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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느하스여 일어나라 ! (민25:6-13)

본문

어느 시대에나 타락한 무리가 있는가 하면 그 시대를 보고 가슴 아파하고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자가 있다. 그런가 하면 그냥 그대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중간에 입장에 서서 편하게 사는 자도 있다. 오늘은 79번째3.1절을 기념하는 날이다. 1919년 3월1일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자주 독립을 선언한 그 날도 일본의 불의 앞에 수많은 이 민족이 일어섰다. 그러나 거기에는 일본에 붙어서 매국노 역할을 한자들도 많았다. 또 역시 그냥 바라보고만 있는 자들도 많이 있었다. 오늘 성경 본문에도 타락한 무리를 보고, 불의가 행해진 것을 보고 한 청년이 일어섰다. 이 청년은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 였다. 하나님은 비느하스에게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했다" 고 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비느하스는 행동을 한 것이다.3.1 운동도 기독교인들이 목사들이 주동이 되어서 독립만세를 외친 것이다. 이 시대 무섭도록 타락되어 가고 있다. 이제 남녀노소를 떠나서 빈부귀천을 떠나서 타락하고 있다. 물론 이 타락은 육적 타락도 말할 수 있지만 영적 타락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타락을 보고 앉아만 있는자가 될 것인가 시대의 타락은 남에게만 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내 가정, 내 자녀, 내 형제까지도 찾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우리는 이제라도 예수의 마음으로 일어서야 할 것이다. 특히 믿는 자라면 우리는 이대로 이 시대의 타락을 보고만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비느하스 들이여 !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 째:일어나야만 한다. 6-9절 ".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 25:1-5까지 보면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모압 여자들과 더러운 음행을 저지르고 또 부족해서 그들이 섬긴 신들에게 절을 하고 섬겼다. 백성의 지도자들까지 이 더러운 짓들을 했으니 밑에 있는 백성들의 타락은 얼마나 더 심했겠는가 하나님은 백성들의 두령들을 다 잡아서 하나님 앞에 목매달아 죽이라고 모세에게 명령 하셨다. 많은 두령들이 그날 목매달아서 죽어갔다. 이런 일을 보고 백성들이 울고 있는데 한 남자가 또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이것을 본 비느하스는 창을 들고 따라 들어가서 남자와 여자를 창으로 배를 꿰뚫어서 죽여 버렸다. 그러자 염병이 그쳤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미디안 여인 이방의 음녀다. 즉 세상 것들의 더러운 세력이다. 다툼이라는 뜻이다. 창을 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 " 염병 "죽인다" 뜻이다. 곧 무서운 전염병. 24,000 명이 염병으로 죽었다. 이 시대 염병은 무엇인가 세상 속에 있는 쾌락, 세상 적인 방법이 염병이다. 일어났다 (히) "쿰" 인데 이 뜻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다" 즉 더러운 불의를 보고 도저히 참지 못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여러분에 눈에 이 시대의 타락된 더러운 모습이 보이십니까 그 타락을 보고 가슴이 아프십니까 아니면 내 가정만 내 믿음만 잘 지키면 되지  하고 계십니까 왜! 이 땅에 이렇게 교회가 많은데 하며  울어 보셨습니까 믿는 자들이 많은데 하며. 가슴을 쳐보셨습니까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무 빠르게 급속도로 타락하고 있다. 알고 계십니까 요즈음 너무나 자주 10대의 타락이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 고 가슴이 얼마나 아픈지 모른다. 남의 자식들이라고 그냥 가볍게 보지 마시기를 바란다. 곳곳에 시골구석까지 늘어나는 러브호텔들. 이 시대 육적 타락이 이미 위험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국내 에이즈 환자가 600명을 돌파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 20대 30대가 환자라는 것이다. 에이즈로 사망자된자가 104명 라고 한다. 이것은 작년 통계다 지금은 더 늘어났을 것이다. 세상의 육적 타락만이 문제가 아니다. 영적 타락도 무섭도록 퍼져가고 있다. 오늘 본문에 백성의 지도자들이 타락 했다. 이 지도자는 세상 지도자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지도자다. 오늘날 영적 지도자들로 볼 수 있다. 며칠전 신문에서 모 교단에 이름만 대도 세계가 알만한 목사의 타락을 신문에서 보았다. 목사들의 타락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성도 여러분 ! 성도들은 어떠합니까 더 무섭도록 영적으로 타락하고 있다. 염병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왜 찾아 왔습니까 이방인과 음행 했기 때문이다  음행이 무엇입니까 음란한 짓이다. 즉 간음이다. 영적 간음 무엇입니까 세상 것을 너무 좋아하는 것이다. 이 시대 어떻게 보면 성도들이 세상사람보다 더 세상 것을 좋아하고 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약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 세상에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세상을 등지고 살으라는 말이 아니다. 세상을 너무 좋아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을 친구 삼지 말고 예수님을 친구 삼고, 교회를 더 가까이 하며 살으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 우리마져 타락의 물살에 떠내려가면 안된다. 비느하스가 타락을 보고, 불의를 보고 일어섰듯이 우리들 또한 일어서야만 한다.3.1운동때 수많은 목사들이 강력한 일본의 세력에 도전하고 일어났다. 독립선언 33인 대표 중에는 기독교인이 16명을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기독교인 유관순 학생은 17살의 여자 몸으로 일어났다. 꽃다운 나이에 유관순 학생은 불의와 싸우고 죽었다. 이 시대 우리 믿는 자들도 일어나야만 한다. 앉아서 앉은뱅이 신앙이 되어서는 안된다.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일어나라! 라는 말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독립운동 때처럼 육적으로 일어나라는 말이 아니다. 비느하스 때처럼 일어나 밖에 나가서 다 죽이라는 말이 아니다 영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이 시대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저 보이지 않은 악한 원수 마귀의 세력들이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일어나라는 것은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해서 영적 싸움을 해야만 한다. 오늘 본문에 비느하스가 나아갈 때에 빈손으로 나가지 아니했다 손에 창을 들고 나갔다고 했다. 일어나는 신앙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손이 빈손으로 나가면 안된다. 싸우러 나가는 자의 손이 비어 있다면 백전백패 일 것이다. 사단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철저하게 무장해서 쳐들어오는데 교회는 믿는 자들은 너무나 무방비 상태에 안이하게 있다. 빈총 들고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은 죽을 수밖에 없다. 칼이 없는 칼집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그 칼집이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다 . 여러분의 손에 두 날 가진 예리한 검을 나타내는 말씀을 가지시기를 축원한다. 말씀으로 우리가 먼저 변화를 받고 그 능력의 말씀 가지고 기도로 저 악한 세력과 싸우시기를 바란다. 강력한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은 싸워서 무너뜨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새벽에 매일 한 번씩 6번 돌고 일곱째 날에는 7번 돌고 소리칠 때 철벽 성 여리고 성은 우르르- 무너져 내 렸다. 강력한 아말렉 군대와 여호수와가 싸울 때 뒤에서 모세와 아론과 훌의 기도가 없었다면 이길 수 없었다. 어머니 한나의 기도가 없었다면 위대한 사무엘 선지자는 없었을 것이다. 에스더의 3일 금식 기도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만의 모략에 전멸을 당했을 것이다. 욥의 끈질긴 기도가 없었다면 사탄의 계략에 넘어가서 다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다윗의 눈물의 기도가 없었다면 위대한 왕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기도로 일어서야만 한다. 말씀으로 일어서야 한다 내 육적인 문제만 부르짖는 성도가 되지 마시고 이 시대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저 타락의 영혼들을 위해서 울부짖어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여러분의 손에 두 날 가진 예리한 말씀을 가지고 일어서야만 한다. 비느하스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믿는 자들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불의를 보고도, 타락을 보고도 불 구경하듯이 앉아서 보고만 있어서는 안된다. 막 5:35-43 야이로 회당장 딸이 죽었다. 예수님은 그 딸에게 "달리다굼" 말씀하셨다. "달리다굼" 은 "일어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가 영적으로 일어나시기를 원하고 계신다. 반드시 일어나야만 한다. 앉은뱅이 신앙 가지고는 하나님 일을 할 수없다. 다시 말해서 앉은뱅이 신앙 가지고는 영적인 자가 될 수 없다. 모두 다 일어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 찬 양 '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두 번째: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자 ! 10-11절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 제사장 가문에서 자란 비느하스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말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르침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교회에서 성도들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서 성도들의 신앙상태가 만들어져 간다. 가정에서 자녀들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서 자녀들의 생활상태가 되어져 간다.
 비느하스 "신의 계시지성소" 뜻이다. 나의 질투심 하나님의 질투심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그런 질투심이 아니다 택한 백성이 우상 숭배를 하고 더러운 죄악을 범할 때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상 나타나는 질투다. 그러한 하나님의 질투심을 비느하스는 깨달은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의 마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 안에 예수의 마음을 가지라고 하고 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 마음은 어떠한 마음입니까 빌 2:6-8 에서 잘 말씀 해주고 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 그리스도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1. 예수님은 철저히 자신을 낮추었다.
2.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예수를 믿고 있는 자들이다. 우리가 예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살펴보자 ! 과연 우리에게 예수의 마음이 있는지. .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철저히 자신들을 낮추고 있습니까 우리가 죽기까지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고 있습니까 비느하스는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는 삶을 살았다. 자신을 낮추며 살았다. 왜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세상 것들에게 미혹됩니까 자신을 낮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즐겨야 되고, 내가 기뻐야 되고, 내가 잘되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을 낮추지 못한다. 어찌 하든지 남보다 내가 잘되고 내가 더 높아지려고만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 하셨다. 마16:24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나 자신을 부인하지 아니하고는 우리는 낮아질 수 없다. 너희 자신을 부인하라는 말씀 앞에 우리가 복종하고 순종해야 할 턴데 우리는 더욱 나 자신을 내세우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나 자신을 부인하는 자는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게 되는 것이다. 예수의 마음을 가진 자는 그 마음에 성전이 이루어 진자다.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비느하스라는 이름이 지성소라는 뜻이 있듯이 우리 마음에 성전이 이루어 졌다면 말씀에 복종하고 나 자신을 낮추고, 부인하고 살아야 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마음에 예수를 믿고 성전이 이루어 졌는데도 나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고, 낮추지 못하고 세상과 타협하며,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더 좋아하며 영적 간음을 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 다면 과연 우리가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인가 우리 마음에 거룩한 성전이 자리하고 있는 자들인가 살펴보시기 바란다. 성경은 분명히 그 마음에 성전이 이루어 진자는 너희 몸은 이제 너희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닌데 어찌 내 마음대로 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어찌 세상의 더러운 것들과 짝하고 세상의 썩어질 것들에 미쳐서 예수보다도, 교회보다도, 말씀보다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예수 마음 가지고 예수를 위해 살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비느하스라는 이름이 성경에 또 있다. 삼상4장에 나오는 엘리 제사장 아들인 비느하스다. 똑같은 이름인 비느하스를 가지고 , 똑같은 제사장 집안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이 비느하스는 오늘 본문에 비느하스처럼 그런 신앙을 가지지 못했고 그런 삶도 살지 못했다. 제 명에 살지 못하고 하나님께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똑같은 이름과, 똑같은 제사장 집안에서 자랐는데도 다른 신앙과 다른 삶을 살았다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깊은 뜻을 전해주고 있다. 엘리 제사장 비느하스는 무서운 죄를 지었다.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음행을 저질렀다. 성경은 이비느하스에 대해서 삼상 2:12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기록하고 있다.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알지 아니했다고 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갖는 자와 갖지 못하는 자는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성도라는 거룩한 직함을 다 가지고 있다. 얼마나 귀한 직함인가 그러나 이 직함으로 우리가 다 된 것은 아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귀한 직책들이다. 그러나 이 직함이 나를 구원해 주는 것 아니다. 예수의 마음 갖지 못하면 . 우리의 마음이 거룩한 성전이 되지 못하면 우리는 저 세상 것들로부터 미혹 당하고 말 것이고 저 악한 영들에게 잡혀서 해서는 안될 짓들을 하고 말 것이다. 고전 6:19에서도 성도의 마음이 성전이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더 무서운 말씀은 고전 3:16-17 에 기록.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성도 여러분 ! 하나님 말씀을 두렵게 여기시기 바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모두 예수 그리스도 마음 가지고 비느하스처럼 일어나시기를 축원 합니다. 세 번째:약속을 받은 자가 되자 12-13절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 " 하나님의 질투를 대신 갚은 비느하스는 하나님께 약속을 받았다. 평화의 약속이다. 그리고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약속까지도 하셨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했으면 이런 약속을 주였겠습니까 하나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언약 하나님과 인간과의 약속이다. 하나님은 비느하스에게 두 가지 약속을 하셨다
1. 평화의 언약 이스라엘 범죄로 하나님과 깨어진 화평이 다시 회복된 것이다.
2. 그와 그 후손에게영원한 제사장 직분 비느하스는 20년동안 제사장직을 잘 감당했고 그 후손들 역시 이스라엘이 로마에 멸망하는 A.D 70년까지 제사장직을 감당했다. 속죄하였음이라 비느하스의 행동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죄를 사해주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도 비느하스처럼 이 시대에 일어나서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 하셨다. 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 우리들의 마음이 성전이 될 때 우리는 큰 일을 할 수 있는 자들이다. 담대히 일어서시기를 축원합니다.
 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를 믿지 못하고 살고있는 저들을 우리가 부러워 할 것 하나도 없다. 오히려 우리는 저들을 불쌍히 여기고 기도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 땅에 사는 것이 전부인줄 알 고사는 저들이 얼마나 불쌍한가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한100년 한500년 살지 알고 살아가는 저들 얼마나 불쌍한가 우리들이 일어서지 아니하면 저들을 붙잡고 있는 악한 영들과 싸울 사람이 없다. 비느하스가 일어서지 아니했으면 이스라엘에 내린 하나님의 저주였던 염병이 떠나지 아니했다. 이 민족에게 지금 있는 이 고난, 이 아픔들, 우리 믿는 자들이 일어나야만 한다. 교회마다 기도소리와 찬양소리가 끝이지 않고 울려야 할 것이다. 교회 강단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강하게 역사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약속을 받은 자들이다. 성경 66권의 약속의 말씀을 받은 자들이다. 우리에게 이 말씀이 있는 한 두려울게 없고 망설일게 없다. 우리가 진실로 약속을 받은 자들이라면 우리는 일어나야만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약속을 받았습니까 비느하스처럼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끝날 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고 예수님이 약속하셨다. 이 시대 이 어려움 저 세상 사람들이 경제 박사들이 정치인들이 혜결할수 없다. 믿는 자들이 일어나서 기도해야 할 때이다. 손에 말씀의 칼을 들고 이 민족을 음행의 길로 몰고가는 저 흑암의 영들을 말씀으로 물리쳐야만 한다. 믿는 자들이 이대로 주저앉아 버리면 이 민족은 회생하기 힘들 것이다. 이 땅에 염병 같은 경제적인 죽음이 온 것은 저들의 음행과 타락 때문이었지만 이 염병을 그치게 할 수 있는 길은 약속을 받은 자들이 일어나기를 우리 하나님은 원하고 계신다. 성도 여러분! 이 시골에 비록작은 교회지만 우리가 모여서 이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이다. 밤에 나오기 힘들면 오후 3시 기도회라도 나오시기를 축원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기도 하겠지만 우리도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울며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이 민족의 죄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한 자들에게 어찌 하나님께서 축복을 망설이겠습니까 약속을 받으신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고 이 민족을 음행 하게 만들고 낭떠러지로 밀치는 저 흑암의 세력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시기를 바란다. 북한에서 보내온 편지 끝에는 "약속의 땅 북한의 성도가" 라고 쓰여져 있다. 땅이 있어도 농사가 안될 정도로 폐허로 변해버린 북한 땅을 보고 그 성도는 약속의 땅이라고 적었다. 먹을 것이 없어 사람이 걸어가다가도 쓰러져 죽어 가는 저 땅을 약속의 땅이라고 했다. 예배드릴 곳이 없어서 밤이면 몇몇이 산 속으로 몰래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는 땅을 약속의 땅이라고 했다. 남한에게 가지고간 성경 한 권을 붙잡고 오열을 하는 저 땅을 약속의 땅이라고 했다. 예수 믿는다는 것 하나 때문에 성도들이 용광로 쇳물에 죽어 가는 저 땅을 약속의 땅이라고 했다. 죽도록 매를 맞으면서도 "칼로 내 심장을 도려 내 바라 내가 예수를 부인하는지." 외치며 죽어 가는 저 땅을 약속의 땅이라고 했다 . 그들은 믿고 있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북한 땅에 다시 교회를 세우고 말씀이 왕성하게 전해질 약속을 믿고 있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 하나님을 약속을 받으신 여러분 ! 이 시대의 타락을 보고 다같이 말씀으로 기도로 일어납시다. 물 속에 들어가도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하고 불 속에 들어가도 불꽃이 너를 사르지 못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은 성도 여러분 ! 비느하스처럼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예수님을 환영하는 소리를 바리새인들이 막으려고 했다. 그때 예수님은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셨다 예수의 마음을 가졌다는 우리들이 잠잠하면 저 돌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 할지도 모른다. 우리 마음에 성전을 가졌다는 자들이 잠잠하면 저 돌들이 소리 지를지도 모 른다. 약속의 말씀을 받았다 하는 자들이 잠잠히 입을 봉하고 이 시대 아픔과 고통을 대신하지 아니하면 저 자연세계가 소리 지를지 모른다. 내 육만 위해서 기도하는 입술이 되지 말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에4:13-14)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 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14)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 하만의 계략으로 유대인이 전멸 직전에 놓여있을 때 유대인으로서 왕후가 된 에스더를 모르드개가 찻아가서 유대인을 구하라고 말을 했다. "네가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잠잠하고 말이 없으면 우리의 신앙은 약속 받지 못한 신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고 말씀으로 기도로 일어나시기를 바란다. 이 때를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고 마지막 시대에 비느하스 같은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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