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언치 않는 하나님 (민23:19-21)
본문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식언(食言)치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후회하지도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식언치 않는다'는 말을 영어 성경에서는 거짓말(lie) 하지 않는다라고 번역했고,'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을 뉘우침 또는 회개(repent)란 말로 번역하 였습니다. 즉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하나님은 결코 자기의 한 일에 대 해서 후회하거나 뉘우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인생이 아 니니." 란 말을 전제로 하였습니다. 다시말 하면, 모든 인생은 다 거짓말쟁 이란 뜻이고, 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후회와 늬우칠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들이란 말입니다. 이 말씀은 암몬왕 '발락'이 점쟁이 '발람'에게 돈을 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라고 하였지만, 하나님의 영(靈)이 발람에게 도리어 이스라엘을 향하여 축복을 하도록 만드시면서, 발람의 입을 통하여 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한번 다 같이 한 목소리로 따라 합시다. "하나님은 식언치 않는다하나님은 거짓말 안한다하나님은 후회하지 않는다" 여러분! 우리가 경배하며 찬양을 드리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으로 알고 있습니까 엊그제 용산 전철역에서 나오는데 웬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비틀거리며 가는 두 사람이 서로 주고 받는 말이 귀에 들려 왔습니다. 하는 말인즉 요즘 대통령 후 보들에 대하여 " 이회창이 대중이 인제 한 놈도 믿을 놈 없어" 라고 하면서 "그놈들 대통령만 되려고 빈 공약이나 하고 다니는 놈들.제놈들이 무슨 예수 나 된 것처럼 힘이 있기에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다 한다고 해" 하면서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란 말에 귀가 번쩍 열렸습니다. 아마 그들도 성경에 대하여 좀 아는지 예수님은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알고 믿었는지 아무튼 요즘 후보들을 욕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취중에 하는 말이지만, 사실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식언치 않고 후회치 않는 완결 무결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1. 하나님은 당신이 한 언약(言約)은 결코 식언(食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언약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약속의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약속의 하나님이란 한번 약속하면 그것을 끝까지 지키는 분으로서 말을 바꾸거 나, 둘러되거나, 변명하는 그런 인생들과는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을 보면 신실하게 이어져 왔습니다. 한번도 당신의 백성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구속사(救贖史)에서 우리는 더욱 더 명백하게 그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창세기의 아브라함에게서부터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우상이 득실거리는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시면서 하나님은 아브라 함에게 이렇게 약속하였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 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 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이러한 약속을 지금껏 하나님은 한번도 식언치 않으시고 당신의 한 말 그대로 인류구원의 역사(役事)를 이루어 나가시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한번도 당신의 언약을 식언치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이 범죄에 자리에서 방황할 때에도 그의 언약은 지켜져 왔으 며, 사랑의 징치(懲治)로 그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시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 은혜를 노래하면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 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라고 하였습니다.(시23:3) 즉 미천한 죄인들을 죄악의 자리에서 끌어내어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의로운 길로 인도해 가신다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감격적인 일입니까! 저는 한때 내가 내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줄 그렇게 알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내 의지대로 선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신앙 생활이 무거웠는지 모릅니다. 계명을 지키는 일, 하나님 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일, 다 내가 내 힘으로 하는 줄 그렇게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님을 늦게 깨달았을 때, 지난 세월의 신앙 생활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가를 알았습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나일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즉 말을 떡먹듯이 바꾸고, 거짓말할 수 있고, 그리고 한 일에 대하여 후회 하고 뉘우칠 수밖에 없는 부족한 존재란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은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위하여 나 같은 존재도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의 의 길로 인도해 가심을 깨달을 때, 참으로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그 인자하심 이 영원하다는 시편 기자의 고백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 하나님은 당신의 판단(判斷)과 심판(審判)에 대하여 식언치 않습니다. 하나님을 언약의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또한편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판단은 공의롭고, 그의 심판은 준엄합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누가 감히 막을 길이 없습니다. 그의 지혜와 지식은 측량할 길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1:33절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 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때때로 인간 편에서는 이해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우선 당장에 이해가 안되는 것은 하나님은 왜 죄인들의 밭에도 비를 내 리시고, 당신을 욕하고 섬기지 않는 패역한 무리들에게도 건강을 주십니까 사람 같았으면 원수를 죽이고, 보복하고, 못살도록 가두어 버리고 하여야 하겠는 데 의인의 밭에도, 죄인의 밭에도 똑 같은 햇빛과 비를 주어 곡식을 거두어들 이게 하니,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이것이 사람의 생각과 다릅니다. 그래서 "나의 생각과 너의 생각은 다르다"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결코 후회가 없으십니다. 그의 판단은 완벽하기에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심판대에 서는 사람에게 전혀 변명의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각각 행한 대로 직고(直告)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거나, 오판을 하게 하는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진리(眞理)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어떻습니까 아무리 똑똑하고 명석한 두뇌를 가졌다고 해도, 오판할 수 있습니다.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대통령이 아무리 바르게 판단하려고 해도, 그 주변에서 그의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경우에서 잘 나타난 사실이 아닙니까 권력을 잡으면 그 주변에서 그를 둘러싸서 그의 판단을 흐리 게 하는 것이 인간사(人間事)입니다. 이것은 대통령의 자리에서뿐만 아닙니다. 사람은 모두 제한되고 유한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의 판단과 지혜와 지식에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식언하고 후회하고 늬우치게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정확하십니다. 그의 판단은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습니다. 결코 변명하지도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요, 예배의 대상이란 말입니다.
3.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에서 식언치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일컬어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하다고 합니까 그것은 인간의 사랑은 다 유한적(有限的)이고, 제한적(制限的)이고, 조건적(條 件的)이고, 상대적(相對的)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을 내어 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상상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헬라인들은 이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의 사랑과 구분해서 특별한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그것을 '아가페'라고 했습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이란 말입니다. 인간의 사랑도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부부간의 사랑,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 부모자식간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그 리고 친구간의 사랑, 다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랑에는 뼈가 있는데 그 뼈가 무엇입니까 '나'라는 것이 끝까지 남아 있습니다. 모두가 나를 중심 하여 이루어지는 사랑입니다. 나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내게 좋으니까, 내게 잘하니까, 내가 원하니까, 내가 필요하니까, 내가 사랑하니까, 모두가 '나'라는 것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배신하고 떠날 때는 그런 사랑은 곧 증오로 됩니다. 나를 무시할 때는 갈라서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100년을 함께 살자고 했지만 이혼하게 됩니다. 그래서 조용필이가 부른 노래도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 나."라고 절규하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인간의 사랑은 '아픈 사랑', '가버린 사랑', '눈물의 씨앗' 등으로 묘 사 되는 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한번 맺은 사랑을 변치 않습니다. 그래서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 네"라는 찬송을 부르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허물을 기억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 도다" 라고 했습니다.(민23:21)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허물을 보지 않고, 기억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44장 22절에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 의 사라짐 같이 도말 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 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 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한번 택한 당신의 자녀들을 결코 버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죄가 있으면 회개케 만들어서라도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회개하면, 다시는 그의 과거를 기억지 않는 하나님이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맺은 사랑은 영원토록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한 사랑이기 때문에 패역한 죄인도, 방탕한 탕자도 돌아오게 된다는 말씀 입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이 사랑에 대하여 식언치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금도 그 사랑을 실 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결론적으로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로 향하여야 하겠습니다. 식언치 않는 하나님의 언약을 받들어, 이 나그네 세상에서,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 시고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 지혜를 얻기 위하여 나아와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시편 25:12절 "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 로다"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그 택할 길을 가르쳐 주시겠다고 하 였습니다. 우리 인간은 다 치우치고, 미련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선택의 지혜도 주시고, 택할 길도 가르쳐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 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란 말에 귀가 번쩍 열렸습니다. 아마 그들도 성경에 대하여 좀 아는지 예수님은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알고 믿었는지 아무튼 요즘 후보들을 욕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취중에 하는 말이지만, 사실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식언치 않고 후회치 않는 완결 무결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1. 하나님은 당신이 한 언약(言約)은 결코 식언(食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언약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약속의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약속의 하나님이란 한번 약속하면 그것을 끝까지 지키는 분으로서 말을 바꾸거 나, 둘러되거나, 변명하는 그런 인생들과는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을 보면 신실하게 이어져 왔습니다. 한번도 당신의 백성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구속사(救贖史)에서 우리는 더욱 더 명백하게 그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창세기의 아브라함에게서부터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우상이 득실거리는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시면서 하나님은 아브라 함에게 이렇게 약속하였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 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 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이러한 약속을 지금껏 하나님은 한번도 식언치 않으시고 당신의 한 말 그대로 인류구원의 역사(役事)를 이루어 나가시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한번도 당신의 언약을 식언치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이 범죄에 자리에서 방황할 때에도 그의 언약은 지켜져 왔으 며, 사랑의 징치(懲治)로 그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시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 은혜를 노래하면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 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라고 하였습니다.(시23:3) 즉 미천한 죄인들을 죄악의 자리에서 끌어내어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의로운 길로 인도해 가신다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감격적인 일입니까! 저는 한때 내가 내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줄 그렇게 알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내 의지대로 선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신앙 생활이 무거웠는지 모릅니다. 계명을 지키는 일, 하나님 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일, 다 내가 내 힘으로 하는 줄 그렇게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님을 늦게 깨달았을 때, 지난 세월의 신앙 생활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가를 알았습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나일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즉 말을 떡먹듯이 바꾸고, 거짓말할 수 있고, 그리고 한 일에 대하여 후회 하고 뉘우칠 수밖에 없는 부족한 존재란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은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위하여 나 같은 존재도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의 의 길로 인도해 가심을 깨달을 때, 참으로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그 인자하심 이 영원하다는 시편 기자의 고백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 하나님은 당신의 판단(判斷)과 심판(審判)에 대하여 식언치 않습니다. 하나님을 언약의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또한편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판단은 공의롭고, 그의 심판은 준엄합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누가 감히 막을 길이 없습니다. 그의 지혜와 지식은 측량할 길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1:33절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 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때때로 인간 편에서는 이해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우선 당장에 이해가 안되는 것은 하나님은 왜 죄인들의 밭에도 비를 내 리시고, 당신을 욕하고 섬기지 않는 패역한 무리들에게도 건강을 주십니까 사람 같았으면 원수를 죽이고, 보복하고, 못살도록 가두어 버리고 하여야 하겠는 데 의인의 밭에도, 죄인의 밭에도 똑 같은 햇빛과 비를 주어 곡식을 거두어들 이게 하니,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이것이 사람의 생각과 다릅니다. 그래서 "나의 생각과 너의 생각은 다르다"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결코 후회가 없으십니다. 그의 판단은 완벽하기에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심판대에 서는 사람에게 전혀 변명의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각각 행한 대로 직고(直告)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거나, 오판을 하게 하는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진리(眞理)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어떻습니까 아무리 똑똑하고 명석한 두뇌를 가졌다고 해도, 오판할 수 있습니다.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대통령이 아무리 바르게 판단하려고 해도, 그 주변에서 그의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경우에서 잘 나타난 사실이 아닙니까 권력을 잡으면 그 주변에서 그를 둘러싸서 그의 판단을 흐리 게 하는 것이 인간사(人間事)입니다. 이것은 대통령의 자리에서뿐만 아닙니다. 사람은 모두 제한되고 유한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의 판단과 지혜와 지식에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식언하고 후회하고 늬우치게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정확하십니다. 그의 판단은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습니다. 결코 변명하지도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요, 예배의 대상이란 말입니다.
3.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에서 식언치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일컬어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하다고 합니까 그것은 인간의 사랑은 다 유한적(有限的)이고, 제한적(制限的)이고, 조건적(條 件的)이고, 상대적(相對的)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을 내어 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상상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헬라인들은 이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의 사랑과 구분해서 특별한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그것을 '아가페'라고 했습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이란 말입니다. 인간의 사랑도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부부간의 사랑,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 부모자식간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그 리고 친구간의 사랑, 다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랑에는 뼈가 있는데 그 뼈가 무엇입니까 '나'라는 것이 끝까지 남아 있습니다. 모두가 나를 중심 하여 이루어지는 사랑입니다. 나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내게 좋으니까, 내게 잘하니까, 내가 원하니까, 내가 필요하니까, 내가 사랑하니까, 모두가 '나'라는 것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배신하고 떠날 때는 그런 사랑은 곧 증오로 됩니다. 나를 무시할 때는 갈라서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100년을 함께 살자고 했지만 이혼하게 됩니다. 그래서 조용필이가 부른 노래도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 나."라고 절규하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인간의 사랑은 '아픈 사랑', '가버린 사랑', '눈물의 씨앗' 등으로 묘 사 되는 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한번 맺은 사랑을 변치 않습니다. 그래서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 네"라는 찬송을 부르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허물을 기억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 도다" 라고 했습니다.(민23:21)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허물을 보지 않고, 기억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44장 22절에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 의 사라짐 같이 도말 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 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 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한번 택한 당신의 자녀들을 결코 버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죄가 있으면 회개케 만들어서라도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회개하면, 다시는 그의 과거를 기억지 않는 하나님이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맺은 사랑은 영원토록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한 사랑이기 때문에 패역한 죄인도, 방탕한 탕자도 돌아오게 된다는 말씀 입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이 사랑에 대하여 식언치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금도 그 사랑을 실 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결론적으로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로 향하여야 하겠습니다. 식언치 않는 하나님의 언약을 받들어, 이 나그네 세상에서,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 시고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 지혜를 얻기 위하여 나아와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시편 25:12절 "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 로다"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그 택할 길을 가르쳐 주시겠다고 하 였습니다. 우리 인간은 다 치우치고, 미련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선택의 지혜도 주시고, 택할 길도 가르쳐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 기를 기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