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을 누리는 자 (레25:8-13)
본문
현실의 모습은 과거사건들의 연쇄작용의 결과요 미래발전의 전망을 세우는 거울이라고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은 과거사건을 제삼자적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할 기회를 제공해 주고 더불어 현실을 분석한 미래설계자로서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권리가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을 쉽게 설명하면 과거와 현실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이는 발전을 꿈꿀 수 없다는 뜻입니다. 신앙인이 만약 이러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는 현실에 안주하는 신앙인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앞에서 겸손히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정중하고 진지하게 고백하며 변화할 줄 모르는 인간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비록 이런 사람이 사회적으로는 많은 재물과 권력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는 신앙적으로 하나님앞에서 실패자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신앙인들은 자신의 신앙의 재정비라는 측면에서 현실을 매우 진지하고 정중하게 맞이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실존과 하나님을 진지하고 정중하게 만나고 있는지 의문을 가져 보아야 될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이러한 인간들의 노력이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인간의 인격과 신앙 그리고 사회적 활동을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로서 희년의 복음을 주시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희년은 안식년의 일곱번째 해 즉 49년째 해입니다. 그 해는 종교력으로는 7월10일 일반력으로는 1월 10인데 이 날은 대속죄일로서 요벨이라는 수양의 뿔을 불음으로써 자유의 해가 선포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 해는 조상의 유산 곧 분배받은 땅으로 돌아가는 해이며 저마다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해입니다. 경지는 안식년과 똑같이 휴한상태로 두어야 합니다. 씨를 뿌리지도 말아야 하며 저절로 자라난 것을 거두어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희년은 거룩하게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레25:8-17) ‘희년’ 이라는 낱말은 ‘나팔’이라는 히브리어의 헬라적 형태로서 ‘즐거운 함성’,‘나팔의 함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나팔이 울리면 토지의 소유관계와 사람의 신분관계가 49년전의 상태로 복원하게 됩니다. 불가피한 일로 땅을 팔게 되었다면 희년에 그 땅을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신분이 종이나 노예였다면 희년에 그는 자유인이 되어 그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마다 제이웃에게서 부당한 이익을 취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밭을 사고 팔때에 희년에서 몇해가 지났는지를 계산하며 앞으로 희년까지 몇번이나 더 소출을 거둘 수 있는지를 계산하여 가격을 정하여야 합니다. 이 가격결정에서 절대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세운 규례와 법도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레25:18) 하나님은 이 규례와 법도를 지키면 그 땅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 그리고 약속은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긴 인생의 여정에서 새롭게 자신의 모습을 재정비하여 하나님의 부름에 충실히 응답하여 살아가는 인간으로 변화시켜줍니다. 이 희년법을 중심으로 그 의미와 희년을 맞이하는 자세에 관해서 알아봅시다.
첫째로 희년법은 우주만물의 주인은 하나님뿐이라는 선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 땅은 그 어느 인간의 소유가 될 수 없으며 하나님만이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9장 1절에서 3절을 보면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땅과 만물을 관리하도록 맡기시고 있습니다. 인간은 땅의 소유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땅을 관리하는 관리자일뿐입니다. 그러한 관리를 잘 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에게 각 지파별로 땅을 분배해 주고 그 땅을 잘 관리하여 빼앗기거나 잃지 않도록 모세의 율법으로 정해 주셨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보면 정결에 관한 정결법, 약자보호법, 재산관리법 등등이 나오고 있습니다. 재산에 관한 대표적인 예로 민수기 36장을 보면 결혼한 여자에 관한 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재산이 있는 여자가 다른 지파사람과 결혼하면 그 여자의 유산이 다른 지파에게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지파간에 유산분배상황이 형평을 잃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것에 대비하여 여자들이 자기지파의 남자들에게만 결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신명기 19장 14절을 보면 하나님이 주신 땅의 경계선을 그 어느 누구도 옮기지 못하도록 기록되어 있습니다. 재산의 유출을 미연에 방지하는 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법입니다. 재산이 한 곳으로 몰리는 것을 방지할만한 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토지공개념과 금융실명제, 부동산 실명제 등등이 실시되어 우리는 정치경제에 있어서 많은 개혁을 시행했지만 성경의 율법의 수준으로 올리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일을 두고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물건의 가격을 결정할때 그 때의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입각하여 매각매입이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의 경제법칙입니다. 아무리 상품이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찌라도 그 가치대로 가격을 받지 못할때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희년을 기준으로 더 소출할 수 있는 해까지 계산하여 가격을 결정하게 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의 힘에 의해서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거나 다른 사람에게로 재산이 유출되지 못하도록 말씀으로 금하고 있습니다. 이 땅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땅에 대한 인간의 사적 소유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관리자일뿐입니다. 관리자는 이러한 현실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관리자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둘째로 희년법은 하나님앞에서 한 형제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땅이 원소유자에게 돌아가며 종노릇해야 할 사람도 그 조상의 소유로 돌아가게 하였다고 레위기 25장 8절에 기록되었습니다. 이러한 법이 문자 그대로 시행되었는지는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법은 역사상에서 노예들에 관한 지대한 관심을 보여주며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 한 개인이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을 깨닫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선지자는 이러한 희년의 소식을 61장 1절에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하며”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형제주의가 선포되는 곳에 새로운 신분관계의 질서가 회복되도록 선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자유함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노예제도와 같은 속박과 억압의 질서는 없습니다. 그러나 돈과 자본 그리고 권력에 사로잡혀 포로된 자들 속박과 억압에 스스로 굴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율법에 사로잡혀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친교하며 하나됨을 거부하는 사람들, 사랑이 메말라 있는 사람들,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존에 동참하지 않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서로 화해하여 희년을 누리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세째로 희년법은 우리 영혼에 평안과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레위기서는 희년에는 땅도 쉬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영적 평안과 안식을 누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죄인아니라’는 죄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편기자도 53장 2절에서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죄의 인생이요 죄악의 거친 풍파로 피곤해 있는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희년을 선포하시어 영적 평안을 주십니다. 이러한 영적 평안을 주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이러한 영적 평안과 안식을 새로운 시대를 개척할 힘의 축적과 비전을 함께 제공해 줍니다. 미래를 향한 도전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공해 주십니다. 희년의 나팔소리와 함게 우리는 새 시대를 향한 도약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희년나팔을 애타게 기다린 사람은 ‘종’된 자였습니다. 나팔이 울리면 희년법에 의하여 종된 자는 자유의 몸이 된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지난 50여년간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습니까 가족들이 얼마나 보고싶었겠습니까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러나 희년나팔과 함께 해결됩니다. 또한 토지를 매매한 사람이 기다렸습니다. 토지를 매매한 자도 나팔소리와 함께 본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가야 되기 때문입니다. 생활고에 견디다 못해 소유했던 토지를 매매한 자의 마음은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그래서 그날이 오기까지 희년의 약속을 자녀들에게 던지면서 나팔소리를 기다리게 된 것입니다. 갇혀있던 죄수도 석방되었습니다. 남의 빚을 걸머진 채무도 탕감되었습니다. 기다려지지 않을 수 없는 희망의 나팔소리였습니다. 그들은 시대의 변화를 눈으로 보고귀를 기울이고 살았습니다. 그저 주변적인 일에만 눈을 돌리고 귀를 기울이는 그들이 아니었습니다. 희년의 나팔에 귀를 기울이며 나팔의 함성과 함께 벌어질 새역사의 출발점을 그들은 눈으로 확인해야 했습니다. 이런 희년의 나팔소리를 기다릴때, 우리는 우리의 세가지 유형의 모습을 살필 수 있습니다.
첫째로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하나님께 항의하는 경우입니다. 희년의 나팔소리가 50년마다 확실히 들려옴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믿지 못하여 하나님께 항의하는 염세주의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희년을 누릴 수 없습니다.둘째로 매사에 무관심하고 체념하며 사는 낙관주의자입니다. 너무나도 큰 세상의 힘과 싸워봤자 이기지도 못할 것이며 자신이 당하기만 할 것이라는 마음으로 체념하는 자입니다. 무엇인가를 기다리기는 하지만 세상에 굴종하며 체념하는 자입니다. 이런 자도 희년을 누릴 수 없습니다. 진정한 기다림은 염세적인 자세도 아니요 낙관적인 자세도 아닙니다. 희년을 소식을 믿으며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자세로 나팔소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희년을 누리는 자로서 가져야 세번째 유형의 자세입니다.
하박국 2장 1절을 보면 예언자 하박국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까지 “내가 내 초소에 버티고 서서 기다려 보리라!” 라는 고백을 하며 기다렸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다림을 참지 못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요 희년의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희년의 희망이 있을때 참을 수 있고 그럴때에 우리는 진정한 희년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결국 하박국 예언자 2장 3절에서 응답을 받고 자신의 임무를 충실해갔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희년 나팔소리는 우리로 하여금 죄의 굴레에 굴종하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고 해방시켜 줍니다. 그 어느 종교문학도 가난한 자들에 관한 관심과 그들의 구호를 위한 실제적 대안을 세우는데 이 본문의 말씀보다 더 능가하지 못합니다. 또한 세계 어느 정치-경제사에서도 이만한 사회보장제도를 능가하는 곳은 없습니다. 이렇게 선물로서 주신 하나님의 법에 응답하여 우리는 참된 희년을 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값없이 주셨습니다. 값없이 주신 이 희년의 은총을 우리는 어떻게 누려야 되겠습니까 먼저 모든 우주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보존하고 지키는 자세를 갖고 신앙의 양심으로 이 창조세계의 보존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준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안에서의 한 형제 그리고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야 할 것이며 하나님의 언약과 규례 그리고 약속대로 순종해서 겸손하게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말씀의 순종과 더불어 희년의 시작를 담대하게 알리는 나팔수의 준비된 자세로 하나님선교에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도록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희년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촉구해야 할 것입니다. 나팔이 불어지면 눈먼자가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들리고 짐진자가 가벼워질 것(눅4:18-19)라는 확신으로 희년의 나팔을 분다면 희년의 역사가 우리안에 임할 것입니다. 1995년도는 우리 한국교회가 정한 통일원년 희년의 해입니다. 남과 북이 통일이 되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말씀으로 정돈하고 죄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분단의 십자가를 지고 통일의 나팔을 부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희년은 거룩하게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레25:8-17) ‘희년’ 이라는 낱말은 ‘나팔’이라는 히브리어의 헬라적 형태로서 ‘즐거운 함성’,‘나팔의 함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나팔이 울리면 토지의 소유관계와 사람의 신분관계가 49년전의 상태로 복원하게 됩니다. 불가피한 일로 땅을 팔게 되었다면 희년에 그 땅을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신분이 종이나 노예였다면 희년에 그는 자유인이 되어 그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마다 제이웃에게서 부당한 이익을 취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밭을 사고 팔때에 희년에서 몇해가 지났는지를 계산하며 앞으로 희년까지 몇번이나 더 소출을 거둘 수 있는지를 계산하여 가격을 정하여야 합니다. 이 가격결정에서 절대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세운 규례와 법도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레25:18) 하나님은 이 규례와 법도를 지키면 그 땅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 그리고 약속은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긴 인생의 여정에서 새롭게 자신의 모습을 재정비하여 하나님의 부름에 충실히 응답하여 살아가는 인간으로 변화시켜줍니다. 이 희년법을 중심으로 그 의미와 희년을 맞이하는 자세에 관해서 알아봅시다.
첫째로 희년법은 우주만물의 주인은 하나님뿐이라는 선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 땅은 그 어느 인간의 소유가 될 수 없으며 하나님만이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9장 1절에서 3절을 보면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땅과 만물을 관리하도록 맡기시고 있습니다. 인간은 땅의 소유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땅을 관리하는 관리자일뿐입니다. 그러한 관리를 잘 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에게 각 지파별로 땅을 분배해 주고 그 땅을 잘 관리하여 빼앗기거나 잃지 않도록 모세의 율법으로 정해 주셨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보면 정결에 관한 정결법, 약자보호법, 재산관리법 등등이 나오고 있습니다. 재산에 관한 대표적인 예로 민수기 36장을 보면 결혼한 여자에 관한 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재산이 있는 여자가 다른 지파사람과 결혼하면 그 여자의 유산이 다른 지파에게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지파간에 유산분배상황이 형평을 잃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것에 대비하여 여자들이 자기지파의 남자들에게만 결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신명기 19장 14절을 보면 하나님이 주신 땅의 경계선을 그 어느 누구도 옮기지 못하도록 기록되어 있습니다. 재산의 유출을 미연에 방지하는 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법입니다. 재산이 한 곳으로 몰리는 것을 방지할만한 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토지공개념과 금융실명제, 부동산 실명제 등등이 실시되어 우리는 정치경제에 있어서 많은 개혁을 시행했지만 성경의 율법의 수준으로 올리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일을 두고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물건의 가격을 결정할때 그 때의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입각하여 매각매입이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의 경제법칙입니다. 아무리 상품이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찌라도 그 가치대로 가격을 받지 못할때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희년을 기준으로 더 소출할 수 있는 해까지 계산하여 가격을 결정하게 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의 힘에 의해서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거나 다른 사람에게로 재산이 유출되지 못하도록 말씀으로 금하고 있습니다. 이 땅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땅에 대한 인간의 사적 소유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관리자일뿐입니다. 관리자는 이러한 현실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관리자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둘째로 희년법은 하나님앞에서 한 형제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땅이 원소유자에게 돌아가며 종노릇해야 할 사람도 그 조상의 소유로 돌아가게 하였다고 레위기 25장 8절에 기록되었습니다. 이러한 법이 문자 그대로 시행되었는지는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법은 역사상에서 노예들에 관한 지대한 관심을 보여주며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 한 개인이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을 깨닫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선지자는 이러한 희년의 소식을 61장 1절에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하며”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형제주의가 선포되는 곳에 새로운 신분관계의 질서가 회복되도록 선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자유함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노예제도와 같은 속박과 억압의 질서는 없습니다. 그러나 돈과 자본 그리고 권력에 사로잡혀 포로된 자들 속박과 억압에 스스로 굴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율법에 사로잡혀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친교하며 하나됨을 거부하는 사람들, 사랑이 메말라 있는 사람들,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존에 동참하지 않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서로 화해하여 희년을 누리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세째로 희년법은 우리 영혼에 평안과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레위기서는 희년에는 땅도 쉬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영적 평안과 안식을 누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죄인아니라’는 죄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편기자도 53장 2절에서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죄의 인생이요 죄악의 거친 풍파로 피곤해 있는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희년을 선포하시어 영적 평안을 주십니다. 이러한 영적 평안을 주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이러한 영적 평안과 안식을 새로운 시대를 개척할 힘의 축적과 비전을 함께 제공해 줍니다. 미래를 향한 도전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공해 주십니다. 희년의 나팔소리와 함게 우리는 새 시대를 향한 도약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희년나팔을 애타게 기다린 사람은 ‘종’된 자였습니다. 나팔이 울리면 희년법에 의하여 종된 자는 자유의 몸이 된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지난 50여년간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습니까 가족들이 얼마나 보고싶었겠습니까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러나 희년나팔과 함께 해결됩니다. 또한 토지를 매매한 사람이 기다렸습니다. 토지를 매매한 자도 나팔소리와 함께 본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가야 되기 때문입니다. 생활고에 견디다 못해 소유했던 토지를 매매한 자의 마음은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그래서 그날이 오기까지 희년의 약속을 자녀들에게 던지면서 나팔소리를 기다리게 된 것입니다. 갇혀있던 죄수도 석방되었습니다. 남의 빚을 걸머진 채무도 탕감되었습니다. 기다려지지 않을 수 없는 희망의 나팔소리였습니다. 그들은 시대의 변화를 눈으로 보고귀를 기울이고 살았습니다. 그저 주변적인 일에만 눈을 돌리고 귀를 기울이는 그들이 아니었습니다. 희년의 나팔에 귀를 기울이며 나팔의 함성과 함께 벌어질 새역사의 출발점을 그들은 눈으로 확인해야 했습니다. 이런 희년의 나팔소리를 기다릴때, 우리는 우리의 세가지 유형의 모습을 살필 수 있습니다.
첫째로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하나님께 항의하는 경우입니다. 희년의 나팔소리가 50년마다 확실히 들려옴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믿지 못하여 하나님께 항의하는 염세주의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희년을 누릴 수 없습니다.둘째로 매사에 무관심하고 체념하며 사는 낙관주의자입니다. 너무나도 큰 세상의 힘과 싸워봤자 이기지도 못할 것이며 자신이 당하기만 할 것이라는 마음으로 체념하는 자입니다. 무엇인가를 기다리기는 하지만 세상에 굴종하며 체념하는 자입니다. 이런 자도 희년을 누릴 수 없습니다. 진정한 기다림은 염세적인 자세도 아니요 낙관적인 자세도 아닙니다. 희년을 소식을 믿으며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자세로 나팔소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희년을 누리는 자로서 가져야 세번째 유형의 자세입니다.
하박국 2장 1절을 보면 예언자 하박국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까지 “내가 내 초소에 버티고 서서 기다려 보리라!” 라는 고백을 하며 기다렸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다림을 참지 못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요 희년의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희년의 희망이 있을때 참을 수 있고 그럴때에 우리는 진정한 희년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결국 하박국 예언자 2장 3절에서 응답을 받고 자신의 임무를 충실해갔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희년 나팔소리는 우리로 하여금 죄의 굴레에 굴종하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고 해방시켜 줍니다. 그 어느 종교문학도 가난한 자들에 관한 관심과 그들의 구호를 위한 실제적 대안을 세우는데 이 본문의 말씀보다 더 능가하지 못합니다. 또한 세계 어느 정치-경제사에서도 이만한 사회보장제도를 능가하는 곳은 없습니다. 이렇게 선물로서 주신 하나님의 법에 응답하여 우리는 참된 희년을 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값없이 주셨습니다. 값없이 주신 이 희년의 은총을 우리는 어떻게 누려야 되겠습니까 먼저 모든 우주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보존하고 지키는 자세를 갖고 신앙의 양심으로 이 창조세계의 보존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준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안에서의 한 형제 그리고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야 할 것이며 하나님의 언약과 규례 그리고 약속대로 순종해서 겸손하게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말씀의 순종과 더불어 희년의 시작를 담대하게 알리는 나팔수의 준비된 자세로 하나님선교에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도록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희년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촉구해야 할 것입니다. 나팔이 불어지면 눈먼자가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들리고 짐진자가 가벼워질 것(눅4:18-19)라는 확신으로 희년의 나팔을 분다면 희년의 역사가 우리안에 임할 것입니다. 1995년도는 우리 한국교회가 정한 통일원년 희년의 해입니다. 남과 북이 통일이 되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말씀으로 정돈하고 죄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분단의 십자가를 지고 통일의 나팔을 부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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