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인격 단장은? (아1:3-6)
본문
I.향기로운 이름, 주님의 이름 3절에 "네 기름이 향기로와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향하여 자문 자답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오늘에 성도들이 주님을 향하여 할 말입니다. 여기 말씀하신 "기름"은 성전에서 사용하는 기름인데, 감람유와 몰약과 계피로 만든 기름으로서, 제사장, 선지자, 왕을 장립할 때에 쓰는 기름입니다. 또 자기 집 에 귀한 손님이 올 때에 뿌려 주는 기름이요 또 이 기름은 악취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하여 이 기름을 쏟았는데, 창세 전에 쏟았습니다. 이렇게 쏟아서 우리를 제사장, 선지자, 왕으로 세워 주셨으니 그 기름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또 여기 말씀하신 "이름은" 예수님의 행사를 말하는 것이데, 예수님의 행사는 천 지 창조 이후부터 있게 된 것이 아니고 영원 전부터 있었습니다. 이 예수님은 인성 을 입고 세상에 오시기 전, 신성으로 계실 때에 하나님이신데, 이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그때부터 계신 것이 아니다. 천지를 창조 하시기 전, 영원 전에 계셨고, 영원 전에 계셨던 하나님이 역사 세계에 나타나신 것은 천지를 창조하신 그때부터이 니, 이 하나님이 사람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3절 중간에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다"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 늘의 부요와 권세와 지위와 영광과 평강 이 전부를 우리 위해서 희생하신 것을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3절 처음에 "네 기름이 향기롭다"고 하신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제사장, 선지자, 왕으로 세워서 사랑과 지혜, 지식과 능력의 완전자로 육 성시킨다고 하신 이 소식이 모든 소식 중에 제일 기쁜 소식이라는 말씀이요, 이 역 사가 모든 역사 중에 제일 가치 있고 영광스러운 역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향기로운 기름 냄새를 맡은 자마다 자기의 전부를 주님께 기울여 바치게 됩니다. (빌 1:20-21, 3:10-14)
II.주님께 붙들린 성도 (주님께 붙들려야 할 것) 4절에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고 말씀했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께 붙들리기를 원한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주님을 붙들고 가면 아무래도 안심이 되지 않고 위험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안심이 되지 않고 위험한가 자기에게 힘이 있을 때에, 자기의 역량으 로 감당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자기가 주님을 붙들 수가 있는데 자기에게 힘이 없을 때에, 자기의 역량으로 감당 할 수가 없는 정도에 이르게 되면, 주님을 붙들지 못하고 놓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보다 무한히 강하신 주님의 손에 붙들려 놓으면, 자기가 어떻게 되어도 상관이 없고 안심이 된다. 그래서 "너는 나를 인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 사람으로 많은 사람의 기쁨이) 4절 중간에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니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 니, 네 사랑이 포도주에 지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 왕에게 이끌려 침궁으로 들어갈 때에 이 여인에게 관련된 시녀들과 궁녀들이 왕의 사랑을 함께 받고 기쁨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처녀 들이 술람미 여인이 침궁으로 이끌려 들어감을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만족한 것 입니다. 그래서 4절 중간에 보면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오늘도 그러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주님께 붙들려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그 사람에게 관련된 모든 성도들이 일어서게 되고 살아나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은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기를 원해야 하고, 이 주님을 소망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드리실 때에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에스더서에도 보면 아하수에 로 왕이 에스더를 이끌어 드릴 때에 그 나라를 진동시키는 큰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 었습니다. (주님 만난 그 세계)
그런데 여기에 말씀하신 "침궁은" 자기의 기도의 골방을 말합니다. 그리고 술람미 여인은 처녀요, 아직도 혼인을 하지 않고 약혼만 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왕의 침 궁에 들어가서 보니까 그 궁 안에 있는 모든 소유나 권세나 영광이 그의 것이 되었 고 그는 왕에게 사랑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 성도들이 주님과 밀접한 교제를 맺는 은혜의 세계, 기도의 골방, 여기에 들어가서 주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교제 해 보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은혜의 세계를 갈급하여 찾아가게 됩니다. 땅 위에 있는 것을 분토와 같 이 초개와 같이 다 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잡고 주님만 의지하고 믿고 따라갑니다.
그런데 성도가 땅위에서 사랑의 세계를 발견치 못하고 세상 것에게 갈급하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믿지 아니하는 불신의 죄값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4절 중간에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다"고 했는데, 이 말씀은 구속받은 성도들이 주님을 기뻐하고 즐거 워하고 주님 외에는 원하고 바라보고 사랑 할 것이 없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자기의 전부를 다 바꿔 놓고 보면 자기에게 영원히 필요한 것이 거기에 다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천지 만물을 지었기 때문에 헛된 것을 찾으면 안됩니다. 자기의 전부를 주님께 맡기는 자는 주님의 침궁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자기와 관 련된 모든 것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만족히 여기게 됩니다. 술람미 여인이 왕의 침궁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을 모든 시녀들과 궁녀들이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만 족하고 또 이 술람미 여인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시녀나 궁녀는 왕후가 될 수 있으나 왕후는 시녀나 궁녀가 될 수가 없는 것처럼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간접적으로 받는 것보다 직접적으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외부적, 내부적으로 자기의 전부를 희 생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침궁으로 인도함을 받으면 그로 말미암아 많은 생명이 구원을 얻게 되고 그 영광이 영원히 해와 같이 빛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전부를 주님께 맡길 때, 주님의 모든 소유는 자기 것이 되고 자 기의 전부를 주님께 맡기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주님보다 나은 줄 알기 때문에 자기 를 주님께 맡기지 못하는 것이니 공연히 자기가 자기를 염려하게 되고 자기가 자기 를 보호하게 되는데 이것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III.부족함에서 주님 사랑을 (주님 앞에 늘 부족한 자) 5절에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같을찌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여기 "예루살렘 여자들"은 귀부인들을 말합니다. 잘나고 훌륭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아"하신 이 말씀은 "잘나고 훌륭한 사람들아"하는 말씀인 것이 고, "내가 비록 검으나"라고 하는 이 말씀은 "내가 비록 죄인이지만" 하는 말씀입니다. "아름다우니"라고 하는 말은 "의인이니"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검은 것은 죄인을 말하고, 아름다운 것은 의인을 말하는데, 죄인이 죄인으로 나타날 때에 주님은 기뻐하시고, 또 주님 앞에 죄인이 된 것만큼 주님의 사랑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의인이 된 것은 주님이 장차 오실 때에 필 요하지, 지금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의 죄를 들추어 내지 않기 때문에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발견한 것만큼 고침을 받게 되고 은혜와 사랑을 입는 것입니다.
그런데 5절 중간에 "게달의 장막"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천막인데, 그 색깔이 검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휘장"은 솔로몬 왕이 일년에 몇 차례씩 유람을 갈 때에 치는 천막으로, 그 시대에 있어서는 가장 화려하고 높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게달의 장막 같으나 솔로몬의 휘장과 같다"고 하신 이 말씀은 처음에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답다"고 하신 이 말씀을 보다 실감 있게 실제 물체를 가지고 표시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여자들은 얼굴이 희고 아름답고 귀골 이지만 왕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술람미 여인은 얼굴이 검고 아름답 지 못해도 왕의 사랑을 다 받았습니다. 이는 자기는 검고 못난 여인으로 알고 왕 앞 에 나타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 믿는 사람들이 게달의 장막과 같은 이 세상적인 생활을 언젠가는 벗 을 것이요, 또 죄악인줄 알고 솔로몬의 휘장과 같은 영원 무궁 세계의 의로운 생활 을 갈망하는 사람이라야 그 사람이 비록 못난 죄인이라도 부족한 사람이라도 천하고 무식한 사람이라도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적인 생활은 언젠가는 벗을 것임을 모르고 의롭고 영원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은 죽은 사람이요 술에 취한 사람이요 그 사람이 아무리 잘 나 고 명철하고 유식하고 위대해도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주님께 배척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기 생활을) 6절에 "내가 일광에 쬐어서 거무스럼할찌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미의 아들들 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은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여기에 말씀하신 "일광"은 햇빛을 말하는데, 이 세상에 있는 부귀, 영화, 권세, 향락을 말합니다. 그러면 "일광에 쬐어서 거무스름하다"는 말은 "햇볕 아래에서 정신없이 마구 날뛰다가 보니 검게 되었다"는 말인데, "이 세상에 있는 부귀, 영화, 권세, 향락을 좋은 것으로 알고, 이것을 가져 보겠다고 정신없이 날뛰었지만 죄악적 이고 주위와 환경에게 부딪쳐서 죄만 짓게 되었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거무스름해도 흘겨보지 말라". 얕보지 말아라 멸시하지 말아라는 말씀입니다. 왜 왕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의가 있기 때문인 것 입니다.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고 말씀했는데, 여기 에 말씀하신 "어미의 아들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지 아니하신 세상 사람을 말합니다.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다"고 하신 말은 어미의 아들 들이 술람미 여인을 시기하여 사랑하는 왕에게서 쫓겨나도록 하기 위해서 유혹하여 남의 포도원을 지키게 하였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포도원을 지킨다고 얼굴이 검게 된 것이 아니고 남의 포도원을 지킨다고 얼 굴이 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멸시하지 말고 업신여기지 말 것은, 자기의 검은 것 만큼 사랑하는 왕의 은혜와 사랑을 입고 왕에게 나아가게 되니 왕이 자기를 불쌍히 여겨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술람미 여인처럼 세상의 유혹을 받아서 남 의 포도원지기, 곧 천국 생활이 아닌 세상 생활을 한다고 죄만 짓게 되었으나 주님 의 사랑과 긍휼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믿는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는 예수님께 배척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유혹하여 넓은 길로 가자고 하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것 같지만, 우리를 영원히 결박시키는 것이요 우리에게 성공을 주는 것 같지만 실은 영원한 실패를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 끝에 보면 이 술람미 여인은 남의 포도원을 지키느라 자기 포도원을 지키지 못했음을 고백하고 탄식함과 동시에 이제는 자기의 포도원을 발견하게 된 것 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포도원은 무엇인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자 기 생활을 하는 것인데, 자기 생활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위해서 죽으신 십자가. 곧 주님을 위해서 녹아지는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어미의 포도원. 곧 남의 포도원. 곧 이 세상 사람들이 사는 생활과 같은 그런 생활을 한 것을 통회하고, 이제는 십자가에서 녹아지는 좁은 길을 걸어가려고 결심하는 것이니 우리에게도 이런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오늘에 성도들이 주님을 향하여 할 말입니다. 여기 말씀하신 "기름"은 성전에서 사용하는 기름인데, 감람유와 몰약과 계피로 만든 기름으로서, 제사장, 선지자, 왕을 장립할 때에 쓰는 기름입니다. 또 자기 집 에 귀한 손님이 올 때에 뿌려 주는 기름이요 또 이 기름은 악취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하여 이 기름을 쏟았는데, 창세 전에 쏟았습니다. 이렇게 쏟아서 우리를 제사장, 선지자, 왕으로 세워 주셨으니 그 기름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또 여기 말씀하신 "이름은" 예수님의 행사를 말하는 것이데, 예수님의 행사는 천 지 창조 이후부터 있게 된 것이 아니고 영원 전부터 있었습니다. 이 예수님은 인성 을 입고 세상에 오시기 전, 신성으로 계실 때에 하나님이신데, 이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그때부터 계신 것이 아니다. 천지를 창조 하시기 전, 영원 전에 계셨고, 영원 전에 계셨던 하나님이 역사 세계에 나타나신 것은 천지를 창조하신 그때부터이 니, 이 하나님이 사람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3절 중간에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다"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 늘의 부요와 권세와 지위와 영광과 평강 이 전부를 우리 위해서 희생하신 것을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3절 처음에 "네 기름이 향기롭다"고 하신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제사장, 선지자, 왕으로 세워서 사랑과 지혜, 지식과 능력의 완전자로 육 성시킨다고 하신 이 소식이 모든 소식 중에 제일 기쁜 소식이라는 말씀이요, 이 역 사가 모든 역사 중에 제일 가치 있고 영광스러운 역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향기로운 기름 냄새를 맡은 자마다 자기의 전부를 주님께 기울여 바치게 됩니다. (빌 1:20-21, 3:10-14)
II.주님께 붙들린 성도 (주님께 붙들려야 할 것) 4절에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고 말씀했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께 붙들리기를 원한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주님을 붙들고 가면 아무래도 안심이 되지 않고 위험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안심이 되지 않고 위험한가 자기에게 힘이 있을 때에, 자기의 역량으 로 감당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자기가 주님을 붙들 수가 있는데 자기에게 힘이 없을 때에, 자기의 역량으로 감당 할 수가 없는 정도에 이르게 되면, 주님을 붙들지 못하고 놓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보다 무한히 강하신 주님의 손에 붙들려 놓으면, 자기가 어떻게 되어도 상관이 없고 안심이 된다. 그래서 "너는 나를 인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 사람으로 많은 사람의 기쁨이) 4절 중간에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니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 니, 네 사랑이 포도주에 지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 왕에게 이끌려 침궁으로 들어갈 때에 이 여인에게 관련된 시녀들과 궁녀들이 왕의 사랑을 함께 받고 기쁨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처녀 들이 술람미 여인이 침궁으로 이끌려 들어감을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만족한 것 입니다. 그래서 4절 중간에 보면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오늘도 그러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주님께 붙들려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그 사람에게 관련된 모든 성도들이 일어서게 되고 살아나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은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기를 원해야 하고, 이 주님을 소망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드리실 때에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에스더서에도 보면 아하수에 로 왕이 에스더를 이끌어 드릴 때에 그 나라를 진동시키는 큰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 었습니다. (주님 만난 그 세계)
그런데 여기에 말씀하신 "침궁은" 자기의 기도의 골방을 말합니다. 그리고 술람미 여인은 처녀요, 아직도 혼인을 하지 않고 약혼만 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왕의 침 궁에 들어가서 보니까 그 궁 안에 있는 모든 소유나 권세나 영광이 그의 것이 되었 고 그는 왕에게 사랑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 성도들이 주님과 밀접한 교제를 맺는 은혜의 세계, 기도의 골방, 여기에 들어가서 주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교제 해 보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은혜의 세계를 갈급하여 찾아가게 됩니다. 땅 위에 있는 것을 분토와 같 이 초개와 같이 다 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잡고 주님만 의지하고 믿고 따라갑니다.
그런데 성도가 땅위에서 사랑의 세계를 발견치 못하고 세상 것에게 갈급하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믿지 아니하는 불신의 죄값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4절 중간에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다"고 했는데, 이 말씀은 구속받은 성도들이 주님을 기뻐하고 즐거 워하고 주님 외에는 원하고 바라보고 사랑 할 것이 없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자기의 전부를 다 바꿔 놓고 보면 자기에게 영원히 필요한 것이 거기에 다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천지 만물을 지었기 때문에 헛된 것을 찾으면 안됩니다. 자기의 전부를 주님께 맡기는 자는 주님의 침궁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자기와 관 련된 모든 것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만족히 여기게 됩니다. 술람미 여인이 왕의 침궁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을 모든 시녀들과 궁녀들이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만 족하고 또 이 술람미 여인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시녀나 궁녀는 왕후가 될 수 있으나 왕후는 시녀나 궁녀가 될 수가 없는 것처럼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간접적으로 받는 것보다 직접적으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외부적, 내부적으로 자기의 전부를 희 생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침궁으로 인도함을 받으면 그로 말미암아 많은 생명이 구원을 얻게 되고 그 영광이 영원히 해와 같이 빛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전부를 주님께 맡길 때, 주님의 모든 소유는 자기 것이 되고 자 기의 전부를 주님께 맡기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주님보다 나은 줄 알기 때문에 자기 를 주님께 맡기지 못하는 것이니 공연히 자기가 자기를 염려하게 되고 자기가 자기 를 보호하게 되는데 이것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III.부족함에서 주님 사랑을 (주님 앞에 늘 부족한 자) 5절에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같을찌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여기 "예루살렘 여자들"은 귀부인들을 말합니다. 잘나고 훌륭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아"하신 이 말씀은 "잘나고 훌륭한 사람들아"하는 말씀인 것이 고, "내가 비록 검으나"라고 하는 이 말씀은 "내가 비록 죄인이지만" 하는 말씀입니다. "아름다우니"라고 하는 말은 "의인이니"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검은 것은 죄인을 말하고, 아름다운 것은 의인을 말하는데, 죄인이 죄인으로 나타날 때에 주님은 기뻐하시고, 또 주님 앞에 죄인이 된 것만큼 주님의 사랑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의인이 된 것은 주님이 장차 오실 때에 필 요하지, 지금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의 죄를 들추어 내지 않기 때문에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발견한 것만큼 고침을 받게 되고 은혜와 사랑을 입는 것입니다.
그런데 5절 중간에 "게달의 장막"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천막인데, 그 색깔이 검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휘장"은 솔로몬 왕이 일년에 몇 차례씩 유람을 갈 때에 치는 천막으로, 그 시대에 있어서는 가장 화려하고 높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게달의 장막 같으나 솔로몬의 휘장과 같다"고 하신 이 말씀은 처음에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답다"고 하신 이 말씀을 보다 실감 있게 실제 물체를 가지고 표시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여자들은 얼굴이 희고 아름답고 귀골 이지만 왕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술람미 여인은 얼굴이 검고 아름답 지 못해도 왕의 사랑을 다 받았습니다. 이는 자기는 검고 못난 여인으로 알고 왕 앞 에 나타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 믿는 사람들이 게달의 장막과 같은 이 세상적인 생활을 언젠가는 벗 을 것이요, 또 죄악인줄 알고 솔로몬의 휘장과 같은 영원 무궁 세계의 의로운 생활 을 갈망하는 사람이라야 그 사람이 비록 못난 죄인이라도 부족한 사람이라도 천하고 무식한 사람이라도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적인 생활은 언젠가는 벗을 것임을 모르고 의롭고 영원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은 죽은 사람이요 술에 취한 사람이요 그 사람이 아무리 잘 나 고 명철하고 유식하고 위대해도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주님께 배척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기 생활을) 6절에 "내가 일광에 쬐어서 거무스럼할찌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미의 아들들 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은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여기에 말씀하신 "일광"은 햇빛을 말하는데, 이 세상에 있는 부귀, 영화, 권세, 향락을 말합니다. 그러면 "일광에 쬐어서 거무스름하다"는 말은 "햇볕 아래에서 정신없이 마구 날뛰다가 보니 검게 되었다"는 말인데, "이 세상에 있는 부귀, 영화, 권세, 향락을 좋은 것으로 알고, 이것을 가져 보겠다고 정신없이 날뛰었지만 죄악적 이고 주위와 환경에게 부딪쳐서 죄만 짓게 되었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거무스름해도 흘겨보지 말라". 얕보지 말아라 멸시하지 말아라는 말씀입니다. 왜 왕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의가 있기 때문인 것 입니다.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고 말씀했는데, 여기 에 말씀하신 "어미의 아들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지 아니하신 세상 사람을 말합니다.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다"고 하신 말은 어미의 아들 들이 술람미 여인을 시기하여 사랑하는 왕에게서 쫓겨나도록 하기 위해서 유혹하여 남의 포도원을 지키게 하였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포도원을 지킨다고 얼굴이 검게 된 것이 아니고 남의 포도원을 지킨다고 얼 굴이 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멸시하지 말고 업신여기지 말 것은, 자기의 검은 것 만큼 사랑하는 왕의 은혜와 사랑을 입고 왕에게 나아가게 되니 왕이 자기를 불쌍히 여겨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술람미 여인처럼 세상의 유혹을 받아서 남 의 포도원지기, 곧 천국 생활이 아닌 세상 생활을 한다고 죄만 짓게 되었으나 주님 의 사랑과 긍휼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믿는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는 예수님께 배척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유혹하여 넓은 길로 가자고 하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것 같지만, 우리를 영원히 결박시키는 것이요 우리에게 성공을 주는 것 같지만 실은 영원한 실패를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 끝에 보면 이 술람미 여인은 남의 포도원을 지키느라 자기 포도원을 지키지 못했음을 고백하고 탄식함과 동시에 이제는 자기의 포도원을 발견하게 된 것 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포도원은 무엇인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자 기 생활을 하는 것인데, 자기 생활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위해서 죽으신 십자가. 곧 주님을 위해서 녹아지는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어미의 포도원. 곧 남의 포도원. 곧 이 세상 사람들이 사는 생활과 같은 그런 생활을 한 것을 통회하고, 이제는 십자가에서 녹아지는 좁은 길을 걸어가려고 결심하는 것이니 우리에게도 이런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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