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의 올무에서 벗어나라 (시124:1-8)
본문
I. 지난주 월요일에 기도원에 가기전에 집에 혼자 남아서 기도원 갈 준비를 하다가, 주일날 설교한 테이프를 보기 위하여 텔레비젼을 틀었습니다. 그런데 텔레비젼에서 독도의 바닷속을 탐사한 것을 방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설교 테이프를 보는 대신 그 방송을 보았습니다. 저는 동물의 왕 국와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다든가, 바다에 관한 프로가 나오면 그렇게 좋읍니다. 그래서 혼자 조용히 자세히 보았습니다. 독도 바닷속을 보여주는데 정말로 장관이였습니다. 바닷속에 푸른 숲 이 쭉 늘어서 있습니다. 각양식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각종 어류들이 살고 있습니다. 정말로 별천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프로가 거의 다 끝나 갈 무렵 정말로 보기 싫은 장면이 나왔습니다. 어부들이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다가, 그물이 해초에 걸리거 나, 암초에 걸려서 걷어 올릴 수 없으면, 그냥 바닷속에다 버리고 맙니다. 그 버린 그물들이 바닷속에 널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 버려진 그물에는 많은 큰 물고기들이 걸셔서 죽어가는 고기도 있었고, 이미 죽어 버린 고기도 있었고, 죽은지 오래 되어서 뼈만 남은 것 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뼈가 사람만한 것이 있었읍니다. 해설자는 그것이 아마도 상어나 고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바닷속에 버려진 그물에 고기들이 걸려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수중 탐사를 하는 사람이 아직 살아 있는 물고기를 그 그물에서 꺼내 주었읍니다. 그러자 그 물고기는 죽음의 그물에서 해방된 것이 너무 기뻐서 즐겁게 헤염을 치고 살아져 버렸습니다. 그 물고기는 죽었다가 살아 났습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물에 걸린 고기들은 다 죽고 맙니다. 아무리 큰 물고기라도, 아무 리 힘이 센 물고기라도 그물에 걸린 물고기들은 다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물에 걸린 물기들은 얼마나 불행한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물에 걸렸다가 벗어난 사건을 노래하 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는데, 앞에는 홍 해가 놓여 있습니다. 뒤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잡으려는 애굽 군대가 쫓 아오고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물에 걸린 물고기와 같이 되 었습니다. 오늘 시편 기자 다윗 왕은 만약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그물에서 구원받지 못했다면 그들은 "저희의 노가 우리를 대하여 맹렬하여 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왕은 자기 나라에 서 종생활을 하며, 자기들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달아나자, 화가 나서 그들을 잡으려고 군대를 이끌고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종들이 도망 가다가 잡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산채로 삼키는 비극이 있 을 뿐입니다. 그물에 걸린자는 화가난 뱀이 개구리를 산채로 삼키듯이 그 그물을 놓은 자에게 삼키게 됩니다. 그물에 거리면 이런 비극이 찾아 옵니다. 다윗 왕은 또한 "그 때에 물이 우리를 엄몰하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잠 갔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사람들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홍해로 뛰어 들어다면 홍해물이 그들을 다 삼키고 말았을 것입니다. 다윗 왕은 그 때 그들이 격을 뻔 했던 불행을 "우리가 저희 이에서 씹힐 뻔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물에 걸려 잡히기만 하면 저들의 이 에서 씹히는 비극을 당하게 됩니다. 이런 비극을 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구해 주셨습니다. 홍해 를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속을 육지와 같이 건너게 해 주셨읍니다. 그리고 그들을 잡으려고 따라오는 애굽의 모든 군대는 다 홍해에 수 장을 시켜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닷속에 버려진 그물에 거린 고기와 같이 죽 어갈 뻔 했는데, 수중 탐사를 하던 사람이 그 죽어가는 고기를 그 그물에 꺼내 주어서 새생명을 얻은 것과 같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이것 보다 더 기쁜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 왕은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앞길에는 수 많은 그물들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 영혼 을 잡으려고 사방에 그물들이 놓여 있습니다.
이 그물에 걸리면 우리는 다 불행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바닷속에 버려진 그물에 거린 물고기와 같이 불행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배운자 나, 못배운 자나, 가진 자나 없는 자나, 능력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이 그물에 걸리기만 하면 매우 불행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같이 재미 있게 놀다가 그물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작은 물고기들은 다 그 그물을 빠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다들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고, 계속해서 놀러 갔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몸이 너무 커서 그물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때 그물에서 빠져 나와서 달아나는 다른 물 고기들을 볼 때, 그물에 걸린 물고기는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얼마나 불행하겠습니까 얼마나 절망적이겠습니까 중학교 다닐 때, 친구들하고 같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 옵니다. 오늘은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구경을 가는 날입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 은 다 가방을 집에 갔다가 놓고는 영화를 보러 갑니다.
그런데 저는 부모 님에게 잡혀서 들로 일을 하러 갑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영화를 보러 가는데, 나는 잡혀서 들로 일을 하러 갈 때, 그 심정이 어떤지 아십니까 인생의 그물에 걸린자들에게는 다 이런 비극을 당하게 됩니다. 그물에 걸리기만 하면 고래도 꼼짝 못하듯이, 이 마귀 사단이 놓은 그물에 걸리기 만 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그와 같이 불행해 집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그물에 걸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물에 걸렸 다면 하나님이 은혜로 다 그 물에서 벗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이 시간 우리가 걸리지 말아야 할 그물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며 은 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죄악의 그물에서 벗어나자.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그물은 죄악의 그물입니다. 바닷속의 그물에 거린 물고기에게 죽음만이 있는 것과 같이 죄악의 그물에 걸리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롬6:23) 말씀을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죄의 그물에 걸리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이 죄악의 그물에 걸린 자들은 지옥불 속에 던져 넣는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마25:41) 말씀을 보면 저주를 받아 지옥에 들어가야 할 자들을 향하여 재림의 심판주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죄악 의 그물에 걸린자들은 마귀 사단을위하여 예비해 든 영영한 불못속에 들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죄악의 그물에 걸리면 말할 수 없는 불행을 당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갈 때, 고라가 당을 지어 하나님이 세운 지도 자 모세를 대적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죄를 범한 자들을 땅의 입을 벌려 다 산채로 삼켰습니다. 그리고 그 벌린 땅의 입을 다시 합하게 했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그들을 다 산채로 삼켜 버렸습니다.(민16:31-33) 죄악의 그물에 걸리면 입을 벌린 땅속에 빠져 땅속에 삼켜지는 것과 같이 불행해 집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한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를 조사했읍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 땅에 온역을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 7만명을 죽었 습니다.(대상21:"14)
죄악의 그물은 이렇게 무섭습니다. 죄악의 그물에 걸리면 천사도 악마 가 되고 맙니다. 이탈리아의 유명화 화가 레오나르드 다 빈치(Leonardo da Vinci)가 이탈 리아에 있는 밀란(Milan)의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뚜 러지게 쳐다보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당시 수도원 교회 벽에다 그 유명한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을 그리고 있었으며, 이미 밑 그림 은 다 그려 놓았다. 이제는 그림에 나오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델을 찾 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길에서 얼굴이 매우 인자한 튼튼한 젊은이를 만났다. 다빈치는 그가 예수님의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사랑의 사도 요한의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이 젊은이는 사랑의 사도 요한의 모델 이 되어달라는 다빈치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 후 모든 제자들의 모델을 찾아서 제자들을 다 그렸다. 그러나 가룟 유다의 모델만큼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다빈치는 가룟 유다의 모델에 어울리는 사람을 만났다. 다빈치는 그를 가룟유다의 모델로 쓰겠다고 하지 않고, 그냥 예수님의 제자들 중 한 사람의 모델로 쓰겠다고 모델이 되어 달라고 했다. 그 사람은 다빈치의 제의를 받아 들였다. 다빈치는 그를 모델로 하여 최후의 만찬의 그림을 드디어 완성했다.
그런데 가룟 유다의 모델이 되었던 젊은이가 그 그림을 들여다 보더니, 갑자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지난번에도 나를 그리지 않았 느냐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느냐 "고 물었다.
다빈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을 했다. 그 사람은 "내가 밀란에 처음에 왔을 때 당신이 나를 모델로 이 사람을 그리지 않았느냐 "고 하면서 사랑의 사도 요한을 가르켰다. 그러면서 "그래도 나를 모르겠느냐 "고 물었다. 다빈치가 자세히 보니 그가 바로 사랑의 사도 요한의 모델이였다. 그래서 "왜 이렇게 얼굴이 변했느냐 "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내가 그 동안 죄악 가운데 살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죄가 사랑의사도를 배신자 가룟 유다로 바꿔 놓았다. 죄악은 이렇게 무섭다. 죄악에 사롭잡히면 천사도 악마가 된다.
그러므로 죄악의 그물에 다시는 걸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죄악의 그물에 걸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죄악의 그물에 걸린 상태에서 태어 났습니다. 그리고 사는 동안 수 없이 죄악의 그물에 거리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를 이 죄악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입니다. 그물에 걸린 고기를 수중 다이버가 벗겨 주듯이, 죄악의 그물에 걸린 우리 영혼을 구원해 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롬5:9) 말씀을 보면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 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의 피가 우리가 죄를 져서 받아야 할 무서운 사망의 진노하심에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우리를 죄악의 그물에서 건져 주시니다. (엡1:7) 말씀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 암아 우리가 죄 사함으르 받습니다. 즉 우리가 죄악의 그물에서 해방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피는 우리를 얽어매는 죄악의 그물을 끌러내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닿으면 우리를 얽어 매 고 있는 모든 죄악의 그물이 다 녹아 버립니다. 삼손을 묶고 있던 새끼줄 이 하나님의 성령님이 임할 때 불탄 새끼줄 같이 끊어지듯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 보혈의 피가 닿으면 우리의 모든 죄악의 그물은 다 벗겨져 버리 고 맙니다.
그런자들만이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이, "우리 혼이 새가 사냥이 군의 올무에서 벗어남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의 일화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마귀가 마 틴 루터가 지은 모든 죄를 다 적어 가지고 루터에게 찾아 왔다. 그리고는 루터가 지운 죄악들을 루터 앞에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단이 다 읽었을 때 루터는 사단에게 "더 잘 생각해봐라. 빠진 것이 있다."고 했다. 사단은 곰곰히 생각하더니, 빠진 것들을 더 적어넣었다. 그리고는 그 죄악들도 다 읽었다. 이렇게 사단이 루터가 지은 죄악들을 다 읽고 나 자, 루터는 사단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좋다. 이제 그 종이에다 빨간 잉크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셨다"고 쓰라. 어린양의 피로 죄 씻음 받은 자들에게는 사단이 찾아와서 고발할 죄악이 없다. 죄악의 그물에 걸려서 바다속의 그물에 걸린 고기가 죽어가듯이 죽 어가고 있는 불행한 자들이 있습니까 예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 서 필흘려 돌아가심을 믿으시고,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피가 여러분을 모든 죄악의 그물에 서 벗어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2. 사단의 그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단은 사람들을 파괴하는 자입니다. 사단은 본래 살인자입니다. (요8:44) 말씀을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다"고 하셨읍니다. 사단은 이렇게 살인자의 후손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 갑니다. 그것이 사단의 일입니다. 미국의 여행객들이 성지순례를 떠났다. 안내원은 비행기를 타고 팔레 스틴으로 가는 중에 서양 사람들의 풍습과, 이제 그들이 가게될 팔레스틴 사람들의 풍습들 중에 차이가 나는 것들을 이야기 해 주었다. 그 중에 하 나는 "서양의 목자들은 양을 먼저 앞서 보내고 목자는 양떼들 뒤를 어슬렁 거리며, 따라 가는데, 동양의 목자들은 반드시 양떼들 앞서 가면서 그 양떼 들을 인도한다. 그러면 양떼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기 때문에, 그 목자를 따라 간다"는 것이다. 여행객들이 팔레스틴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는 일정에 따라 목장지대 를 구경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 사람이 양떼들 뒤에서 양떼들 을 몰고 있다. 당황한 안내원은 놀라서 그 사람에게 가서 "나는 지금까지 동양에서는 목자들이 양떼들 앞에서, 양떼들을 인도하는 것으로 알았고, 또 목자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래서 여행객들에게도 그렇게 설 명을 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된 것이냐 "고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당신 말이 맞다. 동양에서는 목자가 양을 앞에서 인도한다.그럼 왜 당신은 뒤에서 양을 몰고 있느냐 "고 안내원이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나는 목자가 아니라, 도살자다"라고 대답을 했다. 목자는 우리를 푸른초장으로 앞에서 인도하지만, 사단은 우리를 뒤에서 죽음의 계곡으로 몰아 간다. 사단은 우리를 파멸로 인도합니다. 깊은 바닷속에 버려진 그물에 고기가 걸리면 죽을 수 밖에 없듯이, 사단의 그물 은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그리고 이 사단은 잔인합니다. 사단은 보통 잔인하지가 않습니다. (막9:18) 말씀을 보면 마귀에게 사로잡힌 아들을 둔 아버지가 아들이 마귀 에게 고통 당하는 것을 이렇게 예수님께 보고하고 있습니다. "귀신이 어 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 여 갑니다.불속에도 들어가게하고, 물속에도 뛰어들게 합니다." 또한 (막5:5) 말씀을 보면 거라사 지방에 귀신 들린 자 2명이 있었읍니다. 그들은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습니다. 사단은 이렇게 잔인합니다. 사단에게는 자비라는 말이 없습니다. 사 단은 무자비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단을 사자에게 비유를 합니다.
아프리카에 가면 대표적인 3 종류의 맹수가 있다.
첫째는 사자이고, 둘째는 표범이고, 셋째는 하이에나 이다. 하이에나는 짐승을 잡아서는 조 금만 먹고 그 먹이를 남겨두고 그곳을 즉시 떠난다. 그래서 다른 짐승들 이 그 고기를 먹는다. 표범은 고기는 주로 먹지 않고, 그 먹이의 피를 즐 겨 먹는다.
그런데 사자는 잡은 짐승을 완전히 다 먹어치운다. 사자의 밥이 된 먹이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벧전5:8)에서 사단을 이 사자에 비유했다. "근 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사단의 밥이 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뜻이다. 영 혼과 몸과 재물 모든 것을 사단은 다 빼앗아 간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사단이 들어 갔습니다. 이 사단은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습니다.(요13:2) 그리고 예수님과 최후의 만찬을 먹을 때, 예수님이 떼어 준 떡을 먹고나자, 다시 사단이 그의 마음속에 들어 갔읍니다.(요13:27) 그리고는 나아가서 예수님을 은 30개에 팔았습니다. 이 로 인하여 가룟 유다는 파멸의 길을 갔습니다. 예수님은 "차라리 그가 나지 않았으면 더 좋을 뻔 하였다"(막14:21)고 하셨습니다. 이번에도 기도원에 갔는데, 젊은 처녀가 귀신에 사로잡혔서 왔습니다. 얼굴이 멀정합니다. 좋은 집의 딸입니다. 좋은 대학에 다닙니다. 그러나 귀신에 사로잡히자, 그녀는완전히 멸망을 했습니다. 자기만 불행해 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까지도 완전히 불행해 졌습니다.1
그러므로 절대로 이 마귀, 사단, 귀신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들에게 사로잡히면 너무나 비참해 집니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들과 같이 불행해 집니다.
왜냐하면 이 마귀 사단 귀신의 그물에 걸리면, 이들이 절대로 놓지 않으 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번 걸리면 빠져 나올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마귀 사단 귀신들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천로역정을 보면 마귀 사단의 왕 아볼루온은 천국을 향 하여 가는 기독자에게 와서는 너는 나의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내가 다시 너를 잡아 가야 가겠다고 하면서 그를 다시 잡아 가려고 했습니다. 마귀 사단은 이렇게 집요하게 우리를 물고 늘어 집니다. 마치 물고기가 그물에 걸린 것과 같습니다. 이 마귀 사단의 그물에서 벗어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힘 입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마귀 사단을 물리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창3:15)에서는 장차 예수님이 이 마귀 사단을 물리치실 것을 말씀하셨 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 이 마귀 사단 귀신의 머리를 상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 려 돌아가심으로 마귀 사단은 완전히 예수 그리스도 앞에 굴복하고 말았읍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는 마귀 사단들이 두려워 떱니다. 예수님은 이 권세를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이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 사 단들이 믿는 자들을 사망의 그물에 잡아 둘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70명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권세를 주고 전도하러 보냈읍니다. 그러자 이들이 돌아와서는 예수님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더이다"(눅10:17)라고 보고를 했습니다. 마귀 사단 더러운 귀신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 고 늘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길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늘 모시고 사셔서 마귀 사단 더 러운 귀신의 그물에서 해방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나쁜 습관들에게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또한 걸려들지 말아야 할 것은 나쁜 습관입니다. 나쁜 습관에 걸려들면 불행해집니다. 우리가 나쁜 습관에 걸려들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 나쁜 습관에서 벗어 나기가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노름하는 나쁜 습관에 걸려든 사람은 그 노름하는 것을 끈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하도 노름하는 것을 끈기가 어려워서 손 가락을 잘랐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얼마 안가서 이번에는 손가락 없는 손 목으로 치고, 손목을 자르니, 팔꿈치에 끼어서 쳤다고 합니다. 이렇게 나쁜 습관에 한번 걸려들면 벗어나기가 힘이 듭니다. 보통 힘 이 든 것이 아닙니다. 제 친구 목사 중 하나는 노름하는 나쁜 습관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가 목사가 주일날도 모르고 노름을 합니다. 그래서 견디다 견디 다 못했던 아내와 이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쫓겨 납습니다. 목사도 노름하는 나쁜 습관에 걸려들자, 이렇게 벗어나기가 힘이 들었읍니다. 그 친구는 가정과 교회, 일자리를 다 잃고서야 그 나쁜 습관에서 가 까스러 벗어 날 수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벗어나면 무슨 소 용이 있습니까 나쁜 습관에 한번 걸려들면 이렇게 벗어나기가 힘이 듭니다. 습관은 가시덤불과 같다. 가시덤불이 처음에 나왔을 때에는 연하고 약하다.
그러므로 손가락 힘만 가지고도 곡식을 감고 올라가는 가시덤불 을 쉽게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서 그 가시덤불이 더욱더 자라고 굳어지면 그 가시덤불로 곡식이 많은 고통을 당한다. 심지어는 커가란 과일 나무도 고통을 당한다. 그리고 다 자란 가시덤불을 제거하는데는 많은 힘이 둔다. 빨리 제거 했으면 쉽게 제거할 수 있었을 터인데,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힘이 들 고, 고통을 당하고, 고생을 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그 가시덤불을 제 거하다가 보면 곡식의 가지가 찢어지기도 하고, 꽃이 떨어지기도하고, 열매 가 떨어지기도 한다. 어떨 때에는 그 곡식이 뿌리채 뽑혀서 죽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나쁜 습관은 이 가시덤불과 같다. 우리가 빨리 그것을 제거하면 쉽게 제거할 수가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 수록 그것은 많은 고통을 우리 에게 주며, 제거하는데도 많은 고통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어떨 때에는 나의 일부가 상실되는 고통을 당하며, 더 심할 때에는 내 생명 자체를 잃을 때도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5:29-30)에서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 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 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 버리라. 네 백체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오른 손은 왼손 보다 더 능력이 있고, 더 중요한 손입니다. 그래도 그것으로 죄를 짓는 것 보다는 그것을 잘라 내 버리고 죄를 짓지 않는 것이 더 났다고 했습니다. 차라리 다리 하나 없는 것이, 가정을 잃고, 직장을 잃고, 나의 영혼을 잃어 버리는 것 보다 더 났습니다.
그러므로 나쁜 습관들의 올무에 걸려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쁜 습관의 올무에 걸려 들었으면 빨리 버려야 합니다. 그럼 나쁜 습관은 무엇입니까 나와 가정을 불행하게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하는 것이 가정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나쁜 버릇입니다. 아무리 내가 좋고, 세상 사람들이 다 건전하다고 해도, 그것이 가정 을 불행하게 하면 그것은 나쁜 습관입니다.
그러므로 버려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그의 부인 사라가 그의 몸종 하갈을 자 기 남편 아브라함에게 아내로 주어서 아들을 낳게 했습니다. 이렇게 아브 라함이 하갈을 통하여 낳은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그런데 그로 부터 14년 후에 본 부인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을 하였습니다.(창21:9) 이로 인하여 사라의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이삭도 괴로웠습니다. 그러자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고 했읍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도 자기의 자식이기 때문에 내어 쫓기를 근심 하였습니다.(창21:11) 그래서 내어 쫓기를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 에게 근심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내어 쫓으라고 했습니다. 자기에게는 귀해도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내어 쫓으라고 했습니다. 이 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자식입니다.
그러므로 내어 쫓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정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면 내어 쫓으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습관들 중에 나에게는 건전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정을 불행하게 하고, 파괴하는 것이라면 빨리 버려야 합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이 나쁜 습관들을 버릴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 렇게 벗어나기 어려운 나쁜 습관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한국에 선교 초기에 있었던 예화 중에 미국에 소개된 것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있는 나이 많이 잡수신 할머니가 예수님을 영접을 했읍니다. 그래서 선교사와 성경부인이 그 집에 심방을 가서는 복음을 많이 전했 습니다. 당시에는 그들이 그 집에 머물면서 몇일 동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집을 떠났습니다. 그리고는 몇달 후에 그 선교사는 그 집을 다시 심방을 했습니다. 그러 자 그 할머니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교사와 성경부인이 그 집을 떠난 후에 그 할머니는 그의 오두막 집에 앉아서 저녁 때, 오랜 동안 피워 왔던 담배대에 담배를 넣고, 담배를 빠꼼 빠꼼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담배을 빠꼼 빠꼼 피우면서 선교사님과 성경부인이 전해 준 성경말씀을 묵상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를 사랑 하는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을 했습니다.
선교사님은 떠나가면서 "자기는 떠나가지만 예수님이 늘 그 할머니와 함 께 할 것이다"라고 말씀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여기 자기 와 지금 함께 앉아 계실 터인데, 내 혼자가 이렇게 빠꼼 빠꼼 담배를 피우는 것이 예수님께 예의가 아닐 것 같았습니다. 우리내 담배 인심이 그렇 지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담배대를 예수님께 건데면서, "예수님 한 대 피우세요"하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몇일 저녁을 했는데, 갑자기 그 할머니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 었습니다. 예수님은 순결하고 거룩하신데, 자기가 건네 주는 담배대는 너 무 낡고 더러워서 예수님께 권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혼자서 담대를 피웠습니다.
그런데 몇일 동안 그렇게 하는데, 이런 생각이 그 할머니 마음속에 들었습니다. "만약 이 담배대가 너무 낡고 더러워서 예수님께 드릴수가 없다면, 그 의 친구인 나에게도 분명히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 할머니는 "이 담배대는 예수님께도 어울리지 않고, 나에게도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소리지르면 담배대를 불속에 태워 버렸습니다. 이렇게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께 어울리지 않는 것은 버려야 합니다. 언제나 우리 옆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이 예수님께 권할 수 없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그 좋은 프로가 거의 다 끝나 갈 무렵 정말로 보기 싫은 장면이 나왔습니다. 어부들이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다가, 그물이 해초에 걸리거 나, 암초에 걸려서 걷어 올릴 수 없으면, 그냥 바닷속에다 버리고 맙니다. 그 버린 그물들이 바닷속에 널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 버려진 그물에는 많은 큰 물고기들이 걸셔서 죽어가는 고기도 있었고, 이미 죽어 버린 고기도 있었고, 죽은지 오래 되어서 뼈만 남은 것 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뼈가 사람만한 것이 있었읍니다. 해설자는 그것이 아마도 상어나 고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바닷속에 버려진 그물에 고기들이 걸려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수중 탐사를 하는 사람이 아직 살아 있는 물고기를 그 그물에서 꺼내 주었읍니다. 그러자 그 물고기는 죽음의 그물에서 해방된 것이 너무 기뻐서 즐겁게 헤염을 치고 살아져 버렸습니다. 그 물고기는 죽었다가 살아 났습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물에 걸린 고기들은 다 죽고 맙니다. 아무리 큰 물고기라도, 아무 리 힘이 센 물고기라도 그물에 걸린 물고기들은 다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물에 걸린 물기들은 얼마나 불행한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물에 걸렸다가 벗어난 사건을 노래하 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는데, 앞에는 홍 해가 놓여 있습니다. 뒤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잡으려는 애굽 군대가 쫓 아오고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물에 걸린 물고기와 같이 되 었습니다. 오늘 시편 기자 다윗 왕은 만약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그물에서 구원받지 못했다면 그들은 "저희의 노가 우리를 대하여 맹렬하여 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왕은 자기 나라에 서 종생활을 하며, 자기들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달아나자, 화가 나서 그들을 잡으려고 군대를 이끌고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종들이 도망 가다가 잡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산채로 삼키는 비극이 있 을 뿐입니다. 그물에 걸린자는 화가난 뱀이 개구리를 산채로 삼키듯이 그 그물을 놓은 자에게 삼키게 됩니다. 그물에 거리면 이런 비극이 찾아 옵니다. 다윗 왕은 또한 "그 때에 물이 우리를 엄몰하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잠 갔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사람들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홍해로 뛰어 들어다면 홍해물이 그들을 다 삼키고 말았을 것입니다. 다윗 왕은 그 때 그들이 격을 뻔 했던 불행을 "우리가 저희 이에서 씹힐 뻔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물에 걸려 잡히기만 하면 저들의 이 에서 씹히는 비극을 당하게 됩니다. 이런 비극을 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구해 주셨습니다. 홍해 를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속을 육지와 같이 건너게 해 주셨읍니다. 그리고 그들을 잡으려고 따라오는 애굽의 모든 군대는 다 홍해에 수 장을 시켜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닷속에 버려진 그물에 거린 고기와 같이 죽 어갈 뻔 했는데, 수중 탐사를 하던 사람이 그 죽어가는 고기를 그 그물에 꺼내 주어서 새생명을 얻은 것과 같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이것 보다 더 기쁜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 왕은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앞길에는 수 많은 그물들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 영혼 을 잡으려고 사방에 그물들이 놓여 있습니다.
이 그물에 걸리면 우리는 다 불행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바닷속에 버려진 그물에 거린 물고기와 같이 불행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배운자 나, 못배운 자나, 가진 자나 없는 자나, 능력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이 그물에 걸리기만 하면 매우 불행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같이 재미 있게 놀다가 그물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작은 물고기들은 다 그 그물을 빠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다들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고, 계속해서 놀러 갔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몸이 너무 커서 그물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때 그물에서 빠져 나와서 달아나는 다른 물 고기들을 볼 때, 그물에 걸린 물고기는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얼마나 불행하겠습니까 얼마나 절망적이겠습니까 중학교 다닐 때, 친구들하고 같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 옵니다. 오늘은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구경을 가는 날입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 은 다 가방을 집에 갔다가 놓고는 영화를 보러 갑니다.
그런데 저는 부모 님에게 잡혀서 들로 일을 하러 갑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영화를 보러 가는데, 나는 잡혀서 들로 일을 하러 갈 때, 그 심정이 어떤지 아십니까 인생의 그물에 걸린자들에게는 다 이런 비극을 당하게 됩니다. 그물에 걸리기만 하면 고래도 꼼짝 못하듯이, 이 마귀 사단이 놓은 그물에 걸리기 만 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그와 같이 불행해 집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그물에 걸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물에 걸렸 다면 하나님이 은혜로 다 그 물에서 벗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이 시간 우리가 걸리지 말아야 할 그물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며 은 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죄악의 그물에서 벗어나자.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그물은 죄악의 그물입니다. 바닷속의 그물에 거린 물고기에게 죽음만이 있는 것과 같이 죄악의 그물에 걸리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롬6:23) 말씀을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죄의 그물에 걸리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이 죄악의 그물에 걸린 자들은 지옥불 속에 던져 넣는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마25:41) 말씀을 보면 저주를 받아 지옥에 들어가야 할 자들을 향하여 재림의 심판주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죄악 의 그물에 걸린자들은 마귀 사단을위하여 예비해 든 영영한 불못속에 들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죄악의 그물에 걸리면 말할 수 없는 불행을 당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갈 때, 고라가 당을 지어 하나님이 세운 지도 자 모세를 대적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죄를 범한 자들을 땅의 입을 벌려 다 산채로 삼켰습니다. 그리고 그 벌린 땅의 입을 다시 합하게 했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그들을 다 산채로 삼켜 버렸습니다.(민16:31-33) 죄악의 그물에 걸리면 입을 벌린 땅속에 빠져 땅속에 삼켜지는 것과 같이 불행해 집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한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를 조사했읍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 땅에 온역을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 7만명을 죽었 습니다.(대상21:"14)
죄악의 그물은 이렇게 무섭습니다. 죄악의 그물에 걸리면 천사도 악마 가 되고 맙니다. 이탈리아의 유명화 화가 레오나르드 다 빈치(Leonardo da Vinci)가 이탈 리아에 있는 밀란(Milan)의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뚜 러지게 쳐다보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당시 수도원 교회 벽에다 그 유명한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을 그리고 있었으며, 이미 밑 그림 은 다 그려 놓았다. 이제는 그림에 나오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델을 찾 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길에서 얼굴이 매우 인자한 튼튼한 젊은이를 만났다. 다빈치는 그가 예수님의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사랑의 사도 요한의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이 젊은이는 사랑의 사도 요한의 모델 이 되어달라는 다빈치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 후 모든 제자들의 모델을 찾아서 제자들을 다 그렸다. 그러나 가룟 유다의 모델만큼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다빈치는 가룟 유다의 모델에 어울리는 사람을 만났다. 다빈치는 그를 가룟유다의 모델로 쓰겠다고 하지 않고, 그냥 예수님의 제자들 중 한 사람의 모델로 쓰겠다고 모델이 되어 달라고 했다. 그 사람은 다빈치의 제의를 받아 들였다. 다빈치는 그를 모델로 하여 최후의 만찬의 그림을 드디어 완성했다.
그런데 가룟 유다의 모델이 되었던 젊은이가 그 그림을 들여다 보더니, 갑자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지난번에도 나를 그리지 않았 느냐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느냐 "고 물었다.
다빈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을 했다. 그 사람은 "내가 밀란에 처음에 왔을 때 당신이 나를 모델로 이 사람을 그리지 않았느냐 "고 하면서 사랑의 사도 요한을 가르켰다. 그러면서 "그래도 나를 모르겠느냐 "고 물었다. 다빈치가 자세히 보니 그가 바로 사랑의 사도 요한의 모델이였다. 그래서 "왜 이렇게 얼굴이 변했느냐 "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내가 그 동안 죄악 가운데 살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죄가 사랑의사도를 배신자 가룟 유다로 바꿔 놓았다. 죄악은 이렇게 무섭다. 죄악에 사롭잡히면 천사도 악마가 된다.
그러므로 죄악의 그물에 다시는 걸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죄악의 그물에 걸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죄악의 그물에 걸린 상태에서 태어 났습니다. 그리고 사는 동안 수 없이 죄악의 그물에 거리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를 이 죄악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입니다. 그물에 걸린 고기를 수중 다이버가 벗겨 주듯이, 죄악의 그물에 걸린 우리 영혼을 구원해 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롬5:9) 말씀을 보면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 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의 피가 우리가 죄를 져서 받아야 할 무서운 사망의 진노하심에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우리를 죄악의 그물에서 건져 주시니다. (엡1:7) 말씀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 암아 우리가 죄 사함으르 받습니다. 즉 우리가 죄악의 그물에서 해방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피는 우리를 얽어매는 죄악의 그물을 끌러내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닿으면 우리를 얽어 매 고 있는 모든 죄악의 그물이 다 녹아 버립니다. 삼손을 묶고 있던 새끼줄 이 하나님의 성령님이 임할 때 불탄 새끼줄 같이 끊어지듯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 보혈의 피가 닿으면 우리의 모든 죄악의 그물은 다 벗겨져 버리 고 맙니다.
그런자들만이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이, "우리 혼이 새가 사냥이 군의 올무에서 벗어남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의 일화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마귀가 마 틴 루터가 지은 모든 죄를 다 적어 가지고 루터에게 찾아 왔다. 그리고는 루터가 지운 죄악들을 루터 앞에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단이 다 읽었을 때 루터는 사단에게 "더 잘 생각해봐라. 빠진 것이 있다."고 했다. 사단은 곰곰히 생각하더니, 빠진 것들을 더 적어넣었다. 그리고는 그 죄악들도 다 읽었다. 이렇게 사단이 루터가 지은 죄악들을 다 읽고 나 자, 루터는 사단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좋다. 이제 그 종이에다 빨간 잉크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셨다"고 쓰라. 어린양의 피로 죄 씻음 받은 자들에게는 사단이 찾아와서 고발할 죄악이 없다. 죄악의 그물에 걸려서 바다속의 그물에 걸린 고기가 죽어가듯이 죽 어가고 있는 불행한 자들이 있습니까 예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 서 필흘려 돌아가심을 믿으시고,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피가 여러분을 모든 죄악의 그물에 서 벗어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2. 사단의 그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단은 사람들을 파괴하는 자입니다. 사단은 본래 살인자입니다. (요8:44) 말씀을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다"고 하셨읍니다. 사단은 이렇게 살인자의 후손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 갑니다. 그것이 사단의 일입니다. 미국의 여행객들이 성지순례를 떠났다. 안내원은 비행기를 타고 팔레 스틴으로 가는 중에 서양 사람들의 풍습과, 이제 그들이 가게될 팔레스틴 사람들의 풍습들 중에 차이가 나는 것들을 이야기 해 주었다. 그 중에 하 나는 "서양의 목자들은 양을 먼저 앞서 보내고 목자는 양떼들 뒤를 어슬렁 거리며, 따라 가는데, 동양의 목자들은 반드시 양떼들 앞서 가면서 그 양떼 들을 인도한다. 그러면 양떼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기 때문에, 그 목자를 따라 간다"는 것이다. 여행객들이 팔레스틴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는 일정에 따라 목장지대 를 구경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 사람이 양떼들 뒤에서 양떼들 을 몰고 있다. 당황한 안내원은 놀라서 그 사람에게 가서 "나는 지금까지 동양에서는 목자들이 양떼들 앞에서, 양떼들을 인도하는 것으로 알았고, 또 목자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래서 여행객들에게도 그렇게 설 명을 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된 것이냐 "고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당신 말이 맞다. 동양에서는 목자가 양을 앞에서 인도한다.그럼 왜 당신은 뒤에서 양을 몰고 있느냐 "고 안내원이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나는 목자가 아니라, 도살자다"라고 대답을 했다. 목자는 우리를 푸른초장으로 앞에서 인도하지만, 사단은 우리를 뒤에서 죽음의 계곡으로 몰아 간다. 사단은 우리를 파멸로 인도합니다. 깊은 바닷속에 버려진 그물에 고기가 걸리면 죽을 수 밖에 없듯이, 사단의 그물 은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그리고 이 사단은 잔인합니다. 사단은 보통 잔인하지가 않습니다. (막9:18) 말씀을 보면 마귀에게 사로잡힌 아들을 둔 아버지가 아들이 마귀 에게 고통 당하는 것을 이렇게 예수님께 보고하고 있습니다. "귀신이 어 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 여 갑니다.불속에도 들어가게하고, 물속에도 뛰어들게 합니다." 또한 (막5:5) 말씀을 보면 거라사 지방에 귀신 들린 자 2명이 있었읍니다. 그들은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습니다. 사단은 이렇게 잔인합니다. 사단에게는 자비라는 말이 없습니다. 사 단은 무자비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단을 사자에게 비유를 합니다.
아프리카에 가면 대표적인 3 종류의 맹수가 있다.
첫째는 사자이고, 둘째는 표범이고, 셋째는 하이에나 이다. 하이에나는 짐승을 잡아서는 조 금만 먹고 그 먹이를 남겨두고 그곳을 즉시 떠난다. 그래서 다른 짐승들 이 그 고기를 먹는다. 표범은 고기는 주로 먹지 않고, 그 먹이의 피를 즐 겨 먹는다.
그런데 사자는 잡은 짐승을 완전히 다 먹어치운다. 사자의 밥이 된 먹이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벧전5:8)에서 사단을 이 사자에 비유했다. "근 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사단의 밥이 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뜻이다. 영 혼과 몸과 재물 모든 것을 사단은 다 빼앗아 간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사단이 들어 갔습니다. 이 사단은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습니다.(요13:2) 그리고 예수님과 최후의 만찬을 먹을 때, 예수님이 떼어 준 떡을 먹고나자, 다시 사단이 그의 마음속에 들어 갔읍니다.(요13:27) 그리고는 나아가서 예수님을 은 30개에 팔았습니다. 이 로 인하여 가룟 유다는 파멸의 길을 갔습니다. 예수님은 "차라리 그가 나지 않았으면 더 좋을 뻔 하였다"(막14:21)고 하셨습니다. 이번에도 기도원에 갔는데, 젊은 처녀가 귀신에 사로잡혔서 왔습니다. 얼굴이 멀정합니다. 좋은 집의 딸입니다. 좋은 대학에 다닙니다. 그러나 귀신에 사로잡히자, 그녀는완전히 멸망을 했습니다. 자기만 불행해 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까지도 완전히 불행해 졌습니다.1
그러므로 절대로 이 마귀, 사단, 귀신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들에게 사로잡히면 너무나 비참해 집니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들과 같이 불행해 집니다.
왜냐하면 이 마귀 사단 귀신의 그물에 걸리면, 이들이 절대로 놓지 않으 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번 걸리면 빠져 나올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마귀 사단 귀신들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천로역정을 보면 마귀 사단의 왕 아볼루온은 천국을 향 하여 가는 기독자에게 와서는 너는 나의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내가 다시 너를 잡아 가야 가겠다고 하면서 그를 다시 잡아 가려고 했습니다. 마귀 사단은 이렇게 집요하게 우리를 물고 늘어 집니다. 마치 물고기가 그물에 걸린 것과 같습니다. 이 마귀 사단의 그물에서 벗어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힘 입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마귀 사단을 물리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창3:15)에서는 장차 예수님이 이 마귀 사단을 물리치실 것을 말씀하셨 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 이 마귀 사단 귀신의 머리를 상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 려 돌아가심으로 마귀 사단은 완전히 예수 그리스도 앞에 굴복하고 말았읍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는 마귀 사단들이 두려워 떱니다. 예수님은 이 권세를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이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 사 단들이 믿는 자들을 사망의 그물에 잡아 둘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70명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권세를 주고 전도하러 보냈읍니다. 그러자 이들이 돌아와서는 예수님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더이다"(눅10:17)라고 보고를 했습니다. 마귀 사단 더러운 귀신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 고 늘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길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늘 모시고 사셔서 마귀 사단 더 러운 귀신의 그물에서 해방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나쁜 습관들에게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또한 걸려들지 말아야 할 것은 나쁜 습관입니다. 나쁜 습관에 걸려들면 불행해집니다. 우리가 나쁜 습관에 걸려들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 나쁜 습관에서 벗어 나기가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노름하는 나쁜 습관에 걸려든 사람은 그 노름하는 것을 끈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하도 노름하는 것을 끈기가 어려워서 손 가락을 잘랐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얼마 안가서 이번에는 손가락 없는 손 목으로 치고, 손목을 자르니, 팔꿈치에 끼어서 쳤다고 합니다. 이렇게 나쁜 습관에 한번 걸려들면 벗어나기가 힘이 듭니다. 보통 힘 이 든 것이 아닙니다. 제 친구 목사 중 하나는 노름하는 나쁜 습관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가 목사가 주일날도 모르고 노름을 합니다. 그래서 견디다 견디 다 못했던 아내와 이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쫓겨 납습니다. 목사도 노름하는 나쁜 습관에 걸려들자, 이렇게 벗어나기가 힘이 들었읍니다. 그 친구는 가정과 교회, 일자리를 다 잃고서야 그 나쁜 습관에서 가 까스러 벗어 날 수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벗어나면 무슨 소 용이 있습니까 나쁜 습관에 한번 걸려들면 이렇게 벗어나기가 힘이 듭니다. 습관은 가시덤불과 같다. 가시덤불이 처음에 나왔을 때에는 연하고 약하다.
그러므로 손가락 힘만 가지고도 곡식을 감고 올라가는 가시덤불 을 쉽게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서 그 가시덤불이 더욱더 자라고 굳어지면 그 가시덤불로 곡식이 많은 고통을 당한다. 심지어는 커가란 과일 나무도 고통을 당한다. 그리고 다 자란 가시덤불을 제거하는데는 많은 힘이 둔다. 빨리 제거 했으면 쉽게 제거할 수 있었을 터인데,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힘이 들 고, 고통을 당하고, 고생을 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그 가시덤불을 제 거하다가 보면 곡식의 가지가 찢어지기도 하고, 꽃이 떨어지기도하고, 열매 가 떨어지기도 한다. 어떨 때에는 그 곡식이 뿌리채 뽑혀서 죽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나쁜 습관은 이 가시덤불과 같다. 우리가 빨리 그것을 제거하면 쉽게 제거할 수가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 수록 그것은 많은 고통을 우리 에게 주며, 제거하는데도 많은 고통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어떨 때에는 나의 일부가 상실되는 고통을 당하며, 더 심할 때에는 내 생명 자체를 잃을 때도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5:29-30)에서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 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 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 버리라. 네 백체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오른 손은 왼손 보다 더 능력이 있고, 더 중요한 손입니다. 그래도 그것으로 죄를 짓는 것 보다는 그것을 잘라 내 버리고 죄를 짓지 않는 것이 더 났다고 했습니다. 차라리 다리 하나 없는 것이, 가정을 잃고, 직장을 잃고, 나의 영혼을 잃어 버리는 것 보다 더 났습니다.
그러므로 나쁜 습관들의 올무에 걸려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쁜 습관의 올무에 걸려 들었으면 빨리 버려야 합니다. 그럼 나쁜 습관은 무엇입니까 나와 가정을 불행하게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하는 것이 가정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나쁜 버릇입니다. 아무리 내가 좋고, 세상 사람들이 다 건전하다고 해도, 그것이 가정 을 불행하게 하면 그것은 나쁜 습관입니다.
그러므로 버려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그의 부인 사라가 그의 몸종 하갈을 자 기 남편 아브라함에게 아내로 주어서 아들을 낳게 했습니다. 이렇게 아브 라함이 하갈을 통하여 낳은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그런데 그로 부터 14년 후에 본 부인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을 하였습니다.(창21:9) 이로 인하여 사라의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이삭도 괴로웠습니다. 그러자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고 했읍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도 자기의 자식이기 때문에 내어 쫓기를 근심 하였습니다.(창21:11) 그래서 내어 쫓기를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 에게 근심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내어 쫓으라고 했습니다. 자기에게는 귀해도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내어 쫓으라고 했습니다. 이 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자식입니다.
그러므로 내어 쫓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정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면 내어 쫓으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습관들 중에 나에게는 건전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정을 불행하게 하고, 파괴하는 것이라면 빨리 버려야 합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이 나쁜 습관들을 버릴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 렇게 벗어나기 어려운 나쁜 습관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한국에 선교 초기에 있었던 예화 중에 미국에 소개된 것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있는 나이 많이 잡수신 할머니가 예수님을 영접을 했읍니다. 그래서 선교사와 성경부인이 그 집에 심방을 가서는 복음을 많이 전했 습니다. 당시에는 그들이 그 집에 머물면서 몇일 동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집을 떠났습니다. 그리고는 몇달 후에 그 선교사는 그 집을 다시 심방을 했습니다. 그러 자 그 할머니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교사와 성경부인이 그 집을 떠난 후에 그 할머니는 그의 오두막 집에 앉아서 저녁 때, 오랜 동안 피워 왔던 담배대에 담배를 넣고, 담배를 빠꼼 빠꼼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담배을 빠꼼 빠꼼 피우면서 선교사님과 성경부인이 전해 준 성경말씀을 묵상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를 사랑 하는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을 했습니다.
선교사님은 떠나가면서 "자기는 떠나가지만 예수님이 늘 그 할머니와 함 께 할 것이다"라고 말씀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여기 자기 와 지금 함께 앉아 계실 터인데, 내 혼자가 이렇게 빠꼼 빠꼼 담배를 피우는 것이 예수님께 예의가 아닐 것 같았습니다. 우리내 담배 인심이 그렇 지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담배대를 예수님께 건데면서, "예수님 한 대 피우세요"하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몇일 저녁을 했는데, 갑자기 그 할머니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 었습니다. 예수님은 순결하고 거룩하신데, 자기가 건네 주는 담배대는 너 무 낡고 더러워서 예수님께 권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혼자서 담대를 피웠습니다.
그런데 몇일 동안 그렇게 하는데, 이런 생각이 그 할머니 마음속에 들었습니다. "만약 이 담배대가 너무 낡고 더러워서 예수님께 드릴수가 없다면, 그 의 친구인 나에게도 분명히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 할머니는 "이 담배대는 예수님께도 어울리지 않고, 나에게도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소리지르면 담배대를 불속에 태워 버렸습니다. 이렇게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께 어울리지 않는 것은 버려야 합니다. 언제나 우리 옆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이 예수님께 권할 수 없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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