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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덩이와 수렁으로부터의 자유 (시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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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지역은 강우량이 매우 적습니다. 섭씨 40도가 넘는 무더운 긴 여름철에는 비가 전혀 내리지를 않고 늦은 가을철과 봄철에 소량의 비가 내릴 뿐입니다. 그러하기에 팔레스타인에는 사람들이 땅에 구덩이를 많이 파놓고 겨울철에 내리는 비를 저장하여 식수와 농사를 위하여 사용합니다. 그러나 건조한 여름철에는 이미 구덩이의 물은 고여있지 않고, 진흙만 남게 됩니다. 사람들이 이러한 구덩이에 빠지면 다른 사람이 구출해주기전에는 자기 힘으로 빠져 나올 수가 없게 됩니다. 진흙 속에서 나오려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더 깊이 진흙 속에 빠져들어가 죽게 된다고 합니다. 요셉이 이집트로 내려가는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리기 전에 형들이 그를 구덩이에 넣었다고 하는데, 요셉은 바로 이러한 진흙 구덩이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겨울철의 물을 모아놓기 위한 구덩이는 왕궁 안에도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38장에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유다 왕국이 우상숭배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아니하면 유다가 멸망하리라는 메시지를 증거하자, 그 말이 귀에 거슬리는 유다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은 그를 궁정 안의 물이 메말라 진흙이 가득찬 웅덩이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때 왕궁에 에티오피아 출신의 환관 한 사람이 왕에게 하나님의 선지자인 예레미야를 죽여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왕은 군인 30명을 보내어 밧줄을 내려 진흙 웅덩이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건져냈던 것입니다. 진흙 웅덩이와 수렁에 빠진 사람은 자기 힘으로는 웅덩이로부터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큰 목소리로 소리를 치며 도움을 간구해야만 합니다. 다행히 지나가던 사람이 곤경에 처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밧줄을 구하여 그에게 던져 주어야만 살아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40편의 저자는 1-2절에서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절망의)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시편 40편을 지은 시인은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떠한 불치의 질병이나, 디프레숀, 아니면 크나큰 부채를 상환 할 수 없는 어떠한 경제적인 파산 상태, 아니면 어떠한 큰 죄를 짖고 양심의 찌름과 자책감속에 빠져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자기 힘으로는 도무지 해결 할 수 없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그를 파멸의 웅덩이와 구덩이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절망적인 한계 상황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당장 응답이 없다고 얼마 후 기도를 중단해버립니다. 어느 분들은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시는데 있어 매우 인색한 분으로 생각을 합니다. 마치 예수님의 비유말씀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관처럼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비유말씀에 나오는 과부는 어떠한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 과부는 자기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가 밤낮으로 그에게 탄원하고 간구했습니다. 과부가 자기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줄기차게 불의한 재판관을 좇아 다니자, 불의한 재판관은 과부의 간청으로 인하여 너무나 지치고 귀찮아져서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과부처럼 밤낮으로 쉬지않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부르짖어야만 하나님이 겨우 응답해 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을 귀찮게 하고 지치도록 하여야만 하나님은 마지못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잊혀진 존재가 아니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에베소 1:5절에 보면 하나님은 사랑안에서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했으며 갈라디아 4:7절에는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주기도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하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의 모든 형편과 사정을 아뢸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된 우리들의 음성을 듣기를 기뻐하십니다. 어린 아기가 아빠 엄마란 말을 배워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아빠'라고 '엄마'라고 부른다면 그 소리를 듣는 부모의 마음은 기쁨에 가득차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자녀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자녀된 우리의 음성 듣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는 자녀 된 우리가 그의 최대 관심사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어떠한 문제가 있거나 염려와 걱정거리가 있다면,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에게도 가장 중요한 관심거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도록 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졸라대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게끔 만들기 위해 몇 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 있거나, 여러날을 금식하거나, 자신의 몸을 때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에게 나아오기를 기다리시며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내 앞으로 나아와서 나에게 너의 관심사들을 말하라. 너의 염려되는 문제들을 나와 함께 나누자. 나는 너에게 최고의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내가 너의 하늘 아버지가 아니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나의 것임으로 나는 너를 얼마든지 도울 능력이 있단다. 나는 너에게 지금 귀를 기울이고 있다. 너의 음성을 듣고 싶구나. 나의 삶에서 너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느냐 너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보다 더 바뿐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 나에게 나아와서 어서 말하라."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7장 9-11절을 보면:"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13절에는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님은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누가복음에는 '성령님'은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며, 성령님을 주시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된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사랑하기에 그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의 자녀 된 우리의 모든 요구를 무조건 다 들어주시지 않으십니다. 만일 우리의 기도가 잘못된 요구라면 "No"라고 말씀하심으로 응답하십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베드로가 변화산에서 예수께서 영광된 성자 하나님의 모습으로 변모하신 후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말씀하시는 것을 바라보고, 황홀감과 극치감에 사로잡혀 예수님께 요청을 했습니다. 주님! 제가 이곳에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하여 초막집 셋을 짓겠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죄 많고 문제많은 세상에 내려가지 말고, 이 좋은 산정에서 영원히 더불어 살수 있기를 원합니다 라고 간구 할 때, 예수님은 그러한 베드로의 요구가 옳치 않았기에 "No"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기다리고 있는 산밑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내려오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어떠한 것을 요구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요구를 허락하신다면 내가 요구한 것이
1)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가
2)그의 나라를 확장시킬수 있는가
3)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는가 4) 내가 영적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나의 요구가 하나님의 뜻에 적합한가를 먼저 점검한 후에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마음의 소원이 정욕에 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합한 것이라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기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이 문제에 관하여 이것이 내 마음의 소원입니다. 저는 주님이 이 일을 이루어 주시기를 진정으로 원합니다. 그러나 만일 주님에게 다른 계획이 있으시다면, 나의 소원이 주님의 뜻을 이루는데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저로 하여금 간구하라고 하셨으니, 구할 뿐입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혹은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면, 혹은 내가 그것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주님의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주님의 길이 나의 길보다 높고, 주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보다 깊습니다. 만일 주님에게 다른 계획이 있으시다면,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간구하는 어떠한 것을 아직은 받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아직은 아니다. 믿음으로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instant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과 욕구가 지금 당장 만족되어야만 합니다. 인내하며 기다리지 못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 주님은 저의 사정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십니다. 나는 그것을 지금 당장 원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3년 후가 아닙니다. 지금부터 3개월 후도 아니며, 지금부터 3일 후도 아닙니다. 내가 기도하는 말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것을 지금 당장 원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당장 필요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신비스러우신 섭리가운데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생각 보다 높으니라(사 55:8-9)."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영적인 지혜를 가져야만 하겠습니다. 시편 27:14에 보면 "주님을 기다려라(Wait for the Lord), 강하고 담대하여라. 주님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시편 130편 5절에 보면 "내가 주님을 기다린다.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며(I wait for the Lord, my soul waits),내가 주님의 말씀만을 바란다." 우리가 기도의 사람이었던 죠지 뮬러나, 허드슨 테일러, 짐 엘리옷트, 찰스 피니, 피터 마샬과 같은 사람들의 전기를 읽어보면,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합한 제목을 가지고 진지하게 오랫동안 하나님께 기도하였지만, 그들의 기도가 몇 년 후에 심지어 그들이 죽은 후에 응답을 가져온 경우가 많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말씀 1절에도 보면 시인은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시인은 기다리고 기다렸다고 말합니다. 모세 와인버그라는 유대인 납비였다가 지금은 크리스챤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1978년도에 "나는 대량학살을 모면하였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독일의 히틀러 나치정권 밑에서 유대인 납비로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를 그 책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와인버그가 첫번째 수용소에 끌려갔을 때, 독일비밀 경찰들이 그를 둘러싸고 그의 수염을 거머쥐고는 "이 유대인 돼지야, 이 수염은 너에게 사치품이라"라고 말하며, 그의 수염을 생살에서 잡아 당겨 뜯어냈다고 합니다. 얼굴의 살이 뜻기며 많은 피가 흘렀다고 합니다. 그 후 그는 다른 수용에 옮겨졌는데, 그 수용소에 있는 어느 동족 유대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이름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 이름은 모세 와인버그라고 했더니, 상대방이 "형님! 저는 형님의 동생 나단 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마르고 고생을 했는지, 자기 동생을 알아보지 못했고, 동생도 자기 형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다른 수용소로 이주하기 위하여 행군을 하는데, 그의 동생 나단이 몇 미터 앞에서 행진하고, 그는 뒤에서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행군을 하던 나단은 몸이 너무나 쇠약해져서 걸을 힘이 없어 쓰러졌습니다. 그러자 쇠약해져 걷지 못하는 동생 나단을 독일 비밀경찰은총을 가지고 동생 나단을 그 자리에서 사살을 했습니다. 와인버그는 동생이 살해당해 피를 흘리며 쓰러졌는데도 어찌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비참한일을 당하면서 유대인 랍비 모세 와인버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지금도 살아계신다면, 어찌 이러한 우리의 고통을 보고만 계십니까"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후 독가스실에서 처형을 당하기 위하여 다른 수용소로 가기 위해 열차를 타고 갔는데 다행히 연합군이 이미 그 수용소를 점령하고 있었기에, 모세 와인버그와 함께 끌려간 다른 유대인들은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모세 와인버그는 그의 어머니와 세 형제, 그리고 두 누이동생은 나치에 의해 독가스실에서 학살을 당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아내와 두 딸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었기에 심한 좌절감속에서 유대인의 성직자인 납비로서 그가 믿던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내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죽었다고 생각하며 그는 절망속에서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는 마약 중독의 세계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의 건강, 인생은 완전히 파멸되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그는 자살하고자 하여 숲속을 헤매고 있다가 어느 가정의 도움으로 살아났습니다. 그 가정은 독실한 기독교 가정이었는데, 모세 와인버그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풀며,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그들의 집에 머물게 했습니다. 그들은 모세 와인버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자 자기들이 예수믿는 사람들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는다는 독일사람들이 유대인들을 600만명이나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었습니다. 와인버그는 자기를 친절과 사랑으로 돌보아주는 가정이 크리스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는 그들의 사랑과 돌봄에 감격하여 그들이 믿는 신앙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와인버그가 산책을 나셨는데, 그는 어느 누구가 자기를 모세야 모세야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나는 네 뒤에 서있다"라는 소리가 나 뒤돌아보니, 예수님 같은 분이 서 있었습니다. 그 분은 모세 와인버그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를 나에게 인도할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그에게 "당신은 누구입니까"하고 묻자, 그 사람은 사라졌습니다. 모세는 예수께서 그를 부르신 것을 확신하고 그를 돌보는 가정의 전도를 통하여 예수님 주님으로 믿으려고 세례를 받게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그가 10년이 넘도록 헤어나오지 못한 마약이 그에게 쓴 것이 되어 더 이상 마약에 손을 대지 않는 기적도 일어났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자기 죄를 위하여 십자가 상에서 고난받으시고 대신 죽으셨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독일인을 미워하는 증오심으로부터 그리고 마약의 권세로부터 예수께서 그를 자유케 해주심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은 후 모세 와인버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떠나시거나, 나를 버리지 아니하셨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세월을 통하여 나를 인도해 주셨다. 강제노동 수용소에서도 나를 지켜주셨고, 숲에서 자살하려고 할 때에도 나를 지켜주셨으며, 드디어 예수께서는 나에게 자신을 주님으로 계시하여 주셨고 구원하여 주셨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모세 와인버그는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서 그를 구원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으나, 그는 하나님의 침묵만을 경험할 뿐이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헛된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는 아직까지 나치정권에 의해 말로 다할 수 없는 피해를 당한 자기는 의로운 사람이고 독일인은 모두가 다 죄인으로 생각을 해왔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 얻은 자기 자신이야 말고 죄인중의 죄인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을 부인한 죄, 독일인을 저주하고 증오한 죄와 마약의 세계로부터 구원함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공중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 한 마디, 한 마디를 다 들으십니다.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모세 와인버그가 유대인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그를 구원해달라고 기도한 제목은 10여년 후에야 응답을 가져온 것입니다. 오늘 시편 40편의 저자도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절망의)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이 시인은 그의 기도에 당장 응답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지하게 오래 동안 같은 제목을 놓고 기도했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파멸의 수렁으로부터 구원해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이 시인은 이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중에 최상의 감사는 노래로 표현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기적인 죄인이라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감사하는 마음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셔야 감사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새 노래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3-4절을 보면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며, 감사하는 사람은 더 많은 감사 조건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5절에서 말합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질서있게 정돈하여)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6절의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라고 했는데 "들리시기를"이란 말은 우물을 파다, 무덤을 파다, 구멍을 뚫다 등과 같이 무엇을 뚫거나 판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알기전에는 성경을 읽어도 말씀을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나니 마치 내 귀가 뚫린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잘들어 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구원과 사랑을 받은 자로서 내가 어떻게 살어야 할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이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헌신하기룰 원합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하나님 존전에 나아와 "내가 왔나이다."라고 말하며 헌신을 다짐합니다.
6-8절에서 시인은 말합니다.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르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heart)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이 시인은 그가 어떠한 헌신의 삶을 살었는지를 9-10절에서 말합니다. "내가 주의 의를 내 심중에 숨기자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 내가 주의 인자와 진리를 대회 중(많은 회중들 가운데)에서 은휘(입을 다물지 아니하였다). 1-10절에서 시편 40편의 전반부는 끝나고 11절부터 시편 40편의 후반부가 계속됩니다. 시인은 다를 어떠한 큰 환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과거에 그를 절망의 수렁과 웅덩이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은 그를 앞으로도 구원해 주실 것임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복음 증거와 헌신, 그리고 섬김의 삶으로 나타나야만 합니다. 지난 월요일 우리교회가 주관하는 포항지역 목회자 세미나에 오신 강사 목사님은 작년한해 동안에 교회에 7천만원을 헌금했고, 내년도에는 1억을 헌금하는 것이 자기 개인의 헌금목표라고 간증하였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헌금하는데도 교회에서 내가 한번 제일 많이 드려보겠다는 개인적인 목표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주에는 추수 감사 주일입니다. 우리가 일년의 삶을 돌이켜 볼 때 국가적으로 너무나 어려운때 였지만, 그래도 오늘날까지 우리의 삶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진정 감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도여러분 경제위기시대, 모두가 어려운 이번 추수감사주일에는 여러분들이 일생 헌금 드려본 추수감사 헌금중 가장 많이 드려보시기를 바랍니다. 장로님들은 적어도 50만원 이상, 안수 집사님들과 권사님들은 가장 적게내도 30만원 이상, 가정단위로 하시지 말고 개인별로 한번 그렇게 드려 보시기를 바랍니다. 일반 평신도들도 아무리 적어도 10만원 이상씩 한번 드려보십시오. 어려운 때이기에 헌금을 더 많이 드려보십시오. 여러분의 삶에 큰 감격과 기쁨이 있게 될 것입니다. 말로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될것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못합니까 희생과 헌신이 없이 적당한 선을 그어놓고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 선은 하나님도 간섭하지 못하도록 우리가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0월에 우리교회에 오셔서 세미나를 인도하신 분은 인천지역에서 5만명의 성도가 모이는 교회 목사님이십니다. 그 교회에는 일년에 수백명씩 전도하는 성도들은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 교회의 어느 집사님은 구두가게를 경영하고 있는데, 그 분은 10만원 짜리 구두 티켓을 사람들에게 전도로 배부한다고 합니다. 그 구두티켓을 받은 분들이 그분의 교회에 나가 등록을 한후 새신자 반을 다 이수하고 도장을 찍어 오면 구두를 선물로 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일년에 10만원짜리 구두를 수십 컬레씩을 전도용으로 하나님께 드린다고 합니다.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가 전도에서도 북부교회에서 내가 가장 많이 하겠다는 소원과 목표를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헌금에서 전도에서 내가 제일이 되지 못한다면, 기도생활이나, 섬기는 일에 있어서 북부교회에서 가장 많이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아는 어느 분은 너무나도 가난한 분이셨습니다. 적당한 직업도 없이 공부시킬 자식은 많아 겨우겨우 살어 가는 분이었습니다. 가난하기에 수 십년간 집사생활을 누구보다도 헌신적으로 섬겼지만 장로가 되지 못하고 만년 집사로 있었습니다. 그 분은 돈이 없어 헌금을 남들처럼 많이 드리지는 못하지만 교회 안에서 봉사와 섬김으로는 으뜸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 분은 교회의 봉사하는 일, 특히 교회의 경조부에서도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장례부에서 수십년간 헌신적으로 봉사하였습니다. 그분의 헌금은 보잘것이 없었지만 헌신과 봉사에서 으뜸이 되었기에 많은 성도들이 감동을 받아 나중에 그분은 교회의 장로로 피택을 받았던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헌금생활에서나, 전도생활, 아니면 기도생활이나 봉사생활에서 탁월하여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이 너무나 크기에 이번 추수 감수계절에 더욱 더 감사하며 헌신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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