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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라 (잠26:20-27:19)

본문

1. 경제위기가 한국 정부에 요구했던 첫 번째 것은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병든 증세의 징조는 거짓말입니다. 국가 사회가 얼마만큼 병들었는가를 가늠하는 척도는 진실성에 있습니다. 마아크 트웨인은 "거짓말과 진실이 경주를 하는데 거짓말이 지구를 절반 돌 때 진실은 아직 신발끈도 다 매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거짓말이 앞질러 가는 인간의 병든 마음을 풍자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도 거짓된 간사한 혀, 그리고 아첨하는 입술과 자 랑하는 혀를 영영히 멸하시리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시52:1) 강포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고 여호와 하나님 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시52:2)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시52:3)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 짓을 사랑하는도다 (셀라) (시52:4) 간사한 혀여 네가 잡아먹는 모든 말을 좋아 하는도다 (시52:5) 그런즉 하나님이 영영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취하여 네 장 막에서 뽑아 내며 생존하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시12:2)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 로 말하는도다 (시12:3)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 시리니 (시12:4)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의 혀로 이길지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 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유대인의 한 마을에 세 딸을 가진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세 딸은 각 기 한 가지씩 흠을 가지고 있었는데,첫째 딸은 몹시 게으르고, 두번째 딸은 도 벽이 있었으며, 막내 딸은 남을 헐뜯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이에 아버지는 그들 의 결점을 고쳐 주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생각 끝에 랍비인 힐렐을 찾아갔습니다. "이제 도저히 제 딸들의 버릇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하오니 랍비님께서 저회 딸들을 일년 동안 맡아서 버릇을 고쳐 주십시오." 그의 간곡한 부탁으로 인해 힐렐은 딸들을 맡기로 했습니다. 세 딸을 맡은 힐렐은 즉각적으로 그녀들의 단점을 고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그는 큰 딸을 불렀습니다. "너는 내 집에 있는 한, 아무 일도 하지 말도록 하여라. 너를 위해 몸종을 여 럿 고용해 놓았으니 너 편한대로 지내거라." 그리고는둘째 딸을 불렀습니다. "이 마을에서는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모두들 나를 신뢰한다. 그 러니 너는 네가 가지고 싶은 것이 있거든 무엇이든지 그냥 집어 오도록 해라. 네가 물건들을 그냥 집어 온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네게 값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막내 딸을 불렀습니다. "매일 저녁 식사 후, 너는 내 방으로 와서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하도 록 하거라. 아무 이야기라도 좋으니 말이다." 그리고는 일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녀들의 아버지는 이제 딸들을 데리 러 랍비의 집으로 와서 그녀의 딸들과 마주 앉았습니다. 첫번째 딸은 얼른 일 어나 다과상을 차려온 뒤, 아버지께 말했습니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하고 누워 있기란 정말 고역이어요."
둘째 딸은, "물건은 돈을 지불하는 맛에 산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라며 수줍은 듯 고개 를 숙였습니다. 그러나 막내 딸은 아버지외 무릎에 올라 앉으며, "아버지! 글쎄 힐랄 랍비의 여자 관계가 보통 복잡한게 아니어요" 하며 힐렐 을 헐뜯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그 남자는 이 세상에서 헐뜯는 버릇을 고치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문 20,21절을 보면, "사람이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는" 아름다운 인간관 계를 파괴시키는 것은 무엇보다 거짓말, 험담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잠26:20)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잠26:21)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 여기의 말쟁이는 16장 28절에도 나옵니다.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 라." '말쟁이'의 원어는 '속삭이는 자'로서 남을 은근히 쏘고 깎아 내리는 험담 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분쟁의 불을 더 크게 하는 나무와 숯과 같다는 뜻 입니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 려 가느리라."(26:22)고 지적한 것처럼 남을 쏘는 말은 듣는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처럼 잘 받아먹기 때문에 말하기 쉽다는 뜻입니다. 남의 말 안 하기 한 가 지만으로도 상당한 인격자가 될 수 있습니다. 혹자가 말하는 험담 방지법 두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째 방법은 남의 말을 하고싶을 때 "이 말을 본인 앞에서 할 수 있을까"하 고 자문하는 것입니다. 본인 앞에서 할 수 있으면 본인에게 직접 하는 것이 좋 고, 본인에게 할 수 없다고 생각되면 제3자에게 말 안 하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어떤 사람이 남의 험담을 나에게 하면 되도록 빨리 화제를 돌리게 유도 하며 말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싶지 않다."는 의사를 느끼게 해야 합니다. 제정 러시아의 피터 대제에게 한 간교한 신하가 다른 신하의 험담을 넌지시 하자 피터 대제는 "그건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요." 하고 잘라버렸습니다. 그 러자 그 신하는 "그 사람이 대제의 험담도 한 일이 있습니다."하고 고자질하자 대제는 "그건 당신과 상관없지 않소" 하고 역시 잘라 버렸다고 합니다. 예수 께서 진실한 말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5:37)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실을 말하므로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사람이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는"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파괴시키는 두 번째 요인은 겉과 속이 다른 행위입니다.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26:23) 입술과 마음이 따로따로 움직이는 이중성을 말합니다. 마음속에는 미움을 품 고 입술만 온유하고 겸손한 것은 은으로 칠한 질그릇 같다고 말합니다. 말만 들으면 인격자 같아도 사실은 가치가 낮은 인간이란 뜻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행동 중에 감정적인 동기가 경계되었습니다. "감정 있는 자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에는 궤휼을 품나니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라."(26:24-25) 겉으로 표현되는 행동이나 말이 아무리 부드럽게 장식되어 있어도 마음속에 감정이 있고 상대를 해치는 계산이 들어있을 때 그것은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여기에서 일곱이란 숫자는 히브리인의 완전수로서 많은 가 증한 생각으로 치밀하게 계산하고 꾸미는 말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자 기자신을 넘어지게 한다고 말합니다.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 이리라." (26:27) 이것은 하나님의 공정한 판결을 말하는 것으로서 남을 해치려는 함정이나 돌 은 그 사람 자신을 해치게 되는 원인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에스더서에 나 오는 하만은 모함해서 없애려던 유대인 모르드개를 위하여 세운 나무에 자기가 달려 죽었습니다. 예언자 다니엘을 모함해서 사자 굴이 준비되었으나 그 굴에 서 죽은 것은 모함한 고관들 자신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하나님의 공의 를 말하는 내용들입니다. 진실하지 못한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단적으로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23, 24절에 나타난 바처럼 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과 말이 다릅니다. 마음으 로는 악과 궤휼을 품고 있지만 입술은 온유함으로 위장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러한 경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윗사람에게 마음에 없는 말을 하게 될 경우, 그것은 아부나 아첨이 됩니다. 아랫사람에게 할 경우 그것은 진실을 은폐시키는 것이 됩니다. 이렇듯 마음에는 악을 품으며 말 을 그럴 듯하게 하는 자들에 대해 다윗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악인과 행악하는 자와 함께 나를 끌지 마옵소서 저희는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시 28 3).
그런데 왜 이런 일을 행하게 됩니까 우리의 모든 생각과 뜻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알고 있다 해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악 을 도모하여 묘책을 찾는 이들에 대해 다윗은 "하나님이 저희를 쏘시리니 저희 가 홀연히 살에 상하리로다."(시 64:7)라고 말하였습니다. 성경 속의 인물 중 가 롯 유다는 바로 이런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유월절 성찬 시에 제자 중 하나가 자신을 팔 것을 예언하시는 예수께 "내니이까"라고 질문함으로 이미 마리아가 옥합을 깨던 날부터 예수를 팔고자 했던 자신의 마음을 은폐시켰습니다(마 26:14-16, 25). 이것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가 그러한 죄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기 안의 죄된 본 성들을 자각하고 그럴 때마다 예수님의 보혈로 정케 되기를 원하며 회개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신앙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그로 인해 무뎌진 양심 으로 자신을 변명하고 옹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항상 자신의 내면을 말씀에 비추어보며 다윗과 같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 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
3. "사람이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는"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위하여 칭찬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타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말며." (27:2) 자화자찬, 자기선전은 인간관계를 해치는 것입니다. 혹시 칭찬이나 인정받을 일이 있으면 남들의 입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나올 때 그 관계가 바람직하다는 뜻입니다. 나에게 대한 평가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남들이 나를 칭찬해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그때가 바로 내 인격이 시험 당하는 순간이 므로 잠언은 이렇게 교훈 합니다.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 (27:21) 도가니와 풀무는 모두 광석을 제련하는 용광로입니다. 용광로에서 은과 금이 제련되어 나오듯이 내가 칭찬을 받는 것은 나의 신앙과 인격이 시험되는 순간 으로 알아 녹아지는 광석처럼 겸허하게 받아들여 순금이 되기 위하여 더욱 정 진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용광로에서의 제련을 예로 든 잠언은 대장간에서의 제철을 예로 들었습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 라." (27:17) 칼을 만들 때 두들기는 망치도 역시 철입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합니다. 좋은 친구가 좋은 친구를 만듭니다. 그것은 피차가 나누는 칭찬 그리고 그 칭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서로의 태도가 서로의 얼굴을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나에게 대한 남들의 평가를 듣게되는데 기독교인이 가질 기본적 자세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남들의 칭찬이나 험담을 별거 아닌 작은 일로 생각할 것입니다. 남들의 말처럼 변하기 쉬운 것은 없습니다.
둘째 참다운 칭찬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임을 명심할 것입니다.
셋째 최종적 판결도 하나님께 있으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그만입니다. 사람이 뭐라고 하든 크게 두려울 것은 없습니다. 이 3대 원칙은 고린도전서 4장 3-5절에 근거한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을 들어봅시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 하여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 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타인으로부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부터 칭찬을 받는 성도가 되시 기를 바랍니다. 4 . 면책 혹은 권고(충고)의 문제도 "사람이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는" 아 름다운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27:5-6) 5절을 모팻은 "말로 표현되지 않은 사랑보다 솔직한 충고가 낫다.고 번역 하였습니다. 솔직한 충고는 사랑의 표현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인사의 표 시로 입을 맞추었습니다. 가롯 유다도 예수를 배신할 때 입을 맞추었습니다. 입 맞춤이 사랑의 표현이라지만 원수의 마음을 품고 입을 맞추는 것은 오히려 인간관계를 파괴합니다. 오히려 솔직한 충고, 때로는 '통책' 곧 심한 책망일찌라도 사랑과 충성에서 나온 것이면 결과적으로 그것이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수립한 다는 말입니다.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 (27:9) 기름과 향은 옛날에 귀한 것들입니다. 그것들을 받으면 값진 선물로서 받는 자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 진실한 충고도 그런 값진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여기 의 '권고'는 번역마다 다를 정도로 여러 번역이 나왔는데 공동역에는 '따뜻한 우정'으로 번역했습니다. 일본어 번역이 박력이 있는데 "친구의 위로는 영혼에 게 힘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서로 위로해주고 위로받는 인간관계야말로 영혼 까지도 활기 있게 하는 값진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는"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새 사람 으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성경은 사람이 새롭게 거듭나는 방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엡4: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 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 을 받은 새 사람을 입는 일,"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계속적으로 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죄된 마음, 나뉘어진 마음, 진실하지 못한 마음이 십자가에 못박히고난 후부터는 자신의 옛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새사람으로서 그리스도가 자신의 내면에서 살아 주실 것 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 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결론적으로 인간의 모든 악은 마음으로부터 비롯됨을 알아야 합니다. 거듭나 지 못한 마음은 거짓된 말을 하게 하며,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 행함이 무책 임하고 죄악된 생활로 이끌어 갑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 하였습니다. "(롬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 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 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성도 여러분! 복음은 마음을 갈고 닦아 성인이 되는 종교의 가르침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요즈음같이 그리스도인이 욕을 먹는 시대에서 우리는 다시금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으로 거듭나 새 사람이 되었나 하는 것을 점검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척도는 진실성에 있습니다. 애국의 척 도도 진실성에서 결국 평가됩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순수하게 해석된다면 하나님께 대한 정직, 즉 진실성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하시는 분이십니다. "(시7:10)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 정직하지 못하면 중세기처럼 기독교는 타락하고 맙니다. 결혼생활에서 부부가 서로 상대방에게 진실하지 못할 때는 이미 그 결혼관 계는 사실상 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정직, 진실은 성령님의 역사이며, 거짓은 악령의 역사입니다. 간디가 하루는 거리에 나갔습니다. 많은 군중이 그에게 몰려왔습니다. 그 중 한 할머니가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울고 있었습니다. 간디는 수건을 꺼내 할 머니의 눈물을 씻어주며 이렇게 뇌까리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눈물을 씻어주고 싶지만 나에겐 손이 모자라는군." 이 짧은 한 마디가 전 인도에게 감 동을 준 것입니다. 이 말은 영국의 총칼에 눌려 울분이 쌓인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이 말은 가난에 허덕이는 배고픈 우리에게 위로를 주었습니다. 그 말은 아가서에 있는 말씀, "(아4:11)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 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에서 처럼 바로 꿀이요 젖이었습니다. 나의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나의 말은 파도를 일으키 기도 하고 바람을 자게도 합니다. 나의 말은 용기의 씨가 될 수도 있고 좌절의 뿌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의 말은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할 수도 있으며 그 얼굴을 상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쪼록 그리스도로 옷 입은 새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시는 삶을 통해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는"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이룩하며 사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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