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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에 제물이 되어라 (레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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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온 모둔 절기와 제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성경에서 정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골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 이제 우리는 구약의 제사법으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구약의 모든 제사법은 하나의 그림자였고 모형이었다. 그러면 무엇이 실체이고 원형인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깨달았다고 할 수 없다. 레위기서에 나오는 제사법의 형식은 우리에게 필요없어 졌지만 그 제사법 말씀 속에 흐르고 있는 실체의 모습은 우리가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제사에 쓰여지는 제물은 1차 적으로 예수님이 먼저 제물이 되시는 것이다. (엡5:2)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 그 다음 2차 적으로 예수를 믿고 예수와 안에서 하나로 연합된 우리들이 제물이 되어져야 한다. (롬12: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 오늘은 소제 제사를 살펴 볼 것인데 소제 제사는 반드시 번제 제사가 드려진 후에 드려야 된다. 소제 제사는 피를 드리는 제사가 아니다. 음식 제사이다 모든 제사는 반드시 번제 제사를 드린 후에 드려야 한다 한 가지 제사만 독립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번제 제사를 먼저 드려야 한다 그러면 소제 제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고 제단에 제물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첫 번째:제단에 소제 제물이 되어라 ! (레2:1-2)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 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 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번제 다음에 드려지는 제사가 소제인데 소제 제사의 제물은 바로 곡식이었다. 그러나 반드시 그 곡식은 고운 가루여야 했다. 그 고운 곡식 가루에 그름을 붓고 유황을 놓아서 제사장에게 가져와야만 했다. 제사장은 소제 제물 중 가루 한 줌과 유황 전부를 단 위에 불로 태워서 하나님께 드렸다. 그리고 소제 제물의 남은 것은 제사장 자손에게 돌렸다.
 소제 = "선물" 이라는 뜻이다.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또 우리 자신들이 고운 가루처럼 희생되어질 모습이다. 기름 = 성령님을 뜻한다. 고운 가루만 가지고 안된다. 우리의 희생이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고 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성령님과 항상 함께 하셨다 유황 = 기도를 뜻한다. 유황은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향으로 기도 생활을 말한다 우리 예수님은 항상 기도 생활을 하셨다. 우리 또한 기도 생활을 쉬면 안된다. (계5:8) "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 소제는 고운 가루만 가지고 제사의 제물이 될 수 없다. 성령님의 인도와 기도가 함께 해야 만이 소제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율법은 소제를 드릴 때 반드시 고운 가루로 들리라고 했다. 그러면 오늘날도 우리가 고운 가루로 소제 제사를 드려야 하는가 소제 제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다. 예수께서 고운 가루처럼 하나님 앞에 가루로 드려졌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성령님과 기도로 함께 하셨다. 십자가에서 우리 또한 예수와 하나가 된 자라면 우리는 번제 제사에서 그치지 않고 소제 제사의 제물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소제 제사 제물에도 아무렇게나 드려지는게 아니라 3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1. 고운 가루로 드려져야 한다. 예수께서 이 땅에 살아가시면서 하나님 앞에 고운 가루 같은 삶을 사시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데 자신의 한 몸을 가루로 만드셨다. 우리 또한 고운 가루가 되어야만 소제 제사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우리를 밀로 표현했다. "한 알의 밀이 떨어져 썩어지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12:24) 이러한 곡식이 가루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갈아야 되는데 지금은 기계로 갈지만 옛날에는 맷돌로 갈았다. 우리가 소제 제사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고운 가루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맷돌에 갈아져야만 한다. 맷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벧전2:5) (고전10:4) 돌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했다. 맷돌 속에 곡식이 들어가서 고운 가루가 되어져 나오듯이 우리가 예수 안에서 철저히 갈라지고 으깨어져서 고운 가루가 되어야 한다. 곡식의 껍데기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자존심, 체면, 우리 자아의 모습이다. 우리의 모난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맷돌 속에서 으깨어지고 부수어져야만 우리는 소제 제물의 고운 가루가 될 수 있다. 어떤 곡식이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껍데기가 벗겨져야만 한다 벗겨지지 않는 곡식은 사용할 수 없듯이 우리 또한 벗겨지지 않으면 사용 받을 수 없다.
2. 기름을 소제 제물에 부어야 한다. 고운 가루가 된 밀은 반죽이 되어야 한다. 기름을 붓고 소제 제물을 반죽을 하듯이 우리가 고운 가루가 되었다고 다 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기름으로 우리가 반죽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성도가 성령님께 완전히 사로 잡혀서 사는 것을 말한다. 고운 가루의 모습으로 성도가 교회에 희생을 보이면서 신앙 생활 한다 할지라도 성령님께 사로잡혀 하지 않으면 희생이라고 볼 수 없다. 우리가 신앙 생활 하면서 얼마나 내 뜻대로 행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성령님께 우리가 물어보면서 신앙 생활하고 있는가 우리가 예수는 섬기면서 성령님은 섬기지 않는다면 이것처럼 우스운 짖은 없을 것이다. 마치 저 유대인들이 하나님은 열심히 믿으면서도 예수를 믿지 못하고 십자가에 죽였던 일하고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면 우리는 성령님 또한 전폭적으로 믿어야 한다. 지금은 예수의 영인 성령님 시대이다. 성령님께 사로잡히지 않고서는 우리는 소제 제사의 제물이 될 수 없다. 초대 교회 때 사도와 성도들이 어떻게 그렇게 하나님께 아름다운 번제가 되고 소제 제물이 될 수 있었습니까 성령님께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성령님께 사로 잡힌 자는 세상의 소식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성령님께 사로 잡힌 자는 소제 제사 제물이 되지 못할 까바 더 두려워하고 걱정한다.
3. 유황이 들어가야 한다. 여기에는 또 반드시 유황이 들어가야 하는데 유황은 향기로운 향을 풍기게 하는 재료이다. 음식에 각종 재료가 들어가지 않고서는 맛을 낼 수 없듯이 소제 제물에도 유황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데 이것은 우리들의 정성스런 합당한 기도를 뜻하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기도이다. 기도가 없이 어찌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기도가 없이 어찌 우리가 고운 가루가 될 수 있겠는가 기도가 무조건 부르짖는 기도가 되어서는 안된다. 렘33:3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고 했다 그 다음에 뭐라고 했는가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성도 여러분 ! 우리가 드린 기도는 응답이 약속된 기도이다. 응답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보너스로 큰 비밀까지도 보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의 기도가 이런 놀라운 약속이 보장된 기도이다. 성도 여러분 ! 기도하고 이런 두 가지 체험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모두 다 응답될 수는 없다 그러나 보너스는 항상 응답해 주신다. 무 응답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비밀을 깨닫게 해 주신다.
그러므로 결국 모든 기도는 모두 다 응답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가 기도해놓고 아무 것도 받지 못하는 것인가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합당한 기도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도의 영적 체험을 하지 못한 자가 어떻게 교회에 희생을 할 수 있고 하나님 제단에 소제 제물이 될 수 있겠는가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합당한 기도가 되어야 한다 무조건 소리만 지른다고 합당한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는 말은 너희 영혼이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내게로 오라" 고 했다. 우리의 영혼의 마음을 찢는 부르짖음을 우리가 햇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육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의 소리를 듣기를 원하신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과 원수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는데 " (롬8:7-8) 어떻게 우리의 육의 소리를 하나님이 기쁘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합당한 기도는 바로 영의 기도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내 뜻대로 기도하는 자는 육의 기도이다. "주시옵소서" 만 부르짖는 기도는 금 향로의 기도라고 볼 수 없다 이런 자는 자꾸 주어도 자꾸 달라는 기도만 한다. 육의 기도로는 소제 제사 제물에 유황이 될 수 없다. 고운 가루에는 반드시 유황이 들어가듯이 우리는 반드시 아름다운 합당한 기도를 해야 한다. 아버지의 뜻대로 해달라는 기도가 아름다운 기도이고 합당한 기도이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까지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므로 하나님께 아름다운 향이 되셨고 소제 제사의 실체를 온전히 이루셨다. 왜 예수님이 그렇게 기도의 삶을 살으셨습니까 소제 제사의 제물이 되어야 하는데 유황을 뜻하는 기도가 없이는 소제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 하셨던 것이다. 기도가 없이는 하나님께 제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기에 주님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것이다. 희생만 가지고 소제 제사 제물이 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예수를 위해 얼마나 애쓰며 살아 왔는데 제단에 제물이 못된단 말인가 할 것이다. 그러나 성령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자는 결단코 제단에 제물이 될 수 없다. 기도가 없이 어떻게 성령님의 뜻을 알겠는가 내 뜻대로만 기도하는데. 내 고집. 내 주관대로만 기도하는데 어떻게 성령님의 뜻을 알 수 있겠는가 내 영혼의 기도의 향이 없다면 우리는 소제 제사의 제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하나님 제단에 업드려서 교회를 위해서 기도의 향을 피우시기 바란다. 예수의 나라를 위해서 우리는 제단에 기도의 향을 피워야 할 것이다. 길을 걸을 때나 집에 있을 때나 직장에서 일을 할 때나 어느 곳에 있을 때에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제단을 위해서 기도의 향을 피워어야 한다. 기도의 향이 없이는 소제 제사의 제물이 될 수 없다 아무 맛이 없는 음식 여러분은 맛있다고 먹을 수 있겠는가 기도하지 않은 성도의 신앙을 하나님이 어떻게 맛있게 받을 수 있겠는가 영적인 기도 . 합당한 기도로 기도의 향불을 끓이지 않고 피우는 자들이 되어서 유황처럼 아름다운 향을 내는 고운 가루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소제를 드릴 때 주의 할 3가지 11-13절 =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 " 소제 제사를 드리는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3가지가 있다.
1. 누룩을 넣지 말아야 한다.
2. 꿀을 넣지 말아야 한다.
3. 소금을 치라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이 있다. 소금은 넣고 누룩과 꿀은 넣지 말라는 말씀이 너무 중요한 말씀이다 우리가 신앙 생활 하면서 너무나도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의해 희생하면서도 하나님께 열납 되는 희생이 되지 못하고 헛된 희생이 되고 있다.
 누룩을 넣지 말라 = 누룩은 발효성을 지닌 특성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는 누룩에 대해 좋은 점과 나쁜 점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다. 소제 제사에 누룩은 나쁜 의미로 말씀하고 있다. 즉 죄와 사악, 교만, 위선 등을 뜻하고 있다. 꿀을 넣지 말라 = 세상적이고 안락함과 쾌락을 뜻한다. 소금을 치라 =부패를 방지하고 맛을 내게 한다.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언약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를 위해 희생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희생하면서 살아가는데 우리의 희생이 헛된 희생이 될 수 있다. 이왕이면 우리가 희생하면서 참된 희생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참된 희생이었지 않습니까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참된 희생이 되기 위해서는 주의해야 할 것을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다. 무조건 열심만 낸다고 해서 다 희생이 되는게 아니고 소제 제사 제물이 되는 것이 아니다.
1. 누룩을 넣지 말라 누룩은 성경에서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는데
첫째는 마13장에서 예수님께서 천국을 누룩과 같다고 비유했다 누룩의 퍼지는 특성을 복음에 비유하신 것이다. 이것은 좋은 누룩을 의미한다.
둘째는 고전5:7에서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 묵은 누룩은 악하고 가증스럽고 죄악된 것을 의미한다 누룩이 썩어지면 발효가 되어 술을 만들 때에 넣게 되는데 이러한 누룩은 가증한 누룩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이 누룩에 대해서 친히 말씀하셨다.
1)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 (마16: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이 바리새인들의 누룩이 무엇인가 (눅12:1)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바리새인들의 누룩은 곧 외식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누룩을 넣지 말라는 것은 외식하자 말라는 것이다. 우리의 소제 제사에 절대로 외식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면 무엇이 외식입니까 바리새인은 율법을 자기들이 지킴으로 그것이 의가 되어서 구원에 이른다고 믿고 있는 자들이다. 그래서 예수를 열심히 믿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섬겼다. 그러나 구원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신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에 구주로 믿는 것이 구원이다. 오늘날도 교회 안에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율법으로 의를 이루어 보려는 자들이 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진실로 사랑해서 어떤 일을 하는게 아니라 나를 나타내기 위해서 하는 자들이 있다. 우리 안에 바리새인 누룩 같은 게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우리가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따른다면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우리는 마땅히 행함을 보여야만 하는데
그런데 이 행함을 보일 때 그만 바리새인 누룩이 나타나는 것이다. 나를 드러내고 내 것으로 했다는 것이 드러나는게 바리새인 누룩이다 이러한 행함은 믿음으로 한 행함이 아니라 스스로 행한 것이다. 온전한 소제 제사의 제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바리새인 같은 모습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내 생명, 내 자식까지도 내 것이 아니다. 하물며 썩어져 버릴 물질은 더 더욱 내 것이 아니다. 고운 가루는 철저히 나란 존재를 부인할 때 가루가 되는 것이다. 제단에 제물은 아무 것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안에서 철저히 고운 가루의 모습으로 부수어져야 한다. 성경은 외식에 대해서 정확히 가르쳐 주고있다. 나를 나타내는 외식 = (마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외식하는 기도 = (마6: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외식하는 금식 = (마6: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남을 흉보는 것도 외식이다. = (마7:5) 외식하는 자여 !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입만 신앙 가진 자도 외식이다 = (막7:6)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외식하는 자는 시대를 분별하지도 못한다 = (눅12:56) 외식하는 자여 !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왜 이렇게 외식하게 됩니까 성경은 무섭게 말하고 있다. (딤전4:2)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들을 향해 마23장에서 조목 조목 저주를 퍼부으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를 7번이나 거듭 거듭 말씀하시면서 "화 있을진저"를 외식하는 자들 앞에 거듭 강조하셨다. 우리의 신앙 속에 외식함으로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 또한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이러한 누룩이 소제 제사 제물에 들어가 있다면 그 제물은 하나님이 안 받으신다. (벧전2:1) 외식을 버리라고 했다. 성도 여러분 ! 우리는 형식과 위장된 신앙 버려야 할 때이다. 우리에게 얼마나 아름답게 포장된 외식이 있는지 모른다. 이러한 바리새인 같은 외식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많은 예배를 드려도 제물이 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예수님은 속일 수 없다. 이제 우리의 외식을 버리고 고운 가루가 되어 하나님 제단에 제물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 ! 사두개인의 신앙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다는 것으로 한마디로 내세를 부인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이들도 하나님은 열심히 섬겼다. 이들이 부활을 부정하거나 무식하게 부활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신앙.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이 땅에서 잘되고 부자로 살고 축복 받아 사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자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사두개인의 가르침이다. 오늘날 이런 사두개인의 가르침이 교회 안에 만연하고 있다. 사두개인의 누룩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늘날 영의 세계를 보지 못하고 인간의 지식으로 성경을 보면 이것은 사두개인과 같은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눈에 보이는 물질 세계에 맞추어서 해석하고 가르치는 것이 사두개인의 누룩이다. 복에 대해서도 하늘 나라에 쌓아 가는 영적인 복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이 땅에서 누릴 물질의 복에만 더 관심이 있는 자가 바로 사두개인의 누룩이다. 복만 받으라고 가르치는 자는 사두개인의 가르침을 가르친 자이고 그 가르침으로 신앙 생활하는 자는 사두개인의 누룩에 취한 성도이다. 이러한 것은 절대로 소제 물이 될 수 없다. (요삼1:2) "사랑하는 자여 !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간구하노라 " 우리의 영적인 문제가 먼저 잘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영혼이 잘된다는 것 무엇을 뜻하는가 마귀에게 절하면 세상 부귀, 영광 주겠다고 했다. 마귀에게 절해서 세상 부귀, 영광 얻은 사람 그 영혼이 잘된 것인가 예수를 믿으면서 세상과 적당히 타협해서 세상 부귀, 영광 얻는다면 그 영혼도 잘못된 것이다. "범사가 잘 된다"는 말도 우리가 잘 이해해야 한다 예수를 믿으면 모든 일이 잘되고 물질의 복만 강조하고 가르치면 안된다. 예수 믿고 오히려 무슨 일이 더 안될수도 있다. 오히려 병들고. 더 가난해지고.고난이 더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 중에서도 더욱 믿음 지키고 신앙 생활 하는게 범사가 잘 되는 것이다. 욥의 신앙은 흠잡을데 없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욥에게 고난이 왔다. 끝까지 하니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욥은 다시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 이것이 범사가 잘 되는 신앙이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가 하나님 복 받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물질의 복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복을 받아야 한다. 이 땅에 물질의 복이 우리의 신앙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고난도 세상 사람 눈에는 저주 같지 보일지 모르지만 영적인 자에 눈에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보인다. 오늘날 성도들이 거꾸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 진짜 받아야하고 추구해야할 영적인 복은 멀리하고 현실적인 이 땅에서 누릴 복에만 더 난리다. 성도들이 이렇게 된 것은 그렇게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코 사두개인의 가르침이고 그 가르침을 받은 성도들은 사두개인의 누룩에 취해 버린 것이다. 이런 모습으로는 우리는 소제 제물이 될 수 없다.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잊지 말기를 축원합니다.
 
3)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막8:15) 헤롯의 누룩은 무엇입니까 헤롯의 왕으로서 세상 권세를 가지고 신앙을 세속화 시키는 것을 말한다. 유대인들과 대제사장들이 헤롯의 권세 아래서 정치와 야합하고 놀아났다 오늘날도 주의 종들이 정치의 세력 권세 앞에 야합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성도도 예수를 믿으면서 정치 세력과 야합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바로 이런 자들이 헤롯의 누룩이다. 이런 신앙으로는 소제 제물이 될 수 없다
2. 꿀을 넣지 말라 = 11절 꿀은 단것이 특징이다. 성경에서 이 꿀은 음녀의 달콤한 말이 곧 꿀이라는 것이 다 (잠5:3)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듯이 달콤한 말로 유혹한다. (잠7:21) "여러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 (잠7:18)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 유혹한다. 이러한 음녀의 입술은 곧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가 아니고 세상에 속한 여인이다. 다시 말해서 음녀의 입술은 세상의 것들이다. 이 음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따라 간다면 음녀와 간음하는 자가 되는데 이것이 꿀을 신앙 생활에 넣는 것이 된다. 세상의 것들은 너무나 우리를 달콤하게 유혹한다 예수를 생각나지 못하게 할 정도로 달콤하다 이런 달콤한 세상 것들에게 빠져 버리면 우리는 영적 간음자가 되고 만다 그런 꿀이 들어간 신앙으로는 우리는 소제 제물이 될 수 없다. 신랑 되신 예수를 멀리하고 세상 것들에 빠져 산다면 우리는 음녀의 세력에 잡혀 있는 것이다. 계시록에 마지막 때 음녀의 화려한 모습이 나오는데 (계17:4) "그 여자는 자주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 꿀은 먹을 때는 그렇게 달고 맛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고 만다 세상의 것들 너무나 화려하고 우리에게 너무나 달콤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깊이 빠져 버리면 우리는 음녀의 세력에 잡히고 만다. 좋은 보약 일수록 쓰다는 말이 있다. 달콤한 말만 듣기 좋아하는 귀들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신앙 생활 하는게 너무 힘들기도 하지만 바로 이러한 쓴 고통이 뒤따르며 살아갈 때 우리는 소제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음녀의 꿀이 있는 신앙으로는 소제 제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어야 할 것이다
3. 소금을 치라 = 13절 누룩을 넣지 말라. 꿀을 넣지 말라에 이어서 소금 만큼은 반드시 치라고 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13절에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이라고 말씀했다. 언약의 소금이 무엇인가 하나님과 변하지 않는 약속을 말한다 (민18:1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영한 응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 " 소제 제사는 언약의 소금 제사라는 것이다. 소제 제사가 일시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원불변한 진리의 언약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소제 제사로 드려지는 신앙 생활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만 끝나는것이 아니라 . 우리의 소제 제사가 하늘 나라까지 이어진다는 것이 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이 땅에서 희생하는 우리의 신앙이 하늘 나라에 까지 올라간다는 믿음으로 소제 제사를 드릴 때 소금을 치는 것이 된다. 즉 사람을 보고 교회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를 나타내기 위해서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직 예수를 위해서 일을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희생을 하는 것이 소제 제사에 소금을 치는 것이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의 주실 상급을 기억하면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그림자도 없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소금을 치는 것이다 이 땅에서 우리가 예수를 위해 아무리 작은 일을 할지라도 우리의 모든 일은 하늘나라에 기록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란다. 얼마나 많은 인간들은 이 땅에 업적은 남기게 위해 난리들인가 우리는 우리의 행위가 하늘나라에 기록된 것을 믿고 소제 제사를 드릴 때 소금을 치는 것이 된다. 반드시 소금을 치고 소제 제사 제물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 중 유일하게 곡식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가 소제 제사이다. 번제 다음에 드려지는 참으로 중요한 제사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제 제사의 실체를 온전히 이루셨다. 우리 또한 예수 안에서 드려지는 모든 예배에 소제 제사의 제물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처럼 고운 가루가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소제 제물처럼 고운 가루가 될 수 있는가 오직 산돌이신 예수 안에서 우리가 부수어질 때 우리는 소제 제물의 고운 가루가 될 수 있고 예수 안에서 사로잡혀 살 때 고운 가루를 기름으로 반죽하게 되고 예수 안에서 유황 같은 합당한 기도를 드릴 때 우리는 소제 제사의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헤롯 같은 죄악을 뜻하는 누룩 같은 것들이 우리의 소제 제사 드리는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소제 제사 제물에 마지막으로 반드시 쳐야 할 것이 있는데 소금이다. 소금 없이 음식이 만들어진 음식은 없다. 부패를 방지하고 맛을 내는게 소금이다 우리의 신앙에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을 우리가 불신하고 믿지 아니하면 우리의 신앙은 부패하고 썩고 말 것이다. 약속의 말씀을 믿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은 희생과 고난 속에서도 감사의 맛을 알고 기쁨의 맛을 안다. 소제 제사는 이제 예수 안에서 우리의 신앙으로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이다. 우리의 신앙 모든 것 자체가 이제 소제 제사 제물처럼 고운 가루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만방에 알리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세상의 누룩들이 우리의 소제 제사에 넘보지 못하도록 우리는 세심히 주의하면서 우리 모두 소제 제물이 되어서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로 드려지는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 직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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