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구하시는 것 (미6:6-8)
본문
간혹 외국에 무슨 학자들이 모이는 세미나라든가 또 혹은 목사님들이 모이는 그런 수양회 같은데 참석을 하게 되면 세계에 있는 많은 신학자나 목사님들이 우리 한국교회가 이렇게 특별하게 100년 동안에 크게 부흥한 것을 부러워하면서, "한국 교회의 성장의 비결이 뭐냐" 그렇게 물어보는 예가 많습니다. 그 질문을 받고 생각해 보면 선뜻 이것이다, 저것이다 대답할 말이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 부흥의 그 원초적 비결이 뭘까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은총이다.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였다' 라고 생각이 되고, "특별히 하나님께서 은총적 계기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었기 때문이다" 라고 대답하게 됩니다. 선교학을 연구해보면 다른 나라에 가서 선교를 한다고 할 때 이 선교 사역의 가장 큰 방해물 높은 장벽이 있습니다. 그것이 내셔널리즘입니다. 협소한 민족주의, 아주 좁은 생각을 하는 그런 고집스러운 민족주의가 선교의 아주 큰 장해물입니다. 그래서 자기 종교 문화에 대한 강한 집착, 이런 것들이 있으면 선교가 어려워집니다. 어떤 때는 불가능합니다. 자기 고정관념, 자기 문화에 대한 고집이 그대로 있는 동안은 개인이나 민족이나 선교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걸 넘어서야 되는데 누가 이것을 넘어뜨리겠습니까 이 담장을 넘어뜨리는 역사가 한국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3.1운동 때에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총적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우리 가까운 이웃 일본을 보십시다. 우리는 지금 25%, 기독교인이 25%라고 합니다. 이만큼 우리는 많은 기독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해서 일본은 1%, 우리는 백년역사에 25%인데 일본은 삼백년 선교역사에 1%, 영영 일본사람이 예수를 안 믿어 줍니다. 그게 무엇일까 왜 그럴까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합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닥터 리라고 하는 분은 연구비를 받아 가지고 일부러 일본에 가서 몇 년 동안 있으면서 이걸 연구했습니다. "The stranger on the land" 라고 하는 그런 책을 썼는데 그 책의 결론이 이것입니다. 일본사람들이 가지는 독특한, 아주 고집스러운 자기문화! 이것을 깨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은 교회 선교가 어려웠다하는 얘기입니다. 사실은 일본의 선교가 삼백년 전에 이루어졌고 수 백 명에 순교자도 낳습니다.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은 일본교회는 부흥이 잘 안됩니다.
그런데 한국은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특별히 종교적으로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것이 일본사람들이 한국을 침략했다고 하는 그런 사건이요, 또 이에 대한 독립을 해야겠다고 하는 우리 온 민족의 열망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심지어는 아주 진공상태였다고 합니다. 막 빨아들이듯이 기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저마다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래서 구한국의 한국말에 있어서 우리 잊지 말 것은 찬송가, 그때 찬미가라고 불렀습니다. 찬송가의 14장이 애국가입니다. 찬송가를 애국가로 애국가를 찬송가로 부르는 민족이요. 그런 교회란 말이에요. 그렇게 교회가 시작이 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협소한 민족주의를 다 벗어났습니다. 높은 문화적 장벽도 다 무너졌습니다. 쉽게 무너지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됩니다. 일본에 가서 보면요 저렇게 지금 뭐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요, 문화적으로 높다 하지만은 종교에 관한 한 한심합니다. 사방에 가미다나, 지금도 신사를 만들어놓고 그 앞에다 절하고 또 미신 섬기는 걸 보면 한심합니다. 언제나 이걸 벗어날까 자기 딴에는 이게 우리 민족의 것이다, 우리 고유의 것이다, 우리 겁니다. 기독교는 서양 종교고 우리는 우리 거다. 우리 거 찾다 보니까 그 모양된 거래요. 그러니까 의식의 변화, 이 문화적인 큰 개혁, 개방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이 기독교 선교는 아주 힘들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특별한 운동을 한 게 아니요, 이런 정치적 상황, 문화적 상황이 이렇게 만들어 주었어요. 그래서 결론은 기독교를 우리 종교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나라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신앙과 애국은 하나다! 직선 상에서 이해합니다. 그런고로 "애국자가 되려면 신앙을 가져야 한다." 여기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우리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연세 높은 어른이 한 분계십니다. 언젠가 제게 이렇게 말하는 걸 들어보았습니다. 자기가 젊었을 때, 아주 어렸을 때 식구가 여럿인데 그 형님이 늘 자기들, 동생들보고 하는 말이 "나는 조상을 섬겨야 하기 때문에 장손이라서 그저 교회에 못 나간다 만은 너희들은 교회에 나가라! 나라를 건지려면 예수를 믿어야 한다. 이 나라를 찾는 길은 예수 믿는 길밖에 없다." 그렇게 가르쳤다고 그래요. 그래 자기들은 예수를 믿게 됐다 하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생각이었습니다. 특별히3.1운동을 중시한 그 당시에는 모든 사람이 생각할 때, '나라를 찾는 길은 예수 믿는 길이다. 신앙을 갖는 것이 그것이 바로 애국이다!' 그렇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결정적 계기가 삼일운동입니다. 나라를 건지기 위해서 그들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애국이라는 것이 두 가지가 있잖아요 하나는 무력과 그리고 폭력으로 대항하는 것이죠. 무력으로 나라를 찾겠다 하는 그런 운동. 그리고 또 하나는 비폭력적이요. 그래서 삼일운동에 가장 특별한 특징은 비폭력적이란 겁니다. 절대 대항하지 않고 무력을 쓰지 않고 만세를 불렀고, 독립 만세를 부르고 그리고 한국 민족의 정체성을 그리고 독립을 선언하는 만방에 알리는 그런 것으로 비폭력적으로 애국운동을 일으켰다. 거기서 높이높이 평가하게 됩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지요. 폭력을 가지고 무력으로 나라를 찾아보려고 애쓰는 사람들 참 많았어요.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동리 저 동리에서 일본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파출소나 경찰서를 불지르기도 하고, 그래서 나라를 찾아 졌느냐 이겁니다. 그 결과로 엄청난 피해를 보았습니다. 특별히 옛날 구 만주라고 하는 땅에는 나라를 찾겠다고 애국 청년들이 많이 가서 거기서 애국운동을 많이 했습니다. 그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간간이 그들은 일본사람을 죽였습니다. 일본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불질러 버렸습니다. 이렇게 경찰서를 습격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자 그 다음에 일본사람들이 가만히 있습니까 보복을 할 때 가서는 일본사람 하나 죽였는데, 그들은 한국사람을 백 명 죽였습니다. 백 배로 보복을 했습니다. 그래서 만주에 살던 우리 동포들이 죄 없이 얼마나 많이 죽어갔는지 모릅니다. 결국은 애국운동 한다고 무기 들고 다니면서 많은 일본사람과 싸운다고 했지만은 결론은 한국사람을 죽이는 결과가 됐지요. 피는 피를 불러일으키고, 무력은 무력으로, 악은 악으로 이렇게 나타나게 됐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삼십 육년 동안 지내 온 일본정치하에서의 애국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또 어떤 사람들은 무력으로 나라를 찾아보려고 애쓰다가 안되니까 절망하고 실의에 빠지면서 이제 그 다음에는 애국이라는 것을 빙자해서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나라를 잃어 버렸는데 이 풍진 세상을 잃었는데 우리 희망이 무엇이냐 먹어라 마셔라" 그랬어요. 폭탄주가 나온 거예요. 결국은 술이라는 것도 음식인데, 그게 살자는 겁니까 죽자는 겁니까 그런 말 있자나요 코가 비틀어지도록, 코로 밭을 간다나 뭐 그래요. 어쩌자는 겝니까 이 좋지 않은 술 문화가 소위 나라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애국한다고 앉아서 한 짓이요. 그 타락이 오늘까지 흘러가고 있어요. 아직도 여기서 헤어나지 못해요. 우리 한국사람 어디가 살던지 좌우간 술 먹는데는 도사입니다. 못됐어요 아주. 부끄러운 걸 몰라요. 딴에는 이것이 애국이라고 했어요. 이따위 애국이 어디 있단 말이예요. 이것이 오늘까지 흘러오고 있는 거예요. 자 그러면 오로지 신앙인들만 우리가 당해온 이 어려운 시련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뭔가 우리가 잘못 됐으니까 근본적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겠다. 하나님 앞에 성실하게 서야 한다 해서 이제 신앙적 애국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3.1절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외칩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제가 어렸을 때도 이 노래를 얼마나 불렀는지 모릅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애국을 교육열로 승화 시켰습니다.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한글은 가르치고 목사님이 농사를 가르쳤습니다. 목사님이 동네사람들을 모아놓고 닭 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해서 배워야 살고, 가르쳐야 산다고 했습니다. 유명한 안창호 선생님은 말합니다. "개인은 제 민족을 위해 일함으로 인류와 하늘에 대한 의무를 다한다." 그래서 밥을 먹어도 독립을 위하여, 잠을 자도 독립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해도 독립을 위하여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들은 애국심을 구체화했습니다. 그냥 감상적인 애국이 아닙니다. 실제로 생활에 옮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정직과 성실과 부지런을 부르짖었습니다. 여러분 심리학적으로도 그렇고 사회학적으로요 가난한 사람은 도덕성을 무시하려고 합니다. "난 가난하기 때문에 못된 짓 좀 해도 괜찮다.나는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이니까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 그렇습니까 내가 빼앗겼으면 빼앗아도 되는 겁니까 남이 내게 거짓말했다고 같이 거짓말을 해도 되는 겁니까 그러나 이상하게도 가난하고 눌린 사람, 어려운 사람은 피 압박적인 그런 사회계층은 도덕성을 떠나려고 해요. 마치 가난이 내 행동 전부를 정당화 해 줄 수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해요. "정직함이다 진실이다 하는 말은 저 사람들이 하는 거지 나같이 어려운 사람이 무슨 정직함이 있느냐, 되는 데로 사는데 나는 그럴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문제요, 이게 약소 민족의 고질적인 병입니다. 도덕성을 스스로 버려요, 포기하는 거지요. 이래서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은 "아니다! 나라를 찾는 길은 정신에서부터, 그래서 정직함과 성실과 부지런함, 그리고 자기 일을 해야 한다. 농민은 부지런히 농사하는 것이 애국이다. 학생은 공부하는 것이 애국이다. 장사하는 사람은 정직하게 하는 것이 애국이다." 이렇게 외쳤던 겁니다. 이제 보세요. 안창호 선생님 말씀입니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리라! 농담이라도 거짓은 말라! 꿈에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통회하라!" 여러분 한번 깊이 반성해 봅시다. 우리가 지금 왜 못 사는 겁니까 왜 어려워진 겁니까 한국사람 머리 좋아요, 공부 많이 했어요, 기술 있어요, 세계적으로 우수해요. 딱 거짓말을 많이 해요. 성실이 부족해요. 여기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국제 시장에 나가 봅시다. 우리 물건이 절대로 나쁘지 않아요. 전 관심 있게 자동차를 봅니다. 여러 나라 자동차를 타 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자동차 훌륭합니다. 특별히 일본 자동차와 비교할 때는 조금도 다른 게 없습니다. 100% 똑같습니다. 일본 자동차 마저 우리 나라 부속을 갖다 만든 게 많습니다. 자
그런데 왜 일본차는 resale이 비싸요. 낡은 차를 팔 때 비싸게 팔려요. 우리 차는 처음에는 좋은 듯 하지만은 resale price라고 해서 중고차로 팔릴 때는 영 비지 값이요. 왜 이래 진 것 같습니까 성실함이 없어요. 정직함이 없어요. 보세요. 우리 나라 사람들 남의 나라에 가서 공사 할 때는 잘 해서 이름이 높아요. 한국에서 공사할 때는 다 엉터리야. 다리가 무너지고, 건물이 무너지고, 왜 이 모양입니까 기술이 없는 겁니까 정직함이 없는 거에요. 그것은 큰 것만 그런 게 아니에요. 작은 일에까지도 정직과 신실이 기본이에요. 여러분 아셔야 됩니다. 세계의 경제는 이제는 정직함에 달렸어요. 그것을 다른 말로 Trust 라고 그래요. 신용이 문제요. 이 신용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일에 임하는 자세! 바른 자세가 문제를 해결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시점에 왔습니다. 그런고로 "애국은 정직함이다." 말하게 되는 거죠. 부끄러운 얘기입니다만은 중국 베이징에 공항 바로 옆에 "국제 골프 클럽"이라고 하는 골프장이 있습니다. 베이징에 골프장이 두개 있는데 이 하나가 비행장 가까이 있다고 해서 특별히 한국사람들이 거기까지 골프를 치러 갑니다. 많이 갔습니다. 거기에 뭐라고 썼는고 하니 '한국인 출입 금지!' 왜 이러 했겠습니까 이렇게 부끄러운 일을 부끄러운 줄도 몰라요. 왜 그렇습니까. 한국사람 도대체 떠들어요. 남의 생각 안 하고 그냥 골프를 치면 운동 삼아 즐겁게 쳐야 하는데, 꼭 내기를 해요. 도박을 해요 마지막엔 싸워요. 이 꼴 보기 싫어서 한국인 출입 금지! 이것이 골프 족속 이예요. 정신 좀 차리세요. 골프 하나를 쳐도 정직하게 치세요. 몇 번 치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안다잖아요. 여기 떨어진 거 여기 옮겨 놓고 말이야. 여기서 양심을 팔아먹고 있는 거예요, 당신의 자존심은 어디 갔어요. 그 까짓 거 뭐 점수가 올라가든 내려가든 지던 말던 내 양심이 허락질 않아, 내 자존심이 허락질 않아 이것이 애국자요. 골프도 애국적으로 치세요. 뭘 하나를 해도 정직하게 바르게 그리고 통쾌하게, 왜 이렇게 거짓말이 많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다 같이 슬퍼하는 얘기가 이 정치가들이예요. 도대체 진실이 없어. 어디까지가 참 말인지 알 수가 없어. 선거 운동할 때 한 말하고 정치 활동할 때 한 말하고 달라 그건 그래도 된다고 그래.
그렇다면 정치는 죄지! 나라가 망하더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않돼요. 거짓말로 세워진 나라는 망할테니까요. 유명한 간디라는 사람, 잘 알지 않습니까 그는 한평생 나라와 독립을 위해서 일한 사람이요. 그의 글에 이런 말이 있어요. "내가 한번 거짓말을 해서 나라가 독립된다해도 그럴 수 없노라! 거짓말로 세워진 나라는 망할 테니까" 여러분 애국은 정직함입니다. 정직은 윤리적으로 신실입니다. 신실함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을 수 있는 거예요. 서로 믿을 수 있는 거예요. 거기에 나라가 있고 애국이 있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공의를 요구하신다고 그랬어요. 공의를 행하며 의가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합니다. 그런고로 나라가 서고 못 서고는 그의 가진 의에 있는 것이요.
둘째는 인자를 사랑하며,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공의의 적극적 표현입니다. 나 자신에게 의요, 다른 사람의 부족한 의를 내가 채워 줄 때, 이 의의 적극적 표현이 바로 사랑이에요. 1919년 4월 15일 일본사람들은 여러분 잘 아는 제암리 교회에다가 동네 남자 청년들을 다 불러 놓고 불질러 버렸어요. 이 불타고 있을 때에 거기에 부인들이 나와서 남편이 죽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애타게 우니까 우는 여자까지 일본 군인들이 다 쏴버렸어요. 말살을 했어요. 이런 끔찍한 사건이 제암리에 있었습니다. 자 이제 4월에 이 사건이 있었는데 7월달에 장례를 치르고 묘비명을 씁니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가 숨져간 자랑스런 하나님의 자녀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일본을 용서하되 잊지는 말라!" 이것이3.1운동의 정신입니다. 신앙의 절개를 가지고 죽어간 사람들이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래요. 그러나 이 사건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인자와 사랑을 지켜가야 하고 그리고 우리는 겸손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은 겸손입니다. 그의 섭리와 경륜, 우리에게 겸손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너무 교만했습니다. 변변치 않은 일을 가지고 교만했습니다. 돈 몇 푼 있다고 외국에 여행하면서 교만했습니다. 꼴불견 노릇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뉘우쳐야 합니다. 우리는 번영과 자유를 앞세우고 정의를 잃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겸손하기를 원하며 정의를 원합니다. 그리고 먼저 앞에 번영을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국제 금융 기금에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잃어버린 공의를 되찾으라는 명령입니다. 잃어버린 인자와 사랑을 다시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엄청난 사건을 통해서 우리 민족 모두에게 겸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또 다른 은총적 계기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사람을 원하십니다.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행하는 사람, 이런 민족 이런 사람되게 하기 위하여 오늘도 하나님은 친히 역사하고 계십니다. 여기에 진정한 나라 사랑의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비해서 일본은 1%, 우리는 백년역사에 25%인데 일본은 삼백년 선교역사에 1%, 영영 일본사람이 예수를 안 믿어 줍니다. 그게 무엇일까 왜 그럴까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합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닥터 리라고 하는 분은 연구비를 받아 가지고 일부러 일본에 가서 몇 년 동안 있으면서 이걸 연구했습니다. "The stranger on the land" 라고 하는 그런 책을 썼는데 그 책의 결론이 이것입니다. 일본사람들이 가지는 독특한, 아주 고집스러운 자기문화! 이것을 깨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은 교회 선교가 어려웠다하는 얘기입니다. 사실은 일본의 선교가 삼백년 전에 이루어졌고 수 백 명에 순교자도 낳습니다.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은 일본교회는 부흥이 잘 안됩니다.
그런데 한국은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특별히 종교적으로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것이 일본사람들이 한국을 침략했다고 하는 그런 사건이요, 또 이에 대한 독립을 해야겠다고 하는 우리 온 민족의 열망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심지어는 아주 진공상태였다고 합니다. 막 빨아들이듯이 기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저마다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래서 구한국의 한국말에 있어서 우리 잊지 말 것은 찬송가, 그때 찬미가라고 불렀습니다. 찬송가의 14장이 애국가입니다. 찬송가를 애국가로 애국가를 찬송가로 부르는 민족이요. 그런 교회란 말이에요. 그렇게 교회가 시작이 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협소한 민족주의를 다 벗어났습니다. 높은 문화적 장벽도 다 무너졌습니다. 쉽게 무너지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됩니다. 일본에 가서 보면요 저렇게 지금 뭐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요, 문화적으로 높다 하지만은 종교에 관한 한 한심합니다. 사방에 가미다나, 지금도 신사를 만들어놓고 그 앞에다 절하고 또 미신 섬기는 걸 보면 한심합니다. 언제나 이걸 벗어날까 자기 딴에는 이게 우리 민족의 것이다, 우리 고유의 것이다, 우리 겁니다. 기독교는 서양 종교고 우리는 우리 거다. 우리 거 찾다 보니까 그 모양된 거래요. 그러니까 의식의 변화, 이 문화적인 큰 개혁, 개방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이 기독교 선교는 아주 힘들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특별한 운동을 한 게 아니요, 이런 정치적 상황, 문화적 상황이 이렇게 만들어 주었어요. 그래서 결론은 기독교를 우리 종교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나라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신앙과 애국은 하나다! 직선 상에서 이해합니다. 그런고로 "애국자가 되려면 신앙을 가져야 한다." 여기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우리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연세 높은 어른이 한 분계십니다. 언젠가 제게 이렇게 말하는 걸 들어보았습니다. 자기가 젊었을 때, 아주 어렸을 때 식구가 여럿인데 그 형님이 늘 자기들, 동생들보고 하는 말이 "나는 조상을 섬겨야 하기 때문에 장손이라서 그저 교회에 못 나간다 만은 너희들은 교회에 나가라! 나라를 건지려면 예수를 믿어야 한다. 이 나라를 찾는 길은 예수 믿는 길밖에 없다." 그렇게 가르쳤다고 그래요. 그래 자기들은 예수를 믿게 됐다 하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생각이었습니다. 특별히3.1운동을 중시한 그 당시에는 모든 사람이 생각할 때, '나라를 찾는 길은 예수 믿는 길이다. 신앙을 갖는 것이 그것이 바로 애국이다!' 그렇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결정적 계기가 삼일운동입니다. 나라를 건지기 위해서 그들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애국이라는 것이 두 가지가 있잖아요 하나는 무력과 그리고 폭력으로 대항하는 것이죠. 무력으로 나라를 찾겠다 하는 그런 운동. 그리고 또 하나는 비폭력적이요. 그래서 삼일운동에 가장 특별한 특징은 비폭력적이란 겁니다. 절대 대항하지 않고 무력을 쓰지 않고 만세를 불렀고, 독립 만세를 부르고 그리고 한국 민족의 정체성을 그리고 독립을 선언하는 만방에 알리는 그런 것으로 비폭력적으로 애국운동을 일으켰다. 거기서 높이높이 평가하게 됩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지요. 폭력을 가지고 무력으로 나라를 찾아보려고 애쓰는 사람들 참 많았어요.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동리 저 동리에서 일본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파출소나 경찰서를 불지르기도 하고, 그래서 나라를 찾아 졌느냐 이겁니다. 그 결과로 엄청난 피해를 보았습니다. 특별히 옛날 구 만주라고 하는 땅에는 나라를 찾겠다고 애국 청년들이 많이 가서 거기서 애국운동을 많이 했습니다. 그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간간이 그들은 일본사람을 죽였습니다. 일본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불질러 버렸습니다. 이렇게 경찰서를 습격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자 그 다음에 일본사람들이 가만히 있습니까 보복을 할 때 가서는 일본사람 하나 죽였는데, 그들은 한국사람을 백 명 죽였습니다. 백 배로 보복을 했습니다. 그래서 만주에 살던 우리 동포들이 죄 없이 얼마나 많이 죽어갔는지 모릅니다. 결국은 애국운동 한다고 무기 들고 다니면서 많은 일본사람과 싸운다고 했지만은 결론은 한국사람을 죽이는 결과가 됐지요. 피는 피를 불러일으키고, 무력은 무력으로, 악은 악으로 이렇게 나타나게 됐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삼십 육년 동안 지내 온 일본정치하에서의 애국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또 어떤 사람들은 무력으로 나라를 찾아보려고 애쓰다가 안되니까 절망하고 실의에 빠지면서 이제 그 다음에는 애국이라는 것을 빙자해서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나라를 잃어 버렸는데 이 풍진 세상을 잃었는데 우리 희망이 무엇이냐 먹어라 마셔라" 그랬어요. 폭탄주가 나온 거예요. 결국은 술이라는 것도 음식인데, 그게 살자는 겁니까 죽자는 겁니까 그런 말 있자나요 코가 비틀어지도록, 코로 밭을 간다나 뭐 그래요. 어쩌자는 겝니까 이 좋지 않은 술 문화가 소위 나라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애국한다고 앉아서 한 짓이요. 그 타락이 오늘까지 흘러가고 있어요. 아직도 여기서 헤어나지 못해요. 우리 한국사람 어디가 살던지 좌우간 술 먹는데는 도사입니다. 못됐어요 아주. 부끄러운 걸 몰라요. 딴에는 이것이 애국이라고 했어요. 이따위 애국이 어디 있단 말이예요. 이것이 오늘까지 흘러오고 있는 거예요. 자 그러면 오로지 신앙인들만 우리가 당해온 이 어려운 시련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뭔가 우리가 잘못 됐으니까 근본적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겠다. 하나님 앞에 성실하게 서야 한다 해서 이제 신앙적 애국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3.1절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외칩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제가 어렸을 때도 이 노래를 얼마나 불렀는지 모릅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애국을 교육열로 승화 시켰습니다.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한글은 가르치고 목사님이 농사를 가르쳤습니다. 목사님이 동네사람들을 모아놓고 닭 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해서 배워야 살고, 가르쳐야 산다고 했습니다. 유명한 안창호 선생님은 말합니다. "개인은 제 민족을 위해 일함으로 인류와 하늘에 대한 의무를 다한다." 그래서 밥을 먹어도 독립을 위하여, 잠을 자도 독립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해도 독립을 위하여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들은 애국심을 구체화했습니다. 그냥 감상적인 애국이 아닙니다. 실제로 생활에 옮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정직과 성실과 부지런을 부르짖었습니다. 여러분 심리학적으로도 그렇고 사회학적으로요 가난한 사람은 도덕성을 무시하려고 합니다. "난 가난하기 때문에 못된 짓 좀 해도 괜찮다.나는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이니까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 그렇습니까 내가 빼앗겼으면 빼앗아도 되는 겁니까 남이 내게 거짓말했다고 같이 거짓말을 해도 되는 겁니까 그러나 이상하게도 가난하고 눌린 사람, 어려운 사람은 피 압박적인 그런 사회계층은 도덕성을 떠나려고 해요. 마치 가난이 내 행동 전부를 정당화 해 줄 수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해요. "정직함이다 진실이다 하는 말은 저 사람들이 하는 거지 나같이 어려운 사람이 무슨 정직함이 있느냐, 되는 데로 사는데 나는 그럴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문제요, 이게 약소 민족의 고질적인 병입니다. 도덕성을 스스로 버려요, 포기하는 거지요. 이래서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은 "아니다! 나라를 찾는 길은 정신에서부터, 그래서 정직함과 성실과 부지런함, 그리고 자기 일을 해야 한다. 농민은 부지런히 농사하는 것이 애국이다. 학생은 공부하는 것이 애국이다. 장사하는 사람은 정직하게 하는 것이 애국이다." 이렇게 외쳤던 겁니다. 이제 보세요. 안창호 선생님 말씀입니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리라! 농담이라도 거짓은 말라! 꿈에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통회하라!" 여러분 한번 깊이 반성해 봅시다. 우리가 지금 왜 못 사는 겁니까 왜 어려워진 겁니까 한국사람 머리 좋아요, 공부 많이 했어요, 기술 있어요, 세계적으로 우수해요. 딱 거짓말을 많이 해요. 성실이 부족해요. 여기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국제 시장에 나가 봅시다. 우리 물건이 절대로 나쁘지 않아요. 전 관심 있게 자동차를 봅니다. 여러 나라 자동차를 타 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자동차 훌륭합니다. 특별히 일본 자동차와 비교할 때는 조금도 다른 게 없습니다. 100% 똑같습니다. 일본 자동차 마저 우리 나라 부속을 갖다 만든 게 많습니다. 자
그런데 왜 일본차는 resale이 비싸요. 낡은 차를 팔 때 비싸게 팔려요. 우리 차는 처음에는 좋은 듯 하지만은 resale price라고 해서 중고차로 팔릴 때는 영 비지 값이요. 왜 이래 진 것 같습니까 성실함이 없어요. 정직함이 없어요. 보세요. 우리 나라 사람들 남의 나라에 가서 공사 할 때는 잘 해서 이름이 높아요. 한국에서 공사할 때는 다 엉터리야. 다리가 무너지고, 건물이 무너지고, 왜 이 모양입니까 기술이 없는 겁니까 정직함이 없는 거에요. 그것은 큰 것만 그런 게 아니에요. 작은 일에까지도 정직과 신실이 기본이에요. 여러분 아셔야 됩니다. 세계의 경제는 이제는 정직함에 달렸어요. 그것을 다른 말로 Trust 라고 그래요. 신용이 문제요. 이 신용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일에 임하는 자세! 바른 자세가 문제를 해결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시점에 왔습니다. 그런고로 "애국은 정직함이다." 말하게 되는 거죠. 부끄러운 얘기입니다만은 중국 베이징에 공항 바로 옆에 "국제 골프 클럽"이라고 하는 골프장이 있습니다. 베이징에 골프장이 두개 있는데 이 하나가 비행장 가까이 있다고 해서 특별히 한국사람들이 거기까지 골프를 치러 갑니다. 많이 갔습니다. 거기에 뭐라고 썼는고 하니 '한국인 출입 금지!' 왜 이러 했겠습니까 이렇게 부끄러운 일을 부끄러운 줄도 몰라요. 왜 그렇습니까. 한국사람 도대체 떠들어요. 남의 생각 안 하고 그냥 골프를 치면 운동 삼아 즐겁게 쳐야 하는데, 꼭 내기를 해요. 도박을 해요 마지막엔 싸워요. 이 꼴 보기 싫어서 한국인 출입 금지! 이것이 골프 족속 이예요. 정신 좀 차리세요. 골프 하나를 쳐도 정직하게 치세요. 몇 번 치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안다잖아요. 여기 떨어진 거 여기 옮겨 놓고 말이야. 여기서 양심을 팔아먹고 있는 거예요, 당신의 자존심은 어디 갔어요. 그 까짓 거 뭐 점수가 올라가든 내려가든 지던 말던 내 양심이 허락질 않아, 내 자존심이 허락질 않아 이것이 애국자요. 골프도 애국적으로 치세요. 뭘 하나를 해도 정직하게 바르게 그리고 통쾌하게, 왜 이렇게 거짓말이 많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다 같이 슬퍼하는 얘기가 이 정치가들이예요. 도대체 진실이 없어. 어디까지가 참 말인지 알 수가 없어. 선거 운동할 때 한 말하고 정치 활동할 때 한 말하고 달라 그건 그래도 된다고 그래.
그렇다면 정치는 죄지! 나라가 망하더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않돼요. 거짓말로 세워진 나라는 망할테니까요. 유명한 간디라는 사람, 잘 알지 않습니까 그는 한평생 나라와 독립을 위해서 일한 사람이요. 그의 글에 이런 말이 있어요. "내가 한번 거짓말을 해서 나라가 독립된다해도 그럴 수 없노라! 거짓말로 세워진 나라는 망할 테니까" 여러분 애국은 정직함입니다. 정직은 윤리적으로 신실입니다. 신실함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을 수 있는 거예요. 서로 믿을 수 있는 거예요. 거기에 나라가 있고 애국이 있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공의를 요구하신다고 그랬어요. 공의를 행하며 의가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합니다. 그런고로 나라가 서고 못 서고는 그의 가진 의에 있는 것이요.
둘째는 인자를 사랑하며,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공의의 적극적 표현입니다. 나 자신에게 의요, 다른 사람의 부족한 의를 내가 채워 줄 때, 이 의의 적극적 표현이 바로 사랑이에요. 1919년 4월 15일 일본사람들은 여러분 잘 아는 제암리 교회에다가 동네 남자 청년들을 다 불러 놓고 불질러 버렸어요. 이 불타고 있을 때에 거기에 부인들이 나와서 남편이 죽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애타게 우니까 우는 여자까지 일본 군인들이 다 쏴버렸어요. 말살을 했어요. 이런 끔찍한 사건이 제암리에 있었습니다. 자 이제 4월에 이 사건이 있었는데 7월달에 장례를 치르고 묘비명을 씁니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가 숨져간 자랑스런 하나님의 자녀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일본을 용서하되 잊지는 말라!" 이것이3.1운동의 정신입니다. 신앙의 절개를 가지고 죽어간 사람들이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래요. 그러나 이 사건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인자와 사랑을 지켜가야 하고 그리고 우리는 겸손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은 겸손입니다. 그의 섭리와 경륜, 우리에게 겸손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너무 교만했습니다. 변변치 않은 일을 가지고 교만했습니다. 돈 몇 푼 있다고 외국에 여행하면서 교만했습니다. 꼴불견 노릇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뉘우쳐야 합니다. 우리는 번영과 자유를 앞세우고 정의를 잃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겸손하기를 원하며 정의를 원합니다. 그리고 먼저 앞에 번영을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국제 금융 기금에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잃어버린 공의를 되찾으라는 명령입니다. 잃어버린 인자와 사랑을 다시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엄청난 사건을 통해서 우리 민족 모두에게 겸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또 다른 은총적 계기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사람을 원하십니다.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행하는 사람, 이런 민족 이런 사람되게 하기 위하여 오늘도 하나님은 친히 역사하고 계십니다. 여기에 진정한 나라 사랑의 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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