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사슴이 시냇물을 낮듯이 (시42:1-5)

본문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큰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큰 믿음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큰 능력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큰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하는 은헤(믿음,능력,큰 복)를 충만히 받읍시다.
그런데 어떤자가 받는다고 하느냐하면 (시 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사모하는 영혼’-받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기대하는 사람 그렇게 되고자 하여 되기위해 뜨거운 마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주린 영혼’-오늘 내가 먹지 않으면 나는 더 이상 힘을 쓸수 없다는 그런 마음으로 오늘 꼭 은혜 받아야 한다, 능력 받아야 한다,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마음의 자세를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들은 받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누려야 합니다. 우리들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사모하는 영혼’, ‘주린 영혼’이 되어야 합니다.
1.시편기자의 심정이 어떤 심정입니까 시편42편은 다윗이 사울의 추격을 피해 다니는 중에 지은 시로 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윗이 이 시편 쓸때의 상황이 어떠했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자기를 잡아 죽이려는 이런 무서운 칼날을 피해 이리 피해다니고, 저리 피해 다니는 참 어떻게 보면 가련한 신세의 다윗입니다. 다윗이 무슨 잘못을 해서 어쩔수 없이 피해 다니는 일이라면 가련한 것이 아니라 피해 다니는 다윗 자체가 잘못이지만 다윗이 사울왕을 피해 다니는 것은 그의 무슨 잘못 때문에 아니였습니다. 다윗이 믿음으로 골리앗을 이긴후의 이스라엘의 사람들이 다윗을 높이는 것을 보고 사울왕이 위기 의식을 느끼고 다윗을 잡아 죽이려 한것이었습니다. 또 다윗이 사울왕을 피해 다닐만큼 능력이 없어서 피해 다녔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였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다니면서도 사울을 죽일 몇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는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은 왕을 그가 죽일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름 부은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사울을 죽일수 있었으나 죽이지 아니하고 도망을 다닌것입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 일하셔서 사울이 하나님의 의해,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울의 인생이 끝이 났습니다. 기다리면 영광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때의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힘으로 해서는 안되는 일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힘으로 하려고 해도 안되는 일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시리라 믿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리라 믿고 기다립시시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믿고 기다리는 자에게 복주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다윗이 이렇게 사울의 칼날을 피하여 도망하여 다니는데 처음에는 믿음으로 잘 이겨나갔습니다. 누가 무엇이라 해도 그 말의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환경이 다가와도 그는 낙심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고, 나름대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중에 낙심이 찾아 옵니다. 힘이 빠집니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3절에-사람들이 종일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있느냐’라고 조롱하는 말이 들립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계신다면 너가 바르게 사는데 왜 그런 어려움을 당하느냐’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너에게 그런 일들이 일어나느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말을 듣는 다윗이 마음이 어떠하다고 말합니까 ‘눈물이 주야로 음식이 되었다’라고 합니다. 정말 할말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너의 기도를 안들어 주시느냐’ ‘하나님이 계신다면 너처럼 열심히 하나님앞에 바르게 살아가고, 열심히 행하는데 왜 그모양 그 꼴이냐’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하나님은 복주시지 않느냐’라고 합니다. 이런말 들을 때 어떻습니까 정말 하나님이 계신걸까 정말 하나님은 해도해도 너무하신다라고 생각이 들게 되어집니다. 그런 생각이 들면 힘이 빠집니다. 열심도 식어집니다. 의욕이 떨어집니다. 낙심이 찾아 옵니다. 힘이 빠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분명히 우리들 가운데 자기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는 소리를 들을 때 분명하게 여러분 믿고 외치십시오. ‘하나님은 오늘날 분명히 살아 계십니다.’,‘두고 보라.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나타난다’고 말입니다. 또 4절에 보면 다윗이 ‘마음이 상한다’라고 합니다. 왜요 전에는 열심히 했는제 지금은 그렇지 못한 자기의 모습을 보고 속 상해합니다. 속 상해할 정도가 아닙니다. 괴롭다는 것입니다. 힘들다는 것입니다. 아프다는 것입니다. 왜요 열심히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마음이 어떠하다고 합니까 낙망하며, 불안해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다윗이 가져야할 모습이 아닙니다. 이런 모습은 이긴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런 모습은 행복한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점점 더 빠져가는 그의 나약한 모습, 점점 더 약해 가는 다윗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할 모습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이런 모습은 마귀가 좋아할 모습임은 분명합니다. 이런 모습은 믿음이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야 할 모습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여 낙망해 있지 않습니까 열심히 기도했는데 기도의 응답이 없어서 기도하는 것을 쉬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했는데도 좋은 결과가 없어서 속상해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믿음으로 한다고 했는데 다른 사람이 몇마디 한 그 말 때문에 빠져있지 않습니까 이것 저것 생각하면 복잡하고 답답해서 그냥 포기하듯 모든 것을 손을 놓고 있는분은 없습니까 해도해도 안되니까 내가 한다고 뭐 나아질까 싶어 하는것의 의욕을 잃은 분은 안계십니까 눈물이 주야로 흘러 내릴 이런 상황에 빠진분 안계십니까 속 상한분 안계십니까 분명한 것은 이런 것은 우리들이 가져야 할 모습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들을 복되게 할 모습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우리들은 이대로 주저앉을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대로 무너질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대로 당할수만 없습니다. 오늘 이런 모습에서 다시 일어 설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런 모습에서 회복되는 일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낙심의 모습이 희망의 모습으로 일어설수 있기 바랍니다. 오늘 실패의 모습이 성공의 모습으로 일어설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십니까 분명히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2.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1절 끝에 보면 ‘갈급하니이다’라고 합니다. 즉 ‘갈급해한다’는 말입니다. 이 ‘갈급해한다’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해도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닌 반드시 해야 하겠다는 마음입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되는 것이 아닌 반드시 있게 해야 하겠다는 마음입니다. 무엇에 대해서 이런 마음을 갖는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즉 그는 살기 위해서,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 다시 행복한 일들을 이루기 위해서 어찌하던 하나님을 반드시 찾아야 하겠다는, 하나님을 붙들어야 하겠다는 이런 간절한 마음을 갖고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왜 다윗이 하나님을 찾기에 이렇게 갈급해 있느냐 왜 다윗이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말하느냐 그는 아주 중요한 한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 여기서 붙들어야 할 중요한 말씀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열심히 기도했는데 기도의 응답이 내게 보이지 않더라도, 나는 믿음으로 한다고 했는데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못하고 오히려 속상한 말을 한다고 했을 지 라도, 이것 저것 생각하면 복잡하고 답답해서 그냥 포기하고픈 마음이 있을지라도, 해도해도 안되니까 내가 한다고 뭐 나아질까 싶어 하는것의 의욕을 잃는다 할지라도, 눈물이 주야로 흘러 내릴 이런 상황에 빠진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하나님을 찾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들이 하나님을 찾아야 하느냐 하는것입니다. 왜 우리가 여전히 기도해야 하며, 왜 우리가 여전히 믿음으로 살아야 하느냐 하는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찾기에 갈망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런, 저런 일로 낙심하고, 주저앉고, 포기하고, 원망하고, 힘을 잃어야 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중에서도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라고 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잘알아야 합니다.
1사슴이 물을 마시지 못하면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물과 사슴은 참 중요한 관계가 있습니다. 사슴에게 물은 참 중요합니다. 만약에 사슴이 제때 물을 마시지 못하면 사슴에게는 특유의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어떤 냄새가 나느냐 하면 ‘노린네’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노린네는 좋은 냄새가 아니라 안좋은 냄새입니다. 냄새가 난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을 마시지 않으면 그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슴은 살기 위하여 물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물을 마셔도 되고, 안마셔도 되는 것이 아닌 마시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는 이 일, 즉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면 우리들에게서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더러운 냄새가 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으면 인간의 냄새가 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말씀안에서 살지 않으면 추한 냄새가 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사슴이 물을 마시지 않으므로 냄새가 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2그 냄새를 맡고 맹수들이 먹이로 잡아 먹기 위해서 달려 온다는 것입니다. 그 노린네가 어디까지 나느냐 하면 100-200리 까지 냄새가 날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굶주린 맹수들이 그 냄새를 맡고 먹이사냥을 찾아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슴이 이런 사실을 알기 때문에 물을 찾아 헤매인다는 것입니다. 냄새나는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 냄새를 맡고 자기를 사냥하러 오는 맹수들이 달려듬을 알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물을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슴이 물을 마시지 못하므로 그 몸에서 노린네가 나는 것을 맹수들이 그 냄새를 맡고 찾아 오다가도, 사슴이 물을 찾아 마시면 그 냄새가 일식간에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냄새를 맡고 사냥을 나섰던 맹수들이 오다가 길을 잃고 헤메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우리들은 중요한 영적인 진리를 한가지 발견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할 사람이 믿음으로 살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서 불신의 냄새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해야 할 사람이 기도를 하지 않음은 하나님의 냄새가 아닌 인간의 냄새가 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문제는 그 냄새를 맡고 사탄, 마귀가 기도하지 않는 우리의 힘없는 영혼을 삼켜 먹으려고 출발을 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우리 가정의 불행을 안겨 주려고 냄새를 맡고 덤벼든다는 사실입니다. 물을 찾지 아니하면, 즉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면, 즉 이런 저런 이유로 기도하지 않으면, 이런 저런 이유로 믿음으로 살지 아니하면 자기의 냄새를 맡고 사탄, 마귀가 쫓아 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냄새를 맡고 마귀가 이제 막 출발을 한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냄새를 맡고 그의 코 앞에 다가와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냄새를 맡고 그의 재앙을 가져다 준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 불행이 누구로 온줄 아십니까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온줄 아십니까 근심이 누구로 온줄 아십니까 우환이 누구로 와 있는줄 아십니까 질병이 누구로 와 있는줄 아십니까 누구때문에가 아닙니다. 바로 나로 인하여 온것입니다. 요나서 1장에 보면 다시스로 가는 배가 큰 풍랑을 만납니다. 바로 요나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요나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5절에 보면,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든지라’라고 합니다. 나중에사 요나가 무엇이라 고백하느냐 하면 (욘 1: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결국 (욘 1:15)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교회의 어려움이 와 있는 것은 목사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정에 재앙이, 불행의 일이, 우환이, 질병이 와 있는 것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았기에 그 냄새를 맡고 마귀가 가져온 것입니다.
지금 스스로 생각할 때에 조금 소홀하다 싶은분 계십니까 아직은 괜찮다고요 아닙니다. 그 냄새를 맡고 마귀가 우리에게 불행(우환,질병,근심거리)을 가지고지금 달려오고 있습니다. 재앙을 불러 드리는자가 되지 맙시다. 우환을 불러 드리는자가 되지 맙시다. 근심거리를 불러 드리는자가 되지 맙시다. 불행을 불러 드리는자가 되지 맙시다. 질병을 불러 드리는자가 되지 맙시다. 그래서 다윗이 주저 않을수 밖에 없음에도 그는 그것을 뿌리치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을 찾기에 갈급하니이다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저 앉아 있을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려고 해도 잘 안되는 것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실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내게서는 마귀의 코에 익숙한 더 진한 냄새만 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함이 내가 재앙을 불러 들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마귀가 가져다준 불행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지금 마귀가 우환을 가져다 주었더라도 괜찮습니다. 지금 마귀가 불행을 가져다 주었더라도 괜찮습니다. 지금 마귀가 질병을 가져다 주었더라도 괜찮습니다. 지금이라도 물을 찾아 마시면 우리들에게서 나는 냄새는 사라집니다. 그러면 와 있는 사단의 역사도 어디에 역사할지 모르고 빙빙거리다거 떠나가게 됩니다. 마귀가 냄새를 맡고 우리를 삼켜 먹으려고 오다가도 우리가 물을 찾아 마시면 그 냄새는 사라져 마귀가 길을 잃고 맙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렘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 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렘 29:12)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렘 29: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렘 29: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 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마치는 말

사랑하는 여러분! 물을 마시면 냄새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해야 우리가 살게 됩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우리가 살게 됩니다. 말씀으로 살아야 우리가 살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그가 나의 피할 바위가 되십니다. 그가 우리의 산성이 되십니다. 그가 우리의 안전한 요새가 되십니다. 재앙을 불러 들이는자가 아니라 축복을 불러 들이는자가 됩시다. 불행을 불러 들이는자가 아니라 행복을 불러 들이는자가 됩시다. 우환을 불러 들이는자가 아니라 즐거움을 불러 들이는자가 됩시다. 우리가 살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할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은혜의 삶을 살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754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