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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형통케 하시리니 (느2:11-20)

본문

요즘 우리 사회가 두 가지의 큰 문제로 아주 심하게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바 로 국회 노동법 문제와 그리고 한보사태 입니다. 현재 나라의 무역수지가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또 기업체마다 대량 감원 으로 실업자가 근래에만 10만명이 더 생겼다고 하는데 게다가 이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해서 더욱 여건을 어렵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한보사태는 우리 사회 현재의 심각하게 부패된 모습을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보 여주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한 개인이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서 추진해 나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바로 한보 철강이라는 회사와 그 대표인 정태수 회 장입니다. 그는 철강업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100만평의 바다를 매립하여 당진 제철소를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필요한 수조원의 자금를 마련하기 위해서 정계, 관계, 금융계 할 것 없이 한마디로 무차별 로비 활동을 했던 것이 언론을 통해서 발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비 의 귀재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로비 활동이란 한마디로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돈으로 사람을 포섭하는 것 을 말합니다. 뇌물입니다. 현행법상으로도 불법입니다. 그리고 국회의 노동법 사건은 현 정권의 아주 커다란 오점으로 기록될 판입니다. 아주 이른 새벽에 여당 의원들끼리만 기습적으로 국회를 열어서 노동법을 통과시켜 서 바로 그날 아침부터 전국적으로 파업 사태를 불러일으키게 되어 날치기 통과라는 오명을 씻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노동계 뿐만 아니라 종교계를 비롯한 각계 각층으로부터도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정부가 하는 일에 온 국민이 발벗고 나서며 한 마음으로 협력을 해도 어려울 판 인데 이렇게 대다수의 국민들의 반발을 사는 일을 조급하게 해 버리니 참 답답한 마음입니다. 이러한 작금의 어려운 사건 현실을 보면서 성경은 무어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는지 를 살펴보고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하는 시각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반 성하며 우리의 거울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남 유다가 바벨론에 망하여서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다가 70년만에 귀환을 하게 되었습니다. 에스라 스룹바벨등의 지도자를 통하여 귀환하여 성전은 가까스로 재건 하였지만 아직도 예루살렘 성벽은 재건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 페르시아 제국의 수산궁에서 왕의 관원으로 있던 느헤미야라는 사람이 갑자기 자기 본국 수도 예루살렘 성 재건의 뜻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왕의 측근이었으므로 편안하게 좋은 위치에서 한평생 잘 살수도 있었는데 불구하고 그의 마음에는 늘 본국 생각으로 간절했습니다. 만약에 그 성이 아직도 재건되지 못하고 있다면 나라도 당장에 그곳에 가서 성을 재건하리라 하는 뜻을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이러한 생각을 품게 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감화시키셔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본문 은 말합니다. 느헤미야 2장 12절입니다.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 예루살렘 을 위하여 행하게 하신 일" 사람들이 어떤 목표를 세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감화하셔서 그러한 목표를 세 우게 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뜻을 세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감화하셔서 그러한 뜻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계획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 실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감화하셔서 그 일을 마음에 계획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의 마음에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소원을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 말씀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 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라는 말이 있습니다. 느헤 미야의 경우가 바로 이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비교를 해 보십시다. 한보그룹 정태수씨는 평생에 철강 사업에 남다른 강 한 애착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도되는데 과연 정태수씨의 마음에 있는 그 열망과 소원도 하나님께서 감화시켜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아니면 자기 욕심에 끌려서 그 러한 마음을 품은 것입니까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가 아니면 사람으로부터 온 것인가 우리는 이것 부터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일을 위하여서 이 땅에 자기가 만든 사람 들을 사용하십니다. 사람을 사용하셔서 일을 행하십니다. 먼저 그 사람에게 그 일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도록 감화를 시키십니다. 어쩐지 기도할 때면 자꾸 마음에 감동이 됩니다. 어쩐지 기도할 때면 자꾸 그 일이 마음에 떠오릅니다. 어쩐지 자꾸 마음에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마음을 주셔서 소원이 생기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을 목표로 삼고 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하늘의 뜻을 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에 소원으로 주신 것을 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순전히 인간적인 생각과 뜻과 계획으로 어떤 일을 추진하며 목표하고 있다면 나중 결과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이 말하는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바리새 인의 지도자로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즘 말하면 위대한 교수, 학자입니다. 사 도들이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자 바리새인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그 사도들을 잡아다 가 옥에 가두기도 하고 복음 전하지 못하게 방해를 합니다. 그러자 가말리엘은 바리새인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 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행5:36-39)
사람이 하는 어떤 일도 하나님께로서 난 것이 있고 사람에게서 난 일이 있습니다. 사람에게서 난 것은 순전히 사람이 인간적인 생각으로 추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게서 난 것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뜻을 작정하시고 그것을 사람에게 소원으로 마음에 감화시켜서 주신 것을 말합니다. 사람에게서 난 일은 결국 무너질 것이요 하나님께로서 난 일은 결국은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느헤미야가 자기 본국에 가서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려고 하였던 일은 하나님께로 서 난 것입니다. 그러나 한보철강 정태수씨의 마음의 소원, 불법으로 수조원을 빌려 서라도 꼭 철강 사업을 해야겠다는 소원은 과연 하나님께로서 난 것입니까 그가 과연 깊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에 성령님에 감화되어서 그것을 하기로 결심했었을까 요 독일의 히틀러는 나치 독일이 유럽을 통일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일어났습니다. 일본의 동조는 대동아 연방 대 일본 제국을 건설하는 목표로 일어났습니다. 러시아 의 레닌은 꿈의 공산주의 세계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러 한 것들은 인간이 세운 헛된 계획들입니다. 결국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다 무너지고 말뿐입니다. 내 뜻을 이루고자 하는 자는 결국 바벨탑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고야 맙니다.
창 세기 11장에 보면 인간들이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바벨탑을 쌓는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나중에 그들을 흩어 버리셨습니다.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뜻을 세워 주시고 그것을 인간의 마음에 감화로 넣어 주셔야 하며 그렇게 감화시켜 주신 것 그것을 목표로 삼고 일을 행하 여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과연 정태수씨는 천하를 다스리며 섭리하고 계시는 하나님께 무릎꿇고 깊이 기도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감화를 받아서 그 일을 계획하였던 것일까요 인간이 하나님 과는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뜻을 세웠기 때문에 결국은 그 일을 자기가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것이요 그로 인해서 하청 업체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 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서 느헤미야가 행하려고 목표한 것은 하나님의 감화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세워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느헤미야 1장에 보면 느헤미야가 자기 본국의 예루살렘 성이 훼손되고 다 파괴되 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부터 그가 어떻게 하였는가가 소상하게 나옵니다. 언젠가 느헤미야 1장을 본문으로 해서 설교 말씀을 드릴 때에 자세히 설명해 드 린바 있습니다. 자기가 예루살렘으로 가야 되고, 그리고 가서 성을 건축하려면 재목 들도 필요하고, 또한 길을 가는데 왕의 통과 조서도 필요하고 등등 왕의 재가가 없 으면 도무지 안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런 것들을 위하여 로비 활 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단지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4절에 보니까 울면서 수일 동안 슬퍼 하며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5절에 보면 간구한다고 했습니다. 6절에 보니까 주야로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죄를 자복하며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로비 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 이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기도로 간구한 것입니다. 기도의 방법을 쓴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십시다. 무슨 일을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많 이 로비 활동을 합니까 돈을 가지고 가서 뇌물을 쓰고 술자리를 만들어 향응으로 대접하고 권력자들을 동원해서 압력을 행사하고 갖가지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해서 일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편만한 부패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기도의 방법을 쓰라고 하는데 우리의 사회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는 안 하고 사람에게 로비 활동하는 것에만 전념합니다. 그러니 그것이 결국 탈이 날 수 밖에요. 로비 활동으로 잠시 사람들을 매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야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또한가지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을 살펴보십시다. 느헤미야는 본국으 로 돌아간 후에 바로 일을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도착하자마자 자기가 무엇 때문에 그곳에 왔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3일을 기다렸습니다. 3일 후 밤에 그는 길 안내자 두어 사람과만 나갔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시찰해 보려고 나 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도 그는 며칠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방백들은 내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 일을 유 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인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 에게 고하지 아니하다가 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느2:16) 도합 한 일주일은 지났으리라 봅니다. 느헤미야는 왜 이러한 기간을 두었습니까 그의 전에 행하던 일로 미루어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이 며칠간은 마음에 깊 은 간절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신중하게 며칠을 준비한 다음에 민의를 살피며 때를 보아서 드디어 백성들에게 발표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백성들의 호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느헤미야 2장 18절 "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 더니 저희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이렇게 되어야 무슨 일이 되는 것입니다. 국회에서 노동법을 여당 단독으로 새벽 에 기습적으로 날치기 통과를 시켜서 바로 그날 오전부터 전국적으로 노조 파업 사 태가 일어나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더욱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지금까지도 그 문제가 계속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어떠한 민의를 주셨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지는 않고 너무 여당 야당 정치 줄다리기에만 집착한 나머지 기습 통과라는 신중치 못한 일을 해 버렸습니다. 백성들이 어떤 반응으로 나올 것인가를 한번쯤 깊이 생각을 해 보고서 신중하게 모든 일들을 해 나갔더라면 하는 깊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느헤미야는 매우 신중했습니다. 기도하면서 백성들에게 하나님 께서 어떠한 감화를 주시는가 민의를 살폈던 것입니다. 자기가 제안했을 때에 백성 들에게 하나님께서 감화를 주셔서 백성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다 일어나서 건축하 자 하고 마음이 모아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 아주 신중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됩니다. 백성들이 이렇게 모두 감동되어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정부와 여당은 추진하는데 백성들이 전혀 호응을 안 해준다면 도무지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에 자원하는 심령의 감화를 주셔야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며칠간을 두고 신중하게 생각하면 서 기도하면서 방법을 모색하면서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작년부터 성전 건축을 놓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들이 마음에 감동 감화를 주셔서 성도들 사이에 자원하며 이제는 건축하자고 하는 열기가 가득해야 비로소 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성도들은 냉랭한데 목사만 억지로 추진한다고 해 보십시오 교회가 분란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 당하게 되고 시험 들기 딱 알맞습니다.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이로써 고통을 당했었 습니까 신중하게 열심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자원하는 성령님의 감 화를 주실 때 그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도움 없이는 일을 못합니다. 정부와 여당도 항상 민의를 살피며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어떠한 마음을 불어넣어 주시는가 신중하게 일을 진행해 가야 합니다. 먼저 느헤미야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감화하셔서 예루살렘 건축하려는 일을 행하 게 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느헤미야는 이 일을 하는데 있어서 고위층에게 인간적 로 비 활동을 하면서 불법의 방법을 써서 일을 진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여 서 기도의 방법으로 권력층을 감화 받도록 해서 일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또한 그는 민의를 무시하고 섣불리 일을 행한 것이 아니라 수일을 근 신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자원하는 마음을 주셔서 백성들 이 전적으로 호응할 때를 기다려서 말을 꺼내서 백성들의 호응을 얻어서 일을 시작 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어려움이 와도 전혀 거리낌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일을 진 행해 나가는 중에도 장애 세력이 등장을 합니다. 산발랏과 도비야 같은 사단의 권세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느헤미야의 일을 막아볼려고 합니다. 느헤미야 2장 19절입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비웃어 가로되 너희의 하는 일이 무엇이냐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 하기로" 위기의 어려운 순간이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담대한 신앙의 선언들 보십시오 20절입니다. "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만 일 느헤미야가 기도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어떤 불법을 저지르며 사람을 매수하 며 로비 활동을 해서 지금까지 진행을 해 왔었더라면 이 위기의 순간에 이렇게 담 대한 신앙의 고백이 가능하겠습니까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많아서 도무지 위 기 앞에서 담대함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 일이 인간의 뜻으로 세운 계획이라면, 또한 기도 없이 순전히 사람들에 게 돈 가방으로 로비 활동하여 일을 행하는 것이라면, 백성들을 억지로 동원시킨 것 이라면 이러한 어려움의 손간이 왔을 때에 절대로 느헤미야의 이 담대한 믿음의 고 백은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자신감 넘치는 이 고백을 다시 한번 들어보십시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라." 우리도 무슨 일을 하는데 있어서 어려운 때가 오면 이러한 확신에 찬 담대한 말 이 나올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이 일에 형통케 하시리라." 오히려 어려운 순간이 오면 '내가 기도 없이 너무 욕심을 부려서 시작을 했었는데 이거 잘못되는 거 아냐 내가 불법의 방법도 동원했었는데 이거 어렵게 되버리는거 아냐'하면서 확신의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걱정하며 조마조마하게 되어 버리고 안심이 아니라 의심이 가득하게 되면 결국은 그대로 터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21절에는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35절에는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상을 얻 느니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2장 28절을 보면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주님 안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말씀 안에서 행하면 나중에 담대함을 얻고 부끄럽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됩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떠나서 일을 하는 것은 곧 불법이 됩니다. 기도 없이 다른 방법을 쓰는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 시지 않으면 인간 바벨탑을 쌓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성도님 여러분 우리도 혹시 지금까지 그래 오지 않았습니까 이제라도 늦지 않았 습니다.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빛의 역할을 해야 하는 우리만이라도 성경의 느헤미 야의 방법을 본받으십시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말 도와주시고 결국 이루어 주시는 담대한 앞날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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