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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할 이유가 있습니까 ? (시150:1-6)

본문

할렐루야 ! 그 성소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 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지어다. 나팔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나는 제금(提琴)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할렐루야 !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造成)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것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렇다면 왜 우리를 불러 자녀로 삼으시며,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을 삼으셨을까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하려 함이니라.(사 43:21).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시 147:1). 그렇습니다.찬양은 음악적인 소질과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의 일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남녀노소를 말론하고 누구 든지 찬양을 해야 마땅한 것입니다.그렇다고 해서 당장 찬송가를 펴들고 불러보자든가, 시편을 큰 소리로 곡을 붙여 낭송하자든지 아니면할렐루야 ! 나 나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라고 외쳐보자는 말이 아닙니다.의무적으로라도 찬양해야 할 것이 아니냐고 윽박지르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하나님을 바로 알고 만난 사람들은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존재자체가 찬양이시기 때문입니다.그렇기에 오늘 우리는 찬양의 어떤 기술적인 면이나 방법적인 면을 다루기 보다, 찬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찬양하는 자리, 찬양할 이유를 분명히 하고 찬양해야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로 하십시다.
1. 찬양은 세상 노래와 다릅니다. 같은 성대와 입술과 혀를 가지고 노래를 하지만 거룩한 노래인 성가(聖歌)와 가요(歌謠), 가곡, 유행가와는 구분이 됩니다. 어떻게 구별되는 것일까요 세상의 노래는 사람을 즐겁게하기 위하여 만들어지고, 노래하는 사람의 인기와돈벌이에 유익합니다. 세상의 가수들이 T.V 나라디오에서 보여지고 들려지는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로 땀을 흘리면서 애를 쓰는 몸부림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수들이 흘리는 그 땀은 결국 자신이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의 굴레일 뿐하나님의 영광과는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러나 찬양은 거듭난 그리스도인, 즉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만이 부를 수 있답니다.
왜냐하면 노래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이것이 찬양의 기초이며 근원이 됩니다. 찬양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와 섭리에 대한 헌신과 고백입니다. 그것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는 것입니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시 33:1).그분은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 성도들은 찬양을 부를 때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가수들은 화려하게 외모를 꾸미고 자신의 인기를 위해서 별의별 기발한 아이디어로 겉을 치장하는 일에 힘을 씁니다만,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라는 것을잘알기 때문에 외모가 아닌 속사람을 단장하려는 애씀이 있어야 한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시 22:3).다윗이 만난 하나님은 성도들의 찬양 중에 거하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찬양의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 줄 알았기에 호흡이 있는 동안 찬양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가리켜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자라. 고 칭찬하시면서 기뻐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처럼 찬양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원하십니까 다함께 찬양하십시다.
1. 찬양하라 내 영혼아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
2. 감사하라 !
3. 송축하라 !
2. 성도의 모든 삶이 찬양이 되어야 합니다. 찬양은 말과 입술로만 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농아의 장애인들이 손으로 찬양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소리없는 그 찬양을 생각해 보십시요.물론 손뼉을 치면서(시 47:1), 현악기와 관악기, 타악기 할 것 없이 모든 악기로 연주하면서(시150), 손을 들고서(느 8:6), 춤을 추면서(시 149:3), 걸어가면서, 껑충껑충 뛰면서(삼하 6:16) 찬양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쁠 때(약 5:13)나 슬플 때(욥 1:21), 낙심되고 불안할 때(시 42:5-6), 가난 중에서(시 74:21)와 병들었을 때(행 3:8),시시때때로 찬양하며(시 34:1), 날마다(시 96:2), 일생동안(시 104:33), 숨질 때까지(시 104:33), 자손 대대로(시 145:4) 그리고 영원부터 영원까지(시 106:48)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한다는 것은 입술로 내는 소리를 넘어서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넘어서서 우리의 삶의 전체로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살펴보자면 이른 아침 학교로 가는 학생들의 발걸음 소리가 요란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어느 학생의 발걸음 소리는 하나님께서 찬양으로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왜 일까요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부하는 목적을 자신의 출세와 명예에 둡니다. 혹 다른 사람을 위한다고 하나 결국 그로 인하여 자신이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잘살아 보겠다는 데 공부의 목적을 삼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공부하는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받은 사명을 감당할 준비의 과정으로 공부하러 가는 학생의발걸음 소리는 그 자체가 벌써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찬양이 된단 말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생활 가운데 모든 순간 순간마다, 머무는 자리마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그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에 두면 그것이 곧 찬양이라는 말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
3. 찬양할 이유가 있으십니까 집에서 기르는 구관조나 앵무새 같은 새는 사람의 말을 곧잘 따라합니다.그러나 그 새가 우리가 쓰는 말의 뜻을 알고 따라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리의 흉내 일 뿐이지요. 할렐루야 ! 라는 말은 분명히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방송국의 아나운서가 할렐루야 축구팀의 경기를중계하면서 할렐루야를 수 백번하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찬양하는 자라고 하시겠습니까 아무 뜻없이 습관적으로 부르는 찬양, 자신의 남다른 재능을 뽐내기 위하여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부르는 찬송가나 복음성가를 과연 하나님께서 찬양으로 받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그저 의미없이 습관적으로 부르는 찬양이란 하 나의 소리요, 흉내일 뿐이며 사람 앞에서 자기를 나타내려고 부르는 찬양이란 세상의 가요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가(聖歌)로서 곡과 가사가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은 틀림이 없이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그 찬양곡과 가사에 생명력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 찬양을 부르는 성도의 마음과 자세에 있다는 것입니다. 찬양할 이유가 있으십니까 이 물음 앞에서 여러 성도님들께서는 과연 찬양할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실 수 있으십니까 오늘 본문인 시편 150편 2절에 보면, 시편기자는 찬양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그는 하나님의 능(能)하심을 깨닫고 경험하였기에 찬양한다는 것입니다.또, 그의 인생여정 길에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신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체험하였기에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의 생활 속에서, 삶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를 찾으셔서 찬양해 보십시다. 저는 예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음을 찬양합니다.
어느 성도님은 좋은 남편, 부인을 주신 주님을 인하여 찬양할 수도 있겠고, 아직도 생존하시는 부모님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나, 양친 부모가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도 생명을 주심을 인하여 주님을 찬양할 수도 있겠습니다.성도들은 언제나 오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시간 속에 역사하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이라는 장소에 얽메이거나, 어제나 내일이라는 시간 속에서 손짓하시지 않으십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실의에 빠진 제자들의 발걸음이 닿는 바로 그 길에서, 그 시간에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심령의 눈을 감고 다른 세계로 들어가서, 지금 여러 성도님들의 현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기도와 찬양을 드려서는 안됩니다. 온갖 아름다운 표현을 다 동원해서 한 편의 시같은 기도를 드리고 참 멋있었다고 스스로 감동하거나, 성도들이 오늘 기도 정말 멋들어지더라는 칭찬에 만족해하지 마십시오. 아름다운 목소리로 청중을 감동시키며, 음정 박자를 틀림없이 잘 지켰다고 해서 기뻐하지 마십시오. 그로인하여 상(賞)을 타기도 하고, 성도들로부터 어쩌면 그렇게 찬양을 잘 하느냐! 찬양이 참 좋았다!는 식의 인기를 얻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을 잊지마십시요. 여러분의 기도와 찬양을 통해 기뻐하고 만족해야할 대상은 여러분 자신이거나 청중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에게기도할 이유, 감사할 이유와 찬양할 이유를 주신 하나님 ! 여러분과 저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앞에서 여러분과 저의 감사와 기도와 찬양은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도하고 찬양하기 위해서 어떤 꾸밈이 있는 언어를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의 나아닌 다른 나로 둔갑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 그대로 나아가십시다. 이와 같은 점을 생각할 때눈을 감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습관을 버리고 눈을 뜨고 걸으면서 찬양하고 감사하자고 권면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야외에 나가시거든 눈을 뜨고 일어나 걸으시면서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를 반주삼아 여러분 자신의 독특한 앙고백을 담아 기도하고 찬양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 세계에서 어찌 눈을 감고 기도하며 판에 박은 찬송가 만을 불러야 되겠습니까 !
찬송가 40 장 (후렴)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1.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2. 숲 속이나 험한 산 골짝에서 지저귀는 저 새소리들과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주님의 솜씨 노래하도다
3. 주 하나님 독생자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보내 주셨네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주 내 모든 죄를 구속하셨네
4. 내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올 때 저 천국으로 날 인도하리 나 겸손히 엎드려 경배하며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라 매듭말 어떤 사람이 어느나라 사람인가를 알려고 하면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금새 알 수 있게 됩니다.한국 사람이면 한국말을 할것이고, 중국 사람은 중국어를 쓸 것이요, 일본 사람은 일본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늘나라의 백성들인 성도여러분과 저는 어떤 말을 써야 될까요 바로 감사와 찬송이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말은 세세토록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이랍니다.
C.S.루이스는 찬양이란, 내적인 건강 상태가 밖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성도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의 표현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감사와 찬양을 드릴 때 곡과 가사를 보면서 그대로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그 가사와 곡에 생명을 불어넣어서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간절한 사모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말하자면 찬양할 이유가 분명하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전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시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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