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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역의 원리 (느3:1)

본문

느헤미야서 3장을 읽으면 도대체 느헤미야서 3장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의 문을 누가 달았으며 누가 기둥을 달았는지 등등 성전 건축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가 나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읽고 해석하기가 난해한 이야기가 나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또 어떻게 생각하면 누가 성을 건축하였으며 누가 문짝을 달고 누가 성벽을 쌓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의미 없는, 잡다한 기록의 나열일 뿐이라는 인상을 줍니다.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접근하고 성경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원칙 하나가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기지게 함이니라"(롬 15:4)."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전에 기록한 바'는 언제나 구약성경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때는 아직 신약성경이 형성되기 이전이기 때문입니다. 즉,구약성경에 기록된 구약의 모든 사건들은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증거합니다. 또 여기서 "우리"는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를 가리킵니다. 죽,구약의 모든 말씀은 신약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교훈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자르 가지게 함"이라는 것입니다.다시 말하면, 구약성경에 기록된 어떤 바라씀도 무의미하게 그냥 기록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의 , 누구는 문짝을 달고,누구는 기둥을 ,누구는 들보를 얹었다는 성 건축에 대한 여러 가지 잡다한 이야기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 이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거민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을 쌓은 일을 단순히 성을 건축하는 하난의 작업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이 일을 주의 역사, 하나님의 일이라고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일이란 무엇인지 그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의 일이라고 할때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전도하고 봉사하는 일을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한 하나님의 일입니다.그러나 본문에서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의 성벽을 쌓는 일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그들은 지금 성전 건축이 아니라 성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는 일의 종류가 하나님 일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성경말씀에 의하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다하나님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읽고 기도하는 일만이 하나님의 일이고 직장에서 하는 일이나 교회 생활 이외의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는 사고 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즉,하나님의 일이 따로 있고 하나님의 일이 아닌것이 따로 잇는 것처럼 나누어 생각하는 , 소위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을 극복해야 합니다. 예컨대 집에서 설겆이하는 가정 주부들이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고 짜증스럽기 짝이 없는 일상 생활이라고 생각할 때 그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설거지도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7).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이와 같이 성경은 우리가 할 일이 따로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인 것을 확신하고 그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 있어서 기도로써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면 그 일이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도 성경에서 나온 사상인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이 내게 주셨다는 확신에서 출발하면 모든 일이,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또 , 이 '하나님의 일'에 대한 바른 인식은우리의 태도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칩니다. 하기 싫은 일을 짜증스럽게 하는 가정 주부와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일을 하는 가정주부의 태도는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이 교회를 건축하고 있는 데 한 사람은 짜증을 내면서 일하고 한 사람은 휘파람을 불면서 즐겁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그 옆을 지나가던 나그네가 매사에 짜증을 내며 불평하면서 일하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글쎄, 뭐 어쩌다 보니까 내 신세가 이 모양 이꼴이 되어 겨우 벽돌이나 굽고 있소 또한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성전의 한 모퉁이를 건축하는 영광스러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사고를 지니느냐에 따라서 그 일에 임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얼마만큼 달라질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느헤미야의 지도로 성을 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잘 살펴보면 그들이 이 일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던 네 가지의 중요한 원리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1.협동의 원리 본문에는 적어도 75명 이상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그리고 직업에 따라서 분류하면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직업은 15가지 이상이나 됩니다. 즉, 이 성은 한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또한 느헤미야서 을 기록한 느헤미야는 자신이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업적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여러 사람들이 갖가지 분야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이 크고 엄청난 일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 일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 것입니다." 전도서 4장 9절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귿어지지 아니하느니라"(9-12절). 이것이 협동의 힘입니다.우리가 협력할 때 무슨 일이든지 가능해집니다. 본문의 말씀은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예루살렘의 거민들은 저마다 자기가 서야 할 자리에 서서 자발적으로,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며 또한 전체와의 조화를 이루면서 마침내 이 위대한 사역을 끝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단어는 " 그 다음은 "입니다. 이것은 일의 순서를 밝히는 단순 나열이 아닙니다.영어 성경에는 이 말이 "next him, next them" 으로 되어 있습니다.즉, 그들은 자기가 서야 할 위치에 서서 그 일을 하고 또 다른 사람이 그 옆에 자기가 마땅히 서야 할 자리에 서서 그 일을 하고 , 그래서 이 엄청난 예루살렘 성의 건축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그다음에"라는 말은 3장, 32절 중에 22구절에 걸쳐서 29번이나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그들은 이 모든 일을 질서있게 조화를 이루면서 협력하여 이 위해한 역사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일들 중 한 사람의 개인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공동체의 일은 혼자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어제나 공동체의 작업입니다.하나님의 일에는 개인주의나 영웅주의가 용납되지 않습니다.성경에 보면 훌륭한 지도자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훌륭한 지도자들이 우상화되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습니다.성경을 잘 읽어 보면 성경은 위인전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영웅전이나 위인전들은 위인의 삶이 불필요하게 과장되고 영웅화되어 있습니다.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존경하는,하나님의 위대한 사람들의 삶에서 그들이 범한 실수를 가차없이 폭로하고 잇습니다.아브라함,다윗의 치부를 철저하게 폭로하면서 개인이 영웅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에게 훌륭한 지도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일을 이끌기 위한 지도자일 뿐 그가 초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가 우상이 되기 시작하면 그 순간 하나님은 이 우상을 파괴하고 헐러버리는 작업을 시작하십니다.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협동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실수가 많고 연약한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으 축복으로 이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간증을 하도록 우리를 몰아대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씀합니다.바울 사도는 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했을까요 우리의 몸을 보십시오. 몸은 얼마나 정교합니까 이 몸에는 얼마나 많은 지체가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부분들이 있습니까또 이 많은 지체들이 얼마나 질서있게 서로 돕고 있습니까 그리하여 몸의 활동이 이루어지고 잇는 것입니다.이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원리입니다. 어느 지체도 두드러져서는 안 됩니다. 모든 지체가 단 한 분, 우리의 진정한 지도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활동해야 합니다.그분만이 우리의 진정한 지도자이십니다.예수 그리스도에게 온 교회의 초점이 모여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해서 공동체를 이루어 하나님의 일을 겸허하게 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시면 백성들이 다 하나가 되었습니다.12절 이하를 보십시오.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 딸들이 중수하였고 골짜기 문은 하눈과 사노아 거민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분문까지 성벽 일천 규빗을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샘문은 미스바 지방을 다스리는 골호세이 아들 살룬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고 덮으며 문짝을 달며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왕의 동산 근처 셀라 못가의 성벽을 중수하여 다윗성에서 내려오는 층계까지 이르렀고"(12-15절). 이와 같이 '다스리는 자'도 아들과 딸도 여자도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각양각색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단일체를 형성하면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거대한 과제를 아름답게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꼭 하나의 예외가 있습니다.즉, 그들이 100% 하나가 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 주의 역사에 담부치 아니하였으며." 예루살렘 성을 다시 쌓는 위대한 작업, 하나님의 일을 방관하고 동참하지 아니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그 사람들은 귀족들이었습니다. 성경이 왜 이사실을 기록했을 까요 이런 귀족들이 언제나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도 그런 귀족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주의 일에는 언제나 그런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100%의 협조를 받지 않았을 지라도 그들의 일을 비웃고 비판하는 무리들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고 일을 성취해 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다시 말하면, 우리 교회 공동체의 과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얼마나 힘있게 수행할 수 있는가 또는 협조하는 일에 하나가 될 수 잇는 가에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두드러지는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요한서신에 보면 비협조적인 한 사람을 꼬집어 말하고 있습니다.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요삼1:9).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사람 앞에"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이라는 단서를 붙여서 오고오는 세대에 경고를 삼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비협조적인 부분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 연약하여 실수를 잘 합니다.이 부족하고 허물 많은 우리들이 정바라 하나의 통일체를 형성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위대한 역사를 성취할 수 있도록 진정한 통일성의 영성이 우리 가운데 작용하고 있는 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협동의 원리를 가지고 그 놀라운 일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2.은사의 원리 본문에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것을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적어도 15가지 이상의 직종이 등장합니다. 즉,1절에는 대제사장이 등장합니다. 8절에는 금장색(대장장이)과 향품 장사가 등장합니다. 12절에는 예루살렘 지방을 다스리는 사람들, 즉 정치인들이 등장합니다.31절에는 상고가 등장합니다.상고란 장사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는 일에 있어서 성경이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잡다하게 나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일에는 모든 사람이 다 필요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그들은 자기의 직업에 맞는 일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업에 봉사했습니다.이것이 바로 은사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 각자에게 맞는 달란트를 주셨습니다.그리고 당신이 성령님으로 거듭날 때 하나님은 당신에게 영적인 은사를 허락하셨습니다.이렇게 받은 그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업에 기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이것이 은사의 원리입니다. 본문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을 쌓는 이 위대한 사역에 있어서 한결같이 적극적인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당신은 어떤 기여를 하고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12장에 보시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전에 교회는 하나님이 각양 은사를 주신 여러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은사에 대해서 말씀합니다.그런다음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몸에 팔,다리, 머리등 여러 가지의 지체가 붙어 있듯이 우리들의 교회 속에도 하나님이 여러 가지 재능과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팔은 팔의 구실을 해야 하고 발은 발의 구실을 해야 합니다. 당신은 어떤 구실을 하고 잇습니까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될 때에 , 쥔바을 만나는 그 순간 무엇이 가장 큰 후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어떤 미국의 설교가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 그 순간, 주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실지 모른다.'사랑하는 아들(딸)아, 내가 너에게 준 은사를 가지고 네가 나에게 온전히 헌신하고 순종했었더라면 너는 이같은 큰 일을 할 수 있었을 탠데.' 우리가, 받은 은사를 가지고 온전히 순종치 못한 바로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후회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달란트와 재능을 가지고 주님의 거룩한 사역을 위해 진실로 헌신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큰 후회가 되겠습니까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사역입니다.그러나 더 보람있는 하나님의 사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당신은 보다 보람있는 사역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은사 중에 중요하지 않은 은사가 없습니다.또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에서 그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의 부분들이 다 다르듯이 은사도 다 다를 뿐 누구나가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제 몸의 모든 부분 가운데서 가장 영광스럽게 쓰임을 바고 가장 놀라운 활동을 하고 있는 부분은 입일 것입니다.그러나 이부분만 중용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몸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 몸의 전 부분 가운데서 제가 늘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발가락입니다.얼마나 불쌍합니까 1년 365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고 햇빛 한번 못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발가락의 소중함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발가락을 심하게 앓게 되는 그 순간 비로소 발가락의 위대한 실존을 확인하기 시작합니다.이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때서야 알게 됩니다.온 지체가 다 중요한 것입니다. 당신이 가진 달란트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가지고 당신은 하나님의 사역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고민해 본 적이 있습니까 금년에는 무엇을 하시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찾아보십시오.무엇인가 할 일이 있습니다.대단히 중요한 일이 있을 것입니다.받은 은사들이 활용될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은 이루어집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모든 교인들이 자기가 받은 달란트를 100% 발휘해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을 위하여 자신을 드리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윌의 꿈과 우리의 영성이 한 데 모여서 하나님의 일을 했을 때 거기에 나타날 위대한 가능성을 생각해 보십시오.초대 교회가 그래서 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도 굉장히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러고도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이 은사의 원리와 협동의 원리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3.소명의 원리 '나는 이 일을 할 수 있는가'이것은 재능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질문이 거기에서 끝나면 안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이 일을 하도록 하나님 앞에 부르심을 받았는가'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스스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소명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소명이라는 말이 제일 많이 쓰이는 때는 보통, 목사가 되려 할 때입니다. 그래서 신학교에서 제일 중요시하는 것은 입학 시험에 성적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가가 아니라 목사가 될 소명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신학 박사학위 따는 것이 목사가 되는 조건이 아닙니다.만일 그것이 목사의 조건이라면 학위를 받은 사람은 다 목사가 되어서 훌륭한 일을 해야 하는 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신학교 면접 시험에서는 지원자가 소명이 있는가를 꼭 물어 봅니다. "당신은 목사가 되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확신합니까" 신학교를 지원하려는 학생들이 저에게 오면 저는 왜 신학교를 가려고 하는지 종종 물어 봅니다. 그 대답이 아주 걸작입니다. 예비고사도 떨어지고.할 일이 없어요 그래서 목사가 되면 큰일입니다. 소명이라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그 일을 하도록 나를 부르셨는가 하는 하나님의 시킴이 문제가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소명이 있어야 하는 것은 목사뿐만 아닙니다. 어떤 일에나 마찬가지 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 가운데 하나님께서 내가 그 일을 하도록 부르셨는가라는 소명으식의 여부가 중요합니다. 본문 1절을 보십시오.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이 대제사장들이 한 일은 양문을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양문이란 양의 문으로 제사장이 제물을 바치기 위해 제단을 향해서 나아갈 때에 반드시 통과 해야 하는 문입니다.이것은 제사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제사장이 해야 하는 것은 타당합니다.그래서 그 일은 제사장이 한 것입니다.다시 말하면 그들은 소명에 따라서 이릉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시키신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셨지만 우리 모두를 다 목사가 되도록 부르신 것은 아닙니다.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 따로 따로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사울 왕이 저지른 결정적인 실수에 대한 기록입니다. 사무에 제사장이 와서 제사를 드려야만 하는 데 사무엘이 나타나지 않자 사울은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가 제사를 드렸습니다.즉, 그는 자기가 소명받지 않은 일을 했기 때문에 화를 당한 것입니다.이처럼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소명을 주셨는가'의 문제는 중요합니다. 오늘날의 교인들은 '내가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에 기여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습니다.또한 '하나님이 어떤 일에 나를 부르셨는가'를 고민하지도 않습니다.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내가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찾아야 합니다. "이번에는 성가대나 한번 해 볼까"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그래서 오늘은 성가대, 내일은 주교 교사로 집시처럼 전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성개대에 들어가기 전에 고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 일을 통하여 주님을 성기도록 정말 소명하셨는지 그리고 주님께서 성가대의 소명을 당신에게 주셨으면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세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그들은 각각, 하나님께서 그들이 어떤 일을 하도록 부르셨는지 그들의 소명을 발견했으며, 그 소명을 발견한 후에는 그 위치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이 영성이 그들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의 위대한 건축을 가능하게 했던 것입니다.
4.격려의 원리 이책은 지금 느헤미야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이름이 나와 있지 않은 사람이 또 느헤미야입니다. 사실, 느헤미야가 가장 수고를 많이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자신의 이름을 제외하고 예루살렘 성건축에 수고한 75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멧세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여러분들이 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큰 격려가 됩니까 이것이 격려의 원리입니다. 교회일을 해 보신 분들이 왜 교회 일이 힘들다고 이야기 합니까 열심히 일하고도 제일 비판당하기 쉬운 것이 교회 일이기 때문입니다. 월급도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치도록 열심히 일하고도 나중에 실컷 비판만 당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십시오. 느헤미야는 각자가 한 일을 일일이 기록함으로 그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기록하면서 느헤미야는 한 사람을 더 특별히 취급합니다.20절을 보십시오. "그 다음은 삽배의 아들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중수하여." 이 표현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용한 일이 없습니다. 보통 ".사람은 .일을 했고"라는 표현만 있습니다. 그러다가 바룩은 특별히 힘써 일했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모든 사람들이 수고했지만 그 중에서 특별히 많은 희생을 했던 한 사람을 느헤미야는 기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잊지 않고 기록한 것입니다. 이것이 그에게 얼마나 큰 격려가 될까요 우리 인간에게는 따뜻한 격려가 필요합니다.이무런 보상과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격려가 없다면 얼마나 쓸쓸하겠습니까 이것이 교회의 일꾼들에게 좌절을 안겨다 주는 요인입니다. 언제 였습니까 말없이 뒤에서 수고하시는 어느 분의 손을 붙잡고 격려를 할 때가 언제였습니까 당신의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참으로 수고했다고 격려의 말을 한 때가 언제였습니까 신약에서, 특히 바울이 우리들의 교회 생활을 가르칠 때에 제일 많이 강조한 말은 "서로"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1절 "그러므로 피차 권명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히브리서 10:24절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로마서 14장 19절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힘쓰나니." 로마서 15장 2절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 로마서 15장 7절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우리는 얼마나 서로 격려를 나누었습니까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흥미로운 인물 한 사람을 발견합니다.그가 우리의 관심을 크게 끌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소중한 인물입니다.사도행전에서 베드로와 바울처럼 두드러진 인물은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바울이 더욱 그러합닐. 사도행전의 대부분의 장을 차지하며, 일 세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세계에 심었던 바울 사도! 누가 바울의 이름을 모릅니까 그러나 바나바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 바나바라는 이름은 "격려의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이 바울 되기 전인 사울이었을때 어떤 일을 했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변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어느 날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예배당에 나타나서 다음과 같이 증거했습니다. "여러분, 나는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이렇게 변화했습니다.그리고 이제부터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바울의 말을 확실히 믿지 못했습니다.어느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수 많은 기독교인들, 당신의 아들, 딸 그리고 친구들을 죽였던 그 장본인이 들어오면서 "여러분, 나는 변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누가 팔을 벌려 그 사람을 환영하겠습니까그리하여 바울은 싸늘한 냉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한 사람 바나바는 그를 믿었습니다.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아무에게도 위로받지 못했던 그 고독한 들판에, 변화를 받은 바울이 서 있었을 때 바울을 위로하며 격려하여 그의 마음에 꿈을 심어준 사람, 그가 바로 바나바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바울을 만나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바울 선생님, 어떻게 그렇게 커다란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바울은 아마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입니다. " 다 바나바가 저를 격려했기 때문이지요. 바나바의 위로와 격려가 없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 설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격려가 바로 예루살렘 성의 위대한 역사를 마칠수 있게 한 원리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5결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서로 협동하고, 자기가 받은 은사의 분량대로 소명의식을 가지고 서로 격려하며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였읍닐. 그들이 하나가 되어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동기는 무엇입니까 체째로, 예루살렘 성 쌓는 일을 그들은 하나님의 일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우리도 시간과 물질을 드려 땀을 흘리며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위해 자신을 드릴 수 있는 것은 그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확신을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예루살렘 성을 쌓는 일은 그들에게도 유익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일이라고 확신하여 열심히 성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그 일은 자신들에게도 크게 유익했습니다. 29절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오. " 그 다음은 임멜의 아들 사독이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그 다음은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자기 침방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금장색 말기야가 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여."(29-31절). 즉, 그들은 예루살렘 성을 열심히 쌓았는데 그 일이 결국 자기들의 집에 유익했던 것입니다. 자기들의 집이 안전하게 되었고 자기들의 집이 아름답게 단장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우선 순위에 두고 먼저 했을 때 우리는 더 큰 축복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태복음 6장 33절의 원리가 아니겠습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모든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오늘, 당신은 어떤 태도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시는 지요 내가 해야 할 일을 발견해서 그 일에 정열을 쏟는 사람은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당신은 그 일을 발견하셨습니까 우리의 교회 공동체안에서도 당신이 해야 할 일을 발견하셔서 그 일에 기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당신은 단순한 구경꾼에 불과합니까 주께서 우리 모두가 동참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그래서 그 위대한 성이 다 이루어졌을 때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이 한 부분에 내 땀과 정성이 들어 있습니다. 나는 이 일을 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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