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복을 지키는 자의 복 (시16:1-11)
본문
어떤날 한 남자가 유명한 가이드 포스트지의 창시자인 노만 핀센트 빌박사님을 찾아 방문했다고 합니다. 극도의 절망감에 사로잡혀서 얼굴도 초췌하고 아주 얼굴 표정 자체가 마치 당장 죽을것 같은 그런 사람이 찾아와서 자기 사정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이제는 끝장이 났습니다. 사업에 실패하며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 라고 말했답니다. 그때에 빌박사님께서는 종이를 하나 꺼내 들고 당신이 지금 모든 것을 잃었다고 했는데 그래도 조금 남은 것이 있을것 같은데 그 남은 것을 제가 물어 볼거니까 대답을 하시고 여기다가 한번 적어보도록 하십시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부인 있습니까 네 제 아내는 참 착하고 좋은 사람입니다. 자녀가 있습니까 셋이 있습니다. 아주 이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친구가 있습니까 예 제 뜻을 잘 알아 주는 몇사람 친구가 있습니다. 건강은 어떻습니까 아 그저 아직까지 건강은 괜찮습니다. 이렇게 말을 해 나가다가 이 남자 스스로 하는 말이 어쩌면 내 사정이 그리 나쁘지 않은것 같습니다. 다 잃어버린줄 알았는데 아직도 가진것이 많구만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물러 갔다는 얘깁니다. 불행은 여기에 있습니다. 가지고 싶은 것을 못 가지고 있다는 것에 있는게 아니고 가지고 있는것을 모른다는 것에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을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찾아 보세요. 다 잃어버린것 같으나 아직도 가지고 있는게 많습니다. 가지고 있는게 더 큰겁니다. 더 근본적이고 더 소중한 것입니다. 그걸 모르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더라도 내가 가지고 있는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아는것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알고 있는것을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한 겁니다. 더 많은 것을 알려고 들지 말고 아는대로 살아 보세요. 넉넉합니다. 하나님은 넉넉하게 주셨습니다. 소원은 성취하지 못한데서부터 불행이 오는것이 아닙니다. 현실에 뜻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문젭니다. 사람은 항상 흑자평가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일에서 적자만 계산합니다. 무엇을 잃었는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몰두합니다. 아니올시다. 그러한 가운데도 얻은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잃어버리고 저것을 얻었습니다. 건강을 잃어버리고 믿음을 얻었습니다. 재산을 잃어버리고 겸손을 얻었습니다. 얻은게 많습니다. 얻은것, 이 흑자쪽으로 평가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은 항상 흑자결론을 내립니다. 그 사람에게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복이 무엇입니까 복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최근 심리학에서 이런 말을 주로 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존재다.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는 생각하는 만큼의 세계를 산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변화하는대로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고 생각하는대로 변화하는 존재란 말입니다. 여러분 환경이 달라져서 사람이 달라질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요. 아무리 환경이 달라져도 달라질수 없는 사람은 못 달라집니다. 촌사람은 항상 촌사람이요. 덜된 사람은 항상 덜된 사람이요. 욕심쟁이는 항상 욕심쟁이요. 불평하는 사람은 끝없이 불평합니다. 그건 불평하다가 줄을 사람이지 그 사람의 불평을 끌 수 있는 환경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변화가 옵니다. 그 변화된대로 내 존재는 결정되는 것이올시다. 오늘 본문 성경에 보면 다윗왕은 하나님 앞에서 아주 복에 대해서 소중한 말씀을 합니다. 언제 읽어보아도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하는 귀한 간증이 담겼고, 신앙고백이 담겨 있는 거룩한 시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모든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이 내 복의 근본이다. 하나님과의 정직한 관계가 바로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물질이 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태평성대가 복이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복입니다. 그로부터 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의 유명한 고백을 다시 들어 보십시다. 시편 37편에서 보면은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나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 여호와를 기뻐할 때 그가 내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거예요. 그것이 복의 길이요. 잠원 16장 1절 9절 보면은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우리는 한때 잘못 생각하고 잘못 말한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면된다. 안되면 되게하라. 건방진 소립니다. 해도 안되는걸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내가 아무리 몸부림쳐도 안될건 안됩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것을 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떠나 잘살 수 있는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방향이 있어요. 하나님을 찾도록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나님은 인도하실 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낯을 떠나서 복받을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치고 발광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떠나서 복된 길은 없다. 이 간단한 진리를 오늘 우리가 배워가고 있는 것이올시다. 언제 읽어도 아브라함 링컨에 대한 이야기는 참 부럽습니다. 세계가 존경하는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그 기도선언이 있었습니다. 남북전쟁을 일으켜 놓고 7년동안 강이 피로 물들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을 때 그는 괴로웠습니다. 1862년 4월 30일 전국에 금식기도일을 선포했습니다. 여기에서 유명한 연설을 하는데 2대 링컨의 연설중에 하나입니다. 그 연설문에 중간에 이런말이 나옵니다. 미국의 비극은 미국의 비극을 종식시킬 수 있는 길은 오직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것 뿐입니다. 이 비극의 원인은 너나할 것 없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 이백성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이 같은 비극이 있는 겁니다. 그런고로 다 같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십시다. 이렇게 연설하는것을 볼수 있어요. 저는 이런 연설문을 볼때마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언제 이런말 할때가 있을까 참으로 부럽습니다. 참으로 부럽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길 외에 다른길이 없습니다. 온세계를 향해서 손을 내민다고 해결되는게 아니예요. 빚갚기 위해서 또 빚을 내야 하는 이 답답한 사정 어쩌다 이모양이 된것 같습니까 하나님, 하나님의 뜻을 떠났기 때문이요. 그리고 오만했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떠났기 때문이요. 우상숭배를 하고 지금도 뭐 묘지를 잘써서 됐다나. 이래서 묘지를 옮기고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묘지를 옮긴 사람이요 이 지방에서 서울로 사방에 좋은자리로 옮긴다고 옮기고 오만비나 됩니다요. 그래가지고 이렇게 된거예요. 도대체 언제나 정신을 차릴겁니까 요새는 아주 점쟁이 집이 성시를 이룬답니다. 이래가지고 우리 나라가 어디로 가는겁니까 여호와께로 돌아가고 하나님과의 정직한 관계를 이룰생각을 못합니다.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다면 그때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복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 외에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두번째로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것은 분복의 뜻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분깃이 있고 분복이 있고 줄로 재어준 구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것을 다 가질수도 없고 다 가질 필 요도 없습니다. 각자에게 맡겨주는 만큼의 분복이 있습니다. 그 이상을바랄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의 입장으로 보아도요 좀 성서학적으로 깊은 말씀입니다만은 생각해 보세요. 바울이 하나님의 사람이 될때 예수를 믿고 사도가 됐을때에 그때 바란게 뭐냐하면 민족에 대한 간절한 열망입니다. 자기동족 유대민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랬어요. 그래서 그는 어느지방에 가서 선교하든지 유대 사람의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핍박을 받으면서도 전합니다. 유대사람들한테 지긋지긋하게 쫓기면서도 계속 유대 사람들을 구원해 볼려고 몸부림을 쳤으나 이건 번번히 실패입니다.
상당한 기간이 흐른 다음에야 깨달은 것 같애요. 하나님의 부르심은 적어도 이 사도바울의 부르심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른겁니다. 갈라디아서1장에서 그는 고백합니다.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함을 입어 이방인의 사도가 됐다. 진작 그렇게 생각할 것이지 그의 사명은 그에게 그에게 맡겨진 분복은 이방사람에게 복음 전하는 것이지요. 유대사람을 상대로 하는게 아니었더라는 겁니다. 누구에게나 맡겨진 분복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 보면은요 돈 잘 벌게 생긴 사람들 있어요. 제가 하두 답답해서 옛날에요 관상학을 좀 보았어요. 그래서 조금 봅니다 관상을. 아 이사람은 밥술이나 먹게 생겼고 아주 기업가로 생겼어요 관상이.
그런데 이사람이 돈좀 벌어놓고는 중간에 아 목사 하겠다고 그래요. 그것 나이도 많았는데 이제와서 신학을 한다. 아 교역자가 됐지요. 교회부흥 안되더라구요. 교회부흥도 장사하는 식으로 하거든요. 교회학적으로 해볼려고 하니 되겠습니까 체질상 안되는거예요. 그래서 본인도 고생이고 교인들도 고생이예요. 그래서 제가 아 이분은 팔자를 잘못 짚었다. 그래 생각을 해요. 여러분 분복이 있음을 잊지 마세요.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아도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창의력이 좋은 사람이 있어요. 예술성이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주 합리적인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이 있어요. 뭐 물질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분복이 있음을 알아야 해요. 그 달란트 비유를 보세요. 다섯달란트 두달란트 한달란트 얼마를 버느냐에 심판의 기준이 있는것이 아닙니다. 남겼느냐 못남겼느냐 얼마나 작은일에 충성했느냐 고것만 묻는거예요. 그러니까 물량적으로 평가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내게 맡겨진 분복을 소중히 여기는게 중요합니다. 꼭 많이 가져야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옛날에 유학할 때 미국과정에 참 부자집에 초청을 받아 가봤습니다. 우리나라에 지금 집들이라고 뭐 자기네들은 큰집 세워 사는거라고 생각하는가 본데 외국사람들의 저택에 비하면 이거는 이건 아주 사랑방도 안됩니다. 엄청난 저택에 공원에 그리고 좌우간 집을 이쪽에는 여름에 이쪽에는 겨울에 따로 따로 해놨드라구요. 엄청난 저택을 한번 쭉 돌아보는데 정말 입이 딱 벌어지드만요.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놀란것은 침실이예요. 침실도 가보자고 그래서 가봤는데 넓다란 침실에 한구석에 침대를 놓고 그 위에다가 요렇게 동굴처럼 뭘 씌워 놨더라구요. 요거 이제 문제에요. 그래 제가 한마디 했습니다. 이건 왜 이렇게 씌워 놨습니까 했더니요 방이 넓으면 사람은 원래 동굴문화에 살았기 때문에 잠이 안온답니다. 글러니까 침실 크게 하는 사람은 멍청한 사람이죠. 그 러니까 허황한 꿈만 꾸죠. 원래 어짜피 자는데는 요만큼 자면 되는거예요. 이게 커야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거거든요. 제발 욕심도 부리지 맙시다. 이제는 생각 좀 고칩시다. 돈이 있거나 없거나 그렇게 저택이 클 필요도 없고, 그렇게 굉장한 침대 놀 필요도 없어요.
제가 언젠가 한번 마닐라 빌빈에 갔다가 거기에 옛날에 그 수상이 뭐 한참 화려하게 살때에 있던 침대 하나 구경을 했어요. 마닐라인가 미넬라인가 하는 양반 자던 침대를 한번 들여다 봤는데 아 대개 크데요. 그래 제가 생각했어요. 여기 가만히 보니까 충분히 여섯사람은 자겠드만요. 여기 부부싸움하고 자기 딱 좋겠더라구요. 하나는 여기 자고 하나는 저기 자고. 무슨 쓸데없는 짓입니까 이게 다 한심한 일이요. 생각이 이정도밖에 안되는거예요. 분복이 있어요. 다 먹을수도 없고 다 가질수도 없고. 어짜피 나는 요만큼 살다가 요렇게 가는 거예요. 분복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현실이라는 분복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과거도 미래도. 어느 구두수선도 하고 구두닦이를 하면서 거리에서 일을 하는 청년이 하나 있었는데 이 양반이 이 내가 이 천한일을 언제까지 해야하나 늘 마음에 괴로웠어요. 그래서 다달이 나오는 복권을 샀어요. 한번 맞아 떨어져라. 그리고 열심히 사서 긁었는데 이게 일억원짜리가 나왔답니다.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에이 다시는 이놈의 구두닦이 안한다. 그리고 구두닦이 하는 괘짝을 들고 나가서 한강에 가서 이제는 내가 영원히 이 지긋지긋한 구두상자 내 버렸답니다. 버리고 생각해 보니까 자기 습관대로 그 복권을 그 상자속에 넣어 놨단 말입니다. 기가막혀서 자살해 죽었답니다. 복이 그거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제는 시기하지도 말고 질투하지도 맙시다. 남 잘사는거 부러워 할 것 없습니다. 질적으로 평가하세요. 누가 행복한지는 노바디노스. 누가 잘사는지는 나만이 아는거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하지도 말고 나 처한 처지 외에 처지를 구하지도 맙시다. 이게 분복이요. 분복이 있음을 알아야 해요. 또한 오늘 성경에 가르켜 주는 교훈은 또한 그 분복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예요. 감사하고 아름답다. 줄로 재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실로 아름답도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은 아름답습니다.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수용적 자세가 중요합니다. 분명히 한게가 있습니다. 범위도 있습니다. 방향도 있습니다. 지식도 능력도 건강도 한계가 있어요. 여러분 혹 날씬하십니까 날씬하고 자그마하거든 아담하게 보고, 좀 뚱뚱하십니까 넉넉하게 봐 주세요. 나를 보던 남을 보던 남 부러워 하지 마세요. 그대로가 바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걸작품이니까요. 문제는 어떻게 보느냐에 문제입니다. 아름답게 보면 다 아름다운 것이구요. 삐뚤어진 사람의 마음에는 그 누구도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그 어떤것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내게 주신것 아름답습니다.
늘 얘기합니다만은 우리 여집사님 한분이 그런 얘기를 해서 제 마음을 참 즐겁게 해준 일이 있습니다. 목사님 제가 목사님의 은혜를 받고요. 설교와서 은혜 받고, 아 어느날 마음이 변화됐는데 이는 눈이 확 돌아가는데 이상합디다요. 이십년동안 산 남편이 뭐 그리 이쁘겠습니까만은 남편의 얼굴이 이뻐지기 시작하는데 정신 못차리겠더래요. 너무너무 예뻐서 밤에 불을 끄는게 싫어가지고 이런 불평을 했대요. 하나님 왜 하나님은 밤에 잘때 눈을 감게 자게 만들었습니까 요 예쁜 얼굴좀 봄면서 자게 만들지. 그래 제가 그 집사님하고 악수를 하면서 당신이 최고요. 우리 교인들 가운데 일등교인이라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왜요 그거 잘 믿는거에요. 돌아가 보세요. 사모님이 이뻐요. 아이들이 이뻐요. 하루하루 사는게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당신이 일들 크리스챤이요. 언제, 왜, 하나님은 하필이면 저런 남자 웬수와 더불어 한평생을 살게 만들었을까 아이구 참 주여 언제 이루어 주십니까 어느때까지 입니까 이따위 교인은 소망교회 교인 아닙니다. 이름을 보세요. 소망교회인데. 됐나. 그렇지 않습니까 나에게 주어진 구역은 아름답습니다. 직업도, 가정도, 먹는것도, 내 얼굴도 아름답습니다. 그것입니다. 아릅답게 보는 것입니다. 아름답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축복이요. 그 시각이 그것이 복이요 그 마음이 그게 바로 복의 근본이란 말입니다. 그 미국에요 하는 기관이 있는데 미국정신 건강협회 뭐 이렇게 번역하는데 여기에서 행복에 대한 다섯가지 써제션이 있습니다. 권고하는 말이 있는데 행복하려면
첫째 너그러워야 된다.-7-너무 까다로우면 안되요. 너그러워야 된다. 그 다음에 두번째가 중요합니다. 현실적으로 자기를 평가하라. 참 중요한 일입니다. 사실을 인정하세요. 퇴직된거는 퇴직된거고, 늙은건 늙은거고, 없는건 없는거고, 사실을 사실대로 현실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을 가져야죠. 그래야 행복합니다. 또 자부심을 가지세요. 왜요 아직도 난 소중하니까요. 자기가 자기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데 누가 나를 소중히 여깁니까 하나님 앞에서 받은 은혜를 통하여 나는 소중한 존재라는걸 알아야 하구요 또한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묻지 마세요.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 그것으로 만족해요. 그리고 행복해요. 그리고 항상 명랑하게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교훈입니다만은 우리 한국 사람들의 만족도에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최근 세계 연구 이것을 연구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한국인의 행복도는 65%라고 합니다. 조사한 18개국중에 최하위, 최하위요 가졌던 못가졌던 우리는 스스로 불행해요. 행복할줄을 몰라요. 일본사람이 77% 그리고 영국사람은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데도 95%, 뭘 말하는 것이냐 하면 우리는 행복할줄을 모른다는 거에요. 가져도 못가져도 끝까지 불만밖에 없어요. 짜증으로 터지고 이거는 참 문제올시다. 그런고로 이 만족도 그것과 소유하고는 절대로 정비례하는 것이 아니올시다. 모든것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습니다. 그런고로 감사하십시다. 모든것 안에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이 있습니다. 조용히 말씀을 들으십시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그가 인도하시는 길로 조용히 순종해 나가십시다. 내게 준신 분깃, 내게 주신 분복,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고 나갈때 하나님께서는 더욱더 크고 높고, 귀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을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찾아 보세요. 다 잃어버린것 같으나 아직도 가지고 있는게 많습니다. 가지고 있는게 더 큰겁니다. 더 근본적이고 더 소중한 것입니다. 그걸 모르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더라도 내가 가지고 있는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아는것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알고 있는것을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한 겁니다. 더 많은 것을 알려고 들지 말고 아는대로 살아 보세요. 넉넉합니다. 하나님은 넉넉하게 주셨습니다. 소원은 성취하지 못한데서부터 불행이 오는것이 아닙니다. 현실에 뜻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문젭니다. 사람은 항상 흑자평가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일에서 적자만 계산합니다. 무엇을 잃었는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몰두합니다. 아니올시다. 그러한 가운데도 얻은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잃어버리고 저것을 얻었습니다. 건강을 잃어버리고 믿음을 얻었습니다. 재산을 잃어버리고 겸손을 얻었습니다. 얻은게 많습니다. 얻은것, 이 흑자쪽으로 평가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은 항상 흑자결론을 내립니다. 그 사람에게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복이 무엇입니까 복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최근 심리학에서 이런 말을 주로 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존재다.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는 생각하는 만큼의 세계를 산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변화하는대로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고 생각하는대로 변화하는 존재란 말입니다. 여러분 환경이 달라져서 사람이 달라질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요. 아무리 환경이 달라져도 달라질수 없는 사람은 못 달라집니다. 촌사람은 항상 촌사람이요. 덜된 사람은 항상 덜된 사람이요. 욕심쟁이는 항상 욕심쟁이요. 불평하는 사람은 끝없이 불평합니다. 그건 불평하다가 줄을 사람이지 그 사람의 불평을 끌 수 있는 환경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변화가 옵니다. 그 변화된대로 내 존재는 결정되는 것이올시다. 오늘 본문 성경에 보면 다윗왕은 하나님 앞에서 아주 복에 대해서 소중한 말씀을 합니다. 언제 읽어보아도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하는 귀한 간증이 담겼고, 신앙고백이 담겨 있는 거룩한 시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모든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이 내 복의 근본이다. 하나님과의 정직한 관계가 바로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물질이 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태평성대가 복이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복입니다. 그로부터 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의 유명한 고백을 다시 들어 보십시다. 시편 37편에서 보면은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나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 여호와를 기뻐할 때 그가 내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거예요. 그것이 복의 길이요. 잠원 16장 1절 9절 보면은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우리는 한때 잘못 생각하고 잘못 말한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면된다. 안되면 되게하라. 건방진 소립니다. 해도 안되는걸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내가 아무리 몸부림쳐도 안될건 안됩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것을 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떠나 잘살 수 있는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방향이 있어요. 하나님을 찾도록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나님은 인도하실 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낯을 떠나서 복받을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치고 발광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떠나서 복된 길은 없다. 이 간단한 진리를 오늘 우리가 배워가고 있는 것이올시다. 언제 읽어도 아브라함 링컨에 대한 이야기는 참 부럽습니다. 세계가 존경하는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그 기도선언이 있었습니다. 남북전쟁을 일으켜 놓고 7년동안 강이 피로 물들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을 때 그는 괴로웠습니다. 1862년 4월 30일 전국에 금식기도일을 선포했습니다. 여기에서 유명한 연설을 하는데 2대 링컨의 연설중에 하나입니다. 그 연설문에 중간에 이런말이 나옵니다. 미국의 비극은 미국의 비극을 종식시킬 수 있는 길은 오직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것 뿐입니다. 이 비극의 원인은 너나할 것 없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 이백성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이 같은 비극이 있는 겁니다. 그런고로 다 같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십시다. 이렇게 연설하는것을 볼수 있어요. 저는 이런 연설문을 볼때마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언제 이런말 할때가 있을까 참으로 부럽습니다. 참으로 부럽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길 외에 다른길이 없습니다. 온세계를 향해서 손을 내민다고 해결되는게 아니예요. 빚갚기 위해서 또 빚을 내야 하는 이 답답한 사정 어쩌다 이모양이 된것 같습니까 하나님, 하나님의 뜻을 떠났기 때문이요. 그리고 오만했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떠났기 때문이요. 우상숭배를 하고 지금도 뭐 묘지를 잘써서 됐다나. 이래서 묘지를 옮기고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묘지를 옮긴 사람이요 이 지방에서 서울로 사방에 좋은자리로 옮긴다고 옮기고 오만비나 됩니다요. 그래가지고 이렇게 된거예요. 도대체 언제나 정신을 차릴겁니까 요새는 아주 점쟁이 집이 성시를 이룬답니다. 이래가지고 우리 나라가 어디로 가는겁니까 여호와께로 돌아가고 하나님과의 정직한 관계를 이룰생각을 못합니다.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다면 그때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복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 외에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두번째로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것은 분복의 뜻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분깃이 있고 분복이 있고 줄로 재어준 구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것을 다 가질수도 없고 다 가질 필 요도 없습니다. 각자에게 맡겨주는 만큼의 분복이 있습니다. 그 이상을바랄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의 입장으로 보아도요 좀 성서학적으로 깊은 말씀입니다만은 생각해 보세요. 바울이 하나님의 사람이 될때 예수를 믿고 사도가 됐을때에 그때 바란게 뭐냐하면 민족에 대한 간절한 열망입니다. 자기동족 유대민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랬어요. 그래서 그는 어느지방에 가서 선교하든지 유대 사람의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핍박을 받으면서도 전합니다. 유대사람들한테 지긋지긋하게 쫓기면서도 계속 유대 사람들을 구원해 볼려고 몸부림을 쳤으나 이건 번번히 실패입니다.
상당한 기간이 흐른 다음에야 깨달은 것 같애요. 하나님의 부르심은 적어도 이 사도바울의 부르심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른겁니다. 갈라디아서1장에서 그는 고백합니다.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함을 입어 이방인의 사도가 됐다. 진작 그렇게 생각할 것이지 그의 사명은 그에게 그에게 맡겨진 분복은 이방사람에게 복음 전하는 것이지요. 유대사람을 상대로 하는게 아니었더라는 겁니다. 누구에게나 맡겨진 분복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 보면은요 돈 잘 벌게 생긴 사람들 있어요. 제가 하두 답답해서 옛날에요 관상학을 좀 보았어요. 그래서 조금 봅니다 관상을. 아 이사람은 밥술이나 먹게 생겼고 아주 기업가로 생겼어요 관상이.
그런데 이사람이 돈좀 벌어놓고는 중간에 아 목사 하겠다고 그래요. 그것 나이도 많았는데 이제와서 신학을 한다. 아 교역자가 됐지요. 교회부흥 안되더라구요. 교회부흥도 장사하는 식으로 하거든요. 교회학적으로 해볼려고 하니 되겠습니까 체질상 안되는거예요. 그래서 본인도 고생이고 교인들도 고생이예요. 그래서 제가 아 이분은 팔자를 잘못 짚었다. 그래 생각을 해요. 여러분 분복이 있음을 잊지 마세요.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아도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창의력이 좋은 사람이 있어요. 예술성이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주 합리적인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이 있어요. 뭐 물질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분복이 있음을 알아야 해요. 그 달란트 비유를 보세요. 다섯달란트 두달란트 한달란트 얼마를 버느냐에 심판의 기준이 있는것이 아닙니다. 남겼느냐 못남겼느냐 얼마나 작은일에 충성했느냐 고것만 묻는거예요. 그러니까 물량적으로 평가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내게 맡겨진 분복을 소중히 여기는게 중요합니다. 꼭 많이 가져야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옛날에 유학할 때 미국과정에 참 부자집에 초청을 받아 가봤습니다. 우리나라에 지금 집들이라고 뭐 자기네들은 큰집 세워 사는거라고 생각하는가 본데 외국사람들의 저택에 비하면 이거는 이건 아주 사랑방도 안됩니다. 엄청난 저택에 공원에 그리고 좌우간 집을 이쪽에는 여름에 이쪽에는 겨울에 따로 따로 해놨드라구요. 엄청난 저택을 한번 쭉 돌아보는데 정말 입이 딱 벌어지드만요.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놀란것은 침실이예요. 침실도 가보자고 그래서 가봤는데 넓다란 침실에 한구석에 침대를 놓고 그 위에다가 요렇게 동굴처럼 뭘 씌워 놨더라구요. 요거 이제 문제에요. 그래 제가 한마디 했습니다. 이건 왜 이렇게 씌워 놨습니까 했더니요 방이 넓으면 사람은 원래 동굴문화에 살았기 때문에 잠이 안온답니다. 글러니까 침실 크게 하는 사람은 멍청한 사람이죠. 그 러니까 허황한 꿈만 꾸죠. 원래 어짜피 자는데는 요만큼 자면 되는거예요. 이게 커야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거거든요. 제발 욕심도 부리지 맙시다. 이제는 생각 좀 고칩시다. 돈이 있거나 없거나 그렇게 저택이 클 필요도 없고, 그렇게 굉장한 침대 놀 필요도 없어요.
제가 언젠가 한번 마닐라 빌빈에 갔다가 거기에 옛날에 그 수상이 뭐 한참 화려하게 살때에 있던 침대 하나 구경을 했어요. 마닐라인가 미넬라인가 하는 양반 자던 침대를 한번 들여다 봤는데 아 대개 크데요. 그래 제가 생각했어요. 여기 가만히 보니까 충분히 여섯사람은 자겠드만요. 여기 부부싸움하고 자기 딱 좋겠더라구요. 하나는 여기 자고 하나는 저기 자고. 무슨 쓸데없는 짓입니까 이게 다 한심한 일이요. 생각이 이정도밖에 안되는거예요. 분복이 있어요. 다 먹을수도 없고 다 가질수도 없고. 어짜피 나는 요만큼 살다가 요렇게 가는 거예요. 분복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현실이라는 분복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과거도 미래도. 어느 구두수선도 하고 구두닦이를 하면서 거리에서 일을 하는 청년이 하나 있었는데 이 양반이 이 내가 이 천한일을 언제까지 해야하나 늘 마음에 괴로웠어요. 그래서 다달이 나오는 복권을 샀어요. 한번 맞아 떨어져라. 그리고 열심히 사서 긁었는데 이게 일억원짜리가 나왔답니다.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에이 다시는 이놈의 구두닦이 안한다. 그리고 구두닦이 하는 괘짝을 들고 나가서 한강에 가서 이제는 내가 영원히 이 지긋지긋한 구두상자 내 버렸답니다. 버리고 생각해 보니까 자기 습관대로 그 복권을 그 상자속에 넣어 놨단 말입니다. 기가막혀서 자살해 죽었답니다. 복이 그거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제는 시기하지도 말고 질투하지도 맙시다. 남 잘사는거 부러워 할 것 없습니다. 질적으로 평가하세요. 누가 행복한지는 노바디노스. 누가 잘사는지는 나만이 아는거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하지도 말고 나 처한 처지 외에 처지를 구하지도 맙시다. 이게 분복이요. 분복이 있음을 알아야 해요. 또한 오늘 성경에 가르켜 주는 교훈은 또한 그 분복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예요. 감사하고 아름답다. 줄로 재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실로 아름답도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은 아름답습니다.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수용적 자세가 중요합니다. 분명히 한게가 있습니다. 범위도 있습니다. 방향도 있습니다. 지식도 능력도 건강도 한계가 있어요. 여러분 혹 날씬하십니까 날씬하고 자그마하거든 아담하게 보고, 좀 뚱뚱하십니까 넉넉하게 봐 주세요. 나를 보던 남을 보던 남 부러워 하지 마세요. 그대로가 바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걸작품이니까요. 문제는 어떻게 보느냐에 문제입니다. 아름답게 보면 다 아름다운 것이구요. 삐뚤어진 사람의 마음에는 그 누구도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그 어떤것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내게 주신것 아름답습니다.
늘 얘기합니다만은 우리 여집사님 한분이 그런 얘기를 해서 제 마음을 참 즐겁게 해준 일이 있습니다. 목사님 제가 목사님의 은혜를 받고요. 설교와서 은혜 받고, 아 어느날 마음이 변화됐는데 이는 눈이 확 돌아가는데 이상합디다요. 이십년동안 산 남편이 뭐 그리 이쁘겠습니까만은 남편의 얼굴이 이뻐지기 시작하는데 정신 못차리겠더래요. 너무너무 예뻐서 밤에 불을 끄는게 싫어가지고 이런 불평을 했대요. 하나님 왜 하나님은 밤에 잘때 눈을 감게 자게 만들었습니까 요 예쁜 얼굴좀 봄면서 자게 만들지. 그래 제가 그 집사님하고 악수를 하면서 당신이 최고요. 우리 교인들 가운데 일등교인이라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왜요 그거 잘 믿는거에요. 돌아가 보세요. 사모님이 이뻐요. 아이들이 이뻐요. 하루하루 사는게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당신이 일들 크리스챤이요. 언제, 왜, 하나님은 하필이면 저런 남자 웬수와 더불어 한평생을 살게 만들었을까 아이구 참 주여 언제 이루어 주십니까 어느때까지 입니까 이따위 교인은 소망교회 교인 아닙니다. 이름을 보세요. 소망교회인데. 됐나. 그렇지 않습니까 나에게 주어진 구역은 아름답습니다. 직업도, 가정도, 먹는것도, 내 얼굴도 아름답습니다. 그것입니다. 아릅답게 보는 것입니다. 아름답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축복이요. 그 시각이 그것이 복이요 그 마음이 그게 바로 복의 근본이란 말입니다. 그 미국에요 하는 기관이 있는데 미국정신 건강협회 뭐 이렇게 번역하는데 여기에서 행복에 대한 다섯가지 써제션이 있습니다. 권고하는 말이 있는데 행복하려면
첫째 너그러워야 된다.-7-너무 까다로우면 안되요. 너그러워야 된다. 그 다음에 두번째가 중요합니다. 현실적으로 자기를 평가하라. 참 중요한 일입니다. 사실을 인정하세요. 퇴직된거는 퇴직된거고, 늙은건 늙은거고, 없는건 없는거고, 사실을 사실대로 현실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을 가져야죠. 그래야 행복합니다. 또 자부심을 가지세요. 왜요 아직도 난 소중하니까요. 자기가 자기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데 누가 나를 소중히 여깁니까 하나님 앞에서 받은 은혜를 통하여 나는 소중한 존재라는걸 알아야 하구요 또한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묻지 마세요.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 그것으로 만족해요. 그리고 행복해요. 그리고 항상 명랑하게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교훈입니다만은 우리 한국 사람들의 만족도에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최근 세계 연구 이것을 연구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한국인의 행복도는 65%라고 합니다. 조사한 18개국중에 최하위, 최하위요 가졌던 못가졌던 우리는 스스로 불행해요. 행복할줄을 몰라요. 일본사람이 77% 그리고 영국사람은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데도 95%, 뭘 말하는 것이냐 하면 우리는 행복할줄을 모른다는 거에요. 가져도 못가져도 끝까지 불만밖에 없어요. 짜증으로 터지고 이거는 참 문제올시다. 그런고로 이 만족도 그것과 소유하고는 절대로 정비례하는 것이 아니올시다. 모든것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습니다. 그런고로 감사하십시다. 모든것 안에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이 있습니다. 조용히 말씀을 들으십시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그가 인도하시는 길로 조용히 순종해 나가십시다. 내게 준신 분깃, 내게 주신 분복,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고 나갈때 하나님께서는 더욱더 크고 높고, 귀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