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멜렉의 비극 (삿9:1-15)
본문
지난 주에 살펴본 기드온 사사는 성공한 실패자 였습니다. 그는 미디안을 정복한 승리자였지만, 결국 자기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에봇을 만들어서 승리를 기념하려고 했지만, 그것을 이스라엘이 섬기게 되므로 올무가 되었습니다. 또 그는 왕이 되지 않겠다고 하고 하나님만 이스라엘을 다스리신다고 선언했지만, 곧 스스로 왕과 같은 대접을 받고 사는 외식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자식들에게서 나타납니다. ,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70여 명의 아들들 가운데 세겜의 첩에게서 낳은 서자였습니다(8:31). 그는 이복 형제 70명을 죽이고 이스라엘의 왕좌에 올랐습니다. 기드온은 자신과 자신의 아들은 이스라엘을 다스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아비멜렉이 아버지의 말씀을 어겼습니다.그는 왕으로 추대된 것이 아니라 세겜 땅에 사는 외척의 도움을 빌려 일종의 청부 살인 사건을 저지릅니다. 그리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 기드온의 기대와 얼마나 다른 행동입니까
그런데 70명의 아들이 한 반석에서 변을 당했을 때 유일한 생존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막내였던 요담입니다.요담은 매우 용감하였습니다. 그는 아비멜렉이 왕이 된 후에 세겜을 찾아갔습니다. 자기 형제를 죽이는 일에 가담하고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았던 세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경고하였습니다. 요담은 아버지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웠던 세겜 사람들을 향해 유명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네 나무의 비유는 부당한 방법으로 왕이 되었던 아비멜렉의 비참한 말로를 증언하였습니다. 아비멜렉의 비극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다음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인생의 본분을 망각한 이기적인 욕망의 비극입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존재 목적이 어디 있습니까 전도서의 말씀의 결론에는 (전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한 율법사와의 대화에서 이런 대답을 유도해 내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눅 10:27). 주님은 이 율법사의 대답을 승인하면서 그것이 영생을 얻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본분을 망각하면 남는 것은 자기 욕심을 채우는 것밖에 없습니다. 본문 8절 말씀을 보면 숲의 나무들이 감람나무를 찾아와서 왕이 되어 달라고 합니다. 이때 감람나무가 어떤 대답을 하는지 주의를 기울여 보십시오. 감람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9절). 감람나무는 자신의 기름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해야 하므로 그 일을 그만두고 왕 노릇을 할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자신의 본분이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의 대답 역시 자신의 본분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나무들의 왕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13절).포도나무는 자신에게서 나는 술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해야 하므로 다른 일은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나무들의 임금이 되는 것조차도 자신의 임무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감람나무와 동일한 고백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평생 나밖에 모르고 살아갑니다. 이기심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평생 자기만을 위해, 자기 가족만을 위해 살다가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런 삶이 없습니까 신앙의 걸음을 걸어도 여전히 자기 중심이 있습니다. 기도할 때도 그렇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자신의 건강과 사업 번창과 자녀들의 성공만을 위해 기도합니다. 나만 복받게 해 달라는 기도가 전부입니다. 이웃을 망각하고 살면서 자신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떠벌리고 다닙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해 보십시오.고통받고 있는 이웃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습니다.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환자들,얽혀진 인간 관계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누구에게도 고백할 수 없는 고통을 간직한 사람들, 사업이 망하여 미래가 막막한 이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이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십시오.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의 무더운 지역에서 선교하는 분들,러시아와 중국에서 수고하고 있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회교 국가에서 목숨을 걸고 전도하고 있는 형제자매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우리와 전혀 상관없게 느껴지던 지구 반대편의 나라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내 이웃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중보 기도는 이웃을 발견하게 합니다 . 우리의 시야를 넓혀 줍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합니다. 자신만을 위해서 살면 자기를 잃어버립니다. 인생을 낭비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이웃을 위해서 자신을 버리면 자기를 찾습니다.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예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9). 아비멜렉은 자기만을 위해 인생을 살았습니다. 인생을 소모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인생의 본분, 삶의 목적을 상실한 허무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살지 못하고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려 한 데서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산다는 것은 하나님과 이웃을 섬긴다는 말입니다. 섬긴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상대에게 도움이 되도록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웃을 섬기기 원합니까 무엇을, 어떻게 기여하겠습니까 감람나무를 생각해 봅시다. 감람나무는 기름을 생산합니다. 그 기름으로 어둠을 밝힐 수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어떻습니까 무화과나무는 아름다운 실과를 맺습니다.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워 줍니다. 포도나무는 어떻습니까 포도나무는 포도를 맺고 새 술을 냅니다. 중동 지방에서 포도주는 음료수로 가장 중요합니다. 가시나무는 무엇으로 기여를 합니까 가시가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합니까 15절 말씀에 다른 나무들이 와서 왕이 되어 달라고 하자 가시나무가 대답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왕을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내 그늘에 와서 피하라는 말은 내 지배를 받아라, 내가 너희를 다스리겠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지배욕만을 채우려는 속셈입니다. 이웃은 전혀 배려하지 않는 처사입니다. 결국 스스로 비극을 자초하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세우신 그 위치에 대하여 생각을 해야합니다. 우리가 맡아있는 일이 작은 일이고 알아 주지 않는 일이라서 나 자신이 시시하게 여기지는 않습니까 우리 몸의 지체가 다양하듯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데도 우리의 다양한 모습들을 사용하십니다. 결국 모든 삶들이 다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고, 이웃에게 유익되는 삶이라면 우리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가치를 왕이 되는 것보다 적게 평가하는 어리석음을 버려야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기르면서 공부 잘하라는 말만 하지 않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오.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어떻게 설명합니까 사람으로 태어나서 역사에 무언가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 보람 있는 삶이다. 그러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세상에서도 잘난 부모들은 이런 정신으로 철학을 가지고 자녀를 기릅니다. 뭐니뭐니해도 뭐니가 최고다.남에게 뒤지지 않고 출세하려면 일류 대학에 가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세상에서 무시당한다.이러지는 않습니까 당신은 자녀에게 어떤 가치관을 심어 줍니까 자기 자신의 욕망을 채우도록 가르친다면 그는 자라서 아비멜렉과 같은 비극적인 삶을 살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4,4
5). 주님의 삶은 오전 말씀같이 오직 섬기는 삶이었습니다. 다스리고 빼앗는 지배욕을 추구한 아비멜렉의 삶은 비극이었습니다. 혹시 당신은 이런 비극의 현장에 서 있지는 않습니까 감람나무는 기름을 생산하고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고 포도나무는 포도와 새 술을 공급합니다. 모두 생산물이 있습니다. 가시나무는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아무 것도 기여한 것이 없습니다.가시나무가 자랑할 것이라고는 꼭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남을 찌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피 흘리게 하는 것입니다. 가시나무만은 생산해 내는 것이 없습니다. 가시나무의 삶은 비생산적일 뿐만 아니라 파괴적이었습니다. 오히려 괴를 자행했습니다.70명이나 되는 자기 형제들을 살해했습니다.자신의 출세욕과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방해가 되는 모든 존재들을 다 제거해 버렸습니다. 지배욕에 사로잡힌 비극적인 결과는 파괴로 나타납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의미가 있습니까 아니면 무의미하게 거저 이기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지나간 삶은 과연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살므로 열매맺는 생산적인 것입니까,아니면 가시나무같이 파괴적인 것은 아닙니까 아비멜렉의 최후가 9장 5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여인이 맷돌 윗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려 던져 그 두골을 깨뜨리니. 아비멜렉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여자가 던진 맷돌에 맞아 머리가 깨져 죽었습니다. 이는 우연한 죽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계획하고 계산한 심판입니다 그가 받아야 할 당연한 대가를 치른 것입니다.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십니다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이 말씀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에게 가시와 같은 삶을 살았던 아비멜렉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음을 기억하십시오. 54절을 보면 아비멜렉은 죽어 가면서도 자존심을 내세웠습니다. 이 추악한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죽은 아비멜렉의 비극은 인생의 목적을 망각한 데 있었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살라고 명령하십니다.이 명령을 수행하지 않고 하나님께 범죄하고 이웃을 파괴하며 사는 인생은 자기 자신까지도 비참하게 만드는 최후를 맞게 됩니다. 이제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야 할지가 머리에 떠오를 것입니다. 오늘 특별히 하나님께 헌신예배를 드리는 남선교회 여러분들, 여러분들의 삶이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운 때인줄 압니다. 그러나 감람나무 같이, 포도나무 같이, 무화과 나무 같이 욕심 내지 말고 하나님게서 내게 주신 내 현실에서 내 직장에서 내 가정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분의 이름을 존귀케 하기 위하여 인생을 살아가기 바랍니다.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당신 몸을 아끼고 사랑하듯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며 살기 바랍니다. 이것이 헌신입니다. 어떤 유혹에도 흔딜리지 않고, 자신이 맡은 일에 충성하는 것 이것만이 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가치있고, 보람되고 영원한 영광스런 것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70명의 아들이 한 반석에서 변을 당했을 때 유일한 생존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막내였던 요담입니다.요담은 매우 용감하였습니다. 그는 아비멜렉이 왕이 된 후에 세겜을 찾아갔습니다. 자기 형제를 죽이는 일에 가담하고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았던 세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경고하였습니다. 요담은 아버지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웠던 세겜 사람들을 향해 유명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네 나무의 비유는 부당한 방법으로 왕이 되었던 아비멜렉의 비참한 말로를 증언하였습니다. 아비멜렉의 비극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다음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인생의 본분을 망각한 이기적인 욕망의 비극입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존재 목적이 어디 있습니까 전도서의 말씀의 결론에는 (전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한 율법사와의 대화에서 이런 대답을 유도해 내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눅 10:27). 주님은 이 율법사의 대답을 승인하면서 그것이 영생을 얻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본분을 망각하면 남는 것은 자기 욕심을 채우는 것밖에 없습니다. 본문 8절 말씀을 보면 숲의 나무들이 감람나무를 찾아와서 왕이 되어 달라고 합니다. 이때 감람나무가 어떤 대답을 하는지 주의를 기울여 보십시오. 감람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9절). 감람나무는 자신의 기름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해야 하므로 그 일을 그만두고 왕 노릇을 할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자신의 본분이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의 대답 역시 자신의 본분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나무들의 왕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13절).포도나무는 자신에게서 나는 술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해야 하므로 다른 일은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나무들의 임금이 되는 것조차도 자신의 임무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감람나무와 동일한 고백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평생 나밖에 모르고 살아갑니다. 이기심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평생 자기만을 위해, 자기 가족만을 위해 살다가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런 삶이 없습니까 신앙의 걸음을 걸어도 여전히 자기 중심이 있습니다. 기도할 때도 그렇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자신의 건강과 사업 번창과 자녀들의 성공만을 위해 기도합니다. 나만 복받게 해 달라는 기도가 전부입니다. 이웃을 망각하고 살면서 자신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떠벌리고 다닙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해 보십시오.고통받고 있는 이웃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습니다.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환자들,얽혀진 인간 관계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누구에게도 고백할 수 없는 고통을 간직한 사람들, 사업이 망하여 미래가 막막한 이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이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십시오.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의 무더운 지역에서 선교하는 분들,러시아와 중국에서 수고하고 있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회교 국가에서 목숨을 걸고 전도하고 있는 형제자매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우리와 전혀 상관없게 느껴지던 지구 반대편의 나라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내 이웃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중보 기도는 이웃을 발견하게 합니다 . 우리의 시야를 넓혀 줍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합니다. 자신만을 위해서 살면 자기를 잃어버립니다. 인생을 낭비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이웃을 위해서 자신을 버리면 자기를 찾습니다.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예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9). 아비멜렉은 자기만을 위해 인생을 살았습니다. 인생을 소모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인생의 본분, 삶의 목적을 상실한 허무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살지 못하고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려 한 데서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산다는 것은 하나님과 이웃을 섬긴다는 말입니다. 섬긴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상대에게 도움이 되도록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웃을 섬기기 원합니까 무엇을, 어떻게 기여하겠습니까 감람나무를 생각해 봅시다. 감람나무는 기름을 생산합니다. 그 기름으로 어둠을 밝힐 수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어떻습니까 무화과나무는 아름다운 실과를 맺습니다.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워 줍니다. 포도나무는 어떻습니까 포도나무는 포도를 맺고 새 술을 냅니다. 중동 지방에서 포도주는 음료수로 가장 중요합니다. 가시나무는 무엇으로 기여를 합니까 가시가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합니까 15절 말씀에 다른 나무들이 와서 왕이 되어 달라고 하자 가시나무가 대답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왕을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내 그늘에 와서 피하라는 말은 내 지배를 받아라, 내가 너희를 다스리겠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지배욕만을 채우려는 속셈입니다. 이웃은 전혀 배려하지 않는 처사입니다. 결국 스스로 비극을 자초하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세우신 그 위치에 대하여 생각을 해야합니다. 우리가 맡아있는 일이 작은 일이고 알아 주지 않는 일이라서 나 자신이 시시하게 여기지는 않습니까 우리 몸의 지체가 다양하듯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데도 우리의 다양한 모습들을 사용하십니다. 결국 모든 삶들이 다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고, 이웃에게 유익되는 삶이라면 우리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가치를 왕이 되는 것보다 적게 평가하는 어리석음을 버려야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기르면서 공부 잘하라는 말만 하지 않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오.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어떻게 설명합니까 사람으로 태어나서 역사에 무언가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 보람 있는 삶이다. 그러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세상에서도 잘난 부모들은 이런 정신으로 철학을 가지고 자녀를 기릅니다. 뭐니뭐니해도 뭐니가 최고다.남에게 뒤지지 않고 출세하려면 일류 대학에 가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세상에서 무시당한다.이러지는 않습니까 당신은 자녀에게 어떤 가치관을 심어 줍니까 자기 자신의 욕망을 채우도록 가르친다면 그는 자라서 아비멜렉과 같은 비극적인 삶을 살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4,4
5). 주님의 삶은 오전 말씀같이 오직 섬기는 삶이었습니다. 다스리고 빼앗는 지배욕을 추구한 아비멜렉의 삶은 비극이었습니다. 혹시 당신은 이런 비극의 현장에 서 있지는 않습니까 감람나무는 기름을 생산하고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고 포도나무는 포도와 새 술을 공급합니다. 모두 생산물이 있습니다. 가시나무는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아무 것도 기여한 것이 없습니다.가시나무가 자랑할 것이라고는 꼭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남을 찌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피 흘리게 하는 것입니다. 가시나무만은 생산해 내는 것이 없습니다. 가시나무의 삶은 비생산적일 뿐만 아니라 파괴적이었습니다. 오히려 괴를 자행했습니다.70명이나 되는 자기 형제들을 살해했습니다.자신의 출세욕과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방해가 되는 모든 존재들을 다 제거해 버렸습니다. 지배욕에 사로잡힌 비극적인 결과는 파괴로 나타납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의미가 있습니까 아니면 무의미하게 거저 이기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지나간 삶은 과연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살므로 열매맺는 생산적인 것입니까,아니면 가시나무같이 파괴적인 것은 아닙니까 아비멜렉의 최후가 9장 5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여인이 맷돌 윗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려 던져 그 두골을 깨뜨리니. 아비멜렉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여자가 던진 맷돌에 맞아 머리가 깨져 죽었습니다. 이는 우연한 죽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계획하고 계산한 심판입니다 그가 받아야 할 당연한 대가를 치른 것입니다.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십니다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이 말씀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에게 가시와 같은 삶을 살았던 아비멜렉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음을 기억하십시오. 54절을 보면 아비멜렉은 죽어 가면서도 자존심을 내세웠습니다. 이 추악한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죽은 아비멜렉의 비극은 인생의 목적을 망각한 데 있었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살라고 명령하십니다.이 명령을 수행하지 않고 하나님께 범죄하고 이웃을 파괴하며 사는 인생은 자기 자신까지도 비참하게 만드는 최후를 맞게 됩니다. 이제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야 할지가 머리에 떠오를 것입니다. 오늘 특별히 하나님께 헌신예배를 드리는 남선교회 여러분들, 여러분들의 삶이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운 때인줄 압니다. 그러나 감람나무 같이, 포도나무 같이, 무화과 나무 같이 욕심 내지 말고 하나님게서 내게 주신 내 현실에서 내 직장에서 내 가정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분의 이름을 존귀케 하기 위하여 인생을 살아가기 바랍니다.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당신 몸을 아끼고 사랑하듯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며 살기 바랍니다. 이것이 헌신입니다. 어떤 유혹에도 흔딜리지 않고, 자신이 맡은 일에 충성하는 것 이것만이 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가치있고, 보람되고 영원한 영광스런 것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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