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단에 제물이 되어라 (레3:1-17)
본문
구약의 제사는 한낱 제사로 끝나는 제사가 아니었다. 구약의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사람들이 나아갔듯이 구약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구약의 제사법은 가리켜주고 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 진리요 ! 생명이니 !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모든 제사법 속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깊은 뜻이 들어 있었다. 우리가 구약 말씀 속에 제사들을 보면서 우리가 무심히 읽고 알고만 넘어가서는 안된다. 그 제사법 속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할 것이고 나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할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어떤 신앙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 보아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만 지키라고 구약의 제사법을 주신 것이 아니다. 오늘날은 우리가 구약의 제사법대로 행할 수는 없다. 제사의 실체가 나타나셨으므로 우리는 모형적으로 보여주신 제사 방법을 따를 수 없다. 그러나 제사 방법은 따를 수 없다 할지라도 제사법 속에 원래 주신 하나님의 깊은 뜻은 절대로 변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제사는 화목제이다. 하나님은 인간들과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화목제사를 드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이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불편한 관계를 가지고 신앙 생활 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성도 인것이다. 오늘 우리는 화목 제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한 관계가 되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 모두 하나님 제단에 화목 제물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첫 번째:제단에 화목제 제물이 되어라 (레3:1)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레3:6) "만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는 화목제의 희생이 양이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드릴지며 " (레3:12) "만일 예물이 염소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 화목제 제사는 짐승을 드리는 피의 제사였다. 제물은 소, 양, 염소 세 가지만 드릴 수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하나님 제물로는 반드시 수컷이어야만 했는데 암컷도 사용하도록 허락하고 계신다. 그러나 흠 만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었다. 이러한 화목 제사에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숨겨져 있다.
화목제 = "제바흐 쉘라밈" (히) 이 뜻은 "화평의 희생제. 친교의 희생제" 수컷이나 암컷이나 =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를 이루는데 있어서는 남여 노소 빈부귀천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흠 없는 것으로 =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예수 만이 흠이 없다. 인간 스스로는 화목 제물이 될 수 없다 오직 예수와 하나로 연합되어질 때 화목 제물이 될 수 있다.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는 하나님 앞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우리 또한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물이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번제와 마찬가지로 화목제도 짐승을 죽여 피를 흘리고 번제단에 불로 태워 드리는 화제였다.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제사는 불로 태워서 드리는 화제였다. 이것은 곧 우리의 모든 예배가 오직 성령님의 인도와 주관으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는 예표이다. 이러한 화목 제사가 오늘날 어떻게 이루어 졌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는가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 제물이 되었다고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죄악의 담장이 가로 막혀 있었다.
그런데 이 죄악의 담을 예수가 화목 제물이 되시므로 허물어 진 것이다 (롬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 우리 자신 스스로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없고 스스로는 화목 제물도 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화목 제물이 되었으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될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화목 제물까지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이 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과 혼돈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안정된 삶을 살지 못하고 불안 속에서 살고 있다.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니까 생활 속에서 기쁨이 없고 기쁨이 없다 보니깐 여러 가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로 인해서 여러 가지 질병을 가져오게 하고 있다. 왜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고 혼란스러워 하는가 한 마디로 마음이 화평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마음의 화평이 사람이 갖고자 한다고 해서 되어지는 것입니까 인간 스스로는 마음의 화평을 가질 수 없다. 사람들은 마음의 화평을 가져보려고 별 방법을 다 동원하여 보지만 그러한 수단과 방법은 잠간 뿐이고 다시 사람들의 마음은 또 불안하고 혼란스러워 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한다 하루를 살다 죽더라도 마음 편하게 살다 죽으면 좋겠다. 세상은 갈수룩 우리에게 불안한 소식과 초조함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마음의 화평을 누리고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화목이 우리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한 것은 모두 죄 때문에 오는 것이다. 죄로 인해 인간이 하나님과 멀어진 사이가 될 때 사람들의 마음은 평강을 잃고 불안해 지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에게 해결책은 하나님과의 화해이다. 하나님과의 화해는 화목 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와 하나가 되어질 때 예수의 평강이 마음에 임하게 되는 것이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그런데 우리에게도 이러한 화평이 계속 지속되지 못하고 있다. 기도 할 때만 잠간 평강이 임하고 . 말씀볼 때. 찬영 드릴 때 . 예배 드릴 때는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다가도 또 금방 마음이 심란해지고 어두어져 버린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내가 온전히 하나님께 예수와 더불어 하나님 앞에 화목 제물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 양. 염소. 세 가지 제물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1. 소의 화목 제물이 되어야 한다. (잠14:4) "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 소는 힘있는 짐승으로 충성스러운 짐승이라는 것을 번제 제사 때 살펴보았다. 즉 충성스러운 힘있는 신앙으로 제단을 섬길 때 화목 제물이 될 수 있다. 믿음이 약한 자는 양, 염소의 화목 제물로 충성하므로 화목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각자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이 있다. 그 믿음의 분량대로 우리는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교회에 내 믿음의 분량대로 충성했을 때 그 마음에 평강이 오는 것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다. 이 평강은 저 세상에서 느껴볼 수 없는 평강이다. 이 평강은 바로 내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2. 양의 화목 제물 양도 역시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다. 양은 희생은 의미한다. 희생 없이 얻어지는 없는 것이 세상 이치다. 영적 세계에서도 내가 희생하지 않고 하나님 화목한 관계만 이루어지기 원한다면 너무 무지한 자라고 볼 수밖에 없다. 예수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희생하셨기 때문에 화목 제물이 되셨듯이 우리 또한 교회를 위해서 희생해야만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이루어지고 화목 제물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3. 염소의 화목 제물 염소에 대해서도 번제 제사 때 살펴보았다 염소의 특징은 앞서가는 짐승이다. (렘50:8) " 떼에 앞서가는 수염소같이 하라 " 하나님을 일을 하는데 앞장 서가는 자가 될 때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되고 제단에 화목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도 하나님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앞뒤를 주저하지 않고 앞서가는 분이셨다. ' 찬송가 '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앞길에 장애를 두려 말아라 성령님이 너를 인도 하시리니 왜 지체를 하고 있느냐 앞으로 앞으로 천성을 향해 나가세 천성 문만 바라고 나가세 모든 천사 너희를 영접하러 문 앞에 기다려 서있네 성도의 최고의 신앙은 제단에 제물이 되는 것이다. 살고자 예수를 믿으십니까 죽고자 예수를 믿으십니까 (마16:25-26)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 두 번째:화목제 제물을 어떻게 드려야 할 것인가 2-5절 =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 화목제 제물이 될 정도로 신앙이 성숙한 자들이 하나님께 제물 드리는 방법을 몰라서 화목 제물이 되지 못하고 마는 경우를 우리는 이 시대 너무 많이 보고 있다. 제물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방법 또한 중요하다. 번제, 소제, 화목제, 에서 거듭 강조되는 말씀 중에 하나가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말씀이다. 우리가 수고하고도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지 못하면 헛수고 일 것이다.
화목제 드리는 방법을 7가지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있다
1. 회막문에서 잡으라 = 장소 (곧 교회)
2. 피를 제단 사면에 뿌려라 = 충성심
3. 기름을 드려라 = 성령님의 인도함
4. 단에 불사르라 = 성령님 충만함
5. 가슴은 요제로 드려라 (레7:30) = 요제는 좌우로 흔드는 것이다 이렇게 드린 것은 제사장과 그 가족들 것으로 화목을 이루라는 것이다 6. 우편 뒷다리는 거제로 드려라(레7:32) = 거제는 상하로 흔드는 것이다 이렇게 드린 것은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장 몫이라는 것이다 7. 제물 중 남은 부분을 잘 처리해야 한다 (레7:15-21) = 드린 제물은 이제 하나님의 것이므로 거룩한 것이다.
그러므로 함부로 취급해서는 안된 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화목제는 이미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께 드린 제사이다 그러나 이 시대 과연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사람들끼리도 불편한 관계가 되면 대화가 끓기고 인상만 쓰게 되는데 우리가 하나님과 불편한 관계라면 하나님의 마음 어떠할까요 성도들이 교회 다니다가왜 교회와 목사와 성도들끼리 불편한 관계가 됩니까 화목 제물 드리는 방법을 알지 못해서 불편한 관계가 되고 있는 것이다. 화목 제물을 어떻게 드려야 할 것인가 다시 말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제단에 온전한 화목 제물이 될 수 있겠는가
1. 회막 문에서 잡아라 즉 교회 안에서 제물을 죽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단 앞에서 죽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죽음을 당한 것이다. 우리 또한 내가 섬기는 제단에서 죽어야만 한다. 번제 제사가 내 자신을 위해서 죽는 제사였다면 화목제는 한 알의 밀알이 되기 위해서 내가 죽는 것이다. 이 나라가 화평한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면 성도들이 교회에서부터 죽어질 때 화목함이 나타날 것이다. 가정이 화목해지기 원한다면 내 자신이 먼저 교회 제단 앞에서 죽어질 때 가정은 화목한 가정이 될 것이다 그 제물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으라고 했다 내 자산의 죄를 온전히 고백하고 주님 앞에 죽으라는 것이다 아무리 다른데서 수 백번 죽어도 소용없다. 교회 제단 앞에서 내 자신이 죽어야 한다 주님 앞에서 죽어질 때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임할 것이다.
2. 피를 제단 사면에 뿌려라 피는 생명을 뜻한다.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린다는 것은 죽도록 충성하겠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머리에 가시관 쓰고 양손과 양발에 못이 박히시고 옆구리에는 창이 배를 찔렀다. 머리서부터 발끝에서부터 예수님 몸 속에 있는 피는 다 쏟으셨다. 하나님 제단 사면에 예수님 자신의 온 몸에 피를 뿌리셨다. 완전한 충성의 모습이다. 성도 여러분 ! 우리에게 이러한 충성이 있어야 한다 . 내 몸의 피를 뿌리는 충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너무한 소리라고 여기십니까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제단에 피를 뿌리는 충성은 못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러한 모습이라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보여야 되지 않겠습니까 교회 제단을 떠나서 하나님과 화목 되는 길이 있다고 보십니까 예수를 떠나서 하나님과 화목 되는 길이 있다고 보십니까
3. 기름을 드려라 제물 속에 덮인 기름만 골라서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 기름은 성령님을 뜻하므로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만 화목 제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육체의 소욕을 인도 받으면 제단에 제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갈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님을 거스리고 성령님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 그러나 제단 앞에서 내가 죽고 .제단 사면에 피를 쏟는 충성을 보인다면 주의 성령님은 우리를 온전히 인도하게 될 것이다 우리를 미혹하는 소리가 난무하는 마지막 때에 우리는 더욱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야 할 것이다 성령님의 인도를받지 못하면 우리는 악령의 인도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4. 단 위에 불사르라 제물의 기름을 번제단 불에 올려 태웠다. 모든 기름은 여호와 것이므로 반드시 불에 태워 하나님께 드렸다 이렇게 화제로 드려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했다. 제물을 불로 태워야 만이 화목 제물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성령님의 불로 충만 받아야 만이 화목 제물이 될 수 있다. 세상 충만으로는 제단에 화목 제물이 될 수 없다. 육적인 생각으로 충만한 상태에서는 화목 제물이 될 수 없다. 성령님 충만하기 위해서는 기도도 중요하지만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서는 안된다. 육체의 소욕을 받지 않으려면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결국 성령님 충만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따라 살아갈 때 성령님 충만함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님 충만함 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하나님 제단에 제물 만들기 위해서 성령님의 불로 태우는 것이다. 아무리 성령님이 충만하다 할지라도 제단에 제물이 되지 않는 성도라면 성령님 충만한 삶이 아닌 것이다. 반드시 하나님의 제물을 불에 태워서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로 드려야만 화목 제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5. 가슴은 요제로 드려라 (레7:29-31) 화목제는 하나님과도 화목한 관계를 뜻하지만 사람과 사람사이 화목도 뜻하고 있다.
그런데 요제로 드린 가슴 부위 갈비는 불에 태우지 않고 그슬려서 제사장과 그 자손들에게 돌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백성들과 제사장 간의 화목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사장은 오늘날 교회의 담임 목사이다. 여러분이 화목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의 목사에게 가장 좋은 것을 드릴 수 있는 자가 될 때 화목 제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물의 갈비였으니까 얼마나 맛있는 곳입니까 또 갈비는 짐승의 한 중간이다 가장 좋은 것으로 주의 종을 섬길 때 성도는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되고 화목 제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되었는데 가정이 화목하지 않겠습니까 사업이 화목하지 않겠습니까 성도들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되었는데 교회가 화목하지 않겠습니까 주의 종들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어도 하늘에서 기억한다고 했는데 하물며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 성도가 되는데 어찌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안되겠는가 6. 우편 뒷다리는 거제로 드려라 (레7:32) 거제(擧祭) 올릴 거 자이다. 거제는 위.아래로 들어올리는 것이다. 우편 뒷다리를 불 위에 올렸다 내렸다 상하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것 역시도 불에 태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거제만 드리고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장의 몫으로 드리는 것이다 제사장이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제사장이 집행한 화목 제사로 죄인과 하나님 사이에 화목케 하는 일을 한 것이다. 히3:1절에 예수는 우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시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화목 제사를 치르시고 하나님과 죄인된 우리 사이를 화목케 하셨다. 오늘날 제사장은 교회의 목사들이다. 목사들이 예배를 주관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에 화목케 하는 중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화목 제물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지만 하나님은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장에게는 제물 중 우편 뒷다리를 주도록 하신 것이다 이것이 성도와 제사장 사이를 화목케 하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의 목사들이 예배 때 드린 제물 중 일부는 당연히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레7:34)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취하여 제사장 아론과 그 자손에게 주었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을 영원한 소득이니라 " 영원한 소득이라고 했다. (신25:4)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 " 성도 여러분 ! 성도들이 목사에게 소득을 주지 못하고 있다면 가슴 아파해야 한다. 그것은 내가 곧 화목 제물이 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성도가 기도가 막히고 병이 들고 답답해하고 하나님과 관계가 불편할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목사의 역할이다. 성도가 목사와 관계가 불편해 가지고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한 관계가 되어 질 수 없다. 성도는 화목 제물이 되어서 목사들에게 제물의 일부를 드릴 때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성도들은 목사에게 몫을 작게 줄려고 하고 있고 목사는 더 많이받으려고 하다 보니깐 하나님께 화목케 드린 제사가 되지 못하고 있으니깐 싸우게 되고 하는 것이다 성도는 마땅히 제단에 제물이 되어야 하고 목사는 그 제물의 일부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7. 제물 중 남은 부분을 잘 처리해야 한다. (레7:15-21) 화목제 제사는 이미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리는 제사이다. 19절 = 깨끗한 자만 먹는 제물이다. 그리고 화목 제물로 바쳐진 제물은 이제 하나님의 것이 되었으므로 거룩한 제물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부정한 것과 가증스러운 것이 접촉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정한 자가 화목 제물을 먹으면 죽임을 당한다고 했다. 화목 제사에만 이렇게 먹는 규례가 있는데 이것은 먹으면서 서로 화목하며 즐기는 절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나 다 무조건 이 제물을 먹는 것은 아니다. 부정한 것을 만진 자는 이 제물을 절대 먹을 수 없었다. 무엇을 뜻하는 것 입니까 우리가 세상에 속에서 더럽고 가증스러 마음으로는 화목 제사에 참석할 수도 없고 제물 또한 먹는 기쁨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제사를 드리고난 제물로 제사장과 그 가족들에게 제물의 가슴 갈비를 드리므로 화목케 되었고. 직접 제사를 드린 제사장에게는 우편 뒷다리를 드리므로 화목케 되었고.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제사를 드린 자와 이웃이 즐겁게 먹으면서 화목한 관계를 가졌다.
그러므로 제물의 먹는 기쁨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은 곧 제사장과 이웃과 화목한 관계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상적인 성도는 하나님과는 화목한 관계를 물론 누릴 수 없고 목사와도 화목한 관계를 누릴 수 없고 성도끼리도 화목한 관계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17-18절에 보면 이 제물은 3일 안에 다 먹어 치어야 했다. 만약 3일까지 먹고 남았으면 다 번제단에 불살라 버리라고 했다. 무슨 뜻 입니까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동안 하나님 앞에 화목 제물로 드려졌다. 3일 후 예수님은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 하셨다. 남은 제물을 먹는데 3일 후까지 남겨 두지 말라는 것은 오직 십자가 예수 안에서 화목제를 드리라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의 기쁨도 오직 예수 안에서 만이 누릴 수 있다. 목사와의 화목한관계도 오직 예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성도들 간의 화목한 관계도 오직 예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예수 밖에서 이루어진 화목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화목이다 그러한 화목은 영원한 화목이 되지 못한다 언제인가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거리로 멀어져 버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화목은 영원한 화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히 오직 예수 안에서 화목 제물의 먹는 기쁨을 누려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화목 제물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물을 드리는 방법을 잘못하면 화목 제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7가지로 살펴보았다
1. 나는 정말 교회에서 죽기를 원하고 있는가
2. 교회 제단에 피를 뿌리는 충성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3. 나는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고 있는가
4. 나는 성령님 충만함 삶을 살고 있는가
5. 나는 목사와 화목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6. 나는 목사의 생활에 보탬이 되고 있는가 7. 나는 예수 안에서 화목한 기쁨을 누리고 있는가 성도 여러분 ! 우리의 철저히 하나님과 맨 먼저 화목함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것은 오직 예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화목 제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이루어졌다면 그 다음 누구와 화목한 관계가 이루어져야 합니까 부모입니까 남편입니까 아내입니까 그 다음은 목사와의 화목한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주위에 모든 자와 화목한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모두 제단에 화목 제물이 되어서 우리를 위하여 먼저 화목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귀한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세상은 서로 믿지 못하는 불신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왜 불신하는 세상이 되는가 하나님과 화목함이 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것이다.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지금 어떤 관계인가 화목한 관계인가 아니면 불편한 관계인가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그렇게 고민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신앙 생활 하고 있다. 남편이나 아내랑 친구랑 싸우면 그 불편한 관계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분통이 터지면서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너무 무감각하지 않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수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불편한 관계인데도 화목한 관계인줄 착각하고 신앙 생활하고 있다. 오늘 우리는 살펴보았다.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가 이루어지는게 쉬운가 너무나도 어렵다. 우리가 신앙 생활 하는 것 쉬운가 한 마디로 어렵다. 우리의 신앙 생활이 갈수록어려워 질 것이다. 이번에 제헌절이 토요일 17일 이었다. 18일 날이 주일 날이었는데 도시 교회에 성도들이 많이 빠졌다는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러한 조짐은 앞으로 더욱 심해 질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화목함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가 무시하고 그 누구와 화목한 관계가 이루어지겠는가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 하나님 ! 너무 경홀히 생각치 말자 우리의 믿음 가지기가 너무 힘이 든 세상이다.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다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라는 고백이 나와야 할 것이다. 어떻게 죄인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생각 할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만 생각해도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마지막 때에 기독교 신앙에 가장 심각한 문제가 너무 우리의 신앙을 쉽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기도만 하면 뭐든지 다 이루어질 것처럼 가르치고 있고 안수만 하면 어떤 병도 다 치료될 것처럼 떠들고 있고 축복 기도만 받으면 다 축복 받을 것처럼 알고 있다. 제사법을 통해서 우리가 뼈저리게 깨달아야 할 것은 절망이다. " 아! 어떻게 이런 신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 " 제사법을 통해서 철저하게 내 마음에 절망이 찾아와야 한다 우리가 예수을 믿으면서 가장 무서운 것이 "나는 할 수 있다"라는
I CAN DO ! 잘못된 신앙이다.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예수를 만나는 순간 "나는 할 수 없어 ! " 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철저히 나 자신을 부인하는데서 우리의 신앙은 시작되어야 한다 (마16:24)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 긍정적인 신앙 좋다. 그러나 성경은 나를 부정부터 하라고 하고 있다 제사법은 우리에게 할 수 없다 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주고 있다. 사도 바울은 이 비밀을 깨달은 자였다. (롬7:24) "오호라 !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내가 죄인 중에 괴수" 라고 고백한 바울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음을 고백 한 것이다. 후에 바울은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 고백한다 그렇다. 나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은 할 수 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리를 .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는 죄인들. 그러나 예수가 ! 우리 주님이 나를 위하여 화목 제물이 되셨기에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 앞에 오늘도 나와 온 것이다. (히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이 놀라운 은혜를 깨닫는 자는 예수 안에서 제단에 화목 제물이 되는 것이다 화목제의 제물을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기 바란다. 화목제의 제물이 되어 이 제단을 통해 하나님의 화목함이 나를 통해서 세상 곳곳에 증거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제단에 화목제 제물이 되어라 (레3:1)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레3:6) "만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는 화목제의 희생이 양이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드릴지며 " (레3:12) "만일 예물이 염소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 화목제 제사는 짐승을 드리는 피의 제사였다. 제물은 소, 양, 염소 세 가지만 드릴 수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하나님 제물로는 반드시 수컷이어야만 했는데 암컷도 사용하도록 허락하고 계신다. 그러나 흠 만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었다. 이러한 화목 제사에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숨겨져 있다.
화목제 = "제바흐 쉘라밈" (히) 이 뜻은 "화평의 희생제. 친교의 희생제" 수컷이나 암컷이나 =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를 이루는데 있어서는 남여 노소 빈부귀천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흠 없는 것으로 =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예수 만이 흠이 없다. 인간 스스로는 화목 제물이 될 수 없다 오직 예수와 하나로 연합되어질 때 화목 제물이 될 수 있다.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는 하나님 앞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우리 또한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물이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번제와 마찬가지로 화목제도 짐승을 죽여 피를 흘리고 번제단에 불로 태워 드리는 화제였다.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제사는 불로 태워서 드리는 화제였다. 이것은 곧 우리의 모든 예배가 오직 성령님의 인도와 주관으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는 예표이다. 이러한 화목 제사가 오늘날 어떻게 이루어 졌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는가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 제물이 되었다고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죄악의 담장이 가로 막혀 있었다.
그런데 이 죄악의 담을 예수가 화목 제물이 되시므로 허물어 진 것이다 (롬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 우리 자신 스스로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없고 스스로는 화목 제물도 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화목 제물이 되었으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될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화목 제물까지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이 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과 혼돈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안정된 삶을 살지 못하고 불안 속에서 살고 있다.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니까 생활 속에서 기쁨이 없고 기쁨이 없다 보니깐 여러 가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로 인해서 여러 가지 질병을 가져오게 하고 있다. 왜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고 혼란스러워 하는가 한 마디로 마음이 화평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마음의 화평이 사람이 갖고자 한다고 해서 되어지는 것입니까 인간 스스로는 마음의 화평을 가질 수 없다. 사람들은 마음의 화평을 가져보려고 별 방법을 다 동원하여 보지만 그러한 수단과 방법은 잠간 뿐이고 다시 사람들의 마음은 또 불안하고 혼란스러워 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한다 하루를 살다 죽더라도 마음 편하게 살다 죽으면 좋겠다. 세상은 갈수룩 우리에게 불안한 소식과 초조함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마음의 화평을 누리고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화목이 우리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한 것은 모두 죄 때문에 오는 것이다. 죄로 인해 인간이 하나님과 멀어진 사이가 될 때 사람들의 마음은 평강을 잃고 불안해 지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에게 해결책은 하나님과의 화해이다. 하나님과의 화해는 화목 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와 하나가 되어질 때 예수의 평강이 마음에 임하게 되는 것이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그런데 우리에게도 이러한 화평이 계속 지속되지 못하고 있다. 기도 할 때만 잠간 평강이 임하고 . 말씀볼 때. 찬영 드릴 때 . 예배 드릴 때는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다가도 또 금방 마음이 심란해지고 어두어져 버린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내가 온전히 하나님께 예수와 더불어 하나님 앞에 화목 제물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 양. 염소. 세 가지 제물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1. 소의 화목 제물이 되어야 한다. (잠14:4) "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 소는 힘있는 짐승으로 충성스러운 짐승이라는 것을 번제 제사 때 살펴보았다. 즉 충성스러운 힘있는 신앙으로 제단을 섬길 때 화목 제물이 될 수 있다. 믿음이 약한 자는 양, 염소의 화목 제물로 충성하므로 화목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각자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이 있다. 그 믿음의 분량대로 우리는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교회에 내 믿음의 분량대로 충성했을 때 그 마음에 평강이 오는 것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다. 이 평강은 저 세상에서 느껴볼 수 없는 평강이다. 이 평강은 바로 내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2. 양의 화목 제물 양도 역시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다. 양은 희생은 의미한다. 희생 없이 얻어지는 없는 것이 세상 이치다. 영적 세계에서도 내가 희생하지 않고 하나님 화목한 관계만 이루어지기 원한다면 너무 무지한 자라고 볼 수밖에 없다. 예수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희생하셨기 때문에 화목 제물이 되셨듯이 우리 또한 교회를 위해서 희생해야만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이루어지고 화목 제물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3. 염소의 화목 제물 염소에 대해서도 번제 제사 때 살펴보았다 염소의 특징은 앞서가는 짐승이다. (렘50:8) " 떼에 앞서가는 수염소같이 하라 " 하나님을 일을 하는데 앞장 서가는 자가 될 때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되고 제단에 화목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도 하나님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앞뒤를 주저하지 않고 앞서가는 분이셨다. ' 찬송가 '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앞길에 장애를 두려 말아라 성령님이 너를 인도 하시리니 왜 지체를 하고 있느냐 앞으로 앞으로 천성을 향해 나가세 천성 문만 바라고 나가세 모든 천사 너희를 영접하러 문 앞에 기다려 서있네 성도의 최고의 신앙은 제단에 제물이 되는 것이다. 살고자 예수를 믿으십니까 죽고자 예수를 믿으십니까 (마16:25-26)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 두 번째:화목제 제물을 어떻게 드려야 할 것인가 2-5절 =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 화목제 제물이 될 정도로 신앙이 성숙한 자들이 하나님께 제물 드리는 방법을 몰라서 화목 제물이 되지 못하고 마는 경우를 우리는 이 시대 너무 많이 보고 있다. 제물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방법 또한 중요하다. 번제, 소제, 화목제, 에서 거듭 강조되는 말씀 중에 하나가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말씀이다. 우리가 수고하고도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지 못하면 헛수고 일 것이다.
화목제 드리는 방법을 7가지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있다
1. 회막문에서 잡으라 = 장소 (곧 교회)
2. 피를 제단 사면에 뿌려라 = 충성심
3. 기름을 드려라 = 성령님의 인도함
4. 단에 불사르라 = 성령님 충만함
5. 가슴은 요제로 드려라 (레7:30) = 요제는 좌우로 흔드는 것이다 이렇게 드린 것은 제사장과 그 가족들 것으로 화목을 이루라는 것이다 6. 우편 뒷다리는 거제로 드려라(레7:32) = 거제는 상하로 흔드는 것이다 이렇게 드린 것은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장 몫이라는 것이다 7. 제물 중 남은 부분을 잘 처리해야 한다 (레7:15-21) = 드린 제물은 이제 하나님의 것이므로 거룩한 것이다.
그러므로 함부로 취급해서는 안된 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화목제는 이미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께 드린 제사이다 그러나 이 시대 과연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사람들끼리도 불편한 관계가 되면 대화가 끓기고 인상만 쓰게 되는데 우리가 하나님과 불편한 관계라면 하나님의 마음 어떠할까요 성도들이 교회 다니다가왜 교회와 목사와 성도들끼리 불편한 관계가 됩니까 화목 제물 드리는 방법을 알지 못해서 불편한 관계가 되고 있는 것이다. 화목 제물을 어떻게 드려야 할 것인가 다시 말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제단에 온전한 화목 제물이 될 수 있겠는가
1. 회막 문에서 잡아라 즉 교회 안에서 제물을 죽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단 앞에서 죽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죽음을 당한 것이다. 우리 또한 내가 섬기는 제단에서 죽어야만 한다. 번제 제사가 내 자신을 위해서 죽는 제사였다면 화목제는 한 알의 밀알이 되기 위해서 내가 죽는 것이다. 이 나라가 화평한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면 성도들이 교회에서부터 죽어질 때 화목함이 나타날 것이다. 가정이 화목해지기 원한다면 내 자신이 먼저 교회 제단 앞에서 죽어질 때 가정은 화목한 가정이 될 것이다 그 제물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으라고 했다 내 자산의 죄를 온전히 고백하고 주님 앞에 죽으라는 것이다 아무리 다른데서 수 백번 죽어도 소용없다. 교회 제단 앞에서 내 자신이 죽어야 한다 주님 앞에서 죽어질 때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임할 것이다.
2. 피를 제단 사면에 뿌려라 피는 생명을 뜻한다.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린다는 것은 죽도록 충성하겠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머리에 가시관 쓰고 양손과 양발에 못이 박히시고 옆구리에는 창이 배를 찔렀다. 머리서부터 발끝에서부터 예수님 몸 속에 있는 피는 다 쏟으셨다. 하나님 제단 사면에 예수님 자신의 온 몸에 피를 뿌리셨다. 완전한 충성의 모습이다. 성도 여러분 ! 우리에게 이러한 충성이 있어야 한다 . 내 몸의 피를 뿌리는 충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너무한 소리라고 여기십니까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제단에 피를 뿌리는 충성은 못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러한 모습이라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보여야 되지 않겠습니까 교회 제단을 떠나서 하나님과 화목 되는 길이 있다고 보십니까 예수를 떠나서 하나님과 화목 되는 길이 있다고 보십니까
3. 기름을 드려라 제물 속에 덮인 기름만 골라서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 기름은 성령님을 뜻하므로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만 화목 제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육체의 소욕을 인도 받으면 제단에 제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갈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님을 거스리고 성령님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 그러나 제단 앞에서 내가 죽고 .제단 사면에 피를 쏟는 충성을 보인다면 주의 성령님은 우리를 온전히 인도하게 될 것이다 우리를 미혹하는 소리가 난무하는 마지막 때에 우리는 더욱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야 할 것이다 성령님의 인도를받지 못하면 우리는 악령의 인도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4. 단 위에 불사르라 제물의 기름을 번제단 불에 올려 태웠다. 모든 기름은 여호와 것이므로 반드시 불에 태워 하나님께 드렸다 이렇게 화제로 드려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했다. 제물을 불로 태워야 만이 화목 제물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성령님의 불로 충만 받아야 만이 화목 제물이 될 수 있다. 세상 충만으로는 제단에 화목 제물이 될 수 없다. 육적인 생각으로 충만한 상태에서는 화목 제물이 될 수 없다. 성령님 충만하기 위해서는 기도도 중요하지만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서는 안된다. 육체의 소욕을 받지 않으려면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결국 성령님 충만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따라 살아갈 때 성령님 충만함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님 충만함 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하나님 제단에 제물 만들기 위해서 성령님의 불로 태우는 것이다. 아무리 성령님이 충만하다 할지라도 제단에 제물이 되지 않는 성도라면 성령님 충만한 삶이 아닌 것이다. 반드시 하나님의 제물을 불에 태워서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로 드려야만 화목 제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5. 가슴은 요제로 드려라 (레7:29-31) 화목제는 하나님과도 화목한 관계를 뜻하지만 사람과 사람사이 화목도 뜻하고 있다.
그런데 요제로 드린 가슴 부위 갈비는 불에 태우지 않고 그슬려서 제사장과 그 자손들에게 돌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백성들과 제사장 간의 화목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사장은 오늘날 교회의 담임 목사이다. 여러분이 화목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의 목사에게 가장 좋은 것을 드릴 수 있는 자가 될 때 화목 제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물의 갈비였으니까 얼마나 맛있는 곳입니까 또 갈비는 짐승의 한 중간이다 가장 좋은 것으로 주의 종을 섬길 때 성도는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되고 화목 제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되었는데 가정이 화목하지 않겠습니까 사업이 화목하지 않겠습니까 성도들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되었는데 교회가 화목하지 않겠습니까 주의 종들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어도 하늘에서 기억한다고 했는데 하물며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 성도가 되는데 어찌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안되겠는가 6. 우편 뒷다리는 거제로 드려라 (레7:32) 거제(擧祭) 올릴 거 자이다. 거제는 위.아래로 들어올리는 것이다. 우편 뒷다리를 불 위에 올렸다 내렸다 상하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것 역시도 불에 태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거제만 드리고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장의 몫으로 드리는 것이다 제사장이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제사장이 집행한 화목 제사로 죄인과 하나님 사이에 화목케 하는 일을 한 것이다. 히3:1절에 예수는 우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시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화목 제사를 치르시고 하나님과 죄인된 우리 사이를 화목케 하셨다. 오늘날 제사장은 교회의 목사들이다. 목사들이 예배를 주관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에 화목케 하는 중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화목 제물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지만 하나님은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장에게는 제물 중 우편 뒷다리를 주도록 하신 것이다 이것이 성도와 제사장 사이를 화목케 하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의 목사들이 예배 때 드린 제물 중 일부는 당연히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레7:34)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취하여 제사장 아론과 그 자손에게 주었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을 영원한 소득이니라 " 영원한 소득이라고 했다. (신25:4)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 " 성도 여러분 ! 성도들이 목사에게 소득을 주지 못하고 있다면 가슴 아파해야 한다. 그것은 내가 곧 화목 제물이 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성도가 기도가 막히고 병이 들고 답답해하고 하나님과 관계가 불편할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목사의 역할이다. 성도가 목사와 관계가 불편해 가지고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한 관계가 되어 질 수 없다. 성도는 화목 제물이 되어서 목사들에게 제물의 일부를 드릴 때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성도들은 목사에게 몫을 작게 줄려고 하고 있고 목사는 더 많이받으려고 하다 보니깐 하나님께 화목케 드린 제사가 되지 못하고 있으니깐 싸우게 되고 하는 것이다 성도는 마땅히 제단에 제물이 되어야 하고 목사는 그 제물의 일부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7. 제물 중 남은 부분을 잘 처리해야 한다. (레7:15-21) 화목제 제사는 이미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리는 제사이다. 19절 = 깨끗한 자만 먹는 제물이다. 그리고 화목 제물로 바쳐진 제물은 이제 하나님의 것이 되었으므로 거룩한 제물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부정한 것과 가증스러운 것이 접촉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정한 자가 화목 제물을 먹으면 죽임을 당한다고 했다. 화목 제사에만 이렇게 먹는 규례가 있는데 이것은 먹으면서 서로 화목하며 즐기는 절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나 다 무조건 이 제물을 먹는 것은 아니다. 부정한 것을 만진 자는 이 제물을 절대 먹을 수 없었다. 무엇을 뜻하는 것 입니까 우리가 세상에 속에서 더럽고 가증스러 마음으로는 화목 제사에 참석할 수도 없고 제물 또한 먹는 기쁨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제사를 드리고난 제물로 제사장과 그 가족들에게 제물의 가슴 갈비를 드리므로 화목케 되었고. 직접 제사를 드린 제사장에게는 우편 뒷다리를 드리므로 화목케 되었고.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제사를 드린 자와 이웃이 즐겁게 먹으면서 화목한 관계를 가졌다.
그러므로 제물의 먹는 기쁨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은 곧 제사장과 이웃과 화목한 관계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상적인 성도는 하나님과는 화목한 관계를 물론 누릴 수 없고 목사와도 화목한 관계를 누릴 수 없고 성도끼리도 화목한 관계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17-18절에 보면 이 제물은 3일 안에 다 먹어 치어야 했다. 만약 3일까지 먹고 남았으면 다 번제단에 불살라 버리라고 했다. 무슨 뜻 입니까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동안 하나님 앞에 화목 제물로 드려졌다. 3일 후 예수님은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 하셨다. 남은 제물을 먹는데 3일 후까지 남겨 두지 말라는 것은 오직 십자가 예수 안에서 화목제를 드리라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의 기쁨도 오직 예수 안에서 만이 누릴 수 있다. 목사와의 화목한관계도 오직 예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성도들 간의 화목한 관계도 오직 예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예수 밖에서 이루어진 화목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화목이다 그러한 화목은 영원한 화목이 되지 못한다 언제인가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거리로 멀어져 버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화목은 영원한 화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히 오직 예수 안에서 화목 제물의 먹는 기쁨을 누려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화목 제물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물을 드리는 방법을 잘못하면 화목 제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7가지로 살펴보았다
1. 나는 정말 교회에서 죽기를 원하고 있는가
2. 교회 제단에 피를 뿌리는 충성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3. 나는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고 있는가
4. 나는 성령님 충만함 삶을 살고 있는가
5. 나는 목사와 화목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6. 나는 목사의 생활에 보탬이 되고 있는가 7. 나는 예수 안에서 화목한 기쁨을 누리고 있는가 성도 여러분 ! 우리의 철저히 하나님과 맨 먼저 화목함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것은 오직 예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화목 제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이루어졌다면 그 다음 누구와 화목한 관계가 이루어져야 합니까 부모입니까 남편입니까 아내입니까 그 다음은 목사와의 화목한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주위에 모든 자와 화목한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모두 제단에 화목 제물이 되어서 우리를 위하여 먼저 화목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귀한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세상은 서로 믿지 못하는 불신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왜 불신하는 세상이 되는가 하나님과 화목함이 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것이다.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지금 어떤 관계인가 화목한 관계인가 아니면 불편한 관계인가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그렇게 고민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신앙 생활 하고 있다. 남편이나 아내랑 친구랑 싸우면 그 불편한 관계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분통이 터지면서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너무 무감각하지 않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수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불편한 관계인데도 화목한 관계인줄 착각하고 신앙 생활하고 있다. 오늘 우리는 살펴보았다.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가 이루어지는게 쉬운가 너무나도 어렵다. 우리가 신앙 생활 하는 것 쉬운가 한 마디로 어렵다. 우리의 신앙 생활이 갈수록어려워 질 것이다. 이번에 제헌절이 토요일 17일 이었다. 18일 날이 주일 날이었는데 도시 교회에 성도들이 많이 빠졌다는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러한 조짐은 앞으로 더욱 심해 질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화목함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가 무시하고 그 누구와 화목한 관계가 이루어지겠는가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 하나님 ! 너무 경홀히 생각치 말자 우리의 믿음 가지기가 너무 힘이 든 세상이다.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다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라는 고백이 나와야 할 것이다. 어떻게 죄인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생각 할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만 생각해도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마지막 때에 기독교 신앙에 가장 심각한 문제가 너무 우리의 신앙을 쉽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기도만 하면 뭐든지 다 이루어질 것처럼 가르치고 있고 안수만 하면 어떤 병도 다 치료될 것처럼 떠들고 있고 축복 기도만 받으면 다 축복 받을 것처럼 알고 있다. 제사법을 통해서 우리가 뼈저리게 깨달아야 할 것은 절망이다. " 아! 어떻게 이런 신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 " 제사법을 통해서 철저하게 내 마음에 절망이 찾아와야 한다 우리가 예수을 믿으면서 가장 무서운 것이 "나는 할 수 있다"라는
I CAN DO ! 잘못된 신앙이다.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예수를 만나는 순간 "나는 할 수 없어 ! " 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철저히 나 자신을 부인하는데서 우리의 신앙은 시작되어야 한다 (마16:24)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 긍정적인 신앙 좋다. 그러나 성경은 나를 부정부터 하라고 하고 있다 제사법은 우리에게 할 수 없다 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주고 있다. 사도 바울은 이 비밀을 깨달은 자였다. (롬7:24) "오호라 !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내가 죄인 중에 괴수" 라고 고백한 바울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음을 고백 한 것이다. 후에 바울은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 고백한다 그렇다. 나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은 할 수 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리를 .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는 죄인들. 그러나 예수가 ! 우리 주님이 나를 위하여 화목 제물이 되셨기에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 앞에 오늘도 나와 온 것이다. (히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이 놀라운 은혜를 깨닫는 자는 예수 안에서 제단에 화목 제물이 되는 것이다 화목제의 제물을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기 바란다. 화목제의 제물이 되어 이 제단을 통해 하나님의 화목함이 나를 통해서 세상 곳곳에 증거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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