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없는 행복은 의미가 없습니다 (미6:1-8,고전1:18-31,마5:1-12)
본문
이미 7년이 지난 일이지만, 고성방앗간화재 사건을 생각하 면, 아직도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듯 싶습니다. 남은 것은 손 집사님이 사용하던 성경책뿐이고, 모든 가재 도구가 다 타버리고 말았으니,그때 제 심정은 참으로 암담했습니다. 혹 시, 두 내외의 믿음까지도 불타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염려했습니다. 강단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고 집사님을 보고 어느 정도 안심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태산같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불타고 남은 것들을 정리하던 고 집사님이 제게 성경책을 꺼내 보이며, "신기하게도 이 성경책은 불타지 않았어요"하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저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불타지 않은 성경책이 뭔가 암시하는 것만 같았 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성경책만 불타지 않고 남았던 것은, 참 신기한 일입니다. 갑자기 화재를 당한, 또 다른 집의 이야기입니다. 그야말 로, 남은 것 하나 없이, 가재도구가 완전히 다 타버리자, 이웃 들이 찾아와서, "모두 다 타버렸으니, 참으로 안됐습니다"하 고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화재 당한 그 가정 부부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이웃들에게 말했습니다. "집과 재산은 모두 다 불타 없어졌지만, 우리 가정의 행복은 아직 남아있으니, 걱정 할 것이 없습니다."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사전에는,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껴서 흐뭇해하는 상태'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러 니까, 아무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기쁨이 충만하며 마음이 흐뭇한 상태를 가리켜서 '행복'이라 말하는 듯 싶습니다. 여러분은 일년 중 얼마나 이런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행복은, 사전적인 의미와는 전혀 다릅니다.
국어사전에서 설명하는 행복이 다분히 외부적인 조건에 의하여 충족된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면, 성경에서는 일종의 '선언(宣言,아쉬레) 형식'으로 행복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이란, 인간의 노력과 수고, 아니면 천운(天運)이 있어서, 그 환경이 적절하게 조성될 때 에 갖게되는 충족한 마음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행복은,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를 전제하고 사 용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행복은, 인간 자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마태복음 5장에서 말하는 행복은, 그 조건이 적 절하게 조성될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온유한 사람'이나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고, 하나님께서 주권적 으로 선언했습니다. 그러니까, 주께서 보실 때 올바른 인생을 사는 자에게 '행복한 자'라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품안에 있을 때에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 지 바로 알고, 또한 그대로 살아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 게 해드릴 수 있는 자라야,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사행복(生死幸福)을 좌우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떠나서는 진정한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주를 떠나서 행복하기를 원하는 것은, 마치 물이 없는 곳에서 수영하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우리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떠 나서는 결단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예수 믿지 않고서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마치 수박 겉 핥듯이, 예수를 건성으로 믿는 이들 이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행스러운 일입니까 그런 사람들은 예수 를 믿는 참된 의미를 모르는 까닭에, 여전히 세상 것을 더 좋 아하고 가까이합니다. 단지 지옥 가는 것이 두려워서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1.주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부정하고, 세상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 후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될 사형수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지 못한 채, 오랜만에 먹어보는 쌀밥이 좋아서 마냥 즐거워하고 있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만일 그의 죽음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이 그를 바 라보게 된다면, 그가 얼마나 불쌍하고 가련하겠습니까 우리 가 세상에서 잠시 맛보는 즐거움과 행복이, 바로 그와 같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거듭 말씀드리지만, 미래의 사실을 알 수 없는 우리 인간은, 함부로 행복을 말할 수 없습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사실을 아시는 하나님만이 인간의 행복과 불 행을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 행복한 사람이라 선언한 자만이 진실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는, 세상 일로 해서 즐거워하거나 자랑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마치 불나비가 죽는 줄도 모르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것처럼 보여서, 안타깝기가 그지없습니다. 더군다나, 성도들이 십자가 지는 일을 멀리하고 세상일에만 파묻혀 지낼 때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걱정을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사는 것입니까
1구원관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그 들은 아직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없는 행복을 계속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가 곡 식을 잔뜩 쌓아놓고, '이제는 편안하게 행복을 노래하면서 살 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주께서 그날 밤 그의 영혼을 찾아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모든 재산이 누구 것이 되겠 느냐고, 주님은 그 어리석은 자에게 물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이 어리석은 부자처럼 사는 이가 허다 합니다. 재물을 많이 소유하면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으려면, 우선 그런 잘못 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생명줄을 쥐고 계신 주를 의지하고 따라갈 때,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의지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잘못된 생각을 버리지 않을 경우에는,
2십자가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세상 의 능력과 지혜를 더 의지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방법을 동원하여 행복을 얻으려 한다는 말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께 달 려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고자 힘 쓰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행복을 얻고자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들에게는십자가 이치가 오히려 어리석게 들린다(고전 1:18)고, 바울이 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를,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능력을 어 느 정도는 인정하나, 그 마음은 세상에 더 많이 기울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드리는 예배가 온전하겠습니까
3형식에 치우친 나머지, 마음에도 없는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온통 세상에 다 빼앗기고 있는 까닭에, 교회 오는 발걸음이 가벼울 리가 없고, 예배드리는 태도도성실치 못 합니다. 뇌물을 바치듯, 하나님께 예물을 드립니다. 세상에서 '잘 좀 봐달라'고 급행료를 주듯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영춘교회 성도들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 이 야기는 미가서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미가서 6장 6절에, "무 엇을 바치면서 하나님께 경배해야 옳겠습니까 수천 마리 양 을 드리면 기뻐하시겠습니까"하면서, 하나님을 조롱하듯이 예배를 드린다고, 미가 선지자는 한탄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백성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엉뚱한 짓만 행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도 겉으로 볼 때에는 그럴 듯해 보였습니다. 경건한 신자처럼 행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은 하나님의 말씀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새로운 목사가 부임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앞에서 슈퍼마켓을 하는 이가 "이번에 오신 목사님은 설 교를 정말 잘하신다"고 떠들어댔습니다. 하지만, 그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불신자였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그가 그렇게 말 하자, 누가 그에게 물어봤습니다. "사장님, 사장님은 목사님의 설교를 언제 들어보셨습니까" 그러자, 그 주인은, "제가 설교를 직접 들어본 일은 없습니다만, 그 교회 교인들이 외상값을 제 때에 잘 갚는 것을 보 면, 새로 오신 목사님이 얼마나 설교를 잘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하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바른 삶을 보시고 기뻐하 십니다. 주께서 제일 싫어하신 것은, 그 당시 종교인들의 이 중적인 생활 태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 것인가'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살면,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어도, 그 믿음만 온전하다면, 그는 행복한 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었어도 믿음을 잃어버리면, 잠시 사는 이 세상에서는 자 랑할 것이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 앞에서는 참 불행한 사람이 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명 줄을 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어느 때보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가, 어떤 믿음의 자세를 갖고 살아야, 하나님께로부터행복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2.겸손함과 사랑의 마음으로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팔복을 살펴보면, '하나님'과 '하늘나라' 에 관련된 것이 다섯 가지나 됩니다. 결국,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방법은, 십자가의 이치를 바 로 깨닫고, 그 십자가를 즐거이 짊어지는 것입니다.
1그것은, 십자가만이 구원의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그 지혜를 구해야 진정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만이 하나님의 능력이며 지혜가 된다(고전1:24)고 했습니다. 이어서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사람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 나, 인간의 어떤 지혜보다 훨씬 더 지혜롭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겸손히 지시기 바랍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짊어져서는 안 됩니다.
2정말 진실한 마음으로 주의 말씀을 잘 지켜 행해야 하겠 습니다. 미가서 6장 8절에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물은, 수천 마 리의 숫양이나 강물같이 흐르는 올리브 기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잘 지켜서 실천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지켜 행할 때에, 그 앞길이 환하게 열릴 것이라고 하 셨습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약속의 말씀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이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살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3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끝까지 주님과 동행해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길은 곧 십자가의 길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난이 있은 다음에야,하늘의 복과 영광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주는 올바른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5:11)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믿음대로 살려고 할 때에는, 터무니없는 말로 비난받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오히려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는 좋은 일과 괴로운 일이 교차해서 발생할 것입니다. 혹 고난이 있더라도 두려워할 것 없고, 혹 일이 잘 된 다고 해서 교만해서도 안 됩니다. 언제나 조심스럽게 주님과 동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예수 없는 행복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 시고, 우리 모두 세상 끝날까지 주의 뒤를 따름으로써 하늘의 큰상을 다 받으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국어사전에서 설명하는 행복이 다분히 외부적인 조건에 의하여 충족된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면, 성경에서는 일종의 '선언(宣言,아쉬레) 형식'으로 행복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이란, 인간의 노력과 수고, 아니면 천운(天運)이 있어서, 그 환경이 적절하게 조성될 때 에 갖게되는 충족한 마음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행복은,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를 전제하고 사 용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행복은, 인간 자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마태복음 5장에서 말하는 행복은, 그 조건이 적 절하게 조성될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온유한 사람'이나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고, 하나님께서 주권적 으로 선언했습니다. 그러니까, 주께서 보실 때 올바른 인생을 사는 자에게 '행복한 자'라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품안에 있을 때에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 지 바로 알고, 또한 그대로 살아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 게 해드릴 수 있는 자라야,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사행복(生死幸福)을 좌우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떠나서는 진정한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주를 떠나서 행복하기를 원하는 것은, 마치 물이 없는 곳에서 수영하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우리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떠 나서는 결단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예수 믿지 않고서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마치 수박 겉 핥듯이, 예수를 건성으로 믿는 이들 이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행스러운 일입니까 그런 사람들은 예수 를 믿는 참된 의미를 모르는 까닭에, 여전히 세상 것을 더 좋 아하고 가까이합니다. 단지 지옥 가는 것이 두려워서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1.주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부정하고, 세상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 후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될 사형수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지 못한 채, 오랜만에 먹어보는 쌀밥이 좋아서 마냥 즐거워하고 있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만일 그의 죽음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이 그를 바 라보게 된다면, 그가 얼마나 불쌍하고 가련하겠습니까 우리 가 세상에서 잠시 맛보는 즐거움과 행복이, 바로 그와 같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거듭 말씀드리지만, 미래의 사실을 알 수 없는 우리 인간은, 함부로 행복을 말할 수 없습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사실을 아시는 하나님만이 인간의 행복과 불 행을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 행복한 사람이라 선언한 자만이 진실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는, 세상 일로 해서 즐거워하거나 자랑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마치 불나비가 죽는 줄도 모르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것처럼 보여서, 안타깝기가 그지없습니다. 더군다나, 성도들이 십자가 지는 일을 멀리하고 세상일에만 파묻혀 지낼 때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걱정을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사는 것입니까
1구원관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그 들은 아직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없는 행복을 계속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가 곡 식을 잔뜩 쌓아놓고, '이제는 편안하게 행복을 노래하면서 살 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주께서 그날 밤 그의 영혼을 찾아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모든 재산이 누구 것이 되겠 느냐고, 주님은 그 어리석은 자에게 물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이 어리석은 부자처럼 사는 이가 허다 합니다. 재물을 많이 소유하면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으려면, 우선 그런 잘못 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생명줄을 쥐고 계신 주를 의지하고 따라갈 때,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의지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잘못된 생각을 버리지 않을 경우에는,
2십자가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세상 의 능력과 지혜를 더 의지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방법을 동원하여 행복을 얻으려 한다는 말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께 달 려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고자 힘 쓰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행복을 얻고자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들에게는십자가 이치가 오히려 어리석게 들린다(고전 1:18)고, 바울이 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를,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능력을 어 느 정도는 인정하나, 그 마음은 세상에 더 많이 기울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드리는 예배가 온전하겠습니까
3형식에 치우친 나머지, 마음에도 없는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온통 세상에 다 빼앗기고 있는 까닭에, 교회 오는 발걸음이 가벼울 리가 없고, 예배드리는 태도도성실치 못 합니다. 뇌물을 바치듯, 하나님께 예물을 드립니다. 세상에서 '잘 좀 봐달라'고 급행료를 주듯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영춘교회 성도들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 이 야기는 미가서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미가서 6장 6절에, "무 엇을 바치면서 하나님께 경배해야 옳겠습니까 수천 마리 양 을 드리면 기뻐하시겠습니까"하면서, 하나님을 조롱하듯이 예배를 드린다고, 미가 선지자는 한탄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백성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엉뚱한 짓만 행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도 겉으로 볼 때에는 그럴 듯해 보였습니다. 경건한 신자처럼 행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은 하나님의 말씀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새로운 목사가 부임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앞에서 슈퍼마켓을 하는 이가 "이번에 오신 목사님은 설 교를 정말 잘하신다"고 떠들어댔습니다. 하지만, 그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불신자였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그가 그렇게 말 하자, 누가 그에게 물어봤습니다. "사장님, 사장님은 목사님의 설교를 언제 들어보셨습니까" 그러자, 그 주인은, "제가 설교를 직접 들어본 일은 없습니다만, 그 교회 교인들이 외상값을 제 때에 잘 갚는 것을 보 면, 새로 오신 목사님이 얼마나 설교를 잘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하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바른 삶을 보시고 기뻐하 십니다. 주께서 제일 싫어하신 것은, 그 당시 종교인들의 이 중적인 생활 태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 것인가'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살면,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어도, 그 믿음만 온전하다면, 그는 행복한 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었어도 믿음을 잃어버리면, 잠시 사는 이 세상에서는 자 랑할 것이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 앞에서는 참 불행한 사람이 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명 줄을 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어느 때보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가, 어떤 믿음의 자세를 갖고 살아야, 하나님께로부터행복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2.겸손함과 사랑의 마음으로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팔복을 살펴보면, '하나님'과 '하늘나라' 에 관련된 것이 다섯 가지나 됩니다. 결국,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방법은, 십자가의 이치를 바 로 깨닫고, 그 십자가를 즐거이 짊어지는 것입니다.
1그것은, 십자가만이 구원의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그 지혜를 구해야 진정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만이 하나님의 능력이며 지혜가 된다(고전1:24)고 했습니다. 이어서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사람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 나, 인간의 어떤 지혜보다 훨씬 더 지혜롭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겸손히 지시기 바랍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짊어져서는 안 됩니다.
2정말 진실한 마음으로 주의 말씀을 잘 지켜 행해야 하겠 습니다. 미가서 6장 8절에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물은, 수천 마 리의 숫양이나 강물같이 흐르는 올리브 기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잘 지켜서 실천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지켜 행할 때에, 그 앞길이 환하게 열릴 것이라고 하 셨습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약속의 말씀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이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살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3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끝까지 주님과 동행해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길은 곧 십자가의 길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난이 있은 다음에야,하늘의 복과 영광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주는 올바른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5:11)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믿음대로 살려고 할 때에는, 터무니없는 말로 비난받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오히려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는 좋은 일과 괴로운 일이 교차해서 발생할 것입니다. 혹 고난이 있더라도 두려워할 것 없고, 혹 일이 잘 된 다고 해서 교만해서도 안 됩니다. 언제나 조심스럽게 주님과 동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예수 없는 행복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 시고, 우리 모두 세상 끝날까지 주의 뒤를 따름으로써 하늘의 큰상을 다 받으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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