서 사람들의 사랑과 믿음과 열심이 식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과 믿음이 식어져 가는 때에 우리 모두는 주님만 뜨겁게 사랑할 수 있도록 우리의 가슴 속에 성령님충만, 믿음충만, 사랑이 충만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입술로만 주님을 사랑하는 체하고, 입술로만 "주여!, 주여!"하고, 마음은 주님께로부터 멀어지고, 행위로는 주님을 멀리하는 그러한 자리에 나가서는 안되며 마음으로, 행위로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이전보다도 더 주님을 뜨겁게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받들어 충성하고, 주님을 위해서 더욱 더 충성하는 뜨거운 사랑이 우리의 가슴 속에 용솟음쳐야 될 줄로 믿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8절에 보면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로 할 수 없는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도마처럼 예수님을 만져보지도 못했고, 사도 요한처럼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보지도 못했습니다. 베드로나 야고보나 다른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직접 목도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아서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신앙의 연륜이 더해 갈수록 이전보다 더욱더 뜨겁게 주님을 사랑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길은 아주 간단하고도 쉽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로 40절 까지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계명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사랑하고 계십니까 저는 처음 이 성경 말씀을 읽을 때에 고민이 생겼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과연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또 어떻게 해야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하고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다가 이 말씀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찬송을 부를 때에, 열심을 다하여 부르는 것을 말합니다.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울 때에 하나님 말씀에 주의하여 귀를 기울이는 것을 말합니다.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기도할 때에 목숨을 다하여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저 적당하게 기도하고 마는 것, 이것은 하나님을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다가 죽을지언정 목숨을 내걸고 기도하는 것이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주님께 예물을 드릴 때에, 즉 헌금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헌금의 기준은 많이 하는 것, 적당하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헌금의 기준은 힘을 다하여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릴 때에,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쓰고, 하나님 앞에는 인색한 마음으로 헌금을 드릴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드릴 물질이 없어서 헌금을 드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육체의 쾌락을 위하는 데는 많은 물질을 쏟지만, 영이 사는 일에는 힘을 다하지 않습니다.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먼저 내몸이 어떤 몸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과거에는 지옥갈 몸이었습니다만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구원받아 영생을 얻고, 천국갈 몸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은 전도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니한 영혼들을 향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전도를 하여 그 영혼을 주앞으로 인도하면 그것이 바로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로 35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2절에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거짓이 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체하고 찾아와 입을 맞추고 거짓된 문안을 했던 것입니다. 사람은 진실된 사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미워하면서 사랑하는 체하는 것은 진실된 사랑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4장에 보면 십사만 사천의 반열에 속할 자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신앙의 정절을 지키고 음란하지 아니하고 이성간에 정절을 지키는 사람, 그 사람이 십사만 사천의 반열에 속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신앙의 정절을 굳게 지켜 하나님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라고 하면 신앙의 정절, 정결을 지켜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북유럽 숲속에 흰담비(Ermine)라는 동물이 살고 있는데, 이 동물의 털은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사냥꾼들이 이 동물을 잡기 위해서 이 동물의 우리 안팎에 검정칠을 해놓고 잡는다고 합니다. 이 동물은 본능적으로 자기의 털을 더럽히지 않을려고 하는 습성이 있어서, 자기 우리가 더럽혀진 것을 알고, 우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한다고 합니다. 결국은 사냥개에 물려서 죽고 마는데, 이처럼 하찮은 동물일지라도 자기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데, 오늘의 성도라고 하면 신앙의 정절, 이성간의 정절을 지켜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전보다도 더욱 주님을 뜨겁게 사랑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변함없이, 끝까지 주님만 사랑하십시다. 고난이 다가오고 역경이 다가오더라도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되어져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그 크신 사랑, 영원불변하신 사랑을 끝까지 받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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