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은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3:8-12)
본문
세계적인 선교 기관에서 조사한 통계 결과를 보면, 헌금에 열심으로 알려 진 몰몬교 신자들은, 평균 자기 수입의 7 퍼센트(%)를 실제로 헌금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정통 기독교의 교단 평균 수치보다 높은 것입니다. 그러니 까 기독교인들은 십의 일조, 그러니까 수입의 10 퍼센트를 헌금하는 것으 로 믿고 싶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 이 재물에 대한 성경적인 태도를 가지지 못한 때문입니다. 능력이 없는 데, 어떻게 헌금할 수 있냐고 변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헌금은 많이 가지 고 있을 때, 여유있을 때, 자랑삼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우리들의 삶 전체를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하심 아래 놓아야 하는 데, 이러한 헌신은 특히 재물과의 관계에서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가 재물 에 대한 바른 태도를 가지고 성경적인 원리를 실천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삶의 상황을 다스리시는 것을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는 개인적인 평화와 만족의 기반이 됩니다. 역대상 29장 1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 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 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겸손히 우리의 삶과 소유를 주님 앞에 내어드려 야 하는 이유는
첫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재물만이 아니라, 천지가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 우리는 무엇을 소유하려고 하는 욕심 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둘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역대상 29장 14절은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 것을 믿으면, 언제 우리 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만나게 되더라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셋째,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장 32 절은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 을 아시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겠 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소유하시고 모든 것 을 통치하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으로 채워주시는 주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고, 우리는 주님의 선한 청지기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아는 자답게,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임을 고백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왼손이 모르게 하십시오. 마 6:1-4 늘 그랬듯이, 연말이나 명절이 돌아오면, 각 신문과 잡지는 숨은 미담을 소 개하느라 분주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자신도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 으면서, 더 어려운 사람들을 기꺼이 도와주는 사람들의 소식을 접하면, 매 서운 겨울 바람을 충분히 이기고도 남을 훈훈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이 야기가 있었습니다. 구두쇠로 소문난 사람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 고 보니, 그렇게 모은 돈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 사람들을 몰래 도 왔다는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숨어서 다른 사람을 도왔느 냐 고 묻자, 이 사람은 구두쇠라고 소문난 제가 도와주겠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라고 대답하면서 웃었습니다. 겉으로 보여진 것은 빡 빡한 구두쇠의 모습이었지만, 그의 내면에는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따 뜻함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남 이 알아주지 않는데도, 돕는 일을 계속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누구나 타인의 인정과 존경을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가 이렇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6장 2절을 보 십시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 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주님은 우리가 도움이 필 요한 사람을 기꺼이 도우면서도, 그 동기가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 이나,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를 바라십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 이 모르게 할 때, 주님 앞에 귀하게 여겨지는 구제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 에게서 영광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것,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돕는 모습 이고, 구제의 방법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기관이 나 단체를 통해 구제하는 방법입니다. 어떤 사람을 돕기 원하십니까 공 부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진학하지 못하는 젊은이를 돕기 원하십니까 아니면, 신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돕기 원하십니까 우리가 돕기 원하는 바로 그런 이들에게 관심을 쏟으며 활동하고 있는 단체가 있습니다. 그곳에 후원자로 등록하고, 일정한 금액을 약정해서, 정기적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오늘도 사람의 칭찬보다, 하늘에서 받을 주님의 칭찬을 귀하게 여기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신 15:7-11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미국 목사님과 중국 목사님, 그리고 한 국 목사님이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헌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미국 목사님이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 중국의 기독교인들은 헌금하기 전에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기도 하고, 기도가 끝나면, 방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린다면서요 그래서 돈을 위 로 던져서 동그라미 밖에 떨어지는 것을 주워서 주님께 드린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이 말을 들은 중국 목사님이, 재치있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미국 크리스챤들도 헌금하기 전에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기도하고, 기도가 끝나면, 방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린다면서요 그리고 돈을 던져서, 동그라미 안에 떨어진 것만 주님께 드리고, 동그라미 밖에 떨어진 것은 도로 가진다고 하던데요. 이때까지 잠자코 듣고만 있던, 한국 목사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 한국 성도님들은 동그라미를 그리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주여, 다 받으시고, 저에게는 남은 복을 내려 주십시오. 그리고 나서 눈을 꼭 감고, 돈을 전부 하늘로 던집니다. 한국 목사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 까 우스갯 소리지만, 여기에 구제나 헌금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가 잘 나 타나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전철이나, 길에서 돈을 구걸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그럴 때, 어떻게 하십니까 어떤 분은, 모른 척 그냥 지 나가기에도 마음에 걸리고, 만날 때마다 돈을 주자니 그것도 부담스럽다고 하십니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고린도후 서 9장 7절을 보십시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 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그렇습니다. 구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났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세 가지 입니다. 첫번째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돕습니다. 두번째 사람은 마지 못해 억지로 돕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번째 사람은 아예 돕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제나 헌금할 기회가 있을 때, 인색한 마음으로나 억지로 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 인줄 진실로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즐겨 내는 자 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누 군가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보고, 외면하지 않고, 즐겨 낼 수 있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당신의 보물을 쌓아 둔 곳은 어디입니까 마 19:16-26 금융 실명제 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이제는 깨끗한 돈거래가 이루어져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카드와 통장을 통해 돈이 들어 오고 나가는 것이 드러나게 되고, 이것으로 그 사람의 씀씀이를 엿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어느 곳에, 얼마나 돈을 쓰는가 하는 것은, 세무 직원에게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도 우리가 어디에 얼마나 돈을 쓰고 있는지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보물을 쌓아둔 곳에 우리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장 19절에서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 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 도 있느니라. 하늘과 땅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하늘은 안전합니다. 그러나 땅은 불안합니다. 하늘은 영원합니다. 그러나 땅은 잠깐입니다. 땅에 쌓아 둔 보물은 어떻습니까 겨울을 지내는 동안, 좀이 옷을 상하게 하는 것처 럼, 녹이 철을 삭이는 것처럼, 모였는가 싶으면 쉽게 부스러지기도 하고, 손에 쥐었는가 싶으면 어이없이 빼앗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에 쌓아둔 보물은 안전하고 영원합니다.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늘에 보물 을 쌓아두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돈을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사용할 것이냐에 대한 태도 가 세상 사람과 다를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물 질을 다룰 때에는, 하늘의 일을 우선해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집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의 씀씀이가 믿지 않는 사람의 씀씀이와 똑같다면, 그 사람은 말로만 믿노라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한 달동안 어디에, 얼마나 돈을 사용했는지 점검해 보 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영원한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과 같습니다. 땅에서도 한 날 앞을 위해 저축에, 보험에, 증권에 투자하면서, 영원한 미래를 위해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오늘도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 이라는 잠언 말씀을 생각 하면서(잠 21:5),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에 부지런히 애쓰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십시오. 마 22:15-22 해방을 맞이하면서, 우리 나라에서는 미약하지만 기독교인과 교회의 사회 봉사 활동에 힘입어, 고아원과 병원 등 기본적인 사회 시설이 운영되고, 학 교와 대학 등에서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효과적인 사회 봉사가 이루어지 려면, 그에 필요한 자원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입에 풀칠 하는 것도 어렵던 그 시절에, 한국 교회가 어떻게 사회 봉사의 책임을 감 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헌금과 헌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의 십일조는, 교회가 주체적으로 사회 봉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십일조 생활이 없었다면, 교회는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구제와 봉사의 역할을 제대 로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선배들은 수입의 10분의 1을 십일조로 바쳤습니다. 많든지 적든지, 십일조가 교회에 모이면, 이것은 교회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회 구석구석에 필요한 여러 가지 봉사에 사용되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헌금이 모여서 세계 곳곳 의 선교 사역에, 국내의 전도 사역과 미자립 교회에,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 과 교회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귀하게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와 세상 권세를 모두 인정하셨는데, 그 이유는, 원래, 교회와 세상 권세가 인간의 공공선을 증진하도록 구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 시 말해 교회와 세상 권세가 인간에게 필요한 봉사를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22장 21절을 보십시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 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권세를 통한 공공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해 희생이 필요한 것처럼, 교회가 사회의 봉사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치러야 할 희생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회 참여는, 교회 를 통한 사회 참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은 십일조를 통해, 교회가 세상에서 큰 봉사를 실천하는 것을 도울 수 있습니다. 봉사는 현실적인 희생 을 필요로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희생이 없는 봉사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에도, 그리스도인 의 희생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많은 것을 드리겠 다고 욕심내지 마십시오. 많은 것을 드리지 못한다고 자신을 책망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의 것을 돌려드린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주님 앞에 드리되, 더 드릴 수 있기를 항상 기도하십시오. 오늘도 모든 성도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첫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재물만이 아니라, 천지가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 우리는 무엇을 소유하려고 하는 욕심 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둘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역대상 29장 14절은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 것을 믿으면, 언제 우리 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만나게 되더라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셋째,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장 32 절은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 을 아시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겠 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소유하시고 모든 것 을 통치하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으로 채워주시는 주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고, 우리는 주님의 선한 청지기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아는 자답게,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임을 고백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왼손이 모르게 하십시오. 마 6:1-4 늘 그랬듯이, 연말이나 명절이 돌아오면, 각 신문과 잡지는 숨은 미담을 소 개하느라 분주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자신도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 으면서, 더 어려운 사람들을 기꺼이 도와주는 사람들의 소식을 접하면, 매 서운 겨울 바람을 충분히 이기고도 남을 훈훈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이 야기가 있었습니다. 구두쇠로 소문난 사람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 고 보니, 그렇게 모은 돈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 사람들을 몰래 도 왔다는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숨어서 다른 사람을 도왔느 냐 고 묻자, 이 사람은 구두쇠라고 소문난 제가 도와주겠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라고 대답하면서 웃었습니다. 겉으로 보여진 것은 빡 빡한 구두쇠의 모습이었지만, 그의 내면에는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따 뜻함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남 이 알아주지 않는데도, 돕는 일을 계속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누구나 타인의 인정과 존경을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가 이렇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6장 2절을 보 십시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 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주님은 우리가 도움이 필 요한 사람을 기꺼이 도우면서도, 그 동기가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 이나,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를 바라십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 이 모르게 할 때, 주님 앞에 귀하게 여겨지는 구제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 에게서 영광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것,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돕는 모습 이고, 구제의 방법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기관이 나 단체를 통해 구제하는 방법입니다. 어떤 사람을 돕기 원하십니까 공 부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진학하지 못하는 젊은이를 돕기 원하십니까 아니면, 신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돕기 원하십니까 우리가 돕기 원하는 바로 그런 이들에게 관심을 쏟으며 활동하고 있는 단체가 있습니다. 그곳에 후원자로 등록하고, 일정한 금액을 약정해서, 정기적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오늘도 사람의 칭찬보다, 하늘에서 받을 주님의 칭찬을 귀하게 여기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신 15:7-11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미국 목사님과 중국 목사님, 그리고 한 국 목사님이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헌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미국 목사님이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 중국의 기독교인들은 헌금하기 전에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기도 하고, 기도가 끝나면, 방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린다면서요 그래서 돈을 위 로 던져서 동그라미 밖에 떨어지는 것을 주워서 주님께 드린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이 말을 들은 중국 목사님이, 재치있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미국 크리스챤들도 헌금하기 전에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기도하고, 기도가 끝나면, 방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린다면서요 그리고 돈을 던져서, 동그라미 안에 떨어진 것만 주님께 드리고, 동그라미 밖에 떨어진 것은 도로 가진다고 하던데요. 이때까지 잠자코 듣고만 있던, 한국 목사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 한국 성도님들은 동그라미를 그리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주여, 다 받으시고, 저에게는 남은 복을 내려 주십시오. 그리고 나서 눈을 꼭 감고, 돈을 전부 하늘로 던집니다. 한국 목사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 까 우스갯 소리지만, 여기에 구제나 헌금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가 잘 나 타나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전철이나, 길에서 돈을 구걸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그럴 때, 어떻게 하십니까 어떤 분은, 모른 척 그냥 지 나가기에도 마음에 걸리고, 만날 때마다 돈을 주자니 그것도 부담스럽다고 하십니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고린도후 서 9장 7절을 보십시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 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그렇습니다. 구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났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세 가지 입니다. 첫번째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돕습니다. 두번째 사람은 마지 못해 억지로 돕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번째 사람은 아예 돕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제나 헌금할 기회가 있을 때, 인색한 마음으로나 억지로 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 인줄 진실로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즐겨 내는 자 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누 군가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보고, 외면하지 않고, 즐겨 낼 수 있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당신의 보물을 쌓아 둔 곳은 어디입니까 마 19:16-26 금융 실명제 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이제는 깨끗한 돈거래가 이루어져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카드와 통장을 통해 돈이 들어 오고 나가는 것이 드러나게 되고, 이것으로 그 사람의 씀씀이를 엿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어느 곳에, 얼마나 돈을 쓰는가 하는 것은, 세무 직원에게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도 우리가 어디에 얼마나 돈을 쓰고 있는지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보물을 쌓아둔 곳에 우리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장 19절에서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 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 도 있느니라. 하늘과 땅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하늘은 안전합니다. 그러나 땅은 불안합니다. 하늘은 영원합니다. 그러나 땅은 잠깐입니다. 땅에 쌓아 둔 보물은 어떻습니까 겨울을 지내는 동안, 좀이 옷을 상하게 하는 것처 럼, 녹이 철을 삭이는 것처럼, 모였는가 싶으면 쉽게 부스러지기도 하고, 손에 쥐었는가 싶으면 어이없이 빼앗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에 쌓아둔 보물은 안전하고 영원합니다.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늘에 보물 을 쌓아두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돈을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사용할 것이냐에 대한 태도 가 세상 사람과 다를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물 질을 다룰 때에는, 하늘의 일을 우선해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집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의 씀씀이가 믿지 않는 사람의 씀씀이와 똑같다면, 그 사람은 말로만 믿노라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한 달동안 어디에, 얼마나 돈을 사용했는지 점검해 보 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영원한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과 같습니다. 땅에서도 한 날 앞을 위해 저축에, 보험에, 증권에 투자하면서, 영원한 미래를 위해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오늘도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 이라는 잠언 말씀을 생각 하면서(잠 21:5),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에 부지런히 애쓰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십시오. 마 22:15-22 해방을 맞이하면서, 우리 나라에서는 미약하지만 기독교인과 교회의 사회 봉사 활동에 힘입어, 고아원과 병원 등 기본적인 사회 시설이 운영되고, 학 교와 대학 등에서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효과적인 사회 봉사가 이루어지 려면, 그에 필요한 자원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입에 풀칠 하는 것도 어렵던 그 시절에, 한국 교회가 어떻게 사회 봉사의 책임을 감 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헌금과 헌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의 십일조는, 교회가 주체적으로 사회 봉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십일조 생활이 없었다면, 교회는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구제와 봉사의 역할을 제대 로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선배들은 수입의 10분의 1을 십일조로 바쳤습니다. 많든지 적든지, 십일조가 교회에 모이면, 이것은 교회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회 구석구석에 필요한 여러 가지 봉사에 사용되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헌금이 모여서 세계 곳곳 의 선교 사역에, 국내의 전도 사역과 미자립 교회에,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 과 교회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귀하게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와 세상 권세를 모두 인정하셨는데, 그 이유는, 원래, 교회와 세상 권세가 인간의 공공선을 증진하도록 구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 시 말해 교회와 세상 권세가 인간에게 필요한 봉사를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22장 21절을 보십시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 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권세를 통한 공공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해 희생이 필요한 것처럼, 교회가 사회의 봉사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치러야 할 희생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회 참여는, 교회 를 통한 사회 참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은 십일조를 통해, 교회가 세상에서 큰 봉사를 실천하는 것을 도울 수 있습니다. 봉사는 현실적인 희생 을 필요로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희생이 없는 봉사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에도, 그리스도인 의 희생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많은 것을 드리겠 다고 욕심내지 마십시오. 많은 것을 드리지 못한다고 자신을 책망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의 것을 돌려드린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주님 앞에 드리되, 더 드릴 수 있기를 항상 기도하십시오. 오늘도 모든 성도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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