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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한 사람들 (민5:1-4)

본문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출발해서 가나안 땅이 바라다 보이는 요단강 동편 모압 광야까지 이르는 여정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와 레위기를 보면 시내산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우선 십계명을 중심으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맺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방법을 전수 받습니다. 성막을 만들게 되고, 하나님께 지시하신 대로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된 땅 가나안을 향해 떠나게 됩니다. 민수기는 바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 태어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행군해 가는 과정에 대한 기록입니다. 민수기의 첫 부분인 1-4장은 가나안으로 행군해 가기 위한 행군 진영을 짜는 이야기입니다. 우선 인구 조사를 했습니다. 각 지파별로 사람들의 수를 세었고 백성 전체의 숫자가 파악되었습니다. 이런 기록 때문에 이 책을 '민수기'라고 부릅니다. 다음으로 행군 준비를 했습니다. 성막을 중심에 두고 12지파의 진영을 배치했습니다. 동서남북에 각 세 지파씩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행군시의 행동 요령을 정했습니다. 이어서 성막을 관리할 레위지파의 임무를 정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가나안으로 출발할 준비가 끝났습니다. 전열을 정비했고, 행군 시 행동 요령을 하달했습니다. 겉으로 볼 때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남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정신적인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다운 마음가짐과 정신 자세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외적인 준비를 마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신적인 준비를 지시하십니다.
민수기 두 번째 부분인 5-10장이 이런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세계 전쟁사에 길이 남을 전쟁 중에 1967년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 벌어졌던 7일 전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겨우 300만 인구를 가진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나라의 군대가 2억에 가까운 인구를 가진 아랍의 연합군을 물리친 것입니다. 군사력 즉 무기나 병력면에서 이스라엘은 아랍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세였습니다. 오일 달러로 무장한 아랍의 경제력은 이스라엘이 도저히 감당키 어려운 상대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놀랍게도 이스라엘의 승리였습니다. 그것도 7일만의 승리였습니다. 전쟁 소식이 미국에 유학 중인 이스라엘 학생들과 아랍 학생들에게 동시에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그 반응은 전혀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학생들은 보따리를 쌌습니다. 그리고 공항으로 달려갔습니다.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랍 학생들도 보따리를 쌌습니다. 그리고 숨을 곳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모국에서 어떤 연락이 올까 두려워서였습니다. 나라의 위기를 온 몸을 던져 이겨보려는 이스라엘, 나라의 위기에 자기만 살겠다고 발을 빼는 아랍, 전쟁의 승패는 이미 결정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면에서 열세였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정신력에서는 아랍이 감히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무장되어있었습니다. 전쟁의 결과는 바로 정신력에서 판가름 났습니다. 지금 세계는 우리나라의 금 모으기 운동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건국이래 초유의 국가 부도사태를 맞아 우리 국민이 보여주고 있는 애국적 행동은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같은 경제위기사태를 맞고 있는 인도네시아나 태국의 국민들이 저만 살겠다고 생필품 사재기를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 국민들은 장롱 속에 잠자고 있던 금 부치를 들고 나라를 살리는데 조금이라도 보태겠다고 나섰습니다. 외국 언론들이 이런 차이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의 이런 정신자세가 외국 자본가들의 마음을 안심시켜 투자의 발걸음이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외환 위기 탈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큰 시련이 닥쳐와도 우리의 살고 죽는 것은 시련의 크기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가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의 정신자세에 달려있습니다.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 해보자는 다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빚으셔야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정신 상태는 노예근성으로 썩을 대로 썩어있었습니다. 패배감과 좌절감, 그리고 우리는 할 수 없다는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런 정신 상태로는 가나안 행군은 불가능했습니다. 도처에 어려운 난관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정신 무장을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시게 되었습니다. 오늘 봉독해 주신 본문 말씀이 그 특단의 조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진 밖으로 내어 보내어 본문 2-3절에 "모든 문둥병 환자와 유출병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케 된 자를 다 진 밖으로 내어 보내되 무론 남녀하고 다 진 밖으로 내어 보내어 그들로 진을 더럽히게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단의 조치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부정한 자들을 쫓아내라는 것입니다. 아프지만 고통스럽지만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부정한 일부 사람들을 버리는 것입니다. 앞으로 가나안으로의 행군에 방해가 될 사람들을 제거해 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부정하다고 말씀하신 사람들은 세 종류의 사람들입니다. 문둥병 환자, 유출병자, 그리고 시체를 만진 자입니다. 하 마디로 더럽고 부정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이들을 왜 진 내에서 쫓아내셨을까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제거하셨을까요 우선 이들을 두고 새롭게 정신무장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진 내에 사람들은 모두가 더럽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정했습니다. 수백 년을 노예로 살았기 때문에 노예근성, 거지근성이 몸에 배었습니다. 더러우면 더러운 대로 부정하면 부정한 대로 살았습니다. 이제 몸에 배어서 차라리 더럽고 부정한 것이 편합니다. 깨끗하게 씻고 정결하게 치장하는 것이 귀찮고 힘이 듭니다. 그래서 나도 부정하고 너도 부정합니다. 자기도 더럽고 부정하기 때문에 남들 더럽다고 남들 부정하다고 탓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실 수 없으셨습니다. 공동체 전체를 정결케 하는 특별한 수단을 강구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장 부정하고 더러운 사람들을 골라 진에서 내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신 자세를 바로 잡으셨습니다. 여러 해 전에 집 나온 부랑자 한 사람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고향이 마산인데 차비가 없어서 그러니 도와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멀쩡하게 생긴 청년이어서 망설이기도 했지만 차비에 쓰라고 2만원을 주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다른 목사님들도 다 속았습니다. 며칠 뒤에 길거리에서 그 사람을 또 만났습니다. 화도 났지만 이 사람을 새사람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며칠을 계속 만났습니다. 먹을 것도 사주고, 입을 것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말로 타일렀습니다. 신체 건장한 사람이 왜 이렇게 다니느냐고, 일을 하라고 다그쳤습니다. 그리고 일자리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다만 구걸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거지근성이 온 몸과 마음에 가득 배어있었습니다.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당분간 이 사람을 매일 만나기로 했습니다. 매일 먹을 것을 해결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매일 만나러 올 때 세수를 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세수하던 사람이 매일 세수하려니 너무 힘들다고 죽겠다고 야단입니다. 3일 뒤에는 한 가지 더 약속을 했습니다. 매일 머리도 감고 오라고 했습니다. 더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자 사람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이 바뀌고 무엇인가 해 보려는 의욕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서 주유소에 취직을 하게 됐고, 교회에도 나오게 됐습니다. 간단한 세수가 부랑아를 새사람 되게 한 것입니다. 손과 얼굴을 씻었는데 그 마음도 씻겼습니다. 생각도 의식도 씻겼습니다. 저는 이 일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몸이 더러우면 생각도 더러워지고, 정신도 더러워지고, 나중에는 그 사람 자체가 더러워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더러운 것을 씻으면 생각도 바뀌고, 정신도 마음도 새로워진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으로 죄를 지면 그 사람의 영혼이 더러워지고 그 사람 자체도 더러워집니다. 하나님 보실 때 그 사람은 부정합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그 영혼이 깨끗해지고 그 사람도 깨끗해집니다. 더러운 것을 씻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공동체가 사는 길입니다. 다음으로 이런 부정한 것들은 전염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둥병, 유출병, 그리고 시체를 만진 사람들은 그 병 자체가 전염성이 없을 지라도 당시 3500년 전의 위생 상황으로 볼 때 많은 전염병의 근원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병균의 온상 역할을 해서 공동체 전체에 전염되면 모두가 몰살할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런 전염성으로부터 보존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신 것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죄는 전염성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그렇고, 공동체적 차원에서도 그렇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바들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처럼 작고 드러나지 않는 죄 하나가 양심을 점차 마비시켜 나중에는 큰 죄를 짓게 만듭니다. 그리고 공동체적 차원에서 주변에 죄짓는 사람들이 한 둘 생기면 많은 사람들이 다 따라합니다. 교회에 직분 맡은 사람도 그러는데 나도 하면 어때! 누구도 하는데 나라고 별 수 있나! 죄가 점점 공동체 전체로 퍼져 갑니다. 식용 개구리를 삶는 방법은 독특하답니다. 개구리를 죽인 후에 뜨거운 물에 넣어서 삶으면 맛이 없답니다. 그래서 산채로 개구리를 삶는 답니다. 뜨거운 물에 산 개구리를 넣으면 이 놈들이 펄쩍 펄쩍 뛰어서 온통 난장판이 된답니다.
그런데 개구리를 미지근한 물에 넣으면 몸에 맞고 따뜻하니까 솥 안에서 헤엄치고 논답니다. 조금씩 온도를 높인답니다. 몸이 풀어지고 따뜻한 물에 적응이 돼서 개구리가 견뎌간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아주 뜨거워져도 나오지를 못하고 삶아지고 만답니다. 바로 이것이 사탄의 전략이기도 합니다. 사탄은 처음부터 우리가 큰 죄를 짓도록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쉽게 알아서 따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아는 듯 모르는 듯 유혹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빠져오도록 서서히 유도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합니다.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그것이 아무리 적은 죄일지라도 죄는 전염성이 있습니다. 나중에 내 영혼 전체를 파멸시킵니다. 우리 신앙 공동체 전체를 붕괴시킵니다. 죄를 씻어내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 할 지라도 반드시 씻어내야 합니다. 이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고, 우리 공동체를 살리는 길입니다. 진을 더럽히지 말라 본문의 명령은 어떻게 생각해 보면 너무도 가혹합니다. 문둥병 환자, 유출병 환자 이들은 진 중에 두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치료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진 밖으로 내어쫓는다면 죽으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시체를 만진 사람들도 진 밖으로 내몬다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신약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행 5장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다른 사람들처럼 교회에 헌금하기 위해서 재산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 중의 일부를 감추고 일부만 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성령님을 속였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헌금을 내고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헌금 내지 않은 사람도 많은데 그래도 헌금 낸 이 두 사람을 죽이는 것은 너무 심한 처사가 아닐까 항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더러운 사람, 부정한 사람을 미워하십니다. 용납하실 수가 없습니다. 가까이 두실 수가 없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시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받아들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역사는 그 다음에 시작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전체 하나님의 백성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인 교회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전체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교회를 정결하게 보존하시고자 하십니다. 동상이 걸려서 발가락이 썩어 들어가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발가락 자르는 것 그 자체가 커다란 고통일 것입니다. 그러나 발가락보다는 생명이 더 귀합니다. 생명을 잃으면 발가락 뿐 아니란 몸 전체를 잃어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경종을 울리시고자 하십니다. 교인들에게 경종을 울려주시고자 하십니다. 정결케 하려는 자세를 갖게 하십니다. 죄를 지으면 아파하고 괴로워해야 합니다. 죄를 짓자마자 회개하고 새롭게 변화되려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정결케 될 수 있습니까 요일 1:7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앞에 나아와 믿음으로 죄를 고하고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이 길 밖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성결하게 되는 길은 없습니다. 이것이 부정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성결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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