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눈을 열어 주소서 (민14:4-10)
본문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온 사람들의 말에 이스라엘 백성은 두마음으로 나누게 되었음. 여호수아와 갈렙의 "그들을 두려워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다" 외침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마음은 원망과 좌절로 가득 찼음. 이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믿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했고 믿음의 눈으로 상황을 보지 못했기 때문. 요즈음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살기 힘든 시대라고 떠듦. 그러나 우리는 이런 때일수록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것임. 그리고 세상 소리보다는 믿음의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어야 할 것임. 믿음의 눈을 가지지 못하고 믿음의 소리에 귀를 막으면 우리도 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원망과 불평과 좌절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광야에서 죽고 가나안 땅인 천국에 가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눈들이 활짝 열려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가 첫 째:약속을 믿어야 한다. 8 절.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있는데서 시작 되었다. 그 땅은 하나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셨다.출3:8 그러나 백성들은 전적으로 그 말을 믿지 못했다. 약속을 믿지 못할 때 원망이 생기고 불평이 생기고 좌절이 생긴다. 신 1:21-22 을 보면 하나님은 그대로 가나안 땅을 들어가서 차지하라고 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먼저 정탐부터 하고 올라가자고 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정탐하라고 하셨다. 정탐하고 온 12명의 말을 들어본 그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두명의 말보다 10명의 말을 더 믿었다. 하나님의 약속보다는 사람의 말을 더 믿었다. 천지는 없어져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변치 않음.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가는데 불순종해서 40년이 걸렸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렙산에서 가나안까지 가는데는 열 하룻길이었다. 호렙산에서 약 2년동안 성막을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11일만에 가나안 땅 경계인 가데스 바네아에 당도. (신1:2-2) "호렙산에서 세일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에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 약속을 믿고 가난안 경계까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만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분명히 바로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취하라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 그만 저들은 인간의 방법을 생각했다. 다시 말해서 "돌다리도 두드리고 가라고 했다" 라는 속담처럼 저들은 그래도 한 번 정탐해보고 올라가자고 상의. 그리고 강력하게 하나님께 요청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기 바람. 하늘이 무너져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함.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할 때 . 바로 그때부터 원망의 씨앗이 심어지게 되고 불평과 좌절이 싹트게 되는 것. 그 원망의 결과가 광야에서 40년이란 긴 세월을 방황하게 했음. 민 14:34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수 사십일 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 사십 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지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 하셨다 하라" 그리고 그 다음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광야로 내어쫓김을 당함. 민 14:25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로 하여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 약속을 믿지 못하는 것은 상대방을 불신하는 것.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것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보다는 우리도 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다수의 인간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을 바라볼 때 너무나 우리를 어렵게 하는 것들이 많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함. 마 28:20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믿으십니까 사 43:2 물 속에서도, 불 속에서도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했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면 가나안 땅을 들어갈 수 없음. 약속을 믿는 것은 바로 믿음 임. 그 약속을 바라볼 줄 아는 우리의 믿음의 눈이 열려야 됨. 어려운 시대일수록 우리가 믿음의 눈을 가지지 못하면 우리들도 저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이 원망하고 좌절하고 . 결국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함.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람. 잠간의 원망이 40년이란 긴 세월을 광야에서 방황. 우리의 원망, 불평 때문에 우리의 방황이 길어질 수가 있음. 세상사람들이 원망한다고 우리도 같이 원망해서는 안됨. 내 가족 중에서 누가 원망한다고 해서 같이 원망해서는 안됨. 원망 하는 자가 있으면 그들에게 소망을 주시기 바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두려워 마세요! " 해주시기 바람. 진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 믿으십니까 천지가 개벽을 한다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약속. 이 약속의 말씀을 놓치지 마시기를 축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자가 믿음 있는 자이고 그 약속을 바라보고 사는 자가 믿음의 눈을 가진 자임. 믿는 자는 많으나 믿음 있는 자를 보기 힘든 시대임. 믿음이 있다고 하나 믿음의 눈을 가진 자가 보기 힘든 시대임. 애굽에서 나온 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았으나 믿음으로 살고 믿음의 눈을 가진 자는 극소수 였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그 소수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음. 하나님은 그 믿음의 마음과 믿음의 눈을 가진 소수를 통해서 일을 행하셨음. 어느때 보다도 어려운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 그러나 이러한 때에 우리의 믿음을 보일 가장 좋은 때임. 우리의 믿음을 다시 한번 살펴보시고 세상을 향해 우리의 믿음을 보이시기 바람. 강한 믿음의 마음을 가져야 그 다음 우리에게 믿음의 눈도 열리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 우리의 믿음의 눈, 즉 영안이 열릴 때 이 땅에서의 이 고난은 아무것도 아닐 것임. 믿음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원망과 좌절 속에 있는 저들에게 여호수와처럼 갈렙처럼 믿음을 보이시기를 축원. 두 번째:두려워 말라 9절.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온 다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두려워 떨고있음. 여호수아와 갈렙의 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아니했음. "두려워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 소리에는 귀를 막았음. 그리고 다수들이 외치는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두려워 벌벌 떨었음. 두려움 (히) 파하드 깜짝 놀라다, 공포. 두려움은 어디서 시작했습니까 10명의 정탐꾼에 의해서 시작. 가나안 땅에 있는 족속을 보고 온 이들은 그만 아연질색. 가나안 족속들의 거대한 몸들을 보고 두려워했음 자신들을 메뚜기 같은 작은 존재로 비교했음. 두려움은 그들이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되었음. 백성들의 두려움은 그 소리를 듣고 시작 두려움 이것은 인간의 약한 모습임. 특히 세상 것을 바라보고 두려워하는 것은 믿는 자의 신앙이 아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는 두려워 말라 라는 말씀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아십니까 두려워말라는 말씀이 365번 있다고 함. 이것은 매일 매일 우리가 살아갈 때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이 두려움은 안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즉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시작.
그러므로 무엇을! 어떠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중요함. 두려움 속에서 사는 사람은 기쁨이 있을 수가 없음. 소망이 없음. 원망과 불평과 좌절만 있을 뿐. 하나님이 사용 하실 수 없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보이는 것에 두려워 떨고 있음. 정말 우리가 두려워 떨어야 할 것은 보이지 않은 세계임.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보고 두려워 떨어야 함. 지옥 세계를 보고 두려워 떨어야 함.
그런데 우리는 보이는 것에 두려워 떨고있음. 왜 그렇습니까 믿음의 눈들이 감겨져 있기 때문임. 즉 영적 세계를 보지 못하기 때문임.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보이는 것은 별로 두렵지 않음.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 얼마나 두렵습니까 즉 보이지 않은 병균, 보이지 않은 오염된 공기, 보이지 않은 미움, 시기, 질투, 보이지 않게 들려오는 두려운 소리들. 보이지 않는 세계가 더 두렵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람.
그런데 우리는 보이는 세계를 보고 더 두려워 함.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음. 내가 처한 환경을 보고 우리는 두려워 함. 세상 소리를 듣고 우리는 미리 겁부터 먹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10명의 소리만 듣고 미리 겁부터 먹었음. 그리고 백성들은 아이고-이제 죽었구나! 원망하기 시작. 이 공포는 전염성이 있음. 내가 두려워 떨면 내 옆에 사람도 두려워 떨게 되어있음. 이런 공포 전염성은 급속도로 번져 나감. 요즈음 사회에 전반적으로 널려있는 이 공포를 우리 믿는 자들이 잠재워 버려야만 함. 성경은 우리에게 약속 하고있음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또 내일 염려를 미리 앞당겨 하지 말라고 했음. (마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이 땅에 사는 한 이 두려움은 계속 우리를 따라 다닐 것임. 끓임 없이 이모저모로 우리에게 두려움을 가져올 것임. 그러나 우리는 이 두려움에 빠져서는 안됨. 우리의 힘으로 이 두려움을 물리칠 수 없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의 능력으로 물리쳐야만 함. 마 8장 어느 날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는데 큰 풍랑이 불었음. 배가 침몰 직전에 이르렀음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음. 제자들은 소리쳤음 주여! 구원하소서 ! 우리가 죽겠나이다. 능력의 예수님이 함께 하고 계시는데도 제자들은 바람과 큰 파도만 보고 소리쳤음.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 믿음이 적은 자들아 ! " 그리고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까 잔잔케 되었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동안 수많은 기적을 보여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눈에 보이는 환경만 보고 원망하고 좌절했음. 그리고 우리가 죽게되었다고 통곡했음. 우리의 인생의 배에 우리 주님이 함께 하고 계심. 우리 인생에 고난의 파도가 치고 환난이 올 때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 떠는 자는 절대로 믿음의 사람이 아님. 믿음의 사람은 주님을 바라보고 어떤 고난이 와도 환난이 와도 참고 이기는 것임. "사망아 !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15:55) 죽음도 두렵지 않은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믿음의 사람이 될 때 그 어떤 환경에서도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 믿음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믿는 것임.
그러므로 우리는 외부에서 밀려오는 환경을 바라 볼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우리 인생의 배에 함께 하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두려움을 물리쳐야 할 것임. 능력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냉동열차에 갇혔다. 그는 그 속에서 문을 두들겼다. 그러나 아무도 듣지 못했다. 그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열차구석으로 가서 벽에 다음과 같은 유언들 썼다. '내 몸은 얼고 있다. 나는 오래 살지 못 할 것이다. 나는 곧 죽을 것이다. ' 냉동열차 문이 열렸을 때 그는 죽어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놀라운 일이 발견되었다. 그 냉동열차는 한달 동안이나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속에는 산소가 충분했다. 그는 냉기 때문에 사망한 것이 아니다. 그를 죽게 한 것은 공포였다. 두려움은 질병보다 더 무서운 것임.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 세상 것으로부터 악한 것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에 떨지 말고 담대히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잊지 마시길 축원. 세 번째:우리 밥이다 9절 믿음의 눈을 가진 여호수아와 갈렙은 저 가나안 족속들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우리 밥이다" 고 소리쳤다. 무엇을 믿고 이런 큰소리를 쳤는가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큰소리 치고 있다. 밥이다 = 먹이 라는 것. 즉 다스리게 되는 것을 뜻함.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을 다스려야만 함. 세상에 매임 받으면 안됨. 이 다스림은 어떤 육적인 다스림만 의미하는 게 아니고 영적으로도 저 세상을 다스려야만 함. 우리의 믿음은 겉으로 보아서는 누가 믿음이 좋은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을 알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이다. 입으로만 아무리 좋은 믿음을 보인다 할지라도 그 행함이 말과 다르다면 그 믿음을 우리는 의심 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예수님을 믿습니다 한다해도 그 행동이 믿는 자의 행동이 아니라면 그 사람은 입으로만 믿고 있는 자 일 것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입으로만 떠든 자들이 아니었다. 6절에 보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옷을 ㅉ었다고 했다. 이 행위는 백성들에게 의의 분노를 보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저들의 신앙에 정면으로 대적하는 모습이다. 믿음을 가진 자는 저 세상과 타협해서는 안됨. 오직 말씀 편에 서서, 예수님 편에 서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됨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다스리라고 명령 하셨음. 육으로 세상을 다스리라는 뜻이 아님. 육은 영적 세계에 지배를 받게 되어있음.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으로 저 세상을 다스려야만 함. 영적인 자가세상에 많을 때 이 세상은 자연히 육적인 방법과 육적인 냄새가 사라지게 됨. 세상은 우리의 밥임 우리가 영적인 자들이 될 때 저 세상은 우리에게 밥임. 육이 영을 리드하지 못하게 되어있는게 우주의 원리. 영은 육을 리드하게 되어있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육체 ! 우리 속에 있는 생각이 즉 영과 혼이 우리의 육체를 주관하고 리드하듯이 우리들이 영적인 자, 믿음의 눈을 가진 자들이 될 때 저 세상은 우리의 리드를 받게 되어있음. 어떻게 그런 큰 일을 우리가 할 수 있는가 예수님이 영적인 자의 편이기 때문. 예수님은 절대로 육적인 자와 함께 하지 아니함. 영적인 자와 만이 주님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임.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 (막9:23)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갈수록 이 세상은 우리에게 두려운 소식만 전해 줄 것임. 믿음 있는 자가 되지 아니하면 우리는 세상의 지배를 받게 될 것임. 세상과 타협 할것임. 두려움에 떨며 살게 될 것임. 세상의 지배는 곧 사단의 지배임. 영적인 자, 믿음 있는 자가 되지 못하면 우리는 사단의 지배를 받게 될 것임.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믿음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함. 주님은 우리에게 저 세상을 맡겨 주셨음. 우리보고 세상 속에 들어가서 빛이 되라고 하셨고 소금이 되라고 하셨음. 이제 우리는 육적인 눈에 보이는 환경에 두려워하지 말고, 육적인 귀에 들려오는 것들에게 두려워 하지 말고 영적인 자가 되지 못하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람. 세상을 영적으로 다스리기를 원하십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성령님 충만해야 됩니다. 성령님 충만 한자는 성령님의 뜻을 따라 사는 자들임. 내 뜻대로, 내 방법대로 사는 자가 아님. 생각도, 말하는 것도 영적인 생각, 영적인 말만 해야함.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우리도 같이 두려워해서는 안됨. 세상을 잡고있는 저 악한 세력과 싸우기 위해서는 우리는 성령님 충만 한자들이 되어야만 함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리가 성령님 충만하면 저 악한 세력은 우리의 밥임. 장대한 가나안 족속이 여호수아와 갈렙 눈에는 밥이었음. 우리에게도 저 사단의 세력은 우리의 밥임. 우리에게 맡겨준 먹이거리 임. 믿음의 눈을 가지고 앞으로 담대히 전진하는 신앙을 가지시기를 축원함. 승리는 우리 것임. 이미 2000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마귀의 머리를 박살 내셨음. 우리는 그냥 믿고 나가기만 하면 됨. 우리의 밥이라는 사실만 믿으시기를 축원. '결론'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차대전 중 헤롤드 럿셀이라는 공수부대원이 전투에 나갔다가 포탄에 맞아 두팔을 잃어 불구자가 됩니다. 그는 참혹한 좌절에 빠집니다. 나는 이제 쓸모 없는 하나의 고깃덩어리가 되었구나. 그런 가운데 그에게 차츰 진리의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잃은 것보다 가진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의사가 그에게 의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것으로 글을 쓰고 타이프도 치기 시작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화되어 직접 불구자의 모습으로 출연하게 됩니다. 그는 정성을 다해 연기를 합니다. 그 해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탑니다. 그 상금은 상이용사를 위해 기부합니다. 어떤 기자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당신의 신체적인 조건이 당신을 절망케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그는 태연히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나의 육체적인 장애는 나에게 도리어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잃어버린 것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남은 것을 사용할 때 잃은 것의 열배를 보상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원망과 좌절하는 자는 절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도 절대로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음. 우리가 다 잃어버리고 없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가장 소중한 믿음이 있음. 이 믿음만 강하게 하면 우리에게는 그 어떤 두려움과 좌절도 능히 이기고 승리하게 될 것임. (고후4:8-10)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강력한 로마의 세력 앞에서도 두려워 떨지 않았음. 무섭게 으르렁대는 사자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안했음.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음.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도 그 어떤 환경에도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고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기 바람. 하늘이 무너져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함.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할 때 . 바로 그때부터 원망의 씨앗이 심어지게 되고 불평과 좌절이 싹트게 되는 것. 그 원망의 결과가 광야에서 40년이란 긴 세월을 방황하게 했음. 민 14:34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수 사십일 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 사십 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지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 하셨다 하라" 그리고 그 다음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광야로 내어쫓김을 당함. 민 14:25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로 하여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 약속을 믿지 못하는 것은 상대방을 불신하는 것.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것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보다는 우리도 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다수의 인간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을 바라볼 때 너무나 우리를 어렵게 하는 것들이 많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함. 마 28:20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믿으십니까 사 43:2 물 속에서도, 불 속에서도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했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면 가나안 땅을 들어갈 수 없음. 약속을 믿는 것은 바로 믿음 임. 그 약속을 바라볼 줄 아는 우리의 믿음의 눈이 열려야 됨. 어려운 시대일수록 우리가 믿음의 눈을 가지지 못하면 우리들도 저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이 원망하고 좌절하고 . 결국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함.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람. 잠간의 원망이 40년이란 긴 세월을 광야에서 방황. 우리의 원망, 불평 때문에 우리의 방황이 길어질 수가 있음. 세상사람들이 원망한다고 우리도 같이 원망해서는 안됨. 내 가족 중에서 누가 원망한다고 해서 같이 원망해서는 안됨. 원망 하는 자가 있으면 그들에게 소망을 주시기 바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두려워 마세요! " 해주시기 바람. 진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 믿으십니까 천지가 개벽을 한다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약속. 이 약속의 말씀을 놓치지 마시기를 축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자가 믿음 있는 자이고 그 약속을 바라보고 사는 자가 믿음의 눈을 가진 자임. 믿는 자는 많으나 믿음 있는 자를 보기 힘든 시대임. 믿음이 있다고 하나 믿음의 눈을 가진 자가 보기 힘든 시대임. 애굽에서 나온 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았으나 믿음으로 살고 믿음의 눈을 가진 자는 극소수 였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그 소수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음. 하나님은 그 믿음의 마음과 믿음의 눈을 가진 소수를 통해서 일을 행하셨음. 어느때 보다도 어려운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 그러나 이러한 때에 우리의 믿음을 보일 가장 좋은 때임. 우리의 믿음을 다시 한번 살펴보시고 세상을 향해 우리의 믿음을 보이시기 바람. 강한 믿음의 마음을 가져야 그 다음 우리에게 믿음의 눈도 열리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 우리의 믿음의 눈, 즉 영안이 열릴 때 이 땅에서의 이 고난은 아무것도 아닐 것임. 믿음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원망과 좌절 속에 있는 저들에게 여호수와처럼 갈렙처럼 믿음을 보이시기를 축원. 두 번째:두려워 말라 9절.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온 다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두려워 떨고있음. 여호수아와 갈렙의 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아니했음. "두려워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 소리에는 귀를 막았음. 그리고 다수들이 외치는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두려워 벌벌 떨었음. 두려움 (히) 파하드 깜짝 놀라다, 공포. 두려움은 어디서 시작했습니까 10명의 정탐꾼에 의해서 시작. 가나안 땅에 있는 족속을 보고 온 이들은 그만 아연질색. 가나안 족속들의 거대한 몸들을 보고 두려워했음 자신들을 메뚜기 같은 작은 존재로 비교했음. 두려움은 그들이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되었음. 백성들의 두려움은 그 소리를 듣고 시작 두려움 이것은 인간의 약한 모습임. 특히 세상 것을 바라보고 두려워하는 것은 믿는 자의 신앙이 아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는 두려워 말라 라는 말씀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아십니까 두려워말라는 말씀이 365번 있다고 함. 이것은 매일 매일 우리가 살아갈 때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이 두려움은 안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즉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시작.
그러므로 무엇을! 어떠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중요함. 두려움 속에서 사는 사람은 기쁨이 있을 수가 없음. 소망이 없음. 원망과 불평과 좌절만 있을 뿐. 하나님이 사용 하실 수 없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보이는 것에 두려워 떨고 있음. 정말 우리가 두려워 떨어야 할 것은 보이지 않은 세계임.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보고 두려워 떨어야 함. 지옥 세계를 보고 두려워 떨어야 함.
그런데 우리는 보이는 것에 두려워 떨고있음. 왜 그렇습니까 믿음의 눈들이 감겨져 있기 때문임. 즉 영적 세계를 보지 못하기 때문임.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보이는 것은 별로 두렵지 않음.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 얼마나 두렵습니까 즉 보이지 않은 병균, 보이지 않은 오염된 공기, 보이지 않은 미움, 시기, 질투, 보이지 않게 들려오는 두려운 소리들. 보이지 않는 세계가 더 두렵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람.
그런데 우리는 보이는 세계를 보고 더 두려워 함.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음. 내가 처한 환경을 보고 우리는 두려워 함. 세상 소리를 듣고 우리는 미리 겁부터 먹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10명의 소리만 듣고 미리 겁부터 먹었음. 그리고 백성들은 아이고-이제 죽었구나! 원망하기 시작. 이 공포는 전염성이 있음. 내가 두려워 떨면 내 옆에 사람도 두려워 떨게 되어있음. 이런 공포 전염성은 급속도로 번져 나감. 요즈음 사회에 전반적으로 널려있는 이 공포를 우리 믿는 자들이 잠재워 버려야만 함. 성경은 우리에게 약속 하고있음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또 내일 염려를 미리 앞당겨 하지 말라고 했음. (마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이 땅에 사는 한 이 두려움은 계속 우리를 따라 다닐 것임. 끓임 없이 이모저모로 우리에게 두려움을 가져올 것임. 그러나 우리는 이 두려움에 빠져서는 안됨. 우리의 힘으로 이 두려움을 물리칠 수 없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의 능력으로 물리쳐야만 함. 마 8장 어느 날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는데 큰 풍랑이 불었음. 배가 침몰 직전에 이르렀음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음. 제자들은 소리쳤음 주여! 구원하소서 ! 우리가 죽겠나이다. 능력의 예수님이 함께 하고 계시는데도 제자들은 바람과 큰 파도만 보고 소리쳤음.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 믿음이 적은 자들아 ! " 그리고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까 잔잔케 되었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동안 수많은 기적을 보여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눈에 보이는 환경만 보고 원망하고 좌절했음. 그리고 우리가 죽게되었다고 통곡했음. 우리의 인생의 배에 우리 주님이 함께 하고 계심. 우리 인생에 고난의 파도가 치고 환난이 올 때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 떠는 자는 절대로 믿음의 사람이 아님. 믿음의 사람은 주님을 바라보고 어떤 고난이 와도 환난이 와도 참고 이기는 것임. "사망아 !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15:55) 죽음도 두렵지 않은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믿음의 사람이 될 때 그 어떤 환경에서도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 믿음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믿는 것임.
그러므로 우리는 외부에서 밀려오는 환경을 바라 볼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우리 인생의 배에 함께 하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두려움을 물리쳐야 할 것임. 능력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냉동열차에 갇혔다. 그는 그 속에서 문을 두들겼다. 그러나 아무도 듣지 못했다. 그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열차구석으로 가서 벽에 다음과 같은 유언들 썼다. '내 몸은 얼고 있다. 나는 오래 살지 못 할 것이다. 나는 곧 죽을 것이다. ' 냉동열차 문이 열렸을 때 그는 죽어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놀라운 일이 발견되었다. 그 냉동열차는 한달 동안이나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속에는 산소가 충분했다. 그는 냉기 때문에 사망한 것이 아니다. 그를 죽게 한 것은 공포였다. 두려움은 질병보다 더 무서운 것임.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 세상 것으로부터 악한 것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에 떨지 말고 담대히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잊지 마시길 축원. 세 번째:우리 밥이다 9절 믿음의 눈을 가진 여호수아와 갈렙은 저 가나안 족속들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우리 밥이다" 고 소리쳤다. 무엇을 믿고 이런 큰소리를 쳤는가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큰소리 치고 있다. 밥이다 = 먹이 라는 것. 즉 다스리게 되는 것을 뜻함.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을 다스려야만 함. 세상에 매임 받으면 안됨. 이 다스림은 어떤 육적인 다스림만 의미하는 게 아니고 영적으로도 저 세상을 다스려야만 함. 우리의 믿음은 겉으로 보아서는 누가 믿음이 좋은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을 알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이다. 입으로만 아무리 좋은 믿음을 보인다 할지라도 그 행함이 말과 다르다면 그 믿음을 우리는 의심 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예수님을 믿습니다 한다해도 그 행동이 믿는 자의 행동이 아니라면 그 사람은 입으로만 믿고 있는 자 일 것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입으로만 떠든 자들이 아니었다. 6절에 보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옷을 ㅉ었다고 했다. 이 행위는 백성들에게 의의 분노를 보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저들의 신앙에 정면으로 대적하는 모습이다. 믿음을 가진 자는 저 세상과 타협해서는 안됨. 오직 말씀 편에 서서, 예수님 편에 서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됨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다스리라고 명령 하셨음. 육으로 세상을 다스리라는 뜻이 아님. 육은 영적 세계에 지배를 받게 되어있음.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으로 저 세상을 다스려야만 함. 영적인 자가세상에 많을 때 이 세상은 자연히 육적인 방법과 육적인 냄새가 사라지게 됨. 세상은 우리의 밥임 우리가 영적인 자들이 될 때 저 세상은 우리에게 밥임. 육이 영을 리드하지 못하게 되어있는게 우주의 원리. 영은 육을 리드하게 되어있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육체 ! 우리 속에 있는 생각이 즉 영과 혼이 우리의 육체를 주관하고 리드하듯이 우리들이 영적인 자, 믿음의 눈을 가진 자들이 될 때 저 세상은 우리의 리드를 받게 되어있음. 어떻게 그런 큰 일을 우리가 할 수 있는가 예수님이 영적인 자의 편이기 때문. 예수님은 절대로 육적인 자와 함께 하지 아니함. 영적인 자와 만이 주님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임.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 (막9:23)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갈수록 이 세상은 우리에게 두려운 소식만 전해 줄 것임. 믿음 있는 자가 되지 아니하면 우리는 세상의 지배를 받게 될 것임. 세상과 타협 할것임. 두려움에 떨며 살게 될 것임. 세상의 지배는 곧 사단의 지배임. 영적인 자, 믿음 있는 자가 되지 못하면 우리는 사단의 지배를 받게 될 것임.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믿음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함. 주님은 우리에게 저 세상을 맡겨 주셨음. 우리보고 세상 속에 들어가서 빛이 되라고 하셨고 소금이 되라고 하셨음. 이제 우리는 육적인 눈에 보이는 환경에 두려워하지 말고, 육적인 귀에 들려오는 것들에게 두려워 하지 말고 영적인 자가 되지 못하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람. 세상을 영적으로 다스리기를 원하십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성령님 충만해야 됩니다. 성령님 충만 한자는 성령님의 뜻을 따라 사는 자들임. 내 뜻대로, 내 방법대로 사는 자가 아님. 생각도, 말하는 것도 영적인 생각, 영적인 말만 해야함.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우리도 같이 두려워해서는 안됨. 세상을 잡고있는 저 악한 세력과 싸우기 위해서는 우리는 성령님 충만 한자들이 되어야만 함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리가 성령님 충만하면 저 악한 세력은 우리의 밥임. 장대한 가나안 족속이 여호수아와 갈렙 눈에는 밥이었음. 우리에게도 저 사단의 세력은 우리의 밥임. 우리에게 맡겨준 먹이거리 임. 믿음의 눈을 가지고 앞으로 담대히 전진하는 신앙을 가지시기를 축원함. 승리는 우리 것임. 이미 2000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마귀의 머리를 박살 내셨음. 우리는 그냥 믿고 나가기만 하면 됨. 우리의 밥이라는 사실만 믿으시기를 축원. '결론'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차대전 중 헤롤드 럿셀이라는 공수부대원이 전투에 나갔다가 포탄에 맞아 두팔을 잃어 불구자가 됩니다. 그는 참혹한 좌절에 빠집니다. 나는 이제 쓸모 없는 하나의 고깃덩어리가 되었구나. 그런 가운데 그에게 차츰 진리의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잃은 것보다 가진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의사가 그에게 의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것으로 글을 쓰고 타이프도 치기 시작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화되어 직접 불구자의 모습으로 출연하게 됩니다. 그는 정성을 다해 연기를 합니다. 그 해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탑니다. 그 상금은 상이용사를 위해 기부합니다. 어떤 기자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당신의 신체적인 조건이 당신을 절망케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그는 태연히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나의 육체적인 장애는 나에게 도리어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잃어버린 것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남은 것을 사용할 때 잃은 것의 열배를 보상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원망과 좌절하는 자는 절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도 절대로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음. 우리가 다 잃어버리고 없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가장 소중한 믿음이 있음. 이 믿음만 강하게 하면 우리에게는 그 어떤 두려움과 좌절도 능히 이기고 승리하게 될 것임. (고후4:8-10)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강력한 로마의 세력 앞에서도 두려워 떨지 않았음. 무섭게 으르렁대는 사자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안했음.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음.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도 그 어떤 환경에도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고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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