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공들여 살라 (잠22:29)
본문
여러분, 가장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중에서도 한복이 들어갑니다. 우리나라의 한복은 우리들이 자신감을 가져도 될 만한 훌륭한 옷입니다. 한복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그런 옷입니다. 한복이 지니는 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곡선입니다. 한복의 동정이나 소매 그리고 깃에 나타나 있는 선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여인들이 신고 다니는 버선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 나타나는 선은 절묘하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한국적인 것을 들라 하면 도예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일본이 이 도예를 흉내 내고 있지만 도예는 지극히 한국적인 것입니다. 어떤 도예가가 도자기를 구워 내는 전 과정을 보여 주었는데 정말 혼신을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목욕 제계하여 잡념을 없애고 정성을 다해서 불을 지핍니다. 이렇게 불을 땐 후에는 가마니에서 다 구원진 도자기를 꺼냅니다. 꺼낸 것을 보니까 제 눈에는 모두 훌륭해 보였습니다. 아주 완전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도예가는 망치를 들고 만족스럽지 못한 도자기를 모두 깨 버립니다. 참 아까웠습니다. 그렇게 다 깨버리고는 그 많은 것 가운데서 몇 개만 남겨 놓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느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이 일을 하는 데 있어 저런 마음으로 한다면 거기에 적당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거기에 흠이 있고 하자가 있고 문제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작은 하자만 있어도 깨서 다시 원점으로 돌려 버리고 다만 몇 개만 남겨 놓으니 그 도예가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도자기는 이 땅에 단 하나라도 불량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저는 인생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생도 하나의 집을 짓는 것과 같고 도자기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람들로부터 참 성공한 인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면 하루아침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그 도예가와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가꾸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인생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이런 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은 이런 정신이 요구됩니다.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근실”이라는 말은 “공을 들인다”라는 말입니다. 무슨 일을 하되 공을 들여서 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이렇게 근실하게 살면 결코 천한 사람 앞에 서지 않습니다. 그 앞에는 반드시 영광이 주어질 것입니다.
1. 인생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오늘 사람들이 너무 공을 들이지 않습니다. 적당히 대충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자꾸 부실 인생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한보 사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한보는 시작부터 잘못되어 있습니다. 내돈은 한푼 없이 빚으로 시작을 했으니 거기에 처음부터 요행성이 들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고 나서 사람들을 모두 돈으로 매수를 해 사업을 하려했으니 그 인생이나 사업이 건실하게 잘될 리가 있습니까 오늘 보면 공을 들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요행성을 좋아합니다. 수고하며 땀을 흘리고 그 수고로 맺은 열매를 따서 먹겠다는 정신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런 정신이 아주 희박합니다. 복권이 성행하고 잘 팔리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일학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청화대”하면 돈을 싸들고 쫒아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청화대 배경을 가지고 수고를 적게 하고서도 순간적으로 횡재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편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공을 들이지 않고 쉽게 살려고 합니다. 그러니 이 나라가 조용하고 법대로 살아지겠습니까 이제는 교회까지 들어와서 지갑을 훔쳐 가고 가방을 훔쳐 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인생관이 얼마나 바르지 못하면 교회 안에까지 들어와서 남들이 기도할 때 가방을 훔쳐 가고 돈지갑을 뒤져 가고 그럽니까 그 인생이 무슨 빛이 나고 무슨 향기가 나겠습니까 사람은 굶어 죽을지라도 인생을 공들여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수고롭지만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인내의 마음으로 살아갈 때 발전이 있고 자신의 뜻을 이루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신문에 한국전력이 까치와의 전쟁에서 그만 손을 들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소개되었습니다. 까치들은 전신주 꼭대기에 집을 짓는데 철사나 쇠붙이가 30%나 사용된다고 합니다. 이 쇠붙이들이 바람만 불면 움직여서 자꾸만 정전 사고를 일으키는데 전체 정전 사고 가운데 까치집 때문에 발생되는 사고가 15%나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전에서는 전신주에 까치가 집을 짓지 못하도록 전신주 위에 뱀과 매의 모형을 만들어 놓았는데도 속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까치들이 집을 지으면 사람들이 전신주에 올라가서 손수 뜯어내고 또 지으면 뜯어내고 그렇게 54변을 했는데도 계속해서 짓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전에서는 까치와의 전쟁에서 그만 포기하고 손을 들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 못하는 한갓 날짐승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그런 집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면 무슨 일인들 못 하겠습니까 무엇인들 못해서 사기를 치고 남의 물건에 손을 대고 요행을 바라면서 살아가겠습니까 인간이 고귀한 것은 인생을 생각하면서 만들어 가면서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한 가지씩 만들어 가면서 살아갈 때 거기서 기쁨이 주어지고 보람이라는 열매를 따먹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아이가 갓 태어나면 먼저 젖을 먹이는 것이 아니고 오향이라 해서 다섯 가지의 맛으 알게 한다고 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초를 한 방울 혀에 묻혀 줍니다. 초가 얼마나 십니까 그러면 아이는 얼굴을 찡그릴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소금을 혀로 핥게 합니다. 세 번째로는 씀바귀 대에서 나오는 하얀 진액을 혀에 묻혀서 맛을 보게 합니다. 그러면 이 아이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울어 댑니다. 그때 가시로 혀끝을 살짝 찌르면 아이는 더욱 사정없이 울어 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탕을 혀끝으로 핥게 해줍니다. 쓴맛, 신맛, 짠맛, 아픈 맛 다 보인 후에 비로소 단맛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맵고 짜고 쓰고 아픈 맛을 감내하지 못한다면 인생의 단맛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음식을 통해서 교육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좀 잔인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미국의 선교사가 그 모습을 보고 “신생아를 학대하는 원시적인 악습”이라고 비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임어당이라는 중국의 학자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서양 문명이 인생을 보는 한계를 그러써 알 수 있다.”고 말했답니다. 여기서 중국인들이 인생의 깊은 교훈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그런 정신이 있었습니다. 정초가 되면 어린아이들에게 고들빼기와 씀바귀 나물을 먹였다고 합니다. 씀바귀가 얼마나 그 맛이 씁니까 옛말에 씀바귀는 귀신도 무서워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살려고 하고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생각들 때문에 자꾸만 세상이 시끄러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저시 아니하리라.”
2. 신앙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저는 신앙생활하면서 “기적같이” 나 “급성장” 이라는 말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업이 “급성장을 했다”는 것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한보를 보세요. 몇 년 만에 재계 순위 30대 재벌에 들어갔다고 야단을 떨더니만 마지막은 저 모양 아닙니까 어떻게 몇 년 만에 30대 재벌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입니다. 그러나지까 부정이 개입되고 편법이 개입되고 불법이 판을 친 것입니다. 그리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단기간내에 급성장을 할 수가 있습니까 이것은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기적같이”라는 말을 좋아하고 “소나기같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그것도 알고 보면 일확천금 사상이 담뿍 들어 있는 말입니다. 신앙이야말로 천천히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신앙이 단단하게 자라고 내실이 있습니다. “기적같이”라는 말은 자세히 살펴 보면 “수고 없이 이루어 달라”는 말입니다. 내 수고에 비해서 엄청나게 큰 축복을 달라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요행이지 무엇입니까 “소나기같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도 그렇게 좋은 발상이 아닙니다. 소나기는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여름에 소나기가 내리면 일시적으로는 시원해서 좋지만 식물들은 상합니다. 소나기는 물이 땅속에 스며들기도 전에 그냥 흘러가 버리고 맙니다. 식물만 망가트려 놓고 그냥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소나기가 아니고 “이슬비”라 좋습니다. 이슬비가 가장 좋은 비입니다. 이 이슬비는 조용하게 내려오지만 땅속 깊이까지 들어갑니다.그래서 땅을 적시고 식물을 살리고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루아침에 기적같이, 소나기같이 만들어지고 조성되고 익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오랜 시간 동안 뜨겁게 달구어지고 덥혀지고 익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신앙이 깊이 있게 익고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가끔 깡패들 가운데 어느 날 은혜를 받았다고 야단을 떠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흔한 말로 표현하면 소나기 같은 불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증을 한다고 돌아다니면서 눈물을 흘리고 야단을 떠는데 그것이 문제입닏. 뜨거운 불에 들어갔다 나왔으니 겉모양은 검게 탔을 것입니다. 그래서 겉에서 보면 익은 것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속은 그냥 있습니다. 마치 소나기가 지나간 것 같습니다. 소나기는 땅을 적시기는 하는데 속에는 물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여러분 고구마를 굽는 방법을 아십니까 고구마는 잘 타는 장작불에 넣어 구우면 안 됩니다. 아주 잘 타는 불에 고구마를 구우면 겉은 다 익은 것같이 보이는데 소근 그대로입니다. 고구마는 그렇게 굽는 것이 아닙니다. 잘 달구어진 작은 돌들 속에 넣어서 오랜 시간 놓아두면 푹 익습니다. 속까지 아주 잘 익습니다. 냄새를 맡아 보면 단내가 납니다. 무엇이든지 잘 익으면 냄새가 좋은 법입니다. 그것이 성숙이고 익은 모습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연륜이 중요합니다. 신앙은 어느 날 단번에 만들어지고 익는 것이 아닙니다. 매주일 예배에 참석해서 예배를 드리는 동안 우리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은혜의 이슬비가 그 영혼과 심령 속에 촉촉하게 니리게 됩니다. 그 은혜의 단비가 나의 영혼에 내림으로써 내 생각이 변하고 내 마음이 고침을 받으며 내 신앙이 뼈대를 이루고 깊이가 형성되어 마침내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공을 들여야 합니다. 공들인 인생에서 성숙한 인생이 만들어지듯 공들인 신앙에서 아름다운 신앙의 꽃이 피고 잘 익은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일에 근실한 사람은 천한 사람 앞에 서지 않고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자세입니다.
3. 지금 하는 일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 하는 일을 위해서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습니까 마르틴 루터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로 알고 일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하는 일에 공을 들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그런 마음으로 일을 하면 모두 그 분야에서 일인자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를 공들여 하려고 애를 씁니다. 목회는 편안하게 하려면 얼마든지 쉽게 놀면서 편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책임 회피같이 여겨집니다. 자꾸만 일을 만든다고 불평을 하는 분들도 있는데 사람은 신앙이나 일을 막론하고 편안하면 더 편해지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편안함은 발전을 주지 않습니다. 사람을 퇴보하게 만들고 게을러지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요령을 부리고 적당히 일을 하려는 사람을 가장 싫어합니다. 적당히 일하면서 재주나 피우고 요령을 피우는 사람은 우선 불성실해서 싫습니다. 그것은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오늘 같은 세상에서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전염이 됩니다. 오늘 이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얼마나 무서운 세상입니까
그런데 적당하게 살면서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옛날 한 청년이 재상이 되었습니다. 이 청년은 이웃 나라의 노숙한 왕을 찾아가서 지혜를 구했습니다. “제가 젊은 나이에 재상이 되었는데 어떻게 하여야 백성을 잘 보살필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그 왕은 그릇에 물을 가득 담아 주면서 “이 물그릇의 물을 쏟지 않은 채 왕궁을 한바퀴 돌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젊은 재상이 조심해서 물그릇을 들고 왕궁을 한바퀴 돌고 왔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왕궁 오른쪽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청년은 “물그릇에 정신을 쏟느라고 보질 못했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또 묻습니다. “왕궁 뒤편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또 대답했습니다. “거기도 보질 못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이제 가서 그런 한 가지 마음을 가지고 한눈 팔지 말고 백성들을 위해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그런 마음으로 하면 그 인생이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문제는 아주 간단한데 모두들 너무 쉽게 살려고 하고 쉽게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하니까 부실 인생이 만들어지고 부실한 나라가 만들어지고 부실한 신앙이 만들어지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는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그런 사람은 천한 자 앞에 서지 않고 왕 앞에 설 것이다” 얼마나 지당한 말씀입니까 오늘 이 시끄러운 세상을 살면서 우리들도 덩달아 흔들리지 말고 좀 멀고 힘들어도 정도를 걸으면서 내 인생을 익혀 가고 다져 가고 가꾸어 가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힘을 가지고 승리하시는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그 도예가는 망치를 들고 만족스럽지 못한 도자기를 모두 깨 버립니다. 참 아까웠습니다. 그렇게 다 깨버리고는 그 많은 것 가운데서 몇 개만 남겨 놓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느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이 일을 하는 데 있어 저런 마음으로 한다면 거기에 적당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거기에 흠이 있고 하자가 있고 문제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작은 하자만 있어도 깨서 다시 원점으로 돌려 버리고 다만 몇 개만 남겨 놓으니 그 도예가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도자기는 이 땅에 단 하나라도 불량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저는 인생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생도 하나의 집을 짓는 것과 같고 도자기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람들로부터 참 성공한 인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면 하루아침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그 도예가와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가꾸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인생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이런 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은 이런 정신이 요구됩니다.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근실”이라는 말은 “공을 들인다”라는 말입니다. 무슨 일을 하되 공을 들여서 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이렇게 근실하게 살면 결코 천한 사람 앞에 서지 않습니다. 그 앞에는 반드시 영광이 주어질 것입니다.
1. 인생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오늘 사람들이 너무 공을 들이지 않습니다. 적당히 대충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자꾸 부실 인생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한보 사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한보는 시작부터 잘못되어 있습니다. 내돈은 한푼 없이 빚으로 시작을 했으니 거기에 처음부터 요행성이 들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고 나서 사람들을 모두 돈으로 매수를 해 사업을 하려했으니 그 인생이나 사업이 건실하게 잘될 리가 있습니까 오늘 보면 공을 들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요행성을 좋아합니다. 수고하며 땀을 흘리고 그 수고로 맺은 열매를 따서 먹겠다는 정신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런 정신이 아주 희박합니다. 복권이 성행하고 잘 팔리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일학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청화대”하면 돈을 싸들고 쫒아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청화대 배경을 가지고 수고를 적게 하고서도 순간적으로 횡재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편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공을 들이지 않고 쉽게 살려고 합니다. 그러니 이 나라가 조용하고 법대로 살아지겠습니까 이제는 교회까지 들어와서 지갑을 훔쳐 가고 가방을 훔쳐 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인생관이 얼마나 바르지 못하면 교회 안에까지 들어와서 남들이 기도할 때 가방을 훔쳐 가고 돈지갑을 뒤져 가고 그럽니까 그 인생이 무슨 빛이 나고 무슨 향기가 나겠습니까 사람은 굶어 죽을지라도 인생을 공들여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수고롭지만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인내의 마음으로 살아갈 때 발전이 있고 자신의 뜻을 이루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신문에 한국전력이 까치와의 전쟁에서 그만 손을 들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소개되었습니다. 까치들은 전신주 꼭대기에 집을 짓는데 철사나 쇠붙이가 30%나 사용된다고 합니다. 이 쇠붙이들이 바람만 불면 움직여서 자꾸만 정전 사고를 일으키는데 전체 정전 사고 가운데 까치집 때문에 발생되는 사고가 15%나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전에서는 전신주에 까치가 집을 짓지 못하도록 전신주 위에 뱀과 매의 모형을 만들어 놓았는데도 속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까치들이 집을 지으면 사람들이 전신주에 올라가서 손수 뜯어내고 또 지으면 뜯어내고 그렇게 54변을 했는데도 계속해서 짓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전에서는 까치와의 전쟁에서 그만 포기하고 손을 들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 못하는 한갓 날짐승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그런 집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면 무슨 일인들 못 하겠습니까 무엇인들 못해서 사기를 치고 남의 물건에 손을 대고 요행을 바라면서 살아가겠습니까 인간이 고귀한 것은 인생을 생각하면서 만들어 가면서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한 가지씩 만들어 가면서 살아갈 때 거기서 기쁨이 주어지고 보람이라는 열매를 따먹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아이가 갓 태어나면 먼저 젖을 먹이는 것이 아니고 오향이라 해서 다섯 가지의 맛으 알게 한다고 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초를 한 방울 혀에 묻혀 줍니다. 초가 얼마나 십니까 그러면 아이는 얼굴을 찡그릴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소금을 혀로 핥게 합니다. 세 번째로는 씀바귀 대에서 나오는 하얀 진액을 혀에 묻혀서 맛을 보게 합니다. 그러면 이 아이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울어 댑니다. 그때 가시로 혀끝을 살짝 찌르면 아이는 더욱 사정없이 울어 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탕을 혀끝으로 핥게 해줍니다. 쓴맛, 신맛, 짠맛, 아픈 맛 다 보인 후에 비로소 단맛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맵고 짜고 쓰고 아픈 맛을 감내하지 못한다면 인생의 단맛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음식을 통해서 교육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좀 잔인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미국의 선교사가 그 모습을 보고 “신생아를 학대하는 원시적인 악습”이라고 비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임어당이라는 중국의 학자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서양 문명이 인생을 보는 한계를 그러써 알 수 있다.”고 말했답니다. 여기서 중국인들이 인생의 깊은 교훈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그런 정신이 있었습니다. 정초가 되면 어린아이들에게 고들빼기와 씀바귀 나물을 먹였다고 합니다. 씀바귀가 얼마나 그 맛이 씁니까 옛말에 씀바귀는 귀신도 무서워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살려고 하고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생각들 때문에 자꾸만 세상이 시끄러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저시 아니하리라.”
2. 신앙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저는 신앙생활하면서 “기적같이” 나 “급성장” 이라는 말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업이 “급성장을 했다”는 것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한보를 보세요. 몇 년 만에 재계 순위 30대 재벌에 들어갔다고 야단을 떨더니만 마지막은 저 모양 아닙니까 어떻게 몇 년 만에 30대 재벌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입니다. 그러나지까 부정이 개입되고 편법이 개입되고 불법이 판을 친 것입니다. 그리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단기간내에 급성장을 할 수가 있습니까 이것은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기적같이”라는 말을 좋아하고 “소나기같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그것도 알고 보면 일확천금 사상이 담뿍 들어 있는 말입니다. 신앙이야말로 천천히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신앙이 단단하게 자라고 내실이 있습니다. “기적같이”라는 말은 자세히 살펴 보면 “수고 없이 이루어 달라”는 말입니다. 내 수고에 비해서 엄청나게 큰 축복을 달라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요행이지 무엇입니까 “소나기같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도 그렇게 좋은 발상이 아닙니다. 소나기는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여름에 소나기가 내리면 일시적으로는 시원해서 좋지만 식물들은 상합니다. 소나기는 물이 땅속에 스며들기도 전에 그냥 흘러가 버리고 맙니다. 식물만 망가트려 놓고 그냥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소나기가 아니고 “이슬비”라 좋습니다. 이슬비가 가장 좋은 비입니다. 이 이슬비는 조용하게 내려오지만 땅속 깊이까지 들어갑니다.그래서 땅을 적시고 식물을 살리고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루아침에 기적같이, 소나기같이 만들어지고 조성되고 익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오랜 시간 동안 뜨겁게 달구어지고 덥혀지고 익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신앙이 깊이 있게 익고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가끔 깡패들 가운데 어느 날 은혜를 받았다고 야단을 떠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흔한 말로 표현하면 소나기 같은 불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증을 한다고 돌아다니면서 눈물을 흘리고 야단을 떠는데 그것이 문제입닏. 뜨거운 불에 들어갔다 나왔으니 겉모양은 검게 탔을 것입니다. 그래서 겉에서 보면 익은 것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속은 그냥 있습니다. 마치 소나기가 지나간 것 같습니다. 소나기는 땅을 적시기는 하는데 속에는 물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여러분 고구마를 굽는 방법을 아십니까 고구마는 잘 타는 장작불에 넣어 구우면 안 됩니다. 아주 잘 타는 불에 고구마를 구우면 겉은 다 익은 것같이 보이는데 소근 그대로입니다. 고구마는 그렇게 굽는 것이 아닙니다. 잘 달구어진 작은 돌들 속에 넣어서 오랜 시간 놓아두면 푹 익습니다. 속까지 아주 잘 익습니다. 냄새를 맡아 보면 단내가 납니다. 무엇이든지 잘 익으면 냄새가 좋은 법입니다. 그것이 성숙이고 익은 모습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연륜이 중요합니다. 신앙은 어느 날 단번에 만들어지고 익는 것이 아닙니다. 매주일 예배에 참석해서 예배를 드리는 동안 우리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은혜의 이슬비가 그 영혼과 심령 속에 촉촉하게 니리게 됩니다. 그 은혜의 단비가 나의 영혼에 내림으로써 내 생각이 변하고 내 마음이 고침을 받으며 내 신앙이 뼈대를 이루고 깊이가 형성되어 마침내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공을 들여야 합니다. 공들인 인생에서 성숙한 인생이 만들어지듯 공들인 신앙에서 아름다운 신앙의 꽃이 피고 잘 익은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일에 근실한 사람은 천한 사람 앞에 서지 않고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자세입니다.
3. 지금 하는 일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 하는 일을 위해서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습니까 마르틴 루터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로 알고 일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하는 일에 공을 들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그런 마음으로 일을 하면 모두 그 분야에서 일인자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를 공들여 하려고 애를 씁니다. 목회는 편안하게 하려면 얼마든지 쉽게 놀면서 편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책임 회피같이 여겨집니다. 자꾸만 일을 만든다고 불평을 하는 분들도 있는데 사람은 신앙이나 일을 막론하고 편안하면 더 편해지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편안함은 발전을 주지 않습니다. 사람을 퇴보하게 만들고 게을러지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요령을 부리고 적당히 일을 하려는 사람을 가장 싫어합니다. 적당히 일하면서 재주나 피우고 요령을 피우는 사람은 우선 불성실해서 싫습니다. 그것은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오늘 같은 세상에서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전염이 됩니다. 오늘 이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얼마나 무서운 세상입니까
그런데 적당하게 살면서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옛날 한 청년이 재상이 되었습니다. 이 청년은 이웃 나라의 노숙한 왕을 찾아가서 지혜를 구했습니다. “제가 젊은 나이에 재상이 되었는데 어떻게 하여야 백성을 잘 보살필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그 왕은 그릇에 물을 가득 담아 주면서 “이 물그릇의 물을 쏟지 않은 채 왕궁을 한바퀴 돌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젊은 재상이 조심해서 물그릇을 들고 왕궁을 한바퀴 돌고 왔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왕궁 오른쪽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청년은 “물그릇에 정신을 쏟느라고 보질 못했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또 묻습니다. “왕궁 뒤편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또 대답했습니다. “거기도 보질 못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이제 가서 그런 한 가지 마음을 가지고 한눈 팔지 말고 백성들을 위해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그런 마음으로 하면 그 인생이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문제는 아주 간단한데 모두들 너무 쉽게 살려고 하고 쉽게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하니까 부실 인생이 만들어지고 부실한 나라가 만들어지고 부실한 신앙이 만들어지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는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그런 사람은 천한 자 앞에 서지 않고 왕 앞에 설 것이다” 얼마나 지당한 말씀입니까 오늘 이 시끄러운 세상을 살면서 우리들도 덩달아 흔들리지 말고 좀 멀고 힘들어도 정도를 걸으면서 내 인생을 익혀 가고 다져 가고 가꾸어 가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힘을 가지고 승리하시는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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