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명 (시23:1-6)
본문
요즘은 아버지라는 이름이 옛날처럼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모 잡 지의 조사에 의하면 6살 짜리 어린이 100명중 92명이 아버지 보다 TV가 집에 있기 를 원했다고 하니 하늘같아 보이던 아버지의 존재가 이제는 어린이들에게까지 인 식이 달라져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 청소년 4명 가운데 3명이 아버지의 현재 모습에 만족치 않고 있는 것 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시 청소년사업과는 남녀 고교생각 1백5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95.10.11 조선일보)한 결과, 남학생 가운데 75%가 "아버지와 같은 인 물이 되길 원치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로 "다른 일을 하려고"(42%), " 가족관계나 교육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24%),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아"(21%) 라는 이유였는데 다시 말하면 아버지의 직업이나 교육방식 또는 인품에 불만을 가 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부모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서 "양쪽 모두 공경 하지 않는다"는 대답은 6%이었으며, 한쪽만 공경한다고 대답한 청소년(12%) 가운 데 어머니만 공경하겠다가 9%, 아버지만 공경하겠다는 3%미만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아버지의 인기가 월등히 낮은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 런 추세로 나가면 우리 아버지들의 노후가 암담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이 최근 "좋은 아버지 20계명"을 발표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실천해볼 만한 구체적 지침인 아버지 20 계명은 대체적으로 이렇습니다.
1. 자녀가 자기의견을 스스럼없이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준다.
2. 자녀의 인격과 결정권을 존중해준다.
3. 자녀가 좋아하는 책이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함께 보고 대화를 나눈다.
4. 공부하라는 말은 적게 하고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인다.
5. 자녀와 함께 문방구나 책방에 자주 가본다.
6. 자녀와 여행이나 견학, 독서를 함께 하거나 집안 일을 같이 하면서 대화의 시 간을 갖는다.
7. 식사할 때 자녀와 대화하면서 식탁예절을 지도한다.
8. 아이와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9. 똑같은 일로 두 번 야단치지 않는다.
10.자녀 앞에서 남을 흉보지 말고 다른 사람의 좋은 점과 긍정적인 면을 이야기 한다.
1 1.자녀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다.
1 2.집안의 힘든 일에 자녀를 참여시켜 더불어 사는 지혜와 협동심 을 길러준다.
13.휴일은 박물관견학, 가재도구 손질 등으로 다양하게 보낸다.
14.자녀에게 자신의 일기장 등을 잘 보관하도록 일깨우고, 가능하면 집에 가족 박 물관을 만든다.
15.자녀가 잘못했어도 손으로 때리지 말라. 꼭 필요할 때에 한해 벌을 세우거나 회초리를 든다.
16.가훈을 정하거나 개성 있는 집안 분위기를 만들고, 창조적 놀이의 개발을 통해 집안의 문화적 기풍을 만든다.
17.남의 아이도 내 아이처럼 사랑한다.
18.작은 물건도 아껴쓰고 재활용하도록 지도한다.
19.자녀 앞에서 외제품을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한다.
20.자녀 앞에서 교통신호를 어기거나 새치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어떤 분들은 "아버지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라고 하면서 "7대 아버지 행복 헌장 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웃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23편을 본문으로 "아버지의 사명"이란 제목으로 설교한다고 할 때 의 아하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가정의 달에 아버지를 생각할 때 이상적인 아버지는 바로 시편 23편과 같은 아버지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입니다. 이 땅에 태어난 남자로서 가장 고귀한 신분은 아버지라는 신분입니다. 신분마다 행해야 할 역할이 있고, 사명이 있는 법입니다. 이 땅에 수많은 직분이 있지만 특 별히 아버지의 사명을 깨닫지 못하면 자신의 역할을 상실하게 되고 역할을 상실하 면 위치가 흔들리게 되고 위치가 흔들리면 신분의 위기가 오게 되는 합니다. 이것이 자녀의 자부심입니다. 이것이 자녀 의 자존감입니다. 이것이 자녀의 신뢰감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아버지에 대 한 자부심이 있는 자녀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자녀는 방황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자부심이 되어 주는 자녀는 잘못되지 않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자부심 속에 성장한 자녀들은 살다가 어려움을 만나도 눈빛이 흐 려지지 않고, 얼굴이 어두워지지 않습니다. 마음은 늘 자신감과 풍성한 여유를 누 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좌절하고 낙심하지 않는 것 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에 대하여 갖고 있는 존경심은 그 부모들이 얼마나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십계명 중의 하나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출애굽기 20:12). 그러나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존경을 받을 만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자녀들의 존경을 잃는 일보다 더 큰 비극은 없다고 봅니다. 만일 우리의 자녀들이나를 부끄럽게 여긴다면 우리는 가장 수치스러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자녀들이 사람들 가운데서 나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우리 아빠야! 우리 아빠가 최고야!"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면 이것보 다 더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을 없을 것입니다. 이런 말은 금을 주고 은을 주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에 자부심이 되는 아버지를 통해 경험되는 놀라운 체험 속에 나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 나입니다.아 나의 아버지가 계시는구나! 나의 아버지가 나를 돌보시고 계시는 구나!"라는 경험이 동기가 되어 쏟아지는 말입니다. "나에게 아버지가 계신 것이 자랑스럽고, 나도 아버지처럼 살아야 하겠다"고 하는 결심을 자녀들이 할 수만 있 다면 그 아버지는 성공적인 아버지요, 아버지의 사명을 다했다고 말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흔히 이런 이야기를 할 때에 어떤 이들은 재산을 생각하게 되고, 학벌을 생각하 게 되고 사회적인 지위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에릭 후롬이라는 사람은 말하 기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은 소유의 영역이 아니라 존재의 영력이다." 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삶의 풍성함은 무엇을 가졌느냐에 달려있지 않고 그 사람이 누구인가에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한 실례를 우리는 야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던 야곱의 11번째 아들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애굽의 제 2인자가 됩니다. 그의 말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무서운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자기의 늙은 아 버지의 생존 소식을 듣고 그 아버지를 애굽으로 초청합니다. 아버지의 몰골을 보 니 얼마나 초라하고, 볼품이 없었겠습니까! 130세의 늙은 목동 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요셉을 보십시오, 그 아버지를 바로 임금에게 소개하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아들 요셉의 자부심이었습니다. 그의 기력의 시작이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종으로 팔려가고, 모함을 받아 감옥에 떨어지는 수모와 고통 을 당하였어도 결국은 그가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배후의 하나님의 도우심은 말 할 것도 없지만 자부심을 갖게 한, 자랑스러운 아버지 야곱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야곱은 아버지의 사명을 잘 감당한 사람입니다.
Ⅲ. 아버지의 사명은 자녀에게 지표가 되는 것입니다. 잠23:19에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고, 네 마음을 정로로 인도할 지니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의 인생 길에 지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 이 아버지의 세 번째 사명입니다. 삶의 기준을 삼을 수 있는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부심이 된다는 말이 자녀들의 뒷배경이 된다는 것이라면, 아버지 가 자녀의 지표가 된다는 말은 자녀들이 나아갈 바를 보여주는 푯대가 된다는 말 입니다. 자녀의 길이 되어 주고, 삶의 모범이 되어 주며, 삶의 방법을 보여주는 지표의 사명이 아버지의 세 번째 사명입니다. 우리 중에 물론 농담이겠지만 "날 닮은 아이가 나오면 문제죠, 문제!"라고 하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또 어떤 아버지는 "나야 할 수 없어 이렇게 요령 피우며 살지 만 내 자식은 안 그래야죠!"라고 하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이름은 김정직인데 사 기죄로 감옥에 들어 가 있는 아버지도 있고, 이름은 오성도인데 못된 짓은 다하고 다니는 아버지도 많습니다. 진짜 우리의 자녀가 나를 본 받아서 내 길을 즐거워해 서 나와 같은 삶을 살아가라고 이야기 해줄 아버지가 있다면 그 자녀는 분명히 행복한 자녀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영적인 자녀들에게 "나를 본 받으라" 고 말했습니다. 보통 사람의 집에서 있을 법한 일들 중에 이런 일이 있습니다. 어떤 아버지는 밖 에서 전화가 오면 "야 아빠 없다고 해라!"라고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전화 오면 아빠 나갔다고 그래!"라고 하면 가르치는 부모도 있습니다. 이런 아버지는 자식에 있어서는 거짓의 지표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TV 를 보면서 정치인들이나, 잘못한 대통령의 이름이 나오면 욕을 하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야 저놈의 새끼들 말이야!"하면서 언성을 높이는 아버지 말입니다. 사실 이것은 올바른 지표가 아니라고 봅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단 한번이라도 바늘을 도적질한 경험이 있다면 그들을 욕할 것 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기회가 주어 질 때마다 동기를 부여하고 계기 를 만들어 자녀를 교육시킬 수 있는 아버지야말로 지표가 되는 아버지인 것입니다. 사명을 잘 감당하는 아버지일 것입니다. 어떤 일을 만날 때마다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판단 기준과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이고, 원망스러운, 불평스러운, 마치 자기가 고생하고, 가난하고 힘 들게 사는 것이 마치 다른 사람 때문 인 것처럼 그런 모습을 보여 준다면 이것은 올바른 지표를 보여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명을 망각한 것이 라는 말입니다. 아버지의 작은 것 하나라도 자식에게 지표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 면 참으로 무섭기까지 한 말인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녀의 좋은 지표가 되는 것이 사명입니다.
Ⅳ. 끝으로 아버지의 사명은 자녀의 미래의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잠20:7에 "완전히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라는 말씀 이 있습니다. 이는 쉬운 말이 아닙니다. 누가 완전해서 자손에게 복을 끼칠 수 있 겠습니까! 그 어떤 사람도 "나는 완전히 행합니다."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한가지 방법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인이 되어 주안에서 의롭 다 함을 입고, 주안에서 완전히 행한다는 인정을 받는 방법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비록 현실적으로는 완전한 의인은 아닐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믿음 안에서 의로운 아버지가 되어 자녀에게 미래의 보증 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부모들이 열심히 일하여 자녀들의 미래를 위하여 집을 장만해 주고, 재산을 남겨 주기 위해 돈을 저축해 주고, 많은 재산을 남긴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의인이 못될 때 모든 수고가 헛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 족함이 없나니 이것이 헛되도다."(전5:10)
물질은 사람의 만족이 될 수 없으며, 미래의 보장은 더더욱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전2:26이하에 보면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 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나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아무리 뼈 빠지게 일하고 허리가 굽도록 땀을 흘리며, 일하여 모아 놓았다 할지라도 자신도 누려 보지 못하고, 자손들에게 혜택을 끼치지 못하는 물질의 세계가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물질 세계에 우리가 삽니다만 이 세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보다도 하나님과 아버지의 관계가 더 앞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찌 구원받지 못한 아버지가 그 자식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겠습니까! 잠13:22에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선의 아버지와 모든 성도들은 이 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자 녀의 미래의 보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러나 재물이 우리 자녀의 미 래를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학력이 자녀들의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사회적인 직위와 권력이 우리 자녀들의 보장이 되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의 아름다운 미래의 보장이 될 수 있습니까! 그 해답을 잠14:26에서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 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는 피난처가 있으리라."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 녀들의 확실한 미래의 보장이 되는 길은 오직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결론적으로 여호와가 목자인 사람은 부족함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 다면 목자 같은 아버지가 있는 집의 자녀들은 늘 풍성함과 날마다 새로움과 사망 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문제를 만나도 낙심하지 않게 되며, 하나님을 목자 로 모신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원한 미래의 보장!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 푸시는 승리와 드디어 아버지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최후의 안식을 보장받은 것처 럼!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아버지만이 자녀들의 영원한 미 래의 보장이 되게 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모쪼록 우리 아버지들이 자 녀들의 삶의 원천이요, 생명의 원천이니, 첫단추를 잘못 끼면 나머지 단추도 잘 못 낄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고 바른 생명의 원천의 사명을 감당하고, 우리의 자녀 들이 아버지를 보고 자신감, 자부심이 되게 하는 사명! 삶의 지표를 보여주며, 자 녀들의 미래의 진정한 보장이 되어주는 사명을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아버지로 인 정받아 성공적으로 감당해 내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1. 자녀가 자기의견을 스스럼없이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준다.
2. 자녀의 인격과 결정권을 존중해준다.
3. 자녀가 좋아하는 책이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함께 보고 대화를 나눈다.
4. 공부하라는 말은 적게 하고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인다.
5. 자녀와 함께 문방구나 책방에 자주 가본다.
6. 자녀와 여행이나 견학, 독서를 함께 하거나 집안 일을 같이 하면서 대화의 시 간을 갖는다.
7. 식사할 때 자녀와 대화하면서 식탁예절을 지도한다.
8. 아이와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9. 똑같은 일로 두 번 야단치지 않는다.
10.자녀 앞에서 남을 흉보지 말고 다른 사람의 좋은 점과 긍정적인 면을 이야기 한다.
1 1.자녀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다.
1 2.집안의 힘든 일에 자녀를 참여시켜 더불어 사는 지혜와 협동심 을 길러준다.
13.휴일은 박물관견학, 가재도구 손질 등으로 다양하게 보낸다.
14.자녀에게 자신의 일기장 등을 잘 보관하도록 일깨우고, 가능하면 집에 가족 박 물관을 만든다.
15.자녀가 잘못했어도 손으로 때리지 말라. 꼭 필요할 때에 한해 벌을 세우거나 회초리를 든다.
16.가훈을 정하거나 개성 있는 집안 분위기를 만들고, 창조적 놀이의 개발을 통해 집안의 문화적 기풍을 만든다.
17.남의 아이도 내 아이처럼 사랑한다.
18.작은 물건도 아껴쓰고 재활용하도록 지도한다.
19.자녀 앞에서 외제품을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한다.
20.자녀 앞에서 교통신호를 어기거나 새치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어떤 분들은 "아버지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라고 하면서 "7대 아버지 행복 헌장 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웃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23편을 본문으로 "아버지의 사명"이란 제목으로 설교한다고 할 때 의 아하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가정의 달에 아버지를 생각할 때 이상적인 아버지는 바로 시편 23편과 같은 아버지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입니다. 이 땅에 태어난 남자로서 가장 고귀한 신분은 아버지라는 신분입니다. 신분마다 행해야 할 역할이 있고, 사명이 있는 법입니다. 이 땅에 수많은 직분이 있지만 특 별히 아버지의 사명을 깨닫지 못하면 자신의 역할을 상실하게 되고 역할을 상실하 면 위치가 흔들리게 되고 위치가 흔들리면 신분의 위기가 오게 되는 합니다. 이것이 자녀의 자부심입니다. 이것이 자녀 의 자존감입니다. 이것이 자녀의 신뢰감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아버지에 대 한 자부심이 있는 자녀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자녀는 방황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자부심이 되어 주는 자녀는 잘못되지 않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자부심 속에 성장한 자녀들은 살다가 어려움을 만나도 눈빛이 흐 려지지 않고, 얼굴이 어두워지지 않습니다. 마음은 늘 자신감과 풍성한 여유를 누 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좌절하고 낙심하지 않는 것 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에 대하여 갖고 있는 존경심은 그 부모들이 얼마나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십계명 중의 하나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출애굽기 20:12). 그러나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존경을 받을 만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자녀들의 존경을 잃는 일보다 더 큰 비극은 없다고 봅니다. 만일 우리의 자녀들이나를 부끄럽게 여긴다면 우리는 가장 수치스러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자녀들이 사람들 가운데서 나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우리 아빠야! 우리 아빠가 최고야!"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면 이것보 다 더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을 없을 것입니다. 이런 말은 금을 주고 은을 주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에 자부심이 되는 아버지를 통해 경험되는 놀라운 체험 속에 나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 나입니다.아 나의 아버지가 계시는구나! 나의 아버지가 나를 돌보시고 계시는 구나!"라는 경험이 동기가 되어 쏟아지는 말입니다. "나에게 아버지가 계신 것이 자랑스럽고, 나도 아버지처럼 살아야 하겠다"고 하는 결심을 자녀들이 할 수만 있 다면 그 아버지는 성공적인 아버지요, 아버지의 사명을 다했다고 말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흔히 이런 이야기를 할 때에 어떤 이들은 재산을 생각하게 되고, 학벌을 생각하 게 되고 사회적인 지위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에릭 후롬이라는 사람은 말하 기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은 소유의 영역이 아니라 존재의 영력이다." 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삶의 풍성함은 무엇을 가졌느냐에 달려있지 않고 그 사람이 누구인가에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한 실례를 우리는 야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던 야곱의 11번째 아들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애굽의 제 2인자가 됩니다. 그의 말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무서운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자기의 늙은 아 버지의 생존 소식을 듣고 그 아버지를 애굽으로 초청합니다. 아버지의 몰골을 보 니 얼마나 초라하고, 볼품이 없었겠습니까! 130세의 늙은 목동 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요셉을 보십시오, 그 아버지를 바로 임금에게 소개하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아들 요셉의 자부심이었습니다. 그의 기력의 시작이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종으로 팔려가고, 모함을 받아 감옥에 떨어지는 수모와 고통 을 당하였어도 결국은 그가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배후의 하나님의 도우심은 말 할 것도 없지만 자부심을 갖게 한, 자랑스러운 아버지 야곱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야곱은 아버지의 사명을 잘 감당한 사람입니다.
Ⅲ. 아버지의 사명은 자녀에게 지표가 되는 것입니다. 잠23:19에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고, 네 마음을 정로로 인도할 지니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의 인생 길에 지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 이 아버지의 세 번째 사명입니다. 삶의 기준을 삼을 수 있는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부심이 된다는 말이 자녀들의 뒷배경이 된다는 것이라면, 아버지 가 자녀의 지표가 된다는 말은 자녀들이 나아갈 바를 보여주는 푯대가 된다는 말 입니다. 자녀의 길이 되어 주고, 삶의 모범이 되어 주며, 삶의 방법을 보여주는 지표의 사명이 아버지의 세 번째 사명입니다. 우리 중에 물론 농담이겠지만 "날 닮은 아이가 나오면 문제죠, 문제!"라고 하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또 어떤 아버지는 "나야 할 수 없어 이렇게 요령 피우며 살지 만 내 자식은 안 그래야죠!"라고 하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이름은 김정직인데 사 기죄로 감옥에 들어 가 있는 아버지도 있고, 이름은 오성도인데 못된 짓은 다하고 다니는 아버지도 많습니다. 진짜 우리의 자녀가 나를 본 받아서 내 길을 즐거워해 서 나와 같은 삶을 살아가라고 이야기 해줄 아버지가 있다면 그 자녀는 분명히 행복한 자녀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영적인 자녀들에게 "나를 본 받으라" 고 말했습니다. 보통 사람의 집에서 있을 법한 일들 중에 이런 일이 있습니다. 어떤 아버지는 밖 에서 전화가 오면 "야 아빠 없다고 해라!"라고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전화 오면 아빠 나갔다고 그래!"라고 하면 가르치는 부모도 있습니다. 이런 아버지는 자식에 있어서는 거짓의 지표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TV 를 보면서 정치인들이나, 잘못한 대통령의 이름이 나오면 욕을 하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야 저놈의 새끼들 말이야!"하면서 언성을 높이는 아버지 말입니다. 사실 이것은 올바른 지표가 아니라고 봅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단 한번이라도 바늘을 도적질한 경험이 있다면 그들을 욕할 것 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기회가 주어 질 때마다 동기를 부여하고 계기 를 만들어 자녀를 교육시킬 수 있는 아버지야말로 지표가 되는 아버지인 것입니다. 사명을 잘 감당하는 아버지일 것입니다. 어떤 일을 만날 때마다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판단 기준과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이고, 원망스러운, 불평스러운, 마치 자기가 고생하고, 가난하고 힘 들게 사는 것이 마치 다른 사람 때문 인 것처럼 그런 모습을 보여 준다면 이것은 올바른 지표를 보여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명을 망각한 것이 라는 말입니다. 아버지의 작은 것 하나라도 자식에게 지표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 면 참으로 무섭기까지 한 말인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녀의 좋은 지표가 되는 것이 사명입니다.
Ⅳ. 끝으로 아버지의 사명은 자녀의 미래의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잠20:7에 "완전히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라는 말씀 이 있습니다. 이는 쉬운 말이 아닙니다. 누가 완전해서 자손에게 복을 끼칠 수 있 겠습니까! 그 어떤 사람도 "나는 완전히 행합니다."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한가지 방법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인이 되어 주안에서 의롭 다 함을 입고, 주안에서 완전히 행한다는 인정을 받는 방법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비록 현실적으로는 완전한 의인은 아닐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믿음 안에서 의로운 아버지가 되어 자녀에게 미래의 보증 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부모들이 열심히 일하여 자녀들의 미래를 위하여 집을 장만해 주고, 재산을 남겨 주기 위해 돈을 저축해 주고, 많은 재산을 남긴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의인이 못될 때 모든 수고가 헛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 족함이 없나니 이것이 헛되도다."(전5:10)
물질은 사람의 만족이 될 수 없으며, 미래의 보장은 더더욱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전2:26이하에 보면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 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나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아무리 뼈 빠지게 일하고 허리가 굽도록 땀을 흘리며, 일하여 모아 놓았다 할지라도 자신도 누려 보지 못하고, 자손들에게 혜택을 끼치지 못하는 물질의 세계가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물질 세계에 우리가 삽니다만 이 세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보다도 하나님과 아버지의 관계가 더 앞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찌 구원받지 못한 아버지가 그 자식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겠습니까! 잠13:22에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선의 아버지와 모든 성도들은 이 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자 녀의 미래의 보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러나 재물이 우리 자녀의 미 래를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학력이 자녀들의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사회적인 직위와 권력이 우리 자녀들의 보장이 되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의 아름다운 미래의 보장이 될 수 있습니까! 그 해답을 잠14:26에서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 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는 피난처가 있으리라."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 녀들의 확실한 미래의 보장이 되는 길은 오직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결론적으로 여호와가 목자인 사람은 부족함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 다면 목자 같은 아버지가 있는 집의 자녀들은 늘 풍성함과 날마다 새로움과 사망 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문제를 만나도 낙심하지 않게 되며, 하나님을 목자 로 모신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원한 미래의 보장!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 푸시는 승리와 드디어 아버지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최후의 안식을 보장받은 것처 럼!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아버지만이 자녀들의 영원한 미 래의 보장이 되게 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모쪼록 우리 아버지들이 자 녀들의 삶의 원천이요, 생명의 원천이니, 첫단추를 잘못 끼면 나머지 단추도 잘 못 낄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고 바른 생명의 원천의 사명을 감당하고, 우리의 자녀 들이 아버지를 보고 자신감, 자부심이 되게 하는 사명! 삶의 지표를 보여주며, 자 녀들의 미래의 진정한 보장이 되어주는 사명을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아버지로 인 정받아 성공적으로 감당해 내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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