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의 소망 (시42:11)
본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삶의 힘은 현재보다는 미래에 있다. 지금의 상태로 더 이상 발전이 중단된다고 생각해 보라. 더 이상 지식이나 재 산의 증가도 없다. 더 이상 진급도 없다. 자식들도 그저 그렇게 살다 고 죽을 것이다. 더 이상 행복할 일도 없다. 이쯤 되면 살 의욕이 없 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사람들은 소망을 가지고 있다. 이 소망이 사람들에게 힘을 공급한다. 비록 지금은 힘들게 살지만 앞으로는 나아질 것이다. 나 자신은 늙어가지만 그래도 삶의 질은 더 나은 것이 될 것이다. 무엇인가 더 나은 것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사람들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다.
특별히 신자들은 모든 면에서 불신자에 비해서 낙관적으로 된다. 소망이 더욱 강한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이 소망에 이상이 생기게 된다. 살기가 너무 힘 든 것 같다. 일이 않된다. 잘 될 가능성이 안보인다. 자식이 잘 않되 고 남편이나 아내가 속을 썩인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게 보인다. 몸이 아프다. 이렇게 되면 소망 이 없어지며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소망이 어디로 갔는가
미국의 저명한 목사인 헐리우드 제일 장로교회의 로이드 오길비목사는 이 문제를 가지고 오래 고민하면서 기도하였다. "도대체 소망이 란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그것을 잃지 않고 확실하게 소유할 수 있을까" 그는 휴가를 얻어 스코틀랜드로 갔다. 에딘버러 대학 도서관 에서 소망에 관한 책자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여러 날을 보냈다. 그러나 별로 소득이 없었다. 그는 아직 소망이 무엇인지 알 수 없 었다. 처녀가 시집가고 고등학생이 대학 들어가는 것이 소망인가 말 단 직원이 진급하는 것이 소망인가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도 안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러면 또 다른 소망이 일어나는가 평생 이러다 가 그치는 것이 소망인가 무엇이 흔들리지 않는 긍극적인 소망인가 그는 바닷가에서 산책하고 있었다. 부슬부슬 비가 오고 있었지만 멀리 멀리 걸었다. 바닷가는 온통 바위로 덮혀있었다. 그는 울퉁불퉁 한 바위 위로 한없이 걸었다. 그는 춤추는 바다를 보면서 생각했다. "소망이란 그저 내용 없는 기다림에 불과한 것인가 연기처럼 없어지 고마는 것이 아닌가 고통에 빠진 인간이 어떤 도움을 얻을까" 그러다가 사고가 벌어졌다. 바위 위를 건너뛰었을 때 그의 왼발이 돌 틈에 낀 것이다. 넘어지면서 머리를 바위에 부딛치고 그는 의식을 잃었다. 정신차린 그는 다리가 부러진 것을 알게 되었다.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그는 생각했다. 적어도 2킬로미터 안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비 속에 밤이 되고 있다. 이렇게 죽고마는 것인가 아무런 소망이 없었다. 반대로 완전한 절망이었다. 도대체 자신이 사람들에게 들려준 소망이 어떤 것이었던가 그가 지금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열은 오르고 의식은 가물거렸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깊은 속에서부터 그 무엇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나님 은 나를 구하실 것이다. 또한 죽던 살던 나는 두렵지 않다." 그는 누워서 오른쪽 다리와 두 팔로 자기 몸을 밀고 올라갔다. 언 덕은 한 없이 멀었다. 그는 마치 지렁이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개울을 건너고 숲속 길을 지나야 했다. 그 시간은 마치 영원 같았다. 그는 그대로 중단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속에서 들리는 음성 때문이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얼마나 오래 버티겠는가 그리고 얼마나 가야 사람을 만나 겠는가 마음 속에 의심은 한이 없었다. "사람 살려! 다리가 부려졌어 요!" 그러나 어둠 속에 아무 응답이 없었다.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이 상황에서 그분은 무얼하고 계신가 아니 정말 하나님이 있 기나 한가" 이제 고통 속에 몸은 점점 더 마비되고 있었다.
그는 누워서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해 보았다. "나 여호와가 말하 노라. 너희를 향한 내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생각이라."(렘 29:11) 그리고 따라 나오는 말씀은 하나님께 기도하면 들을 것이요 전심으로 찾으면 만나리라는 내용이었다. 과연 이 말이 자신에게 무슨 소용이 될 것인가 그는 끝까지 자기가 믿어온 하나님께 매달린다. 그는 비장하게 신 앙을 고백한다. "하나님, 용서하십시오. 나는 당신보다는 당신이 주시는 도움을 더 원했습니다. 이제 알았습니다. 당신만이 내 소망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당신에게 나를 맡깁니다." 이상하게도 비가 멈추었다.
그리고 조금 뒤에는 이 한적한 곳을 걷고 있는 세 사람이 보였다. 처음에는 그의 지친 목소리를 그들은 듣지 못했다. 그러나 곧 발 걸음을 돌려서 왔다. 한 중년 남자와 그의 십대 자녀들이었다. 그 사람은 휴가온 심장 전문의였다. 그가 말했다. "우리가 이 길로 지나간 것이 정말로 이상한 일입니다. 당신은 지금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충격 속에 있습니다. 아마 이 밤을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구출된 목사는 시계를 보았다. 밤 9시였다. 무려 세 시간 가량을 기어왔던 것이다. 왜 하나님은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구원할 사람을 보냈는가 더 빨리 할 수는 없었는가 그는 알았다. 이 시간 동안 그는 지난 어느 때 보다 더 깊이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 가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할 때 참된 소망은 일어나는 것이었다. 참된 소망은 연기처럼 늘 변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각이 아닌 인격체였다. 바로 하나님이 그 참된 소망이었다.
다른 소원들은 그 소망의 잔 가지들일뿐이었다. 교육시키고 성장시키며 내게 최선을 주는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의탁하는 것이 바른 소망이었다. 이제 내 작은 소원들이 이루지던 않던 내 삶 전체는 소망적인 것이었다. 다윗이 이 영감 넘치는 시를 쓸 때는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 자기 나라 왕과 원수된 사이였다. 그 왕은 모든 힘을 다 동원해서 그를 죽이려고 추격하였다. 다윗은 두렵고 억울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도 고통스러웠다. 그러기를 한 두해가 아니었다. 도대체 이 도망자의 생활을 끝이 없었다. 세상적으로 볼 때 아무런 소망이 없었다. 그는 하나님께 예배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네가 믿는 하나님이 뭐하는 분이냐" 이 비슷한 경험을 우리도 할 수 있다. 일을 하다보면 주일 날도 일을 해야 한다. 일에 치우치고 돈에 휘둘리 고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몸도 아프고 짜증이 난다. "도대체 이렇게 살 아서 무얼하는가"하는 생각에 사로 잡히기도 한다. 그러나 다윗은 그럴 때마다 말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 망하며 어찌해서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느냐.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어 라. 나는 내 구원자 하나님을 어떤 일이 있어도 찬양하겠다." 그는 평 생 하나님의 교육하시는 손, 그리고 성장시키는 손에 순응했다. 소망 은 언제나 그의 속에 있었다. 그의 소망은 하나님이었다. 그 소망 안에 자기가 바라는 모든 것이 있었다. 마치 작은 씨앗처 럼 그의 속에 있었다. 그것은 장차 완전한 모습으로 펼쳐질 것이었다. 그 모습은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다를지도 몰랐다. 내가 간절히 얻기 를 소원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내가 얻 을 수 있는 최상의 것으로 펼쳐지고 또 영원히 펼쳐질 것이다.
장차 내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들어질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내 삶은 하나님의 손으로 교육되고 만들어져서 그리스도의 영광스 런 모습에까지 이를 것이다. 그리고는 부활하여 영원히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이미 성공을 기약받고 있다. 참된 복락 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비추어 현실이 조명되어야 한다. 그렇다! 우리를 강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소망의 힘이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소망이 단지 바라는 희망 사항일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소망으로 가지고 있다. 그 안에 모든 좋은 것이 있다. 그 안에 내 삶의 모습이 있다. 그것은 앞으로 나타난다. 마치 미술가가 그리듯 신비한 아름다움이 나의 삶을 통해서 펼쳐질 것이다. 이 힘이, 이 실재하는 소망의 힘이 현재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 세상 사람이 모르는 힘을 공급한다. 앞의 오길비 목사도 다윗 왕도 그 힘으로 투쟁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신비한 힘, 그것은 이미 소망의 하나님이란 형태로 우리 속에 주어졌다. 우리는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졌다. 늘 소망의 하나님을 누리자. 그는 고통 중에도 기쁨을 주고 찬양할 수 있 게 하신다. 그리고 장차 나를 통해 펼쳐지는 하나님의 삶을 기대하자.
특별히 신자들은 모든 면에서 불신자에 비해서 낙관적으로 된다. 소망이 더욱 강한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이 소망에 이상이 생기게 된다. 살기가 너무 힘 든 것 같다. 일이 않된다. 잘 될 가능성이 안보인다. 자식이 잘 않되 고 남편이나 아내가 속을 썩인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게 보인다. 몸이 아프다. 이렇게 되면 소망 이 없어지며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소망이 어디로 갔는가
미국의 저명한 목사인 헐리우드 제일 장로교회의 로이드 오길비목사는 이 문제를 가지고 오래 고민하면서 기도하였다. "도대체 소망이 란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그것을 잃지 않고 확실하게 소유할 수 있을까" 그는 휴가를 얻어 스코틀랜드로 갔다. 에딘버러 대학 도서관 에서 소망에 관한 책자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여러 날을 보냈다. 그러나 별로 소득이 없었다. 그는 아직 소망이 무엇인지 알 수 없 었다. 처녀가 시집가고 고등학생이 대학 들어가는 것이 소망인가 말 단 직원이 진급하는 것이 소망인가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도 안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러면 또 다른 소망이 일어나는가 평생 이러다 가 그치는 것이 소망인가 무엇이 흔들리지 않는 긍극적인 소망인가 그는 바닷가에서 산책하고 있었다. 부슬부슬 비가 오고 있었지만 멀리 멀리 걸었다. 바닷가는 온통 바위로 덮혀있었다. 그는 울퉁불퉁 한 바위 위로 한없이 걸었다. 그는 춤추는 바다를 보면서 생각했다. "소망이란 그저 내용 없는 기다림에 불과한 것인가 연기처럼 없어지 고마는 것이 아닌가 고통에 빠진 인간이 어떤 도움을 얻을까" 그러다가 사고가 벌어졌다. 바위 위를 건너뛰었을 때 그의 왼발이 돌 틈에 낀 것이다. 넘어지면서 머리를 바위에 부딛치고 그는 의식을 잃었다. 정신차린 그는 다리가 부러진 것을 알게 되었다.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그는 생각했다. 적어도 2킬로미터 안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비 속에 밤이 되고 있다. 이렇게 죽고마는 것인가 아무런 소망이 없었다. 반대로 완전한 절망이었다. 도대체 자신이 사람들에게 들려준 소망이 어떤 것이었던가 그가 지금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열은 오르고 의식은 가물거렸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깊은 속에서부터 그 무엇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나님 은 나를 구하실 것이다. 또한 죽던 살던 나는 두렵지 않다." 그는 누워서 오른쪽 다리와 두 팔로 자기 몸을 밀고 올라갔다. 언 덕은 한 없이 멀었다. 그는 마치 지렁이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개울을 건너고 숲속 길을 지나야 했다. 그 시간은 마치 영원 같았다. 그는 그대로 중단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속에서 들리는 음성 때문이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얼마나 오래 버티겠는가 그리고 얼마나 가야 사람을 만나 겠는가 마음 속에 의심은 한이 없었다. "사람 살려! 다리가 부려졌어 요!" 그러나 어둠 속에 아무 응답이 없었다.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이 상황에서 그분은 무얼하고 계신가 아니 정말 하나님이 있 기나 한가" 이제 고통 속에 몸은 점점 더 마비되고 있었다.
그는 누워서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해 보았다. "나 여호와가 말하 노라. 너희를 향한 내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생각이라."(렘 29:11) 그리고 따라 나오는 말씀은 하나님께 기도하면 들을 것이요 전심으로 찾으면 만나리라는 내용이었다. 과연 이 말이 자신에게 무슨 소용이 될 것인가 그는 끝까지 자기가 믿어온 하나님께 매달린다. 그는 비장하게 신 앙을 고백한다. "하나님, 용서하십시오. 나는 당신보다는 당신이 주시는 도움을 더 원했습니다. 이제 알았습니다. 당신만이 내 소망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당신에게 나를 맡깁니다." 이상하게도 비가 멈추었다.
그리고 조금 뒤에는 이 한적한 곳을 걷고 있는 세 사람이 보였다. 처음에는 그의 지친 목소리를 그들은 듣지 못했다. 그러나 곧 발 걸음을 돌려서 왔다. 한 중년 남자와 그의 십대 자녀들이었다. 그 사람은 휴가온 심장 전문의였다. 그가 말했다. "우리가 이 길로 지나간 것이 정말로 이상한 일입니다. 당신은 지금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충격 속에 있습니다. 아마 이 밤을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구출된 목사는 시계를 보았다. 밤 9시였다. 무려 세 시간 가량을 기어왔던 것이다. 왜 하나님은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구원할 사람을 보냈는가 더 빨리 할 수는 없었는가 그는 알았다. 이 시간 동안 그는 지난 어느 때 보다 더 깊이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 가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할 때 참된 소망은 일어나는 것이었다. 참된 소망은 연기처럼 늘 변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각이 아닌 인격체였다. 바로 하나님이 그 참된 소망이었다.
다른 소원들은 그 소망의 잔 가지들일뿐이었다. 교육시키고 성장시키며 내게 최선을 주는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의탁하는 것이 바른 소망이었다. 이제 내 작은 소원들이 이루지던 않던 내 삶 전체는 소망적인 것이었다. 다윗이 이 영감 넘치는 시를 쓸 때는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 자기 나라 왕과 원수된 사이였다. 그 왕은 모든 힘을 다 동원해서 그를 죽이려고 추격하였다. 다윗은 두렵고 억울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도 고통스러웠다. 그러기를 한 두해가 아니었다. 도대체 이 도망자의 생활을 끝이 없었다. 세상적으로 볼 때 아무런 소망이 없었다. 그는 하나님께 예배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네가 믿는 하나님이 뭐하는 분이냐" 이 비슷한 경험을 우리도 할 수 있다. 일을 하다보면 주일 날도 일을 해야 한다. 일에 치우치고 돈에 휘둘리 고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몸도 아프고 짜증이 난다. "도대체 이렇게 살 아서 무얼하는가"하는 생각에 사로 잡히기도 한다. 그러나 다윗은 그럴 때마다 말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 망하며 어찌해서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느냐.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어 라. 나는 내 구원자 하나님을 어떤 일이 있어도 찬양하겠다." 그는 평 생 하나님의 교육하시는 손, 그리고 성장시키는 손에 순응했다. 소망 은 언제나 그의 속에 있었다. 그의 소망은 하나님이었다. 그 소망 안에 자기가 바라는 모든 것이 있었다. 마치 작은 씨앗처 럼 그의 속에 있었다. 그것은 장차 완전한 모습으로 펼쳐질 것이었다. 그 모습은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다를지도 몰랐다. 내가 간절히 얻기 를 소원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내가 얻 을 수 있는 최상의 것으로 펼쳐지고 또 영원히 펼쳐질 것이다.
장차 내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들어질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내 삶은 하나님의 손으로 교육되고 만들어져서 그리스도의 영광스 런 모습에까지 이를 것이다. 그리고는 부활하여 영원히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이미 성공을 기약받고 있다. 참된 복락 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비추어 현실이 조명되어야 한다. 그렇다! 우리를 강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소망의 힘이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소망이 단지 바라는 희망 사항일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소망으로 가지고 있다. 그 안에 모든 좋은 것이 있다. 그 안에 내 삶의 모습이 있다. 그것은 앞으로 나타난다. 마치 미술가가 그리듯 신비한 아름다움이 나의 삶을 통해서 펼쳐질 것이다. 이 힘이, 이 실재하는 소망의 힘이 현재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 세상 사람이 모르는 힘을 공급한다. 앞의 오길비 목사도 다윗 왕도 그 힘으로 투쟁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신비한 힘, 그것은 이미 소망의 하나님이란 형태로 우리 속에 주어졌다. 우리는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졌다. 늘 소망의 하나님을 누리자. 그는 고통 중에도 기쁨을 주고 찬양할 수 있 게 하신다. 그리고 장차 나를 통해 펼쳐지는 하나님의 삶을 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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