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은 일어난다 (잠24:15-20)
본문
구약의 지혜자는 놀라운 소망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다 시 일어나려거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자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은 기독신자들 의 별칭입니다. 이 말씀은 의인이 쉽게 넘어진다거나 넘어져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요셉은 옥에 갇혔으면서도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썼고 또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굳게 믿음을 지켰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과연 의인은 넘어지지 않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주를 붙들고 죄악 의 세상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항상 조심하여 처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의인은 이 세상에서 절대로 넘어지지 않는다는 말도 결코 아닙니다. 의인은 사람인 이상, 또 세상에서 사는한 그런 장.단점을 모두 가지 고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넘어져 실수한 적이 있고 성군이란 다윗도 넘어져 실수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할 수만 있으면 택함받은 자라도 넘어지게 하려고 비상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더우기 의인이 넘어질 경우 악인의 경우보다 충격이 훨씬 더 크게 됩니다. 그 이유는
(1) 넘어지지 않으려고 조심하다가 넘어졌기 때문입니다.
(2) 의인이 넘어졌다는 것은 자타가 함께 치명적인 수치로 여기기 때 문입니다.
(3)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지는 충격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의인이 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고 보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유의하면서 아래와 같이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1. 의인은 항상 악한 자의 포위망 속에 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본문 15절 말씀에 '악한 자여 의인의 집을 엿보지 말며 그 쉬는 처소 를 헐지 말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를들면 구약의 사울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계속하여 군대를 파송하 며 몸소군대를 지휘하여 다윗을 추격하며 포위하였습니다. 삼상 19:11 에 "사울이 사자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그를 지키다가 아침에 그를 죽이게 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다윗은 자기의 아내 미갈의 도움으로 창으로 내려와 살았습니다. 그후에도 엔게디의 굴속이나, 십의 황무지에서, 또는 산골 등지에 까지 계속하여 사울은 다윗을 추격하여 죽이려 했싸브니다(삼상 23:20-23). 그럴때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시고 그 민족의 위기 를 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세상은 우리 신자들을 포위하여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마치 시56:6에 "저희가 내 생명을 엿보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종적 을 살피나이다"라고 한 그대로입니다. 시 59:3-4에 '저희가 나의 생명 을 해하려고 엎드려 기다리고 강한 자가 모여 나를 치려 하오니, 여호와여 이는 나의 범과를 인함이 아니요,나의 죄를 인함도 아니로소이다. 내가 허물이 없으나 저희가 달려와서 스스로 준비하오니 주여 나 를 도우시기 위하여 깨사 감찰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편 성도의 상황속에서 살고 있는 자들임을 직시하여 야 합니다.
2. 의인은 결국 넘어지지 않고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16절에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 와."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1) 의인은 넘어지도 재기가 불가능하리만큼 아주 엎드려지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손으로 붙들어 주시는 까닭입니다. 시편 37:24에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려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2) 설령 의인이 넘어져서 치명상을 입었다 하더라도, 여섯가지 환난 에서 그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일곱가지 재앙에서도 그를 넉넉히 구원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욥 5:19에 "여섯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가지 환난이라 도 그 재앙이 내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3) 의인이게는 궁극적인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 14:32에 "의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 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은 땅에서 여러번 넘어지나 실패로 연결하지 않고 다시금 일어납니다.의인에게는 회개하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롬 1:17) 의인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욥 19:25).
그러므로 예레미야 8:4에 "너는 또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 이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떠나 갔으 면 어찌 돌아오지 아니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의인은 계속적인 하나님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혹 사람 보기에 실패하고 넘 어지는 것 같으나 결국 의인은 승리합니다. 악인은 의인이 망하는 것을 보려다가 결국 제가 망하고 맙니다. 파사 의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오십규빗이 넘는 장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하만 자신이 장대 위에 달리고 말았습니다.
3. 의인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자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 악은의 멸망을 보고 슬퍼하는 심정을 가집니다. 본문 17절에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려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선민들의 원수가 망할 때에 하나님의 영화가 드러나는 것을 보 고 영적 기쁨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이해관계에서 기 뻐해서는 안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자기 원수가 멸망함을 보고 슬퍼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심정이었습니다. 사울이 죽었을 때에 다윗은 슬퍼했습니다. 시36:13-14에 "나는 저희가 병들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들어왔도다. 내가 나의 친구와 형제에 행함같이 저희에게 행하였으며 내가 굽 히고 슬퍼하기를 모친을 곡함같이 하였도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는 것은 결코 어떤 개인의 만족 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다 윗은 사울에게 그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원리입니다.
(2) 악인은 형통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는 심정입니다. 이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본문 19-20절에 "너는 행악 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하는 자에게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고 하 였습니다. 그 이유는, (까) 악인은 세상에서 형통한다고 해도 내세에는 아주 상급이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에는 '대저 행악자는 내세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다) 악인의 형통은 미구에 등불처럼 꺼지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욥기 20:5에 "악인의 이기는 자랑도 잠시요, 사곡한 자의 즐거움도 잠 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욥기 21:17-18에 "악인의 등불이 꺼짐이나, 재앙이나 그들에게 인함 이나,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곤고케 하심이나, 그들이 바람 앞에 검불같이 폭풍에 불려가는 겨같이 되는 일이 몇번이나 있었느냐"고 하 였습니다.
(3) 반역자로 더불어 사귀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21-22에 "내 아들아 여호와의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로 더불어 사귀자 말라.대저 그들의 재앙은 속히 임하리니 이 두자의 멸망을 누 가 알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반역자는 정치적으로 왕을 모반하는 역적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종교적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우상숭배 자, 무신론자를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의인은 악인의 포위망 속에서 일어나고 맙니다.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납니다. 의인은 선으로 악을 이깁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의인이 일어나는 법이 없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될 수거 없기 때문 입니다. 의인이 일어나는 이 한가지가 역사의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날에 의인이 무덤에서 부활하는 한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요셉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벱느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권능 이 바벧론 천지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일어나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능히 하나님을 택하 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 요 죽으실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사망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 일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그 다른 아무 피조물이 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 을 수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은 분명히 일어납니다. 우리 믿는 자는 일어납니다. 일어나는 용기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배웁시다.
그러므로 마귀는 할 수만 있으면 택함받은 자라도 넘어지게 하려고 비상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더우기 의인이 넘어질 경우 악인의 경우보다 충격이 훨씬 더 크게 됩니다. 그 이유는
(1) 넘어지지 않으려고 조심하다가 넘어졌기 때문입니다.
(2) 의인이 넘어졌다는 것은 자타가 함께 치명적인 수치로 여기기 때 문입니다.
(3)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지는 충격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의인이 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고 보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유의하면서 아래와 같이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1. 의인은 항상 악한 자의 포위망 속에 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본문 15절 말씀에 '악한 자여 의인의 집을 엿보지 말며 그 쉬는 처소 를 헐지 말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를들면 구약의 사울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계속하여 군대를 파송하 며 몸소군대를 지휘하여 다윗을 추격하며 포위하였습니다. 삼상 19:11 에 "사울이 사자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그를 지키다가 아침에 그를 죽이게 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다윗은 자기의 아내 미갈의 도움으로 창으로 내려와 살았습니다. 그후에도 엔게디의 굴속이나, 십의 황무지에서, 또는 산골 등지에 까지 계속하여 사울은 다윗을 추격하여 죽이려 했싸브니다(삼상 23:20-23). 그럴때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시고 그 민족의 위기 를 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세상은 우리 신자들을 포위하여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마치 시56:6에 "저희가 내 생명을 엿보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종적 을 살피나이다"라고 한 그대로입니다. 시 59:3-4에 '저희가 나의 생명 을 해하려고 엎드려 기다리고 강한 자가 모여 나를 치려 하오니, 여호와여 이는 나의 범과를 인함이 아니요,나의 죄를 인함도 아니로소이다. 내가 허물이 없으나 저희가 달려와서 스스로 준비하오니 주여 나 를 도우시기 위하여 깨사 감찰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편 성도의 상황속에서 살고 있는 자들임을 직시하여 야 합니다.
2. 의인은 결국 넘어지지 않고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16절에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 와."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1) 의인은 넘어지도 재기가 불가능하리만큼 아주 엎드려지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손으로 붙들어 주시는 까닭입니다. 시편 37:24에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려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2) 설령 의인이 넘어져서 치명상을 입었다 하더라도, 여섯가지 환난 에서 그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일곱가지 재앙에서도 그를 넉넉히 구원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욥 5:19에 "여섯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가지 환난이라 도 그 재앙이 내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3) 의인이게는 궁극적인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 14:32에 "의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 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은 땅에서 여러번 넘어지나 실패로 연결하지 않고 다시금 일어납니다.의인에게는 회개하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롬 1:17) 의인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욥 19:25).
그러므로 예레미야 8:4에 "너는 또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 이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떠나 갔으 면 어찌 돌아오지 아니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의인은 계속적인 하나님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혹 사람 보기에 실패하고 넘 어지는 것 같으나 결국 의인은 승리합니다. 악인은 의인이 망하는 것을 보려다가 결국 제가 망하고 맙니다. 파사 의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오십규빗이 넘는 장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하만 자신이 장대 위에 달리고 말았습니다.
3. 의인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자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 악은의 멸망을 보고 슬퍼하는 심정을 가집니다. 본문 17절에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려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선민들의 원수가 망할 때에 하나님의 영화가 드러나는 것을 보 고 영적 기쁨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이해관계에서 기 뻐해서는 안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자기 원수가 멸망함을 보고 슬퍼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심정이었습니다. 사울이 죽었을 때에 다윗은 슬퍼했습니다. 시36:13-14에 "나는 저희가 병들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들어왔도다. 내가 나의 친구와 형제에 행함같이 저희에게 행하였으며 내가 굽 히고 슬퍼하기를 모친을 곡함같이 하였도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는 것은 결코 어떤 개인의 만족 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다 윗은 사울에게 그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원리입니다.
(2) 악인은 형통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는 심정입니다. 이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본문 19-20절에 "너는 행악 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하는 자에게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고 하 였습니다. 그 이유는, (까) 악인은 세상에서 형통한다고 해도 내세에는 아주 상급이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에는 '대저 행악자는 내세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다) 악인의 형통은 미구에 등불처럼 꺼지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욥기 20:5에 "악인의 이기는 자랑도 잠시요, 사곡한 자의 즐거움도 잠 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욥기 21:17-18에 "악인의 등불이 꺼짐이나, 재앙이나 그들에게 인함 이나,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곤고케 하심이나, 그들이 바람 앞에 검불같이 폭풍에 불려가는 겨같이 되는 일이 몇번이나 있었느냐"고 하 였습니다.
(3) 반역자로 더불어 사귀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21-22에 "내 아들아 여호와의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로 더불어 사귀자 말라.대저 그들의 재앙은 속히 임하리니 이 두자의 멸망을 누 가 알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반역자는 정치적으로 왕을 모반하는 역적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종교적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우상숭배 자, 무신론자를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의인은 악인의 포위망 속에서 일어나고 맙니다.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납니다. 의인은 선으로 악을 이깁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의인이 일어나는 법이 없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될 수거 없기 때문 입니다. 의인이 일어나는 이 한가지가 역사의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날에 의인이 무덤에서 부활하는 한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요셉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벱느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권능 이 바벧론 천지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일어나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능히 하나님을 택하 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 요 죽으실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사망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 일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그 다른 아무 피조물이 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 을 수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은 분명히 일어납니다. 우리 믿는 자는 일어납니다. 일어나는 용기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배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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