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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를 먹지 말라 (창2:8-17,말3:7-18)

본문

하나님은 이 세상을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이레째날 인간들과 안 식하시면서 인간에게 창조의 질서와 사랑과 축복의 법을 가르쳤읍니다. 하나님은 처음 사람 아담을 에덴 동산으로 데려다가 살게 했 습니다. 에덴이란 '행복'과 '낙원'을 뜻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고 인간을 낙원으로 이끄신 것입니다. 인간이 에덴에 들어 간 경로를 보면, 창2:l=절 절에 H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하셨읍니다. 이 말은 아담을 만드신 장소는 다른 데 있고 에덴 동산 에 들어간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요, 결코 아담의공 로나 노력으로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에덴 동산은 하나님의 은혜 로 받은 축복이었습니다. 에덴 동산은 하나님이 만드신 동산이_R, 오직 은혜로만 들어갈 수 있는 터전이었습니다.그리고 인간에게 이 동산을 다스리시며 지키도 록 하셨고 또 명령하시기를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을 위하여 에덴 동산을 창설하여 주신 것이_e,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였습니다. 이 동산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 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두 가지를 부탁하셨는데 동산은 가꾸어야 하고 또 동산에서 선악과는 먹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이 동산에 살 수 있는 은총은 선악과를 먹지말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악과는 인간에게 주어진 최초의 숙제요, 하나님의 시험 이었읍니다. 이것을 바로 플게 되면 낙원에서 행복하게 살 것이요, 풀지 못하면 불행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은 이 시험에 실패한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질문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드셨읍니 까 인간의 타락과 죄가 선악과를 만드신 하나님에게 있는 것처럼 코it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하t
I니다.인간올악 에 빠지도록 시험하는 분이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에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윤리적인 존재요, 자유 의지 의 결단을 지닌 인격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행동에 책 임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 의지로 악을 랙한 것이 불 행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금하신 말을 생각케 하므로 그것 을 순종하는 것이 선이고 블순종이 악이라는 것을 인식케 하였고 실 제로 먹으면 악인이 되고 순종하여 먹지 않으면 선인이 되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에덴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선악을 결정하는 시 련수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말에 불순종 하므로 악을 범했고 에 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것니다. 이런 인간의 불행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우리의 형 벌을 대신하여 저주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주신 것입니다. 갈보 리 동산 중앙의 십자가는 에덴 동산 중앙의 생명과의 선악과로 상 징하여 오던 것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갈보리 동 산 중앙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공의를 축복케 하실 뿐 아니라 당신 이 친히 생명과가 되셔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자에게는 영생을 준다는 진리인 것입저다. 오늘 우리에게도 선악과는 여전히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들에 게 선악과입니다. 누구든지 십자가는 인간 구원의 하나님의 진리로 믿고 순종하면 영원한 에덴(천국)에서 살 것이요, 이를거역하면 정 녕 죽으리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I8절에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니님의 능력이라.' 십자가는 우리에게 선악과입니다, 십자가는 전 인류에게 최후로 주 신 하나님의 시험이십니다. 순종하므로 구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s장
I8절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것 이요. 믿지 아니 하는 자는 하니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함 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성도가 교회(에덴낙원)에서 신 앙 생활을 바로 하려면 항상 조심해야 할 선악과가 있습니다.
1시간 선악과로 주일이 있습니다.
2물질 선악과로 십일조가 있습니다.
3인간 선악과로 하나님의 종들이 있습니다.
첫째, 십일조는 믈질 선악과 입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서 선한 청지기가 무엇인가를가르쳤습니다.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이는 청지기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나의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시간도 물질도 생명도 자녀도 다 주의 것이요, 다만 우리는 선하게 관리할 책임이 있을 뿐이요, 위 탁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올 때 아무 것도가지고 온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쓰고 있는 시간도 하나님께 빌린 전세 기한이요, 물질도 다 받은 것이니 함부로 낭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청지기 사명을 주시면서 청지기 원리로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청지기는 십일조를 하나님의 것으로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에 덴동산의 청지기 자격을 상실하듯이 십일조를 먹으면 물질 청지기 로서 자격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을 다스릴 권세를잃 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 물질에 매여 사는 사람이 됩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여 저주를 받아 에덴 동산에서 쫓겨 나고 가시와 엉겅퀴가 앞뒤를 가로막는 고난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신앙 생 을 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물질 세계에서 하나님의 주권의 표시는 십일조올시다. 에덴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고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은 '내가 먹지 말 라 한 실과 나무를 먹었은 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s:17)고 말씀하셨읍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한 결과로 얻은 저주입니다. 그런데 성경 말라기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와 똑같은 이유로 저주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라기 =장7-9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너희 열 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 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회에게로 돌아가리라.하였더 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덕질 하였 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회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덕질 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 하였읍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에덴 동산의 저주와 말라기 저주가 똑 같이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한 데서 온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에덴 동산의 저주는 선악과를 도적질함으로 왔고 말라기의 저주는 십일조를 도적질함으로 온 것입니다. 이와같이 십일조가 하니님 의 주권의 표시임을 알면서도 사탄은 인간들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 먹게 함으로 저주를 받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날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눈물 흘려 기도하고 철야하고 금식을 하면서도 십일조 바 치기를 그토록 힘들어 하는 까닭은 사탄이 거기에 붙어 유혹하고 훼 방하기 때문입니다. 들째, 십일조는 아브라함의 신앙고백 이었습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십일조 생활을 하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는 유대 민족의 율법 시대에 받은 것으로서 오늘날 은혜시 대에는 필요없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율법이 아닙니다. 창세기 14장18절에 보면, '살렘왕 멜기세이 떡과포도주를 가 지고 나왔으나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썩 가로되 천지의 주제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 니님이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의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라함이 그 얻은 것 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에게 주었더라' 하였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렸던 멜기세은 장차 오실 예수님의 표상이요 아브라함은 예수님에게 십일조를 처음으로 바친 조상입니다. 히브리서 7장l-s에 보면 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멜기세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 라. 썩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자 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롬을 번역한 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 도 업어 하나님의 아들 방블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하 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린 멜기세은 예수님의 모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입니다. 멜기세이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준 것은 예수님이 성찬을 베푼 모형이 었습니다. 성찬을 받고 신앙 고백으로 십일조를 드렸으니 십일조는 신앙 고백의 확증입니다. 아브라함은 십일조를 모범적으로 바치신 분 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s장2s절에 보면, '화 있을 진저 너회 바리새인이여 너 회가 박하와 회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요한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 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수님은 친히 십일조에 모범을 보이셨 습니다.
셋째.왜 하나님은 십일조의 물질을 원하실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의 일을 원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물 질 세계의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순종함으로 물질보다 크신 하나님을 섬기며 물질을 바르게 다스림으로 축복을 받아 더 잘 살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 하늘과 바 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신 우주의 창조주입니다. 시꾄 50:9-
I2절에,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 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이는 산림의 짐숭들과 천산의 생축이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숭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 이 내 것임이로다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가난하심으로 물질 올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부요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인간들에게 더 축복을 주시라고 십일조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바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 하늠 문이 열립니다. (말3 ' 1o)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신앙인의 축복은 하늘 문이열리는 것입니다. 천국은 믿음으로 하 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베드로가 고백할 때 그에게 천국 열쇠를 준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받을 때, 하늘 문이 열리고 성령님이 비둘기같이 임했다고 습니다. 성도는 하늘 문을 여는 s대 열쇠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천국 하 늘 문이 열리며, 기도로 하늘 문이 열려 성령님을 선물로 받고, 십일 조는 하늘 문을 열어 물질 축복을 받게 됩니다. 심는대로거두게 하 시는 하나텀은 믿음을 심는 자에게 천국을, 기도를 심는 자에게는 성령님을, 십일조를 심는 자에게는 물질로 거두게 하십니다. ' 항층을 금하여 주십니다. (말3:11) 황충이란 '먹는 자'를 뜻합니다. 농사를 지어 주인이 먹어야할 텐데 먹어서는 안될 벌레가 먹는다면 불행한 일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하여 모으는 것도 중요하나 황충이 없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은 열심히 하였으나 회사에 황충이 생겨 망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가썽은 행복한 결혼을 시작하였는데 애정 생활에 황 충이 생겨 가정이 파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건강하였는데 황충(질병)이 먹어 죽게 되었습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 나 회사나 국가나 황충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씸은 약속하셨습니다. 십일조를 바치는 자에게는 황충(먹는 자)을 금하여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십니다 (말3:11) 일년 동안 땀 흘려 농사를 지었어도 열매를 거두기 전에 태풍이 나 병충해로 떨어지면 헛수고가 됩니다.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의 수명도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인데 일찍 병이나 사고로 죽는 것은 기한 전에 떨어짐이요, 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졸업하지 못하고 퇴학 당하는 일 결혼하여 조금 살다가 이혼하는것 임신 한 여자가 해산하기 전에 낙태하는 것, 계를 들었는데 중도에 파장 하는 것, 사업을 시작하여 중도에 잘 되다가 망하는 것, 모두 기한 전에 떨어지는 불행입니다. 기한 전에 떨어지는 최고의 불행은 신앙 기한이 하늘나라에 까지 차지 못하고 중간에 타락해 버리는 일입니다. 이런 신자는 참 불행한 자들입니다. 땅에서 여러 모양으로 기한 전에 떨어지는 불 행이 있어도 신앙 기한만은 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 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는 고백처럼 신앙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전에 교회에서 시무할 때 인권사 (별명:인색한 권사)가 있 었습니다. 그에게 삼대 독자 아들이 있었는데 믿음 좋은 장로님 따 님을 자부로 맞았습니다.
그런데 자부가 임신하면 s개월 만에 낙태 하곤 하였습니다. 손자를 무척이나 기다리던 인권사는 초조하고 불안하기만 했읍니다.하루는 저에게 특별 기도를 부탁 하였습니다.제가 새벽에 간절히 기도하는데 이런 응답이 왔습니다.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라'는 마음에 감동이 있어 집에 돌아와 성구 사전을 찾으니 말라기 s 장
I1절에 십일조에 관계된 말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용기 가 나지 않았습니다.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도록 십일조를 바치라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주저할 때 성령님은 이 종의 마음을 충동했습니다. 하루는 인권사와 자부를 불러 조용히 말드렸습니다. 권사님, 아 이를 임신하면 기한이 개월이 되어야 아이를 낳습니까 lo개 이지요 그러면 s개월이 되어 낙태하면 기한 찬 것입니까 권사님, 말라기 5장l
1절을 읽으세요. '십일조 바치십시오.'언은 표정이 었으나 자부의 간절한 요청으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나는 뜨겁게 축복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음 주일 강단에 십일조는 올라왔으나 이종이 큰일 났습니다. 또 삼개월이 되어 낙태가 되면 어찌한단 말인가 낙태하는 날 십일 조는 이자까지 달라 할 것이요, 나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밤마다 성전에 가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한 달,두 달, 석 달 참으로 초조한 날들이 지났습니다.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석 달이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점점 배는 둥근 달처럼 불러 갔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사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고 열 달이 되어 귀염둥이 손자를 낳았으니 이 기쁘고 감사한 일을 무엇으로 표현 하겠습니까 그런 일이있은 후에는 인권사 가라 사대 '십일조가 좋긴 좋구나 ! 진작 바칠 것을 후회스럽다.고 간증 을 하였습니다. ' 땅이 아름다워집니다. (말3:11) 십일조 신앙은 심령 (밭-땅)이 아름답고, 몸 (흙으로 만들었으니) 이 건강하고 아름답고, 부요한 축복을 받아 산야가 푸르고 기름지 며 강물이 흐르고 국로가 개발되니 아름다워집니다, 전 세계 십일조하는 국가는 심령적으로 양심적인 나라, 건강한 나라, 국토가 아름다운 나라들입니다. 십일조 모르는 나라는 미개하 고 추한 나라들입니다. . 열방이 복되다 합니다. (말
3. 12)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과, 영생과 천국이 있다는 사실, 기도하므 로 신비한 은사의 체험은 불신자들이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십일 조 신앙으로 범사가 잘 되는 물질의 축복은 눈에 보이므로 남들이 복 받았다 말 합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복 받았다고 부러 워하는 나라는 미국이올시다. 미국은 청교도.의 십일조 신앙으로 세 워진 나라입니다. 한국이 오늘과 같이 경제적인 성장도 한국교회의 십일조 신앙이 형성되면서부터 받은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 하나님 나라에 특별한 소유가 됩니다. (말3:1y) 말라기 S장 17절에 보면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하였습니다 십일조 신앙은 신앙적으로 자 럽화의 신앙이요, 교회에서 흔들림이 없는 신앙으로 봉사하게 됩니다. 교회에는 구경꾼이 있고 엑스트라가 있고,주연(주인)이 있읍니다. 십일조 신앙인은 교회의 주인이 됩니다. 교회의 주연자로 봉사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신 교회는 십일조 신앙을 가지면서부터 교인 이동이 거의 없습니다. . 아낌을 받슴니다. (말 3:1y)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
I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하였습니다. 십일조 신앙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아낍니다. 교회에서도 십일조 교인을 목사도 아꺼줍니다.
넷째, 십일조 를 어떻게 바칠까요 . 소속된 교회에 바쳐야 합니다. (14:19) 아브라함이 떡과 포도주를 받은 멜기시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처럼 말씀과 은혜를 받고 있는 제단에 바쳐야 합니다. 십일조는 자 기 임의로 사용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법(납)이니다른 헌금(감사, 월정, 주일, 특별, 구역, 건축)과는 다릅니다. 십 일조를 인간적인 생각으로 약한 제단이나 신학생이나 구제사업이 나 선교 단체에 자기 임의로 드리는 것은 자기 의사가 앞선 것이니 이는 신앙이 병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가 시무하는 교회에서 한 형제가 십일조를 본 제단에 바치는 것 보다는 시골 가난한 교회에 보내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고 자기 임의로 나누어 얼마동안 하였읍니다. 합리적인 이론이었습니다. 결국은 교만해지고 자기 의가 바리새인 처럼 앞서고 교회가 멀어지고 사업조차 습니다. '온전히 바쳐야 함니다. (말 3 ' 1o) 십일조는 온전히 해야 합니다. 수입의 십분의 일을 드려야 합니다. 시내 모 교회에서는 수입의 십분의 일을 주일 헌금, 감사헌금, 정 헌금으로 나누어 바치면서 l
I조 생활을-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입니다. 생활이 어려워서 전 수입의 십분의일 이상 드릴 수 없다면십일조로 한번만 바치면 됩니다. 제가 처음 교회개칙할 때 몹시 어려운 때였습니다. 어느 교인이 매월 월정 헌금을 정해서 교회 운영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건의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교회는 운영하기 위 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요, 교인들을 영육간에 축복하는 곳이니 성경대로 십일조 하시든지 아니면 감사 헌금으로 바칠 것이요, 다른 방법은 하지 않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십일조는 십일조의 축복이 있 으므로 온전히 바쳐야 할 것입니다. 반드시 드려야 합니다. (말 3:1o) 십일조는 구원받은 자의 신앙 고백입니다. 저는 세례 문답할 때 가지 물음이 있습니다. 언제까지 믿으시렵니까 하면 죽을 때 까지 믿겠노라고 대답합니다. 믿음으로 순교할 각오가 있느냐고 물 으면 예하고 대답합니다. 참으로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모습입니다. 또 묻습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보다 귀한 분이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또렷또렷한 음성으로 확신있게 말합니다. 그러면 십일조를 하나님의 것으로 드릴 수 있는지요 하고 물으면 여기에서 글쎄요 하코 부정적인 대답을 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 모순된 고백에서 세례 받을 자격이 없음을 봅니다. 생명까지 버리면서 믿겠노라 하면서도 십일조를 못 한다면 이 얼마나 모순입니까.십일 조 결단없이 세례를 받으려는 신앙고백은 위선입니다. 이런 이유로 한신 교회의 세례 교인은 전부 십일조를 하고 있는 교회인 것입니다. 선한 일에 낙심말고 드려야 합니다. (말 3 10) 십일조를 드리면 하늘 문이 열린다고 하기에 열심히 바쳤는데 하 늘 문이 열린 것이 아니라, 더 닫힌 것처럼 답답한 때가 있습니다. 그때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자매가 종로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면서 친구의 인도로 교회 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주일이면 온종일 문을 닫고 교회에서 예배 를 드리고 십일조를 바치면서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였습니다. 그런데 단골손님은 떨어지고 장사는 더욱 안되었습니다. 예수 믿고 장 사가 안되니 낙심이 되었습니다. 주일 쉬고 또 십일조 바치고 더욱 어렵기만 하였습니다. 목사님에게 말씀드리니,감사하세요 t 하기에 장사 안되는 것도 감사합니다. 하면서 믿음으로 지냈습니다.
그런데 장사는 더욱 안되 고 한가히 안아서 성경이나 읽으니 받는 은혜는 컸으나호주머니 사 정은 답답하기만 하였습니다. 이웃집은 어꺼나 사람이 몰리는지 우리집을 향하여 망했다고 비웃기도 하여 창피하여 집을 팔고 동교동 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런데 집 팔고 일주일 후에 신문에 발표되 기를 종로에 도로 확장으로 집을 철거한다는 것이었읍퍼다. 그 자 매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장사 안되어 이사간 것이 참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선하시옵니다'라고 간증했습니다. 선한 일에 낙심하 지 말아야 합니다. 의와, 인과, 信이 있어야 합니다. (마23 23) 예수님은 바리새인처럼 사람 앞에 바치려는 그릇된 정신을 버리 라고 했습니다. 기분 좋으면 바치고,알아주면 바치고, 기분 나쁘면 안바치는 인위적인 인간의 태도를 버리라 했습니다. 또 대인 관계 에서 남의 것 사기하고 도적질하고 그리고 노동자 임금을 착취하면 서 십일조 하는 것은 인의 정신이 없는 것이요, 십일조바친다는 이 유로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십일조를 하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십일조 신앙은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의 신앙고 백의 확증입니다. 말라기 선지는 십일조의 구절구절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말s:7,Io, l
1, ls)고 강조하였습니다 십일조를 바치게 되면 열번 놀라게 된다고 합니다. 제일 처음 뗄려고 할 때 그 마음이 칼로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느 끼고 놀란다. 십일조를 하니 언제부터인가 십일조 드리는 일이 조금도 부담이 되지 않고 어렵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란다. 십분의 일을 바치고 나머지 아홉을 가지고 살 때에 그 돈을 올바 른 판단과 놀라운 지혜로 살아가는 것을 보고 놀란다. 내가 좀더 일찌기 좋은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았던가 까움으로 놀란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생활이 윤택하여지고 사람들이 자기를 가 르켜 부자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놀라게 된다. 생이 기 름져 가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된다고 합니다. 그 누구도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면서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거 짓말입니다. 물질을 주신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침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온전케 해야 합니다. 십일조는 물질의 선악과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십일조는 먹지 말아야 합니다. 십일조는 물질 축복의 종자입니다. 농부는 흉년이 들어도 종자를 먹지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 십일조 만은 바칠 줄 알아야 합니다. 가난하 면 가난한 대로 바치면 눕니다. 물질에 대한 청지기로서의 자격은 십일조를 물질 선악과로 대할 때 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십일조 안 바쳐도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신앙은 아닙니다. 십일조 때문에 믿음을 버리지는 마십시_9_ 십일조 신앙으로 크신축복 받으 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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