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에 대한 감사 (시119:33-40,딤전)
본문
'노동자 시인' 박노해(41)씨는 지난 8월 15일 수감 7년 5개월만에 특별 사면조처로 출소하면서 자신의 심경을 담은 '출옥 편지'를 한겨레신문사에 띄웠습니다. "이제는 경제성장과 더 많은 소득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랑과 보살핌과 건강과 노동의 보람과 함께 나누는 소박한 기쁨을 누리는 삶이 필요합니다. 지구시대 60억 인류 가족 모두와의 관계 속에서 '고르게 부자인 삶'의 꿈을 넘어서서 '고르게 덜 벌어 덜 쓰는 삶'을 기꺼이 받아들여 하나뿐인 우리의 삶터를 더 이상 허물어 가지 않으면 서 더 푸르고 더 아름답고 더 맑고 더 풍요롭게 살아가는 가치관과 삶 의 방식으로 일대 전환이 요청되는 새로운 천년을 맞이해야 합니다." 오늘 읽어 드린 디모데전서 본문에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 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유혹 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도 해로운 욕심에 떨어집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구화된 시장경제 가 이 세계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지금 와서 본 이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지혜이며, 예언의 말씀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모두가 부 자 되는 꿈을 꾸면서 계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밤낮 을 가리지 않고 일하면서 부자가 되는 것은 최고의 가치요 선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려는 것은 파멸과 멸망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 였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 자요, 저들이 천국에 들어갈 것 이라고 하셨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을 이제야 우리가 깨 닫게 되었습니다. 현재 부자냐 가난한 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현재 가난하여도 부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지녔다 면 그는 부자에 속한 사람이요 천국에서 먼 것입니다. 가난하게 살겠다는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욕심부리지 않고 먹고 입을 것 있으 면 만족해 할 수 있는 마음이 바로 천국입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지난 일년동안의 우리의 살림살 이는 별로 늘지 않고 줄어들었습니다. 직장에서 조기 퇴직하거나 그만 둔 사람은 말할 것 없고,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도 월급과 상여금이 줄어들어 살림이 전보다 옹색해졌습니다. 농사가 풍년이 드는가 싶었는데, 뒤늦게 찾 아온 태풍으로 수확이 20% 이상 감소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지 난 여름 수해를 당한 사람들 중에는 겨울을 날 거처가 마련되지 못하여 안 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우리의 경제적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어서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합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점점 더 부자가 되게 하여 주신 일에 대하여 감사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부터는 우리의 경제지표가 계속 떨어질텐데 그때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요 이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작아진 것, 가난해진 것에 대하여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하나님 의 복을 물질의 풍요로만 헤아려 왔습니다. 이제는 물질의 다소가 아닌 그 것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은총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에 대하여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작은 것에 대한 감사를 배우기 위하여 지금까지 우리가 추 구해 왔던 무한정 성장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에 무한정 성장이란 없습니다. 사람을 포함 한 모든 동물은 태어나서 일정 기간 성장하다가 쇠퇴하여 죽게 되어 있습니다. 식물도 어느 일정 기간 커지면 성장을 멈추게 되고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계속 적인 경제 성장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면 할수록 소비가 늘어나고 소비가 늘면서 우리의 생활은 필요 이상의 것들을 갖게 되고, 점 점 더 좋은 것,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소비는 자연을 약탈하고 그 생태계를 파괴시켰으며, 동시에 주체할 수 없는 쓰레기를 쏟아내어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자연 정화 능력을 초과한 것입니다.
그런 결과로 하나님의 피 조세계는 파괴되어 가고 있고, 결국 인간도 그로 인해 고통을 당하면서 죽 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관점에 볼 때 결코 소비는 미덕이 아님 을 알게 됩니다. 요즈음 경제위기로 인하여 광고가 줄어들고 중소기업들이 문을 닫게 되었고, 자연 소비가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실직자들이 생겨나게 되 었고, 많은 가정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그 것은 좋은 현상이기도 합니다. 소비가 줄어드니까 생산도 줄어들고 그러면 그만큼 원자재 소비가 줄게 되며, 동시에 쓰레기도 그만큼 줄어들게 되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지금 우리가 당하는 고통은 풍성하게 쓰다가 덜 쓰게 되면서 당하는 것이기에 조금만 참고 지나면 또다시 덜 쓰는 일에 적응하게 될 것입니다. 실직자들은 앞으로 또 다시 경제가 회생되어 공장이 가동되면 서 흡수되게 할 것이 아니라 농촌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게 하므로 해결되도 록 해야할 것입니다. 논밭에다 공장을 지어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던 때가 있지만, 이제는 반대로 공장을 헐어버리고 다시 논밭을 일구어 농사를 짓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자연이 함께 사는 길이 될 것입니다. 대량 소비가 이루어 지는 도시는 점점 줄어들고, 하나님이 주시는 땅과 하늘의 생산품인 농산물 을 경작하는 농촌이 점점 늘어나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광고가 줄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방송 이 한 때 광고 없이 방송을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기독교 방송은 사 실상 제 구실을 하였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큰 빌딩 지으면서 빚을 300억 이나 안게 되었고, 경제위기 때문에 그 빚에 대한 이자는 늘고 광고는 줄게 되어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너무 욕심을 부렸기 때문에 생긴 결과입니다. 기독교 방송은 근본적으로 교회헌금으로 운영될 만큼의 크기에 족하고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방송에 의존하지 않아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방송이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광고에 현혹되어 필요도 없는 것들을 사들이는 일 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소비를 많이 하는 사람을 사회는 대접을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그들을 푸대접할 것입니다. 성서적인 입장에서 필요 이상의 소 비는 죄악입니다. "먹고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하다"는 생각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표준입니다. 우리는 점점 더 큰 집, 점점 더 큰 차, 점점 더 좋은 음식, 점점 더 좋은 옷, 점점 더 편리한 시설을 얻기 위하여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좋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잘못된 삶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점 점 더 작은 집, 점점 더 작은 차, 점점 더 자연 친화적인 삶으로 다가가도 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점점 더 가난해짐에 대하여 감사하고, 점점 더 작 아진 일에 대하여 감사할 수 있는 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 인 시편 119편 말씀에 보면 내 마음이 주의 교훈에만 몰두하게 하시고, 내 마음이 탐욕으로 치닫지 않게 해주십시오. 내 눈이 헛된 것을 보지 않게 해주시고, 주의 길을 걸어 생명을 얻게 해주십시오. 시 119:36-37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입니다. 탐욕으로 치닫던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으로 채워 야 할 것이며, 헛된 것만을 보아왔던 우리의 눈을 돌려 이제는 하나님의 세 계와 그 역사를 보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생명에 이르는 길은 좁은 문, 좁은 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너무 넓은 문, 넓은 길만을 고집하여 왔습니다. 이를 회개하고 돌이켜 좁은 길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그 길을 걸어 생명을 얻도 록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너무 부자가 되려고만 하였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마음 을 비워 가난한 자로 머물기를 기도해야할 때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크게 성장하는 것만이 복 받은 삶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 보니 그것은 복이 아닌 화이며, 선이 아닌 악이었음을 깨닫 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작은 것에 만족하면서 영적으로 더욱 충만하기를 간 구해야 하겠습니다. 교회들도 그 동안 너무 성장하는 데만 열중하였습니다. 교회도 이 시대 의 풍조를 좇아 성장제일주의로 치달았던 것입니다. 경제 성장은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설교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방향이었나를 지금에 와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교회도 외적인 성장 대신에 영적 성장을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큰 것이 아름답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임을 알게 되었기에 이제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 어 작은 것이 아름다운 것이며,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있음을 알 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고르게 부자가 되는 꿈'을 꾸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고르게 덜 벌어 덜 쓰는 꿈'을 꿀 때입니다. 우리의 욕망을 억제하여 하나님이 정해 주신 한계 안에서 피조세계와 더불어 조화 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풍년과 건강과 많은 수입 등에 대하여만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세계를 파괴한 결과로 얻은 것임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감사를 드릴 수 있었지만, 피조세계는 우리의 경제가 성장할수록 고통을 당하였고 신음해 왔던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세계가 함께 감사할 수 있는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우리는 거품이 빠져나가면서 고통을 당하는 변환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아지게 하시며, 작은 것의 아름다 움을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주시는 시련기입니다. 이 때에 우리가 바로 돌 이켜 성장지상주의로 치닫던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겸손히 낮아지기를 힘 쓰면 이 시련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여는 복된 전환기가 될 것입니다. 낮은 자리, 작은 자의 자리로 내려가 우리의 삶을 살펴보면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이 가졌고, 아직도 거품이 많이 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깨어지는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계속 작은 자의 자리로, 가난한 마음의 자리로 내려가야 할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진정으로 울어나는 감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커짐과 많아짐에 대한 감사보다는 낮아짐과 작아짐에 대하여 감사 를 드리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의 뜻을 이제야 우리가 깨 닫게 되었습니다. 현재 부자냐 가난한 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현재 가난하여도 부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지녔다 면 그는 부자에 속한 사람이요 천국에서 먼 것입니다. 가난하게 살겠다는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욕심부리지 않고 먹고 입을 것 있으 면 만족해 할 수 있는 마음이 바로 천국입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지난 일년동안의 우리의 살림살 이는 별로 늘지 않고 줄어들었습니다. 직장에서 조기 퇴직하거나 그만 둔 사람은 말할 것 없고,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도 월급과 상여금이 줄어들어 살림이 전보다 옹색해졌습니다. 농사가 풍년이 드는가 싶었는데, 뒤늦게 찾 아온 태풍으로 수확이 20% 이상 감소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지 난 여름 수해를 당한 사람들 중에는 겨울을 날 거처가 마련되지 못하여 안 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우리의 경제적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어서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합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점점 더 부자가 되게 하여 주신 일에 대하여 감사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부터는 우리의 경제지표가 계속 떨어질텐데 그때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요 이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작아진 것, 가난해진 것에 대하여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하나님 의 복을 물질의 풍요로만 헤아려 왔습니다. 이제는 물질의 다소가 아닌 그 것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은총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에 대하여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작은 것에 대한 감사를 배우기 위하여 지금까지 우리가 추 구해 왔던 무한정 성장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에 무한정 성장이란 없습니다. 사람을 포함 한 모든 동물은 태어나서 일정 기간 성장하다가 쇠퇴하여 죽게 되어 있습니다. 식물도 어느 일정 기간 커지면 성장을 멈추게 되고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계속 적인 경제 성장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면 할수록 소비가 늘어나고 소비가 늘면서 우리의 생활은 필요 이상의 것들을 갖게 되고, 점 점 더 좋은 것,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소비는 자연을 약탈하고 그 생태계를 파괴시켰으며, 동시에 주체할 수 없는 쓰레기를 쏟아내어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자연 정화 능력을 초과한 것입니다.
그런 결과로 하나님의 피 조세계는 파괴되어 가고 있고, 결국 인간도 그로 인해 고통을 당하면서 죽 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관점에 볼 때 결코 소비는 미덕이 아님 을 알게 됩니다. 요즈음 경제위기로 인하여 광고가 줄어들고 중소기업들이 문을 닫게 되었고, 자연 소비가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실직자들이 생겨나게 되 었고, 많은 가정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그 것은 좋은 현상이기도 합니다. 소비가 줄어드니까 생산도 줄어들고 그러면 그만큼 원자재 소비가 줄게 되며, 동시에 쓰레기도 그만큼 줄어들게 되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지금 우리가 당하는 고통은 풍성하게 쓰다가 덜 쓰게 되면서 당하는 것이기에 조금만 참고 지나면 또다시 덜 쓰는 일에 적응하게 될 것입니다. 실직자들은 앞으로 또 다시 경제가 회생되어 공장이 가동되면 서 흡수되게 할 것이 아니라 농촌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게 하므로 해결되도 록 해야할 것입니다. 논밭에다 공장을 지어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던 때가 있지만, 이제는 반대로 공장을 헐어버리고 다시 논밭을 일구어 농사를 짓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자연이 함께 사는 길이 될 것입니다. 대량 소비가 이루어 지는 도시는 점점 줄어들고, 하나님이 주시는 땅과 하늘의 생산품인 농산물 을 경작하는 농촌이 점점 늘어나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광고가 줄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방송 이 한 때 광고 없이 방송을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기독교 방송은 사 실상 제 구실을 하였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큰 빌딩 지으면서 빚을 300억 이나 안게 되었고, 경제위기 때문에 그 빚에 대한 이자는 늘고 광고는 줄게 되어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너무 욕심을 부렸기 때문에 생긴 결과입니다. 기독교 방송은 근본적으로 교회헌금으로 운영될 만큼의 크기에 족하고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방송에 의존하지 않아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방송이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광고에 현혹되어 필요도 없는 것들을 사들이는 일 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소비를 많이 하는 사람을 사회는 대접을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그들을 푸대접할 것입니다. 성서적인 입장에서 필요 이상의 소 비는 죄악입니다. "먹고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하다"는 생각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표준입니다. 우리는 점점 더 큰 집, 점점 더 큰 차, 점점 더 좋은 음식, 점점 더 좋은 옷, 점점 더 편리한 시설을 얻기 위하여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좋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잘못된 삶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점 점 더 작은 집, 점점 더 작은 차, 점점 더 자연 친화적인 삶으로 다가가도 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점점 더 가난해짐에 대하여 감사하고, 점점 더 작 아진 일에 대하여 감사할 수 있는 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 인 시편 119편 말씀에 보면 내 마음이 주의 교훈에만 몰두하게 하시고, 내 마음이 탐욕으로 치닫지 않게 해주십시오. 내 눈이 헛된 것을 보지 않게 해주시고, 주의 길을 걸어 생명을 얻게 해주십시오. 시 119:36-37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입니다. 탐욕으로 치닫던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으로 채워 야 할 것이며, 헛된 것만을 보아왔던 우리의 눈을 돌려 이제는 하나님의 세 계와 그 역사를 보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생명에 이르는 길은 좁은 문, 좁은 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너무 넓은 문, 넓은 길만을 고집하여 왔습니다. 이를 회개하고 돌이켜 좁은 길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그 길을 걸어 생명을 얻도 록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너무 부자가 되려고만 하였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마음 을 비워 가난한 자로 머물기를 기도해야할 때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크게 성장하는 것만이 복 받은 삶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 보니 그것은 복이 아닌 화이며, 선이 아닌 악이었음을 깨닫 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작은 것에 만족하면서 영적으로 더욱 충만하기를 간 구해야 하겠습니다. 교회들도 그 동안 너무 성장하는 데만 열중하였습니다. 교회도 이 시대 의 풍조를 좇아 성장제일주의로 치달았던 것입니다. 경제 성장은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설교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방향이었나를 지금에 와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교회도 외적인 성장 대신에 영적 성장을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큰 것이 아름답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임을 알게 되었기에 이제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 어 작은 것이 아름다운 것이며,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있음을 알 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고르게 부자가 되는 꿈'을 꾸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고르게 덜 벌어 덜 쓰는 꿈'을 꿀 때입니다. 우리의 욕망을 억제하여 하나님이 정해 주신 한계 안에서 피조세계와 더불어 조화 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풍년과 건강과 많은 수입 등에 대하여만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세계를 파괴한 결과로 얻은 것임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감사를 드릴 수 있었지만, 피조세계는 우리의 경제가 성장할수록 고통을 당하였고 신음해 왔던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세계가 함께 감사할 수 있는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우리는 거품이 빠져나가면서 고통을 당하는 변환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아지게 하시며, 작은 것의 아름다 움을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주시는 시련기입니다. 이 때에 우리가 바로 돌 이켜 성장지상주의로 치닫던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겸손히 낮아지기를 힘 쓰면 이 시련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여는 복된 전환기가 될 것입니다. 낮은 자리, 작은 자의 자리로 내려가 우리의 삶을 살펴보면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이 가졌고, 아직도 거품이 많이 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깨어지는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계속 작은 자의 자리로, 가난한 마음의 자리로 내려가야 할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진정으로 울어나는 감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커짐과 많아짐에 대한 감사보다는 낮아짐과 작아짐에 대하여 감사 를 드리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