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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감사 (레23:9-14)

본문

오늘은 맥추 감사 주일입니다. 벌써 금년 한 해도 이미 반이 지나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도시 생활을 하다 보니 계절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지금 농사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지금 비가 와야 할 때인지 오지 말아야 할 때인지를 모르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자연과 떨어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옛날이나 오늘이나 또 내일도 마찬가지겠지만 변함없이 강조하고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년 유월절과 수장저롸 맥추절 등 세 절기를 모두 모여서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이 말씀은 앞으로도 계속 시대를 불문하고 강조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주신 분부요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명령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1. 민족의 동질성을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이상의 세 절기는 그냥 먹고 마시는, 잔치하는 명절날이 아닙니다. 명절로 지키되 모두 함께 모여서 지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때는 모두가 예루살렘에 모여 들어 함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모임으로써 히브리 민족의 동일성과 동질성을 형성해 나갔습니다. 모여야 합니다. 모이면 뭉쳐지고, 강해지고, 힘이 생깁니다. 그리고 동족애가 생기고, 정이 생기고, 동질성이 유지됩니다. 그러나 흩어지면 그것들이 약화됩니다. 멀어지고 분산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는 세 번 모여 명절을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대 남기는 유언을 보면 “화목하게 살라”는 내용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이 말은 서로 가까이 하여 협력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그래야 형제애가 생기고, 정이 두터워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여러 남매를 키워 놓으시고 돌아가실 때 “예수 잘 믿고, 봉사 많이 하고, 형제 우애하라”는 말씀을 남겼습니다. 자녀들이 그 말씀을 잘 받들어 그 글을 사진틀에 넣어서 벽에 걸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참 좋은 유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세 가지만 지켜 살게 되면 틀림없이 훌륭한 가문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의 바람이 이것 말고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예수 잘 믿고, 예수님을 위해서 봉사 많이 하고, 형제끼리 우애하라.” 그래서 이 형제들이 그 유언을 소중하게 받들어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한 번씩 주일 오후에는 함께 모여 친교를 한다고 합니다. 오늘날은 핵가족 시대입니다. 그래서 모두들 마음이 바쁩니다. 자구 멀어집니다. 오가지도 않습니다. 왔다가도 금방 돌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형제들의 동질성이 희박해집니다. 부모도 멀어집니다. 형제사이도 멀어지기만합니다. 가족간의 동질성과 공동체 의식이 분산되고 약화되고 깨져 버립니다. 그러다 보니까 오랜만에 만나면 피차 서먹해지고 정이 흐려집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분명 형제간이지만 남보다도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 민족들에게, 또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매년 세 번 함께 모이라.” 이 말씀은 민족 공동체와 가족 동질성을 유지하라는 뜻이 들어 있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맥추절이 무엇입니까 모든 가족들이 함께 모여 추수하고, 감사하고, 그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럼으로써 하나의 가족 공동체를 이루는 감사절입니다. 맥추절을 지키라고 강권하여 명령하신 그 배후에는 이 같은 뜻과 정신이 들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알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매년 맥추절을 지키라” 이 말씀은 매년 추수를 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라는 말입니다. 우리들이 신앙 생활을 바르게 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려고 하면 사실은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가야 더욱 효과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짓고 살아야 하늘의 위력을 알 수 있고, 하늘의 고마움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메마른 도시 생활에서는 실감 있은 신앙 유지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처음에 백성을 선택하실 때 도시 국가에 살고 있던 사람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애굽이나 바벨론이나 소돔, 고모라 같은 도시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불러 내셨습니다. 또한 그 후예들도 도시 국가를 이루어 살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광활한 자연의 대지 위에서 양을 치게 하셨고, 농사를 짓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그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더 쉽게, 그리고 더 깊이 이해하고 느끼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이 같은 생활 배경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살라”는 하나님의 요구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느끼고, 매일 체험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내가 존재해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내가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입히시고 먹이시는 은혜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중에서도 더욱 기본이 되는 감사는 먹고 마시는 생활의 감사입니다. 음식 한 그릇을 앞에 놓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다른 것에서도 감사를 느끼며 체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밥 한 그릇을 앞에 놓고도 하나님께 머리 숙여 감사할 수 있는 마음,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입니까 그런 감사조차 못하는 사람은 더 큰 것에도 감사를 못할 것입니다. 미국에서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는 무신론자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지성인인 것을 자랑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집에 경건한 청교도인 농부 한 사람이 식사에 초대를 받아서 갔습니다. 식사 전에 이 경건한 청교도 농부가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함께 하나님께 감사하고 먹읍시다. ”그랬더니 그 지성인 주인이 그 말에 답했습니다. “그것은 18세기 사람이나 하는 낡은 유물 아닙니까 나는 무신론자입니다.” 이 경건한 농부가 할 수 없이 혼자 기도하고난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집에도 당신 같은 식구가 하나 있습니다.” 그 말에 그 무신론자는 그것이 농부의 집에서 가장 유식한 대학생인 그의 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으로 물었습니다. “도대체 누구인가요 대학에 다니는 당신의 아들인가요” 그때 이 농부가 조용히 말합니다. “아닙니다. 우리 집 돼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삶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음식 한 그릇을 앞에 놓고서도 자연스럽게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은혜에 대해서도 감사할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이 그만큼 산성화되었다는 말이고, 메마르고, 삭막해지고, 동물화되었다는 말입니다. 본문은 말씀합니다. “첫 열매를 거두거든 그 단을 제사장에게 갖다주라. 그러면 제사장은 그 단을 하나님께 드릴지라. 이는 너희가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우리는 아주 조그만 것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기본 자세입니다. 그래야 더 큰 것이 주어질 때 감격하며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을 보면 “너희는 1년에 세 번 모여 절기를 지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말은 “하나님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은 잊어버릴 수 없는 사랑의 대상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성경을 보면 “이처럼 사랑하사”그랬습니다. 얼마큼 사랑했느냐 하면 “이처럼”입니다. 즉 “독생자를 주시기까지”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의중에는 온통 인간 사랑으로 꽉 차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속에는 모두 인간 우선 정신으로 메워져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과정을 보십시오. 모든 창조의 목적이 순전히 인간을 위해서, 인간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마음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출애굽 후 하나님은 광야에서 40년 동안을 만나로 그 백성들을 먹이십니다. 40년 만에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때 만나가 그친 것이 아닙니다. 가서 농사를 지어 곡식을 추수해서 먹을 수 있게 된 그날, 만나가 그쳤습니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익, 배려이고, 관심이십니다. “매년 세 번 너희는 모여 하나님께 제사하라” 이 말씀 속에는 이 같은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세심하신 사랑을 기억하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첫 이삭을 제사장에게 갖다 바치고, 제사장은 그것으로 제사하라”고 했습니다. 열매 중에서 첫 열매는 귀한 것입니다. 자식도 첫 자식을 더 귀히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장자는 다른 데가 있습니다. 생각하는 것이나 마음 쓰는 것이 다릅니다. 하나님이 첫 자식을 요구하신 데에는 그만한 뜻이 있습니다. 열매도 첫 열매가 귀합니다. 농사를 지어서 맨 먼저 얻은 햇곡식,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그래서 옛날에는 임금에게 맨 먼저 갖다 바쳤습니다. 그것도 애굽에서 430년 동안이나 종살이를 하다가 가나안에 드어가서 처음으로 농사를 지어 얻은 첫 열매라면 얼마나 귀한 열매입니까 그것을 제사장에게 갖다 바쳐서 제사장은 그것으로 하나님께 제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라는 말입니다. 마음을 드리되 그냥 마음이 아니고 진정한 마음을 드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감사절에는 물질을 드려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물질은 곧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4. 자연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매년 추수절과 맥추절을 지키라” 이 말은 자연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자연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순자는 “천지자 생지본”이라고 했습니다. “하늘과 땅은 생명의 근본”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자연과 떨어져서 살아갈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을 강조합니다. 이 말은 하늘도 맑고, 땅도 맑고, 사람도 맑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지옥이 어떤 곳입니까 더러운 하늘, 더러운 땅, 더러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지옥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맑은 하늘과 맑은 땅에서 맑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천국을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맑은 땅과 맑은 자연은 인생지복입니다. 자연은 인생의 교과서이자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거짓 없는 스승입니다. 그래서 루소는 학예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사람이 자연으로 돌아가야 인간다운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연을 등지고 살면 두배 이상 악화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오늘 서울의 생활이 얼마나 삭막한 생활인지 모릅니다. 오염된 공기, 더러운 물, 삭막한 시멘트 바닥,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숨을 쉬고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고, 숨을 쉬고, 살아가고 있으니 그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자라난 사람이 장성해서 한 나라의 집권자가 된다고 가정해 볼 때 그 가슴 속에서 인간에 대한 애정 있는 건전한 정책이 얼마나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옛부터 “위인은 시골에서 나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시골 생활 속에서 곡식이 어떻게 자라는지 아는 사람이라야, 그 곡식이 어떻게 여물고 어떻게 해서 입으로 들어가게 되는지를 아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순리를 알아서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집권자가 되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성군이 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시골에서 목동 생활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가 양떼를 길러 보았기 때문에 백성이 귀하다는 것을 알았고, 양떼를 이끌고 풀밭으로, 물가로 끌고 다니는 생활을 해보았기 때문에 백성을 치리하는 데 누구보다도 잘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라는 목가적인 시를 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매년 모여 맥추절을 지키라고 강조하신 까닭은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풀을 뽑고 물을 주고 거두는 삶, 이 같은 환경과 생활과 순리를 아는 사람만이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이웃을 존중할 줄 알고, 하나님과 나라와 이 땅을 사랑할 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사람이 사람을 다스리게 될 때 참다스림이 있고, 이 같은 사람이 사람을 가르칠 때 가르침다운 가르침이 나오게 되고, 이 같은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게 될 때 진정 정신이 들어 있는 감사한 마음으로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연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자연과 등지고, 자연을 무시하고 살아갔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사람들이 다시 자연을 그리워하며 자연의 소중함을 다시 알고 자연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모두들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주말이면 자연을 찾아 나섭니다. 자연을 귀하게 여길 줄 압니다. 음식도 자연의 음식을 찾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 식품, 무공해 식품이라고 하면 무조건 사다가 먹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손님과 함께 호텔에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사람은 미국인 같았는데 그가 식사하는 모습이 하도 특이해서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그릇 가득히 풀만 수북하게 갖다가 먹고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맛이 있는 음식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시퍼런 풀 종류만 먹고 있어서 그 모습이 흡사 영락없이 소가 여물 먹는 모습 같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소가 따로 있습니까 풀을 먹으면 소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소가 인간보다 식생활 면에서는 훨씬 앞섰다는 생각도 가져 보게 됩니다. 인간이 너무 인위적으로 만들고, 뜯어 고치고, 개량을 해서 먹고 살다보니까 이제 와서 그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결국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옛날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그대로의 생활이 제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강조합니다. “너희는 매년 세 번 명절을 지키되 다 함께 모여 지키라.”이 말은 서로 협동하여 살고, 끈끈한 정을 갖고 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살라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상이 귀한 것도 알고 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제 아무리 제주를 부려 보아도 별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맥추 감사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고, 숨쉬고 있음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시다. 이것이 하절기 추수를 하는 이 시기에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상의 제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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