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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사람 (시126:1-6,마13:1)

본문

성경 말씀에서 '씨를 뿌린다'고 하는 것은 여러가지 뜻을 담고 있는 개념 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농부가 곡식을 파종하는 일을 통하 여 하늘나라 진리를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또한 '씨를 뿌린다'는 것은 신령 한 면에 노력이나 수고를 뜻하기도 하고 또는 일정한 결과를 야기시키는, 하 나의 원인을 만드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씨를 뿌린다는 행위 자체는 수고와 고생과 어려움을 뜻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삶을 시작하면서부터 어떤 씨던지간에 불가불 '씨를 뿌리는 삶'을 살게되어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농부들은 씨를 뿌릴 때, 손으로 씨앗을 움켜쥐고 땅에 던 지기도 하였지만, 이것을 좀더 편리하게 하기위하여 나귀에 씨앗을 가득 담 은 자루를 싣고 그 자루에 구멍을 내서 나귀를 몰고가며 나귀의 발자국마다 씨앗이 떨어지게 하는 방법도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1년 365일의 삶의 발자취는 마치 그와 같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무엇을 심어야하며, 어떻게 심어야 하며, 또한 무엇을 거둘 것이라고 기대하십니까 우리 인간의 삶은 자기가 밟고 가는 발자취와 같아서 엄격하고 정직합니다. 각자가 만든 원인에 따라서 반드시 그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싫던 좋던 씨를 뿌리는 사람으로 항상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결과는, 자신들이 지금까지 뿌려놓은 씨에 따라서 심은대로 거 둘 것입니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 고 성령님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님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고 하였 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을 심기를 원하십니까 우선 우리는 좋은 씨를 많이 심어 놓도록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언제나 착한 마음과 선한 동기를 가지고 말하며 사람을 대하고 남을 돕고 봉사하는 그런 생활을 하도록 힘써 나갑시다. 그러한 모든 언행은 그것이 여러분의 삶 에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나타내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우리는 남 에게 악하게하면 자기에게도 그 보응이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 리고 남에게 선행을 많이한 집은 잘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선조 들의 오랜 삶의 경험과 역사가 증명하는 하나의 진리인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고넬뇨와 같은 사람은 평소에 온 집안 식구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는데. 그것이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행 10:4)고 하였습니다. 경건한 생활, 남을 돕는 구제활동, 그리고 항상 기도하는 일은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복 주시며 은혜를 내려주실 일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어떤 로마군대의 백부장은 유대인들을 위하여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심지어는 유대인들의 회당까지 지어 준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예수 께서는 그 사람에게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시고 마음속으로 칭찬하시고 감사히 여기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선행과 구제는 곧 하나님께 상달되고 하나님이 기억하실 수 있는 좋은 기도입니다. 성경에 가난한 자를 돕는 일은 자기 돈을 하나님게 꾸어 드리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꾸어 드린 것에 대하여 후히 넘치도록 반드시 갚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선한 일을 많이한 분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자가 있느니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을 두고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선행에는 반드시 보상이 있다는 것이고 또 그 보상은 후손에게까지 미친다는 뜻입니다. 평소에 쌓은 선행이 우리 후손들에게까지 미친다고 생각하면 악한 일 하는 것은 두려운 것이 아 닐수 없으며, 또 지금 나의 선행은 자녀들에게 좋은 유산을 상속해 주는 일 이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덕한 행실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광야에서의 극심한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믿었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낯선 행인에게 '내가 떡을 가져올 터이니 잡수십시오'라고 한 선행이 40년 광야생활에서 만나를 내려주신 은헤의 원천이 되었으며, '내가 물을길어 올 테니 발을 씻으십시오'라고 한 선행이 황무지에서 샘이 솟아나게 하는 축복 의 원천이 되었으며, '나무밑에서 쉬어 가십시오'라고 나그네에게 베푼 온정 이 '낮에는 그름을 펼쳐 덮어주시고 밤에는 불로비쳐 주셨으며 이스라엘에게 영광이 오색구름으로 펼쳐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원천이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되고 복받는 원인은, 그 조상 아브라함의 덕망과 선 행이 그 원인이 되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 을 지키는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수 천대까지 이르게 할 것이다'고 말씀하 셨습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는 것은 철칙이며, 좋은 씨를 많이 뿌리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도리이며 이것은 장래를 위하여 좋은 터를 닦아 두는 일이 된다고 믿습니다. 민수기 14장에 기록되어있는 10사람의 정탐군의 보고는 부정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부정적인 보고에 대하여 벌을 내리셨습니다. 정탐군들이 그 땅을 탐지한 날수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환산하여 '40년간 너희가 너희 죄 악을 질 것'이라고 선언하여 그것이 실지로 그들이 당했던 시련의 기간이 되 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거룩한 땅을 악평한 그 한마디 말때문에 그들은 광야에서 한세대 이상을 보내고 결국 거기서 죽는 비참한 저주를 받 게 되었습니다.
말 한마디가 그러한 운명을 초래할 것이라고 누가 알았겠습 니까 하나님을 멸시하는 말이나 부정적인 사고에서 나오는 말, 그것은 그 말하는 것이 씨가되어 그 씨에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착한 마음과 선한 의도, 그리고 좋은 일과 덕스러운 선 행을 평소 우리의 생활 신조로 삼고 살아갑시다. 우리 크리스쳔들은 남에게 대하여 비난이나 저주는 삼가야 됩니다. 그것은 장차 돋아날 씨앗이 될 것이 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결국 자기에게 돌아오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성서는 너희 원수에게라도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선한 사람을 위해서 복을 빌어야 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악행을 하는 사람들 에게도 또한 축복을 빌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이 씨앗이 되고 후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하나의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좋 은 원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씨를 뿌려 놓는 것 같아서 반드시 거두 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또한가지 잊어서는 안될 것은 정의로운 씨를 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착한 것'과 함께 '의로운 것'을 겸비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도 를 '선하고 의로운 도'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편기자는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 무쳤으며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판단은 큰 바다와 일 반이니이다.'(시 36:5-6)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공정한 심판관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가 그처럼 많 은 수난과 핍박을 받아도 결국은 반드시 이기고야 만다 고 하는 신념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한 반드시 공의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정의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정의를 주장합니다. 잘됐던지 잘못됫던지 사람 들은 누구나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지 자기가 틀렸다고 하는 사람은 별로 많 지 않습니다. 과거의 비리를 조사하고 심문하는 국회 청문회 같은 것을 보면, 모든 일는 자기 생각만으로 판단하기가 어려운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히 누가 뿌렸던지 간에 뿌린씨의 열매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 열매란 이미 하나님이 내리신 역사의 심판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심판과 그 심판의 기준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라고 하였는데 여 기서 '산들'이란 옛날에 모세가 율법을 받은 시내산을 의미합니다. 곧 하나님의 의는 율법에 가장 명확히 나타나 있습니다. 율법의 해석자들인 랍비들 에 의하면 하나님의 응보의 법칙은 아주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어떤 죄 에는 어떤 벌이 따른다고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랍비들은 말하기를 인간은 대개 7가지 죄를 짖고, 그에 해당하는 7가지 징벌이 세상에 내려진다 고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은 교구세, 즉 헌금을 내고 어떤 사람은 내지 않는다면 가 뭄으로 기근이 들어서 어떤 사람은 배부른 반면 어떤 사람은 굶주림을 겪게 되며, 만일 그들이 모두 다 교구세를 내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폭동과 가뭄으로 큰 기근이 일어나고, 만일 하나님께 바칠 헌물인 밀가루 떡반죽을 바치지 않는다면 사람을 몰 살시키는 기근이 발생할 것이고, 의로운 일을 뒤로 미루고 정의를 악용하며 하나님의 율법을 참 뜻대로 이 해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칼이 행세하게 되고, 헛되히 맹세하고 거룩한 이름을 모독하면 악한 짐승이 판을 치게 되며, 우상숭배와 부도덕과 유혈과 땅의 안식년을 소홀히 하면 이 세상에는 속 박이 오게될 것이고, 중상 비방 유혈 거짓맹세 부정 오만 절도 질투 모독 안식일을 범하는 죄는 맹수들의 번식으로 가축이 피해를 입고, 인구가 감소하며 거리가 황폐하 게 되는 벌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유대교 랍비들의 율법해석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을 때에 사람들의 실제 생활속에는 여러가지 저주가 올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탐욕과 부도덕과 우상숭배와 물질주의 사상의 씨앗을 뿌렸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과거에는 상상도 못한 끔찍하고 무서운 저주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내려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사람마다 정의를 부르 짖고 있지만 참 정의가 무엇인지는 공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여쭈어 보 지 않으면 인간으로서는 그 정의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선지자 미가는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으니 여호와께서 네 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의 본문 시편 126편은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생활속에서 지은 시입니다. 그들은 탄압과 부자유와 고독과 절망중에서 유익한 열매를 기다리는 자 신들의 모습을 '울면서 씨를 뿌리는 일'과 같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모 두 악한데 홀로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심히 외롭고 고 독한 일인지 모릅니다. 어떻게 보면 바보스럽고, 어떻게 보면 나 혼자만 손해 보는 것같은 어려운 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두 다 악하기만 하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도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이 이 사회를 무너지지 않게 기둥처럼 버텨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이 곧 '울면서 씨를 뿌리는' 행위입니다. 소출이 있을지 없을지 조차도 모르면서 다만 믿음과 인내로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세상이 모두 불의한데 나혼자 정직하고 공의롭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는 가 그것도 나만 어리석은 짓을 하는게 아닌가. 그것은 참 고독한 길이요 어려 운 길입니다. 또 그렇게 한다고 누가 알아주고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하고 의심하게 될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모두 불의하고 모두 부정하여 의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그 사회는 과연 어디로 갈 것입 니까 소돔 고모라같이 될 것 뿐입니다. '열사람의 의인', 그들은 이 사회에 서 말없이 씨를 뿌리는 사람들입니다. 씨라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땅에 상태와 조건에 따라서 좌 우됩니다. 그러나 씨뿌리는 사람은 확실한 신념과 소망을 가지고 뿌려야 합니다. 정의롭게 사는 것이 반드시 이긴다는 것, 아무리 세상이 어두워도 빛을 보게 된다는 신념을 굳게 가져야 됩니다.
사람들이 모두 그러한 생각과 신념 의 씨를 뿌린다면 오늘 우리사회는 반드시 정의의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기 우리에게 확실한 소망을 가지게 하는 귀한 약속이 있습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아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시 126:6) 라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때는 우는 때이지만 열매를 거두는 때는 웃고 기뻐할 때입니다.
그런데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올 때 가 확실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반드시 우리에게 있을 것입니다. 저 바벨론에 억류되어 있던 이스라엘의 포로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 을 누가 구출해 줄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에게는 동맹국도 없었고 독립군도 없었습니다. 오늘날처럼 국제연합이나 무슨 인권운동단체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그들의 그 처절한 포로생활을 남에게 알릴 매스컴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 포로생활속에서 영원히 질식하여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는 영영 빛을 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방의 날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꿈만같은 날이었 다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그들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혀에는 찬양이 흘 러 넘쳤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해주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기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포 로들의 해방행렬은 마치 메마른 사막에 깊은 강이 흐르게 된 것같은 전혀 기 대할 수 없었던 꿈같은 행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막에 강이 흐르고 황무지에 꽃이 피게하는 기이한 역사를 일 으켜 주십니다. 그것이 우리 하나님께서 인류와 역사를 이끌어 오시는 섭리 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추호의 의심도 하지말고 오직 성 실한 마음으로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씨를 뿌릴 때에는 울면서 나가지만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올 날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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