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전 팔기의 복음 (잠24:13-22)
본문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혹 야구 경기를 좋아 하십니까 뭐니 뭐니 해도 야구에 있어서는 볼만한 장면이라는 것은 역시 홈런을 통쾌하게 날리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야구에서 강타자라고 불리우는 선수는 대개로 스트라이크 아웃도 많이 당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홈런 타자라고 해서 타율이 꼭 높은 것은 아닙니다. 2할 5푼 정도만 되도 홈런만 잘 날려주면 그 팀에 많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베이브 루프라는 사람은 야구계에서는 아주 신화적 홈런타자로써 기록된 사람입니다. 그는 무려 714개의 홈런을 날렸습니다. 그러나 스트라이크 아웃도 1330회나 당했다는 것이올시다. 여러분 우리는 이 홈런 친 것만 생각하지 그 홈런과 함께 스트라이크 아웃 당하는 그 비참한 시간이 이렇게 많았다는 사실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 야구 타자들이 나왔다가 스트라이크 아웃될 때 모자 벗고 수그리고 들어가는 것 보면 처절합니다. 그런시간이 무려1300회나 있고, 그러나 714번의 홈런이 이 사람을 유명하게 기억되게 만들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실패 뒤의 성공이 아니라 성공과 함께 실패가 있었고, 실패와 함께 성공이 있었다는 얘깁니다. 우리는 그분의 스트라이크 아웃 당하는 장면들은 전혀 생각지 않고 홈런 날리는 그 시간만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을 꼽으라면 누구나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가난한 집에 태어났고 지독하게 많은 시련을 당한 사람중에 대표입니다. 법률학교에 입학도 거절 당했습니다. 그리고 두번이나 걸친 사업에 실패로 인해서 여러해동안 빚더미에 올라 고생을 했고, 정치가가 된 다음에도 선거에 무려 8번이나 낙선하는 뼈아픈 경험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뒤늦게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길이 약간 미끄러웠을 뿐이지 낭떨어지는 아닙니다. 내가 살아온 길이 미끄러웠을 뿐이지 위태 위태 했지 결국은 절망은 아니었다. 하는 얘깁니다. 일반적으로 아브라함 링컨 하면은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요 그리고 노예를 해방한 위대한 인물이다. 그리고 하나 알수 있다면 그저 학교 공부라는 것은 별로 한일이 없다더라. 거기까지는 알고 있습니다만은 그 아버지가 구두 수선하는 구두수선공이었다는 것과 그 많은 실패가 있었고 무려 8번이나 낙선하는 경험을 가진 그 사람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않을려고 합니다. 남보다 더 많은 시련을 겪은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그같은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거듭되는 실패속에서 그는 겸손해 졌습니다. 강한 믿음을 가지게 됐습니다. 집념의 사나이가 됐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도 됐습니다. 인내, 많은 인내를 통해서 인내의 사람이 됐습니다. 여러분 이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7번 넘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칠전 팔기 일곱번 넘어져도 여덟번째 일어난다 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잠깐 생각을 멈춰야 합니다. 의인이 일곱번 넘어진다. 거기서부터 생각해 봅시다. 의인도 넘어지는 겁니다. 성경 맥락에 의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넘어 뜨립니다. 의인에게도 실패가 있습니다. 의인에게 고통이 있습니다. 의인도 넘어진다. 의로운 자의 고난, 바로 이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성경 전체의 맥락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욥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넘어질 때가 있고 일어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넘어 뜨렸다는 거예요. 의인이 넘어진다. 그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는 의인이냐 악인이냐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넘어진다고 하는 것, 실패한다는 것, 고통을 당한다, 역경을 당한다. 그건 꼭같은 현상입니다. 같은 자리에서 한배에 실렸고 한 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거예요. 꼭같이 고난을 당하는데 거기에 의인이 있고, 악인이 있더란 말입니다. 의인이 당하는 고난은 다시 일어날 것이구요 악인이 당하는 고난은 단 한번 고난 당해도 그대로 심판으로 끝나고 말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거기에 있고, 의인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이 거기에 있습니다. 문제는 도덕성 문제 뿐입니다. 그 고난이 얼마나 심한 것이냐 그건 묻지 마십시다. 동시에 같은 모양으로 고난을 당하나 여기에 도덕성 문제가 있어요. 의인이냐 악인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더 깊은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흔히 우리 인간들은 결과가 방법을 정당화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시련을 고통을 겪었더라도 마지막만 좋으면 마지막만 좋게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지난날의 잘못과 도덕성 까지도 다 정당화 될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그것이 잘못입니다. 공산주의의 기본철학입니다. 결과가 방법을 정당화 한다. 일년에 백만명을 숙청하더라도 상관없다. 도덕성을 묻지마라. 결과만 좋으면 그 모든것은 다 합리화 되고 정당화 될 수 있을거라고 그렇게 믿고, 그렇게 밀어 붙입니다. 이게 독재자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의인이라는 게 먼저입니다. 도덕성이 먼저입니다. 오직 의로운 자 만이 하나님께서 그를 마지막 아름다운 결과에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다는 겁니다. 그 미래와 종말을 보장해 주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의로운 자에게는 그 고난을 통해서 보다 더 밝은 미래보다 더 큰축복, 보다 더 온전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요, 성경의 맥락이올시다. 자 그러면 우리가 고난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람으로써도 생각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요인입니다. 왜 이같은 일이 있는가 원인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넘어짐에 이유 있습니다. 실패에 이유 있습니다. 절대로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볼때에는 더더욱 이유 분명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경륜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하나님의 메세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고난 당할때에 한가지 꼭 기억해야 될 것은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입니다. 병들어도 우리는 건강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만은 병들때에 더 크게 느낍니다. 우리는 성공할 때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만은 실패할때에 더 하나님의 큰 사랑 확실한 사랑을 간증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입니다. 더욱 그러할 것은 여기는 구체적인 말씀이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다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합니다만은 하나님께서 순종 하도록 구체적으로 액션을 행동을 취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인도 하십니다. 가르치는 말하고 인도한다는 말은 다릇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절대로 양보하지 않습니다. 한치도 양보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인도하십니다. 그것이 시련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버리지 못하는 것을 버리게 합니다. 끊지 못하는 것을 끊게 합니다.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또 취하지 못하는 것을 이루게 하십니다. 여러분 이름대면 알만한 분입니다만은 참 큰일을 많이 하시는 분인데 언제 한번 사석에 앉았는데 그 분은 술을 좋아합니다. 언제나 옆에서 술냄세가 납니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지독하게 술을 좋아합니다. 한번 마셨다 하면 그저 뭐 몇병을 마시는 사람입니다. 이거는 그만한 충고를 받으면서도 여전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래야 되는줄로 알고 어렸을 때부터 그게 자기의 문화요 가정의 풍습이요 대대로 내려오는 생활 방법입니다.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어느때 옆에 앉았을 때 보니까 술을 안해요. 안할 뿐만 아니라 축배를 드는데도 안들어요. 그것조차도 안해요. 그래 제가 깜짝 놀라서 내가 알기에는 술을 좋아하시는데 어떻게. 아이구 안합니다. 어떻게요 요새 몸이 좋지 않아서 진찰을 했는데 의사가 말하기를 술 한 방울이라도 먹으면 죽어. 이러더랍니다. 그래서 그래 아무래도 죽는것 보다야 이게 낫지 그래 끊었다고 그래요. 대단한 위력이라 대단히 위대한 분이라고 제가 칭찬해 줬어요. 그거 쉽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그러나 보세요. 지가 안 끊을 수 있어요. 하나님이 몰아 치는데 내가 한평생 못 끊는거 끊게 만들어요. 한평생 그래야 되겠다 하면서도 그렇게하지 못하는거 되게 만들고 행하게 만듭니다. 여러분이 의지가 약하다구요 약하고 강하고가 어디 있어요. 하나님이 몰아 치는데 제가 어떻게 하실꺼요. 이것이 시련이라는 것이요. 마가렛 미첼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주 햇병아리 신문기자로 출발을 합니다. 큰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녀가 사고로 인해서 다리를 다쳐서 절게 됩니다. 26살 처녀가 이렇게 다리를 다치고 기자생활을 그만두게 될때 그는 인생이 다 무너지는 것 같았고, 좌절이 엄습해 왔습니다. 낙심하고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그속에서 다시 믿음을 얻고 마음을 잡고 일어설 때 그렇지 다리는 다쳤지만 내가 글은 쓸 수 있다. 이래서 소설을 쓰게 됩니다. 생전 처음 쓰는 소설입니다. 10년에 걸쳐서 소설한권을 완성을 해 가지고 이걸 가지고 출판사를 찾아 다닙니다. 3년동안 이 출판 저 출판사 찾아 다녔지만 누구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읽어 볼려고도 않습니다. 그 풋내기가 쓴거 소설가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쓴거 그거 누가 그걸 보겠다고 하겠어요. 마지막에는 원고가 다 너덜너덜 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뤠이슨이라고 하는 출판사 사장을 만날려고 하는 사람을 만날려고 했지만 만날 길이 없어서 그가 여행할 때 기차역에 나가 섰다가 기차 탈려고 하는 사람을 딱 붙들고 선생님 이 원고를 딱 한번만 읽어 주세요. 하도 부탁을 하니까 그대로 받아 들고 가방속에 쳐박아 넣고 말았습니다. 기차여행 하면서 보라고 했는데 안봤어요. 그리고 여행을 하고 돌아왔는데 돌아와 보니까 전보가 와 있습니다. 미첼로부터. 한번만 읽어 주세요. 몇달후에 또 전보가 왔습니다. 한번만 읽어봐 주세요. 세번째 전보가 왔을 때 그 아가씨가 간절하게 한번만 읽어봐 달라고 기차 정거장에서 부탁하던 얼굴이 생각이 나서 읽기 시작을 했습니다. 소설에 미쳤습니다. 그래가지고 출판을 했는데 하루에, 하루에 오만부가 팔렸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고 하는 소설입니다.
여러분 이런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 같습니까 어찌 단 한두번의 이야기로 망했느니 흥했느니 얘기하고 있습니까 문제는 그 시련앞에 서 있는 자세가 문제입니다. 사회학자 커밍 웍은 이렇게 말합니다. 현대에서 성공할려면 지능이 높아야 하고 기술이 높아야 하고 지식이 있어야 되고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97%는 바로 자세에 있다고 합니다. attitude" 이 시련을 맞는 자세 내가 당한 사건을 직면하는 자세가 좋아야 한다. 거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이에 자세히 말씀합니다. 원수가 넘어질때 즐거워 하지 마라. 다른 사람 잘못될 때 특별히 나를 괴롭힌 사람, 나를 억울하게 만든 사람, 바로 그 사람이 넘어질 때 통쾌하게 여기지 말라구요. 왜요 그것과 나는 상관이 없으니간요. 마치 내 원수가 망하는 것이 내 성공처럼 착각하지 마라. 시기 질투 하지 말라고, 악한자의 득이함을 성공을 보고 분하게 여기지도 말라. 분해 할것 없어요. 이건 또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니까요.
1940년에 발명가 췌스터 캘슨이라고 하는 분이 자기 나름대로 좋은 물건을 하나 연구해 가지고 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큰 회사, 작은 회사를 할 것 없이 20개 회사를 다니면서 부탁을 해 봅니다. 7년동안 이 회사에 가서 이 제품이 좋은 겁니다. 이 아이디어 거 좋은 겁니다. 이거 만들면 됩니다. 아무리 얘기해도 7년동안 다녔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다가 해로이드 캠퍼니라고 하는 회사 조그마한 회사 사장님한테 가서 얘기를 하는 중에 내가 7년동안 이거를 가지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 7년이라는 말에 감동이 되서 어디한번 봅시다. 하고 얘길 했죠. 거기서 물건을 만들었어요. 두사람이 다 돈방석에 앉았어요. 그게 바로 전기 복사기 올시다. 여러분 우리는 너무 남들의 성공을 쉽게 생각합니다. 하루 아침에 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 뒤에는 엄청난 시련들이 있어서 된 것이에요. 거품은 있을 수 없어요. 악한자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잘못된 방법에서 불의한 도덕성, 거기서 뭐가 되어졌다 하더라도 그건 성공이 아니요 부러울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어요. 오히려 두려워 할것 밖에요. 오로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잃어버린 실종된 정직함을 되찾아야 합니다. 현상은 같으나 내용은 다릅니다. 남의 나라, 다른 사람, 다른 사건, 넘볼 것 없습니다.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습니다. 시비할 것도 없습니다. 부러워 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우리의 성실을 물어 보십시다. 여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실패라고 해서 그 실패라고 하는 사건 앞에서 좌절하든가 혹 교만하던가 원망하던가 시비하던가 누구를 비방할 것 없습니다. 그것은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실패 그속에 하나님의 경륜이 있고 하나님의 생각이 있고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며 구체적으로 들으며 그의 인도하시는 방향을 보아야 합니다. 한문을 닫으면서 또다른 문을 열어 주시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큰 성공에 계기가 눈 앞에서 기다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련을 두려워 하지 말것입니다. 비관하지도 말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조금도 주저하지 맙시다. 빼야 될것은 빼고 버려야 될 것은 버려야 되겠죠.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여덟번째 일어나는 기적을 바라보고 오늘도 명랑하게 새로운 용기로 미래를 맞아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 성결케 하고 내일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런데 야구에서 강타자라고 불리우는 선수는 대개로 스트라이크 아웃도 많이 당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홈런 타자라고 해서 타율이 꼭 높은 것은 아닙니다. 2할 5푼 정도만 되도 홈런만 잘 날려주면 그 팀에 많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베이브 루프라는 사람은 야구계에서는 아주 신화적 홈런타자로써 기록된 사람입니다. 그는 무려 714개의 홈런을 날렸습니다. 그러나 스트라이크 아웃도 1330회나 당했다는 것이올시다. 여러분 우리는 이 홈런 친 것만 생각하지 그 홈런과 함께 스트라이크 아웃 당하는 그 비참한 시간이 이렇게 많았다는 사실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 야구 타자들이 나왔다가 스트라이크 아웃될 때 모자 벗고 수그리고 들어가는 것 보면 처절합니다. 그런시간이 무려1300회나 있고, 그러나 714번의 홈런이 이 사람을 유명하게 기억되게 만들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실패 뒤의 성공이 아니라 성공과 함께 실패가 있었고, 실패와 함께 성공이 있었다는 얘깁니다. 우리는 그분의 스트라이크 아웃 당하는 장면들은 전혀 생각지 않고 홈런 날리는 그 시간만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을 꼽으라면 누구나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가난한 집에 태어났고 지독하게 많은 시련을 당한 사람중에 대표입니다. 법률학교에 입학도 거절 당했습니다. 그리고 두번이나 걸친 사업에 실패로 인해서 여러해동안 빚더미에 올라 고생을 했고, 정치가가 된 다음에도 선거에 무려 8번이나 낙선하는 뼈아픈 경험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뒤늦게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길이 약간 미끄러웠을 뿐이지 낭떨어지는 아닙니다. 내가 살아온 길이 미끄러웠을 뿐이지 위태 위태 했지 결국은 절망은 아니었다. 하는 얘깁니다. 일반적으로 아브라함 링컨 하면은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요 그리고 노예를 해방한 위대한 인물이다. 그리고 하나 알수 있다면 그저 학교 공부라는 것은 별로 한일이 없다더라. 거기까지는 알고 있습니다만은 그 아버지가 구두 수선하는 구두수선공이었다는 것과 그 많은 실패가 있었고 무려 8번이나 낙선하는 경험을 가진 그 사람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않을려고 합니다. 남보다 더 많은 시련을 겪은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그같은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거듭되는 실패속에서 그는 겸손해 졌습니다. 강한 믿음을 가지게 됐습니다. 집념의 사나이가 됐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도 됐습니다. 인내, 많은 인내를 통해서 인내의 사람이 됐습니다. 여러분 이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7번 넘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칠전 팔기 일곱번 넘어져도 여덟번째 일어난다 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잠깐 생각을 멈춰야 합니다. 의인이 일곱번 넘어진다. 거기서부터 생각해 봅시다. 의인도 넘어지는 겁니다. 성경 맥락에 의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넘어 뜨립니다. 의인에게도 실패가 있습니다. 의인에게 고통이 있습니다. 의인도 넘어진다. 의로운 자의 고난, 바로 이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성경 전체의 맥락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욥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넘어질 때가 있고 일어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넘어 뜨렸다는 거예요. 의인이 넘어진다. 그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는 의인이냐 악인이냐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넘어진다고 하는 것, 실패한다는 것, 고통을 당한다, 역경을 당한다. 그건 꼭같은 현상입니다. 같은 자리에서 한배에 실렸고 한 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거예요. 꼭같이 고난을 당하는데 거기에 의인이 있고, 악인이 있더란 말입니다. 의인이 당하는 고난은 다시 일어날 것이구요 악인이 당하는 고난은 단 한번 고난 당해도 그대로 심판으로 끝나고 말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거기에 있고, 의인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이 거기에 있습니다. 문제는 도덕성 문제 뿐입니다. 그 고난이 얼마나 심한 것이냐 그건 묻지 마십시다. 동시에 같은 모양으로 고난을 당하나 여기에 도덕성 문제가 있어요. 의인이냐 악인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더 깊은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흔히 우리 인간들은 결과가 방법을 정당화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시련을 고통을 겪었더라도 마지막만 좋으면 마지막만 좋게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지난날의 잘못과 도덕성 까지도 다 정당화 될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그것이 잘못입니다. 공산주의의 기본철학입니다. 결과가 방법을 정당화 한다. 일년에 백만명을 숙청하더라도 상관없다. 도덕성을 묻지마라. 결과만 좋으면 그 모든것은 다 합리화 되고 정당화 될 수 있을거라고 그렇게 믿고, 그렇게 밀어 붙입니다. 이게 독재자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의인이라는 게 먼저입니다. 도덕성이 먼저입니다. 오직 의로운 자 만이 하나님께서 그를 마지막 아름다운 결과에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다는 겁니다. 그 미래와 종말을 보장해 주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의로운 자에게는 그 고난을 통해서 보다 더 밝은 미래보다 더 큰축복, 보다 더 온전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요, 성경의 맥락이올시다. 자 그러면 우리가 고난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람으로써도 생각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요인입니다. 왜 이같은 일이 있는가 원인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넘어짐에 이유 있습니다. 실패에 이유 있습니다. 절대로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볼때에는 더더욱 이유 분명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경륜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하나님의 메세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고난 당할때에 한가지 꼭 기억해야 될 것은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입니다. 병들어도 우리는 건강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만은 병들때에 더 크게 느낍니다. 우리는 성공할 때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만은 실패할때에 더 하나님의 큰 사랑 확실한 사랑을 간증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입니다. 더욱 그러할 것은 여기는 구체적인 말씀이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다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합니다만은 하나님께서 순종 하도록 구체적으로 액션을 행동을 취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인도 하십니다. 가르치는 말하고 인도한다는 말은 다릇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절대로 양보하지 않습니다. 한치도 양보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인도하십니다. 그것이 시련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버리지 못하는 것을 버리게 합니다. 끊지 못하는 것을 끊게 합니다.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또 취하지 못하는 것을 이루게 하십니다. 여러분 이름대면 알만한 분입니다만은 참 큰일을 많이 하시는 분인데 언제 한번 사석에 앉았는데 그 분은 술을 좋아합니다. 언제나 옆에서 술냄세가 납니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지독하게 술을 좋아합니다. 한번 마셨다 하면 그저 뭐 몇병을 마시는 사람입니다. 이거는 그만한 충고를 받으면서도 여전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래야 되는줄로 알고 어렸을 때부터 그게 자기의 문화요 가정의 풍습이요 대대로 내려오는 생활 방법입니다.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어느때 옆에 앉았을 때 보니까 술을 안해요. 안할 뿐만 아니라 축배를 드는데도 안들어요. 그것조차도 안해요. 그래 제가 깜짝 놀라서 내가 알기에는 술을 좋아하시는데 어떻게. 아이구 안합니다. 어떻게요 요새 몸이 좋지 않아서 진찰을 했는데 의사가 말하기를 술 한 방울이라도 먹으면 죽어. 이러더랍니다. 그래서 그래 아무래도 죽는것 보다야 이게 낫지 그래 끊었다고 그래요. 대단한 위력이라 대단히 위대한 분이라고 제가 칭찬해 줬어요. 그거 쉽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그러나 보세요. 지가 안 끊을 수 있어요. 하나님이 몰아 치는데 내가 한평생 못 끊는거 끊게 만들어요. 한평생 그래야 되겠다 하면서도 그렇게하지 못하는거 되게 만들고 행하게 만듭니다. 여러분이 의지가 약하다구요 약하고 강하고가 어디 있어요. 하나님이 몰아 치는데 제가 어떻게 하실꺼요. 이것이 시련이라는 것이요. 마가렛 미첼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주 햇병아리 신문기자로 출발을 합니다. 큰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녀가 사고로 인해서 다리를 다쳐서 절게 됩니다. 26살 처녀가 이렇게 다리를 다치고 기자생활을 그만두게 될때 그는 인생이 다 무너지는 것 같았고, 좌절이 엄습해 왔습니다. 낙심하고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그속에서 다시 믿음을 얻고 마음을 잡고 일어설 때 그렇지 다리는 다쳤지만 내가 글은 쓸 수 있다. 이래서 소설을 쓰게 됩니다. 생전 처음 쓰는 소설입니다. 10년에 걸쳐서 소설한권을 완성을 해 가지고 이걸 가지고 출판사를 찾아 다닙니다. 3년동안 이 출판 저 출판사 찾아 다녔지만 누구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읽어 볼려고도 않습니다. 그 풋내기가 쓴거 소설가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쓴거 그거 누가 그걸 보겠다고 하겠어요. 마지막에는 원고가 다 너덜너덜 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뤠이슨이라고 하는 출판사 사장을 만날려고 하는 사람을 만날려고 했지만 만날 길이 없어서 그가 여행할 때 기차역에 나가 섰다가 기차 탈려고 하는 사람을 딱 붙들고 선생님 이 원고를 딱 한번만 읽어 주세요. 하도 부탁을 하니까 그대로 받아 들고 가방속에 쳐박아 넣고 말았습니다. 기차여행 하면서 보라고 했는데 안봤어요. 그리고 여행을 하고 돌아왔는데 돌아와 보니까 전보가 와 있습니다. 미첼로부터. 한번만 읽어 주세요. 몇달후에 또 전보가 왔습니다. 한번만 읽어봐 주세요. 세번째 전보가 왔을 때 그 아가씨가 간절하게 한번만 읽어봐 달라고 기차 정거장에서 부탁하던 얼굴이 생각이 나서 읽기 시작을 했습니다. 소설에 미쳤습니다. 그래가지고 출판을 했는데 하루에, 하루에 오만부가 팔렸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고 하는 소설입니다.
여러분 이런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 같습니까 어찌 단 한두번의 이야기로 망했느니 흥했느니 얘기하고 있습니까 문제는 그 시련앞에 서 있는 자세가 문제입니다. 사회학자 커밍 웍은 이렇게 말합니다. 현대에서 성공할려면 지능이 높아야 하고 기술이 높아야 하고 지식이 있어야 되고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97%는 바로 자세에 있다고 합니다. attitude" 이 시련을 맞는 자세 내가 당한 사건을 직면하는 자세가 좋아야 한다. 거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이에 자세히 말씀합니다. 원수가 넘어질때 즐거워 하지 마라. 다른 사람 잘못될 때 특별히 나를 괴롭힌 사람, 나를 억울하게 만든 사람, 바로 그 사람이 넘어질 때 통쾌하게 여기지 말라구요. 왜요 그것과 나는 상관이 없으니간요. 마치 내 원수가 망하는 것이 내 성공처럼 착각하지 마라. 시기 질투 하지 말라고, 악한자의 득이함을 성공을 보고 분하게 여기지도 말라. 분해 할것 없어요. 이건 또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니까요.
1940년에 발명가 췌스터 캘슨이라고 하는 분이 자기 나름대로 좋은 물건을 하나 연구해 가지고 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큰 회사, 작은 회사를 할 것 없이 20개 회사를 다니면서 부탁을 해 봅니다. 7년동안 이 회사에 가서 이 제품이 좋은 겁니다. 이 아이디어 거 좋은 겁니다. 이거 만들면 됩니다. 아무리 얘기해도 7년동안 다녔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다가 해로이드 캠퍼니라고 하는 회사 조그마한 회사 사장님한테 가서 얘기를 하는 중에 내가 7년동안 이거를 가지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 7년이라는 말에 감동이 되서 어디한번 봅시다. 하고 얘길 했죠. 거기서 물건을 만들었어요. 두사람이 다 돈방석에 앉았어요. 그게 바로 전기 복사기 올시다. 여러분 우리는 너무 남들의 성공을 쉽게 생각합니다. 하루 아침에 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 뒤에는 엄청난 시련들이 있어서 된 것이에요. 거품은 있을 수 없어요. 악한자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잘못된 방법에서 불의한 도덕성, 거기서 뭐가 되어졌다 하더라도 그건 성공이 아니요 부러울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어요. 오히려 두려워 할것 밖에요. 오로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잃어버린 실종된 정직함을 되찾아야 합니다. 현상은 같으나 내용은 다릅니다. 남의 나라, 다른 사람, 다른 사건, 넘볼 것 없습니다.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습니다. 시비할 것도 없습니다. 부러워 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우리의 성실을 물어 보십시다. 여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실패라고 해서 그 실패라고 하는 사건 앞에서 좌절하든가 혹 교만하던가 원망하던가 시비하던가 누구를 비방할 것 없습니다. 그것은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실패 그속에 하나님의 경륜이 있고 하나님의 생각이 있고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며 구체적으로 들으며 그의 인도하시는 방향을 보아야 합니다. 한문을 닫으면서 또다른 문을 열어 주시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큰 성공에 계기가 눈 앞에서 기다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련을 두려워 하지 말것입니다. 비관하지도 말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조금도 주저하지 맙시다. 빼야 될것은 빼고 버려야 될 것은 버려야 되겠죠.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여덟번째 일어나는 기적을 바라보고 오늘도 명랑하게 새로운 용기로 미래를 맞아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 성결케 하고 내일을 기다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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