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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화목 제물이 됩시다 (레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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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의 선수가 됩시다 지금부터 100년 전입니다. 1899년 남미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국경지역에서 큰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아르헨티나의 사제 베나벤트가 국민들에게 평화 를 호소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이 소식이 칠레에 전해지자 칠레의 신부가 역시 평화를 호소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두 나라에 평화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영국 정부의 극적인 중재로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총과 대포 를 만드는 쇠를 녹여서 그리스도의 동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동상이 오늘날 안 데스 산맥 국경지대 높은 산봉우리에 있습니다. 그 동상 전면에 칠레 국민과 아 르헨티나 국민은 그리스도의 발 밑에서 엄숙히 서약한 이 계약을 산이 무너져 티끌이 되기 전에는 결코 사람들이 잊지 않을 것이다 고 새겨져 있습니다. 그 뒷 면에는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을 하나로 만드시느니라는 말씀이 기록되 어 있습니다. 이것이 화목제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 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 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 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님 안에서 아버 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2:14-18)고 했습니다. 성막의 전체 가 예수 그리스도인 동시에 성물 하나 하나도 그의 속성을 보여줍니다. 마찬가 지로 구약의 모든 제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냄과 동시에 각 제사는 주님의 구원계시의 한 부분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상을 펴서 성찬을 베푸심으로 하나님 과 우리를 하나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화목제를 신약의 성찬으로 승화시킨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1:23-26). 그러면 화목제는 어떻게 드리는가
첫째:화목제의 특징 소나 양이나 염소로 드립니다. 번제의 경우에는 비둘기도 드릴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화목제사에는 비둘기를 드릴 수 없는가 피의 제사중 먹을 수 있는 제사는 유일하게 화목제사입니다. 비둘기는 제물로 드림과 동시에 친교를 위 해 나눌 수 없는 작은 새입니다. 그래서 비둘기를 금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 목은 큰자와 가진자 편에서 먼저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쳐 준 복음의 원리입니다. 아비집을 나간 탕자가 집으로 돌아올 때 누가 먼저 화해하고 화목 했습니까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입니다. 이에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 상 거가 먼데 아버지께서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누가복음 15:20)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범죄한 아담이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하나님이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 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9)고 찾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를 위해서 독생자를 먼저 보내신 것입니다(요한복음 3:16). 암수의 구별이 없습니다. 번제에는 암수 구별이 분명합니다(레위기 1:3). 수컷이란 머리로서 대표의 상징입니다(로마서 5:12-21, 에베소서 5:23). 그러나 화목제는 죄의 책임을 묻는 제사가 아닙니다. 화목제는 죄문제에서 자유하여 하나님과 하나되는 놀라운 화해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이 제사는 남녀노소, 빈부 귀천, 지위고하를 무론하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화해와 평화로서 기쁨을 나누는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 을 얻었나니 (히브리서 10:19)고 했습니다. 기름을 태워서 드립니다(3-4, 9-10, 14-15). 기름이 싸고 있는 내장이나 간이나 콩팥은 생명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부분입니다. 참된 화목은 나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드리는 희생이 있을 때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반면에 이 부분은 가장 추하고 더러운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이기적이고 정욕적인 부 분은 태워서 버려야 합니다. 소중한 것을 드림과 동시에 나의 욕망과 탐욕을 태 워서 제거해 버림으로서 참된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이 진노가 임하느니라 (골로새서 3:5-6)고 했습니다. 가슴과 뒷다리 부분은 먹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능력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제물로 태워서 드릴 것은 기름으 로 하게 했습니다. 사실 이것을 먹으면 몸에 해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가슴과 뒷 다리 부분의 좋은 살고기를 제사장이 먹게 했습니다. 왜 흔든 가슴과 뒷 다리를 제사장에게 주었는가 가슴이 애정(affections)의 상징이라면 뒷다리는 능력 (strength)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화목제를 드릴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은 가슴에 품은 아가폐 사랑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또한 그가 갈보리로 지고 가신 십자가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우리가 화목제를 드릴 때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공급받게 됩니다.
둘째:화목제의 내용 화목제의 의미는 다양하게 번역됩니다. 화목제란 히브리어로 제바하 셀라밈(-Zehvagh Shelamin)이란 말인데 화란어 성경에서는 주로 감사제 (Tnank Offering)로 많이 변역하고, 새국제역(NIV)에서는 교제제(Fellowship Offering)로, 영국 킹제임스역(KJV)과 미국 개역표준역(RSV)에서는 화목제 (Peace Offering)로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어 친교를 이루는 교 제의 감사제입니다. 주로 화목제는 세가지 형태로 드려집니다. 감사제(Thank-offering)입니다.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드 리는 제사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왜 당신이 감사해야 하는가 우리는 전혀 하나님과 화해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 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 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리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은 것이니라 (로마서 5:6, 8, 10)고 했습니다. 우리의 형편으로서는 화목이 전혀 불가능한 상태에서 주 님이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는가 서원제(Vow-offering)입니다. 서원이란 충성심의 발로이므로 최고의 헌신 의 징표로서 작정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로 인하여 저주를 받아 멸 망할 자들인데 구원하여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드리 기로 맹세한 것입니다. 나실인의 서원이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 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 주의 초나 독주의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도무지 그 머리 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 룩한즉 그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민수기 6:2-3, 5-6)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려지는 것이므로 죄와 거룩하게 구별되어 성결해야 합니다. 낙헌제(Free will-offering)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시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기 때문에 자원제 혹은 낙헌제라고도 합니다. 자발적인 제사이므로 헌신하는 마음에서 드리는 기쁨의 제사입니다. 중요한 것은 감격입니다. 드리고 싶어서 견딜 수 없을 때 드리는 자원하는 제사입니다. 각각 그 마음 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 심이니라 (고린도후서 9:7-8)고 했습니다.
셋째:화목제의 대상 하나님과 화목합시다. 하나님과 관계가 바로되지 않으면 삶의 모든 영역 이 깨어집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 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 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회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 은 죄를 간과 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로마서 3:23-25) 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가로놓인 장벽이 있으면 어떠한 은총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 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사야 59:1-2)고 했습니다. 이웃과 화목합시다. 하나님과의 화목이 이루어진 외적인 증거가 이웃과의 화목입니다. 보이는 이웃과 화목하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습니다. 사도요한은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 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 이니라 (요한일서 1:9-11)고 했습니다. 주님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마태 음 6:12)고 했으며,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태복음 5:23-24)고 했습니다. 나 자신과 화목합시다. 자기확대, 자기멸시를 하여 자신과 화목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나 자신은 모든 피조물 중에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특수한 존재입니다(잠언 8:22-31). 하나님을 사랑하는 외적인 증거가 이웃의 사랑이라면 이웃 사랑의 척 도는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마태복음 22:39)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 떠한 형편에서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 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 결을 배웠노라 (빌립보서 4:11-12)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화목제란 화평과 친교의 제사입니다. 우리는 식탁공동체인 식구를 가족이라 부릅니다. 참된 친교는 먹을 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주님은 구원사역을 행하면 서 먹이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구약의 화목제는 주님이 성만찬으로 성화시켜 자신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평화의 선수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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