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위로 (시10965-72,히12,5-13)
본문
<다윗>은-`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 나이다'라고 하였고-사도 <베드로>도 (벧전1:7)에-"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라고 하였다. <욥>은 또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고 했다.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나 고난이라는 두 글자를 매우 싫어한다. 이는 고난 그 자체가 괴로움이요, 눈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많은 말씀으로 고난의 유익을 말하고 있다. 경건한 성도의 신앙생활은 필연적으로 고난이 따라다니며 그 고난은 성도의 영적 성장에 참으로 큰 유익을 주는 것임을 알게 된다(67,71절).
그러므로 경건한 성도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을 자랑하고 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도가 당하는 값진 고난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히12:5-13)가 될수도 있고 "믿음의 시련"도(벧전1:7)되며,-"하나님의 단련하심"(욥23:10)이기에 그 고난의 유익은 영적 성장에 있어 큰 유익이 됨을 가르쳐 준다. 고난을 불신자들은 재앙이라고 부른다.성도들은 재난을 형벌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재난을 은혜라고 부른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성도를 이끄는 방편으로 쓰신다. 우리들은 고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였다. 시편기자는 (시119:67)에-"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래서 고난은 도피하는것이 아니라-참고 견디는 것이 상책이다. 피해가다가 도리어 더 큰 어려움을 불러올수가 있다. 험준한 산중에서 먼산을 바라보면 편온한 정원같이 보이지 만-가보면 역시 산중이다.-고향에서 어려운 사람이 타향에서 뼈를 묻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속담에 '고양이를 피해 갔더니 범을 만났다'말이 있다. <헨리 워드 비쳐>-'고난은 때때로 우리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된다.-<올리버 골드스미스>-'우리의 가장 위대한 영광은 절대로 넘어지 지 않는 것이 아니라,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1,고난과 위로가 바낄때가 있다. 고난을 당한다고 항상 고난만이 있는것은 아니다.-즐거울때가 있다. 낙원에 있는 <아브라함>의 증언이다. (눅16:25)"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 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 을 받느니라" 공정한 심판에 대한 기준이다.-"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것을 받았고"-<하나님>을 알지 못한 부자는 인간의 공통적으로 오는 죽음을 몰았다.-그도 역시 이런 판단의 기준이 있었줄 몰랐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착각하기 쉬운것이 많다.-<하나님>없이 사는 이 부자는 현실에 행복에 푹빠져 내일을 준비를 못했다. 문전에는 있는 거지 '나라로'를 도울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그를 돕지못했다. 아예-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이 비유는 삶을 의미에 대한 많은 기준을 가르쳐준다. 어떻게 살았느냐-따라서 고난과 위로의 상황이 달라진다.-공정한 심판에 의하 여 상황이 변한다. 최고 권좌에서 천하를 호령하던 사람도 변하여 무서운 심판대에 설수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에는 누구나 공정하게 절대 주권자의 공의로운 판단에 의하여 수시로 상황이 변한다 이 부자 처럼 아무렇게 살아도 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참으로 불행한것은 행복한 자리에서-행복에 대한 보답을 못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참으로 행복하면-분명히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이 계신것이며-그리고 전체 운명을 주관하고 계신 위로 <하나님>이 계신 것이다. 진정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일시적인 행복보다는 영원한 영광을 위하여 값있는 투자를 게울리지 말아야 한다.-심는대로 거둔다고 했다.-문전있는 거지를 도울수있는 기회를 주셨을 때에 주저하지 말고 도왔어야 했다.
그런데 얼마후에 죽은후에 눈을 들어 멀리보니 자기의 현실이 완전히 바낀것을 알았다-자기는 이 불속에서 목이 타들어가 죽게 되였는데 자기의 문전에서 걸식 하던 '나사로는'는 '신앙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품에서 위로 받고 있는것이다. 온전히 사정이 달라졌다.-변해도 이렇게 변할수없다.양지가 음지될수있고-음지가 양지될수있다.
2,고난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나 어느 임금이 자기나라 한 학자에게-'인류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책을 써오라 고했다-그 학자는 오랫동안 연구하여 상당하게 두터운 책을 써 가지고 임금에게 갔다 드렸다.-그랬더니 임금이 하는 말이 '너무 부피가 많다'하면서 '좀 주려서 쓸수없겠느냐'라고 다시 돌려 보냈다.-줄리고 줄려서 다시 써가지고 왔다. 임금은 '그것도 부피가 많다 다시 줄려 보아라'되돌려 보냈다. 그래서 이 학자는-인류의 역사를 단 한디로 '고난'(Suffering)라고 적어 드 렸다고 한다.
그러므로 고난은 인류의 역사의 줄거리이다. <존 칼빈>은 걸어다니는 병원이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일생을 병약한 사람으로 일곱가지 중병에 앓았는데-이틀에 한번씩 심한두통을 앓고-심장병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 었고-폐병으로는 오후에는 미열이 생기고-심한 위장병으로 하루에 한끼 빡에 먹지못했으며-각기병-치질과-신경통으로 보행이 곤란할 정도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는 '기독교강요'라는 세계에서 불멸의 대작이라는 글을 쎃냈다. 그가 55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70-90세 노인처럼 보였다고 하였다. (롬8;18)"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 할수없다" 라는 성경을 구절을 외우면서 세상을 떠나갔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고난은 온다.-그러나 고난이 스처갈때가 문제이다.대처하는 슬기가 문제이다. 이 고비를 넘기는 지혜가 있어야 하고-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인생에 대한 진가 가 결정되는 것이다.-고난을 뜷고 앞으로 전진할수 있는 용기를 배워야 한다. 고난은 어떤 사람에게 유난히 많은 사람도 있고-고난이 비교적 적은 사람이 있다. 그러나 고난이 없으면 인생에 재미가 없다-누런 들판에 바람이 불지 않으면 벼이삭이 썩어 버린다.바람이 불어 침체로 썩는 것을 막어준다-적당한 고난은 있는것이 좋다-가난하면 가난한대로,,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이것을 이겨내는-'힘'이 있다는 자신만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인생은 제멋대로 사는것이지 만 그 멋을 가지고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남이 뭐라고 해도 나만히 갖는 보람이 있다.-이것은 신앙적인 정신의 바탕에서 온다. 스스로 원해서 고난과 싸우는 경우가 있다. 하기싫은 일을 해야하는 결단의 순간들은 쉬운일이 아니다-그러나 어려운 결단 을 할때는 해야 한다.
새벽기도회에 나오는 것이 귀찮을 때가 있다.-성경읽는것이 따분할때가 있다. 주일을 지키는것이 보통 어려운일이 아니다.-헌금하기가 고통스럽고-봉사는 듣기만 해도 겁먼저난다. 마음에는 원이로대 육신이 약해서 넘어져지기 때문에 어렵다.-편한것은 원하고 힘들고 땀을 흘리고 고통스러운것은 기피하기 때문에 그렇다. 여러분이 주초를 끊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볼수가 있다. 여러분 저에게도 하루(두끼) 2식을 하고 '고기'를 멀리하는 것도(2년반) 하나의 고통스러운 일이다.-이것쯤 해 보겠다는 결심 이것은 나의 결단이다. 많이 먹는것보다 적게 먹는 것이 좋고-필요없는 것은 먹는은 안먹는 좋다. 여러분이 신앙생활하면서 술과 담배를 하지 않으시니 일단 얼마나 좋으십니까 결단할때는 고통이 와도 참아야 한다.-억울한 일을 당해 화풀이를 하는것보다 참는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정욕의 욕구를 참는것는 것도 힘든일이다. 육신에 생각은 성령님을 거스려가고 있으나-참고나면 참잘했다는 하는 생각이 든다.후해하는 일이 없어 진다.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육체의 정욕을 거부하고 영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하면 참된 행복이 찾아온다. 대부분 우리는 축복에 대하여는 대단한 호감을 가질수가 없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축복과 행복과 능력이 넘치게 되고-안되는 일이 없고 어떤 난관도 극복되여 좋은 결말있을 것이다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바로 우리들이 였는데-십자가의 사건을 무시하고 그저 희희낙락 하는 생활을 하면서 살수는 없다. 근신하고 절제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자.(히 3:1)-"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고난은 인내를 배우게 되며-<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충성됨을 배우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고난의 종들을 생각하자. (벨전2:21)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마16:24)-이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 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라고 하셨다. 아프리카에 어느 마을에 입구에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는데 그 개울을 건너오는 사람마다 큰돌을 머리에 이고 건너 와서는 그 돌을 버리고 가는 것이었다. 이 개울은 비록 좁지만 한 가운데는 물살이 어찌나 센지 큰 돌을 머리에 이고 지나지 않으면 모두 떠내려 가는곳이다. 참으로 무서운 개울이다.-조금만 떠내려 가면 깊은 낭떠러지로 떨어져 목숨을 잃게 되는 곳이다. 여러분!-이 세상에는 생각지 않은 때와 장소에 생명을 앗아가는 급류가 흐르고 있다. 이 위험한 급류를 무사히 건너가게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돌과 같은 고통과 시련을 주시는 경우가 있다.-그래서 그것을 피한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생각해보면 모두가 감사한 일이다. <예수><그리스도는>는 우리를 유익하게 만들어 주신다.-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인생은 고난속에서 살고 있으나-기도하면서 내일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욥> 의 신앙처럼-시험을 당할즈음에 피할길을 주사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고 했으니 모든 수난을 견디는 자에게 회복의 영광이 있을것이다
3.,고난에 대한 회복, (눅24: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눅24: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 데서 살아날 것과-영광도 주와 함께-고난도 주와 함께-라고 강조하였다. (롬8:18)"-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현제는 고난이 있다고 할지라도-나타날 영광과는 비교할수없다. 이 세상에서 사는동안 수난을 당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회복하여 주신다-옛말에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다.환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일이 찾아오게 된다는 고사성어이다. 우주만상을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수난의 뒤에는 반드시 회복이 있을것을 가르치고 있다. (사45;7)"나는 빛도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 니"-라는 말씀은 수난과 고통과 환난이 있는 반면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과 평안도 있음을 말씀 하신 것이다. (사40:27)"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책망하셨다. 참된 인간,탁월한 인간은 어떠한 어려움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목적을 달성한 사람이다. 보통 사람들은 곤란한 일이나 역경,불행에 부딪치면 자기의 정당한 의사나 목적 을 포기하고,안이한 방법과 타협하고 만다. 그러나 정당하게 자기 의사대로 자기 목적을 달성한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라고 하겠다.
<베토벤>은 어릴 때의 가난을 무릅쓰고,음악에 뜻을 두었으며 일로 매진 그 명 성이 높아질 때는 음악가의 생명인 청각을 잃었을 때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역경을 딛고 일어서 수 많은 명곡을 작곡 뿐아니라 세계 음악사의 일대 전기를 마련하였다. 여러분!우리는 자랑스러운 고난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자랑스러운 고난이란 자진해서 뛰어든 고난이다.-할수없이 고난을 당했다가 피하려고 애쓰다가 피할 수 없어서 당한 고난이라면 자랑스러운 고난이라고 할 수 없다. 자랑스러운 고난이란 <그리스도의>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그리스도>인들은 <주>과 함께 남의 고난을 내 고난으로 느끼고 그 고난에 참여하는 자랑스러운 고난이 될것이다.
그러므로 경건한 성도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을 자랑하고 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도가 당하는 값진 고난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히12:5-13)가 될수도 있고 "믿음의 시련"도(벧전1:7)되며,-"하나님의 단련하심"(욥23:10)이기에 그 고난의 유익은 영적 성장에 있어 큰 유익이 됨을 가르쳐 준다. 고난을 불신자들은 재앙이라고 부른다.성도들은 재난을 형벌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재난을 은혜라고 부른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성도를 이끄는 방편으로 쓰신다. 우리들은 고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였다. 시편기자는 (시119:67)에-"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래서 고난은 도피하는것이 아니라-참고 견디는 것이 상책이다. 피해가다가 도리어 더 큰 어려움을 불러올수가 있다. 험준한 산중에서 먼산을 바라보면 편온한 정원같이 보이지 만-가보면 역시 산중이다.-고향에서 어려운 사람이 타향에서 뼈를 묻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속담에 '고양이를 피해 갔더니 범을 만났다'말이 있다. <헨리 워드 비쳐>-'고난은 때때로 우리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된다.-<올리버 골드스미스>-'우리의 가장 위대한 영광은 절대로 넘어지 지 않는 것이 아니라,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1,고난과 위로가 바낄때가 있다. 고난을 당한다고 항상 고난만이 있는것은 아니다.-즐거울때가 있다. 낙원에 있는 <아브라함>의 증언이다. (눅16:25)"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 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 을 받느니라" 공정한 심판에 대한 기준이다.-"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것을 받았고"-<하나님>을 알지 못한 부자는 인간의 공통적으로 오는 죽음을 몰았다.-그도 역시 이런 판단의 기준이 있었줄 몰랐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착각하기 쉬운것이 많다.-<하나님>없이 사는 이 부자는 현실에 행복에 푹빠져 내일을 준비를 못했다. 문전에는 있는 거지 '나라로'를 도울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그를 돕지못했다. 아예-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이 비유는 삶을 의미에 대한 많은 기준을 가르쳐준다. 어떻게 살았느냐-따라서 고난과 위로의 상황이 달라진다.-공정한 심판에 의하 여 상황이 변한다. 최고 권좌에서 천하를 호령하던 사람도 변하여 무서운 심판대에 설수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에는 누구나 공정하게 절대 주권자의 공의로운 판단에 의하여 수시로 상황이 변한다 이 부자 처럼 아무렇게 살아도 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참으로 불행한것은 행복한 자리에서-행복에 대한 보답을 못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참으로 행복하면-분명히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이 계신것이며-그리고 전체 운명을 주관하고 계신 위로 <하나님>이 계신 것이다. 진정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일시적인 행복보다는 영원한 영광을 위하여 값있는 투자를 게울리지 말아야 한다.-심는대로 거둔다고 했다.-문전있는 거지를 도울수있는 기회를 주셨을 때에 주저하지 말고 도왔어야 했다.
그런데 얼마후에 죽은후에 눈을 들어 멀리보니 자기의 현실이 완전히 바낀것을 알았다-자기는 이 불속에서 목이 타들어가 죽게 되였는데 자기의 문전에서 걸식 하던 '나사로는'는 '신앙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품에서 위로 받고 있는것이다. 온전히 사정이 달라졌다.-변해도 이렇게 변할수없다.양지가 음지될수있고-음지가 양지될수있다.
2,고난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나 어느 임금이 자기나라 한 학자에게-'인류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책을 써오라 고했다-그 학자는 오랫동안 연구하여 상당하게 두터운 책을 써 가지고 임금에게 갔다 드렸다.-그랬더니 임금이 하는 말이 '너무 부피가 많다'하면서 '좀 주려서 쓸수없겠느냐'라고 다시 돌려 보냈다.-줄리고 줄려서 다시 써가지고 왔다. 임금은 '그것도 부피가 많다 다시 줄려 보아라'되돌려 보냈다. 그래서 이 학자는-인류의 역사를 단 한디로 '고난'(Suffering)라고 적어 드 렸다고 한다.
그러므로 고난은 인류의 역사의 줄거리이다. <존 칼빈>은 걸어다니는 병원이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일생을 병약한 사람으로 일곱가지 중병에 앓았는데-이틀에 한번씩 심한두통을 앓고-심장병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 었고-폐병으로는 오후에는 미열이 생기고-심한 위장병으로 하루에 한끼 빡에 먹지못했으며-각기병-치질과-신경통으로 보행이 곤란할 정도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는 '기독교강요'라는 세계에서 불멸의 대작이라는 글을 쎃냈다. 그가 55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70-90세 노인처럼 보였다고 하였다. (롬8;18)"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 할수없다" 라는 성경을 구절을 외우면서 세상을 떠나갔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고난은 온다.-그러나 고난이 스처갈때가 문제이다.대처하는 슬기가 문제이다. 이 고비를 넘기는 지혜가 있어야 하고-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인생에 대한 진가 가 결정되는 것이다.-고난을 뜷고 앞으로 전진할수 있는 용기를 배워야 한다. 고난은 어떤 사람에게 유난히 많은 사람도 있고-고난이 비교적 적은 사람이 있다. 그러나 고난이 없으면 인생에 재미가 없다-누런 들판에 바람이 불지 않으면 벼이삭이 썩어 버린다.바람이 불어 침체로 썩는 것을 막어준다-적당한 고난은 있는것이 좋다-가난하면 가난한대로,,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이것을 이겨내는-'힘'이 있다는 자신만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인생은 제멋대로 사는것이지 만 그 멋을 가지고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남이 뭐라고 해도 나만히 갖는 보람이 있다.-이것은 신앙적인 정신의 바탕에서 온다. 스스로 원해서 고난과 싸우는 경우가 있다. 하기싫은 일을 해야하는 결단의 순간들은 쉬운일이 아니다-그러나 어려운 결단 을 할때는 해야 한다.
새벽기도회에 나오는 것이 귀찮을 때가 있다.-성경읽는것이 따분할때가 있다. 주일을 지키는것이 보통 어려운일이 아니다.-헌금하기가 고통스럽고-봉사는 듣기만 해도 겁먼저난다. 마음에는 원이로대 육신이 약해서 넘어져지기 때문에 어렵다.-편한것은 원하고 힘들고 땀을 흘리고 고통스러운것은 기피하기 때문에 그렇다. 여러분이 주초를 끊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볼수가 있다. 여러분 저에게도 하루(두끼) 2식을 하고 '고기'를 멀리하는 것도(2년반) 하나의 고통스러운 일이다.-이것쯤 해 보겠다는 결심 이것은 나의 결단이다. 많이 먹는것보다 적게 먹는 것이 좋고-필요없는 것은 먹는은 안먹는 좋다. 여러분이 신앙생활하면서 술과 담배를 하지 않으시니 일단 얼마나 좋으십니까 결단할때는 고통이 와도 참아야 한다.-억울한 일을 당해 화풀이를 하는것보다 참는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정욕의 욕구를 참는것는 것도 힘든일이다. 육신에 생각은 성령님을 거스려가고 있으나-참고나면 참잘했다는 하는 생각이 든다.후해하는 일이 없어 진다.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육체의 정욕을 거부하고 영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하면 참된 행복이 찾아온다. 대부분 우리는 축복에 대하여는 대단한 호감을 가질수가 없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축복과 행복과 능력이 넘치게 되고-안되는 일이 없고 어떤 난관도 극복되여 좋은 결말있을 것이다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바로 우리들이 였는데-십자가의 사건을 무시하고 그저 희희낙락 하는 생활을 하면서 살수는 없다. 근신하고 절제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자.(히 3:1)-"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고난은 인내를 배우게 되며-<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충성됨을 배우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고난의 종들을 생각하자. (벨전2:21)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마16:24)-이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 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라고 하셨다. 아프리카에 어느 마을에 입구에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는데 그 개울을 건너오는 사람마다 큰돌을 머리에 이고 건너 와서는 그 돌을 버리고 가는 것이었다. 이 개울은 비록 좁지만 한 가운데는 물살이 어찌나 센지 큰 돌을 머리에 이고 지나지 않으면 모두 떠내려 가는곳이다. 참으로 무서운 개울이다.-조금만 떠내려 가면 깊은 낭떠러지로 떨어져 목숨을 잃게 되는 곳이다. 여러분!-이 세상에는 생각지 않은 때와 장소에 생명을 앗아가는 급류가 흐르고 있다. 이 위험한 급류를 무사히 건너가게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돌과 같은 고통과 시련을 주시는 경우가 있다.-그래서 그것을 피한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생각해보면 모두가 감사한 일이다. <예수><그리스도는>는 우리를 유익하게 만들어 주신다.-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인생은 고난속에서 살고 있으나-기도하면서 내일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욥> 의 신앙처럼-시험을 당할즈음에 피할길을 주사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고 했으니 모든 수난을 견디는 자에게 회복의 영광이 있을것이다
3.,고난에 대한 회복, (눅24: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눅24: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 데서 살아날 것과-영광도 주와 함께-고난도 주와 함께-라고 강조하였다. (롬8:18)"-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현제는 고난이 있다고 할지라도-나타날 영광과는 비교할수없다. 이 세상에서 사는동안 수난을 당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회복하여 주신다-옛말에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다.환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일이 찾아오게 된다는 고사성어이다. 우주만상을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수난의 뒤에는 반드시 회복이 있을것을 가르치고 있다. (사45;7)"나는 빛도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 니"-라는 말씀은 수난과 고통과 환난이 있는 반면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과 평안도 있음을 말씀 하신 것이다. (사40:27)"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책망하셨다. 참된 인간,탁월한 인간은 어떠한 어려움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목적을 달성한 사람이다. 보통 사람들은 곤란한 일이나 역경,불행에 부딪치면 자기의 정당한 의사나 목적 을 포기하고,안이한 방법과 타협하고 만다. 그러나 정당하게 자기 의사대로 자기 목적을 달성한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라고 하겠다.
<베토벤>은 어릴 때의 가난을 무릅쓰고,음악에 뜻을 두었으며 일로 매진 그 명 성이 높아질 때는 음악가의 생명인 청각을 잃었을 때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역경을 딛고 일어서 수 많은 명곡을 작곡 뿐아니라 세계 음악사의 일대 전기를 마련하였다. 여러분!우리는 자랑스러운 고난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자랑스러운 고난이란 자진해서 뛰어든 고난이다.-할수없이 고난을 당했다가 피하려고 애쓰다가 피할 수 없어서 당한 고난이라면 자랑스러운 고난이라고 할 수 없다. 자랑스러운 고난이란 <그리스도의>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그리스도>인들은 <주>과 함께 남의 고난을 내 고난으로 느끼고 그 고난에 참여하는 자랑스러운 고난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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